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215화 (215/862)

15화. 현자의 돌 (8)

미동(美童)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술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아나스타샤는 뭔가 탐탁지 않다는 표정으로 술상과 한쪽 구석에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제자 빅토리아를 번갈아 바라봤다.

어느새 옷은 정갈하게 갈아입은 상태였는데, 퇴폐적인 느낌보다는 고혹적인 자태가 더 강했다.

연우는 그런 아나스타샤와 미동들, 그리고 빅토리아를 봤다.

짧게 듣기로, 미동들은 단순히 아나스타샤의 노예가 아닌 권속들이라고 했다. 실제로 녀석들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요기(妖氣)였으니. 몇몇은 직접적으로 부딪친다고 하면 상당히 골치가 아플 것 같았다.

구미호. 꼬리 아홉 달린 신수이자 마수인 그녀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녀는 웬만한 하이 랭커와 견줄 만큼 대단한 내력을 품고 있었다.

만약 그 자리에서 연우와 부딪쳤다면?

아직 현자의 돌을 완성하지 못한 연우로서도 고전을 면치 못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연우는 아나스타샤가 원래는 플레이어였지만, 신수와 결합한 환인(幻人)이 아닐까 싶었다.

11층을 통과한 플레이어들은 대개 환수를 하나씩 데리고 있기 마련이었고, 테이밍 관련 스킬을 주로 단련한 소환술사 계통이 아니고서야 대부분 마력 기관에 품고 다니는 편이었다.

괜히 외부에 노출시켜 저격되어 버리면 전력상으로 큰 손해였으니. 그리고 대부분의 층계가 환수들에게 좋지 않은 환경인 이유도 있었다.

대신에 플레이어들은 마력 기관과 동화된 환수들에게서 힘을 빌려 전력을 증강시켰다. 여태껏 연우가 만났던 대부분의 플레이어들 주변에 환수가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그런데 간혹 환수들이 급격한 성장을 이뤄 합일(合一)을 이루는 자들도 있었다.

인격과 신체의 결합. 전혀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는 것이다. 보통 그런 사람을 환인이라고 지칭했다.

환인은 여러모로 신기해 보일 법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리 드물지도 않았다. 강해지기 위해서 부단히도 노력하는 플레이어들이, 그런 방법을 놓칠 리 만무했으니까.

다만, 대부분의 경우 플레이어들의 인격이 주를 이루는 반면에, 아나스타샤는 신수의 격이 높아 신수의 인격이 주인 격이 된 경우가 아닐까 싶었다. 요기로 대체 된 마력이 그것을 증명했다.

무엇이 되었든 간에, 아나스타샤는 빅토리아의 스승 자격으로 자리에 참여해서 탁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연우와 빅토리아를 내려다봤다.

에도라는 뒤쪽으로 한 걸음 물러서서 영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비딱한 표정으로 그런 아나스타샤를 노려보는 중이었다. 판트는 밖을 경계하겠다면서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객관의 지붕이 무너지고 난 뒤에 옮긴 자리.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

연우는 그동안 어떻게 지냈었는지, 어째서 연락이 되지 않았었는지 흔한 얘기를 물었지만. 빅토리아는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말하기를 머뭇거리는 태도에서는 그날의 일을 떠올리기 싫다는 투가 강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연우가 재차 물으려 했지만, 아나스타샤는 그런 채근을 용서 못 한다는 듯 둘 사이에 요기를 흘려 왔다.

그때, 연우 앞으로 푸른 기운이 뭉치면서 레베카가 나타났다.

『빅토리아.』

“레베, 카……?”

빅토리아는 자신 앞에 나타난 레베카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분명히 미후왕의 궁전에서 죽었을 텐데. 어떻게?

“정령인가.”

당황하는 빅토리아와 다르게 아나스타샤는 레베카의 정체를 꿰뚫어 보고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어느덧 긴 곰방대를 물면서 불을 붙이는 중이었다. 후우우- 새하얀 연기가 자욱하게 퍼졌다.

『불쌍한 빅토리아.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너의 마음, 이해하지만, 말해 주면 안 될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빅토리아를 구하려다 희생된 레베카. 빅토리아는 20층에서 나온 이후로 언제나 그날의 악몽 속에 갇혀 살았고, 자신을 위해 희생되었을지도 모를 레베카와 연우를 떠올리면서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녀는 여전히 그날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뛰어난 룬 마법사니, 붉은 신목이니, 하면서 띄워 주고 있었지만.

사실은 마음이 여린 사람이란 것을, 그녀와 오랫동안 함께했던 레베카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주르륵-

빅토리아의 눈가를 따라 눈물이 흘렀다. 레베카와 연우가 무사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록 레베카는 정령이 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눈앞에 있는 것만으로 위안거리가 되었다. 악몽에서서 빠져나올 정도는 되지 못해도, 최소한 마주 볼 정도는 되었다.

“그날…….”

결국 빅토리아는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한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초췌해진 모습만큼이나, 목소리에도 힘이 없었다.

연우의 도움을 빌려 미후왕의 궁전을 무사히 탈출한 이후. 빅토리아와 칸은 숨을 돌릴 겨를도 없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리로부터 쫓기기 시작했다.

“정체를 알 수 없어요?”

“어…… 다들 하나같이 정체를 숨기고 있었어.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확실했어. 그놈들, 절대 작은 클랜은 아니었어.”

‘마군인가.’

연우는 생각을 속으로 삭였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자꾸 쫓기고…… 칸이 나섰어.”

추적대는 집요했고, 빅토리아와 칸은 정말 이대로는 위험하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받았다. 도움을 청할 곳도 없었다. 그때, 칸이 앞으로 나섰다. 자신이 놈들을 상대할 테니, 그녀는 그사이에 도망치라고.

빅토리아는 안 된다며 그를 말리려 했지만. 도리어 칸은 쓰게 웃으면서 그녀를 기절시키기까지 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칸과 추격대는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칸을 찾아다녔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어. 흔적까지도. 그리고 부끄럽지만.”

원래대로라면 그녀도 끝까지 칸을 찾았어야 했겠지만. 언제 다시 추격대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결국 20층을 빠져나 오고 말았다고 했다. 그리고 스승에게로 의탁했다고.

하지만 그 뒤로도 그녀에게 생긴 트라우마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레베카, 연우, 칸. 오행산에서 함께 수련하던 사두들이 차례대로 그녀를 구하려다 희생되었다. 가깝다고 여겼던 킨드레드는 그녀를 농락하기까지 했다. 그런 일들 하나하나가, 한때 위대한 마법사였던 그녀의 정신을 바닥으로 추락시키고 말았다.

지금도 마찬가지. 빅토리아는 금방이라도 추적대가 나타나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스승이 지켜 주고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바깥으로 나오는 일 자체가 그녀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아나스타샤는 빅토리아에게로 손을 뻗었다. 곰방대에서 뿜어져 나온 연기가 두둥실 빅토리아 주변을 맴돌았다. 빅토리아는 금세 곤히 잠에 빠졌다.

터벅. 터벅.

아나스타샤는 조용히 일어나 빅토리아의 옆에 앉았다. 수고했다는 듯, 제자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으면서 연우 등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무슨 일이 있어 찾아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아이는 더 이상 너희들을 상대해 줄 정신이 아니니 썩 물러가라.”

연우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저런 상태인 빅토리아를 마을로 데려가 봤자, 아무런 도움도 없이 그녀의 심병만 더 키울 테니까.

* * *

『빅토리아의 저런 모습. 처음 보는 거였어.』

건물을 나오는 동안. 레베카는 충격에 젖은 모습이었다. 모든 감각이 닫힌 채로 몇 년을 지내는 사두들은 보통 자기 극복을 이뤄 강인한 자아를 갖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아는 빅토리아도 그런 모습이었다.

뻔뻔하고, 이기적인 마법사. 그러면서도 이따금 개인주의자인 다른 사두들을 염려하기도 하는 따뜻한 마음씨의 소유자. 언제나 자기 수양에 바빴던 레베카에게는 유일한 말상대이자 친구이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 저렇게 무너진 모습은. 레베카로서도 마음이 쓰라릴 수밖에 없었다.

한편, 연우는 잠시간 칸이 어디로 갔을까 하는 생각을 가졌다.

‘마군 놈들과 어떤 거래를 한 걸까?’

마군은 절대 한 번 점찍은 목표를 손쉽게 놓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날 이후로 빅토리아와 자신에게는 일절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았다. 칸이 그들과 어떤 모종의 거래를 했단 뜻이었다.

대체 무엇일까.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짐작 가는 바는 있었다.

마군은 지금 물밑으로 여기저기에 마수를 뻗치는 중이었다. 아이테르를 회유한 것부터, 세샤를 납치하려던 시도까지. 단편적인 사건들이었지만, 분명히 그것들을 연결하는 뭔가가 있을 게 분명했다.

‘도일과 관련된 일인가?’

하지만 그날, 연우는 칸에게서 둘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했기에 어떻게 나설 방법이 없었다. 칸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칸, 마군과 관련된 이야기는 다른 단서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제자린가?’

연우는 화두를 현자의 돌 쪽으로 가져왔다.

빅토리아는 도움을 주지 못하는 상태다. 아나스타샤의 손을 빌리고 싶지만, 그녀는 연우 등을 적대시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에 준하는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마땅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뛰어난 실력자이면서 어느 곳에도 적을 두지 않은 마법사. 그런 사람을 대체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있다고 해도 연우와는 아무런 접점이 없었다.

‘다른 5대 명장들도 따로 소속을 두고 있고.’

연우는 침음을 흘렸다.

‘아니면 용병 쪽으로 가닥을 잡아 봐야 하나?’

마법사들 중에는 실력자라고 해도 간혹 연구비가 부족해 품을 팔러 나오는 자들이 있었다. 마법에 들어가는 비용이 한두 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런 자들을 데려다가 마나의 맹세를 걸어 보안을 지킨다면. 어떻게든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 들어갈 고용비가 천문학적일 게 분명하고, 아무리 마나의 맹세를 건다고 해도 어떻게든 소문이 새어 나갈 위험이 컸다.

그랬다가는.

‘켈라트 경매장을 이용하는 것도 힘들어져.’

연우가 바라는 건, 단순히 현자의 돌을 완성시키는 것만이 아니었다.

가짜 현자의 돌을 이용해서 탑을 뒤흔들어 놓고, 모든 죄를 발 푸르기스의 밤에다 뒤집어씌워서 마녀들을 박멸하는 게 최종 목표였다.

결국 쉽게 선택을 내리지 못해 깊은 고민에 잠긴 연우 앞으로.

갑자기 청량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질적인 기운. 요기가 섞인 바람이었다.

누렇게 색이 변한 책자가 둥근 막에 둘러싸인 채로 조용히 내려왔다. 연우가 손을 앞으로 내밀자, 책은 곧 그 위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연우의 머릿속으로 아나 스타샤의 어기전성이 울렸다.

『제자가 도움을 줄 수 없어 미안하다며 이것이라도 전해 주라는군. 무엇하러 이런 것까지 주라는지 알 수 없지만. 이것을 받았으니 다시는 나타나지 마라.』

둥근 막이 없어지면서 요기도 흩어져 사라졌다.

레베카가 조용히 옆에 다가왔다. 그녀는 책자의 겉면에 적힌 제목을 보고 놀란 눈이 되었다.

『주인, 그거?』

“어. 빅토리아가 우리 사정을 짐작하고 보내 준 것 같아.”

‘룬 마법 신요총론: 신령에게서 비롯되는 형이상학적인 힘과 신대문자 간의 연결을 통한 새로운 마법 체계에 대하여’라는 구구절절한 제목은 딱 보기에도 머리가 아파 왔다.

『이거 원래, 빅토리아가 언젠가 마탑의 학회에다가 발표하기 위해서 준비하던 논문이었어.』

연우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쉽게 말해 빅토리아가 그동안 연구했던 것들의 결과물이란 뜻이었다. 이런 것을 고스란히 내준다고?

‘그만큼 죄책감이 심했던 건가.’

연우는 그동안 빅토리아를 수소문하는 데 크게 공을 들이지 않았던 자신을 자책했다. 그동안 빅토리아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미안함이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큰 것 같았다. 이것이라도 내줘야 조금이라도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을 정도로.

연우는 자신들이 나왔던 자리를 힐끔 돌아봤다.

빅토리아가 조금이라도 빨리 마음의 짐을 훌훌 털어 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나기를 바랄 뿐이었다.

* * *

브라함은 연우가 가져온 빅토리아의 논문을 보고 크게 반색했다.

“주술이라. 확실히 그쪽 분야는 내가 약한 만큼 큰 도움이 되겠어. 게다가 이 논문, 슬쩍 훑어보기만 했는데도 대단한 통찰력이 엿보여. 아예 새로운 마법 체계를 정립하려고 시도했었어. 빅토리아. 이름을 듣긴 했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었군.”

빅토리아가 오행산에 틀어박힌 채 진행했던 연구들은 브라함도 탄성을 터뜨릴 정도로 깊은 완성도를 자랑했다.

연우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적잖게 놀랐다.

마법에 수많은 분야와 학파가 존재한다지만. 현재 구성된 틀은 지난 수천 년 동안 끊임없이 진행된 연구들이 누적된 끝에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 그래서 틀이 고정되어 버린 지 벌써 수백 년이 되었고, 마탑도 점차 보수적으로 변했다.

그런 경직된 마법 학계에서 새로운 체계를 정립하고 제시한다는 건, 새로운 학파를 열겠다는 의미였다.

기존 마법 질서에 대한 도전인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빅토리아는 그것에 도전하고자 했고, 브라함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만큼 빅토리아의 연구 성과는 아주 대단했다.

덕분에 브라함은 한 층 더 깊은 지식을 탐닉하면서, 현자의 돌을 연구하는 데 새로운 시각을 더할 수 있었다.

연금술, 연단술, 백마법, 흑마법, 원소 등. 다양한 마법 분야의 지식이 교차하고, 야금술 지식까지 접목되면서 연구는 다시 새롭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여기에 그동안 탑처럼 쌓여 있던 인트레니안 속의 재화들이 끝내 소모되고 말았다.

하지만 연구는 그치지 않았다.

그동안 쓸 일이 없어 모아 뒀던 헤노바의 가산들이 투입되고, 대장로도 연우에게 빚을 일부 다는 조건으로 재화를 투입했다.

그리고 다시 석 달이라는 시간이 더 지난 뒤.

“……됐다. 드디어.”

일행은 구조식을 완성할 수 있었다.

* * *

“아쉽군. 결과물을 내어놓고도, 이런 것을 재도전할 수가 없다는 것이.”

브라함의 말에 대장로와 헤노바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 시간 동안 밤잠을 설쳐 가면서 완성시키고자 했던 구조식. 비록 에메랄드 타블렛이라는 틀이 있었고, 연우라는 뛰어난 조타수의 방향 지시가 있었다지만, 그래도 완성된 구조식은 그들의 모든 지식과 연구가 총집합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양산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돌 하나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너무 터무니가 없었다.

“인간의 영혼이라. 정말이지 미친 노릇이지.”

수천 혹은 수만 명에 달하는 인간의 영혼. 이건 아예 대놓고 제노사이드라도 일으키란 뜻이 아닌가. 게다가 영혼을 그냥 수집해서도 안 된다. 공포에 질린 영혼을 가공하고, 정제하는 과정에서도 여러 요소들이 투입되어야 한다.

그 과정 하나하나가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으니. 연우가 갖고 있는 돌이 이미 정제가 끝난 물건이어서 다행이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시도도 못할 뻔했다.

물론, 인간의 영혼이 아니라, 다른 영혼을 사용해서 돌을 구성해도 되긴 되었다. 하지만 영혼만큼 효율적인 물건으로도 수천 개나 필요한 마당에, 다른 재료를 써서 돌을 완성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브라함, 대장로, 헤노바는 자신들이 만들어 낸 결과물을 이번에만 사용하고 다시 묻어 두자는 데에 합의했다.

만약 완전한 구조식이 밖으로 새어 나갔다가는 정말 큰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

특히 레드 드래곤을 비롯한 거대 클랜들의 경우에는 현자의 돌을 만들어 낼 수만 있다면, 수천 수만 명의 인명 따위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해치우려 들 테니까.

그리고 어차피 이번 연구를 통해 그들로서도 많은 것을 얻은 상태라, 현자의 돌에 굳이 목을 매달 이유도 없었다.

“그럼 시작하자.”

브라함의 말에 따라, 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헤노바와 대장로도 긴장된 표정으로 연우를 지켜 봤다.

현재 연우의 심장 옆에 자리 잡은 현자의 돌은 끄집어낼 수가 없다. 그렇다면 연우가 직접 필요한 재료들을 섭취하고, 구조식에 맞춰서 돌을 완성시켜야만 했다.

연우는 인트레니안을 활짝 열어 바할이 그동안 쌓아 뒀던 돌의 재료들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삼켜라.”

찰칵, 찰칵!

바토리의 흡혈검이 톱니 이빨을 부딪치면서 재료들을 통째로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그 순간.

[시차 괴리]

연우는 모든 의식을 체내로 돌리면서, 현자의 돌에 의념을 집중 시키기 시작했다.

우우웅-

때마침 현자의 돌이 잘게 떨렸다.

당장이라도 자신을 완성시켜 달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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