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283화 (283/862)

8화. 트리톤 (8)

“제기랄! 더 빨리! 더! 더!”

“이 이상은 속도가 안 나!”

“젠장!”

갑판 위는 아수라장이었다.

유령선은 28층에 들어선 이후로 가장 높은 속도를 내고 있었다. 바람의 정령들이 쉴 새 없이 바람에 힘을 불어넣고, 늙은 식인괴인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웬만한 배는 절대 쫓아올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지만.

그런데도 왈츠와의 거리는 멀어지기는커녕 계속 가까워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점처럼 아주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던 것이, 이제는 몸의 윤곽까지 보일 정도로 커져 있었다.

퍼퍼펑-

플레이어들은 다가오지 말라면서 포문을 활짝 열기까지 했다. 포탄에 마력과 스킬이 잔뜩 더해 지면서 왈츠에게 날아들었지만.

콰콰쾅!

왈츠는 귀찮게 구는 파리를 내쫓는 것처럼 팔을 앞으로 내저었다. 그렇게 일어난 강풍은 포탄을 허공에서 그대로 격추시켰다. 폭음이 잔뜩 울리고, 시커먼 매연이 퍼졌다. 왈츠는 그 사이로 통과했다.

“젠, 젠장!”

그런 모습들이 플레이어와 식인괴인들에게는 너무 두렵게만 다가왔다.

그들의 눈에는 왈츠가 항거 불능의 재앙으로만 비쳤다.

그도 그럴 것이, 악귀처럼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한 왈츠는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리게 만드는 무지막지한 기도를 내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외뿔부족이 가진 오만함과 반인반룡이 가질 수 있는 드래곤 피어까지. 탑 내에서도 최강이라는 두 종족의 특성을 조합해서 만들어진 왈츠는 이미 여름여왕에 이어 새로운 공포로 군림하고 있는 중이었다.

당연히 그런 존재가 날아온다면 공포에 질릴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붙잡혀서, 배와 함께 망자의 강에 처박힐 것 같았다.

그랬다가는 강물 속을 영원히 떠돌아다닌다는 유령들과 똑같은 꼴이 되고 말겠지. 그들의 속이 바짝 타들어 갔다.

그런데도 하이디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이미 입가를 따라 핏물이 잔뜩 번져 나오고, 머리카락은 은색으로 세다 못해 퍼석한 백발로 변하고 있는 중이었지만. 그래도 배를 움직이고 또 움직였다.

연우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아르드바드 공작에게 안겨 있는 동안 잠깐 혼절했던 그는 정신을 어느 정도 되찾은 상태였다. 육체도 복구가 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기운까지 모두 회복되지는 않아, 몸이 물먹은 솜처럼 너무 무거웠다.

“지금 그런 몸으로 일어나시면!”

하이디는 뒤늦게 연우가 일어나는 것을 발견하고 그를 말리려 했지만.

“나를…… 구해 준 이유가 뭐지?”

연우는 차가운 어투로 그녀의 말허리를 끊었다.

하이디는 아주 잠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날 버리고 가도 됐을 텐데.”

사실 연우는 진심으로 하이디의 선택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처음 왈츠의 원영신이 나타났을 때까지만 해도, 그는 어떻게 빠져나갈지 수없이 머리를 굴리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예기치 않게 하이디의 도움을 받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벤티케와 싸우고 있던 중에 녀석들이 도망쳤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까지 했다.

판트나 에도라라면 모를까. 사실 이렇다 할 감정적인 교류도 나누지 않았던 하이디 등의 도움에 대해서는 전혀 염두에 두지도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궁금했다.

과연 무슨 생각으로 자신을 구해 준 것인지.

어떤 것을 얻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섬에서 받은 은혜의 보은(報恩)이라고 여기는 것일까.

왈츠가 쫓아오는 상황에서 속 편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연우에게는 그만큼 궁금하고 중요한 답변이었다.

타인과의 신뢰. 아직까지 그에게는 어렵기만 한 과제 같은 그것에 대한 어떤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누구처럼 되고 싶지 않아서요.”

“누구?”

“네.”

하이디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이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이게 전부예요.”

연우는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자신이 예상했던 답변 중 어느 것도 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녀에게는 그녀 나름대로의 트라우마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은발벽안. 짚이는 게 있긴 하지만.’

한때, 하이 엘프를 영도했다는 전설적인 가문, 프레이 가(家). ‘세계수의 조경사’라고도 불리는 그들은 외뿔부족과 함께 신혈에 가장 가까운 일족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닥친 비극은 가문의 멸망은 물론, 한때 장대한 크기를 자랑했던 세계수를 메마르게 만들었으니.

하이디를 이렇게 ‘동료애’라는 강박 관념에 얽매이게 만든 것은 그때의 비극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우에게는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트라우마는 뇌리 한편에 박혀 사람을 늘 궁지로 몰아넣지만, 때로는 새로운 원동력을 낳기도 한다. 지금의 연우도 바로 그런 트라우마가 만들어 낸 것이었으니까.

“넌 한 번쯤 더 믿어도 되겠어.”

“무슨……!”

연우는 하이디의 말을 무시하고, 마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몸이 요란하게 비명을 질러 댔지만. 오히려 그런 고통이 연우의 정신을 또렷하게 만들었다.

그는 아주 잠깐이나마 자신이 여태껏 오만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웬만한 플레이어쯤은 쉽지 않을까 여겼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더 기뻤다.

자신의 심장 속에서 풀려난 맹수가. 괴물이. 더 성장하고, 더 난폭하게 날뛸 수 있다는 사실이.

물론, 그렇다고 해서 괴물에 잡아먹힐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다.

몸뚱이는 괴물에게 맡기되, 머릿속은 최대한 차갑게 식혔다. 용마안과 초감각을 개방했다. 시차 괴리를 발동시키면서 여기서 빠져나갈 루트를 떠올렸다.

다행히. 한 가지 길이 있었다.

왈츠의 맹추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을 만한 곳이.

‘하지만 녀석을 따돌리고, 어떻게 거기까지 가느냐가 관건인데. 정확한 위치도 알 수 없고.’

장소는 있다고 해도 거기까지 다다를 방법이 쉽게 떠오르질 않았다. 목적지는 있는데, 길이 안개에 싸여 보이지 않는 기분.

‘그래도 해 보는 수밖에.’

물론, 연우는 지금의 몸 상태로 무작정 왈츠와 붙을 생각은 아니었다. 아무리 원영신이라고 해도, 상대는 자신보다 월등히 강했다.

‘일단 저길 이용해 봐야 할 것 같은데.’

넓게 퍼뜨린 초감각의 영역 너머.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해역에서, 대규모 선단이 이쪽을 향해 빠른 속도로 이동 중인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물러났던 트리톤이 크게 선회해서 다시 접근을 하고 있는 것인가 여겼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전혀 다른 무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트리톤보다는 92단에 가까운 자들. 연우는 어쩌면 그들이 환상연대인지 뭔지 하는 곳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해적단 무리일 게 뻔하니 끌어들여서 나쁠 것도 없었다.

「인성…….」

샤논이 연우의 생각을 읽고 작게 중얼거렸지만, 연우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아공간에서 비그리드를 뽑았다.

지이잉-

현자의 돌이 돌아가면서 마력을 실었다. 다행히 과열되었던 코어는 그동안 휴식을 취하면서 정상적으로 작동 중이었다.

어느새 왈츠가 눈앞에까지 다다르고 있었다.

연우는 비그리드를 양손으로 꽉 쥔 채, 자세를 취하면서 그대로 검을 아래로 내리쳤다.

[불의 파도]

[성화]

[72선술 - 뇌, 벽]

팔극검의 비기, 단천을 따라 세 개의 스킬이 융합되면서 하늘에 서 다시 한 번 더 벼락이 내리쳤다. 마지막 남은 기력까지 전부 쥐어짠 일격이었다.

콰콰쾅!

쿠르르-

“허튼짓!”

벼락과 맞닥뜨린 왈츠의 원영신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원영신이 두 개로 분리되면서 힘이 또 다시 그만큼 줄어들었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깟 힘 빠진 벼락에 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도리어 귀찮기만 했다.

왈츠는 손날을 바짝 세워 허공에 비스듬하게 그었다. 단절된 공간을 따라 벼락이 내려오다 말고 도중에 잘리면서 사방으로 갈라졌다. 부서진 벼락들이 수면을 때리면서 물기둥이 치솟고, 희뿌연 안개를 잔뜩 토해 냈다.

콰르릉, 콰릉, 콰르르-

하지만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는데도 불구하고, 연우는 쉴 새 없이 불벼락을 내리쳤다.

왈츠의 손날도 그만큼 바빠졌다. 손그림자가 화려하게 허공에다 수를 놓았다. 수강(手罡)이 연거푸 토해지면서 매화 꽃잎이 되어 흩날리고, 짙은 향을 사방에 풍겼다.

〈매화이십사수〉. 단 한 번 손짓을 하는 것만으로 스물네 개의 그림자를 만들어 낸다는 무공에 따라, 왈츠를 둘러싼 공간 여기저기가 단절되면서 벼락이 수도 없이 쪼개졌다.

이대로 눈이 머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렬한 빛이 잿빛 세상을 환하게 밝혔다.

그 속에서 왈츠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끼친 벼락은 단 한 개도 없었다. 그녀의 주변에는 향긋한 매화 향기만이 떠돌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도 왈츠는 추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어느새 허공을 크게 박차면 다다를 수 있을 만큼, 유령선과 간격을 바짝 좁힐 수 있었다. 선두 위에 선 연우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다.

번-쩍!

콰르르르-

여태껏 왈츠가 상대했던 벼락들을 전부 응축시킨 것처럼 강렬한 불벼락이 떨어졌다.

왈츠는 그것이 연우가 전개할 수 있는 마지막 힘이라는 것을 깨닫고, 잠시 걸음을 멈추며 호흡을 골랐다.

이번에는 쉽게 잘라 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마력을 잔뜩 응축시킨 경력을 날려 단번에 부숴야 할 것 같았다. 백보신권의 일보맹격(一步猛擊)이라면 충분하리라. 그런 생각으로 전사경을 구사하려는데.

“……뭐지?”

그녀의 머리 위로 떨어질 것처럼 굴던 벼락이 갑자기 방향을 꺾더니 저만치 먼 곳으로 떨어졌다. 연우의 노림수를 알 수가 없어 왈츠의 머리가 자기도 모르게 그쪽으로 고개를 돌아갔다.

그리고 그 순간, 왈츠는 자신과 연결된 또 다른 원영신과의 연결 고리가 끊어졌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마지막 불벼락은 자신이 아닌 아르드바드 공작의 발목을 묶고 있던 원영신에게 떨어진 것이다!

“……!”

물론, 그 불벼락이 원영신을 잡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기습으로 놀라게 하긴 충분했고, 아르드바드 공작은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원영신의 목을 잘라 버렸다.

원영신이 부서지면서 생긴 반발력이 유령선에 가까워졌던 왈츠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울컥!

왈츠의 원영신은 자기도 모르게 피를 토하고 말았다. 육체의 형태를 띠고 있던 기체(氣體)가 흐트러지고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기껏 남은 원영신도 망가질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겨우 통제를 시도하려는데.

갑자기 그녀의 머리 위로 포탈이 활짝 열렸다.

“쥐새끼 같은 년이!”

아르드바드 공작이 그 아래로 떨어지면서 자이언트 바스타드 소드를 크게 내리쳤다. 텔레포트 스크롤을 사용하여 나타난 것이다.

그는 전신이 피투성이가 되어 혈인(血人)의 몰골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눈만큼은 부리부리하게 떠져 분노로 활활 타오르는 중이었다.

감히 자신을 앞에 두고 수작을 부린 그녀의 태도가, 그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은 탓이었다.

콰앙!

왈츠의 원영신은 어떻게 기체를 통제할 겨를도 없이 양팔을 교차 시켜야만 했다.

그 위로 마력이 잔뜩 실린 검격이 떨어졌고, 충격파로 수면이 눌리면서 다시 한 번 더 망자의 강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그러자 여태 그녀를 둘러싸던 안개가 확 걷히면서 주변 상황이 훤히 드러났다.

어느덧 백여 척에 달하는 대선단이 왈츠와 아르드바드 공작의 주변에 포진하고 있었다. 검이 아래로 놓인 십(十) 자 문장. 환상 연대의 2단, 크로이츠의 환영기사단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었다.

환상연대도 갑작스럽게 하늘 위에서 뚝 떨어진 두 사람 때문에 놀란 눈치였지만, 곧 큰 혼란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모는 포구를 왈츠 쪽으로 겨누었다.

콰콰광-

포문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독식자아아아!”

졸지에 왈츠는 수많은 공격에 둘러싸인 채, 분노에 젖은 목소리로 연우를 찾았다.

* * *

“다, 단장님!”

크로이츠는 수하의 외침에 고개를 끄덕였다.

트리톤과 혈국, 화이트 드래곤이 연우를 쫓았다는 소식에 다급하게 기사단과 다른 연대를 이끌고 28층에 도착했건만.

상황이 대체 어떻게 돌아간 건지, 연우를 쫓아온 자리에는 피투성이가 된 아르드바드 공작과 왈츠가 있었다.

때문에 그들은 크게 놀랐지만, 침착하게 움직이면서 포구를 일제히 녀석들에게로 겨누었다.

보아하니 두 사람은 연우를 쫓고 있는 것 같았다. 트리톤이 보이질 않아 의아했지만, 지금은 일단 연우가 무사히 도망칠 수 있게 시간을 벌어 주는 게 급선무인 것 같았다.

크로이츠가 은색 투구를 깊게 눌러쓴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있던 부관이 복명하면서 수하들에게 소리쳤다.

“쏴라! 한 놈도 남기지 마라!”

퍼퍼퍼펑!

마이스터의 자격을 얻은 장인들이 특별히 고안했다는 마법 포격이. 일제히 왈츠와 아르드바드 공작을 마구 유린했다.

* * *

“……빠져, 나왔나?”

왈츠, 아르드바드 공작, 환상연대가 복잡하게 얽힌 해역에서 한참을 벗어난 후.

유령선의 선원들은 그제야 안도에 찬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털썩. 델란과 쥰은 물론, 여러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바닥에 주저앉았다.

요란하기 짝이 없던 전장에서 이탈하는 내내, 혹시나 왈츠가 추격해 오는 게 아닐까 싶어 도무지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 시간가량 도망친 뒤에도 왈츠가 나타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그제야 마음 놓고 겨우 숨을 돌렸다.

이미 다리에는 힘이 실리지 않았다. 여전히 양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하이디도 마찬가지였다. 난간에 등을 기댄 채, 가만히 숨만 내뱉을 뿐이었다. 계속된 마력 소비와 정령 사용은 그녀의 한계를 밑바닥까지 드러냈다.

덕분에 여태 숨기고 있던 은발 벽안이 드러나고 말았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다면 정말 망자의 강을 떠도는 원귀가 되었을 게 분명했기에, 후회는 없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아버지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이디는 그렇게 숨을 돌리다, 어느 정도 정신을 추스르게 되었을 즈음에야 겨우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여전히 선두에 앉아 바다를 지켜보는 연우가 보였다.

왈츠를 물리친 뒤로, 연우는 줄곧 저 자세였다. 자리에서 이탈하지를 않았다.

‘여기서 가장 힘든 건 저 사람일 텐데.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다. 분명 배에 실릴 때까지만 해도 그의 상태는 중상이었으니까. 그런데도 저렇게 경계를 멈추지 않는다는 건, 정신력이 남다르다는 뜻이었다. 대체 그는 어떤 생활을 해 온 것일까?

하이디는 연우에게 도와드려도 될까요? 말을 건네며 조심스레 다가가고 싶었지만, 혹시 방해가 되지 않을까 싶어 섣불리 접근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머뭇거리는데. 갑자기 연우가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면 속에 있는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하이디라고 했지?”

“예? 예!”

“기력은 좀 돌아왔나?”

“네. 움직일 정도는…….”

뭘 시키려는 걸까. 하이디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그럼 뒤를 부탁하지. 목표지는 설정해 뒀으니, 따로 걱정을 할 필요는 없을 거야.”

“무슨……?”

하이디가 말뜻을 묻기도 전에, 연우의 몸이 갑자기 앞쪽으로 무너졌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다급하게 뛰어가 그를 받았다. 쿵. 가슴팍으로 연우의 얼굴이 떨어졌다. 무거우면서도 단단한 몸집이 느껴졌다.

“카, 카인?”

하이디가 화들짝 놀라 연우를 조심스레 불렀지만, 그는 아무 대답도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두 눈을 감은 채 혼절해 있었다. 쌔액. 쌔액. 얕은 숨소리만 들렸다.

아, 이 사람도 사람이었구나. 하이디는 연우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태껏 괴물 같은 모습만 봐서 정말 괴물처럼 생각 했지만,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막연히 어렵게 느껴지던 그가 조금은 가까워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푹 쉬세요.”

하이디는 연우가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무릎베개를 해 주면서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정령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그의 숙면을 도왔다.

미풍이 머리칼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목적지는 망망대해 어딘가에 있을 베이럭의 섬이었다.

* * *

그사이.

뽀르륵-

연우에게서 이탈한 괴이가 강 깊숙한 곳에서 헤엄을 치다, 마침 해류에 휩쓸리던 뭔가를 발견하고 단번에 낚아챘다.

키키키키!

이것을 주인님이 알면 얼마나 기뻐할까. 괴이는 벌써부터 주인님께 칭찬을 들을 생각을 하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녀석이 발견한 건, 잘려 나간 벤티케의 오른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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