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268화 (268/862)

18화. 독식자 (8)

샤논은 욕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어차피 뭐라고 한들 연우가 듣는 척도 하지 않으리란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볍게 한숨을 내쉬면서 다른 질문을 던졌다. 아직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그런데 어떤 배를 건조하려고 그래? 지금 주인이 마련하는 재료로는 뭘 만들려는지 감이 오질 않아.」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A등급 이상의 배의 재료에 망혼목이 들어간단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카론의 제작 리스트에도 없었습니다.」

이미 오래전에 27층을 통과한 적이 있던 두 사람으로서는 가질 수밖에 없는 의문이었다.

그들도 당시에 꽤 어렵게 30층까지 돌파했던 것으로 기억하기 때문에, 망자의 강을 건너는 배에 대해서는 빠삭하게 꿰고 있었다. 하지만 연우가 만드는 재료로 뭘 할 수 있을지는 도무지 짐작 가는 바가 없었다.

하지만 연우는 가볍게 웃기만 할 따름이었다.

“배를 만드는데 왜 뱃사공을 찾아가지? 당연히 실력 좋은 조선공을 찾아야지.”

「……?」

「……?」

샤논과 한령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의문 어린 사념을 드러냈다. 연우의 말만 본다면 카론 외에 따로 배를 건조할 수 있는 장인이 있다는 것처럼 들렸다. 그것도 섬 안에.

하지만 연우는 두 언데드의 의문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계속 망혼목을 베고 인트레니안에 넣는 걸 반복했다.

그렇게 얼마나 숲 안쪽으로 들어갔을까. 거침없이 벌목을 하던 중에 처음으로 연우의 손이 멈췄다. 가면 속에 있는 시선이 어디론가 움직였다.

“왔다.”

샤논과 한령은 연우가 말하는 게 무엇인지 확인하려고 그쪽으로 사념을 돌렸다가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숲 속에는 분명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허리까지 닿는 억센 풀과 햇볕조차 들지 않을 만큼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 그림자뿐.

하지만 연우와 공유하고 있는 인지 영역 안쪽에 무언가가 이쪽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느껴졌다.

얼핏 보면 일반 사람과 생김새가 다를 게 없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얼굴과 목에 별 이상한 문신을 가득 새겨 넣고, 다리에 두른 띠에 날이 크게 굽은 쿠크리를 걸고 있다는 것뿐. 흔히 밀림에서 살아가는 야만인들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런 자들이 대략 십여 명이었다.

하나같이 흉흉한 살의를 억지로 누르면서, 사냥감을 노리는 사냥꾼 집단처럼 사방에서 포위를 하며 이쪽으로 접근을 시도하고 있었다.

나무 위에서 조용히 몸을 날리고, 수풀 사이로 몸을 낮추면서 달렸다.

「식인괴인?」

상대가 무엇인지 깨달은 샤논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27층에 들어선 플레이어라면 절대 모를 수가 없는 몬스터였다.

아니, 단순히 이들을 몬스터라고 할 수 있을까.

분명 27층에서 살아가며 플레이어들의 시련을 방해하는 건 맞았다.

하지만 이들은 저들끼리 마을을 이루고, 문명을 일굴 정도로 똑똑한 이성과 지능 수준을 지니고 있었다. 달리 ‘네이티브’라고도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보통 플레이어들은 식인괴인들을 몬스터로 취급했다.

지능 수준에 상관없이, 녀석들의 식습관 중에 식인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플레이어들을 사냥하고, 요리해서 잡아먹는 것을 즐겨 했다. 당연히 플레이어들로서는 적의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보통 섬의 밀림 가장 안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이따금 무리에서 이탈한 플레이어를 골라 사냥하기로 악명이 자자했는데.

아무래도 이번에는 연우를 타깃으로 잡은 모양이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주인 주변에는 왜 이렇게 자살 희망자들이 많은 걸까? 자살하려면 더 참신한 방법도 많을 텐데, 왜 굳이 저딴 짓을 한대?」

샤논은 벌써부터 식인괴인의 미래가 보이는 것 같아 혀를 끌끌 찼다. 괴이들만 좋아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저놈들이 뭔 조선공이 된단 거야?」

샤논의 의문은 뒤로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조금씩 접근을 하고 있던 식인 괴인들이 연우를 사냥할 수 있는 거리까지 접근하자, 곧바로 수신호를 내리면서 움직였던 것이다.

팟-

남들이 본다면 갑자기 나무 그림자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날렵한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가장 뒤쪽에서 나무 위에 올라 있던 식인괴인들이 기다란 대롱을 입에다 물고 ‘후!’하고 불고 있었다. 수십 개의 독침이 소나기처럼 연우에게로 쏟아졌다.

아주 작은데다 어둠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독침의 끝에는 한 방울만으로도 코끼리를 쓰러뜨릴 수 있는 지독한 맹독이 발라져 있었다.

먹잇감을 중독시켜서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든 다음에 사냥하는 것이 녀석들의 기본 사냥법이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식인괴인들은 개개인이 독침이 없어도 이미 일반 플레이어쯤은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실력자들이었다.

연우는 가장 먼저 독침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연우를 따라 감돌고 있던 자연 속 마나가 움직이면서 회오리를 그리고, 독침들이 저절로 딸려 와 어느새 손에 잡혔다.

그리고 팔을 크게 휘젓자, 한곳에 뭉쳤던 독침들이 일제히 머리 방향을 반대로 돌리면서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퍼퍼퍽!

“쿠엑!”

“끼에에엑!”

[식인괴인72가 사망하였습니다.]

[식인괴인 142가 사망하였습니다.]

……

졸지에 아군의 독침에 당해 버린 식인괴인들은 달려오던 그대로 고꾸라지고, 가까스로 피했던 자들 앞으로는 탄지가 날아들었다.

수박 깨지는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머리가 부서지는 소리였다.

[식인괴인68이 사망하였습니다.]

식인괴인들은 그제야 연우가 무리에서 낙오된 플레이어가 아닌, 강자란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은 상태였다.

겨우 운 좋게 살아남은 녀석들도 길게 쭉 늘어난 그림자에 몸이 칭칭 감기고 말았다. 어떻게 연우에게 손을 쓸 새도 없이 죄다 제압되고 만 것이다.

“키륵! 키키륵! 키르르륵!”

하지만 녀석들은 절대 지지 않겠다는 듯, 제압된 상황에서도 눈에서 독기를 지우지 않았다. 오히려 목에 핏대를 잔뜩 세우면서 뭐라고 소리를 질러 댔다.

온통 가래 끓는 소리처럼 들려 뜻을 알 수 없었지만. 이렇게 수치스럽게 만들지 말고 죽이라는 의미처럼 보였다.

연우는 물끄러미 녀석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내가 묻는 질문에 대답하면 살려 주지.”

식인괴인과 똑같은 가래 끓는 소리. 하지만 분명 어조가 다른 언어였다.

순간, 식인괴인의 눈이 크게 떠졌다.

“우리 말을…… 어떻게 할 줄 아는 거냐, 플레이어!”

탑의 시스템은 공통적으로 자동 번역 기능을 플레이어에게 제공한다. 각자 다른 차원과 세상에서 넘어와 언어 체계도 다를 테니, 원활한 의사소통을 돕기 위한 배려인 것이다.

하지만 유독 몬스터나 네이티브의 언어에는 이런 혜택이 제공되지 않았다.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그래서 몬스터들은 어떤 의사를 표시하고 싶을 때, 더듬거리면서 플레이어들의 언어를 모방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연우는 그들의 언어를 따라 하고 있었다. 완벽한 발음은 아니었지만, 의사소통은 가능한 정도였다.

“지금 너희들에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닐 텐데? 질문에 대답이나 해.”

“싫다! 플레이어에게 해 줄 말은 없……!”

퍽!

연우는 저항하던 식인괴인의 목을 가차 없이 쳤다.

[식인괴인91이 사망하였습니다.]

「어우야. 이거 계속 저런 식으로 쳐 내면 안 될 텐데.」

연우는 샤논의 혼잣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으면서, 죽은 식인괴인의 뒤에 있는 식인괴인에게 다가갔다.

녀석은 시뻘게진 눈으로 죽은 동료의 시체를 보고 있었다.

“마을 위치는?”

“흥! 죽일 테면 죽여라! 언젠가 네게 재앙으로 닥칠……!”

[식인괴인238이 사망하였습니다.]

“위치는?”

“모른…… 컥!”

[식인괴인 111이 사망하였습니다.]

연우는 생포한 식인괴인들이 대답하지 않고 저항할 때마다 계속 목을 잘랐다.

시체가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바닥이 시뻘겋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식인괴인의 시체는 흐물흐물 녹으면서 땅속으로 스며들고, 그 위로 검은 안개 같은 것이 둥실 떠오르다가 허공에 흩어져 사라졌다.

그리고 그럴수록.

「어어? 이거 잘못하면 조금 위험해지지 않나?」

샤논은 조금씩 걱정하기 시작했다.

식인괴인이 죽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몬스터나 다름없으니까.

문제는 바로 그 뒤였다.

[섬 어딘가에서 식인괴인 25명이 죽었습니다.]

[제사장이 이 사실을 깨닫고 원통함에 잠겼습니다. 제사장의 명령에 따라 하위 신관들이 그들의 명복을 비는 축원문을 외기 시작했습니다.]

[시련의 난이도가 상승합니다.]

[‘식인마인’이 출몰합니다!]

연우의 망막에뿐만 아니라, 섬에 있던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공통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런 미친!”

“어떤 개또라이 새끼가 이딴 짓을 저지른 거야! 아아악!”

섬 곳곳에서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식인마인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27층의 시련 내용은 ‘여러 위협으로부터 무사히 섬을 빠져나와라’였다.

이 말은 절대 맞서 싸우란 것이 아니었다. ‘위협을 피해 다니면서 필요한 재료를 구해 배를 건조해라’란 뜻이었다.

식인괴인이 인간이나 아인종으로 분류되지 않는 것은 그들이 가진 독특한 종족 스킬 때문이었다.

〈혈연(血緣)〉. 녀석들은 혈통을 나눈 종족원들끼리 힘을 공유하고 있었다. 아니, 그들 각자가 가진 힘이 개개인의 것이 아닌 혈통의 힘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그래서 종족원이 죽으면 그 힘은 고스란히 혈통에게로 되돌아가, 자동적으로 타 종족원의 힘이 강해지도록 되어 있었다.

결국 많은 식인괴인을 죽일수록, 숫자가 줄어드는 대신에 더 강해진 개체가 등장한다는 뜻이었다. 식인마인은 식인괴인보다 한 등급 이상의 네이티브였다.

일반 플레이어들로서는 식인괴인을 상대하는 것도 어려운 판국에, 식인마인 이상이 등장했다고 하니 괴로워할 수밖에 없었다.

「일부러 그러시는 거겠지.」

한령이 작게 중얼거렸다. 연우는 언제나 사소한 행동에도 철저한 계산을 깔아 놓고 실행한다. 이번에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식인마인은 단순히 식인괴인 25명분을 합친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으로 강한 힘을 발휘한다는 점이었다. 섬이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연우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마지막 남은 식인괴인의 머리마저 잘라 버렸고.

[시련의 난이도가 상승합니다.]

[‘식인마인’의 출몰 빈도가 더 잦아집니다.]

[‘식인마물’이 출몰합니다!]

다량의 식인마인이 출몰한다는 전체 메시지가 떠올랐다. 거기에 더해 식인마물까지.

식인마인만 하더라도 26층의 군단장 급은 될 텐데. 식인마물까지 등장했다는 건, 섬이 삽시간에 패닉 상태에 빠질 내용이었다.

“이 숲 너머에 다른 외딴 섬이 하나 있다는군. 거기가 녀석들의 본거지인 것 같다.”

연우는 마장대검에 묻은 핏물을 가볍게 털어 내면서 다시 허리춤에 꽂아 넣었다.

「주인이 찾는다는 뱃사공이 거기에 있다는 거야?」

“정확하게는 출몰할 예정이지.”

샤논과 한령은 그제야 연우의 노림수가 뭔지 알 것 같았다.

「제사장이로군!」

「식인왕에게 그런 히든 피스가 있었습니까?」

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식인괴인은 혈연을 통해 계속 강해진다. 더불어 섬의 난이도도 계속 상승할 수 있었다.

당시 성장에 목이 메마르던 나와 동료들은 ‘과연 섬의 모든 식인괴인을 죽이면 어떻게 될까?’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그 결과 탄생한 식인왕에게서 재미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사실 때문에 우리는 반쯤 죽을 뻔했지만.

식인왕이 가진 히든 피스는 새로운 배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카론이 만든 배는 단순히 망자의 강을 건널 수만 있었지만, 식인왕의 배는 그 외에도 다른 기능이 많았다.

특히 숨겨진 항로를 찾는 기능은 아주 유용했다.

동생도 그것을 이용해서 새로운 인연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

‘정우의 두 번째 스승, 라나.’

연우는 갈리어드에 이은 동생의 새로운 스승을 떠올리면서 입맛을 다셨다.

‘만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워낙에 자유분방한 사람이니 없을 수도 있겠지만. 만약에 있다면 갈리어드처럼 클랜으로 초빙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게 되지 않더라도 동생의 인연을 쫓을 수 있으니. 식인왕은 반드시 만들어 내야만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식인왕은 정우가 3차 각성으로도 죽을 뻔했다고 했었지. 아포피스의 허물보다는 나았으면 좋겠는데.’

연우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던 26층의 히든 보스를 떠올리면서. 이번에 나타날 히든 보스는 부디 마음에 들기를 간절히 바랐다.

츠츠츠-

그림자가 크게 번지면서 괴이들이 튀어나와 섬 전체로 퍼져 나갔다. 식인왕의 출몰 지점을 확인했으니, 한시라도 빨리 식인괴인을 다 해치우기 위해서였다.

[시련의 난이도가 상승합니다.]

[‘식인마괴’가 출몰합니다!]

「많이들 죽어 나가겠구만. 쯧!」

샤논은 졸지에 재앙을 맞게 된 92단의 플레이어들을 떠올리면서 혀를 끌끌 찼다.

죽음과 관련된 신과 악마들이 왜 자신의 주인을 총애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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