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273화 (273/862)

23화. 독식자 (13)

촤아아-

물살을 세차게 가르는 배가 있었다. 물살은 배에 부딪치면서 새하얀 포말로 부서져 흩어지고, 잔잔한 수면은 이리저리 흔들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름답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온통 잿빛으로 빛나는 망자의 강. 부서지는 포말은 끈적끈적한 점성과 지독한 산성을 품고 있었고, 수면이 흔들릴 때마다 아래에 있는 유령들이 내뱉는 귀곡성은 듣는 사람의 공포심을 자극했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엔 전혀 관심 없다는 듯.

수백 명을 태우고도 남을 거대 선상 위에는 한창 난교 파티가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남자와 여자,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선원들은 모두 술과 약에 취해 있었다.

나신이 되어 짝짓기를 하는 뱀처럼 서로 이리저리 뒤엉키고, 한 여자에 여러 남자가 달라붙는 등 기괴한 장면도 벌어졌다.

곳곳에 설치된 바나 테이블에는 노예들이 수시로 돌아다니면서 계속 술과 고기, 안주, 마약 따위를 채워 주고 있었다. 울리는 음악은 시끄러웠고, 사람들은 그때마다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다 너무 흥에 취할 때면 방금 전까지 같이 교접하던 사람의 목을 졸라 살해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뒤엔 바다에다 아무렇게나 던지고, 다음 먹잇감을 찾아 어슬렁거렸다.

광란이라는 단어가 이보다 잘 어울릴 수 없으리라.

문제는 그런 배가 하나가 아니란 점이었다.

거선(巨船)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마치 어미 오리를 따라 헤엄치는 새끼 오리들처럼 수십 척에 달하는 배들이 따라붙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대선단이었다.

〈바다 신의 방파〉

대선단에 내려진 거대 가호는 그들의 위엄을 더 한껏 드러냈다. 갑판에서 난교 파티를 벌여도 방향을 잃지 않고 목적지로 향할 수 있는 것은 권능이 작용한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한 사내가 있었다.

거선에서도 가장 높은 층. 금과 옥, 갖가지 보석으로 휘황찬란하게 꾸민 옥좌에 한 남자가 앉아서 저 멀리까지 이어지는 수평선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자 갈기처럼 머리를 잔뜩 헝클어 놓은 채. 그는 나신을 여러 미녀들로 덮으면서, 그녀들이 가져온 술과 고기로 한껏 배를 채우고 있었다.

“크할할할! 얼마 남지 않았군.”

사내는 털이 숭숭 나 있는 팔을 우악스럽게 뻗어 남은 고기를 한껏 움켜쥐며 입 안에 털어 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그의 품에 안겨 조용히 자고 있던 여인들은 줄줄이 떨어져 황급히 자리를 벗어나야만 했다.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여인들이 재빨리 망토를 가져와 그의 나신을 덮었다.

사내의 시선은 여전히 저 머나먼 수평선에 향해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이 고정된 곳은 그보다도 훨씬 먼 곳이었다.

“선원들에게 알려라! 곧 도착할 것이라고.”

그의 우렁찬 외침에 따라.

뿌우우-

곳곳에서 뿔나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러자 다른 배들도 일제히 호응하듯이 뿔나팔 소리를 냈고, 선원들은 하나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언제 술과 약에 취했냐는 듯, 눈에 맺혀 있던 탁기를 모두 몰아내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뒀던 옷으로 무장하기 시작했다.

모든 복장을 갖췄을 때. 그들은 잘 정련된 병사로 되돌아가 있었다.

트리톤.

포세이돈의 가호를 받아 신흥 세력으로 급부상한 해상 위의 패자였다.

“라나의 영역이라.”

그리고 그들을 지휘하면서. 포세이돈의 사도, 벤테케는 잔인하게 웃었다.

“수정궁을 찾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건 그것대로 재미있겠는데. 크할할할!”

그의 웃음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 * *

[포식어가 등장했습니다. 강한 분노를 드러냅니다.]

[모두 주의하십시오.]

“꽉 잡아!”

하이디의 다급한 외침에 따라 플레이어들이며 식인괴인, 어느 누구 하나 가릴 것 없이 선상에 있던 사람들은 저마다 난간이나 기둥 등, 고정된 곳을 단단히 붙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콰앙!

엄청난 폭발 소리와 함께 배가 위아래로 크게 출렁였다.

미처 고정 기구를 확보하는 데 실패한 플레이어들은 비명 소리와 함께 배 밖으로 튕겨 나고 말았고,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 사람들도 계속 출렁이는 선체 때문에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거기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물살은 지독한 산성을 품고 있어서 닿는 것만으로도 살이 지글지글 녹을 정도였으니.

비명과 절규가 난무하는 가운데.

하이디는 왜 연우가 자신의 말에 절대적으로 따르라고 조건을 달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말은 다른 게 아니었다. 불만이나 후회조차 하지 말란 뜻이었다.

외딴섬에서 배를 완성하고 망자의 강 위에 띄운 지 벌써 5일째. 28층에 들어선 지 그만큼 시간이 흘렀다는 뜻이었다.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이 광경은 여전히 그들에게 두렵기만 했다. 불만을 가지지 말라고? 그럴 엄두도 내지 못했다. 누구나 저런 광경을 본다면 똑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덩치만 본다면 여름여왕의 본체보다도 훨씬 더 클 것 같은, 수십 미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고래.

꽤 큰 크기를 자랑하는 연우의 배마저도 고래 앞에서는 작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뿐만 아니라 고래는 엄청난 포악성을 자랑했다. 상어처럼 쩍 벌린 입가를 따라 드러나는 수십 개의 송곳니가 유달리 크게 반짝였다. 더 큰 문제는, 그런 고래들이 수십 마리나 한데 뒤엉켜 있다는 점이었다.

이대로는 정말 배가 그대로 박살이 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끔찍했지만.

조타수를 잡고 있는 늙은 식인 괴인은 신들린 듯한 솜씨를 선보이면서 아슬아슬하게 고래 싸움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망자의 강에는 수많은 몬스터들이 살아간다. 통칭 해수류(海獸類)라고 불리는 것들. 짙은 산성과 독기를 품은 강물에서 살기 때문에 포악성은 이루 말할 수가 없고, 이따금 별미로 강 위에 떠 다니는 산 사람을 잡아먹는 것을 즐긴다.

때문에 28층에 들어선 후부터는 방향을 잡는 것도 문제였지만, 해수류로부터 살아남는 것도 최대 관건이었다.

하지만 웬만한 해수류는 선박에 있는 플레이어들이 힘을 합치면 퇴치를 하거나, 때에 따라서는 사살도 가능한 반면.

지금 눈앞에 등장한 저 거대 고래, 포식어는 조금 경우가 달랐다.

망자의 강에서도 가장 심층부에서 산다는 해왕류(海王類)는 끔찍한 크기와 악랄한 성정을 자랑한다.

특히 어마어마한 식성을 가지고 있는 탓에, 녀석들이 한 번 등장했다 하면 강에는 아무것도 남아 나질 않으니. 해수류도 해왕류가 출몰할 때면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정도였다.

포식어는 그런 해왕류에서도 높은 급수에 위치한 녀석이었다.

당연히 플레이어들이 가장 꺼려 하는 상대일 수밖에 없었고, 때때로 브레스처럼 내뱉는 물줄기는 선박마저 녹여 버리기 때문에 나타날 징조가 있으면 플레이어들 역시도 어떻게든 권역에서 달아 나고자 애썼다.

그런데. 그런 포식어가 수십 마리나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들은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기 위해서 이빨을 쑤셔 넣고, 상처 속으로 대가리를 밀어 넣었다. 그때마다 피분수가 높게 치솟으면서 잿빛 강물이 붉은색으로 탁하게 물들었다.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고, 망자의 강에서 퍼 올려진 유령들의 귀곡성이 잔뜩 울렸지만.

녀석들은 전혀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사냥에만 집중했다.

‘왜 독식자는 다른 해역으로 가지 않고, 이런 험한 곳으로 오는 걸까? 잔잔한 곳도 많을 텐데. 무슨 이유라도 있을까?’

하이디는 연우에게 묻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지만. 조건 중에는 자신이 하는 일에 전혀 관여하지 말라는 것도 있었기에 속으로 삭여야만 했다.

지금은 그런 것보다도 배 밖으로 튕겨 나지 않게 조심하는 게 더 중요했다.

그래도.

여전히 그녀의 시선은 이리저리 뒤엉키는 포식어들의 머리 위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연우는 그곳에 앉아 아공간에서 검을 뽑고 있었다.

[‘말라흐’의 신, 아즈라엘이 당신을 보면서 웃습니다.]

[아즈라엘이 당신에게 축복을 내립니다.]

[‘올림포스’의 신, 타나토스가 기꺼워합니다.]

[‘절교’의 악마, 비마질다라가 고요한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아누비스가 당신을 주시합니다.]

[글리튼이 만족스러워합니다.]

[안쿠가 박수를 칩니다.]

[죽음의 위(位)를 지닌 신과 악마들이 당신에게 경탄합니다.]

[강한 축복이 내려집니다.]

연우는 쉴 새 없이 망막을 가득 메우는 메시지를 한쪽으로 치웠다.

26층에 들어선 뒤부터 계속 이어지는 메시지들은 어느새 죽음과 관련된 모든 신과 악마들이 그에게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음을 말해 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새로운 여러 사도직 제안과 함께, 이제는 직접적인 축복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즈라엘이 크게 기뻐합니다!]

[아즈라엘이 자신의 권한으로 권능, ‘제3천의 영’을 강화시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신비가 가능해집니다.]

[아즈라엘이 당신의 선택을 기다립니다.]

특히 아즈라엘은 이제 연우를 거의 반쯤 자신의 사도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죽음과 관련된 신 중에서 가장 먼저 적극적으로 접근을 하기도 했지만, 연우가 선택한 네 가지 권능 중에 한 가지가 자신이 내린 것이기 때문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네 권능 중에서 가장 숙련도가 높은 것도 제3천의 영이었다.

그러다 보니 연우에 대한 아즈라엘의 영향력도 자꾸 커져서, 다른 신과 악마들이 질투를 할 때마다 그는 크게 기뻐하는 중이었다.

‘원래 뻐기는 것을 좋아하는 신이라더니. 정말이군.’

물론, 아즈라엘과 반대로 이를 바득바득 가는 녀석도 있었다.

[‘르 인페르날’의 악마, 아가레스가 죽음의 신과 악마들에게 자신의 것에 눈독 들이지 말라며 핏대를 세웁니다.]

[신과 악마들이 모두 무시합니다.]

물론, 대부분이 무시했지만.

원래대로라면 르 인페르날 내에서도 서열 2위를 차지할 만큼 대 악마였던 녀석이었지만. 23층에서 크게 힘을 잃고 난 뒤부터는 동네북이나 다름없는 처지로 전락한 상태였다.

연우는 비그리드를 뽑았다. 네 개의 권능을 일제히 발현하자, 비그리드가 새하얀 광채를 드러내면서 힘차게 떨렸다. 그 위를 조금씩 검은 오러로 뒤덮으면서.

쾅!

연우는 비그리드를 세게 아래로 후려쳤다. 불의 파도가 벼락이 되어 녀석들의 머리 위를 고스란히 덮쳤다. 대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강물이 끓어올랐다.

* * *

탁!

연우는 겨우 잔잔해진 배의 난간에 가볍게 올라섰다.

지난 며칠 동안 너무 많이 이리저리 고생한 덕분에 배는 배라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여기저기가 망가져 있었다. 식인괴인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이곳저곳을 보수하는 것이 보였다.

덕분에, 처음에는 휘황찬란한 크기와 위엄을 자랑하던 배는 이제 곳곳이 낡아, 정말 말 그대로 ‘유령선’이라 보일 정도였다.

플레이어들은 그런 그를 두려워하는 얼굴로 바라봤다. 같은 배에 식인괴인이 타 있다는 사실도 이제는 아무렇지 않을 정도였다. 여기서 가장 두려운 건 연우였지, 힘도 없는 이종족의 노인이나 아이들 따위가 아니었다.

물론, 그런 걸 전혀 신경 쓸 연우가 아니었지만.

연우는 손바닥을 활짝 펼쳤다. 그러자 그 위로 수십 개에 달하는 보석이 우수수 쏟아졌다.

푸른색으로 빛나는 에메랄드.

‘해왕의 결정(結晶).’

28층에서 구할 수 있는 히든 피스로, 망자의 기운을 잔뜩 품고 있어서 가공하기에 따라서는 마력이나 신력의 유용한 공급원이 될 수도 있었다.

‘라나가 좋아하는 물건이기도 하지.’

일기장 속에 비친 라나는 반짝이는 보석과 금붙이를 아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속물적인 면이 강하지만, 그래도 그만큼 직설적인 성격을 자랑하던 사람. 정확하게는 호방하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한때 망자의 강을 주름잡던 대해적이었으니. 아니, 대수적이라는 표현이 옳을까?

라나를 처음 만난 건, 망자의 강 한가운데에서였다. 용마안이 있기 때문에 방향을 잡는 건 어렵지 않았고, 이따금 배를 노리고 달려드는 해수류만 물리치면 되니 강을 건너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간혹 해적들도 나타나긴 했지만. 어차피 크게 신경 쓸 녀석들은 아니었다. 그러다 뭍에 다다를 때 쯤에 만나게 되었다. 수하들의 복수를 하겠답시고 수십 척의 배를 이끌고 온 그녀와.

라나와의 충돌은 사소한 오해에서 빚어진 일이었다. 라나의 산하에 있는 해적들을 물리치던 중, 생존자가 그대로 달아나 라나에게 일러바치면서 부딪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결과는.

‘정우의 패배였지.’

당시 동생은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3차 각성을 이루고, 하늘 날개까지 얻으며 층계에서는 자신을 당해 낼 자가 없다면서 한창 어깨에 힘이 들어갈 무렵이었기 때문이었다.

웬만한 랭커도 동생에게는 당해 내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다 동생은 뒤늦게 라나가 이미 랭커가 된 지 오래고, 그 뒤에는 망자의 강이 주는 독특한 환경이 그리워서 돌아온 플레이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를테면, 28층의 지배자였던 셈이었다.

라나는 포로로 잡힌 동생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수하가 먼저 무례를 범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동생과 아르티야를 직접 풀어 줬다.

그리고 자신을 기만하는 수하의 목을 가차 없이 치는 대범함까지 보였다.

‘정우 녀석은 그 모습에 완전 반했고.’

동생은 라나에 푹 빠지고 말았다. 그렇게 시원시원하고 멋진 여자는 처음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비에라 듄이 질투를 하긴 했지만, 동생의 라나에 대한 감정은 연애라기보다는 동경에 가까웠다.

게다가 그녀의 검술 실력이나 마법 실력은 동생이 닮고 싶어 할 만큼 대단했다.

그리고 그 뒤로.

동생은 망자의 강에서 머물 수 있는 최대의 시간까지 머물면서 라나에게서 이런저런 기술을 배웠다.

라나도 처음에는 귀찮아했지만, 곧 강아지처럼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동생에게 친동생 같은 느낌을 받아 많은 것을 가르쳐 줬다.

그 뒤로도 사제지간은 꾸준히 이어졌다.

동생과 8대 클랜 간의 전쟁이 발발했을 때에도. 라나만큼은 동생의 편을 들어 줬다. 그 때문에 여태 일궜던 세력 대부분이 몰락하고 말았지만. 그래도 라나는 후회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뒤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일기장에 남아 있는 마지막 단서는 그녀가 자신의 거처인 수정궁에 머무는 것 같다는 게 고작일 뿐. 그 뒤로는 행방이 묘연했다.

‘그래도 금방 찾을 수 있겠지.’

라나의 성격상, 그런 일을 겪고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28층 어딘가에 숨어서 몰래 세력을 기르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어쩌면 벌써 밖으로 나왔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다시 해적이 됐을 가능성이 컸다. 워낙에 수완이 좋은 사람이니, 8대 클랜이 아무리 태클을 걸었어도 용케 빠져나갔을 것이다.

연우는 그런 라나를 클랜에 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렇다면 그녀는 대체 어디에 있을까? 먼저 수정궁의 위치를 찾아야만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동생은 일기장에다 수정궁의 정확한 좌표를 기입하지 않았다. 당시에 라나가 좌표를 읽을 수 없도록 마법 방해를 걸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찾을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

연우가 방법을 생각하면서 뭔가를 떠올리던 중.

“해, 해적이다!”

망원경으로 밖을 관찰하던 플레이어가 크게 소리를 쳤다.

연우가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눈에다 마력을 불어 넣자, 줌을 당긴 것처럼 수평선에 걸쳐 무언가가 이쪽으로 맹렬하게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이리저리 상처가 가득한 거대 함선. 높게 선 돛에 그려진 해골 문양이 해적이란 사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연우의 입가에 만족에 찬 미소가 걸렸다.

“마침 왔군. 길라잡이가.”

「……3호기들이구만. 나도 이젠 모르겠다.」

샤논의 혼잣말이 들리는 것 같았지만. 연우는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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