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289화 (289/862)

14화. 포세이돈 (1)

“대장님은?”

진랑은 문을 닫고 나오다 말고 마주친 사람들을 보고 잠시 걸음을 멈췄다.

테드와 일라인이 문 앞에 있었다. 진랑과 함께 벤티케를 호위하며 트리톤을 이끈다는 수뇌들. 각각 안타이오스와 카리브디스의 사도들이며, 남매 신처럼 실제로 쌍둥이 남매이기도 한 자들이었다.

“여전히 휴식을 취하고 계신다. 잘린 오른팔의 수복이 쉽지 않으신 것 같아.”

“제대로 모시고 있는 것 맞지?”

벽에 등을 기대고 있던 테드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면서 물었다. 말투가 퉁명스러웠다.

진랑의 낯이 굳어졌다.

“무슨 뜻이지?”

“무슨 소리긴. 처음부터 네가 대장을 옆에서 잘 모셨으면 이런 일이 터지지 않았을 거란 뜻이지.”

테드가 이죽거리고, 일라인은 동의한다는 듯이 옆에서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또 이 짓거리군.’

진랑은 이따금 두 남매가 걸리적거린다고 느꼈다. 참모 역할을 하는 자신을 못내 따르는 척하면서도, 벤티케의 오른팔을 자처하는 것을 질시하며 견제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진랑의 눈에는 같잖게 보일 뿐이었지만.

지금도 마찬가지.

벤티케의 부상은 트리톤 내에 소문이 파다하게 나 있었다. 신력이 바닥났기 때문에 회복을 위해 꽤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도 다들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테드는 네 탓이 아니냐며 억지를 쓰는 중이었다. 진랑은 더 이상 이들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아 대놓고 낯을 굳혔다.

“마음대로 생각해. 그보다 독식자가 이곳으로 빠르게 오고 있는 중이다. 회복 정도도 예상했던 것보다 빨라. 놈을 막아야만 한다.”

테드가 코웃음을 치면서 팔짱을 풀었다.

“뭐가 그렇게 걱정이지? 놈이야 그냥 잡으면 그만이지. 아니, 오히려 제 발로 찾아와 주니 감사하다고 해야 하나? 굳이 내가 수고할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테드는 연우가 무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30층까지 통과하기 위해서는 49일 내에 주파를 완료해야 하고, 당장 연우에게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남아 있지 않았다.

방금 전, 29층을 지나 30층에 들어섰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30층의 난이도는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다.

아니, 어렵다기보다는 정확하게 ‘까다롭다’는 표현이 옳았다.

사람에 따라서는 주어진 49일을 전부 쏟아부어도 완수하기가 힘들 정도로 복잡하고 어려운 시련.

그것을 수행하기 위해, 연우가 아픈 몸을 억지로 이끌면서 무리를 한다고 여겼다.

겉보기에 아무렇지 않은 건, 그만큼 녀석이 경계를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원래 크게 다친 생물일수록 더 사나워져서 위협적으로 굴지 않던가. 연우가 딱 그 꼴이었다.

그래서 테드는 곧바로 연우를 잡으러 갈 생각이었다. 30층에 들어선 이상, 녀석을 노릴 만한 루트는 아주 넘쳤다. 허를 찌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아니, 설사 연우가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더 철저하게 망가뜨리면 그만이었다.

테드는 모시는 신들의 관계 때문에 트리톤에 예속되어 있어도, 본 실력만큼은 벤티케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진랑은 속으로 혀를 찼다. 테드의 오만함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지만.

어차피 그의 경고를 귓등으로도 들을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기에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겉보기에 멀쩡해 보이는 연우가 얼마나 회복이 되었는지, 그리고 잘린 벤티케의 오른팔을 어떻게 했는지, 실력의 정도를 확인해 보고 싶었다.

‘테드 녀석으로 확인해 보고, 거기에 맞춰서 대응책을 마련하면 되겠지.’

아예 테드를 말로 부릴 심산인 것이다.

진랑은 마음대로 하라는 말을 툭 내뱉고 제 길을 갔다. 테드와 일라인은 길을 열어 주면서도 눈살을 찌푸리며 진랑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끝까지 시건방져. 짜증 나.”

“왜? 저런 면도 나름 멋 아니야?”

“누이!”

테드가 짜증 난 얼굴로 일라인을 돌아봤지만, 일라인은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면서 피식 웃었다.

“나 귀 안 먹었으니까 소리치지 마. 그리고 진랑도 굳이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잖아? 너도 네 생각이 있는 거고. 그럼 서로가 맞다는 것을 확인해 보면 그만이지.”

테드는 속을 떠보려는 것 같기만 한 일라인을 보면서 주먹을 꽉 쥐었지만, 곧 풀면서 가볍게 피식 웃었다.

“좋아. 일단 독식자의 목부터 가져와서 마저 이야기 나누도록 하자고.”

테드는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녹아 표홀히 사라졌다.

일라인은 진랑과 테드가 영 맞지 않는 성격으로도 여태 잘 트리톤을 이끌어 왔다고 생각하면서, 붉은 혀로 입술을 새초롬하게 적시며 중얼거렸다.

“독식자라, 독식자. 앞으로 꽤 시끄러워질지도 모르겠는데.”

모두의 관측대로 정말 연우가 층계를 오르는 것이 아니라, 트리톤을 노리고 오는 것이라면.

일라인은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흥분된 마음을 도저히 주체할 수가 없었다.

* * *

[시련: 산 자로서 망자의 세계를 용감하게 떠돌아다닌 당신의 의지와 용기에 찬사를 보냅니다. 이제 당신은 드디어 세계의 끝에 다다라, 원래 왔던 세계인 바깥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깥 세계로 나가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오랫동안 망자의 세계에서 난 음식과 술, 공기를 마시면서 육체가 어느덧 망자의 세계에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남은 시간 동안 육체에 남은 망자의 독을 모두 깨끗하게 씻어 내세요. 그래야만 바깥으로 나갈 기회가 생깁니다.]

[남은 시간: 13일 22:01:29]

10층 단위로 끊어지는 층계는 보통 이전 스테이지들에서 얻은 것들을 종합 평가하는 무대에 가깝다.

그래서 필요에 따라서 난이도는 어렵게 느껴질 수도, 쉽게 느낄 수도 있었다.

따라서 30층의 스테이지도 어떻게 보면 쉬운 것 같지만, 까다롭다는 표현에 가까운 곳이었다.

망자의 독을 씻어 낼 것.

남은 시간 동안 해독 방법을 찾아내고, 해독제를 만들어 마셔야만 한다.

‘문제는 자신에게 해당하는 중독 증상이 뭔지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는 점이지.’

당연한 말이지만, 해독제의 종류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당장 널리 알려진 것만 해도 십여 가지. 각 플레이어에게 잠복한 독이 어떤 형태인지를 알아내는지가 가장 관건이었다. 그래야만 거기에 맞춰서 해독제를 제조할 수가 있었다.

‘제조 방법을 어떻게 구한다고 해도 재료를 찾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

30층은 넓어도 너무 넓었다. 팀원들 모두 필요한 제조 공식을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베이럭이 나서서 도와준 덕분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면. 스테이지의 방대한 규모만큼, 재료들도 각각 너무 따로 떨어져 있어서 구하기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망자의 터는 아주 넓은 규모를 자랑한다.

여태껏 마주쳤던 스테이지들도 작은 규모는 하나도 없었지만, 망자의 터는 그것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넓은 만큼, 각 지역에 따라 기후도 조금씩 달라 자라는 재료들의 성질이나 효과도 미묘하게 달랐다.

가뜩이나 시간이 촉박한 플레이어들로서는 속이 부글부글 끊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같은 약재라고 해도, 자라난 위치가 다르면 약효가 없는 경우도 허다했다.

더구나 이따금 망자의 터를 떠돌아다니는 마수들이라도 만나면. 짜증이 솟구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30층은 이런 플레이어들을 겨냥한 보따리 상인들이 활개를 치는 편이었다.

필요한 재료들을 미리 구비해 놓고 있다가, 플레이어들에게 접근해서 비싼 값에 폭리를 취하는 것이다.

물론, 이래서야 공적치를 제대로 얻을 수도 없을 테지만.

그래도 급한 사람들에게는 아주 유용했다.

‘거기에 가짜가 너무 많이 섞여 있어서 문제지만.’

경쟁자들이 생겨나는 걸 원하지 않는 이들이 많기에, 상품은 잘 구분해서 사야만 했다.

연우에게도 이런 보따리 상인들이 많이 접근했다. 필요하면 사지 않겠냐고. 원한다면 중독된 증세가 무엇인지 공짜로 확인해 줄 수 있다는 입발림 소리까지 해 댔다.

하지만 연우는 그들을 모두 내쫓아버리고, 괴이들을 한껏 풀었다.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재료들을 잘 구해다 줄 녀석들이 있는데, 굳이 자신이 두 발로 뛰어다닐 필요는 없지 않은가.

더구나 연우는 부에게 따로 설명을 들을 것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 중에서 4개가 비약, 나머지 6개는 독약이라는 거지?”

「그렇. 습니다. 하지만. 4개도. 적. 청. 황. 흑. 의 순으로. 드셔야. 합니다. 그러. 지. 않으면.」

“신력이 폭주한다?”

「신력이. 몸을. 망가. 뜨. 립니다.」

부는 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럴 때마다 턱관절이 움직이면서 떨그럭떨그럭 소리가 들렸다.

연우는 부가 모든 분석을 마친 시약들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신력을 증폭시켜 신인인지 뭔지에 가까워질 수 있다던 비약. 역시 예상대로 열 개 중에 독약이 많이 섞여 있었다. 비약들도 순서대로 섭취를 해야만 탈이 나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럼 이 독약들은 어떤 거지?”

「이것. 들은…….」

부는 자신이 분석한 독약에 대해 전부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듣고 있던 연우의 눈이 빛났다.

‘베이럭의 8대 극독들이군. 아니면 변형판이거나.’

베이럭은 오랜 연구를 해 온 만큼 독 분야에 있어서 대가라 할 수 있었다. 그런 녀석이 만든 8종의 독은 단 한 방울만으로도 해왕류를 그냥 녹여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지독하다.

연우는 8대 극독이 마왕독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강한 독성이 있을 거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 것들이 바로 눈앞에 있다. 흥미가 돌 수밖에 없었다.

순간, 연우의 머릿속으로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잘만 이용하면…… 베이럭 덕분에 더 큰 성장을 이뤄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연우는 부를 보면서 물었다.

“독에 대한 분석은 모두 끝났나?”

「독을. 증식. 해서. 분석. 을. 거의. 마친. 상태. 입니다.」

“그럼 이후는?”

「폐기. 처분. 할. 예정입니. 다.」

“그렇단 말이지?”

연우는 가볍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부는 그가 왜 웃는지 이유를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연우가 저렇게 웃을 때면 꼭 생각지 못한 것을 해내곤 했으니까. 하지만 왜 그러는지 이유는 굳이 캐묻지 않았다.

“마침 오는군.”

그때, 스테이지 곳곳에 뿌려 뒀던 괴이들이 빠르게 돌아왔다.

부는 녀석들이 입에 물고 있는 재료들을 눈대중으로 살피다가 살짝 놀랐다.

「주인. 님. 이것. 들은…….」

“맞다. 독초들이지.”

「중독을. 더. 심하. 게. 만드실. 생각이. 십니까?」

연우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해독에 매달리는 우리와 다르게, 베이럭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자신은 다른 방식으로 해독을 시도해 보겠다고 말했다.

무슨 말인지 몰라 가만히 지켜만 봤었는데.

그때, 뒤늦게 깨닫고 말았다. 이 녀석도 진짜 또라이구나. 어떻게 내 주변에는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인간이 하나도 없을까?

당시 베이럭은 기껏 체내에 잠복한 독을 이대로 지우기엔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다. 망자의 독은 성질이 너무 특별해서 다른 층계에서는 절대 구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베이럭은 이왕에 버릴 독이라면, 육체에 단단히 새겨 놓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여겼다. 신체가 완전히 망자의 독에 적응해서 성질이 변하게 된다면. 필요할 때마다 망자의 독을 사용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었다.

〈독혈(毒血)〉. 이후, 안티 베놈의 악명을 드높이게 해 준 시그니처 스킬의 탄생이었다.

사실 연우는 30층에서 베이럭을 따라 독혈을 얻을 생각이었다.

설사 스킬을 얻지 못하더라도, 육체가 완전히 독에 적응된다면 그것 나름대로도 좋았다. 독에 대한 내성은 높으면 높을수록 좋았으니까.

그리고 지금 그에겐 망자의 독을 증폭시킬 재료들뿐만 아니라, 베이럭이 남긴 극독이 있었다. 게다가 연우는 마왕독도 다룰 수 있었다.

이것들을 전부 버무릴 수 있다면. 랭커가 된 이후에야 독혈을 완성할 수 있었던 베이럭의 성과를 단기간에 쫓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위험. 합니. 다.」

하지만 부는 여기에 처음으로 난색을 표했다. 연우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과 신뢰를 가진 녀석이었지만. 이번 일이 얼마나 말도 안 될 정도로 위험한지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연우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베이럭이 몸을 혹사시키면서 얻은 노하우가 일기장 속에 적혀 있다. 그리고 그는 마룡체의 자질과 여름여왕을 흡수하면서 얻은 잠재 능력을 믿었다.

‘여차하면 냉혈 특성도 있고. 재생 스킬도 있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냉정을 되찾게 해 주는 냉혈은 초기에 독에 대한 내성을 길러 주기도 했다.

그러니 자칫 뭔가 잘못되어도 어떻게든 버텨 낼 수 있으리란 믿음도 있었다. 게다가 재생 스킬이 있는 한, 육체는 몇 번씩이나 복구될 것이다.

‘독혈을 얻은 뒤에 비약도 같이 흡수한다.’

벤티케와 다시 충돌하기 전에 어떻게든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첫 번째 플라스크로 손을 뻗었다.

부의 인페르노 사이트가 걱정으로 살짝 일렁거렸다.

* * *

“……미칠 노릇이로군.”

연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구정물을 들이킨 것처럼 여전히 입가가 얼얼했다. 몇 번씩이나 육체가 허물어졌다가 다시 단단해지는 건, 이미 익숙해져서 그렇다고 칠 수 있었다.

하지만 역한 냄새와 비릿한 맛은 아직도 식도에 남아 있는 것 같아 두 번 할 짓이 아니다 싶었다.

하지만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화아아-

연우는 자신을 따라 감도는 검은 연기를 바라봤다. 하나하나가 짙은 산과 독을 잔뜩 품고 있었다. 독 내성을 극한까지 쥐어짜면서 탄생된 혈독(血毒)이었다.

‘고생한 만큼 효과도 괜찮아야 할 텐데.’

연우는 연기를 손끝에다 모으기 시작하면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절벽 아래, 수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는 항만이 보였다.

그 위에는 트리톤을 상징하는 삼지창의 문장이 힘차게 나부끼고 있었다.

본격적인 전쟁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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