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223화 (223/862)

23화. 켈라트 경매장 (6)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데, 탁본의 세 번째 경매 날이 찾아왔다.

캘라트 경매장의 아홉 구획 중 가장 높은 1급의 경매장에서 치러지는 비밀 경매인데도 불구하고.

경매장은 많은 인파들로 북적거렸다.

하늬바람 조합에서는 VVIP만 선별해서 초대장을 발송했다지만, 두 번째 경매가 끝나고 난 뒤에 워낙에 항의를 많이 받아 이번에는 조금 더 많은 양의 초대장을 찍어 내야만 했다. 거대 클랜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당연하지만, 그런 거대 클랜들이 한두 사람만 보낼 리 없는 일.

대표자들은 많아야 네다섯 명이더라도, 그들을 호위하는 병력들도 따르면서 객석을 가득 채웠다.

거기다 여러 연금술사의 모임이나 마탑의 학파, 개인적인 자격으로 찾아온 하이 랭커들도 숱하게 많았으니.

당연히 경매장은 비밀 경매라는 말이 무색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이들로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대놓고 인상을 찡그리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여기에 대해 조합에 따지지는 못했다.

자신들도 대개 억지를 쓰면서 찾아온 이들이 대부분이었고, 이 참에 탁본을 구하기 위해 경쟁할 자들이 누군지 체크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엘로힘에서도 왔군. 원로원 의원 네 명에 집정관 한 명? 하나 같이 미쳤는데.”

“생명의 가문의 가주도 보이는군. 엉덩이가 꽤나 무겁다더만, 저 작자가 밖으로 나올 때도 있나 보군.”

프로토게노이 족의 일가(一家)를 이끄는 가주, 아이온은 이름만 널리 알려져 있을 뿐 세상 밖으로는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 바로 그가 있었다. 1급 객석에 앉아 단상을 보는 아이온의 눈빛은 차갑게 번들거리고 있었으니.

그는 어중이떠중이들이 많은 것이 불쾌할 뿐. 조금이라도 빨리 경매가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좌우로 앉은 원로들이며 집정관도 하나같이 엘로힘을 이끄는 수뇌라 할 수 있는 자들.

그쪽만 보더라도 이번 경매가 절대 만만치는 않을 거라는 것쯤은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분위기는 엘로힘 쪽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혈국에서는 나겔링 후작과 스크렙 후작이 왔군. 안쪽에 있는 사람은…… 아르드바드 공작인 것 같은데.”

아르드바드 공작은 혈국의 왕, 식탐황제를 지킨다는 괴·력·난·신의 4명 수신호위 중 ‘용력’을 상징하는 자였다.

검을 들었을 때에는 바다마저 가른다는 무용담이 전해질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기에, 식탐황제도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는 절대 밖으로 내보내지 않기로 유명했다.

그런데도 그가 나타났다는 것은 식탐황제가 얼마나 이번 경매에 관심을 기울이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마군에서는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주교가 온 듯하고.”

“시(時)의 바다? 저들도 왔나? 미쳤군. 미쳤어.”

좌측 편에는 외딴 섬처럼 어느 군중에도 섞이지 않고, 홀로 동떨어져 앉은 두 명이 있었다.

검은 로브를 푹 뒤집어쓰고 있어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지만, 짙은 마기를 숨기지 않고 흘려 대고 있어 마군에서 왔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이목을 집중시키는 자들은 따로 있었다.

마군의 좌석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앉은 다섯 사람들. 그들은 무료하다는 표정으로 늘어져라 하품을 해 대거나, 가져온 책을 읽으면서 주변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마치 그들만 따로 공간이 유리된 것처럼 아무도 섣불리 그 근방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시(時)의 바다.

8대 클랜 중에서 가장 베일에 싸여 있다는 은둔 집단.

탑의 세계에는 오래전부터 이런 속설이 있었다.

‘그들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는 속설. 시의 바다를 가리키는 경구(警句)였다.

그들은 속세에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조직 체계나 구성원이 어떻게 이뤄져 있는지도, 본단이 어디에 있는지도, 전혀 알려진 바가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단순한 비밀 집단으로만 취급받아야 할 테지만.

시의 바다는 이따금 속세에 모습을 내비칠 때마다 충격적인 활약을 선보였다.

특히 가장 큰 충격적인 사건은 올포원의 준동 당시, 유일하게 그를 막아나서 77층으로 되돌려 보낸 사건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유일하게 올포원에 대항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던 레드 드래곤은 큰 충격을 받아야 했으니.

그때부터 레드 드래곤에 유일하게 대적할 수 있는 집단을 꼽으라 한다면, 시의 바다가 아닐까 하는 평가가 사람들 사이에 나돌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 말을 직접 입 밖으로 끄집어내는 멍청한 놈은 아무도 없었지만.

여하튼 그런 까닭에 시의 바다는 8대 클랜 중에서도 수위권으로 평가받으면서 아무도 경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

그 외에 8대 클랜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거대 클랜의 반열에는 들어갈 수 있다고 평가받는 다른 클랜들도 모습이 보였다.

철사자단, 스트레이 칠드런, 마탑 등…….

탑의 현세대를 이끈다고 할 수 있는 자들이 거의 다 모인 셈이었기에.

경매장은 용광로처럼 금방이라도 끓어오를 것 같이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런 광경 속에서도,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종결시키고, 모든 이목을 집중시키는 등장은 따로 있었다.

끼이익-

활짝 열린 정문을 따라, 일단의 무리들이 뚜벅뚜벅 무미건조한 발걸음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왔군.”

“레드 드래곤…….”

레드 드래곤의 등장이었다.

시의 바다가 그들과 견줄 만하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해도, 최강의 클랜이 레드 드래곤이라는 사실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특히 어느 정도 맞수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던 세간의 평가와 다르게, 압도적인 힘으로 청화도를 짓밟았던 위용은 여전히 그들이 건재하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었으니.

그런 클랜의 위용만큼이나, 카펫을 밟으면서 차례대로 나타나는 자들도 하나같이 살벌한 기세를 자랑했다.

망상망귀, 가라비토.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

검노(劍老), 하난.

라이온 하트, 리처드.

독나비, 당희.

살인마 쌍둥이, 잭과 리퍼.

호크 아이, 트로이.

면면이 세간에도 널리 알려진 81개의 눈들.

레드 드래곤에 저항하는 자들은 씨앗도 남기지 않고 짓밟는다고 알려진 이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을 지나 마지막에 입장한 사람을 봤을 때. 사람들은 더욱 격한 기함을 터뜨리고 말았다.

조각한 것처럼 아름다운 얼굴에 차가운 눈빛을 지닌 사내가 등장했다.

여름여왕이 직접 ‘용의 피’를 수혈하면서 자식으로 삼았다는 아홉 명의 용아병, 용생구자(龍生九子).

사내는 그중에서도 막내인 초도, 탐이었다.

용생구자는 81개의 눈의 총수로서, 사실상 레드 드래곤을 경영한다는 평가까지 받을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었다.

그런 이가 무려 여덟 명이나 되는 눈을 데리고 나타났으니. 당연히 모든 사람들이 잔뜩 경계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탐은 그런 것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가볍게 코웃음을 치는 것으로 모든 시선을 무시하고 자신에게 배석된 자리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그렇게.

팽팽한 긴장감이 흐를 때.

“이렇게 누추하신 곳까지 찾아와 자리를 빛내 주신 분들께 감사하다는 인사 말씀, 올리겠습니다.”

단상 위에 아트란이 나타나 VVIP들의 면면을 일일이 훑으며 공손하게 인사했다.

“모두 공사가 다망하신 분들이니, 잡설 없이 바로 경매를 진행토록 하겠습니다. 그럼 먼저, 오늘의 경매품인 트리메기투스의 세 번째 탁본을 공개하겠습니다.”

아트란은 자신 옆에 놓인 휘장을 힘차게 거뒀다. 그러자 유리 상자 속에 보관된 탁본이 모습을 드러냈다.

깊은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그만큼 뜨거운 열기가 잔뜩 부풀어 올랐다. 탁본을 보는 사람들의 눈에 담긴 감정은 동일했다.

탐욕.

탁본이 가진 비밀이 현자의 돌과 모종의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건, 비단 레드 드래곤만이 아니었다.

현자의 돌까지 유추하지는 못하더라도, 대부분의 거대 클랜과 하이 랭커들이 뛰어난 마력 기관의 탄생을 점치기 시작했고, 이 비법을 조금이라도 얻기 위해 음지에서는 수없이 많은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자칫 그중에서 일부가 양지로 치솟기만 하더라도 전쟁이 발발할 수 있을 정도로. 이미 탁본은 세간의 관심을 받는 중이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단 한 가지 생각밖에 담겨 있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저것을 손에 넣고 만다!

설사 클랜이 가진 모든 재산을 터는 한이 있더라도. 혹은 낙찰자와 전쟁을 치러 강탈하는 수가 있더라도. 어떻게든 획득해야만 했다.

아트란은 경매장 내에 흐르는 이런 분위기가 너무 흡족했다. 탐욕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의 입지도 덩달아 커질 테니까. 이대로라면 조합을 손에 넣는 것도 문제가 없을 듯싶었다.

경매가 끝난 뒤에 새로운 분쟁이 발발할 위험이 컸지만. 알 게 뭔가? 자신은 대금만 비싸게 받고 팔아 치우면 그만인데.

“자, 그럼 이제 경매를 시작하겠습……!”

아트란이 경매 선언을 시작하기도 전에.

갑자기 여태껏 가만히 앉아 있던 탐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입 찰패를 들며 말했다.

“엘릭서.”

“……!”

“……!”

“저, 저 미, 미친!”

“레드 드래곤!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려는 거냐!”

하이 랭커들의 표정이 단번에 잔뜩 일그러졌다. 몇몇은 분개한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탐을 비롯한 레드 드래곤은 전혀 그런 난리는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도리어 아트란에게 계속 일을 진행하지 않느냐며 눈빛으로 핀잔까지 줬다.

아트란도 얼떨떨해하다가 곧 충격에 젖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엘릭서.

천금을 주고도 구하지 못한다는 최고의 신약(神藥).

오래전에 헤븐윙 차정우도 그것을 어떻게든 구하고자 애를 쓰다가 크게 다쳤을 정도로, 엘릭서의 값어치는 현자의 돌에 버금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낫지 못하는 병이 없고, 환골탈태와 만독불침을 이뤄 준다는 신약을 내놓겠다는 말은. 어느 누구도 탁본에 손을 대지 말라는 레드 드래곤의 경고장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탐과 레드 드래곤으로서는 엘릭서에 대한 미련이 없었다. 아무리 뛰어난 만병통치약이라 해도, 그들의 왕이 안고 있는 병마를 씻어 낼 수 없다면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보다도 가치가 없었으니까.

“대금 대신에 물건으로 값을 치러도 된다고 알고 있는데. 그새 규칙이라도 바뀌었나?”

탐이 으르렁거리듯이 물은 뒤에야, 아트란은 허겁지겁 정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목소리는 잔잔하게 떨렸다.

“에, 엘릭서가 나왔습니다. 다, 다음에 입찰하실 분, 계, 계십니까?”

플레이어들의 얼굴에 다급함이 어렸다.

하지만 그들에게 엘릭서 이상으로 뛰어난 가치를 지닌 물건이 당장 있을 리 만무한 일.

모든 가산을 털어 온 하이 랭커들도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더, 더 이상 이, 입찰하실 분이 계시지 아, 않는다면 바로 카운트를 시작하겠습니다. 10, 9…….”

“있을 리가. 보는 눈 하나 없는 소경밖에 없는데.”

탐은 카운트를 들으면서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그때, 혈국의 아르드바드 공작이 제자리에서 일어나 대추처럼 붉어진 얼굴로 소리쳤다.

“레드 드래곤! 예나 지금이나 오만하긴 다를 게 없구나. 너희들이 저걸 제대로 가져갈 수나 있을 것 같은가?”

아르드바드 공작은 자신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자신의 위명이 더럽혀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레드 드래곤의 독주를 막는 것이었다.

탁본이 저들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면, 레드 드래곤이 또 얼마나 성장하게 될지는 전혀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그리고 그런 아르드바드 공작의 생각은 자리에 있던 다른 플레이어들과도 무언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그들 모두가 살벌한 기세를 잔뜩 흘려 댔다.

만약 여기서 레드 드래곤의 손으로 낙찰이 이뤄지게 되면, 곧바로 칼부림이라도 일으킬 태세였다.

채채챙!

트로이를 비롯한 8명의 눈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탐을 지키듯이 에워싸면서 무기를 천천히 뽑았다.

콰콰콰-

막대한 기파가 자욱하게 퍼져 나갔다.

“6, 5…….”

아트란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카운트를 세야만 했다. 데구루루 돌리는 눈알은 어째서 이런 소동이 벌어지는데도 불구하고 관리국이 개입하지 않는지 혼란에 차 있었다.

왜 나타나지 않는 걸까? 아직 칼부림이 일어나지 않아서? 하지만 관리국은 켈라트 경매장에 대한 관리만큼은 아주 엄중하게 했다. 뭔가 이상한 개입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

“4, 3…….”

그때, 탐이 차갑게 웃으면서 자신을 노려보는 모든 이들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다들 착각한 것 같아서 한마디 덧붙이자면. 우리가 원하는 건, 저 하나가 아니야.”

그러다 재미나다는 듯, 짧게 말을 끊으면서 뒷말에 힘을 실었다.

“모든 탁본이지.”

플레이어들이 무슨 말이냐며 소리치려는 순간.

갑자기 각 클랜 수뇌들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텔레파시 및 어기전성 스킬을 통해 외부에서 갖가지 소식이 실시간으로 그들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마탑 소속 황색 학파의 수장이 시뻘게진 얼굴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는 거요, 초도! 어떻게…… 어떻게! 이런 식으로 배신을!”

“마탑과 황금충의 장원을 기습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경매장의 거래소까지 노려? 레드 드래곤! 드디어 미친 것인가!”

“탑과 전쟁이라도 치르려는 것이냐!”

곳곳에서 높은 언성이 터져 나왔다.

지금 탑 곳곳에서 레드 드래곤이 대대적인 공세를 가하고 있었다.

황금충 크로이의 장원을 습격해 크로이의 목을 잘라 버리고, 마탑에는 용생구자 몇 명이 뛰어들어가 황색 학파를 학살하다시피 하는 중이었다. 게다가 관리국의 엄중한 보호를 받고 있는 켈라트 경매장의 거래소 기록원에 일단의 무리가 기습하기까지 했으니.

막장까지 내몰린 상황에, 아트란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거래소 기록원을 습격한다는 것. 원래대로라면 철저하게 신상이 가려져야 할, 탁본 판매자의 신원도 파악하겠다는 의사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는 건, 상인인 자신의 처지도 위험하단 뜻이었다. 히끅. 히끅. 계속된 딸꾹질에 이제는 카운트를 세는 것까지 잊어버리고 말았다.

탐은 비웃음을 피식 던지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으로 올라갔다.

레드 드래곤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저지른 일에 어느 누구도 그를 제지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와장창-

탐은 아주 가볍게 유리 상자를 부수고, 안에 있던 탁본을 움켜쥐었다.

“드디어……!”

위대하신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하고, 레드 드래곤을 탑의 지배자로 만들어 줄 비원이.

바로 이곳에 있었다.

* * *

“지금쯤 개판이 되었겠군.”

21층, 악마의 숲.

브라함은 연우를 보면서 세상이 떠나가라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지금쯤 경매가 시작되었을 켈라트 경매장을 떠올리니 도저히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연우가 열심히 준비한 무대는 정말이지 정교했다. 탑에 사는 주민이라면 어느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촘촘했다.

욕심 많은 레드 드래곤은 현자의 돌을 독식하기 위해 판매자의 신원을 알아보려 노력할 테고, 아무것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신원 미상으로만 뜰 테지. 이미 기록원의 데이터베이스에는 손을 써 둔 상태였다.

“게다가. 놈들은 생각도 못 하겠지, 아마?”

브라함은 탁본의 내용을 떠올리면서 한쪽 입술 끝을 비틀었다. 사실 그들은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게 탁본에다 교묘한 장난을 쳐 둔 상태였다.

“그 속에 마독의 구조식이 있다는 것을.”

탁본의 내용에 따라 현자의 돌을 구성한 여름여왕은 곧 뭔가 심상치 않은 낌새를 느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악마의 독에 중독된 뒤일 테고. 그것은 그녀의 육체를 좀먹고 있겠지.

그렇지 않아도 망가진 드래곤 하트로 버거운 육체가, 더 크게 망가지는 것이다. 악마와 천적인 용종으로서는 치명적인 상처였다.

그때.

다친 몸으로 뿔이 단단히 났을 여름여왕의 분노는 과연 어디로 향할까?

뻔했다.

탁본의 출처로 향하겠지.

그리고.

아마도 레드 드래곤은 지난 수천 년 동안 구축했던 방대한 정보망을 통해, 탁본의 원본이 에메랄드 타블렛이며, 발푸르기스의 밤에서 새어 나왔단 사실을 어렵지 않게 밝혀낼 것이다.

마녀들의 연회는 거기서 끝장이었다.

“이건 쓸데도 없겠습니다.”

연우는 손에 쥐고 있던 탁본의 남은 파트를 성화로 불태웠다. 반응이 미적지근할 때를 대비해서 만들어 둔 것이지만. 이제는 굳이 필요도 없었다.

새카맣게 탄 재가,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흩어져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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