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227화 (227/862)

2화. 마녀 사냥 (2)

클랜 하우스.

흔히 클랜은 일정 규모를 갖출 경우, 조직 체계의 정비와 완성을 위해서 일정한 부지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전쟁이 일상화된 탑의 세계에서 외부로부터 안전을 도모할 수 있는 부지는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었다.

거기다 높은 층계를 중심으로 한 클랜은 신입을 보충하기도 쉽지 않았다.

스카우터들이 수시로 저층 구간을 들락날락하면서 유망주들을 스카웃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고, 스카웃을 한다고 하더라도 거대 클랜이 아니고서야 정비와 주둔을 위한 장소를 층마다 마련하기가 쉬운 게 아니었다.

반대로 저층 구간에 터를 잡은 클랜들은 고층 구간으로 갈수록 전력을 유지하기 힘든 경우가 허다했다.

이렇듯, 탑이 가진 독특한 세계적 지형과 주민들의 성향 때문에 클랜 하우스를 구축하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77층을 점거한 올포원과 76층을 권역으로 삼은 레드 드래곤이 특별한 경우일 뿐이었다.

하지만.

불가능도 가능으로 만들어 낸다는 신비 상인들은 여기에 해답을 내놓았다.

탑을 구성하는 세계의 주변부를 따라, 아공간을 개척해 만든 외우주(外宇宙)를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외우주는 여러 클랜들에게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고유 영역에 해당하기 때문에 출입 권한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었고, 침입을 받더라도 외부로부터 방비도 쉬웠다.

덕분에 외우주는 아주 비싼 값임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50층에 있을 아르티야의 클랜 하우스도 그런 이유로 여태 발견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녀들이 머문다는 끝없는 밤의 세계, 통칭 브로켄 성도 그런 외우주 중에 하나였다.

외우주는 좌표를 정확하게 알아 내지 못한다면 쉽게 넘어갈 엄두도 낼 수 없다. 지점이 조금이라도 어긋나 버리면 공간 속의 미아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부는 몇 번의 재검토 끝에 자신이 관측한 좌표가 맞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포탈을. 열겠. 습니다.」

텔레포트 포탈이 활짝 열렸다. 붉은색 포탈 너머로 아른거리는 공간이 보였다.

“이동하기 전에. 이 너머에 어떤 트릭이나 트랩이 깔려 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어. 그러니까 다들 단단히 준비해 둬.”

브라함과 갈리어드, 판트와 에도라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레드 드래곤의 뒤를 밟는 것이라고 해도, 끝없는 밤의 세계는 마녀들의 고유 영역.

똥개도 자기 영역에서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데. 녀석들이 그동안 자신들의 세계에 어떤 장치를 해 뒀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비에라 듄은 심지어 연인이었던 동생에게도 여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었으니.

아무런 정보도 없이 넘어가는 만큼,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했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우선시해야 할 건, 아난타에 대한 정보다. 너무 눈에 띄는 행동은 삼가도록 하고.”

이미 세샤와 브라함의 사연에 대해 들었던 판트는 콧바람을 토하면서 주먹으로 가슴을 두들겼다.

“내가 천지분간 못 하고 날뛰기 바쁜 놈일지는 몰라도, 정도는 알고 있수다.”

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장대검을 꺼내 한 손에 꽉 쥐면서 포탈 안쪽으로 발을 들였다.

지금 이 순간.

마치 그는 아프리카에 있던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여러 수하들을 이끌면서 작전지에 투입되던 광경이 눈 앞에 겹쳐졌다.

끓는 피를 억지로 누르면서 말했다.

“그럼, 진입한다.”

* * *

포탈 너머는 곧바로 브로켄 성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부가 한 것처럼 누군가 뒤를 쫓아 넘어올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던지, 여러 장소와 경로를 전전한 뒤에야 겨우 브로켄 성에 접근할 수 있도록 길을 꼬아 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연우는 꼬인 길을 따라 여러 장소들을 뛰어넘을 때마다, 갖가지 광경들을 볼 수 있었다.

-무, 뭐야? 당신들……!

-발푸르기스의 밤, 맞지?

-무, 무슨 소리를…….

-맞군. 탕부 년들. 악취가 여기까지 진동하는군. 전부 다 쓸어버려!

탕부. 흔히 악마들에게 몸을 내놓는 마녀들을 멸칭할 때 쓰는 표현이었다.

연우 등이 찾은 곳은 이미 선객들이 한참 휩쓸고 지나간 뒤였다.

레드 드래곤은 이미 오래전부터 포착해 두고 있던 발푸르기스 밤의 비밀 지부며 연구소들을 일제히 들이쳤고, 생포한 마녀들을 고문하면서 수많은 정보들을 알아낼 수 있었다.

-더러운 것들! 왜 우리를! 왜 항상 가만히 있는 우리만 핍박하느냔 말이다! 우린 관련 없다고!

-그럼 거긴 왜 나타난 거지?

-우, 우리도 확인하기 위해서였어! 정말이야! 사실이라고!

발푸르기스의 밤이 가진 혐의를 추궁하는 것부터.

-우, 우리 크, 클랜은…….

그들이 캐낸 내용엔 여태껏 비밀로 가려졌던 발푸르기스의 밤의 정확한 위치와 숨겨진 다른 지부들, 휘하 단체와 연합 조직 관계 및 소속원들의 구성도 포함 되어 있었고.

-에, 에메랄드 타블렛은……!

-에메랄드 타블렛?

-파, 파우스트 던전에서 찾은 거였어!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에게서 받은 지식으로 만든 타, 타계(他界)의 무, 물건이었어!

-더 자세히 말해.

-마, 말해 줄 테니까 제발……! 제발 주, 죽여 줘!

에메랄드 타블렛과 관련된 내용도 섞여 있었다.

-우, 우리도 그게 뭔지 정확하게는 몰라! 알고 있는 건, 이름 모를 신들의 신비라는 것뿌, 뿐이야.

‘이름 모를 신들?’

토설한 마녀의 말인즉슨, 에메랄드 타블렛의 내용은 98층에 상주하고 있는 수많은 신과 악마들하곤 전혀 관련이 없는, 전혀 다른 세상을 운영하는 초월적 존재들의 지식이란 뜻이었다.

연우는 이 지점에서 싸한 느낌을 받아야 했다.

탑은 수많은 차원과 세계가 교차하는 곳이다. 그래서 다양한 문명과 지식들이 만나고, 이를 토대로 계속된 발전을 누린다. 그런데도 닿지 못한 지식이 바로 현자의 돌이었다.

하지만 파우스트라는 플레이어는 메피스토펠레스를 매개체 삼아, 타계의 신들로부터 지식을 일부 전수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에메랄드 타블렛을 만들었단 뜻이었다.

‘모든’이 아니었다. ‘일부’였다.

그렇다면 타계의 신들이 가졌다는 지식은 어디까지 닿아 있다는 거지?

문제는 이 말을 들어도 신과 악마들에게서 별다른 메시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여태 심심하면 자신들을 각인시키기 위해 떠들어 대기 바빴던 녀석들이. 왜 유독 이 대목에서는 조용한 걸까?

연우는 더 자세히 듣고 싶었지만, 마녀들이 알고 있는 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결국 에메랄드 타블렛을 관리하던 것은 비에라 듄이었으니, 그녀를 잡아야만 풀릴 수수께끼였다.

게다가 발푸르기스의 밤을 노리는 자들은 레드 드래곤만이 아니었다.

-여기서 만날 줄 몰랐군.

-네놈들이, 감히!

켈라트 경매장에서 레드 드래곤에게 치욕을 당한 다른 거대 클랜들이 속속들이 나타나 훼방을 놓았고.

에메랄드 타블렛이 발푸르기스의 밤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소문을 접한 여러 랭커와 클랜들이 따로 연합을 구성하면서 추격에 동참하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연우 일행이 지나는 곳은 하나같이 폐허가 되어 있었다.

쓰러진 시체들이며 여기저기에 남은 흔적들이 얼마나 거친 격전이 있었는지 말해 줄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곳에는 저승으로 가지 못한 영혼들이 배회하기 마련이었다.

‘먹어.’

「야! 그렇게 말하니까 꼭 애완견이 된 것 같잖아? 뭐, 그래도 맛있게 먹겠지만. 으흐흐!」

「간만에 포식을 할 수 있겠군.」

샤논과 한령, 괴이들은 죽은 영혼들을 마음껏 탐닉할 수 있었다.

레드 드래곤의 급습. 쫓기는 마녀들과 부서지는 지부들. 그리고 흔적을 쫓아 속속들이 나타나는 타 세력들까지.

연우가 굴린 눈덩이는 착실하게 크기를 불려 가는 중이었다.

그러다.

연우 일행은 어느덧 목적지에 다다랐다.

[‘끝없는 밤의 세계’에 입장하셨습니다.]

[경고! 이곳은 사유지입니다. 세계의 주인으로부터 허락을 받으십시오. 무단 침입 시, 상당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의 사건은 탑의 업적에 기록되지 않습니다.]

경고로 가득한 메시지와 함께 나타난 세상은 온통 잿빛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족히 수백 미터는 훨씬 넘을 것 같은 기암절벽들이 병풍처럼 솟아 하늘은 잘 보이지 않았다.

절벽 사이사이로 난 좁은 협곡들은 미로처럼 복잡해 보였고, 그 마저도 뿌연 안개로 가려져 앞을 분간하기가 힘들었다.

「누가 마녀 아니랄까 봐, 어떻게 하고 있는 꼬락서니들도 이렇게 우중충하냐? 하여간 인간들이 창의성이 없어요, 창의성이.」

연우는 샤논의 말에 동의하면서 용마안을 활짝 열어 안개에 가려진 협곡을 살폈다.

결들이 이리저리 어질러져 있었다.

얼마나 꽁꽁 싸매 놓은 건지. 웬만한 마법쯤은 쉽게 간파하는 용마안도 협곡의 구조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으으. 여기 왜 이렇게 우중충해? 하여간 이딴 식으로 해 놓고 사니 허구헌날 마녀들이 음침하단 소리를 듣는 거지.”

“귀계결진(鬼界結陣)이로군.”

브라함이 내뱉은 말에 연우와 일행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브라함이 말했다.

“인위적으로 귀기가 가득한 안개를 뿌려서 침입자들에게 환각과 공포를 심어 주고, 생명력을 갈취하는 결계라네. 상대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지.”

‘피의 안개?’

연우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부가 갖고 있는 스킬을 하나 떠올렸다.

안개를 뿌려서 적의 생명을 갉아먹고, 반대로 아군에게 체력을 보충시키는 스킬과 많이 닮은 것 같았다.

부가 생전에 뛰어난 흑마법사였을지 모른다는 말도 머릿속을 다시 스쳐 지나갔다.

“해제할 수는 없겠습니까?”

브라함은 쓰게 웃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수성의 서가 있다면 모를까. 해제는 힘들어. 하지만 아군에게 끼치는 영향력을 줄일 수는 있을 것 같군.”

갈리어드가 말을 덧붙였다.

“그럼 길은 내가 찾도록 하지.”

엘프가 가진 종족 스킬, 요정안은 진실을 쫓기 때문에 길라잡이로서도 유용했다. 거기다 시력도 일행 중에서 가장 좋으니 두 사람이 협업을 한다면 결계에 휘말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브라함이 몇 번 주문을 외우자 푸른 이펙트가 일행을 감쌌다.

[‘브라함’이 아군에게 ‘축복: 저주 방어’를 걸었습니다.]

[‘브라함’이 아군에게 ‘축복: 항마력 상승’을 걸었습니다.]

……

[파티가 구성되었습니다.]

[현재 인원(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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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어드 핀 블라크엘븐

판트 청람

에도라 청람

연우는 처음으로 맺은 파티 시스템에 묘한 느낌을 받았다. 보통 팀이나 클랜에서 층계 공략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 맺는 것인데. 자신이 하게 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특징할 만한 점은 여전히 성명을 비공개로 해 둔 탓에 연우 이름은 블라인드 처리되었고, 브라함은 권속이 되면서 더 이상 플레이어가 아니게 되었기 때문에 파티 인원에 명시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거기다 파티 인원들의 위치도 어렴풋하게나마 감지가 되었으니. 서로 거리가 떨어져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서든 퀘스트가 2개 생성되었습니다.]

[서든 퀘스트 / 현상 수배 (1)]

설명: 조금 전, 관리국에서는 사적인 이익으로 켈라트 경매장을 공격한 레드 드래곤에 대한 제재를 결의했습니다. 하지만 관리국에서 가할 수 있는 제약에는 한계가 있어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지금부터 정해진 시간 동안 레드 드래곤의 플레이어를 찾아 생포하거나 사살하십시오.

사살 성공 시, 일정 확률로 죽은 상대의 스킬이나 아티팩트를 강탈할 수 있습니다.

제한 시간: 3일

달성 조건:

1. 레드 드래곤의 소속원 사살

2. 레드 드래곤의 시설 파괴

보상: 죽은 대상의 스킬 및 아티팩트. 공적치에 따른 추가 보상.

[서든 퀘스트 / 현상 수배 (2)]

설명: 레드 드래곤에서는 이번 사태의 원흉으로 발푸르기스의 밤을 지목, 그들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관 유무를 부정하는 발푸르기스의 밤의 행태에 분노해, 여름여왕 이스메니오스는 그들에 대한 응징을 결의했습니다.

지금부터 발푸르기스의 밤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파괴하고, 강탈하십시오.

결과를 이룬 플레이어와 클랜에게 그만한 보상이 치러질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높은 결과를 성취한 3인의 플레이어에게는 ‘용의 피’가 제공될 것입니다.

제한 시간: 없음

달성 조건: 발푸르기스의 밤의 파괴

보상:

1. 인트레니안 개방

2. 조건 성립 시, 용의 피

“형님!”

“어. 봤어.”

판트가 호들갑을 떨었다. 연우는 퀘스트 창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결국 관리국이 나섰군. 여기에 레드 드래곤은 아예 대놓고 맞불을 놓았고.’

퀘스트 창의 설명처럼 관리국이 제재에 나선다고 해도 레드 드래곤에는 이렇다 할 큰 타격을 주기 힘들다. 그만큼 레드 드래곤의 규모가 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관리국은 탑의 모든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레드 드래곤을 공격하게끔 했다. 3일을 제한으로 뒀다지만, 그 정도면 레드 드래곤도 상당한 출혈을 각오해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여름여왕은 교묘하게 자신들에게로 쏟아질 공격을 일부 옆으로 비껴 나가게 만들었다.

발푸르기스의 밤을 제물로 내놓으면서 시선을 분산시키고, 새로운 퀘스트에 대한 보상을 제시하면서 전선을 새로 구축하려는 속셈인 것이다.

‘물론, 대부분 플레이어들이 두 퀘스트를 다 시도하려 하겠지만.’

결국 연우가 의도했던 대로 탑 전체가 수렁으로 빠진 셈이었다.

여러 변수가 발생할 수도 있을 테지만.

한 가지만큼은 확실했다.

‘발푸르기스의 밤은 제대로 엿됐군. 그렇지 않아도 자신들에게 관심 가지는 놈들이 많은 판국에 아예 레드 드래곤이 발목을 붙잡고 용광로로 뛰어드는 꼴이니.’

브라함도 연우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입가에 걸린 미소가 그치지 않았다. 그러다 연우와 눈이 마주치고, 가볍게 헛기침을 하면서 앞을 주시했다.

“그럼 서둘러 가도록 하지. 시간이 없으니.”

* * *

길라잡이를 맡은 갈리어드가 선두를, 마법사인 브라함이 중앙, 판트와 에도라가 각각 좌우를, 연우는 기습에 대비해 후방을 맡아 이동했다.

협곡은 정말 스산했다.

브라함과 갈리어드가 갖가지 마법과 정령을 부려도 안개는 걷히지 않았고, 시야 확보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연우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안개 너머로 의념을 투사해 봤지만, 마치 빈 허공을 짚는 것처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키이이-

키키키키!

특히 바람이 우둘투둘한 절벽에 부딪칠 때마다 내는 소리는 마치 귀곡성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일행은 볼 수 있었다.

“이건…….”

“개판이로군.”

얼마나 큰 다툼이 있었는지 곳곳에 칼부림의 흔적들과 시체들이 가득했다.

일행이 통과했었던 발푸르기스 밤의 지부들에 있었던 일은 예삿일처럼 느껴질 정도로, 하나같이 마치 생사대적이라도 만난 것처럼 악에 찬 얼굴이었다.

문제는 같은 팀원들끼리, 아군들끼리, 싸운 것 같다는 점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적아를 가리지 않고 싸워 댄 것 같았다. 온통 난장판이었다.

브라함이 말했다. 귀계결진은 환각으로 자중지란을 만들고, 생명력을 강제로 갈취한다고.

그렇다면 이 녀석들도 다 그런 결계에 휘말린 피해자들인 것 같았다.

연우는 일행들에게 다들 조심하라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본 순간.

아무도 없었다. 뿌연 안개만 가득했다.

‘뭐지? 어느새?’

연우의 눈빛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미처 제대로 인지도 못한 사이에 결계에 휘말린 것이다. 하지만 브라함의 버프가 이렇게 쉽게 부서지다니. 믿을 수가 없어 몸 상태를 확인했다. 그런데 버프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럼 버프마저 속인다는 걸까? 이 안개가? 연우는 위험해지기 전에 빨리 일행을 찾아야겠단 생각에 용마안과 초감각을 잔뜩 벼리려 했다.

그 순간.

“오라버니? 오라버니!”

갑자기 안개 너머로 에도라의 목소리가 들리면서 시커먼 그림자가 이쪽으로 나타났다.

“여기 계셨……!”

에도라가 안개를 헤집으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걱정이 가득하던 눈빛이 연우를 발견하고 기쁨에 찬 순간.

쐐애액!

연우는 가차 없이 마장대검을 휘둘렀다. 발출된 흑기가 에도라의 머리를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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