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231화 (231/862)

6화. 마녀 사냥 (6)

용병 집단은 포탈을 통과하자마자 곧바로 협곡으로 들어섰다.

그 속에는 아트란도 섞여 있었다.

몸을 사리는 성격인 그는 원래라면 절대 참석하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반쯤 눈이 돌아간 상태라, 머릿속은 어떻게든 좌절에 빠진 레드 드래곤을 보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아트란은 귀계 결진을 지나 요계 상진에 들어설 때 즈음,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곳곳에 낭자한 격전의 흔적들. 특히 죽은 시체들 중에는 제법 이름이 알려진 랭커도 있을 정도였다. 기괴하게 생긴 키메라들도 가득했다.

때문에 아트란 등은 꽤 모진 고생을 해야만 했다.

“막아!”

“기습이다! 공중! 요격해!”

용병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키메라들을 겨우겨우 밀어 내고, 암살 집단은 어둠에서 튀어나와 녀석들의 숨통을 끊었다.

하지만 각자 소속 집단이 달라 지휘 체계가 통일되지 못해 피해는 계속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거기다 간간이 마녀들까지 나타나 진행에 훼방을 놓았으니.

“마녀다! 또 마법을 부린다! 디스펠! 디스펠 펼쳐!”

“개새끼야! 그쪽이 뚫렸잖…… 으아악!”

결국 3번째 지역인 화계 화진에 들어설 무렵에는 500명에 달하던 인력이 100명 안팎으로 확 줄어 있을 정도였다.

그래도 특별히 눈에 띄는 자들이 있었다.

블랙 스컬, 트와이스, 빙왕을 비롯한 S급 용병들은 제 몸값을 톡톡히 해 줬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의 시선은 다른 곳으로 몰렸다.

퍼퍼펑!

“마녀가 맞았다! 개 같은 년이 뒈졌다고!”

“어, 어떻게 맞힌 거지? 분명히 배리어가 쳐져 있었을 텐데?”

다른 얼굴로 변장해 정체를 숨긴 장웨이가 활시위를 당길 때마다 마녀들의 머리통은 수박처럼 터져 나갔고.

촤촤촥!

“다, 단칼에 다 썰어 버렸다고?”

“괴, 괴물……!”

검은 로브를 깊게 눌러써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자가 간단하게 손날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궤적의 선상에 있던 몬스터들은 그대로 썰려 나갔다.

이 둘이 있는 덕분에 피해는 더 이상 커지지 않았고, 마지막 영역인 앙계 재진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이미 용병들 사이에서는 두 사람을 경외시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S급 용병들은 대개 질시했지만, 다른 하급 용병들은 그렇지 않았다.

대부분 두 사람 덕분에 목숨을 부지한 입장인 데다가, 워낙에 실력 차가 명확해서 질투할 엄두도 나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문제는.

‘대체 누구지, 저 사람들?’

그들의 정체를 알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저만한 실력자들이라면 하이 랭커에서도 손꼽히는 이들일 텐데. 도저히 그들의 정체를 유추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건 아트란도 마찬가지였다.

‘장과 턴? 이딴 이름을 내세운 걸 보면 가명이 확실할 텐데.’

둘 모두 처음 고용할 때는 별다른 실력을 보여 주지 않아서 D랭크로 처리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여태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트란은 두 사람과 친분을 쌓고자, 몇 번씩 말을 걸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두 사람은 짧은 대답만 할 뿐. 길게 대화를 이어 나가지 않았다.

그래도 자신들이 할 일은 묵묵히 다하고 있으니.

아트란도 더 이상 두 사람을 붙잡아 두고 이야기를 나눌 화젯거리가 없었다.

“저 앞에서 레드 드래곤과 엘로힘이 전투를 치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척후를 나섰던 달그림자가 새로운 정보를 가져오면서,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레드 드래곤과 엘로힘?”

달그림자의 수장, 크레센트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보아하니 초도 탐과 광요 가문의 아이테르인 것 같았습니다.”

“으음.”

아트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레드 드래곤의 뒤통수를 노리는 게 목적이긴 했지만, 괜히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요새로 향하는 다른 길은 없습니까?”

“우회로를 개척할 수 있으면 두 집단을 피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만…….”

크레센트는 말끝을 살짝 흐렸다.

우회를 하면 그만큼 더 위험하단 뜻이겠지. 아트란은 슬쩍 ‘장’과 ‘턴’이 있는 곳을 봤다. 두 사람은 수레에 따로 떨어져 앉아 아무 이야기도 나누지 않고 있었다.

결국 아트란은 결정을 내리고 크레센트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럼 우회에 성공한다면 곧장 요새에 도착할 수 있습니까? 공략이 바로 가능하냐는 말입니다.”

“예. 가능합니다.”

“그럼 그럽시다. 탁본의 진본은 우리가 가져야지요.”

아트란의 두 눈이 흉흉하게 빛났다.

* * *

“듄, 이제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듄!”

“듄! 제발!”

브로켄 요새는 소란스러웠다.

마녀들의 얼굴에는 다급한 기색이 역력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진 거대 클랜들의 대대적인 공습에도 불구하고 얼마든지 녀석들을 막아 낼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팽배했다.

파우스트의 비석에서 얻은 갖가지 지식과 현자의 돌만 있다면. 8대 클랜에 밀리지 않을 전력을 가질 수 있다고, 아니, 능가하는 전력을 가질 것이라고 자부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방어는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었다.

갑자기 정체 모를 폭발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듄!”

요새에 남아 있던 마녀들은 절망에 빠진 얼굴로 비에라 듄을 붙잡았다. 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하지만 비에라 듄은 눈을 지그시 감고만 있을 뿐. 여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환자처럼 창백한 얼굴이 더 하얗게 보일 뿐이었다.

그럴수록 마녀들의 속은 더 깊게 타들어 갔다.

지금 전력이란 전력은 전부 요새 밖으로 나가 적들을 막고, 계속된 폭발로 죽어 나가는 중이었다.

이곳에 남은 인력은 하나같이 싸움과는 거리가 먼 학자들밖에 없었다.

이대로 남아 있는 요새마저 뚫린다면 그들은 정말 끝장이었다.

“시의 바다, 동문에 다다랐습니다!”

“하늬바람 조합의 용병들이 우회로를 이용해서 빠르게 다가오는 중입니다. 15분 후에 서문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트라팔가 클랜이 남문에……!”

“랭커 션이 출몰……!”

“엘로힘이 북문을 뚫기 일보 직전입니다! 배리어의 내구도가 다 했습니다! 듄! 제발 이제는 선택을……!”

수정구로 바깥 상황을 지켜보는 어린 마녀들의 보고가 계속될수록.

마녀들의 속이 타들어 갔다. 그래도 여전히 비에라 듄은 요지부 동이었다. 푹 뒤집어쓴 고깔모자 사이로 길게 내려온 녹색 머리카락만 잘게 떨릴 뿐이었다.

그러던 중, 안 그래도 출렁이는 호수에 집채만 한 바위를 떨어뜨리는 소식이 들려왔다.

“귀, 귀, 귀계 결진에 외, 외뿔부족 추, 출현!”

“뭐? 그들은 왜!”

“요계 상진이 무너졌……! 화, 화계 화진, 명계 수진 전부 부서졌습니다! 앙계 재진으로 도, 돌입!”

“그게 무슨 소리야? 아무리 망가졌어도 어떻게 결계가 그렇게 빨리 파괴될 수 있……?”

“무왕입니다! 무왕이 나타났어요!”

“……!”

“……!”

결국 아홉 왕까지 등장했다는 소식. 그것도 괴물 중 괴물이라 불리는 무왕이 나타났다는 소식은 그들의 정신을 아늑하게 만들었다.

‘망했다.’

그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무왕과 외뿔부족이 왜 나타났는지는 알 수 없다. 바깥일에는 전혀 무관심하다는 그들의 관심을 언제 끌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대로는 클랜이 더 이상 존속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이건 재앙이었다. 그들 앞에 떡하니 놓인.

그렇게 마녀들의 얼굴에는 패배감이 어렸다. 망연자실한 공기가 무겁게 깔렸다.

그때.

여태껏 눈을 감고 있던 비에라 듄이 눈을 떴다.

검은 동공 없이 흰자위로만 가득한 눈. 모든 마녀들의 수장이자, 위대한 어머니의 분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머니께서 말씀을 내려 주셨어요.”

그녀가 내뱉은 말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던 마녀들의 얼굴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위대한 어머니. 마녀들을 잉태했지만, 최근에는 계시를 내려 주지 않아 어디 가셨는지 걱정스러웠던 분이 되돌아오신 것이다. 위험한 딸들을 구하기 위해서.

“어, 어머니께서 무, 무슨 말씀을 하셨나요, 듄?”

누군가가 물었지만.

비에라 듄은 아무 대답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저들이 오기 전에 빨리 지하 실험실에 가야겠어요. 거기에 해결책이 있을 겁니다. 그러니. 다들 조금만 더 버텨 주세요.”

비에라 듄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렸다.

“곧 못난 딸들을 어루만져 주시고자, 어머니께서 이 땅에 나타나실 거예요.”

* * *

콰아앙!

이대로 산이 무너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폭발과 함께. 아홉 겹이나 쳐져 있던 배리어가 유리처럼 터져 나가고, 요 새의 북문도 한꺼번에 날아가 버렸다.

엘로힘이 드디어 가장 처음으로 요새를 뚫는 데 성공한 것이다.

먼지가 희뿌옇게 날리는 가운데.

아이온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돌입한다. 마녀들은 마주치는 대로 전부 사살하도록. 어차피 악마에게 몸을 파는 더러운 탕녀밖에는 안 되는 것들.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족속들이다. 단, 저들의 실험실과 서고는 놔둬라. 금지된 지식을 분류한 뒤, 전부 압수할 것이니.”

엘로힘의 플레이어들은 하나같이 차갑게 눈을 번뜩이면서 앞으로 튀어 나가기 시작했다. 감히 탕부들 따위가 여태 그들의 발목을 붙잡았던 것이니, 닥치는 대로 도륙을 낼 생각이었다. 모든 이들은 빛살처럼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멀리서 그들을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

‘굳이 고생할 필요가 없군.’

연우는 인근에 있는 나무에 기척을 숨긴 채 피식 웃음을 흘렸다.

마녀들을 닥치는 대로 사냥하면서 이동하던 길에 만나게 된 녀석들은 착실한 길라잡이 역할뿐만 아니라, 성문까지 뚫어 주며 그의 수고를 덜어 주었다.

참 고마운 녀석들이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선행을 쌓았으면 참 좋았을 텐데.

연우는 그런 시시껄렁한 생각을 하면서 인트레니안에서 비그리드를 뽑았다.

장난은 여기까지. 녀석들에게 고마운 건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에라 듄의 머리통까지 양보할 생각은 없었다.

‘일단 발목 정도는 붙잡아 둘까.’

연우는 권능을 잇달아 전개했다.

[용체 각성(3차)]

[여신의 성흔]

[흉신악살]

용의 피가 빠르게 돌면서 비늘이 피부 위로 잔뜩 올라왔다. 연우는 갖가지 버프로 더해진 마력을 비그리드로 쏟아부었다. 동시에 튀어나오는 마성을 제지하지 않고 풀었다.

[불의 파도]

[72선술- 열, 파, 참]

수직으로 내리긋는 비그리드를 따라, 검은 불길이 마침 앞으로 튀어 나가려던 엘로힘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우르르, 콰콰쾅!

콰콰콰-

효과는 대단했다.

엘로힘이 어떻게 손을 쓸 새도 없이, 검은 불길은 선두에 있던 엘로힘을 죄다 쓸어버리고, 나아가 아이온이 있던 곳까지 충격파를 뻗어 냈다.

여기에 부가 나타나 추가로 보조 마법을 잔뜩 걸어 주니.

폭발은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연쇄적으로 일어나면서 엘로힘을 몇 번이고 쓸어 내다가, 끝내 북쪽 성벽을 통째로 무너뜨려 그들의 머리 위로 와르르 쏟아지게까지 만들었다.

삽시간에 녀석들이 있던 자리는 아비규환이 되고 말았다.

“아아악!”

“대체 언제……!”

“살려 줘!”

천둥 벼락이 터지는 것처럼 계속된 열풍이며 후폭풍, 그리고 굉음이 이어지면서 그들은 도저히 정신을 차릴 겨를이 없었다.

피해가 얼마나 큰지. 자신이 얼마나 다쳤는지. 동료는 어디에 있는지. 또 어디서 다른 공격이 이어질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제 몸을 가누기가 급급해 섣불리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연우와 부의 콤비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위력이 대단했던 것이다.

그사이.

연우는 불의 날개를 한껏 키우면서 녀석들의 머리 위를 통과, 요새 안쪽으로 진입했다.

「지도. 를. 보여. 드리겠습니. 다.」

부는 여러 마녀들의 영혼을 쥐어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만든 요새의 지도를 도식화해, 연우의 시야 한쪽에다 띄웠다.

요새 내 건물 위치와 구조가 3D로 나타나고, 심지어 연우가 있는 위치는 푸른 점으로 표시되어 있어 알아보기가 아주 쉬웠다.

‘꼭 내비게이션 같군.’

연우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녹색으로 표시된 목적지, 아난타가 있는 지하 감옥의 지상 부분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움직임은 절대 마녀들에게 들키지 않았다.

근처에 있는 자들은 초감각으로 포착해 오러를 날려 사살하고, 소리나 기척은 조금도 내지 않았다.

몇 번이나 건물 모퉁이를 돌아 녹색의 지상부에 도착했을 때.

연우는 발 쪽으로 마력을 잔뜩 끌어모으면서 부에게 말했다.

‘부. 내가 감옥으로 향하는 대로, 너는 지하에 있는 것들을 모두 정리해.’

「알겠. 습니다.」

지하에는 감옥만 있는 게 아니었다. 지하는 지상의 요새보다 더 깊고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었고, 구획에 따라 갖가지 실험실이며 마법 서고, 심지어 재화나 보물이 보관된 창고도 있었다.

발푸르기스의 밤과 여러 마녀들이 수천 년 동안 모은 보물 창고인 것이다.

그리고 지하 7층의 던전에는 에메랄드 타블렛의 진본이 비밀리에 보관되어 있었다.

이미 현자의 돌을 완성한 연우에겐 크게 필요하지 않은 것이지만. 굳이 다른 곳에 줄 필요는 없다. 연우는 엘로힘이나 레드 드래곤 등이 도착하기 전에 저들이 원하는 것을 싹 다 쓸어 갈 생각이었다.

이미 브로켄 요새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부라면 충분히 가능할 테지.

곳곳에 가디언들이 배치되어 있는 것 같긴 했지만. 역시나 걱정은 하지 않았다. 여기에 오는 동안 현자의 돌을 몇 개씩이나 먹였다 보니, 부는 이미 강해질 대로 강해진 상태였다.

두 눈두덩이 사이에는 인페르노 사이트까지 켜졌으니. 마지막 한계만 벗어날 수 있다면 곧 엘더 리치로 승급까지 이룰 수 있을 터였다.

‘생전의 기억도 어느 정도 돌아왔을 텐데. 일이 끝나면 따로 물 어봐야겠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콰아앙!

연우는 발을 있는 힘껏 내리찍었다. 그러자 지면이 그대로 터져 나가면서 단번에 6층까지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구멍이 뚫렸다.

부가 그림자에서 떠나는 것을 느끼면서 연우는 그대로 지하 6층으로 떨어졌다.

그곳은 연우에게 데자뷰를 일으키게 하는 장소였다.

벽을 따라 수백 개의 유리관이 일렬로 놓여 있었다. 유리관 속에는 사람들이 보라색 액체에 잠겨 잠에 빠져 있었다. 현자의 돌의 색을 닮은 액체.

튜토리얼에서 아랑단이 현자의 돌을 만들기 위해 비밀리에 운영 하던 실험실과 똑같은 풍경이었다.

그리고 각 유리관은 기다란 파이프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중심 부로 향했으니.

그 속에.

아난타가 곤히 잠에 빠져 있었다.

마치 언젠가 찾아올 왕자를 기다리는 숲 속의 공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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