17화. 악마의 숲 (7)
「엥? 그게 말이 돼?」
「악마를 예속하다니. 그게 가능 할 리가…….」
샤논과 한령은 브라함의 심상 세계에 들어온 후로 몇 번이나 놀라는지 헤아릴 틈이 없었다.
악마는 신에 버금가는 존재다. 물론, 98층에 억류되지 못할 정도로 약한 악마들도 많다. 마족과의 경계선에 놓인 자들도 더러 있으니 그런 자들을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악마는 용종을 멸종시킬 정도로 뛰어난 존재들이다.
그런 이들을 예속시킨다고?
아무리 브라함이 브라흐마 신의 인격을 갖고 있다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권능에 제약이 걸린 지금, 그것이 가능하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었다.
『저거, 위험하지 않을까? 주인?』
그때, 조용히 몸을 숨기고 있던 레베카도 나타나서 악마의 숲을 살폈다.
연우의 용마안과 초감각을 빌려 보는 마귀꽃의 양식장은 확실히 수도승이었던 그녀가 보기에도 비정상적이었다.
연성진은 수십 수백 개의 연금술과 흑마법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지만, 크게 봤을 때 총 5가지 과정으로 나눌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지력을 대량으로 끌어올려서 양식장 내 악마수들에게 고루 뿌려 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렇게 만든 보라색 마귀꽃들이 최대한 빠르게 꽃망울을 틔울 수 있게 유전자를 자극하는 것이었다.
세 번째는 태어난 마족들에게 혼란과 광기 같은 정신적 마법을 걸어 서로를 강제로 잡아먹게 만들고, 네 번째는 이렇게 급속도로 강해진 마족들을 제물로 삼아 뭔가를 소환하도록 되어 있었다.
악마 소환진.
이 일대를 임의로 마계의 권역으로 만들고, 악마들이 제물을 따라 오롯이 나타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그리고 이때 마지막 다섯 번째 단계가 발동하도록 되어 있었다.
봉인진(封印陣). 악마가 나타나는 순간, 녀석을 구속하기 위해 다량의 마법들이 전개될 것이다. 여러 마법 중에는 연우의 눈에 친숙한 것들도 있었다.
‘심지어 신진철의 구조식을 마법 도식으로 풀어낸 것도 있어. 저런 게 가능했던 건가?’
연우는 대체 브라함이 갖고 있는 연금술의 지식이 얼마나 되는 건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여기에 온 후부터 자신이 갖고 있던 상식이 모조리 부서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원래 신이었던 양반이라 그런 걸까?
다만, 연성진은 아직 여러모로 미완성적인 부분이 많았다.
아무래도 낮에 브라함이 자리를 비우는 건, 결계 구축과 함께 연성진을 완성하려는 목적도 있는 것 같았다.
‘평소에는 앞선 두 가지 마법만 발동시켜서 마귀꽃을 회수하고, 나머지 세 가지는 나중에 악마를 잡을 때 쓰려는 것 같은데.’
하나하나 살필수록 정말이지 치밀하게 만들어진 연성진이었다. 톱니바퀴 부품으로 사용된 마법들도 하나같이 뛰어난 것들이었다.
갈리어드는 정령이 나타나자 살짝 놀란 눈빛이었지만, 곧 정령과 친숙한 엘프 출신답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면서 재미있다는 듯이 가볍게 웃었다.
“악마의 예속이라. 사실 비슷하다면 비슷하고, 다르다면 달라.”
“자세히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세샤, 봤지?”
“예.”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 아이는 오래 살지 못해.”
“…….”
연우는 입을 꾹 다물었다.
갈리어드의 미소는 쓴웃음으로 변했다.
“종족의 한계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세샤는 태어났을 때부터 몸이 너무 약했어. 우리가 아무리 좋은 약을 먹여도 처음에만 차도를 보일 뿐, 나중에는 다시 침대에 눕기 바빴지.”
연우는 알 것 같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처음 세샤를 만났을 때. 기운이 약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애당초 용인은 순리적으로 태어나기 힘든 존재였다. 종족이 전혀 다른 용종과 인간 사이의 자식. 잠재력은 뛰어나지만, 건강하게 태어나기 힘들었다. 하물며 쿼터는 오죽할까.
그걸 알기에 고룡 칼라투스도 동생에게 용체 특성을 물려줄 때, 적당한 간격을 뒀다. 권능을 8단계로 나누어 차례로 개방시킬 수 있도록 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연우도 마찬가지였고.
“하지만 유일하게 병환이 나아질 때가 있었어.”
연우는 침음성을 흘렸다.
“마의 인자를 삼켰을 때군요.”
갈리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사실 세샤가 저렇게 조금씩 뛰어다닐 수 있게 된 것도, 자네에게서 간식을 얻어먹을 수 있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네.”
연우는 팬케이크를 먹는 내내 눈빛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던 세샤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슬슬 한계를 보이고 있어. 아무래도 내성이 생기는 것 같더군.”
연우는 그제야 연성진이 만들어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아예 악마를 한 마리 통째로 잡아서……?”
“그래. 멍청한 악마가 하나 나타나면 바로 봉인시키고, 그것을 세샤가 흡수하도록 할 생각이야.”
연우는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아픈 아이를 위해서 악마를 잡을 생각을 하다니. 그런 어처구니 없는 짓을 생각한 것도 대단하지만, 그것을 실행 직전까지 끌고 간 것도 대단했다.
지구에는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 있었다.
‘딸바보.’
브라함이 딱 그 꼴이었다.
“브라함과 세샤 간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제가 들었던 브라함과는…….”
“많이 다르지?”
갈리어드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사실 나도 잘 몰라. 녀석도 거기에 대해서는 일절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
갈리어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세샤가 낫는 데 필요하다면 저 놈은 신이라도 잡으려 들걸?”
* * *
연우는 보라색 마귀꽃을 한 아름 따다가 다시 모옥으로 돌아왔다.
브라함의 말처럼 농도 4 이상의 마귀꽃도 꽤 많아서 필요한 만큼 채취를 할 수 있었다. 그것들은 아직 쓸 데가 아니라 전부 인트레니안에 넣어 둔 상태였다.
“왔나?”
안에는 브라함이 책을 읽다 말고, 안경을 고쳐 쓰면서 연우를 올려다봤다.
연우는 한적한 내부를 두리번거리다가 물었다.
“세샤는 어디 갔습니까?”
“산책하고 싶다고 요 앞에 잠깐 나갔다. 꽃은 그런대로 잘 채취한 것 같군. 주머니는 거기 적당한 곳에 둬.”
연우는 아공간 주머니를 탁상에 올려 두다가 자기도 모르게 가볍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 있는 심상 세계는 전부 세샤를 위해 만든 것들이었다. 쾌적한 숲 환경, 여자 아이를 위한 예쁜 인테리어, 약을 제조하기 위한 양식장까지. 정말 얼마나 많은 수고와 노력이 들어간 건지. 딸바보도 저런 딸바보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딱딱하고 멀게만 느껴졌던 브라함이 조금은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뭘 그렇게 웃는 거냐?”
브라함은 그런 연우의 작은 웃음소리가 거슬렸던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 때문에 생긴 웃음이란 걸 눈치챈 것 같았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보다 뭘 보고 계십니까?”
브라함은 아닌 척 잡아떼는 연우를 짜증 섞인 눈빛으로 보다가, 곧 대답했다.
“수성의 서. 틀리거나, 혹시 내가 놓친 부분이 없나 검증을 하던 중이었다.”
연우의 눈이 살짝 커졌다. 저렇게 평범해 보이는 책이 브라함의 모든 지식 체계일 줄은. 게다가 듣기로 저 책은 그 자체로도 의지를 가진 마도서(Grimoire)라고 알고 있었다.
“그보다 어제 가르쳐 준 건. 전부 이해했나?”
“등가 교환에 대한 것이라면. 복습 중입니다.”
“읊어 봐라.”
“보통 마법들은 법칙을 좇지만, 연금술은 등가 교환에 따라 일정한 가치를 내주어 원하는 것을 유도하는 성질을…….”
연우의 설명이 길어질수록, 브라함의 눈빛이 달라졌다.
분명 첫 강론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도 깊은 이해도를 보였던 것이다.
아무리 용의 지식을 빌렸다고 해도 예상 밖이었다.
‘헤노바와 빅토리아에게 지식을 배웠다더니. 그 때문인가?’
두 사람은 브라함도 몇 번 교류를 가져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둘 모두 브라함이 인정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배웠다면 그럴 듯했다.
사실은 연우가 밤새 시차 괴리를 사용해 배웠던 내용들을 제대로 이해할 때까지 몇 번씩이나 되짚어 보고, 기존에 갖고 있던 지식들과 비교하면서 정리한 것들이지만.
타인들은 연우를 보고 재능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 그건 겉으로만 보이는 것일 뿐. 언제나 그보다 더한 노력을 하는 사람이 연우였다.
‘배우는 자세도 절대 게을리하지 않고 있고.’
거래도 거래지만, 그래도 배우는 사람이 열의를 다하는 자세를 보이면 가르치는 입장에서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고 싶기 마련이다.
브라함은 손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이런 식으로만 간다면 얼마 가지 않아 알려 주는 모든 지식을 그대로 흡수할 것 같았다.
어쩌면 연성진을 완성하는 데 예정보다 더 시간을 앞당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탁!
브라함은 수성의 서를 덮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라와. 뒷부분을 더 가르쳐 줄 테니.”
* * *
연우가 브라함을 찾은 지도 보름가량이 지났다.
연우는 꼭두새벽부터 자신의 방에서 작은 불빛에 의존하며 종이에다가 뭔가를 적어 나가다가 곧 검지와 엄지로 피로해진 눈덩이를 가볍게 문질렀다.
이제 감각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지만. 그래도 정신적 피로까지 느끼지 않는 건 아니었다.
“……역시 쉽지 않아.”
계속된 시차 괴리의 사용 때문일까. 이따금 뇌가 따끔거리며 아파 왔다.
아무래도 휴식을 취해야 할 것 같았다.
지난 보름 동안. 연우는 쉬지 않고 연금술을 공부하는 데에 집중했다.
기본기만 가르쳐 주겠다던 처음의 말과 다르게, 브라함은 그동안 그에게 보다 많은 것들을 주입시키려고 했고, 연우는 그것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이해하느라 계속 골머리를 쥐어짰다.
학생 때도 하지 않았던 공부를 다시 하려니 쉽지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부에게 던져 줬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시차 괴리를 몇 번이나 사용하면서 계속 쫓은 덕분에 어느 정도 이해를 하는 데 성공했다.
부와 레베카가 이해를 하고 바로 그에게 첨언을 해 주는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언제나 말 많던 샤논과 한령은 이럴 때만은 조용히 사라지는 게 얄미웠지만.
게다가 닷새 전부터는 실전 응용도 할 줄 알아야 한다면서, 연성진을 작업하는 데 데려가 이런 저런 작업을 돕게 했다.
주로 잔여 작업이나 심부름에 가까운 것들이었지만, 연우는 눈대중으로 많은 것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것이 브라함의 배려라는 걸 모를 리가 없었다.
이론만 학습하는 것과 실전에 투입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으니까.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동안 묵혀만 뒀던 에메랄드 타블렛의 해석을 시도할 수 있었다.
1. 절대 불변의 사실로써, 이것은 확실하고 가장 진실하다.
2. 유일한 기적을 이루기 위해, 아래와 위는 같으며 위와 아래는 같다.
3. 그리고 모든 것이 하나의 명상에서 나왔으니,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
리언트가 해석했던 것들을 토대로, 잘못 해석된 부분들은 과감하게 지우고, 브라함에게서 배운 지식과 용의 지식에서 끄집어 올린 지식을 바탕으로 새롭게 해석을 시도했다.
종이에는 몇 번씩이나 복잡한 구조식이 적혔다가 지워졌고, 그러다가 연우의 손에 구겨져 버렸다. 벌써 이런 식으로 버린 종이만 해도 몇 뭉치였다.
“……미치겠군.”
하지만 아직 현자의 돌에 도전하기에는 많은 게 부족했던 걸까. 그동안 시차 괴리로 늘린 시간까지 합친다면 반년도 넘는 시간을 투자한 셈인데. 여태 실마리도 풀리지 않는다는 점이 머리 아팠다.
『아무리 봐도 재미난 구조식이야. 현자의 돌이라…… 정말 그런 게 가능할진 생각도 못 했는데.』
「이번엔. 이 부분이. 오류인 것. 같습니다.」
같이 머리를 맞대어 준 레베카와 부가 없었더라면 진즉에 펜을 놓았을지도 몰랐다.
“하아. 다시 해 보자.”
연우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면서 새로운 종이를 책상에 올리고 펜대를 쥐었다.
그때.
끼익-
갑자기 방문이 열렸다.
연우가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세샤가 작은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카인, 자?”
탁, 탁-
꼬리가 슬렁슬렁 움직이면서 땅바닥을 조금씩 치고 있었다. 뭔가 부탁할 게 있다는 뜻. 세샤의 감정은 저렇게 꼬리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연우는 펜대를 내려놓으면서 물었다.
“아니. 배고파?”
“헤헤헤.”
세샤가 멋쩍게 웃음을 흘렸다.
연우가 가볍게 웃음소리를 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낮에 그렇게 쉬지 않고 돌아다니더니.
“알았다. 팬케이크 해 줄 테니 여기서 기다려. 브라함에게는 비밀로 해야 한다.”
“응!”
세샤는 손으로 입을 꾹 닫는 시늉을 했다. 연우는 세샤의 머리를 살짝 헝클어 주고, 부엌으로 이동했다.
마침 어제 재료를 구하러 탑 외 지역을 다녀와서 재료는 충분했다. 조용히 팬케이크를 굽기 시작하는 연우를 보면서 샤논과 한령은 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참. 우리 주인님은 볼 때마다 신기하단 말이지. 아이한테 이렇게 무른 면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어.」
「공감이다.」
둘의 대화를 듣던 연우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대체 그동안 날 뭐라고 생각한 거지?’
「철면피.」
「아무 말 않겠습니다.」
‘…….’
레베카도 어느새 나타나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중이었다.
『맛있어 보여. 나도 좀 줘.』
연우는 말이 길어지면 괜히 자신만 손해일 것 같아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도 언제나 딱딱하게만 굴던 한령이 이제 슬쩍 농담을 던지는 걸 보니 많이 가까워지긴 한 것 같았다.
연우는 레베카가 먹을 팬케이크를 하나 덜어 주고, 나머지를 챙겨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사실 두 사람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분명 연우가 아이들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거기에도 선은 있었다. 다행히 세샤는 선 안쪽이었다.
그런데 방으로 들어가니, 세샤가 책상 앞에 앉아 뭔가를 끼적이고 있었다.
세샤는 연우를 보고 뭔가 잘못한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 바닥에 바로 내려왔다.
“저, 그게…….”
“화 안 내니까 걱정 마라. 그보다 식기 전에 먹어.”
“응응!”
세샤는 방긋 웃으면서 접시를 받아 한쪽 의자에 앉았다. 포크로 팬케이크를 집는 내내 꼬리가 기분 좋게 살랑살랑 흔들렸다.
연우는 그런 세샤를 보면서 살짝 웃다가, 다시 구조식 계산을 위해 펜대를 쥐었다.
그러다 세샤의 낙서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뭔가가 묘했다. 이리저리 그려진 도형들.
언뜻 보기엔 평범한 낙서였지만, 전부 일정한 공식을 띠고 있었다. 황금 나선 비율로 이뤄진 도형이었다.
“세샤, 너 이거?”
“응? 헤헤. 카인이 적은 거. 뒤집어서 그려 봤어.”
세샤는 펜케이크 조각을 ‘냠’ 한 입 크게 먹으면서 별것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그녀도 브라함에게 이것저것을 배우고 있어, 어린 나이답지 않게 많은 지식을 갖고 있었다. 역시 쿼터라도 용의 후계는 용의 후계인 것이다.
다만, 세샤의 별것 아니라는 투와 다르게. 연우는 둔탁한 뭔가로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뜨는 기분이었다.
아주 간단한 발상의 전환이었지만. 연우에게는 어떤 새로운 길을 제시해 주는 것 같았다.
* * *
연우는 세샤를 재우고 난 뒤, 다시 밤새도록 구조식에 매달렸다. 순간 번뜩인 영감을 놓치지 않으려 꽉 쥐면서 끝까지 더듬어 나갔다.
‘여태껏 난 현자의 돌을 마력을 무한대로 생산할 수 있는 동력원으로만 해석했어.’
구조식을 풀어 나가는 손이 점차 빨라졌다. 이번에는 막히는 구간이 없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사실은 주어진 마력을 증폭시키는 매개체 역할이라면……’
그리고 마지막 지점에 다다랐을 때. 해가 도출되었다.
연우의 눈이 반짝였다.
“그래. 이거였어.”
현자의 돌은 무한한 마력의 공급소가 아니었다.
마력기파의 진폭을 작게는 수십 배에서 많게는 수백 배로 증대해서 감도를 강하게 하는 증폭기였다.
“이래서 네메시스와 니케가 편안한 보금자리라고 했던 거구나.”
안에 들어가 있는 것만으로도 마력을 가공하고 강화시켜 주니, 두 신수의 발전 속도도 빨랐던 것이다.
-이 판은 태양의 운행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에메랄드 타블렛의 마지막 문구. 여기에 해답이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태양의 운행은 사실 마력의 순환인 듯했다.
연우는 혀를 찼다. 리언트나 빌드가 왜 마지막에 현자의 돌을 완성하지 못했는지 알 것 같았다. 단순한 마력 기관이라고만 생각했으니 아무것도 되지 않았지. 사실 연우도 세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몇 년 넘게 계속 그쪽에만 매달려 있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돌의 가장 부족한 부분은 동력원이라는 건가?”
어느덧 밖에는 동이 트고 있었다.
창을 따라 들어온 햇볕이 갖가지 도형과 숫자로 가득한 종이를 밝게 비췄다.
그리고.
연우의 눈도 같이 밝아졌다.
동력원. 즉, 마력원(魔力源)만 찾으면 된다. 하지만 현자의 돌에 맞는 마력원이 어디 찾기 쉬울까.
그러나. 이런 것도 운명인 건지, 연우에게는 마력원으로 쓸 만한 것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갈리어드와 브라함이 잡을 것이라고 했던 악마. 그와 비슷한 것을 하나 더 잡아 현자의 돌에다 봉인시킬 수만 있다면. 정신체인 악마라면 마력원으로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어쩌면 정말 ‘무한한’ 마력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드래곤 하트에 버금가는 마력원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몰라.’
연우는 혀로 입술을 축였다. 진짜 드래곤 하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5단계 각성을 이뤄야만 한다. 하지만 그 전에 그에 준하는 기관을 얻을 수 있다면.
‘두 개의 큰 마력 기관을 갖게 된다.’
브라함이 설치했던 연성진. 이번에는 그걸 깊게 연구해 봐야 할 것 같았다.
펜대를 놀리는 연우의 손길에 힘이 잔뜩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