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마녀 사냥 (8)
솔직히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왜 비에라는 내게서 떠났던 걸까?
비에라 듄은 동생에게 독을 먹이고, 심장에 칼을 꽂았던 원수였다. 떠나기 직전까지, 사랑이라는 감정을 철저하게 이용하기만 했던 녀석.
때문에. 동생은 비에라 듄이 떠나고 난 뒤에도, 한참 동안 방황해야만 했다.
리언트와 바할은 그를 등지면서 얻은 것이 있었다. 각각 청화도와 레드 드래곤에서 높은 자리에 앉아, 아르티야에 있을 때보다 더한 명성과 권력을 떨쳤던 것이다.
하지만 비에라 듄은 전혀 그런 것이 없었다.
분명 발푸르기스의 밤의 수장이 되긴 했지만. 만약 그녀가 아르티야를 떠난다거나, 이중 소속이 된다고 해도 동생은 그러라며 고개를 끄덕여 줬을 터였다.
그만큼 동생은 연인을 믿었고, 그녀도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절대 배신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서로 오해가 쌓이거나, 싸운 적도 없었다.
분명 독을 먹이기 전까지만 해도. 칼을 찌르기 전까지만 해도. 서로가 서로를 보면서 웃고 있었으니까. 사랑한다고 속삭이고, 세상이 끝날 때까지 영원히 함께하자며 맹세했다. 그리고 용마안을 가진 동생의 눈은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였다.
그런데도 비에라 듄은 결국 동생을 등지고 말았다.
여전히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리고 동생과 사이에서 낳은 자식을 실험체로 쓰는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대체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비뚤어지게 만든 걸까.
아니면 원래 모난 사람이었던 것을, 여태 연기로 감쪽같이 속이고 있었던 걸까? 그렇다면 동생에게 말했던 달콤한 속삭임은 전부 거짓이었던 걸까?
결국 진실은 아무도 몰랐다. 비에라 듄밖에는.
그리고 연우 역시.
‘알 바 아니지.’
무슨 이유가 되었든지 간에. 동생을 등졌던 놈이었다.
동생이 눈을 감기 직전까지 괴로움에 몸부림치게 만들었던 녀석의 사정 따위 신경 쓸 이유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원수의 목을 자르고도, 연우의 눈에는 여전히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았다.
츠츠츠-
분리된 비에라 듄의 머리와 몸뚱이가 갑자기 연기처럼 흩어진 것이다.
‘역시.’
비에라 듄의 시그니처 스킬, 〈체부 환승〉.
정확하게 말하자면 마녀들이 말하는 위대한 어머니로부터 물려 받은 권능이었다.
비에라 듄은 최면과 세뇌 같이 정신 조작(Mind Control) 계통의 마법에 뛰어난 특성을 갖고 있었다.
위대한 어머니가 이것을 마음에 들어 하면서 내린 권능인 체부 환승은 ‘비에라 듄’이라는 에고 데이터(Ego Data)를 다른 육체로 고스란히 옮길 수 있게 했다.
쉽게 말해, 육체 갈아타기가 가능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도 횟수 제한이나 한계가 있기 마련이겠지만.
당장 위기를 빠져나가는 데는 이만한 것도 없었다.
그리고 연우가 특히 노리고 있는 스킬이기도 했다.
‘이건 반드시 강탈해야 해. 목숨을 여벌로 가질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니까.’
연우는 곧장 그림자를 보면서 소리쳤다.
“부!”
「위치. 를. 포착. 했습니다.」
부가 연결 고리로 좌표를 찍어 보냈다.
화아악!
연우는 불의 날개를 활짝 펼쳤다. 스킬의 한계 때문인지, 좌표가 가리키는 위치는 그리 멀지 않았다. 그곳으로 몸을 던지며 블링크를 전개했다.
쾅!
곧 연우와 비에라 듄이 있던 자리로 무너진 천장 잔해가 우수수 쏟아졌다.
* * *
“허억, 헉! 헉!”
비에라 듄은 눈을 뜨자마자 바닥에 주저앉으면서 크게 숨을 헐 떡였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식은땀이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성내 곳곳에 배치된 여러 육체 중 하나를 잃었을 뿐이라지만.
새로운 육체를 입는다고 해서 이전에 느낀 목이 잘려 나가는 통증이나 감각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아직까지 칼날의 감촉이 목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정작 비에라 듄을 미치게 만드는 건 따로 있었다.
‘그 눈…… 분명히……!’
그건 분명히 더 이상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눈이었다. 하지만. 왜 거기에 있었던 걸까? 무슨 이유로?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듄!”
“왜 그러십니까, 듄? 괜찮으십니까?”
비에라 듄의 머릿속을 모르는 마녀들은 갑작스런 체부 환승에 놀라 다급히 달려왔다.
이곳은 요새 한편에 위치한 키메라 창고였다.
계속된 성문 파괴와 적들의 침입에 추가로 키메라들을 투입시킬 예정이었는데. 갑작스레 체부 환승이 이뤄졌으니 마녀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미 본진이 적들에 의해 쑥대밭이 되었단 뜻이었으니까.
“……듄?”
그러다 마녀들은 비에라 듄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언제나 차분한 얼굴만 하면서 별다른 동요를 보여 주지 않던 사람이었는데.
비에라 듄은 처음으로 혼란스러운 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들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자꾸 중얼댔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녀석은 죽었어. 죽었다고! 내가 분명히 확인을……!”
“듄?”
그때, 초대 마녀 굴락이 조심스레 비에라 듄의 어깨를 짚었다. 그 순간, 비에라 듄의 머리가 그 쪽으로 홱 돌아갔다.
굴락은 자기도 모르게 움찔 놀라 주춤 물러서고 말았다.
흰자위만 남은 비에라 듄의 눈을 본 순간. 등골을 따라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금방이라도 비에라 듄이 자신을 잡아먹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비에라 듄은 굴락이 도망칠 수 없게 멱살을 붙잡으면서 자기 쪽으로 잡아당겼다. 흰자위 위로 핏대가 잔뜩 선 두 눈이 잔 뜩 일그러졌다.
“죽었지? 분명히 내 손으로 죽였다고! 그렇지?”
“무슨 말씀이신……!”
“그렇다고 말해!”
“예! 마, 맞습니다!”
“…….”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비에라 듄은 한참 동안 굴락을 노려본 뒤에야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힐 수 있었다.
“……죄송해요. 제가 너무 흥분을 하고 말았어요.”
굴락의 멱살을 풀어 주면서 식은땀으로 푹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머릿속은 이제 평상시 냉정을 되찾고 있었다.
‘그놈이 누구건 간에 중요한 건 아니야. 정체 따위야 붙잡아서 가면을 벗겨 보면 알 테니까. 하지만. 현자의 돌이 작동하지 않았어. 분명.’
아무리 기습이 벌어졌다고 해도, 자신이 이토록 안일하게 당할 수는 없었다.
그녀가 언제나 품에 간직하고 다니는 현자의 돌은 여태 발푸르기스의 밤이 생산한 것들 중 가장 뛰어났던 것. 영혼과 연결되어 있어 위험에 빠진다면 저절로 작동하게끔 되어 있었다.
때문에 비에라 듄은 설사 올포원이나 여름여왕이 온다고 해도 절대 현자의 돌을 깰 수 없을 거라고 자부했다.
하지만 목이 잘릴 때 분명히 현자의 돌은 전혀 작동을 하지 않았다. 마치 고장 난 시계처럼.
그렇다면 나올 수 있는 결론은 하나밖에 없었다.
‘가면 쓴 놈. 그놈이 흑막이야. 갑자기 이상한 탁본을 뿌려 대서 이따위 혼란을 만들어 낸…….’
그리고 현자의 돌에 대한 연구도 자신들보다 한참 앞서 나가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니 돌의 작동을 멈출 수 있었겠지.
‘설마 다른 마녀들도, 이것 때문에……?’
비에라 듄은 이를 악물었다. 어째서 방어선이 그토록 허망하게 무너졌는지를 알 것 같았다. 현자의 돌이 무용지물이 되어서야, 그들로서는 거대 클랜들을 도저히 상대할 수가 없었다.
‘일단 그놈을 잡아야 해.’
비에라 듄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녀석이 대체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왜 자신들을 노리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확실한 건 가장 먼저 가면인을 상대할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위대한 어머니를 깨우기 위해서는 아난타가 필요하지만. 정황상 아난타는 가면인에게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니 이러나저러나 놈을 제압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이 사실을 다른 거대 클랜들에 알린다면……!’
늑대를 내쫓기 위해 호랑이를 안마당으로 끌어들이는 격이 될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런저런 수단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비에라 듄은 키메라 창고에 있는 마녀들을 돌아보면서 방비 태 세를 갖추라고 말하려 했다.
그때.
“듄! 조심하십시오!”
놀란 눈을 한 굴락과 마녀들이 소리쳤다.
비에라 듄이 무슨 소리냐며 말을 하려는데.
퍼억!
갑자기 등에서부터 화끈한 느낌이 들더니 서늘한 칼날이 왼쪽 가슴을 뚫고 튀어나왔다.
비에라 듄은 비명 대신에 피가 섞인 가래를 토해 냈다. 폐부가 끊어졌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어딜 도망치려고?”
그리고 귓가에 들리는 목소리에 비에라 듄은 자기도 모르게 등골을 쭈뼛 세우고 말았다.
마치 네가 어디로 갈지 다 안다는 듯한 말투. 체부 환승을 알고 있다고? 이걸 아는 사람은 발푸르기스의 밤 내에서도 몇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알고 있다는 건, 역시나……!
스걱!
하지만 비에라 듄의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새로운 칼날이 그녀의 머리를 다시 날려 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의식이 끊어지기 직전. 뱅글뱅글 도는 시야에 잡힌 건, 검은 불길과 폭발하는 오러에 우수수 쓸려 나가는 마녀들과 키메라들의 모습이었다.
쾅!
“커헉!”
비에라 듄은 다른 곳에서 다시 눈을 뜨면서 좀 전에 내뱉지 못한 비명을 내뱉었다. 두 번이나 연속으로 목이 잘린 고통은 너무 끔찍하기만 했다.
아직 에고 데이터가 제대로 정착하지 않았는지, 시야가 뱅글뱅글 돌았다. 그녀가 있는 곳은 아무것도 없는 깜깜한 암실이었다.
하지만 비에라 듄은 제정신을 되찾기도 전에 다시 제 목을붙 잡아야만 했다.
이번에는 칼날이 목젖을 관통했다.
퍽!
“쿠르륵!”
이번에 시야가 끊어지기 직전에 본 것은. 어둠 사이로 불타오르는 한 쌍의 도깨비불이었다.
쾅!
비에라 듄의 죽음은 계속 길게 이어졌다.
그 뒤로도 몇 번씩이나.
스걱-
지하 깊숙한 곳에 위치한 방호 시설에서도.
“안 돼……!”
퍽!
전장에 나서 있는 어느 어린 마녀의 몸을 빌려서 눈을 떴을 때도.
“안 된다고!”
콰콰쾅!
끝없는 밤의 세계에서 가장 외곽에 위치한 숲 속에서도.
“제발!”
콰르르-
심지어 바깥으로 이어지는 게이트 근방에서 깨어나 탈출을 시도해도.
“제발 그만해애애애!”
비에라 듄이 체부 환승을 시도할 때마다, 연우는 귀신같이 쫓아와 목을 베고, 심장을 찌르고, 머리를 부쉈다.
그러다 적들의 공격으로 거의 무너지다시피 한 브로켄 요새의 가장 끄트머리에서, 비에라 듄은 작살에 꽂힌 물고기처럼 비그리드에 꽂힌 채로 퍼덕거렸다.
“제…… 발……! 제발……!”
비에라 듄은 계속 숨을 헐떡였다. 단단했던 그녀의 정신은 이미 반쯤 무너진 상태였다.
아무리 계속 되살아날 수 있다고 해도 죽음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연속으로 누적되는 것도 모자라, 악착같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쫓아오는 자가 있음을 알기에 공포는 극대화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비에라 듄은 자신의 장기인 마인드 컨트롤도 번번이 실패해야만 했다.
그녀가 자랑하는 정신 계통 마법은 쟁쟁했던 라이벌들을 모두 죽음으로 내몰 정도로 대단한 숙련도와 완성도를 자랑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저주: 최면’이 불발되었습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저주: 세뇌’가 불발되었습니다.]
[계속된 스킬의 실패로 반작용이 일어납니다.]
마인드 컨트롤은 연우에게 전혀 통하지 않았다.
냉혈.
정신 계통 마법에 있어서는 천적이나 다름없는 그만의 특성이, 스킬을 죄다 불발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때문에 비에라 듄은 스킬 실패로 인한 리플렉트와 패널티를 고스란히 감당해야만 했다.
에고 데이터에 손실이 가해지고, 정신과 육체 간에 괴리가 발생했다. 영혼이 붕괴되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일에 있어도 꿈쩍도 않는다는 마녀들의 수장은 공포에 단단히 절여진 상태가 되고 말았다.
“으으…… 아아아!”
하지만 녀석이 힘들어할수록.
연우는 더더욱 불쾌해져만 갔다. 가면 사이로 비치는 두 눈이 잔뜩 일그러졌다.
푸욱-
녀석을 찌르고 있던 비그리드가 더 깊숙하게 박히면서 지면에까지 꽂혔다. 비에라 듄은 이제 실핀에 꽂힌 나비처럼 퍼덕이지도 못했다.
“엄살 피우지 마.”
연우는 녀석을 보면서 으르렁거렸다.
“아난타는 너보다 훨씬 끔찍한 고통을 몇 번씩이나 겪었으니까. 세샤도, ‘녀석’도. 그들이 받았던 고통까지 전부 감당하려면 이 정도에서 무너져서는 안 되잖아? 안 그래?”
비에라 듄은 고개를 뒤로 홱 하고 돌렸다.
공포에 너무 극단적으로 내몰리다 보면 사람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악을 쓰거나, 모든 걸 포기하거나.
그녀는 전자였다.
“넌! 넌 대체 누구야!”
이미 여기서 되살아날 방법 따윈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영영 연우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비에라 듄은 악에 받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연우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잠시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러다 곧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만져 보고는 피식 웃고 말았다.
“아. 여태 이걸 벗지 않고 있었군. 이러니 별 재미가 없었지.”
천천히 가면을 벗었다.
딸칵-
그리고 드러나는 얼굴.
그것을 본 순간.
비에라 듄의 안색은 창백하게 질렸다. 두 눈이 잔뜩 커지고 말았다.
“……!”
그녀는 빳빳하게 굳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것은 또 다른 공포였다.
죽은 사람이 되살아왔다는 공포.
자신이 가면 사이로 보았던 눈은 착각이 아니었던 것이다.
연우는 비에라 듄의 투명한 흰자위에 비친 정우와 똑같은 얼굴을 마주하면서.
“부디 몇 번이고 되살아나라.”
차갑게 말했다.
“그때마다 몇 번이고 죽여 줄 테니까. 비에라.”
그 말과 함께.
연우는 허리춤에 있던 마장대검을 꺼내 비에라 듄에게 휘둘렀다.
촤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