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266화 (266/862)

16화. 독식자 (6)

카론은 적잖게 당황하는 눈치였다. 관리자가 도와준다고 나설 때,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연우는 녀석이 어떤 녀석인지 잘 알기 때문에 가볍게 코웃음만 쳤다.

‘카론의 꼬임에 넘어갔다가는 딱 패가망신 당하기 십상이지.’

수전노 카론은 분명 큰 도움이 된다. 49일 안에 어떻게든 망자의 강을 건너 육지에 도착해야 할 때, 카론이 던져 주는 힌트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가 있었다.

‘하지만 하나같이 두루뭉술하거나, 귀한 정보는 아주 비싸지.’

괜히 수전노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제 딴에는 중립을 지켜야 하는 관리자가 플레이어에게 정보를 내어 주려면 그만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명분이긴 했지만.

‘터무니없는 소리.’

어차피 공략집이나 다름없는 일기장을 갖고 있는 연우로서는 크게 카론에 구애를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카론은 연우를 설득하려 했지만, 눈빛이 냉랭한 것을 보고 별 돈이 안 되겠다 싶었는지 ‘쩝’하고 입맛을 다시면서 몸을 돌렸다.

“이봐.”

연우는 그런 카론을 불러 세웠다. 카론이 다시 눈을 반짝이면서 연우를 돌아봤다. 흥정이라면 받아 줄 생각도 있었다.

“정보는 줬으면 하는데.”

“흠흠! 하긴. 촉박한 제한 시간 안에 망자의 강을 건너는 것이 절대 쉽지 않은 일이지. 하면 상을 주게. 화폐도 좋고, 물건도 좋아. 그 값어치만큼 좋은 힌트를 내어 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관리자라면 스테이지 공략에 필요한 정보를 주는 게 당연할 텐데.”

카론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제법 위압적으로 다가왔다.

“그건 규율상 안 된다네. 삯 없이 주는 건 형평성에 어긋나.”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연우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허공에다 손을 짚으면서 시스템 창을 부르고, 묵묵히 뭔가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카론은 뭔가 불길한 느낌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데, 뭘 하는 건가?”

“관리국에 신고.”

“으, 응?”

“플레이어가 스테이지에 도전할 때, 관리자의 역할은 층계를 보호하고 플레이어가 공략에 올인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걸로 알고 있어서. 조언도 거기에 해당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정보료를 요구하니 물어보려는 거지.”

“자, 잠까안!”

카론은 헐레벌떡 손을 뻗어 시스템을 만지던 그의 손을 꽉 쥐었다.

연우가 눈을 가늘게 좁히면서 녀석을 바라봤다. 카론은 오우거답지 않게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려 대고 있었다.

“왜?”

“우, 원하는 게 뭔가!”

연우는 카론에게서 시선을 떼고 빈 왼손으로 시스템을 조작했다.

“그냥 확인만 하려고.”

“피, 필요한 것만 있으면 말하게! 도와줄 테니!”

연우는 가볍게 피식 웃으면서 시스템에서 손을 거뒀다.

사실 관리자가 플레이어에게 뒷돈을 받고, 거기에 맞는 정보를 준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관리자는 어디까지나 엄연히 시스템에 종속된 존재였으니까. 공평한 관리를 벗어나는 행위는 엄준한 처벌이 뒤따랐다.

하지만 이걸 역으로 이용하면, ‘돈을 받더라도 똑같은 정보만 주면 된다’는 말도 일리는 있었다. 구리 동전을 받든, 금괴를 받든 간에, 공평하게 플레이어들을 대한다면 시스템의 저촉을 받을 이유도 없었다.

‘결국 사기란 거지.’

카론은 몇 푼을 쥐어 주나 어차피 똑같은 힌트만 줄 뿐이었다. 다만, 두루뭉술하게 말을 삥 둘러서 플레이어들이 가격에 맞는 정보를 얻었다는 생각만 들게 만들 뿐.

사실 아르티야도 카론의 화술에 당해서 된통 바가지를 쓸 뻔했었다.

‘다행히 정우가 용마안을 갖고 있어서 당하지는 않았었지만.’

어차피 상대가 뭐라고 떠들어도, 별로 귀담아듣지 않는 성격인 연우로서는 초장부터 기선을 확 잡았을 뿐이었다.

카론은 그런 연우를 한 번 노려보다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독식자, 독식자, 말만 들었었지만. 관리자를 이렇게 협박할 줄은 꿈에도 몰랐구만. 그래도 나, 명색이 최고 관리자라네.”

“최고 관리자나 되는 사람이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했다면, 그건 더 큰 문제일 텐데. 뭐, 징계가 떨어진다면 그만큼 더 크겠지만.”

“……한마디를 지지 않는구만. 그래도 그건 좀 봐주게. 요즘 라플라스 이후로 다들 몸 사리고 있다고.”

연우는 카론이 흘리듯이 하는 말을 놓치지 않았다. 묘의 라플라스. 뭔가 관리자의 직분을 벗어난 행동을 했다가 자격이 박탈당했다고 했었지. 해의 루피가 찾아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그에게 묻기도 했었다.

이후로 라플라스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연우는 굳이 깊게 캐묻지 않았다.

“흠, 흠! 그래도 혹 이 일은…….”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말하지는 않지. 그럴 이유도 없고.”

“오. 고맙……!”

“물론, 그만큼 네가 가진 권한 내에서 아는 정보, 다 내놔.”

카론은 살짝 표정을 일그러뜨렸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관리국을 나설 때, 이블케가 지나가듯이 하던 말이 맞았다. 독식자를 조심해야 한다고. 안 그러면 도리어 삥을 뜯길 거라고 하더니 진짜였다.

그래도 카론은 이런 플레이어가 좋았다.

똘똘한 녀석일수록 더 길게 살고, 더 많은 층계를 오를 테니까. 탑은 강하다고 해서, 아는 정보가 많다고 해서 쉽게 극복이 가능한 곳이 아니었다.

실력이면 실력, 지략이면 지략, 결단이면 결단. 삼박자가 골고루 어우러져야만 했다. 그리고 그런 녀석들은 언제나 삭막한 일상을 살아가는 관리자들에게 이따금 대리 만족을 느끼게 해 줬다.

연우도 그런 케이스였다. 이블케가 연우를 총애하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카론이 가장 좋아하는 건 돈이었지만.

“음. 일단 강을 건널 수 있는 방법은 모두 두 가지가 있어.”

카론은 검지와 중지만 펴 ‘V’자를 만들면서 먼저 중지를 접었다.

“첫 번째는 그냥 헤엄쳐서 건너는 것. 마력에 자신 있는 친구들이 많이 시도하긴 하네만. 그다지 추천하지는 않는다네.”

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겁 없이 망자의 강에 뛰어드는 자들의 말로를 잘 알고 있었다.

‘그냥 강물이 되어 버리지.’

망자의 강 속에는 저승으로 건너가지 못한 원혼들이 수없이 살고 있다. 녀석들이 생자를 만났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불에 보듯 뻔한 일이었다.

“역시. 어떻게 될지 알고 있는 눈치로군.”

카론은 껄껄 웃으면서 남은 검지를 접었다.

“다른 하나는 배를 건조하는 것. 물론, 시일도 다급한데 어떻게 그런 걸 만드냐고 따질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필요한 재료를 가져와 내게 주면, 소정의 수고료만 받고 대신 만들어 줄…….”

“됐고.”

“……자네는 내가 관리자라는 사실을 좀 명심해 줬으면 좋겠네만.”

카론은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으면서 툴툴거렸다. 여태껏 예의 가득하던 다른 관리자들과는 확실히 다른 태도였다.

그 외에도 카론은 30층까지 가는 길에 필요할 법한 힌트들을 마구 던져 줬다. 그중에는 놓치고 있었다면 아차 싶었을 것들도 많았다. 관리자의 권한으로 아는 정보를 전부 토설하라는 연우의 조건을 들어준 것이다.

하지만 연우는 눈빛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도리어 속으로 가볍게 혀를 찼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들인데.’

혹시 동생이 파악하지 못한 게 있나 싶었었는데. 아무래도 그런 건 없는 모양이었다. 발품을 팔아야겠지만 어쩔 수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카론과 일별하려는데.

“그리고.”

“……?”

“저 반대쪽 섬으로 너무 깊숙하게 들어가는 건 권장하질 않아.”

“식인괴인을 건드리지 말라는 건가?”

식인괴인. 이곳 망자의 섬에서 살아가는 몬스터였다. 정확하게는 네이티브라고도 할 수 있는 자들.

카론이 입꼬리를 씩 말아 올렸다.

“식인괴인을 알고 있는 걸 보니 이곳의 정보를 대략 숙지하고 온 모양이네만. 하여간 내가 말해 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 사실 이걸 말해 준 것도 내게는 꽤 부담이라서.”

“명심하지.”

연우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론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건승을 기원하네. 아, 배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시스템으로 날 부르면 될…….”

연우는 말없이 시스템을 소환해 손을 갖다 댔다.

“알았네, 알았어. 남자가 그렇게 깐깐해서야 인기가 없을 거란 걸 왜 모르는가.”

카론은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투덜거리더니 녹색 포탈을 열고 조용히 사라졌다.

연우는 가볍게 몸을 풀면서 해변이 아닌 반대쪽, 섬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우선 필요한 건, 배를 건조할 재료였지?’

망자의 강은 강한 산성과 독성을 품고 있어서 웬만한 배는 그 위에 띄우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보통 카론에게 부탁해서 건조할 수 있는 배는 지불하는 가격이나, 조달한 재료 종류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퀄리티가 달라지는 편이었다. 게다가 이것저것 요구하는 것도 많아서…… 카론의 말을 따랐다가 패가망신하는 자들이 괜히 속출하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배를 건조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 가격을 조금이라도 더 깎기 위해서는 고급 재료들을 장만해야만 했다.

그런 건 보통 섬의 숲 쪽에 가면 많이 있는 편이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구하는 게 절대 쉽지는 않았다.

연우는 필요한 재료의 종류와 양을 떠올리면서 숲으로 들어서려다 말고, 갑자기 뒤에서 따라잡는 소리에 걸음을 멈춰야 했다.

“잠깐!”

연우를 불러 세운 사람은 두 명이었다. 덩치 큰 거한과 주눅 든 인상이 강한 남자. 그중 거한이 말했다.

“독식자, 맞지?”

연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헥토르, 이쪽은 이브라모비치라고 한다.”

“그런데?”

“음? 우리를 모르나?”

“……?”

마치 자신들을 당연히 알 거라는 듯한 말투.

하지만 연우는 눈을 가늘게 좁혔고, 헥토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러다 정말 연우가 정말로 자신을 모른다는 것을 깨닫자, 분에 찬 표정이 되었다.

“……난 환상연대의 92장(長)이다. 이 녀석은 부장이고.”

환상연대라면 연우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청화도가 몰락하고, 레드 드래곤이 내란을 겪고 난 뒤. 여러 혼란 끝에 8대 클랜의 축도 크게 흔들리고 말았다.

여전히 손꼽히는 거대 클랜은 8개였지만, 이루는 주축에 조금씩 변동이 있었다.

올포원.

화이트 드래곤.

블랙 드래곤.

엘로힘.

마군.

혈국.

시의 바다.

다우드 형제단.

청화도가 빠진 자리에, 레드 드래곤이 분열된 화이트 드래곤과 블랙 드래곤이 포함된 것이다.

그리고 이 둘은 실제로 하나의 거대 클랜에서 갈라져 나온 것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거대 클랜에 못지않은 힘을 자랑했다.

특히 화이트 드래곤의 수장, 봄의 여왕 왈츠가 엘로힘의 세 집정관의 합공에서 동수를 이뤘다는 사실은 상당히 충격적으로 다가올 정도였다.

하지만 탑의 격동이 워낙에 크다 보니, 이들의 아성을 위협하는 신흥 세력도 여러 개가 있었다.

환상연대가 바로 그중 하나였다.

지난 1년 사이에 무서운 속도로 치고 올라오기 시작한 이들은 총 108개의 크고 작은 클랜과 팀이 연합해서 만들어진 곳으로, 저층과 중층 구간을 싹 쓸어 가다시피 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워낙에 명성을 날리다 보니, 일반 클랜들은 물론, 랭커들도 조금씩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고 알려질 정도였다.

다만, 한동안 외뿔부족에서 수련에 집중하느라 바깥 상황에는 신경도 쓰지 않던 연우로서는 이들과 처음 대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들에게 별다른 관심도 없었다.

연우가 목표로 노리고 있는 곳은 8대 클랜이었지, 자기들끼리 뭉쳐서 거기에 닿을 거라고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는 잔챙이들이 아니었다.

그러니 태도도 시큰둥할 수밖에 없었다.

헥토르는 그런 연우의 반응이 탐탁지 않아 인상을 와락 찌푸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덤빌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이미 독식자의 실력은 레드 드래곤과 외뿔부족의 전쟁에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물론, 무왕의 제자라는 배경에 부풀려진 헛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상대였다. 게다가 이미 26층에 있던 수하들에게서 그의 활약상에 대해 보고서를 받은 상태였다.

굳이 여기서 충돌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헥토르는 분기를 겨우 가라앉히면서 말했다.

“방금 전에 카론에게 들었을 거다. 배를 건조하기 위해서는 많은 재료와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러니 손을 잡자.”

눈 밑이 퀭한 이브라모비치가 옆에서 설명을 덧붙였다.

“독식자께서는 청람가의 남매가 없으면 언제나 솔로 플레이를 지향한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독식자시라고 해도 이 짧은 시간 안에 재료를 모두 조달하려면 힘들 테니 함께 손을 잡…….”

“됐다.”

연우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거절했다. 확실히 따지고 보면 이 둘의 말이 맞았다.

배를 건조할 재료는 혼자서 마련하기 힘에 부칠 정도로 많았고, 설사 한다고 해도 시일을 너무 많이 잡아먹었다. 비효율적인 것이다.

게다가 건조 비용도 만만치 않으니, 머릿수를 최대한 많이 모아서 비용을 마련하는 게 좋았다.

하지만 이미 바이 더 테이블로부터 후원을 받고 있는 연우는 굳이 액수에 구애를 받을 이유가 없고, 재료도 혼자서 충분히 조달할 자신이 있었다. 시간이 촉박하다 싶으면 괴이들을 시키면 그만이었다.

굳이 이들과 손을 잡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강압적이기도 하고.’

현재 섬에 있는 플레이어는 모두 500여 명. 하지만 이들이 전부 환상연대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 ‘협조’라는 명분하에, 다른 플레이어들을 찍어 누르고 강제로 노동에 동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힘들거나 수고스러운 일은 그네들에게 맡기면 그만이니까. 게다가 주도권을 잡아 놓으면 연대에 흡수하기도 편할 테고. 이런 식으로 클랜을 키운 거였군.’

이미 섬 전체에 넓게 퍼뜨린 감각 영역에서도 느껴지고 있었다. 대다수의 플레이어들이 불만이 가득하지만,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강압적인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연우는 거기에 휘둘릴 이유가 전혀 없으니 거절했다. 용건도 이것으로 끝난 것 같으니 다시 숲으로 들어가려는데.

“이 새끼가! 말을 하는데 듣지 않……!”

헥토르는 그런 연우의 태도가 고까웠던지, 인상을 잔뜩 찡그리면서 손을 뻗어 연우의 어깨를 붙잡으려 했다.

그 순간.

우드득!

“크아아악!”

녀석의 오른팔이 그대로 수수깡처럼 분질러지더니, 어깨와 함께 통째로 뜯겨서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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