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성장 (7)
그런 모습을 보면서.
대장로는 의외라는 듯 살짝 눈을 크게 떴다. 언제나 자신밖에 모르고, 뻣뻣하기만 하던 왕자가 머리를 숙였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이 아이는 알고 있을까. 무엇이 그를 이렇게 절박하게 만든 것일까.
사실 대장로는 말과 다르게 평소 판트를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판트더러 우둔하다고 했지만, 사실 그건 너무 솔직하고 직선적인 성격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
사실 그는 사리 분별이 탁월하고 판단 능력이 뛰어났다. 애초에 자격이 없었다면 수많은 형제들 중에서 왕 후보군으로 꼽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약하다고 한 것도 마찬가지. 사실 비교 대상인 무왕과 대장로가 일족 내에서도 천재라 불릴 만큼 뛰어났을 뿐. 판트도 사실 수재였다. 그 나이대에 그만한 무위를 가진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조롱하고 기를 누른 이유는 단 하나.
인내심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무공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인내심이었다. 성장이 가로막혔을 때, 벽에 부딪쳤을 때, 패배를 겪었을 때, 그것을 꾹 참아 내면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어야만 했다.
그러지 못하고 화풀이를 하고, 힘들다며 도망쳐 버린다면. 다시는 그 위로 올라갈 수 없었다.
특히 혈뢰 같은 고차원적인 절학은 더더욱 그랬다.
대장로가 만든 무공서이니만큼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관념들이 많이 나오고, 여기에 따라 깊은 참오를 필요로 했다.
그런데 인내심과 참을성이 없다면 물려줘 봤자 빛 좋은 개살구밖에 되지 않는다.
문제는 여태 대장로가 봤던 판트는 판단력은 좋아도, 너무 급한 성격 때문에 대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차분한 성정을 가진 대장로로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제법 많이 달라졌단 말이지.’
대장로는 눈을 빛내면서 판트를 가만히 관찰했다. 원래대로라면 집어치우라고 성을 내면서 박차고 나가거나, 자리에 드러누워 생떼를 부려 댈 녀석이건만. 여전히 고개를 숙인 자세를 풀지 않고 있었다.
대장로는 꽤 긴 시간 동안 아무 말도 않았다. 단순히 판트 녀석이 잔머리를 굴리는 건지, 아니면 진짜 변한 건지 확인을 해 볼 참이었다.
그리고.
판트는 긴 침묵 속에서도 일절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는 그만큼 절실하게 혈뢰를 필요로 했다.
단순히 연우에 대한 열등감과 승부욕, 호승심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를 가슴 깊이 동경하고 있는 것도 그대로였고, 이빨이 되어 주겠다면서 큰소리쳤던 것도 진심이었다.
연우란 존재는. 이미 판트에게 있어 절대 떼려야 뗄 수 없는 지기였다.
그런 복합적인 감정들이 이리저리 뒤섞이면서 도출한 결론이 딱 한 가지일 뿐이었다.
‘힘.’
판트는 이를 악물었다.
‘힘을 얻어야 해.’
강해지라고 말했던 연우의 말처럼. 판트는 이대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에도라도 그와 같은 생각이었다.
다만, 에도라가 실전에서 힘을 쌓겠다는 판단으로 층계를 오르겠다고 한 것에 비해, 판트는 더 강렬하고 파괴적인 힘을 필요로 했다.
전장에서 대장로가 부리던 혈뢰를 절대 잊을 수가 없었다. 눈에 각인된 위엄은. 그가 그토록 바라던 모습이었다.
그래서 대장로가 자신을 내친다고 하더라도, 절대 자세를 풀지 않을 생각이었다. 자존심? 자부심? 그딴 게 무엇이 중요하단 말인가. 그런 것도 힘이 있는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거였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흐르고.
“하.”
대장로는 못 말리겠다는 듯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판트는 자신이 기회를 붙잡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면서도 대장로 성격상 쉽지 않을 거란 예감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좋다. 이렇게까지 고집을 피운다면 어쩔 수 없지. 단, 증명해라.”
판트는 고개를 들었다. 너무 오랫동안 숙이고 있어 허리가 저렸지만, 두 눈만큼은 총기로 반짝였다.
“무엇을 증명할까요?”
“자격.”
안경 너머, 대장로의 두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네가 나의 후계가 될 자격 말이다.”
* * *
‘자격…….’
판트는 대장로의 거처를 나오면서 생각했다.
후계가 될 자격을 증명하라. 그게 무슨 말뜻인지 좀처럼 쉽게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를 떼어 내기 위해서 아무렇게나 던진 말은 분명 아닐 텐데. 아마 말 그대로 혈뢰를 줘야 하는 이유를 보이란 게 아닐까.
‘후계가 될 이유.’
판트는 양손을 펼쳐서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대장로는 일족의 최고 어른이기도 하지만, 사소하게는 그에게 있어 큰종조부가 되었다.
51개의 가문 중 가장 쇠락해 가던 청람가의 전성기를 열고, 무왕 나유가 번듯하게 자랄 수 있게 만든 어른.
혈뢰의 모티브인 뇌정권은 판트도 즐겨 사용하는 무공이었다. 그렇다면 최소한의 자격은 갖춘 셈이었다.
다른 무공을 익힌 상태로 혈뢰를 받아들이기보다, 이미 다 잡힌 기틀 위에 씌우는 게 더 나을 테니.
그렇다면……?
툭!
판트는 걷다 말고 잠시 걸음을 멈췄다.
‘다 집힌 기틀. 그렇다면 뇌령(雷靈)부터 얻는 게 순서상 맞지 않을까?’
뇌령. 뇌정권을 대성했을 때에 나타난다는 현상. 뇌기와 신체가 하나가 되어, 비로소 강기를 열 수 있게 되는 경지를 뜻했다. 그리고 혈뢰는 강기무공. 당연히 뇌령은 기본적으로 따르는 조건이었다.
판트는 한순간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 돌고 돌아 해야 할 일은 똑같았다.
개인 수련. 원래 뇌령은 뇌정권의 전수자가 반드시 얻어야 할 최종 경지였다.
막막하던 이전과 다르게, 이번에는 확실한 목표점이 생겼다.
판트는 다시 걸음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한시가 급했다.
* * *
“하아. 하아……. 판트가 폐관 수련에 들어갔단 말씀이십니까?”
연우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갈리어드를 바라봤다.
일순간 폭발적인 속도를 내는 기술, 궁신탄영을 한창 연습하던 중에 들은 말은 그의 관심을 끌었다.
“그래. 듣자 하니 다짜고짜 무왕에게 찾아가서 면벽동의 열쇠를 내놓으라고 강짜를 부렸다는군. 하하.”
“면벽동이라면. 확실히 판트가 제대로 작심을 한 모양입니다.”
연우는 살짝 눈을 크게 떴다.
면벽동은 여러 폐관 수련장 중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했다.
수련자는 5평 남짓한 좁은 공간 속에 희망 기간 동안 먹을 식량만 가지고 갇혀 지내야만 했다. 문은 안에서 절대 열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어 웬만한 인내심이 아니면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최소 몇 년 단위로 죽어라 수련할 목적이 있는 사람만이 들어가길 희망할 텐데. 판트가 들어가겠다고 한 걸 보면 절대 얕은 마음을 먹은 게 아니었다.
“거기다 왕족의 권한으로 금급 무서고도 열어 달라고 요청했었다더군. 그래서 장로회에서 긴 논의 끝에 5종의 비급을 갖고 들어갈 수 있게 의결했다 하니. 아마 당분간 얼굴 보기는 힘들 게다.”
금급 무서고는 원래 일족의 왕이나 장로회에서 특별히 허락을 받은 사람만이 출입할 수 있는 곳.
다만, 왕족은 평생 1회에 한해 자유롭게 출입을 할 수가 있었다. 이 권한을 사용한 모양이었다.
갈리어드의 말마따나, 판트가 독하게 마음을 먹긴 먹은 모양이었다. 면벽동으로 가는 동안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내심 궁금했지만, 굳이 찾아가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기엔 서로가 너무 낯간지러웠다. 그리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연우는 판트가 어떤 심정인지 알 것 같았다. 자신에게 했던 말과 다르게 뜻대로 풀리지 않는 현실이 녀석을 자극한 게 틀림없었다.
“비급을 다섯 개나 들고 들어갔다니……. 그 성질머리로 공부하려면 머리 잔뜩 싸매야겠군요.”
“원래 공부도 하던 놈이나 하는 법이지.”
갈리어드가 피식 웃으면서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에도라는 본격적으로 층계를 오른다고 이야기를 했다더군. 영매에게 쪽지만 남겨 두고 말없이 훌쩍 떠났다고 하니 그쪽도 마음을 독하게 먹은 모양이야.”
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다른 둘의 선택이 이해가 되었다.
에도라는 혜안과 양도를 가지고 있다. 밀실에 갇혀 참오를 하는 것보다는 실전을 통해 안력을 기르면서 양도의 숙련도를 높이는 게 가장 알맞은 선택이었다.
‘에도라라면. 잘 해내겠지.’
조금 걱정이 되는 판트와 다르게, 에도라에 대한 신뢰는 아주 컸다.
여태 이렇다 할 실력을 크게 드러낸 적이 없던 그녀였지만. 그래도 숨겨 둔 게 많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신마도를 제대로 풀어낸다면 자신도 함부로 승부를 장담하기 어렵지 않을까.
연우는 옷에 묻은 먼지를 가볍게 털면서 다시 자세를 갖췄다. 두 남매가 독한 마음을 품고 움직인다면. 자신도 거기에 뒤처져 서는 안 되었다.
‘동생들에게 진다면, 맏형으로서 쪽팔리니까.’
연우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땅을 박찼다.
쾅!
쐐애액-
그렇게 빠르게 달리는 연우만큼이나.
시간도 다시 빠르게 흘렀다.
* * *
[의념을 정제하는 법에 대해서 터득하였습니다.]
[궁신탄영을 습득하였습니다.]
[‘순보’의 스킬 숙련도가 대폭 올랐습니다. 89.1%]
그렇게.
[의념을 순환시키는 방법에 대해서 큰 단서를 얻었습니다.]
[일위도강을 습득하였습니다.]
[‘순보’의 스킬 숙련도가 상승하였습니다. 95.2%]
훈련은 계속 이어지고.
[의념을 무의식적으로 다루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금리도천파를 습득했습니다.]
[어기충소를 습득했습니다.]
[‘순보’의 스킬 숙련도가 상승하였습니다. 99.6%]
드디어 결실을 볼 때가 찾아왔다.
[의념을 신체에 완벽히 적용시켰습니다. 초감각과 신체가 완전한 동일화를 이뤘습니다.]
[이형환위를 습득했습니다.]
[‘순보’의 스킬 숙련도가 대폭 상승하였습니다. 121.6%]
[축하합니다! ‘순보’의 스킬 숙련도가 Max치를 넘어서는 데 성공했습니다.]
[보법의 묘리를 얻었습니다.]
[스킬과 관련된 모든 능력치가 향상됩니다.]
[추가 능력치가 배분됩니다.]
[힘이 15만큼 상승했습니다.]
[민첩이 19만큼 상승했습니다.]
……
[스킬과 관련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상위 스킬을 오픈합니다.]
[스킬 ‘활신(滑身)’이 생성되었습니다.]
[‘활신’의 스킬 숙련도가 대폭 상승하여 빠르게 Max치를 달성 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신법의 묘리를 얻었습니다.]
……
[플레이어의 능력치를 산정하여 새로운 스킬을 탐색합니다.]
[상위 스킬 ‘경종(輕踪)’을 오픈합니다.]
[경공의 묘리를 얻었습니다.]
……
[‘경종’의 스킬 숙련도가 대폭 상승하여…….]
……
[특성 ‘마룡체’와 ‘수도자’의 영향을 받습니다.]
[상위 스킬을 오픈합니다.]
[바람길]
넘버링 80
숙련도: 0.0%
설명: 세상으로부터 배척받아 깊은 어둠 속에 숨어야만 했던 다크 엘프에 있어 유일한 친구는 바람밖에 없었다.
바람은 한곳에 머물지 않고 도도하게 흐르며 차별을 두지 않는다. 그것의 흐름은 언제나 막힘없이 자유로워 다크 엘프는 언제나 그런 바람을 닮고자 했다. 그러니 그들처럼 바람과 같이 노닐다 보면 여태 보지 못했던 새로운 길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 길찾기
스킬을 전개할 때마다 랜덤으로 여러 개의 길이 제시된다. 각 길의 끝에는 서로 다른 결과가 놓여 있으며, 최소 2개에서 최대 5개까지 제시된다. 숙련도가 높아질수록 제시되는 길의 수도 많아지게 된다.
현재 보유한 바람은 총 3개(미풍, 돌풍, 삭풍).
* 폭풍의 눈
주변에 흐르는 바람을 한껏 끌어모았다가 터뜨릴 수 있다. 이때, 폭풍이 전개되어 넓은 범위에 걸쳐 적아를 막론하고 강한 치명타를 입힐 수 있다.
**스킬 ‘용마안’과 연동되어 더 확실한 길찾기가 가능해집니다. 제시되는 길의 최대 개수가 늘어 나며 위력이 증대됩니다.
**스킬 ‘심연의 정령술’과 연동 되어 바람의 정령의 가호가 따르게 됩니다.
화아악!
변화는 아주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평소와 다름없이 의념을 통제하는 데 전념했고,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던 이형환위를 계속 연습하고 있던 중이었다.
갑자기 용마안이 활짝 열리더니 여태껏 보았던 결보다 몇 배는 더 많은 결이 시야에 담겼다.
그 순간, 연우는 아주 잠깐이지만 이대로 머리가 핑 도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강한 현기증을 느끼고 말았다.
시차 괴리로 한껏 느려진 세상 속에서.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시야를 똑바로 확보했을 때.
연우는 새로운 세상을 볼 수가 있었다.
수많은 결들이 도도한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결들은 아주 조금씩이지만 서로 다른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어떤 것은 짙고, 또 어떤 것은 옅었다. 크고 작은 것들도 있어 서로 뒤엉키면서 세상을 뒤덮었다.
여태껏 연우가 봤던 결은 단편적으로 끝나거나 실타래처럼 단단히 뭉쳐 있었을 뿐이었다. 지금처럼 이렇게 서로 연결되어 흐르는 것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연우는 비로소 그것이 ‘바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까지는 감각으로만 느꼈던 바람의 움직임을 육안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연우는 바람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제3자의 시점에서 자신의 신체도 손쉽게 투영할 수 있었다.
감각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의념으로 연결된 육체적 감각은 훨씬 더 많은 외부의 정보를 조달하고, 그것을 능숙하게 조절했다. 묵직했던 몸이 깃털처럼 가벼웠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바람. 한 올 한 올, 어떤 것은 부드럽고, 어떤 것은 까끌까끌했다. 바람뿐만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것도 느껴졌다.
그리고. 연우는 그것을 전부 자연스럽게 통제할 수 있었다. 손을 활짝 펼쳤다.
바람이 자연스레 손바닥 안쪽으로 몰리면서 둥근 구체를 형성했다. 구체에다 의념을 불어 넣었다.
화르륵! 구체는 단번에 불꽃으로 변해 크게 타올랐다.
마력, 육체, 의념, 결. 모든 것들이 손쉽게 움직였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하나하나씩 집중해서 연결해야만 했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축하하네. 풍안(風眼)을 열었군.”
그때, 머리 위에서 갈리어드가 훌쩍 뛰어내려 왔다. 그는 수고했다면서 연우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우리 일족으로 치면…… 그래. 이제야 ‘사냥꾼’이 된 거지. 일족이 아닌 자네로서는 상당히 힘이 들었을 텐데. 용케 잘 따라와 주었어.”
연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갈리어드가 아니었다면 시도조차 못 했을 겁니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갈리어드가 아니었다면 얼마나 오래 걸렸을지 상상도 가질 않았다.
동생의 첫 번째 스승. 그는 연우에게도 과분할 정도로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절대 타 종족에게는 전수하지 않았을 다크 엘프의 비기를 아낌없이 전수하면서. 덕분에 연우는 막혔던 벽을 겨우 허물 수 있었다.
[칭호 ‘다크 엘프의 사냥꾼’을 획득했습니다.]
연우는 메시지를 보면서 뿌듯함에 잠겼다.
게다가 바람길은 용마안과 심연의 정령술 등, 다양한 스킬과의 연동이 너무 손쉬웠다. 때문에 증폭된 효과만 따진다면, 단순히 넘버링에 머물 스킬이 아니었다.
‘이 정도면…… 거의 권능에 준할 수준이야.’
준권능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연우는 이번에 터득한 바람길이 불의 파도에 못지않게 자신을 확실하게 탈바꿈시켰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보다 어디 실험해 보지 않겠나?”
연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손을 앞으로 펼쳤다. 마장대검이 착 감겼다. 풍안을 열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었던 느낌이 손끝에서 느껴졌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마장대검의 감정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용마안으로 바람을 보듯이, 감각으로 마장대검을 느낄 수 있었다.
녀석은 울고 있었다. 자신을 깨워 달라면서. 긴 외로움에서 해방 되길 바랐다.
그래서 연우는 녀석을 달랠 생각으로 의념을 불어 넣었다. 영력이 따르고, 마력이 흘렀다. 검신을 따라 붉은색 오러가 화려하게 피어오르면서 단번에 착 감겼다. 그것을 빌려, 마장대검은 드디어 사념을 해방할 수 있었다.
그 순간, 연우는 마장대검과 하나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이 마장대검이었고, 마장대검이 자신이었다. 의념이 완벽한 동일화를 이뤘다.
검신일체.
혹은 신검합일(身劍合一)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쩌어어엉-
마장대검이 길게 울렸다. 오러가 단단한 형상을 갖췄다.
검강이었다.
연우는 그것을 그대로 우측으로 크게 틀었다. 이대로라면. 여전히 머릿속에 단단히 각인되어 있는 팔괘도 펼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