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286화 (286/862)

11화. 섬 (3)

[칠흑왕의 비탄]

분류: 발목 방어구

등급: ???

설명: ???

**이 아티팩트는 ‘유니크’입니다. 탑에서도 오로지 단 한 개밖에 존재하지 않으며, 주인에게 완전히 귀속됩니다. 타인으로의 거래나 양도가 불가능합니다.

**현재 아무런 정보도 파악할 수 없습니다. 일정한 자격이나 조건을 갖춰야만 권한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처음 족쇄의 정보창을 열었을 때에는 벤티케와의 싸움으로 정신이 너무 없어서 내용을 제대로 살피질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확인해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자격이라…….’

칠흑왕의 정체에 대해 추론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는 것이기에.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것은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자격이나 조건이 뭔지도 언급이 없으니 더 짜증 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단서가 아예 없어지는 건 아니지.’

연우는 검은 팔찌의 정보창을 열었다.

[칠흑왕의 절망]

분류: 손목 방어구

등급: ???

설명: 과거 ???들은 위대하며 지고한 존재인 칠흑왕을 당해 낼 재간이 없어 늘 두려움에 잠겨야만 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그를 배신하고 어둠 속에 유폐시켰다.

칠흑왕은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오랜 세월 동안 배신감에 치를 떨며 격노를 터뜨렸다. 덕분에 그를 구속하던 3개의 형틀은 변질되어 그의 수족이 되었다.

형틀 속에 담긴 원한은 음험하기 때문에 소유자를 시험하려 호시탐탐 노릴 것이다.

힘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주의하자.

……

연우는 옵션과 주의 사항을 모두 제하고, 설명에만 집중했다.

처음 칠흑왕의 절망을 얻었을 때에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포세이돈의 트라이아나를 집어삼킨 비탄까지 얻은 지금은 어느 정도 추론이 가능했다.

‘첫 문구에 나오는 물음표는 ‘올림포스의 신’이 아닐까?’

칠흑왕의 세트는 제우스와 포세이돈의 신물을 집어삼켰다. 이것은 곧 칠흑왕이 올림포스와 적대적인 관계를 이뤘다는 뜻.

특히 연우는 ‘배신감’이라는 단어에 집중했다. 배신이라는 감정은 보통 가까운 친지나 동료가 등을 돌렸을 때에 느끼는 감정이다.

그러니 칠흑왕은 올림포스와 적대 관계를 이루기 전에 아주 친밀한 관계였었다는 것도 유추할 수 있었다.

‘어쩌면 칠흑왕이 올림포스 소속의 신격이었는지도 모르지.’

사실 올림포스의 신화는 제우스가 주도권을 잡기 전까지, 온통 전쟁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티타노마키아와 기간토마키아로 대변되는 두 거대 전쟁부터, 우라노스의 멸절과 트로이 전쟁 같은 영웅들의 이야기까지.

그 과정에서 올림포스에 소속되어 있다가 제거된 신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게다가 연우가 알고 있는 신화가 무조건 옳으리란 법도 없었다. 하계에는 알려지지 않은 이면이 있을지도 모르고, 뒷이야기에서 몰락한 신이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여기까지만 해도 범위는 한껏 축소시킨 상태.

여기에 몇 가지 단서를 더 대입해 보면 칠흑왕의 후보군은 몇 남지 않는다.

‘올림포스에 속해 있거나 가까운 존재들 중에서, 죽음과 관련된 자들.’

칠흑왕의 절망이 가진 특성을 떠올리자, 순간 자신에게 따라붙는 시선들이 더 강렬해졌다.

[아즈라엘이 당신을 가만히 지켜봅니다.]

[올림포스의 신, 타나토스가 당신을 살핍니다.]

[천교의 신, ‘태산부군’이 팔짱을 끼며 당신을 살핍니다.]

[에아의 신, ‘네르갈’이 미친 듯이 크게 웃음을 터뜨립니다. 과연 필멸자로서 그것을 감내할 수 있겠냐며 비웃음을 던집니다.]

[데바의 신, ‘크시티가르바’가 슬픈 눈으로 바라봅니다.]

[‘디스 페이더’가 음흉하게 웃습니다.]

[‘이자나미’가 마른침을 삼키며 바라봅니다.]

……

[니플헤임의 악마, ‘헬’이 당신에 대한 색욕을 드러냅니다.]

[르 인페르날의 악마, ‘할파스’가 날개를 퍼덕이며 소리를 지릅니다. 광기를 드러냅니다.]

[‘아이쉬마- 다이바’가 고요한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

[죽음의 신들이 모두 당신을 지켜봅니다.]

[죽음의 악마들이 모두 당신의 판단을 기다립니다.]

[아가레스가 내 것에 손대지 말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지목받은 신과 악마들이 무시합니다.]

하나같이 ‘죽음’ 혹은 ‘저승’과 관련되었다는 신과 악마들.

칠흑왕의 비탄을 얻었을 때부터 계속 따라붙던 시선들은 시간이 갈수록 더 끈적끈적하게 변하더니, 이제는 아예 노골적으로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이들이 노리고 있는 것이 칠흑왕의 물품들이라는 건 확실했다.

‘확실히 이 팔찌를 얻기 전까지만 해도, 죽음과 영혼을 다루는 아티팩트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으니까.’

사실 이것은 연우가 계속 가지고 있던 의문이었다.

탑의 세계에서 강령이나 부두술 같은 네크로맨시 계통의 마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부만 해도 생전에 시체와 영혼을 다루던 부두술사였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일개 플레이어가 영혼을 다루는 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이렇게 천 마리가 훨씬 넘는 영혼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는 사실은 들어 본 적도 없었고, 심지어 일기장에도 그런 플레이어가 있다는 말은 언급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특히 영혼을 강화시켜서 권속으로 삼는다는 말은 더더욱 없었다.

역대 플레이어들 중에서 죽음에 가장 가까웠다고 평가받는 흡혈 군주 바토리도 이런 신기(神奇)를 부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칠흑왕의 절망은 이런 신기를 가능케 하였고.

연우의 전력을 대폭 증강시켰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권속들과 함께 힘을 합치면 용생구자도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였으니.

바토리가 아무리 무리를 이루는 군주의 특성을 지녔어도, 절대 연우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연우가 아직 격이 닿질 못해 모든 능력을 열지 못했을 뿐.

칠흑왕의 절망은 아직도 더 많은 힘을 내포하고 있었다. 여전히 풀리지 않은 옵션이 두 개나 더 있었고, 컬렉션의 크기도 계속 커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야말로 권능을, 아니, 아예 권능의 수준을 넘어선 힘이 담겨 있는 것이다.

아즈라엘을 비롯한 죽음의 신과 악마들이 눈에 불을 켜면서 살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즈라엘의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메시지: 아무것도 의심하지 말지어다. 너는 그분의 선택을 받은 유일한 인간일지니. 신인이 될 자격이 있도다.]

[아즈라엘의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메시지: 그러니 받아들여라. 굳게 믿고, 따라라. 그런다면 추후에 영광이 따를 것이다.]

[아즈라엘의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메시지: 또한, 나를 받아들여라. 나의 사도, 나의 화신, 나의 신하, 나의 영육(靈肉)이 되어라. 내가 너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겠다. 나야말로 위대한 그분의 충실한 종일지언저.]

[아즈라엘의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메시지: 네게 나눠 준 권능 또한, 본디 원천은 그분에게서 비롯 된 것…….]

[아가레스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메시지: 안 된다! 저딴 음흉한 놈은 내버려 두고 날……!]

연우는 아가레스의 메시지를 옆으로 치우고, 아즈라엘의 메시지를 살폈다.

두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아즈라엘이 직접 종을 자처한다고?’

연우는 고개를 높이 들었다. 자신은 보이지 않지만, 저 위에서는 자신을 보고 있을 아즈라엘을 향해.

그가 알기로 아즈라엘은 절대 신격이 낮지 않았다. 아니, 애당초 생명의 생사를 주관한다는 존재이니만큼 절대 격이 낮을 수가 없었다.

포세이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당연히 아즈라엘의 오만함도 불에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자신을 낮춘다는 건. 그만큼 칠흑왕이 생전에 대단한 존재였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더군다나.

[타나토스가 침묵합니다.]

[태산부군이 침묵합니다.]

[네르갈이 침묵합니다.]

[크시티가르바가 침묵합니다.]

……

여기에 대해 한마디씩 던질 법한 죽음의 신과 악마들이 아주 조용했다.

여태껏 연우가 파악했던 신과 악마들은 오랫동안 98층에 억류되어 있기에 심심해서 몸살이 나는 존재들이었다. 그래서 조금만 눈에 띄는 것들이 있으면 흥미를 가졌고, 냉소를 던지는 등 다양한 평가를 보였다.

하지만 지금 조용하다는 건. 역시 신과 악마들은, 아니, 적어도 죽음의 신과 악마들은 칠흑왕이 누구인지 알고 있거나, 짐작하고 있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문제가 생겨. 아즈라엘은 말라흐의 신이다. 올림포스와는 아무런 접점이 없어. 그렇다면 올림포스와 연관이 있을 거라던 내 생각이 틀렸나?’

의문점은 또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하데스가 여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이상하고.’

현세대의 올림포스를 만든 주축은 바로 제우스, 포세이돈, 하데스였다. 각각 하늘, 바다, 땅을 관장하며, 특히 하데스는 죽음과 저승을 다스리는 존재이기도 했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격한 반응을 보여야 하는 신이란 뜻이었지만.

연우는 여태껏 단 한 번도 하데스와 관련된 메시지를 받아 본 적이 없었다.

혹시 놓친 건 아닐까 싶어서 지난 메시지를 전부 살펴보기도 했지만, 역시나 없었다.

‘그렇다면 칠흑왕이 하데스일까? 혹시 하데스가 모종의 이유로 제우스와 포세이돈에게 배신을 당했고, 어딘가에 갇힌 것이라면…….’

이것도 일리는 있었지만, 하데스가 다른 죽음의 신과 악마들보다 격이 높다고 단정을 내리기는 어려웠다.

‘아니면 제우스 등에게 당했다던 크로노스인가? 그보다 더 가서 우라노스?’

연우의 두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루시엘일 가능성도 아예 없진 않을 테고…….’

아주 오래전에 하늘로 오르기 위해 날개를 펼쳤다가, 여러 신과 악마들로부터 날개가 찢겨 추락했다던 존재. 그도 후보군에서 아예 제외하긴 어려웠다.

‘일단은 이 정보창의 봉인을 풀거나, 마지막 단서를 더 찾아야겠어.’

정보창에는 분명히 칠흑왕을 봉인한 구속구가 총 3개라고 했다. 에도라는 혜안으로 구속구를 살피면서 3개가 각각 수갑, 족쇄, 항쇄(목에 차는 칼)일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었다.

그렇다면 마지막 항쇄가 어디서 비롯될지도 뻔했다.

‘하데스의 마법 투구, 퀴네에.’

하지만 연우가 알기로 하데스의 사도는 아직까지 탑에 존재하지 않았다.

있어도 모르는 것일 수도 있지만, 당장 벤티케처럼 당장 퀴네에를 찾을 방법은 없었다.

그래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퀴네에를 당장 획득할 수 없다면, 그것을 얻을 방법을 찾아내면 된다.

그리고 더불어서 연우는 이참에 수갑과 족쇄에 대해서도 더 상세하게 알아볼 생각이었다.

‘제우스 등에게 신물을 직접 제작해 줬다던 키클롭스 3형제. 그들을 찾아야겠어.’

브론테스, 스테로페스, 아르게스. 이들은 우라노스와 가이아의 자식이었지만, 단안기형(單眼畸形)의 외모가 끔찍해 타르타로스에 갇혔다가 제우스가 구출해 주면서 감사의 뜻으로 아스트라페, 트라이아나, 퀴네에를 제작해 바쳤다는 전승이 있었다.

이들과 관련된 단서라면 짐작 가는 게 몇 개가 있었다. 연우는 30층을 통과하는 대로, 그들의 행방을 뒤쫓을 생각이었다.

그때는 자신이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사실도 새롭게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우웅, 웅-

연우는 손목에 감긴 팔찌를 가만히 손으로 쓰다듬었다.

그를 보고 있는 죽음의 신과 악마들의 시선은 여전히 끈적끈적하고, 집요했다.

그것이.

연우는, 못내 불쾌했다.

* * *

‘그래도. 일단 몸 회복이 먼저겠지.’

연우는 집요한 시선들을 무시하면서 그림자 속에서 뭔가를 조용히 꺼냈다.

잘린 벤티케의 오른팔이었다. 사실 아르드바드 공작과 왈츠의 등장으로 모두가 정신이 없던 와중에, 괴이 중 한 마리가 몰래 챙겨 뒀던 것이다.

사도는 신의 화신이며, 영육이다. 당연히 그 속에는 신의 인자가 가득하다. 연우에게는 벤티케의 팔이 영양분이 가득한 맛난 먹잇감으로 보였다.

[포세이돈의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메시지: 그만두지 못하겠느냐! 감히! 감히……!]

연우는 잔뜩 성난 메시지를 무시하면서. 왼손을 활짝 펼쳐 벤티케의 오른팔에 갖다 댔다.

“삼켜라.”

찰칵, 찰칵-

검은 멍울이 활짝 열리면서 톱니 이빨이 훤히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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