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여름여왕 (6)
[얄타바오 금괴]
분류: 잡화
등급: A+
설명: 아주 오래전, 신비 상인 얄타바오가 제조했다고 알려진 금괴. 보통 금괴보다 훨씬 순도가 높으며, 마력 전도율이 높아 아티팩트의 가공 물품으로도 인기가 좋다.
용을 때려잡자면서 이걸 어따 쓰려고?
마성은 그렇게 소리를 치고 싶었다. 방금 전까지 의기양양하게, 마치 흑막에서 일을 꾸미는 악당처럼 음산하게 웃어 대던 마성은 황당한 나머지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녀석이 어떻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연우는 똑같은 보상을 계속 선택했다.
[보상으로 ‘얄타바오 금괴’를 선택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얄타바오 금괴’를 선택하셨습니다.]
……
얄타바오 금괴.
탑에서 통용되는 여러 금괴 중에서도 가장 순도가 높아, 가치도 크다고 알려진 물건이었다. 신비 상인이 제조했기 때문에 지금은 조합들 사이에서 큰 단위의 화폐로 통용되기도 했다.
그래서 분명 쉽게 구하지 못할 희귀한 물품인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레드 드래곤이 거창하게 내놓은 퀘스트의 보상으로 받기엔 한없이 부족했다.
봉황의 알이나 프로메테우스의 횃불 같은 거창한 것들을 두고 이런 것이라니. 한 번이라면 모를까, 5번 모두 똑같은 것만 골라 대자 마성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뭘 하는 짓이냐! 대체!』
“재미난 짓.”
연우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확신할 수 있었다. 마성이 자신의 또 다른 인격이라지만, 자신의 생각은 읽지 못한다. 지금 자신이 하는 행동의 의도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을 보면 분명했다.
마성이 예상하지 못할 정도의 방법이라면, 적에게는 더 확실하게 먹힐 게 틀림없었다.
『……그래. 네가 어련히 알아서 잘할까. 기대해 보는 것도 좋겠지. 저 용. 꼭 네 손으로 흡수해야 한다.』
마성은 못마땅한 투로 중얼거리다가, 곧 입맛 다시는 소리를 내면서 조용히 사라졌다.
근원이 악마이다 보니 녀석은 벌써부터 여름여왕이 어떤 맛일지 잔뜩 기대하는 중이었다. 그것도 탑에 마지막으로 남은 용. 당연히 별미 중에 별미일 게 분명했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하지는 않겠지만.’
연우는 마성에게 비웃음을 던져 주고, 얄타바오 금괴를 모두 챙겨 블링크를 전개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금괴로는 여름여왕을 때려죽일 수 없었다.
그가 나타난 곳은 초감각으로 미리 위치를 파악해 뒀던 곳. 전장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장소였다.
“무, 뭐야! 이거!”
아트란은 갑자기 눈앞에 불쑥 연우가 나타나자 기겁을 해 댔다.
옆에서 그를 보호하고 있던 빙왕과 트와이스가 반사적으로 무기를 뽑아 그쪽으로 휘두르려다가, 보이지 않는 장막에 부딪쳐 옆으로 비껴 났다. 그림자 속에 있던 부가 전개한 배리어였다.
순간, 빙왕과 트와이스의 눈이 살짝 커졌다. 급하게 휘두르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쉽게 가로막힐 만한 힘이 아니었을 텐데. 둘의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같은 단어가 스쳤다.
‘위험.’
하지만 섣불리 녀석에게 덤비지는 않았다. 처음 본 상대였지만. 정체가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본 덕분이었다.
까만 가면을 쓴 플레이어 중에서 이만한 실력자라면 한 명밖에 없었다. 독식자였다.
“당신, 여길 어떻게……?”
아트란은 혹시 레드 드래곤 측에서 자객이라도 보냈나 싶어 잔뜩 겁을 먹고 ‘턴’의 뒤로 숨었다가, 곧 연우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랜만이군.”
그러다 연우가 건넨 인사에, 아트란은 눈을 더 크게 떴다가, 이내 가늘게 좁혔다.
“그랬군. 당신, 당신이었어! 젠장! 그렇게 된 거였군!”
아트란은 연우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단번에 앞뒤 정황을 모두 눈치채고 말았다.
연우가 피식 웃었다.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빠르군.”
“원래 내 일이 이거거든? 젠장! 플레이어에게 또 사기를 맞다니!”
아트란은 욕설을 내뱉었다. 원래 타인에게는 언제나 존대를 하는 것이 그의 철칙이었지만. 연우를 보고 나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그럴 생각도 없어졌다.
난데없이 나타난 연우. 어디선가 들어 본 적 있는 목소리. 익숙하다 싶은 태도. 바보가 아니고서야 눈치채지 못할 수가 없었다.
튜토리얼에서도 한 번 된통 뜯어먹혀서 이를 바득바득 갈았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그를 낭떠러지로 몰아넣기까지 했다.
“여긴 또 뭐 하러 왔나? 날 농락이라도 하러 왔나? 아니면 파산까지 해 버린 상인 구경?”
빙왕과 트와이스는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으로 아트란과 연우를 번갈아 봤다.
두 사람이 어떤 사이인지는 알 수 없어도, 아트란이 일방적으로 연우를 적대한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그들이 아는 아트란은 절대 이렇게 쉽게 포커페이스가 무너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턴’은 뽑았던 검을 도로 검집 안쪽으로 밀어 넣으면서 옆으로 비껴 섰다. 그래도 임무에 충실하려는 듯, 눈으로는 연우를 끊임없이 관찰했다.
그 눈빛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어떻게 보면 호승심이 들끓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우리는 이따가 이야기합시다. 녹턴. 아니, 이럴 때는 사형이라고 해야 하나?』
“…….”
‘턴’. 검무신에 이어 무왕의 두 번째 제자이기도 한 그는 연우를 살짝 노려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음대로 하라는 뜻.
연우는 그런 녹턴을 묘한 눈길로 바라봤다. 무왕의 곁은 자신의 길이 아니라며 훌쩍 떠났다던 두 번째 제자. 그는 21층, 그림자도 장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였다.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지만.
게다가 아트란 옆에는 빙왕까지 있었다. 애송이 시절의 무왕에게 패배하고, 속세로부터 등을 졌다던 용병이 여기에 있을 줄이야. 트와이스라는 용병도 빙왕만큼은 아니지만 용병계에서는 전설로 통하는 사람이었다.
이런 실력자들을 대거 고용했을 줄이야.
아무리 돈을 많이 뿌린다고 해도, 최상급 용병들은 자존심이 강한 만큼 페이뿐만 아니라 구미가 당길 명분도 만들어 줘야 했다.
모르긴 몰라도, 여기서 죽은 다른 용병들도 꽤 몸값이 높은 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아트란이 수완이 뛰어난 건 사실이었다. 하긴, 탁본 몇 개를 가지고 이렇게 판을 키워 줄 정도였으니. 사실 처음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역시 잘 찾아왔어.’
연우는 아트란을 빤히 쳐다봤다. 아트란은 뭔가 또 코가 꿰일 것 같다는 느낌에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뭐? 또 뭐?”
“상점창을 열 수 있는 권한, 아직 있지? 거래를 하고 싶은데.”
상점창. 신비 상인들에게만 허락되는 시스템으로, 조합과 직통으로 연결이 되었다. 그리고 상인의 계급이 높을수록 취급할 수 있는 물품도 다양했다.
아트란이 나락으로 떨어졌어도 아직 계급은 임원급이었기에 하늬바람 조합에서 취급하는 대부분의 물건 거래가 가능했다.
“거래는 무슨! 네놈이 여태 했던 짓을 생각해 봐! 너와 엮여서 좋을 게 없었……!”
“이거면 꽤 좋은 거래가 될 텐데.”
연우는 얄타바오 금괴를 꺼내 내밀었다.
흠칫.
아트란이 몸을 떨었다. 얄타바오 금괴는 신비 상인들이라면 아주 환장하는 물건이었다.
값어치가 떨어질 일이 절대 없고, 오히려 사재기에 열을 올리는 수집상들에 의해 품귀 현상까지 일어나 값이 꾸준히 오르고 있을 정도였다.
저걸로 거래를 했을 때, 거래 수수료로 챙길 수 있는 이문. 머릿 속 계산기가 빠른 속도로 돌아갔다. 험. 험. 아트란은 경계를 조금 풀고 헛기침을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걸로는 안 될……!”
하지만 연우가 5개의 금괴를 내놓는 순간.
“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사랑합니다, 고객님!”
아트란은 재빨리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바짝 숙였다. 5개의 얄타바오 금괴. 저 정도면 파산 뒤에 재기를 노릴 수 있을 만한 액수였다.
“헤헤헤. 그래서 우리 사랑하는 고객님, 따로 찾으시는 물건이라도 있으신지요? 저희 하늬바람 조합은 2천년에 달하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으로서, 그 정도의 가격대라면 다른 곳에서는 절대 취급하지 못할 귀한 상품들이 많습니다. 한번 부티크를 살펴보시겠습니까?”
파리처럼 양손을 비비면서 영혼이라도 팔 것 같은 모습. 빙왕과 트와이스, 녹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면서도 연우가 가지고 있는 금괴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 짐작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레드 드래곤 퀘스트. 거기서 받은 보상으로 대체 뭘 하려는 것일까.
독식자가 무왕의 제자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 레드 드래곤의 보상으로 레드 드래곤을 훼방 놓으려는 그의 발상이 참 대단하다 싶었다. 그리고 그들의 머릿속엔 똑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 스승에 그 제자로군.’
연우는 그런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트란에게 말했다.
“드래곤 킬러를 있는 재고만큼 전부 구매하고 싶은데.”
“……!”
“……!”
“하하하! 그렇군! 그런 수가 있었어!”
트와이스와 녹턴은 놀란 눈빛이 되었고, 빙왕이 박수를 치면서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드래곤 킬러. 달리 용살창(龍役槍)이라고도 불리는 랜스.
6미터가 넘는 크기와 수백 킬로그램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무게. 그러면서도 굵기는 평범한 성인 여성의 팔뚝만큼 얇은 창이었다.
때문에 드래곤 킬러는 충분한 속도만 실리면 엄청난 관통력을 자랑한다. 게다가 사용 방법에 따라서는 수십 수백 갈래로 쪼개지도록 되어 있어서, 관통한 이후 일대를 초토화시키는 데에도 큰 효과가 있었다.
이름처럼 드래곤 킬러는 원래 용을 잡기 위해 고안된 무기였다.
아주 오래 전, 여름여왕에 원한을 품고 있던 사람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어 탄생시켰지만. 끝내 여름여왕에게 발각되어 조직은 무너지고, 무기와 제조법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 중 소량은 암시장이나 조합으로 흘러 들어가 암암리에 유통되었으니. 연우는 바로 이런 드래곤 킬러를 요구한 것이다.
‘이거 어쩌면, 잘 이용하면……!’
아트란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하늬바람 조합은 다른 조합에 비해서 훨씬 많은 드래곤 킬러를 보유하고 있었다.
보유량은 전체 유통량의 80% 정도. 당시에 값어치가 천정부지로 오를 거란 믿음을 갖고 닥치는 대로 구매를 해 놨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하늬바람 조합은 곧 그런 선택을 후회하고 말았다.
분명 드래곤 킬러는 가치가 뛰어났지만, 사용법도 그만큼 까다로웠다. 무겁고, 잘 부서진다. 1회용이란 뜻이었다. 어느 누가 그만한 가격에, 한 번밖에 쓰지 못할 물건을 쉽게 구매하려 들까.
결국 드래곤 킬러는 창고 하나를 독식한 채, 먼지만 쌓이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런 악성 재고를 처분하는 대가로 중간 수수료를 많이 남긴다면?
‘심봤다!’
아트란은 목젖까지 치민 함성을 억지로 꾹 눌러야 했다. 이럴 때는 절대 크게 티를 내면 안 된다. 그래서는 가격을 후려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헛기침을 하면서 연우와 눈이 마주친 순간.
아트란은 한숨을 내뱉어야 했다. 가면 속에 있는 연우의 눈이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것 같냐는 눈빛.
드래곤 킬러가 미운 오리 새끼 신세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하긴. 신비 상인을 후려치는 놈이 괜히 이걸 언급했을까. 모르긴 몰라도, 상인들보다 더 시세를 잘 파악하고 있을 것 같았다.
여기서 호객은 자신이었다.
“헤헤헤. 역시! 역시나 고객님이십니다! 혜안이 아주 대단하시군요. 아주 잘 생각하셨습니다, 고객님. 저희 하늬바람 조합이 가지고 있는 드래곤 킬러야말로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어느 드래곤 킬러보다 관리가 잘되어 있고, 성능도 뛰어나답니다. 다만…….”
하지만 그렇다고 시도조차 해 보지 않을 수는 없는 법. 아트란은 뒷말을 약간 흐리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이 액수로는 현재 재고의 3할 만큼만 사실 수 있을…….”
“싫으면 다른 상인을 찾아가지.”
아트란은 미련 없이 돌아서는 연우의 팔을 붙잡았다.
“아고고! 헤헤헤헤. 왜 이러십니까, 고객님? 장사 하루 이틀 해 보시는 것도 아니면서. 고객님과 제 사이가 어디 보통 사입니까? 왜 이리 성격이 급하십니까. 말은 끝까지 들어 보셔야죠. 당연히, 당연히 원래는 그렇지만! 제가! 특별히! 가격 할인을 해 드리려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연우는 다급하게 말이 빨라지는 아트란을 보면서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럼 가능한 양은?”
“절반보다 조금…….”
연우는 다시 돌아섰다.
“아고고! 당연히 그보다 더 많이 해 드려야죠!”
“7할.”
“흐이익! 그, 그건 안 됩니다! 그래도 여태 보관비 같은 게 있어서 저희가 남는 게 없……!”
“8할.”
“히이이익! 알겠습니다! 하겠습니다! 할 테니까……!”
“9할.”
“넵! 거래되었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번 연우를 슬쩍 찔러보던 아트란은 도리어 된통 바가지를 뒤집어 쓴 뒤에야 거래를 낙찰할 수 있었다.
[‘얄타바오 금괴’ x5를 지불하여 ‘드래곤 킬러’×31을 구매하였습니다.]
연우의 손에 쥐어져 있던 얄타바오 금괴가 모두 사라지고, 대신 발치에 6미터에 달하는 장창 30여 자루가 나타났다.
하지만 연우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아직 재고가 남아 있지?”
“고객님, 아무리 재고라 해도 그것까지는 힘들……!”
“남은 재고뿐만 아니라, 암시장에서 유통되고 있거나 다른 조합에 있는 드래곤 킬러까지 전부 구입하지. 대리 구매 수수료는 알아서 챙기고.”
“드래곤 킬러를 전부 다 말씀이십니까?”
“안 되나?”
“되지요! 되고말고요! 아주 탑에 있는 것뿐만 아니라, 외부에 나가 있는 물품들까지 싹 끌어모아 오겠습니다!”
“그 외에도 추가로 구매하고 싶은 것들이 있는데.”
연우는 생각해 뒀던 것들을 하나둘씩 이야기했다. 그런데 품목을 들을 때마다 아트란의 표정이 또 이상하게 변했다.
하나같이 드래곤 킬러만큼이나 악성 재고로 남아 있는 것들. 그런 주제에 원가는 비싸서 울며 겨자 먹기로 보관해야 했던 골칫 거리였다.
왜 이런 걸 연우가 필요로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연우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말했다.
단일 거래로 치기엔 어마어마한 거래량이라, 아트란은 입꼬리가 귓가에 걸릴 것 같았다.
이번 거래가 무사히 성사되고 나면 그래도 최소한 조합 내에서 자리는 보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재기할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단 뜻이었다.
이제 아트란의 눈에 비치는 연우의 모습은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악마가 아닌, 하늘에서부터 동아줄과 함께 내려온 천사로 보일 정도였다.
“……이렇게 인데. 가능하나?”
“가능하고 말굽쇼. 안 되더라도 발에 땀띠가 나도록 뛰어야 합죠.”
이제 아트란은 간이고 쓸개고 다 빼서 내어 줄 기세였다.
“최대한 빨리 부탁하지.”
“알겠습니다요. 저기, 그런데…….”
“문제라도 있나?”
“대금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
연우가 피식 웃었다.
“왜? 떼어먹기라도 할까 봐?”
아트란은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아이고! 그럴 리가 있습니까요? 저야 고객님! 아니, 쩐주님을 믿고 말굽쇼! 헤헤헤. 하지만 아시다시피 요즘 세상사 인심이 팍팍해지고 경제 사정이 다들 어려워지다 보니…… 헤헤헤.”
“당연히 줘야지.”
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손을 내미는 아트란의 두 눈이 기대로 잔뜩 부풀어 올랐다.
대금을 무엇으로 지급할까? 똑같이 얄타바오 금괴? 공적치? 아니면 외뿔부족에서 발행한 채권? 무엇이라도 좋았다. 전부 시장에서 신뢰도 있는 것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연우는 아트란의 기대를 무참하게 박살 내 버렸다.
“외상.”
“……예?”
“외상으로 달아 놓으라고.”
“……!”
순간, 아트란의 눈에 연우는 다시 자신의 뒷덜미를 잡아 입에다 넣으려는 악마로 비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