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마녀 사냥 (10)
지상은 순식간에 혼란에 잠겼다.
“저, 저건 뭐야?”
“메, 메테오 스트라이크? 미친! 저게 여기서 왜 나와!”
단일 타격력으로는 탑 내 모든 마법 중에서 가장 큰 파괴력을 자랑한다는 주문.
용종마저도 한 번 전개하기 위해서는 드래곤 하트의 마력을 절반 이상이나 써야 한다는 마법이 등장한 순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기세 좋게 요새로 진격하던 플레이어들은 하나같이 제자리에 서서 두 눈을 부릅떠야만 했다.
지금 이 순간은 마녀도, 키메라도, 가디언도. 레드 드래곤이나 시의 바다, 엘로힘 어느 소속을 가릴 것이 없었다.
“피해라!”
“도망쳐! 전부!”
“이 미친 탕부 년들이! 다 같이 죽기라도 하자는 것이냐!”
개중에는 마녀들이 저지른 짓이라고 생각한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보복할 새도 없이 돌아서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충격의 범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하지만 그보다 그들의 머리를 뒤덮은 그림자가 커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게다가 결계도 없기에. 운석은 아주 손쉽게 요새 한가운데에 틀어박힐 수 있었다.
콰아앙!
콰콰콰, 쿠르르르-
요새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사라졌다.
지면은 깊이를 짐작할 수도 없을 만큼 아주 깊숙하게 파였고, 그 여파로 주변엔 모래 기둥이 하늘에 닿을 정도로 높게 치솟았다.
운석이 달궈 놓은 뜨거운 대기는 중심부에서 불어온 후폭풍과 함께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갔다.
모든 것이 사라졌다.
협곡의 허리가 통째로 절단 나고, 위에 있던 것들은 모두 쓸려나갔다.
가장 먼저 동쪽에 있던 시의 바다는 모래 폭풍에 휩쓸려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졌다. 마치 원래부터 그 자리에 없었다는 듯. 가장 베일에 쌓여 있다는 집단답게 퇴장하는 것도 가장 먼저였다.
그 다음 여파가 닿은 것은 서쪽이었다.
하늬바람 조합 소속의 용병단과 암살 집단들은 충격파도 충격파지만, 웬만한 사람 하나는 뼈째로 녹일 것 같은 고온 섞인 열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만 했다.
“얼음 장벽!”
“아이스 포트리스!”
“블리자드!”
빙왕이 있는 힘껏 양손 위로 냉기를 끌어 올리면서 바닥에다 내리찍었다.
삽시간에 지면이 얼어붙으면서 고슴도치처럼 얼음 가시가 위로 수도 없이 치솟았고, 서로 넝쿨처럼 뒤엉키다가 거대한 장벽을 만들었다.
한때, 철사자와 함께 용병계의 최강자라고 손꼽히다가, 젊은 시절의 무왕에게 꺾이면서부터 명성이 바닥에 곤두박질치긴 했지만.
그는 여전히 옛 명성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듯, 전력을 다해 마력을 얼음 장벽에 쏟아부었다.
다른 용병들은 그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마법이 가능한 마법사들은 빙왕을 보조해 버프를 걸어 주거나, 냉기를 실어 얼음 장벽을 보다 더 탄탄하게 만들었다.
콰콰쾅!
열풍이 실어 온 바위들이 수도 없이 방벽을 두들겨 댔다. 그럴 때마다 벽면을 따라 균열이 퍼지고, 다시 얼어붙기를 반복했다.
냉기 관련 스킬이나 마법이 없는 플레이어들은 일제히 오러를 격발해서 그런 바위들을 쳐 내는 데 몰두했다.
트와이스는 투척 무기를 잇달아 던져 바람의 방향을 바꿨고, 블랙 스컬은 이상한 벌레들을 마구 부리면서 열기를 먹어 치웠다.
특히 아트란이 눈여겨봤던 ‘장’과 ‘턴’은 화살을 쏘거나, 오러를 격발시키면서 위험한 파편들을 치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래도 이따금 날아온 눈먼 파편들이 불쑥 나타나기도 했으니.
“어, 어?”
“미친놈들아! 거기 막아아!”
“피, 피해!”
“아아악!”
“컥!”
달그림자 집단이 사각지대에서 날아온 파편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뒤늦게 발견해서 막으려 들었을 때에는 이미 바로 눈앞까지 다다라 어떻게 처분하기가 힘들었다.
원래는 요새의 가장 끄트머리에 있던 지붕 부분이었던 걸까.
가장 먼저 수장인 크레센트가 뾰족한 십자가에 몸뚱이가 박살 난 채 튕겨 나고, 뒤따라 날아온 바위가 다른 달그림자의 소속원 들을 덮쳤다. 그들은 시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피떡이 되어 흩어졌다.
쿠쿠쿵!
문제는 바로 그 뒤였다. 한쪽이 허물어지면서, 한순간 그쪽으로 날아오는 파편들을 막을 손이 부족해진 것이다.
빈자리를 메우기도 전에 재차 파편들이 연속으로 날아왔다. 거기다 열풍까지 들이닥쳤으니.
아트란이 비싼 값을 주고 모셔 왔던 철사자단의 3부대가 갈려 나가고, 뒤이어 다른 용병들은 고열에 줄줄이 녹아 비명만 지르다가 쓰러졌다.
랭커?
S급 용병?
거대한 재앙 앞에서 그딴 것은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저마다 자기 목숨을 부지하기에도 급급했다.
지옥.
말로만 듣던 지옥이 있다면 바로 이곳을 말하는 게 아닐까.
“제기라아알!”
아트란은 두 눈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로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 소리마저도 곧 날아온 파편에 가려져 사라지고 말았다.
* * *
비슷한 광경은 다른 곳에서도 똑같이 이뤄지고 있었다.
“으아아아! 레드 드래고오오온!”
아이온은 피투성이가 된 채로 비명을 질렀다. 비록 그 소리마저도 제대로 울리지 않았지만.
갑작스럽게 검은 불길이 일행들의 머리 위에 떨어진 뒤로. 아이온은 너무 큰 피해에 울분을 토해 내야만 했다.
그리고 이런 재앙을 불러들인 레드 드래곤과 여름여왕을 저주했다.
그의 상식선에서, 감히 엘로힘에게 이런 해코지를 할 수 있는 곳은 그들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연우가 알았다면 뜻하지 않은 분쟁이라며 웃었을 테지만.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아이온은 도저히 이 끓는 속을 달랠 길이 없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겨우겨우 전열을 가다듬어 진격을 하려는 순간, 새로운 재앙과 마주쳤다는 것이었으니.
부상을 수습하던 자들이 그대로 쓸려 나갔다. 아이온을 따르는 가신들이며 충복들, 그리고 엘로힘이 자랑하는 의원들 몇 명까지.
아이온은 어떻게든 그들을 붙잡고 싶었지만, 곳곳에 설치해 뒀던 와드가 제멋대로 움직여 시야가 뱅글뱅글 돌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을 지르는 수밖에는.
* * *
남문은 사정이 더 처절했다.
공략을 시도하던 마탑 및 여러 랭커들은 협업은커녕 자기 살 길만 찾아 움직이다가, 곧 소리도 없이 거센 열풍에 파묻혀 사라졌다.
* * *
요새 곳곳에서 플레이어들을 혼란으로 몰아넣던 재앙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콰콰콰콰-
휘이이!
떠밀려 났던 공기가 기압 차이로 인해 다시 안쪽으로 몰렸다. 폭풍이 제자리를 쉴 새 없이 맴돌면서 그나마 남아 있던 것들도 계속 갈아 댔다.
끝없는 밤의 세계는 그야말로 폭발과 고열, 먼지 구름으로 가득한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연우는 불의 날개를 활짝 펼친 채, 아주 드높은 상공에서 이 수라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메테오 스트라이크가 작렬할 때 즈음에 블링크를 잇달아 전개해 사정권에서 훨씬 멀리 달아났던 것이다.
‘생각보다 훨씬 잘 통했어.’
거대 클랜들을 브로켄 요새로 끌어모으고, 킨드레드까지 나타났을 때 메테오 스트라이크를 처박는다는 계획.
처음 이 계획을 이야기 했을 때, 일행들은 하나같이 ‘미쳤다’고 말했다.
보통 외우주는 여러 결계와 방호 마법으로 보호되기 마련. 이것을 전부 해제하고 운석을 갖다 처박는다는 발상이 말도 안 되는 짓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만약 그것이 가능했다면. 그동안 여러 클랜들에게 팔린 외우주들이 똑같은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을 테니까.
하지만 연우는 브라함, 부와 여러 논의 끝에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발푸르기스의 밤은 분명 현자의 돌을 맹신한 채로 단단히 무장을 시도했을 테니, 이것을 역으로 이용하려 한 것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조건이, 바로 거대 클랜들을 끌어들이면서 상황을 혼전으로 몰아넣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야 몰래 침투를 해서 아난타의 행방을 알아내고, 방호 시설을 해킹해서 운석을 불러올 수 있을 테니까.
이미 현자의 돌에 있어서는 마녀들이 따라잡을 수도 없을 만큼, 깊은 지식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결과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동서남북 어디를 돌아봐도 멀쩡한 곳은 하나도 없었다. 간간히 충격파에서 겨우 살아남은 자들이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들도 사정이 좋은 건 아니었다.
운석이 처박힌 중앙은 볼 필요도 없었다.
‘수집된 망령들도 질적으로 꽤 좋은 것들이고.’
연우는 컬렉션에 있는 망령들을 보면서 괴이와 샤논 등이 참 좋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모든 게 만족스러웠지만.
아쉬운 점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여름여왕은 여기에 없나?’
마독에 중독되어 다 죽어가는 중인 그녀라면 이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몸 상태가 예상보다 더 좋질 않은 모양이었다.
‘어차피 운석에 맞아 죽나, 마독에 시름시름 앓다 죽나 똑같을 테니.’
연우는 피식 웃음을 흘리면서 불의 날개를 접어 자신이 원래 있던 곳으로 천천히 낙하했다.
때마침 지상에서는 혼란이 어느 정도 가라앉고 있었다.
요새는 이미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대신에 그 자리에는 깊은 구덩이와 부서진 바위 조각들만 가득한 폐허가 되어 있었다.
탁!
연우는 킨드레드와 비에라 듄의 시체를 찾고자 용마안을 활짝 열었다. 비에라 듄은 아직 체부 환승을 하지 않고 있었다. 요새가 통째로 날아갔으니 남아 있던 다른 육체들도 전부 날아간 모양이었다.
바로 그때.
“카이이인!”
무너진 폐허 속에서. 킨드레드가 낙석을 밀어내며 불쑥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녀석은 마군의 두 번째 주교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꼬락서니가 좋질 않았다.
마령과 72선술을 잇달아 전개하면서 겨우겨우 부지한 목숨. 하지만 팔다리가 모두 부러지고, 먼지를 뒤집어쓴 채 피를 토하는 모습은 금방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연우를 노려보는 그의 눈에는 힘이 빠지지 않았다.
메테오 스트라이크가 아무리 단일 타격력으로는 최강으로 손꼽히는 마법이라지만. 대인(對人)이 아닌 대물(對物) 마법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킨드레드는 그런 곳에서 제 몸을 하나 빼내기엔 충분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다만, 예상치 못한 운석의 등장 때문에 이런 꼴이 되었을 뿐. 이미 마령도 제대로 이뤄졌는지, 망가진 신체는 한눈에도 확연히 보일 만큼 빠른 속도로 복구가 되고 있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연우를 찢어 죽이겠다는 듯, 두 눈을 활활 불태웠다.
그를 둘러싼 마기가 안개처럼 퍼져 나가면서 주변의 농담(濃淡)도 서서히 짙어지고 있었다. 이리저리 얽힌 마기가 악귀의 형상을 뗬다.
〈마령〉
〈72선술 - 흉〉
화아악-
킨드레드는 분노를 토해 내면서 곧장 연우에게 달려들 태세였다. 마기가 태풍처럼 휘몰아쳤다. 먼지 구름이 쓸려 나가면서 해일처럼 엄습했다.
하지만.
“그것도 좋지.”
연우는 그런 녀석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명백한 비웃음. 각성이나 권능도 발휘하지 않은 채, 팔짱을 끼는 여유까지 보였다.
킨드레드는 그 모습에서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받았다. 처음 메테오 스트라이크를 맞았을 때와 똑같은 위기감.
“뭐?”
“메테오 스트라이크. 설마 한 발만 준비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
“잘 막아 봐.”
킨드레드는 재빨리 뒤를 돌아봤다. 처음처럼 상공에서 내려오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지만. 소환 마법진은 바로 눈앞에서 열려 있었다.
“카이이인!”
킨드레드는 단숨에 머리를 덮는 그림자를 보면서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브로켄 요새를 박살 낸 운석에 비하면 작았지만, 그래도 장정 십여 명은 쉽게 덮을 수 있는 크기였다.
콰앙!
킨드레드는 주먹을 거칠게 휘둘러서 운석을 박살 냈다. ‘빙’과 ‘시’가 합쳐진 음양합벽. 하지만 아직 몸이 다 낫질 않아 위력은 원래의 것보다 현저히 낮았다.
때문에 충격파도 모두 상쇄하지 못해 킨드레드는 실 끊어진 연체럼 단번에 튕겨 나고 말았다.
“잘 막는군. 그럼 그렇게 계속 더 막아 봐.”
연우는 그런 녀석을 보면서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킨드레드 주변으로 수십 개의 마법진이 일제히 열리면서 크고 작은 운석을 쉴 새 없이 토해 냈다.
쾅! 콰앙!
콰콰쾅!
대가는 결계의 축을 이루던 4개의 푸른색 크리스탈들이었다. 비록 3개는 현자의 돌들과 함께 초기 운석을 소환하기 위해서 써 버렸지만, 작은 운석만 소환한다면 남은 1개로도 충분했다.
여기에 부가 무면목 법서로 포문을 열고, 연우도 룬 마법을 바탕으로 한 악마술을 얹었으니.
화력은 이미 두려울 게 없었다. 거기다 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집중 포화. 아무리 킨드레드라고 해도 부상을 입은 몸으로는 전부 당해 낼 수 없었다.
콰르릉!
콰콰콰콰-
쿠르르-
결국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마법 포격이 전부 끝났을 때.
새카맣게 그을린 구덩이 위에는 만신창이가 된 킨드레드가 남아 있었다.
한쪽 무릎을 바닥에 찍은 채, 몸뚱이가 화상과 구멍으로 가득했다. 얼굴도 죄다 부서져 하나 남은 눈으로 연우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망가진 그의 모습은 더 이상 역귀라는 명성에 어울리지 않았다.
“카, 인……!”
“용케 잘도 버티는군.”
“카인!”
“미안하지만.”
찰칵-
“아직 한 발 남았다.”
연우의 머리 위로 마지막 포문이 열렸다.
“카이이이이이인!”
콰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