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278화 (278/862)

3화. 트리톤 (3)

연우는 트리톤의 전력 중 4할가량을 처리했을 때 즈음, 벤티케의 기운을 특정할 수가 있었다.

꽤 먼 거리에 홀로 외딴섬처럼 떨어져서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거선.

그것을 발견하자마자, 연우는 사냥하던 배에게서 떨어져 그쪽으로 몸을 던졌다.

아무리 잔챙이들을 많이 상대해 봤자, 우두머리를 잡지 않으면 아무 소용도 없었다. 포세이돈이 다른 수를 쓰기 전에 벤티케를 잡을 생각이었다.

팟-

바람길을 전개하면서 블링크를 잇달아 밟았다. 돌풍이 그를 따라 감돌면서 어마어마한 가속도를 붙여 나갔다.

한 번. 단 한 번의 칼질로 녀석이 타고 있을 거선을 부술 생각이었다. 가속력이 더해진 불의 파도는 이따금 연우도 두려울 정도였으니.

그때, 여태껏 옥좌에 앉아 있던 벤티케가 창을 지팡이 삼아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3미터는 될 것 같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삼지창. 창날 아래에 박혀 있는 사파이어가 묘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 순간, 벤티케가 품고 있던 마력과 신력을 단번에 개방했다. 연우는 녀석이 포세이돈이 내려 준 권능을 발현하려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벤티케의 권능이 미치는 영역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었다.

신력이 망자의 강을 따라 퍼져 나가고, 바람에 실려 하늘에 닿았다.

‘이만한 신력 개방이 가능하다고?’

연우도 놀란 얼굴이 되어 하늘을 쳐다본 순간.

우르르, 콰콰쾅!

하늘을 따라 잔뜩 모인 먹구름이 뇌전을 잇달아 토해 냈다. 폭풍이 휘몰아치면서 장장 수십 미터나 되는 해일이 일어나 연우의 사방을 가둬 버렸다.

이건 단순한 권능의 수준이 아니었다.

재해(災害).

자연을 통째로 움직이는 거대한 이적(異蹟). 자연신은 여러 신위 중에서도 상급에 속한다. 여기에 대신격까지 지녔다면. 당연히 권능은 재해 급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포세이돈은 벤티케의 손을 빌려 아예 연우를 통째로 망자의 강 속에다 파묻으려는 속셈이 틀림없었다.

연우는 가볍게 혀를 찼다.

원래는 벤티케가 타고 있는 배를 날려 버리면서 기습할 속셈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지금 개방해야 할 모양이었다.

연우는 몸을 틀면서 비그리드를 사선으로 그었다.

검은 오러 속에 단단히 압축되었던 불의 파도가 단번에 개방되었다.

여기에 가속력과 회전력이 더해지고, 72선술까지 합쳐졌다.

[불의 파도]

[성화]

[72선술 - 폭(爆), 렬(裂)]

콰르르릉!

통제하지 않은 불의 파도는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파괴력을 자랑했다. 세상을 뒤덮을 것 같던 해일을 통째로 날려 버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하늘에서 떨어지던 벼락을 아무렇지 않게 집어삼켰다.

마치 태양이라도 폭발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렬한 빛무리가 퍼져 나가고, 후폭풍이 잇달아 외곽으로 토해졌다.

해일이 증발하면서 한순간 자욱하게 퍼졌던 안개가 메말라 버리고, 망자의 강은 더 큰 격랑을 일으키면서 벤티케가 타고 있던 배를 거칠게 흔들어 놓았다.

뜨거운 열풍은 갑판 위에 있던 플레이어들의 피부를 태웠다. 자기도 모르게 헛바람을 들이켰던 플레이어는 폐가 타들어 가는 끔찍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비명은 들리지도 않았다. 엄청난 굉음에 묻혀 버렸으니.

그리고.

콰콰쾅!

이번에는 연우가 있던 곳에서부터 벤티케의 거선까지, 하늘을 따라 불벼락이 잇달아 떨어졌다.

72선술을 조합하면서 만들어진 뇌벽(雷驛). 비그리드를 잇달아 아래로 내리치면서 아예 거선을 침몰시킬 작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벤티케를 호위하는 진랑과 플레이어는 그만한 실력을 가진 자들. 그들은 저마다 스킬과 아티팩트 옵션을 발동시키면서 불벼락으로부터 거선을 보호했다.

쉽지는 않았다. 워낙에 강한 일격이 내리쳐지니, 그들은 마치 거대한 망치로 두드려 맞은 것 같은 끔찍한 고통을 맛봐야 했다. 배리어 너머로 전해지는 충격파도 만만치 않았다.

거선이 크게 위아래로 요동쳤다. 곳곳이 부서지고, 탄내가 자욱하게 퍼졌다.

그들을 더 답답하게 만드는 것은 살을 태울 것 같은 어마어마한 열기였다.

이게 정말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끔찍한 고온이 거선에다 새카만 그을음을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미쳤……!”

“저건 대체 뭐야!”

억지로 배리어를 형성하고 있던 트리톤 플레이어들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들은 분명히 연우에 대해 철저하게 분석을 해 뒀었다.

용생구자를 상대했을 때, 26층에서 아포피스의 허물을 상대했을 때, 27층에서 식인왕을 상대했을 때. 그 모든 전력들을 철저하게 분석했고, 트리톤의 현 전력이라면 벤티케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충분히 잡을 수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망자의 강은 포세이돈의 권능이 더 쉽게 다뤄지는 곳. 당연히 지형상으로도 자신들이 우세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새 더 강해진 것일까. 아니면 여태 실력을 숨기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저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었을까.

이유가 무엇이 되었건 간에, 연우의 전력은 그들이 파악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했다.

이 정도라면…… 자신들의 수장인 벤티케와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았다!

휘이이-

녀석들이 놀라건 말건 간에. 가면 아래로 비치는 연우의 눈동자는 무덤덤했다.

마치 기계처럼 녀석들을 망자의 강에다 처박겠다는 일념 하나로 비그리드를 안쪽으로 잡아당기고 있었다.

충격파에 의해 연거푸 밖으로 떠밀렸던 강풍이 안쪽으로 몰려 오기 시작했다. 고온으로 들끓는 열풍이 거대한 소용돌이를 그리고, 달아오른 대기 때문에 망자의 강이 조금씩 끓기 시작했다. 증기가 스멀스멀 휘날렸다.

연우는 다시 한 번 더 불의 파도를 터뜨릴 생각이었다. 이번에는 마력을 한껏 담아서. 기왕에 이렇게 된 것, 불의 파도가 가진 한계를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도 켰다.

망망대해 한가운데가 아니면 어디서 이런 미친 짓을 해 볼까. 게다가 저쪽에는 원수인 트리톤의 배밖에 없었다.

그렇게 강풍이 비그리드를 따라 단단히 응집되었다. 비그리드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이 크게 흔들리면서 시퍼런 광채를 토해 냈다.

그것을 그대로 휘두르려는 순간.

갑자기 연우가 있던 공간이 활짝 열리면서 벤티케가 나타났다. 일기장이나 라나의 사념 속에서 여러 차례 봤듯이, 우악스럽고 포악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딱 하나. 어떤 기연을 얻은 모양인지, 기운이 강렬하게 변해 있다는 것.

벤티케가 우악스럽게 왼손을 뻗어 연우의 머리를 후려쳤다. 녀석의 손끝에는 푸른색 구슬이 여러 개 맺혀 있었다.

정확하게 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망자의 강물을 신력으로 극한까지 압축시킨 것으로 보였다.

연우는 몸을 틀면서 수평으로 휘두르려던 비그리드를 수직으로 쳐올렸다. 응집되었던 불의 파도가 다시 한 번 더 폭발했다. 벤티케의 왼손에 맺혔던 푸른 구슬도 터졌다.

콰드드득-

쿠르릉!

불길과 물기둥이 충돌하면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소용돌이를 그렸다.

두 소용돌이가 맞물리면서 대기가 찢겨 나가고, 반발력은 더 큰 회오리를 만들어 내고 말았다.

망자의 강에서부터 하늘까지 다다르는 엄청난 크기의 용오름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용오름도 내부에서부터 터져 나온 후폭풍에 갈가리 찢겨 나갔다.

물방울이 소낙비처럼 후두둑 떨어지다가 들끓는 대기에 증발해 사라지고, 망자의 강은 이제 용암처럼 펄펄 끓기 시작했다. 격랑이 이어지고, 폭풍이 요동쳤다.

그 중심에서.

연우는 다시 한 번 더 마력회로를 최대로 출력시키면서 비그리드를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벤티케는 양손으로 트라이아나를 쥐면서 아랫부분을 위로 쳐올렸다.

차앙-

쾅!

맑은 쇳소리와 함께 다시 한 번 더 물기둥이 두 사람 사이로 높게 솟구쳤다.

물을 아주 예리하게 압축시킨 칼날이 연우의 가슴팍을 가로질렀고, 불벼락이 벤티케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이번 충돌은 두 사람에게도 제법 피해가 심했다.

연우와 벤티케는 서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재차 부딪치지 않고, 뒤로 멀찍이 떨어졌다.

“크할할할! 저층 구간에 아직까지 이런 실력자가 있었을 줄이야! 놀랄 일이군! 역시 탑의 세계는 재미있어. 아주!”

벤티케는 수면 위에 올라선 채로, 상체를 깊게 가로지른 화상 자국을 왼손으로 매만졌다. 시뻘건 불씨가 남아 살갗을 깊숙하게 좀먹어 가고 있었지만. 그래서 끔찍한 고통이 따랐지만. 그는 그만큼 희열을 느꼈다.

원래 벤티케는 이번 일을 맡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한창 여러 세력들의 난립으로 시끄러운 이때. 트리톤에 집중하기도 바빴던 것이다.

특히 트리톤과 함께 떠오른 신흥 4대 세력들, 그중에서도 환상연대가 나날이 덩치를 부풀리고 있는 중이라, 그들을 견제하는 데에도 정신이 없었다.

모시는 신인 포세이돈이 아무리 채근을 해도, 하고 싶은 일이 아니면 절대 안 하는 성격인 그로서는 듣는 척도 않았었다.

포세이돈이 사도직을 박탈하겠다고 으르렁거려도, 벤티케는 코웃음을 치면서 그러라고 할 사람이었다.

그가 포세이돈의 사도가 된 것은 어디까지나 더 편리하고 강한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을 뿐. 스스로의 실력에 대해 충분히 자신감이 있었기에, 포세이돈이 아니더라도 다른 신을 모시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벤티케를 사도로 삼고 싶어 하는 신과 악마는 꽤 많은 편이었다. 또한, 포세이돈도 그런 벤티케의 배짱과 자신감을 내심 흡족해했기 때문에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포세이돈은 사도로서의 임무를 수행할 것을 강권했다. 필수 퀘스트라는 타이틀을 단 것이다.

벤티케도 포세이돈이 이렇게까지 채근을 한 적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했다. 한편으로는 수하들이 가져온 보고가 꽤 흥미를 부르기도 했었다.

저층 구간에서부터 돌풍을 일으킨 루키. 각 층계의 명예의 전당 신기록을 갈아 치우고, 올포원 외에는 아무도 손을 대지 못했던 21층의 타이스코어를 달성한 자.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벤티케는 포세이돈을 이토록 자극한 녀석이 누군가 궁금했다. 언제나 오만해서 하계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포세이돈을 격분하게 만든 녀석이라면. 한 번 확인 해 봐도 되지 않을까 싶었었는데.

아무래도 그의 예상보다 훨씬 더 큰 재미를 줄 것 같았다.

창을 찌르르 울리게 만드는 이 통증. 감히 패왕의 창을 쳐 낼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아무나 해내지 못하는 일이었다.

벤티케는 흥미진진한 얼굴로 연우를 위아래로 살폈다. 검은 가면과 옷. 그리고 등에 단 불의 날개까지. 생김새가 참 독특한 녀석이다 싶었다.

“음?”

그러다 벤티케는 연우가 목에 착용하고 있는 목걸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검고 붉은 광채를 띠고 있어서 여태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건 분명 벤티케에게 낯이 익은 물건이었다.

“그 물건, 어디서 났지? 수정궁에라도 다녀왔나?”

죽은 헤븐윙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

라나가 마지막까지 쥐고 있어서 불쾌했던 기억이 남아 있었다. 벤티케에게 헤븐윙은 죽어서도 라나를 구렁텅이로 빠뜨린 망령이며, 푸른 장미를 몰락시킨 녀석이었으니까.

생전의 그에 대한 좋은 기억은 남아 있을지언정, 그가 죽고 나서 좋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

하지만 연우는 왼손으로 목걸이를 매만지기만 할 뿐, 아무 말도 않았다.

벤티케의 묘한 시선과 더불어 곳곳에서 달라붙는 여러 눈길들이 있었지만 무시했다. 그중 적의를 띤 시선은 더더욱 무시했다.

[포세이돈이 당신에게 신벌을 내리고자 합니다.]

[포세이돈이 주시합니다.]

[포세이돈이 강한 살의를 내비칩니다.]

[헤르메스가 당신을 응원합니다.]

[아테나가 당신에게 가호를 내립니다.]

[아테나가 승리를 기원합니다.]

[아테나가 고요한 눈빛으로 포세이돈을 노려봅니다.]

[신의 사회, ‘올림포스’가 포세이돈과 아테나의 신경전으로 침묵에 잠깁니다.]

[여러 신과 악마의 사회가 ‘올림포스’를 지켜봅니다.]

‘그러고 보니 포세이돈과 아테나는 숙질 관계이면서도,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었지.’

아테나는 연우에게 호의를 보인다. 반대로 포세이돈은 살의를 내비친다. 신화에서처럼, 여기에서도 둘은 대립을 하고 있었다.

연우는 권능을 통해 개설된 채널링으로 신력이 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가레스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즈라엘이 내린 가호에 아테나까지. 참 자신에게 관심을 두는 이들이 많다 싶었다.

역시 신과 악마들에게 자신들은 유희거리에 불과한 것인지. 그런 불쾌함을 속으로 적잖게 느끼면서.

연우는 벤티케를 보고 말했다.

“넌 아포피스의 허물이나 식인왕과는 달랐으면 좋겠는데.”

“뭐?”

벤티케는 자신의 질문에 대답은 않고 이상한 말을 해 대는 연우를 보면서 인상을 찌푸리려다가, 갑자기 연우를 둘러싼 공기가 달라지는 것을 느끼고 눈을 크게 떴다.

[용체 각성]

[제3천의 영]

[흉신악살]

[여신의 성흔]

콰드드득-

연우의 피부를 따라 용의 비늘이 잔뜩 올라오면서 눈 밑까지 덮고, 외부로 방출되었던 망령들이 돌아와 체내로 스며들었다.

현자의 돌이 최대 출력을 내기 시작했다. 마력이 빠르게 돌면서 마성이 조금씩 번져 나오고, 여기에 하늘에서부터 전장의 여신이 내리는 신력이 더해지면서.

화아악-

연우는 용종과 악마와 신, 세 초월종의 힘이 한껏 담긴 비그리드를 거세게 휘둘렀다.

번쩍, 하는 광채와 함께. 공간이 갈라지면서 절단면을 따라 검은 오러가 벤티케를 가르고 지나갔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