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211화 (211/862)

11화. 현자의 돌 (4)

“오효효! 오효! 정말이지. 이렇게까지 98층을 갖고 노신 분은 아마 ### 님이 두 번째일 겁니다, 오효효!”

이블케는 정말이지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럴수록 신과 악마들이 불쾌해한다는 메시지가 떠오르긴 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연우의 환심을 사기 위한 신과 악마들의 제안은 계속 불이 붙다가, 끝내 자신들의 신물을 내주겠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과열 양상을 떴다.

[‘아스가르드’의 신, 헤임달이 권능, ‘종말의 음’과 신물, ‘걀라르 호른’을 제안합니다.]

[‘절교’의 악마, 거라건타가 권능, ‘대해일’과 신물, ‘수마검’을 제안합니다.]

……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블케의 웃음소리도 덩달아 커질 수밖에 없었다.

고작 가계약도 아닌, 일개 ‘선물’에 저렇게 목을 매는 꼴이 우스웠던 것이다.

권능을 선물하는 정도야 단순히 신의 아량이라고 포장하면 된다지만. 나중에는 서로가 잘났다며 자존심 싸움까지 벌이는 게 훤히 보였으니.

아무리 신과 악마라고 해도 결국 똑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결국 연우는 편하게 제자리에 앉아서 수없이 들어온 제안을 꼼꼼하게 검토했다.

신과 악마들을 부추기긴 했어도, 사실 전부 받을 생각은 없었다. 지금이야 서로 자존심 싸움에 눈이 멀어 되는 대로 저질렀겠지만, 나중에 정신을 되찾았을 때는 오히려 연우에게 증오심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98층에 억류된 자들이라고 해도, 앙심을 품으면 연우로서도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아가레스처럼 기회를 틈타 모습을 비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아니, 그런 것을 전부 떠나서라도, 이렇게 많은 권능을 전부 소화할 자신도 없었다.

연우는 권능을 꼼꼼하게 살폈고, 자신에게 당장 필요한 것들만 추려서 뽑았다.

그렇게 선택한 권능은 총 4개였다.

여신의 성흔, 제3천의 영, 흉신악살, 무면목 법서.

[여신의 성흔]

등급: 권능

숙련도: 0.0%

설명: ‘올림포스’의 여신, 아테나가 선물한 권능.

아테나는 조카를 지키기 위해 열렬히 싸웠던 당신에게 깊은 감명을 받아, 제물로 받은 아이기스를 대체할 만한 게 무엇인가 궁리한 끝에 권능을 내놓았다.

* 여신의 창칼

여신의 강한 가호를 내린다. 눈 먼 화살과 창칼로부터 육체를 보호해 주고, 압도적인 패기를 발산시켜 상대의 의지를 꺾는다.

또한, 아군으로 인식된 자들에게 동시 축복을 내려 일정 범위 내 능력치와 사기가 대폭 향상되고, 모든 속성 방어도가 증가한다.

* 여신의 방패

영향력이 닿는 넓은 범위에 걸쳐 저항력과 방어력을 대폭 증가시킨다. 또한, 마력량에 비례해 임시 결계 구축이 가능해진다.

[제3천의 영(靈)]

등급: 권능

숙련도: 0.0%

설명: ‘말라흐’의 신, 아즈라엘이 선물한 권능.

아즈라엘은 죽음과 영혼의 신으로서, 아주 오래전부터 당신이 지닌 ‘칠흑왕의 절망’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죽음은 사역해도 여전히 영혼을 다루는 데 있어 많은 면이 부족한 당신에게 답답함을 느껴, 필요하다 싶은 새로운 권능을 선물했다.

* 이매망량

보유한 영혼에 시전자의 절대적인 의지를 심어 다양한 방식으로 부릴 수 있게 된다. 정신력이 약한 이에게 빙의해 혼란 상태로 만들고, 심할 경우에는 육체를 일시 강탈해 꼭두각시 인형처럼 부릴 수도 있다.

* 백귀야행

영혼이 떼를 이루며 움직인다. 사령(死靈)은 생령(生靈)을 동화시키고자 하는 본능이 있어, 지나는 길에 놓인 것들의 생명력을 닥치는 대로 갈취한다. 영혼 무리가 지나간 자리에는 풀 한 포기조차 제대로 남지 못한다.

다양한 용도로 활용이 가능하다.

[흉신악살]

등급: 권능

숙련도: 0.0%

설명: ‘르 인페르날’의 악마, 아가레스가 선물한 권능.

당신에 대한 집착이 심한 아가레스는 중태에 빠진 상태에서도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나머지, 자신의 위대함을 어필하기 위해 강한 권능을 선물했다. 하지만 광기가 심한 만큼 발동시킬수록 마성에 젖을 위험이 커 주의해야 한다.

* 흉신(凶神)

체내에 끓어오르는 증오와 분노를 광기로 승화시켜 임의로 버서커 모드로 돌변시킨다. 이때, 광기의 증가량만큼 공격력이 비례해서 증폭되며, 대신 방어력이 그만큼 하락하게 된다.

* 악살(惡煞)

발산된 광기가 적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끼쳐 사기를 저하시키고, 정신력을 갉아먹는다. 그렇게 갉아먹힌 정신력은 시전자에게 체력과 마력으로 치환된다.

[무면목 법서(無面目法書)]

등급: 권능

숙련도: 0.0%

설명: ‘절교’의 악마, 혼돈이 선물한 권능.

혼돈은 눈이 있으나 사물을 볼 수 없었고, 두 귀가 있어도 소리를 들을 수 없었으며, 복강 내에는 오장이 없어 아무것도 먹질 못한다. 하지만 그만큼 감각이 뛰어나고, 지성을 갖고 있어 사유 능력이 탁월하다.

오랜 궁리 끝에 탄생된 여러 마법은 기존 체계와 그 궤가 너무나도 달라, 따로 마도서로 엮어 낼 수가 없어 권능으로 풀어냈다.

여신의 성흔은 딱 봐도 잃어버린 아이기스를 대체하라면서 아테나 신이 따로 내준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여신의 창칼은 기존보다 훨씬 효과가 높았고, 여신의 방패는 결계 구축도 가능했다. 결계가 마법 중에서도 최상위에 해당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선물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상황도 그만큼 따라야겠지만, 숙련도를 올리는 정도에 따라, 아가레스를 상대했을 때 받았던 가호에 버금가는 효과를 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아테나가 너무 큰 걸 줬어. 아즈라엘도 마찬가지고.’

제3천의 영은 그동안 컬렉션에 넣어 두기만 하고, 따로 사용할 방법이 없어 흑기로 치환하거나 괴이 강화용으로만 썼던 망령들을 제대로 부릴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었다.

‘머리를 조금만 굴린다면, 망령을 이용할 방법은 무궁무진하니까.’

대충 연우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만 해도 세 가지였다.

하나는 빙의. 주변에 있는 몬스터나 플레이어에게 망령을 심어 넣고, 혼란 상태로 몰아넣는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자중지란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다른 하나는 외벽. 망령에 물리적인 실체력을 부여해, 유사시에 몸 주변에다 둘러쳐 방어막으로 쓰는 것.

그리고 백귀야행 옵션은 사용하기에 따라 전장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도 있었다.

‘망령에게 일일이 마독을 쥐여 주기만 해도.’

그런다면 주변 일대는 곧바로 사지가 되지 않을까? 모든 게 녹아 버릴 것이다. 만독불침 같은 특성이 아니고서야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험지에 적을 가둘 수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따지고 보면 네 권능 중에서 가장 효과가 확실한 건 이거야. 아즈라엘. 정말 설명처럼 단순히 칠흑왕의 절망에만 관심을 두는 걸까?’

흉신악살도 뛰어나긴 마찬가지였다.

광기에 잘못 노출될 수 있다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긴 했지만, 단시간에 공격력을 몇 배로 증폭시킨다는 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힘이었다. 무엇보다 상대에게서 정신력을 갈취해 체력과 마력으로 치환시킨다는 대목이 마음에 들었다.

‘적의 정도에 따라서 지치지 않고 싸울 수 있게 되니까. 난전 중에는 이만한 것도 없어.’

원래는 아가레스의 권능이기에 거부할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그래도 굳이 피할 필요는 없었다. 아니,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동생이 아가레스의 유혹에도 굴하지 않았듯이, 자신도 충분히 맞서서 취할 건 취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무면목 법서는 사실 연우가 쓰려는 게 아니었다.

‘부에게 큰 날개를 달아 줄 수 있을 거야. 나는 늑골에다 새길 문구만 얻으면 되고.’

무면목 법서는 혼돈이 정형화하지 않은 사유들을, 아무렇게나 뭉뚱그려서 만든 것에 지나지 않았다. 당연히 아무리 강한 마법들로 가득하다고 해도 내용을 파악하고 해석하는 데에만 한참이 걸릴 테니, 부에게 맡기는 게 여러모로 나았다.

아니, 오히려 부로서는 이론서보다는 심득을 얻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그런다면 자신만의 마법 체계를 구축할 수도 있을 테니.

그래서 연우는 무면서 법서를 부에게 따로 링크를 놓았고, 제3천의 영은 컬렉션에 연결해서 망령과 괴이 군단의 강화를 노렸다.

[망령에 대한 지배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영혼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집니다.]

[괴이 ‘찬’이 아즈라엘의 축복을 받아, 강한 이빨을 얻었습니다.]

[괴이 ‘카’가 아즈라엘의 축복을 받아, 강렬한 포악성을 획득했습니다.]

……

연우가 그렇게 모든 정리를 끝낸 뒤.

채널은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올림포스’의 신, 아테나가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르 인페르날’의 악마, 아가레스가 다른 악마들을 강하게 비웃습니다.]

……

[‘올림포스’의 신, 아레스가 당신의 선택에 분개합니다.]

[‘절교’의 악마, 거라건타가 당신의 선택을 고요한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신과 악마는 권능을 선택받은 무리와 받지 못한 무리로 나뉘어, 전혀 상반되는 반응을 보였다. 전자는 기뻐했고, 후자는 대개 가만히 연우를 관망하는 태도를 했다. 하지만 이따금 아레스처럼 길길이 날뛰는 자들도 있었다.

그건 연우가 따로 ‘거절’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승낙’을 한 건 아니었지만, 메시지를 그냥 띄워 나중에 언제든지 가져갈 수 있도록 해 두었던 것이다.

‘불필요하다 싶거나 불쾌하면 그냥 가져가겠지. 아니면 두고 가는 자들도 많을 테고.’

신과 악마로서는 그들 자존심 상, 선물을 줘 버린 것이기 때문에 도로 갖고 갈 가능성이 낮았다. 그리고 이렇게 둬야만 연우와의 통로를 계속 열어 둘 수 있을 테니, 연우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필 수도 있었다.

연우로서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층계를 오를수록 언제 다른 권능이 필요해질지 모르니까. 후보군을 미리 확보해 둔다면 언제든지 요긴하게 쓸 수 있었다.

이블케는 연우의 그런 영악한 선택을 보고는 채널을 닫으면서도 계속 ‘오효효’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연우는 언제나 그에게 즐거움을 주는 존재였다.

모든 채널이 닫힌 뒤. 이블케는 외눈 안경을 고쳐 쓰면서 자세를 정갈히 했다.

“그리고 더불어서 헤르메스 님께서 남기신 전언이 있었습니다.”

“뭐지?”

연우가 눈을 반짝였다. 그러고 보니 권능 리스트에는 헤르메스의 것이 없었다. 연우로서는 뜻밖이었다. 여태껏 그와 가장 가까운 관계인 신을 꼽으라 한다면 헤르메스였으니까. 그는 늘 자신을 주시하고 있기도 했다.

“어디에도 휘둘리지 말고, 늘 그러했듯 스스로의 길을 믿고 가라고 하시더군요. 언제나 당신께서 지켜보고 계시다면서.”

연우는 묘한 눈빛이 되었다.

-그대에게는 그대가 걸을 길이 있겠지.

오래전. 올림포스의 보고를 나오면서 헤르메스가 했던 말이 다시 오버랩되는 건, 아마 착각이 아닐 것이다.

덕분에 연우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헤르메스가 권능을 내어 주지 않은 건, 도리어 자신을 믿어서였으니까. 그만큼 자신을 존중해 준다는 의미겠지.

“그럼 제가 ### 님께 있던 용건은 여기까집니다. 남은 층계 공략에도 계속 힘써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이블케는 공손히 허리를 숙이면서 인사를 한 뒤, 가볍게 박수를 쳤다.

탁!

그러자 연우를 둘러싼 공간이 모두 흐트러지면서 처음 포탈을 타고 넘어왔던 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연우는 아주 어렴풋하게나마 하늘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뭔가가 자신을 따라붙는 듯 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쩌면.

얻는 게 있는 만큼, 불편함도 커진 것 같았다.

* * *

[모든 복구가 완료되었습니다.]

[스테이지에 걸려 있던 모든 잠금장치가 해제되었습니다. 시련이 가동되었습니다.]

드디어 23층의 복구가 끝났다는 전체 메시지가 떠오른 뒤. 관리자들은 전부 수고했다며 서로 어깨를 다독이면서 스테이지를 떠났다.

그리고 플레이어들의 입장은 아직 이뤄지지 않은 그 휑한 곳에서. 갑자기 붉은 지면 위로 손이 하나 불쑥 올라왔다.

“……빌어처먹을.”

궁무신 장웨이는 지면 밖으로 천천히 나오면서 인상을 와락 찡그렸다. 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흐른 걸까. 체내 여기저기서 비명을 질러 댔다.

몸을 일으키자, 살점 같은 것들이 아래로 후두둑 떨어졌다.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 수십 겹이나 둘렀던 마물 파사의 사체였다.

연우를 잡기 위해 23층에 도착해 뒤를 쫓던 중, 갑작스러운 아가레스와 헤르메스의 강림으로 인해 장웨이는 큰 위기를 겪어야 했다.

이예의 사도라고 해도 당장 가호를 받는 게 아닌 그로서는, 두 초월자가 뿌려 대는 힘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이었다.

그래서 장웨이는 어떻게든 살아 남기위해 마물을 소환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지면 깊숙한 곳으로 몸을 숨기면서 가사 상태에 빠졌다.

만약 죽는다고 하더라도 고통 없이 죽는 게 나았으니까. 게다가 그에게 있어 이런 위기 상황은 흔한 건 아니었어도 다른 플레이어들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익숙했다.

다행히 이예의 가호가 따랐던 것인지, 장웨이는 크게 다친 구석 없이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기력은 그만큼 쇠해졌지만, 이 정도야 휴식만 취한다면 얼마든지 보충할 수 있는 정도였다.

장웨이는 아공간을 열어 육포를 꺼내 물어뜯으면서 주변을 살폈다. 일단은 상황부터 파악해야 했다.

다행히 아가레스와 헤르메스는 자취를 감춘 것 같았다. 하지만 스테이지가 전부 뒤바뀐 이 상황에서, 독식자의 행방을 쫓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 어디로 간다?’

그때, 장웨이는 예민한 감각 영역 너머로, 대규모의 포탈이 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스타트 존 근처였다.

23층이 재개방되면서 상황을 판단하기 위해 보내진 파견대일까? 보아하니 혈국이나, 엘로힘이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장웨이에게 아주 익숙한 기질도 있었다.

‘칼리번 후작.’

혈국이 자랑하는 여러 칼 중 하나.

‘그러고 보니 독식자가 드 로이 호수 근방에서 혈국과 만나고, 엘로힘이 그쪽으로 이동하는 중이라고 하지 않았었나?’

저들을 이용하면 독식자를 낚을 수 있지 않을까. 이예는 엄지로 입술을 훔치면서 천천히 스타트 존이 있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장웨이는 발걸음을 옮기다 말고 도중에 멈춰야 했다.

갑자기 스타트 존에서 일단의 무리가 빠르게 빠져나오면서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정확하게 장웨이가 있는 방향이었다.

녀석들은 하나같이 살벌한 살의를 숨기지 않고 흘리는 중이었다. 인간과는 전혀 다른 아인종의 기질이기에, 장웨이는 단번에 자신을 쫓는 자들이 누군지를 알아챌 수 있었다.

“……외뿔부족.”

야누를 죽인 게 들켜 버렸나? 하지만 분명히 사체는 처리했을 텐데? 여러 의문이 들었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노릇이라, 장웨이는 천천히 어깨에 걸려 있던 사일동궁을 풀어 왼손에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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