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290화 (290/862)

15화. 포세이돈 (2)

사실 연우가 얻은 건, 기존에 그가 알고 있던 독혈과는 뭔가가 미묘하게 달랐다.

[잔독혈(殘毒血)]

넘버링 28

설명: 안티 베놈이 탄생시킨 여러 종류의 극독과 30층 스테이지에서만 난다는 망자의 독, 그리고 마왕독 등, 다양한 형태의 독이 용의 인자와 섞이면서 탄생한 독혈(毒血).

혈액이 강한 산과 독의 성질을 띠며, 사용하기에 따라서 시전자에게도 치명적인 피해를 미칠 수가 있다.

* 백독불침(百毒不侵)

여러 독과 산성에 대한 강한 내성을 얻는다. 중독 증상이 일어나더라도, 빠른 시간 내에 체내에서 항체 물질을 분비해 내는 강한 면역력을 자랑한다. 그리고 이때 습득한 독과 산성의 정보를 자동으로 습득한다.

* 베놈 팩토리

심방(心房) 한편에 독 물질을 분비하는 기관을 생성한다. 독 성분이 담긴 혈청을 분비하여 혈액을 타고 흐르게 한다. 백독불침으로 획득한 정보를 바탕으로 독의 성질이 계속 발달된다. 혈액의 농축 정도에 따라 독 성분에 차이가 있으며,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시전자에게도 해를 끼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또한, 스킬 숙련도가 높아질수록 분비할 수 있는 독의 종류와 정확도가 깊어진다.

* 독안개

다량의 혈액을 소모하여 주변 일대에 짙은 포이즌 포그(Poison Fog)를 형성한다. 이때, 포이즌 포그의 중심부에 들어갈수록 독 성분이 더 강해지며, 중독 증세는 다양한 증상을 동반한다.

**현재 습득한 독의 정보(8종)

1. 마왕독

2. 망자의 독

3. 엑스터시 힐

……

‘넘버링은 같은데…….’

사실 내용 면에서도 베이럭이 자랑하던 독혈과 크게 다르진 않았다.

독에 대한 뛰어난 면역력을 얻어, 이것을 바탕으로 ‘혈액’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인위적으로 맹독을 제조할 수 있는 스킬.

베이럭은 이것을 얻은 뒤에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했다.

동료들의 무기에 직접 자신의 피를 발라 독의 성질을 부여하거나, 혈청을 따로 유리병에 보관해 뒀다가 필요할 때마다 던져서 터뜨리는 등, 다양한 방식을 사용했던 것이다.

특히 피를 다량으로 소모해서 일으키는 독안개는 적아를 막론하고 사방을 죽음의 대지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위력적이었으니.

연우가 새롭게 얻은 잔독혈도 사실 따지고 보면 내용 면에서는 똑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딱 하나.

‘새로운 독의 정보를 추가한다.’

베이럭은 독혈의 위력을 증가시키고 싶으면 두 가지 방법을 사용했다.

한 가지는 스킬 숙련도를 높여 효과를 높이는 것이었고, 다른 한 가지는 다른 스킬과 연계해서 여러 독을 한 번에 조합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잔독혈은 그런 수고를 덜어 주었다.

어떤 독에 중독될 경우, 여기서 생성된 항체를 바탕으로 그와 비슷한 독 성분을 분비하는 효과라니.

‘독과 많이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스킬의 효과도 높아진단 뜻이겠지?’

어쩌면 재생 스킬을 잇달아 발동시키면서 억지로 꾸역꾸역 섭취한 베이럭의 극독 덕분인지도 모른다.

망자의 독과 마왕독까지. 독하다고 할 수 있을 만한 것들에 전부 항체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으니.

육체도 여기에 반응해서 앞으로 더 투입될 독에 대한 면역 시스템을 새로 구축한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마룡체가 가진 특별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유가 어찌 되었건 간에. 연우로서는 좋았으면 좋았지, 나쁠 일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연우는 이번 시련만 끝나면 곧장 아트란과 바이 더 테이블에게 의뢰를 넣을 생각이었다. 구할 수 있는 극독과 맹독을 모두 구해 달라고.

‘효과도 그만큼 확실하면 좋겠군.’

연우는 그 생각과 함께 크라슈나의 단검을 꺼내 역수로 쥐어 왼쪽 손목을 크게 그었다.

촤악!

동맥이 끊어지면서 피분수가 허공으로 크게 튀었다. 재생 스킬이 발동되면서 상처는 금세 아물었지만, 이미 쏟아진 핏물들은 전부 짙은 핏빛 안개가 되어 자욱하게 퍼졌다.

그 순간.

“일어나라.”

연우의 명령에 따라 그림자가 길쭉하게 늘어나면서 대기하고 있던 삼십여 마리의 괴이들이 나타났다.

[제3천의 영]

그리고 연우의 권능이 발동되었다.

이미 아즈라엘의 계속된 축복에 따라 강화될 만큼 강화된 권능은 괴이들에게도 막대한 영향을 끼 치고 있었다.

버프 효과에 따라, 독안개가 고스란히 괴이들에게로 내려앉았다.

「키아악!」

「칵! 캬캬캬!」

괴이들은 일제히 즐거움에 찬 귀곡성을 내뱉었다. 여태 잿빛으로만 반짝이던 녀석들의 표면에 불그스름한 광채가 언뜻 맺혔다.

독안개를 흡수하면서 독 성분도 같이 띠기 시작한 것이다. 녀석들이 내뱉는 숨결에 짙은 독과 산이 잔뜩 묻어 났다.

‘굳이 무기에 독을 바르거나, 독 안개에만 집중할 이유는 없지.’

연우는 이미 강한 타격기를 몇 개나 갖고 있었다. 특히 이제 그의 시그니처 스킬이 된 불의 파도는 광역기로도 사용이 가능하며, 검은 오러에 담았을 경우에는 자르지 못하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특히 검은 오러가 스쳐 지나간 곳에는 ‘지글거리는 불씨’라는 옵션이 작동되어, 상대방이 불길에 완전히 휩싸일 때까지 화상 데미지를 계속 받아야만 한다.

그러니 굳이 잔독혈에 목을 매달 이유가 없었다.

보다 더 효과가 확실하고, 사용하기 편한 쪽이 연우에게는 맞았다.

하지만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괴이들을 강화하는 용도.

괴이는 그림자를 자유롭게 오고 가는 특징 때문에 많은 일들이 가능하다.

그리고 자체적인 무력도 강하기 때문에 웬만한 플레이어쯤은 쉽게 상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강해진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지 않은가. 오히려 독이라는 무기를 녀석들에게 심어 준다면, 더 많은 일들이 가능해질 수도 있었다.

더구나 잔독혈의 매개체는 연우의 피. 괴이들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성분이었기에, 아무런 저항 없이 독안개를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캬아아아! 캬악!」

절벽을 따라, 괴이들이 일제히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항만을 따라 선박을 정리하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갑자기 하늘에서 덮쳐 오는 그림자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이, 이게 뭐……! 컥!”

「캬악!」

가장 먼저 괴이를 발견한 플레이어는 비명을 전부 지르지도 못 했다. 갑자기 괴이가 손톱을 바짝 세우면서 얼굴을 강하게 후려친 까닭이었다. 플레이어의 머리통이 잘리면서 허공으로 튀었다.

푸우우-

피분수가 자욱하게 퍼지는 아래. 다른 괴이들도 빠르게 움직이면서 다른 플레이어들을 급습했다.

“이것들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지?”

“막아라! 막……. 크아악!”

괴이들은 날렵하고, 민첩했다.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무구를 정비하기도 전에 그림자를 넘나들면서 기습을 감행했다.

특히 방어가 약할 수밖에 없는 관절을 집요하게 노렸다.

스걱, 스걱-

미처 재빠르게 방비를 하지 못한 자들은 팔다리가 잘리는 고통을 맛봐야만 했다.

방패를 갖고 있던 자들은 가까스로 위협적인 공격을 막아 내긴 했지만, 그래도 입고 있던 갑옷의 관절 부분이 잘리면서 상처를 봐야만 했다.

“이것들이……!”

플레이어들은 상처를 입고 나서 다시 괴이를 잡기 위해 몸을 돌렸지만, 그때는 이미 괴이들이 그림자 속으로 가라앉은 뒤였다.

그들이 짜증이 단단히 난 얼굴로 다시 움직이려는데.

“컥!”

플레이어들은 자세를 잡으려다 말고 갑자기 피를 토하면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게 무슨……!”

그들의 눈앞으로 메시지가 갑자기 연달아 떠올랐다.

[‘잔독혈’에 중독되었습니다!]

[‘혼란’ 상태에 빠졌습니다.]

[‘중독’ 상태에 빠졌습니다.]

[‘출혈’ 상태에 빠졌습니다.]

……

[체력이 매우 크게 감소합니다.]

[공격력이 크게 감소합니다.]

[방어력이 크게 감소합니다.]

[생명력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대체 어느새?’

플레이어들의 머릿속으로 동시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그들이 입은 피해는 그저 얄팍한 생채기밖에 안 되건만. 갑자기 상처 부위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끔찍한 고통과 함께 일대 조직이 썩어가기 시작했다. 피도 쉬지 않고 콸콸 쏟아져서 현기증이 강하게 돌 정도였다.

너무 강한 독이었다. 조그마한 상처로도 몸을 삽시간에 중독 상태에 빠뜨리는 극독.

판단력이 빠른 플레이어들은 상처 부위를 단칼에 잘라 내어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늦은 자들은 제자리에 고꾸라져 끔찍한 고통 속에서 죽어 나갔다.

다급하게 해독 포션을 꺼내 마셔 보기도 했지만, 그때만 잠깐 독효가 주춤거릴 뿐. 발작은 멈추질 않았다.

“아아악!”

“크악! 미쳤……!”

괴이들은 겁에 잔뜩 질린 플레이어들을 한껏 밀어붙이는 것과 동시에, 배들도 일일이 부숴 나갔다.

완력만으로 선박을 부술 수 없을 것 같으면 돛을 부러뜨리거나, 선저 부분을 부숴서 물이 차도록 만들었다.

플레이어들이 죽고, 영혼들은 낚아채지면서 그대로 흡수된다. 괴이들은 일용할 양식을 남김없이 먹어 치우면서 항만에 있는 플레이어들을 모조리 도륙해 나갔다.

‘생각보다 더 효과가 좋아.’

연우는 괴이들의 행사에 개입하지 않고, 가만히 아래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용마안을 활짝 펼친 채로. 괴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하게 살폈다.

아무래도 괴이들에게 잔독혈을 씌운 것은 성공적인 실험인 것 같았다.

‘신력의 증가도 있었겠지만.’

당연한 소리지만, 단순히 괴이들이 잔독혈만 얻었다고 강해진 건 아니었다. 신인을 완성시킨다는 4개의 비약을 마시면서, 효과가 괴이들에게도 전달되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런 것을 제하더라도, 괴이들의 맹활약은 연우를 뿌듯하게 만들었다.

이 정도라면 더 이상 비밀 무기랍시고 숨겨 둘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그동안 괴이라는 좋은 도구를 가지고 있었어도, 타인의 눈에 띌까 싶어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무조건 숨겨 두고 있었으니. 사실 왈츠의 원영신이 덤빌 때에도 꺼내지 않았던 이유 중에는, 전력을 크게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도 있어서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주 유용한 무기가 되어 줄 것 같았다.

신흥 세력으로 손꼽힌다는 트리톤을 이렇게 몰아붙일 정도라면. 이제 웬만한 조직과 부딪쳐도 뒤지지 않을 거란 뜻이었으니까.

‘그보다 이제 슬슬 나타날 때가 됐는데.’

연우는 배들이 순서대로 침몰되고 있는 와중에도, 절대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사실 여기에 있는 선박들이야 전력을 다해 불의 파도를 터뜨린다면 반절 정도는 그냥 날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가만히 있었던 건. 괴이들의 활약을 실험해 보려는 속셈도 있었지만, 누군가가 오기를 기다리기 때문이었다.

‘벤티케.’

이건 지난 싸움에서 못다 한 승부를 마저 끝내자는 시위였다.

‘온다.’

연우는 뭔가가 이곳으로 다급하게 날아오는 것을 느꼈다. 강한 신력을 품고 있는 사도. 가면 아래, 연우의 눈살이 살짝 일그러졌다.

‘벤티케가 아니야.’

포세이돈의 신력을 일부나마 삼켰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이것은 포세이돈을 닮았지만, 포세이돈의 힘이 아니었다.

그와 비슷한 것. 아무래도 트리톤을 지킨다는 3명의 간부 중 한 명이 나타난 모양이었다.

“그만두지 못하겠느냐!”

쾅!

연우의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하늘에서부터 무언가가 뚝 떨어졌다.

포세이돈과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을 포악한 기세를 줄줄 흘리면서. 쏟아지는 물살과 부서진 배 파편을 한가득 받으며 나타난 사내.

“테드 님이다!”

“이대장님! 이대장님이 나타났다!”

힘겹게 괴이들을 겨우겨우 막아 내던 플레이어들은 테드를 발견하자마자 화색을 띠었다. 구원의 동아줄이 내려왔다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테드는 그런 수하들의 환호를 귓등으로 흘려들으면서 눈을 부라렸다. 살벌한 기세가 퍼져 나왔다.

고오오-

안타이오스의 신력. 투신의 일종으로서, 부딪쳤던 자들의 두개골을 뽑아 아버지 포세이돈의 신전을 증축시키는 데 썼다는 자. 그런 전승을 담고 있는 만큼 기세는 아주 살벌했다.

테드는 손날을 바짝 세워 허공에다 세게 휘둘렀다.

그러자 허공으로 치솟았던 물살들이 단단히 압축되면서 괴이들에게로 쏟아졌다.

괴이들은 플레이어들을 한창 밀어붙이던 중에 갑자기 물벼락이 쏟아지자, 다급하게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었다. 행동이 굼떴던 녀석들은 몸이 갈기갈기 찢어져 허공으로 흩어졌다.

테드는 그림자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머리를 들었다.

절벽 위. 연우가 이쪽을 굽어다 보고 있었다. 벤티케와 싸울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역시 믿는 구석이 있었구나. 테드는 그렇게 생각했다. 독식자는 벤티케와 싸우면서도 드러내지 않았던 비장의 한 수가 있었고, 이제 와서 그것을 선보이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독식자는 그 한 수에 의존한 나머지 한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전투에 직접 나서지 않는 그의 모습은, 몸이 제대로 회복되지 못했을 거라던 테드의 의심에 확신을 불러일으켰다.

팟-

그래서 테드는 지체하지 않고 절벽 위로 몸을 던졌다. 그가 그림자 괴물 따위야 다시 베어 버리면 그만이니 금세 연우를 처치 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챙강!

테드는 연우를 공격하지 못했다. 어느새 연우의 그림자가 좌우로 갈라져 길쭉하게 늘어나더니 녀석의 앞으로 가로막은 것이다.

샤논과 한령이 인페르노 사이트를 활활 불태우면서 각각 검과 도를 ‘X’자로 교차시켜 테드의 공격을 막아 내고 있었다.

“이것들이!”

테드는 거치적대기만 하는 샤논과 한령을 처치하기 위해서 몸을 크게 뒤틀려 했다. 안타이오스의 신력이 다시 발동되면서 무지막지한 힘이 둘을 휩쓸었다.

아니, 휩쓸려 했다. 그 순간. 갑자기 테드의 그림자가 넝쿨처럼 풀려나오면서 그를 칭칭 감았다. 한 차례 그에게 당한 괴이들이 뭉쳐서 새로운 속박을 시도한 것이다.

테드는 단번에 괴이들을 털어 낼 생각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때, 갑자기 체내를 타고 흐르는 찌릿한 고통에 울컥 피를 토해냈다.

“이게 무슨……!”

망막을 따라 상태 이상을 뜻하는 메시지들이 계속 떠올랐다. 웬만한 독에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그였건만.

사도를 압박할 정도의 맹독이라니, 독인이 아닌 이상에야 그는 여태 이런 건 들어본 적도 없었다.

자칫 더 위험해질까 싶어, 한층 크게 신력을 개방하면서 그림자를 찢어 내고, 몸을 앞으로 내밀었지만.

채채챙-

그보다 먼저 샤논과 한령이 빠르게 움직이면서 테드의 손짓을 옆으로 쳐 내고, 몸뚱이에다 깊숙하게 칼을 쑤셔 넣었다.

퍼퍼퍽!

맹독이 더 빠르게 전신을 잠식해 나갔다. 흩어졌던 그림자 촉수도 다시 뭉쳐서 어느새 턱밑까지 차올랐다.

쿨럭…….

무언가 말을 하고 싶은데.

몸에 힘이 쭉 빠져서 쉽사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니, 몸이 말을 듣질 않았다. 심장과 영혼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단단히 속박된 기분이었다.

연우의 머리 위.

공간 사이로 두 개의 실선이 그어지면서 무언가가 활짝 열렸다. 푸른색으로 불타는 눈. 지옥의 유황불을 연상케 하는 눈동자가 테드를 굽어다 보고 있었다.

부가 활짝 열린 공간을 통해 드러낸 인페르노 사이트였다.

「그. 무엇도. 허. 락 없인. 주인. 께. 가지. 못한다.」

테드의 머릿속이 창백해졌다. 심장 한편이 으슬으슬해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오로지 한 가지 감정만 그의 뇌리를 물들였다. 공포감. 혹은 두려움.

저게 대체 뭐지? 산 사람은 절대 마주할 수 없을 무언가를 대면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살려 줘. 테드는 그렇게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어째서인지 언제나 그에게 용기를 실어 주던 안타이오스 신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신력도 단단히 묶여 꿈쩍도 않았다.

게다가 자신의 사지를 속박한 그림자들이며 몸에다 칼을 박은 언데드들도…… 도대체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오로지 그에게 보이는 것이라고는 단 하나.

죽음.

테드의 떨리는 눈동자는 연우에게 고정되었지만, 연우는 흥미로 가득한 눈길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사도에게도 통하나? 포세이돈의 인자 때문인 것 같은데. 이건 이거대로 요긴하게 쓰이겠어.”

연우는 그 말과 함께, 테드의 얼굴 쪽으로 손을 뻗었다. 손끝에서 검은 오러가 불꽃처럼 피어올랐다.

눈가를 덮을 때까지. 부릅떠진 테드의 눈동자는 전혀 감길 줄 몰랐다. 별다른 힘도 쓰지 못하고 당하는 게, 그로서는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억울하고, 원통하기만 했다.

그리고. 무서웠다.

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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