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악마대공 아가레스 (6)
[특성: 마룡체]
설명: 용종과 악마는 역사에도 남지 않을 만큼 아주 아득한 옛날부터 서로 갈등 관계를 유지해 왔다. 상대에 대한 거부감은 본능으로 단단히 뿌리박혀 있었다.
하지만 용종은 악마의 정신체를, 악마는 용종의 심장을 탐닉하는 만큼 서로에게 주는 영향력도 아주 커서, 간간이 종족을 버리고 천적의 특성을 받아들여 개화하는 경우가 있었다.
마룡은 마의 인자를 개화하기 시작한 용으로서, 종족 사회에서도 공적으로 낙인찍힐 정도로, 용의 위대함을 비웃는 존재로 받아 들여졌다.
하지만 그런 만큼, 마룡은 용종과 악마의 힘을 동시에 보유하여 엄청난 권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단, 인자의 균형이 맞지 않을 경우, 존재 붕괴가 일어날 위험성도 커서 육체를 제어하는 데 최대한 집중을 기울여야만 한다.
* 블랙 드래곤
용종과 악마의 권능을 조금씩 개화할 수 있다.
* 용과 마의 영역
자격 여부에 따라 일정한 범위에 걸쳐 가진 권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자신만의 영역, ‘비나’를 선포할 수 있게 된다.
* 용과 마의 지식
자격 여부에 따라 용종들이 탐구하고 이해했던 지식의 체계, ‘호크마’를 열고, 또한, 악마들이 탐닉하고 구성했던 지식의 단면, ‘네차흐’를 엿볼 수 있게 된다.
* 용과 마의 권능
자격 여부에 따라 용종들이 터득한 진리의 힘, ‘케테르’와 악마들이 통달한 위엄의 힘, ‘티페레트’를 개방할 수 있게 된다.
마룡체는 원래 동생이 머릿속으로 도안만 구상해 뒀던 특성이었다.
용과 마. 흔히 용종과 악마라 불리는 두 존재는 절대 양립할 수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었다. 마법을 추구하는 방식이 다른 둘은 서로를 뼛속까지 증오하고, 서로를 사멸시키기 위해 수천 년, 혹은, 수만 년 동안 전쟁을 치러 왔다.
하지만 어디에나 예외는 있는 법이었다.
용종 사회 내에서도 어떤 이유로 격리되어 더 큰 힘을 원하는 자가 있었고, 또 이따금 심심풀이나 더 큰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서 악마와 손을 잡길 원하는 별종들이 있었다.
녀석들은 스스로 용종의 특성을 일부 포기하는 대가로, 악마의 특성을 받으면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났으니.
이들이 바로 흔히 말하는 ‘마룡’이었다.
마룡은 용종과 악마,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로 떠돌아다니는 존재들이었다.
용종에게는 종족의 치부였고, 악마에게는 감히 자신들을 흉내 내는 반편이에 불과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두 종족은 마룡이 발견되는 대로 주살하려 나섰다.
하지만 마룡을 잡는다는 건,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마룡은 종족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롭게 변이된 존재. 각 종족 개체를 뛰어넘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게 당연했다.
그래서 마룡을 잡기 위해서는 절대 한둘이 나서서는 안 되었다. 최소한 다섯 이상으로 구성된 ‘군단’이 나서야만 했다.
용종이나 악마가 마룡만 출몰했다면, 다른 일을 전부 던져두고 기를 쓰고 주살하는 데 집중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마룡의 개체 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각 종족이 가진 특징이 사라지고, 완전히 사멸해 버리고 말 테니까. 종족이 가진 고집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동생은 바로 이 점에 집중했다.
지금은 용종이 사멸한 만큼 마룡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만약 그것을 부활시킬 수 있다면 아주 큰 힘이 될 것 같았다. 용이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일부 허물 수 있을 테니. 용체가 주는 이점을 더 크게 틔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동생은 이론만 잡아 뒀을 뿐, 자신이 직접 특성을 개화시킬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고룡 칼라투스가 계속 그를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가 사라진 뒤에도, 차마 미안한 마음에 섣불리 도전하지 못했다.
용종이 사멸한 가장 큰 이유는 악마들에 있는 바. 고룡 칼라투스의 수명을 대거 앗아간 녀석들의 힘을 빌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칼라투스는 ‘용’이라는 자신들의 종족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났다.
그래서 동생은 비에라 듄과 함께 악마학 스킬을 얻어 아가레스와 계약을 맺을 때에도, 한계선을 그어 놓았다.
강해지기 위해 악마들의 마법을 배우고 마의 인자를 일부 보유하는 것은 좋으나, 절대 일정 ‘선’은 넘지 말 것.
만약 넘는다면 여태 맺었던 모든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처음으로 단호하게 말할 정도였다.
그렇게 동생은 칼라투스와의 약속을 끝까지 지켰다.
직접 마룡체가 되는 것은 시도해 볼 생각조차 갖지 않았다.
다만, 학자로서 호기심으로 마룡체를 구성하기 위한 이론은 어느 정도 정립해 뒀다.
그리고 시간이 더 많이 흐르면서 문득 그런 생각도 더해 보았다.
마룡은 이미 과거에 있었던 존재이니 가닥을 잡는 건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기에 따라서, 마룡이 가진 한계마저도 뛰어넘는 존재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용과 악마에 버금가는 존재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언제나 하늘처럼 고고하게 빛을 비추는 신. 그리고 그런 신과 한때 거대한 전쟁을 치렀다던 거인족. 두 종족의 인자도 같이 합칠 수 있다면.
그리고 만약에 마룡도 뛰어넘어서. 이미 사멸했다던 거인족의 인자와, 그들을 꺾은 신의 인자까지 같이 보유할 수 있다면.
그땐 과연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동생이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은 어느 누구도 해답을 내놓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답을 구하려 시도해 보지 못했던 질문이기도 했다.
동생은 그 해답을 찾고 싶었지만 결국 답은 내리지 못했다.
답을 찾아가던 중에 8대 클랜과의 전쟁이 시작되고, 아르티야 멤버들의 배신이 시작되었다. 홀로 싸우는 데 급급했기에 도저히 연구할 틈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짜 놨던 개요와 도안은 일기장에 남았으니.
연우는 이를 바탕으로 마의 인자를 잔뜩 흡수하면서 마룡체를 완성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갖은 연구를 거쳐 안전하게 시도해야 했지만, 위기 상황이었기에 전혀 그럴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위기 상황은 새로운 각성까지 이끌어 냈으니.
21층에서 열었던 2차 각성에 이어 빠른 각성을 이룰 수 있었다. 활짝 열린 3단계 권능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막대한 힘을 비교적 쉽게 제어하도록 만들었다.
[원소 접촉]
설명: 고룡 칼라투스는 계약자가 용체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8단계에 걸쳐 권능을 세분화시켰다. 그중 세 번째 단계에 해당하는 권능이다.
용의 의지가 선포된 영역 내에 흐르는 원소들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각 속성에 대한 지배력이 월등히 높아지는 효과를 낳는다.
* 불의 주인
화 속성에 대한 지배력을 대폭 향상시킨다.
* 물의 주인
수 속성에 대한 지배력을 대폭 향상시킨다.
* 바람의 주인
바람 속성에 대한 지배력을 대폭 향상시킨다.
……
[용의 영역, ‘비나’가 강화되었습니다. 일정 영역에 걸쳐 권능과 속성 지배를 행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정 시간에 걸쳐 모든 능력치가 일정 수치만큼 증가합니다.]
……
[‘속성화’가 성공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이중에 연우가 활용한 권능은 ‘불의 주인’과 ‘어둠의 주인’.
이미 불과 열에 관한 한 연우의 속성력을 따라올 사람은 거의 없었고, 이것을 다시 몇 배로 증폭시켜 주는 불의 주인은 악마마저 불사를 수 있게 했다.
크와아!
몸뚱이 한가운데가 꿰뚫린 괴물은 고통에 크게 몸부림쳤다. 귀가 머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거대한 괴성은 스테이지를 위아래로 크게 요동치게 만들었다. 이대로 하늘이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폭발은 몇 번이나 더 연속적으로 이뤄졌다. 불길이 마구잡이로 치솟고, 사방팔방으로 열풍을 잔뜩 토해 냈다. 빛과 열이 휘몰아치면서 괴물을 빠른 속도로 좀먹어 갔다.
어둠과 빛으로 가득했던 스테이지가 붉은색 빛깔로 메워질 정도였다.
갖가지 권능과 특성 및 스킬 효과, 그리고 무엇보다 아테나의 가호 아래 더해진 신력까지.
그 모든 것들이 더해진 힘은 헤르메스의 간담까지 서늘해지게 만들 정도였고, 그것을 고스란히 맞아 버린 아가레스는 엄청난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연우가 쏘아 낸 불길은 성화로 이뤄져 있어 악마에게는 치명적인 독이나 다름없었다. 휑하게 난 구멍은 메워지기는커녕 더 빠른 속도로 괴물의 육체를 좀먹어 나갔고, 불의 파도의 옵션인 ‘지글거리는 불씨’는 성화의 속도를 더 부채질했다.
곳곳으로 튀어 오른 불씨가 다시 잔여 폭발을 일으키고, 폭발과 폭발이 뇌전으로 서로 연결되면서 더 많은 연쇄 폭발을 잇달아 만들어 내니.
붉은빛은 삽시간에 괴물 전체를 뒤덮고 말았다.
『감히이! 감히이이!』
아가레스는 자신을 이따위 꼴로 만든 연우에게 짙은 분노 섞인 사념을 드러냈다. 뒤통수를 치는 것으로도 모자라, 한낱 인간 따위가 자신에게 이런 치욕을 주다니!
하지만.
공세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으하핫! 재미있어. 재미있어 죽겠다고!」
「간만에 힘 좀 써 보는군.」
『신이시여. 가호를!』
연우와 마찬가지로 아테나의 가호를 받고, 어둠의 주인이 더해지면서 아주 잠깐 한계 이상의 힘을 보유하게 된 샤논, 한령, 레베카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칼을 거세게 휘둘렀다.
연우가 쏘아 낸 불길에 미칠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미 크게 다쳐 버린 아가레스에게 상처를 줄 정도는 되었다.
부가 뒤에서 룬 마법을 발동시키면서 그들을 엄호했다.
촤악, 최악!
촤아악-
두 데스 나이트와 정령이 휘두른 칼질은 몇 차례나 계속 괴물의 거대한 몸뚱이 위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그 기회를 놓칠 헤르메스가 아니었다.
보아뱀이 다시 잇달아 아가레스에게 달려들었다. 어느새 십여 마리로 대폭 늘어난 보아뱀은 저마다 괴물의 몸뚱이를 세게 물어뜯고, 독니로 맹독을 주입시켜 빠른 속도로 괴물을 중독시켜 나갔다.
쿠웅-
아가레스의 몸뚱이가 힘겹게 바닥에 주저앉았다. 마치 거대한 산이 폭삭 무너지는 듯한 광경. 보아뱀은 어느새 거죽을 찢고 안쪽으로 비집고 들어가며 보이는 걸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기까지 했다.
온통 칠흑처럼 새카맣던 녀석의 몸체가 점차 탁한 잿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보아뱀의 독이 빠른 속도로 퍼지면서 녀석을 점차 죽음으로 몰아간다는 뜻이었다.
숭숭 뚫린 구멍 사이로 마기가 쉴 새 없이 꾸역꾸역 쏟아졌다. 마치 밑 빠진 독처럼. 조금만 모아 빚어도 악마 몇 마리쯤은 쉽게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카아아! 카아!』
헤르메스는 그런 아가레스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기 위해, 보아뱀을 더 깊숙하게 밀어 넣었다.
연우는 그런 광경을 전부 놓치지 않고 지켜봤다.
‘잡을 수 있다……!’
연우는 어쩌면 정말 아가레스를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희망을 가졌다.
헤르메스의 응전과 아테나의 가호가 없었다면 절대 엄두도 내지 못했을 테지만.
한 번 거꾸러지기 시작한 아가레스는 여태껏 플레이어들이 생각했던 ‘절대 도전도 못할’ 불멸자가 아니었다.
‘한 번만 더 불길을 쏘아 낼 수 있다면.’
그래서 한 번 더 나서려 했는데.
울컥!
갑자기 입가에서부터 피비린내가 난다 싶더니, 시야가 빙글 돌았다.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이봐, 주인? 주인!」
샤논이 재빨리 다가와 연우를 부축했다.
「주인, 괜찮아? 뭐라고 말 좀 해 봐!」
연우는 괜찮다고 대답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계속 울컥 쏟아지는 핏물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고 있었다. 두 다리로 일어서는 것도 힘들 정도였다.
「아무래도 체력이 방전되신 것 같다. 갑작스러운 특성 개화에 각성만 해도 체력적으로 큰 부담이 되셨을 텐데, 그런 신력까지 발휘셨으니…… 무리도 아니지.」
한령이 연우의 상태를 체크하고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지금 연우는 너무 무리를 한 상태였다.
아무리 아테나의 가호를 받고 있다고 해도, 신과 악마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육체를 유지하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일 텐데. 여기에 특성과 각성을 이뤄 내고, 막대한 힘까지 다뤘으니.
이미 마력회로 내에는 마력이 한 줌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이대로 무너지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안, 돼.”
하지만 연우는 어떻게든 일어나고 싶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고생하면 된다. 그럼 정말 아가레스를 잡는 것도, 봉인하는 것도, 문제는 아니었다.
‘세샤를, 도와야만 해.’
연우는 이를 악물었다. 그는 세샤에게 큰 죄를 안고 있었다.
조카가 있었다는 걸 몰랐다는 핑계는 대어서는 안 되었다.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조카가 여태 고생하고 있었단 사실만으로도, 그는 씻지 못할 죄를 지은 셈이었다. 동생처럼 손도 쓰지 못하고 허망하게 잃어서는 안 된다. 세샤만은 구해야 했다.
설사 지금 자신의 몸이 무너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런 고집불통이!」
샤논은 그런 연우의 생각을 읽고 짜증을 냈다. 평소에는 뜨거운 피가 흐르는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모질고 차갑기 짝이 없는 녀석이더니. 가끔 보이는 이 미련하기까지 한 성격이 못내 답답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뭐라고 뜯어말린들, 연우는 들을 기색이 없어 보였다.
그때.
보아뱀에 이리저리 뜯어 먹히고, 계속된 성화에 몸이 지글지글 타오르던 아가레스의 밑으로 거대한 마법진이 떠오르더니, 활짝 열린 철문이 나타났다.
신과 악마는 98층에 단단히 얽매여 있는 존재. 층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상당한 제물을 필요로 했고, 그마저도 한계 시간이 아주 짧은 편이었다. 어느덧 아가레스에게 허락된 제한 시간이 거의 다 된 것이다.
“어쩔 수 없나.”
헤르메스는 그런 아가레스를 보면서 가볍게 혀를 찼다. 이참에 아가레스의 숨통을 아주 끊어 놓을 생각이었건만. 아무래도 이대로 98층으로 쫓아내는 게 더 빠를 것 같았다.
어차피 이렇게 힘을 대량으로 유실해 버린 이상, 녀석은 자신의 영지로 되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오래 살기 힘들 게 분명했다.
호시탐탐 위로 올라갈 생각만 하는 주변의 다른 악마들이 절대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테니까. 이리저리 뜯어 먹히다가 몰락할 것이다. 아니면 르 인페르날의 수장인 바알에게 잡아먹히거나.
어떻게 되든 간에 헤르메스로서는 그동안 골치만 썩히던 아가레스를 처치할 수 있는 기회였으니. 그는 보아뱀들에게 더 이상 먹지 말고 철문 밖으로 내쫓으라고 명령을 내렸다.
『놔라! 놓으란 말이다아!』
하지만 아가레스는 절대 철문 안으로 밀려가지 않겠다는 듯, 문의 가장자리를 붙잡으면서 어떻게든 버텼다. 여기저기 다친 몸뚱이 사이로 번들거리는 거대한 눈동자는 온통 광기로 번들거리는 중이었다.
아가레스는 아가리를 크게 벌리며 포효를 내질렀다.
이대로 꼴사납게 다시 98층으로 밀려날 수는 없었다. 모처럼 잡은 좋은 기회였다.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르는데. 다음 차례에는 수명이 다해 녀석이 죽을지도 모르는데……!
『저건 내 것이다. 저건! 저거언……!』
그러나 아가레스가 아무리 발버둥을 치더라도, 인과율이 단단히 얽힌 철문은 빠른 속도로 그를 빨아들였다. 보아뱀들 역시 위에서 꾸역꾸역 녀석을 밀어 넣는 중이었다.
『이번에는 절대 놓치지 않아아!』
그때, 갑자기 괴물의 옆 부위가 길쭉하게 쭉 늘어나 연우에게 달려들었다. 헤르메스가 아차 싶어 보아뱀 한 마리를 그쪽으로 보냈지만, 이미 어둠은 연우를 낚아채고 있었다.
샤논과 한령이 재빨리 앞을 가로막았지만, 너무나 쉽게 튕겨 나 그림자 속에 녹아내리고 말았다.
『이번엔. 나와. 가자.』
어둠은 어느새 처음 철문을 열고 나타났던 아가레스의 인간 형태가 되어 연우의 목을 단단히 옥죄었다.
모든 여유가 사라지고, 초조함과 광기로 가득한 두 눈은 오로지 연우만 담고 있었다. 차정우와 똑같이 생긴 얼굴. 지난날, 그토록 갖고 싶었지만 가질 수 없었던 얼굴.
비록 그 녀석은 아니었지만. 그 녀석을 떠올리게 만드는 놈이다. 어떻게든 가져야만 했다. 이번에는. 이번만큼은 절대 놓치지 않으려 했다.
『나와 함께. 나와……!』
연우는 광기로 가득한 녀석의 집착에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숨이 막혔다. 이대로 녀석과 함께 통째로 끌려 나갈 것 같았다. 아테나의 가호가 더 강해졌지만, 몸에 힘이 없어서 뿌리치기가 어려웠다.
그때, 연우가 왼손을 활짝 펼쳤다. 찰칵. 찰칵. 활짝 열린 바토리 흡혈검의 톱니 이빨을 녀석의 팔에 쑤셔 박았다.
[‘바토리의 흡혈검’이 발동되었습니다. 생기와 정기를 갈취합니다.]
[힘이 11만큼 올랐습니다.]
[민첩이 16만큼 올랐습니다.]
[마의 인자를 획득했습니다.]
[마의 인자를 획득했습니다.]
……
[경고! 다량으로 흡수된 마의 인자가 허용 한계치를 훨씬 벗어납니다. 용의 인자와의 균형이 흐트러지기 시작합니다. 마룡체가 붕괴될 위험에 처합니다.]
그저 아주 잠깐만 빨아들였는데도 불구하고.
너무나 많은 마기와 사념, 그리고 마의 인자가 체내로 쏟아졌다. 각룡을 상대할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마기는 금세 마력회로를 범람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단숨에 골수에 침범해 정신 영역과 영혼 영역에까지 다다랐다.
검푸른 비늘이 이제 새카맣게 변했다. 그 아래 살갗도 꺼멓게 죽었다. 마독이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그나마 겨우 균형점을 잡은 마룡 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였다.
하지만 연우로서는 이런 식으로라도 아가레스를 붙잡아야만 했고, 아가레스 역시 연우를 자신이 있는 곳으로 끌고 가기 위해 손길을 놓지 않았다.
이대로는 연우가 죽을지도 모르는 순간.
“오효효효. 이거, 이거. 되도록 그냥 내버려 두고 있으려 했습니다만. 이대로 계속 뒀다가는 정말 남은 스테이지고 뭐고 간에 아무 것도 남아나질 않겠군요.”
갑자기 하늘에서 괴상하지만 연우에게는 익숙한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보이지 않는 칼날이 연우를 단단히 붙들고 있던 아가레스의 손목을 자르고 지나갔다.
『안 돼! 안 된단 말이다아! 저 놈은 내 것이다! 내 것이란 말이다!』
“하여간 집착은. 집착 심한 남자만큼 꼴불견도 없다는 거 모르시나요? 오효효. 멀리는 못 가니 잘 가세요.”
아가레스는 연우를 완전히 놓아 버린 채, 그대로 철문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쿵!
철문은 도로 닫히면서 다시 마법진 아래로 가라앉아 자취를 감췄다. 스테이지를 가득 메우던 어둠도 그대로 사라졌다.
그리고 녀석이 있던 자리로, 새로 열린 포탈을 따라 여섯 명의 사람들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하나같이 기괴한 모습에 턱시도 복장을 한 자들.
특히 그중 한 명이 유독 연우의 눈에 띄었다.
“정말이지. ### 님은 어떻게 뭘 때마다 큰 사건 사고를 일으키시는군요.”
이블케가 외눈 안경을 고쳐 쓰면서 입꼬리를 잔뜩 벌리며 웃었다.
관리자들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