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222화 (222/862)

22화. 켈라트 경매장 (5)

“트리메기투스의 탁본은 크로이 님에게 낙찰되었습니다!”

트리메기투스.

탑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구자이자 연금술사로 알려진 플레이어.

아트란은 자신이 가진 신비의 탁본에다 그의 이름을 붙였고, 사람들은 그것이 정말 트리메기투스가 남긴 유산이라도 되는 것처럼 열광하면서 입찰에 참여했다.

수많은 연금술사며 마법사, 마녀, 여러 부호들이 나서서 탁본을 손에 넣으려 경쟁적으로 값을 올려 나갔다.

하지만 결국 탁본의 주인은 탑의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황금을 지녔다는 황금충 크로이가 되고 말았다.

크로이는 객석에서 일어나 단상으로 걸어가는 내내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이 너무 기분 좋았다.

돈을 쓴다는 즐거움이 바로 이런 것일 테다.

수많은 사람들의 질시와 시샘이 가득한 눈빛을 받는 것. 이런 눈빛을 받을 때면 언제나 가슴이 짜릿했다.

이때만큼은 이 넓은 경매장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발 아래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전력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자들도, 재산만큼은 그를 따라올 수가 없었다.

크로이는 인력 시장에서 구한 용병들로 하여금 구름 떼처럼 몰려드는 사람들의 접근을 차단시키고, 트리메기투스의 탁본을 수령해 그대로 자신의 영지로 돌아갔다.

그리고 자신의 클랜 아래에 있는 연구소에 선물하듯이 툭 던져 줬다.

전리품은 취할 때에나 자신을 기쁘게 만들 뿐, 취한 뒤에는 별반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금고에 썩혀 두는 것보다는 뭐라도 찾을 수 있도록 조사를 시켜 보는 게 좋았다.

만약 정말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프리미엄을 붙여서 더 비싸게 팔 수 있을 것이고.

단순한 헛소문에 불과한 것이었다면 그냥 전리품으로써 금고에다 처박아 둘 생각이었다.

그리고 다행히.

연구소에서는 그의 전리품이 아주 귀중한 보물이었다는 것을 입증했다.

보랏빛으로 빛나는 새로운 마나 포션을 내놓은 것이다.

이것은 시중에 나와 있던 어떤 마나 포션보다도 효력이 뛰어나다는 게 입증되었고, 고체화시켰을 때에는 탁월한 1회용 마도구로 사용하는 것도 가능했다.

연구소에서는 그 외에도 수많은 결과물들을 쏟아 냈으니.

탁본을 놓치고 손가락을 빨던 곳들도, 탁본의 가치에 대해 의심하던 자들도, 깨닫고 말았다.

그들이 판단했던 가치는. 사실 진짜 가치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걸.

곧 트리메기투스의 탁본에 대한 이야기는 경매장을 넘어, 탑 전체로 확산되었다.

* * *

“으흐흐. 이것 참 기분이 좋구만.”

아트란은 넓은 집무실에 홀로 앉아 의자를 뱅그르르 회전시키면서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대행수에서 이사로 한 번 더 진급한 뒤에 따로 배정된 그의 개인 집무실이었다.

반짝이는 대리석 바닥이며 갖가지 비싼 도자기, 그림, 장식물들까지.

이번 경매는 그야말로 근 10년 안에 있었던 이벤트 중에서도 가장 성황리에 끝난 이벤트였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진두지휘한 아트란은 이미 하늬바람 조합을 상징하는 얼굴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트리메기투스의 탁본에 대한 소문이 계속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아트란의 명성도 덩달아 계속 커지는 중이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탁본의 필사본이라도 따로 구할 수 없냐는 문의가 들어오고 있었으니까. 아니면 다른 샘플은 없냐고 묻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아트란이 따로 꿍쳐 둔 필사본은 몇 개가 있었다.

소문이 더 퍼져 나가면 그때 다시 하나둘씩 풀 생각이었다. 그런다면 훨씬 더 많은 돈을 쓸어 담을 수 있겠지.

다만, 많이 만들어 두지는 않았다. 보물은 희귀할 때 그 빛을 발하는 법. 괜히 가치를 떨어뜨리는 멍청한 짓은 절대 하지 않았다.

‘그래도 아쉽단 말이지.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최소10배, 아니 20배 이상으로 낙찰받을 수 있었을 텐데.’

트리메기투스의 탁본이 이렇게까지 광풍을 부를 줄은 몰랐기에. 아트란은 입맛을 다시고 말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분명히 탁본만 봤을 때는 뒷내용이 더 있는 게 분명했는데. 그걸 구할 방법은 없을까?’

만약 뒤 내용을 추가로 찾을 수 있다면.

그때는 정말 탑을 크게 흔들어 놓을 자신이 있었다.

‘사람들을 더 풀어서 까마귀를 다시 수소문해 봐야 하나?’

아트란은 어느새 감쪽같이 사라진 까마귀를 떠올리면서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녀석이 탁본을 어디서 찾았는지만 알 수 있다면, 원본을 추적할 수 있을 텐데.

그는 관리자나 플레이어와 다르게 여러 차원을 수시로 오고 갈 권한이 있는 신비 상인이었기에. 설사 탁본의 출원지가 지옥이라고 해도 뛰어들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고 있을 무렵.

똑, 똑, 똑-

갑자기 노크 소리와 함께 비서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무슨 일이지?”

“누군가가 이사님을 다급하게 찾고 있습니다. 내쫓으려 했지만 워낙에 행패가 심해서…….”

“필사본이라도 내놓으라는 놈인가 보지. 그럼 용병 시켜서 쫓아 내. 머리 식힐 일이 있으니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일러뒀을 텐데.”

“그런데 그것이 그가 탁본의 원 주인이라고 말하는 까닭에…….”

“뭐?”

아트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어디냐, 거기가?”

아트란은 비서를 따라 녀석이 소란을 피우고 있다는 1층 홀로 내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거기에 여전히 촌티를 벗지 못한 까마귀 녀석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대고 있었다.

“상인 A인지 뭐시긴지 하는 놈 나오라고 그래! 책임자가 됐다며! 나오라고 하라고! 그 탁본은 내 것이었어! 이따위로 사기 쳐 놓고 내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어?”

아트란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고 보니 입을 털어서 녀석이 탁본을 제시가에 팔게끔 유도하긴 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탁본의 가치는 아직 탑의 시스템에 인정을 받은 게 아니었으니까. 아티팩트가 아니면 시스템의 허가가 쉽게 떨어지지 않는 맹점을 이용한 것이었다.

아트란은 비서에게 눈짓을 보내 까마귀 녀석을 타일러 접객실로 오게끔 지시하고, 자신이 먼저 그곳으로 가서 기다렸다.

곧 문이 열리면서 까마귀가 들어왔다.

녀석은 심통이 가득한 얼굴로 아트란을 노려봤다. 불만과 짜증, 억울함이 섞인 눈빛. 하지만 아트란은 녀석의 눈빛 아래에 담긴 탐욕과 겁을 놓치지 않았다.

이곳은 수많은 돈이 오고 가는 거대 조합. 자꾸 행패를 부린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지 모른다는 공포에 질린 것이다. 하지만 탐욕이 그런 공포를 마비시키고 있었다.

“어떻게 할 겁니까, 당신! 네?”

제 딴에는 겁박한답시고 소리를 꽥 질렀지만. 아트란의 눈에는 가소롭게만 보일 뿐이었다.

‘이럴 때는 그자가 생각나는군. 카인이었나. 그놈이 참 대단했었지. 감히 말로 날 후려치기까지 했던 놈이었으니까.’

아트란은 이제 추억이 되다시피 한 독식자를 얼핏 떠올렸다. 이제는 저층 구간을 한창 휘젓고 다닌다는 최고의 루키. 여러 고객을 만났지만, 쥐뿔도 없으면서 배짱 하나로 자신과 맞먹었던 녀석은 그밖에 없었다.

아트란은 독식자에 대한 기억을 누르고, 살짝 인상을 찡그리면서 까마귀 녀석을 노려봤다. 그러자 녀석은 주춤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호객, 아니, 고객님. 저희의 거래에는 일절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고객님은 탁본을 제시가에 거래하셨고, 탑의 시스템은 그것을 인정했습니다. 시스템이 버젓이 잘 작동하고 있는데, 어디서 억지를 부리시려는 겁니까?”

“이, 이……!”

까마귀 녀석은 이를 악물며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역시 애송이로군. 아트란은 속으로 비웃음을 던지면서 새로운 미끼를 던졌다.

“하지만.”

찌푸린 인상을 화사하게 바꾸고. 비틀린 입술을 반대로 뒤집어 산뜻한 미소를 지었다. 분위기가 확 반전되었다.

“저희가 너무 터무니없는 이문을 취한 것도 사실이니, 이익의 4할은 고객님께 돌려 드리겠습니다.”

까마귀 녀석의 눈이 커졌다. 동공이 돌아갔다. 멍청한 짱돌을 열심히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낙찰가는 이미 파다하게 퍼졌으니. 수수료 등등을 떼고 남은 이문의 4할까지, 열심히 계산기를 두들겨 대는 것이다.

그리고 결과를 알아챈 순간. 녀석은 이제 헛바람까지 들이켰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아트란은 이제 물 밖으로 나와서 힘차게 퍼덕거리는 녀석에게 작살을 꽂았다.

“대신에 탁본의 다른 파트들, 갖고 계시겠지요? 그것을 저희들에게 위탁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녀석은 의표를 찔린 듯 흠칫 떨고 말았다. 이마에 송골송골 식은땀이 맺히는 게 보였다.

“무, 무슨 말을…….”

“고객님 같은 영특하신 분이 다시 찾아오셨다는 건, 그만한 무기를 챙기고 오셨단 뜻이 아니겠습니까?”

녀석은 우물쭈물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트란은 입에 발린 말로 적당히 녀석을 띄워 줬고, 곧 까마귀는 콧구멍이 잔뜩 벌어지고 말았다.

“이번에는 판매가의 5할을 고객님 앞으로 돌려 드리겠습니다. 사실 더 챙겨 드리고 싶지만, 저희도 이것저것 떼야 할 게 많아 이문이 그만큼 대단히 남지는 않아서요. 어떠십니까?”

5 할.

까마귀 녀석은 이제 멍청한 머리로는 도무지 환산도 불가능한 값을 떠올리고, 얼굴에 붉은 기가 잔뜩 돌았다.

갑작스러운 일확천금에 눈동자가 뒤집어진 것이다.

“여기 있소!”

그러면서 내놓은 탁본은 2개.

아트란의 입꼬리가 저절로 말려 올라갔다.

‘멍청한 놈.’

고작 5할을 가지고 저렇게 기뻐하는 꼴이라니. 녀석은 아직 탁본의 정확한 가치를 모르는 게 틀림없었다. 9할을 불러도 이쪽에서 응해야 할 판인데 말이다.

탁본의 가치며 이벤트를 열었을 때에 추가적으로 생기는 긍정적인 영향 등을 따져 본다면 부르는 게 값이었다.

계약을 이렇게 맺었으니 수수료라는 명목으로 중간에서 장난을 치기도 좋을 테고. 무엇보다 이번 경매가 끝나면 아트란은 자신의 명성이 어디까지 치솟을지 짐작도 가질 않았다.

비틀린 입술은 부푼 미래에 대한 기대를 잔뜩 담아 더 짙은 호선을 그려 냈다.

덕분에 아트란은 볼 수 없었다.

까마귀가 흡족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 * *

조합에서 아트란의 이름으로 다시 한 번 더 편지가 발송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장 최상위 등급에만 있는 소수의 VVIP들에게만 발송되었고, 비밀 경매라는 점이 강조되었다.

편지지에 실린 초대장을 갖고 있어야만 참여할 수 있는 비밀 경매.

당연히 탑은 다시 한 번 더 뒤집히고 말았다.

탁본의 새로운 파트가 나타났다는 것만 해도 놀라운 일인데, 이것을 공개하지 않고 소수끼리만 비밀리에 진행한다니 참여할 수 없는 플레이어들은 뿔이 단단히 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하늬바람 조합은 원칙을 절대 깨지 않았고.

미처 초대장을 받지 못한 랭커와 클랜들은 어떻게든 초대장을 구하기 위해 발에 땀이 차도록 뛰어다녀야만 했다.

특히 첫 번째 경매 때 그냥 지켜보기만 했던 거대 클랜이며 하이 랭커들도 이번에는 참여를 선언했다.

덕분에 아직까지 두 번째 경매가 시작되기 전인데도 불구하고.

초대장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덩달아 아트란의 명성도 같이 상승해 어느새 VVIP의 최상위 플레이어들 머릿속에는 그의 이름이 단단히 각인되었다.

그렇게 수많은 이목이 쏠린 가운데.

두 번째 경매에서 나온 새로운 파트는 황금충 크로이가 아닌, 클랜의 모든 자산을 털어 버릴 기세로 달려든 마탑에 낙찰되었다.

* * *

-그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너는 모를 거다. 영원히. 아마 마지막까지 외로움에 몸부림치다, 그렇게 눈을 감고 말겠지.

불이 타오른다.

잿더미가 될 정도로 뜨거운 불길 속에서도. ‘그놈’은 희미하게 웃으면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그녀는 저 미소가 너무 싫었다.

정말이지, 끔찍할 정도로.

-불쌍하고 가련한 이스메니오스. 마지막 용이여…….

그리고 타오른 불길은 녀석을 집어삼켰다.

미소도 함께.

“……!”

여름여왕은 헛바람을 들이켜면서 눈을 번쩍 떴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고, 자신의 레어(Lair)란 사실을 깨닫고 인상을 팍 찡그렸다.

옷이 눅눅했다. 이마를 따라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또 이딴 놈이…… 꿈 속에.”

여름여왕은 이를 바득 갈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마 그놈이 죽고 난 뒤부터였을 것이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기 시작했던 것이.

본디 용종은 수면기와 활동기를 번갈아 보내면서 마력과 권능을 유지해 왔다.

거대한 육체와 뛰어난 정신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에너지를 비축시켜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수면기가 망가지면서 그녀의 패턴도 전부 엉망이 되어 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위험했던 드래곤 하트는 더 이상 마력 충전이 진행되지 않으면서 복구도 이뤄지지 못하며 망가지고 말았고, 이에 따라 권능이 무너진 독에서 물 새듯이 계속 새어 나갔다.

타오르는 불길처럼 붉었던 머리카락이 푸른색으로 변하다, 이제는 은빛으로 가라앉은 것도.

더 이상 본체로의 폴리모프는 꿈도 꾸지 못하게 된 것도. 전부 그놈 때문이었다.

악몽.

이건 차라리 저주나 다름없었다.

아니, 저주보다 더 지독하고 악랄했다. 그냥 저주였다면 해소해 버릴 수 있었겠지만. 이건 그러지도 못했다.

언제나 끈질기게 그녀에게 달라붙었고, 정신을 좀먹었다.

눈만 잠깐 붙이려고 들면 나타나는 그놈의 모습은. 언제나 웃고 있어서 더더욱 그녀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차라리 그놈이 악을 쓰기라도 한다면 편해질 테지만.

그러지도 않기 때문에 도무지 떨쳐 낼 수가 없었다.

그녀의 머릿속 한편에 남아 있는 그놈은 언제나 웃는 낯으로 남아, 두고두고 그녀를 괴롭힐 터였다.

패배감.

위대한 용으로 태어나, 혼자서가 아닌 ‘합공’으로 한 명을 쓰러뜨렸다는 좌절감은. 이제는 멍에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멍에는 이제 그녀를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는 중이었다. 시시각각 사라지는 권능과 마력 때문에, 여름여왕은 갈수록 조바심을 느껴야만 했다.

‘헤븐윙, 헤븐윙……!’

이제는 만나지 못할 놈을 저주하면서.

여름여왕은 시뻘겋게 충혈된 눈을 한 채, 드래곤 하트를 복구할 다른 방법이 없나 다시 용의 지식 창고, 호크마에 접속하려 했다.

여전히 길은 보이지 않지만, 어떻게든 수를 써야만 했다. 궁무신 장웨이가 외뿔부족에게 쫓긴 이후로, 녀석에 대한 기대는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하지만 여름여왕은 갑자기 알현을 요하는 텔레파시를 받고, 접속을 중단해야 했다.

“무슨, 일이지?”

오랜만에 입을 떼서 그럴까. 평소 고혹적이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아 있었다. 짐승의 하울링이 섞여 있어, 텔레파시 너머에 있던 트로이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야만 했다.

그들이 모시는 위대한 존재의 심기가 심상찮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외부에서는 81개의 눈으로서, 탑을 호령하는 절대자인 ‘호크 아이’라지만. 레드 드래곤 내에서는 여름여왕의 종복이자 사도에 지나지 않았다.

『여왕님께 사죄의 말씀을. 급히 보고드릴 것이 있어, 이리 무례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뭐지?”

『우선 이것을 봐 주십시오.』

여름여왕은 트로이의 의식을 경유해, 그가 보고 있는 시야를 그대로 엿볼 수 있었다.

트로이의 손에는 손톱만 한 크기의 아주 작은 돌멩이 같은 게 들려 있었다. 보라색 광채로 반짝이는 원석.

여름여왕은 트로이의 시그니처 스킬, 〈맹금의 밤눈〉을 통해 원석 안에 응축된 막대한 양의 마력을 읽었다.

순간, 여름여왕의 눈이 커지고 말았다.

“그건!”

『현자의 돌을, 발견했습니다.』

“……!”

여름여왕은 주먹을 꽉 쥐었다. 현자의 돌.

그토록 가지고 싶었지만 가질 수 없었던 것. 이제는 영영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것이 바로 눈 앞에 있었다!

『비록 현자의 돌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어설플 정도로 미완성품에 불과합니다만. 작동 체계나 구성 원리는 분명히 저희가 청화도에서 파악했던 것과 동일합니다. 아니, 오히려 더 체계화가 잘 이뤄져 있습니다.』

여름여왕은 억눌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것을, 어디서 구했느냐?”

『마탑에서 보내온 것입니다.』

“마탑?”

트로이는 미완성품이 레드 드래곤에 흘러 들어오게 된 경위를 차분히 설명했다.

최근에 켈라트 경매장에서 괴상한 탁본이 나돌면서 한창 소란스러워졌었고, 마탑이 이것을 구해 시제품을 만들어 레드 드래곤 앞으로 보내왔노라고.

『일전에 비밀리에 요구했던 것을 떠올리고, 마탑의 장로들이 따로 보낸 듯합니다.』

여름여왕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어젯밤에 세 번째 탁본이 비밀 경매에 붙여질 거란 공시가 붙었습니다.』

세 번째 탁본. 그 말이 여름여왕의 침묵을 깨뜨렸다.

“어떻게든 낙찰받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예. 알겠……!』

“아니.”

트로이는 물러나려다 말고 도중에 숨을 삼켜야만 했다. 연결 고리를 통해, 여름여왕의 짙은 분노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찌르르. 그가 두려움에 젖어 몸을 떨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말이 뜻하는 바는 간단했다.

만약 돈으로 해결이 안 된다면, 설사 관리국이 직접 관리하는 경매장이라고 하더라도 직접 무력 행사에 나서란 의미였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아주 무거울 테지만. 그녀는 그만큼 갈망이 깊었다.

여름여왕은 악다문 입술 사이로 으르렁거렸다.

“다른 것들도 가져와. 전부. 내 앞으로.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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