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295화 (295/862)

20화. 포세이돈 (7)

연우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한순간, 마력이 쭉 빠져나가면서 무력감이 찾아왔지만, 현자의 돌이 다시 맹렬하게 돌아가면서 에너지를 공급했다.

‘조금 엇나갔어.’

이번에 읽은 예지의 목적은 난장판처럼 어우러진 여러 공격들을 전부 무효화시키는 데 있었다. 그리고 나아가 적으로 지정된 자들도 함께 제거하려 했었는데.

비그리드는 결을 정확하게 갈랐지만, 안타깝게도 마지막 지점에는 다다르지 못했다. 시차 괴리로 읽은 타이밍과 시간 예지로 받아 들인 타이밍이 어긋난 것이다.

그리고. 상대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실력을 숨기고 있었던 것도 있었다.

‘그래도 루키라는 놈들의 실력을 전부 체크해 볼 수 있었으니, 소득이 없는 건 아니지만.’

갑작스러운 검은 오러의 폭발에 플레이어들은 전부 사방으로 몸을 물린 상태였다.

그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경악이 잔뜩 어려 있었다.

크로이츠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건틀릿이 전부 부서져 손바닥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성검 줄피카르는 금방이라도 깨질 것처럼 여전히 크게 요동치는 중이었다. 안에 담겨 있던 성력(聖力) 중 태반이 방어로 모두 날아갔다.

역시 연대장께서 최대한 극진하게 모셔 오라는 이유가 있었구나. 크로이츠는 연대장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92단처럼 억지로 그를 끌고 가려 했다면? 그때는 정말 큰 각오를 했어야 했는지도 몰랐다. 자신은 물론, 환영기사단까지 위험할 뻔했다.

연우가 가장 하위 층계에 있으면서도, 왜 여섯 신성 중 가장 선두를 달리고 있다고 평가를 받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저런 사람이라면. 반드시 환상연대에 데려와야만 했다.

다친 손만큼이나 속도 울렁거렸지만, 그래도 저런 사람이 아군이란 사실이 참 기뻤다. 도중에 연우를 믿고, 검격을 거둬들인 덕분에 큰 부상은 입지 않아 다행이었다.

크로이츠는 한쪽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손을 모아 기도를 올리면서 성검 줄피카르의 중심에 박힌 보석에다 입을 맞췄다.

〈축문 기원〉. 성력이 다시 발현되면서 그를 감쌌다. 빠른 속도로 내상이 치료되고 있었다. 성검과 연우에 대한 기도였다.

그렇게 크로이츠가 경건한 기도를 올리는 동안.

울컥-

닥터 둠은 치밀어 올라오는 피를 토해 냈다. 억지로 참아 보려, 핏물을 삼켜 보려 했지만. 크게 마음먹고 터뜨렸던 수십 개의 마법이 일제히 실패로 돌아간 순간, 패널티는 고스란히 그가 감수해야만 했다.

더구나.

‘저건…… 뭐야?’

닥터 둠은 여전히 연우의 머리 위에 동동 떠다니는 두 개의 눈을 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은연중에 영혼을 압박하는 힘이 있었다.

정확하게는 영혼이 눌리는 느낌이 아니었다. 그가 익힌 여러 마법 중 흑마법과 마기가 구속되고 있었다.

이래서는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수조차 없었다. 저 정체를 알 수 없는 구속력에 어떻게 저항할 수단부터 마련해야 할 것 같았다.

“선언 집행은…… 차후로 미루도록 하겠다.”

닥터 둠은 그 말과 함께 품속에서 스크롤을 꺼내 찢었다. 팟 하는 소리와 함께 빛무리에 잠기면서 그는 자리를 이탈했다. 내상을 진정시키려면 당분간 요처에서 휴식을 취해야 할 것 같았다.

“큭큭큭. 재미있군. 이 정도라면 아주 만족스러워. 이후도 걱정할 필요 없겠는데.”

그리고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착지한 페이스리스는 미친놈처럼 크게 웃어 댔다.

그는 겉보기엔 별다른 타격도 없어 보였다. 실제로 그를 따라 감도는 기운은 오히려 이런 상황을 만든 연우보다 더 여유로웠다.

벤티케와 트리톤을 확실하게 해치우기 위해서 개입했었지만. 페이스리스는 이 이상 그럴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저만한 실력이라면 뒷일을 마무리하기 충분할 거라고 여긴 것이다.

‘물론, 그 뒤에는 저놈을 노려야겠지만.’

독식자라, 독식자. 페이스리스는 붕대 틈 사이로 살짝 비치는 연우의 모습을 뚫어져라 주시했다. 붕대를 본격적으로 감기 전에 얼핏 지나가듯이 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와 지금은 확실하게 달랐다. 저 페이스대로 성장한다면, 조만간 가장 큰 골칫거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았다.

“기억해 둘게, 독식자.”

페이스리스는 좀 전과 다르게 젊은 여성의 말투를 하면서 가볍게 땅을 박찼다. 마치 전혀 무게가 없는 것처럼 단번에 올라 사라졌다.

연우는 굳이 녀석을 쫓지 않았다. 그저 페이스리스를 따라 복잡하게 엉켜 있는 결들을 보기만 할 뿐.

‘분명히 한 사람일 텐데. 꼭 여러 사람이 한데 뒤엉켜 있는 것 같아. 정체가 뭐지?’

인간은 그만의 고유 파장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품고 있는 영혼이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페이스리스는 달랐다. 고유 파장이 여러 개였다. 어떨 때는 세 개였다가, 갑자기 열 개가 넘어가기도 하고, 다시 수십 개로 불어났다가 한 개로 줄어드는 등 복잡한 패턴을 띠고 있었다.

마치 수십 수백 명의 사람이 한 몸뚱이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듯한 형태. 목소리나 말투가 달라지는 것도 그 때문인 듯했다.

더구나 이 자리에서 가장 타격을 덜 입기도 했다.

검은 오러를 터뜨리기 직전, 녀석은 붕대를 재빨리 거둬들이면서 자기 육체를 보호했다. 그리고 폭발의 위력이 약한 부분을 정확하게 밟으면서 재빨리 자리를 이탈했다.

상황을 읽는 눈이나, 오러를 다루는 솜씨가 여간내기가 아니었다. 연우도 쉽게 따라 할 수 없을 수준. 최소 명인 급. 실력을 숨기고 있는 것 같으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몰랐다.

연우는 페이스리스에 대한 경계심이 잔뜩 들었지만, 곧 머리를 털고 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진랑이 땅에다 꽂은 검으로 겨우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이미 바닥에는 한참 동안 게워 낸 핏물로 웅덩이가 이뤄져 있었다.

“제, 기랄……!”

조금 전의 폭발은 페이스리스나 닥터 둠 등을 내쫓으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더 크게 노린 건 진랑의 제압에 있었다.

때문에. 진랑은 생명력을 불사르면서 강림시켰던 오리온 신의 힘 중 태반이 날아가는 끔찍한 경험을 맛봐야만 했다.

뭘 어떻게 하지도 못했는데. 아직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했는데 고꾸라지고 만 것이다. 그리고 육체가 감당하질 못하니, 남아 있는 신력도 빠른 속도로 줄줄 새고 있었다. 마치 밑 빠진 독처럼, 그릇이 망가지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건 트리톤도 마찬가지였다. 지지대라 할 수 있는 것들이 전부 망가진 마당에 이제 더 이상 뭘 할 수 있을까.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불구하고, 벤티케는 여전히 성소에서 나오질 않고 있었다.

진랑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연우를 노려봤다. 어느새 연우는 그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약한 모습을 보여 주기는 싫었다. 적으로 만난 이상, 누군가는 죽어야 끝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의지로나마 항전을 하고 싶었다. 죽기 직전의 라나가 그러했듯이.

퍽-

연우는 그런 진랑의 안면으로 왼손을 가져갔다. 여전히 이글거리던 눈빛이 가려지면서 단번에 숨통이 끊어지고, 활짝 열린 바토리의 흡혈검이 진랑이 품고 있던 오리온의 신력을 빨아들였다.

[‘바토리의 흡혈검’의 스킬 숙련도가 상승했습니다. 61.2%]

[생기를 갈취합니다.]

[마력을 갈취합니다.]

[신력을 갈취합니다.]

……

[‘오리온의 정(精)’을 획득하였습니다. 기존에 있던 신의 인자에 자동적으로 취합됩니다.]

신의 인자가 다시 한 번 더 잔뜩 부풀어 올랐다.

“진랑 님!”

“일 대장님에게서 떨어져라!”

트리톤의 플레이어들은 상관의 사체에다 욕을 보인다는 생각에 잔뜩 분개했다.

벤티케가 넓은 등으로 그들을 인솔하는 아버지라면, 진랑은 옆에서 말없이 그들의 뒤치다꺼리를 해 주는 어머니 같은 존재였다. 당연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트리톤의 플레이어들은 연우에게 달려들지 못했다. 환영기사단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대치가 이뤄지고, 다시 전투가 벌어졌다. 하지만 이미 승세는 환영기사단 쪽으로 기운 상태였다.

결국 울분과 절규만 남은 가운데. 트리톤의 플레이어들은 아직도 모습을 비추지 않는 벤티케를 애타게 찾았다.

“대장님! 대장님!”

“벤티케 님! 제발! 제발!”

“포세이돈이시여……!”

크로이츠가 기도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입고 있던 갑옷도 복구되어 다시 찬란한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저들은 본인이 막도록 하겠소. 카인은 벤티케와의 싸움을 마무리하는 데 집중하길 바라오.”

연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성채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미 방금 전의 충돌로 6할가량이 날아간 탓에 성채는 더 이상 성채라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성채의 중심에서 풍기는 신력은 이전보다 훨씬 짙어져 있었다.

‘아마 저곳이 포세이돈의 신전이겠지.’

트리톤이 포세이돈의 직접적인 가호와 축복 아래에 만들어진 조직인 만큼, 당연히 포세이돈의 신전이 있을 거란 것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연우는 발을 높이 들어 지면을 세게 내리찍었다.

쾅-

마력이 가득 실린 발길질에 지반이 통째로 무너지면서 지하의 공동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만들어졌다.

그 아래로 훌쩍 뛰어내리자, 거대한 철문이 연우를 맞았다.

‘커.’

철문은 아주 컸다.

높이만 10여 미터가 될 것 같았고, 두께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문을 따라 그려진 성화가 아주 휘황찬란했다.

12주신을 비롯한 여러 올림포스의 신들이 거인들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모습. 그림 하나하나가 당장이라도 꿈틀거릴 것처럼 박력이 넘쳤다.

만약 처음 보는 것이었다면 감탄을 터뜨렸을 테지만. 사실 이 그림은 연우에게도 익숙했다.

‘올림포스 보고의 문.’

열두 개의 비밀 열쇠를 모아 도착했던 곳에서 봤던 그림과 똑같았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그곳에서는 유독 번개를 두른 제우스가 눈에 띄었지만, 여기서는 파도를 일으키는 포세이돈의 모습이 더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크고 강한 뭔가가 꿈틀대고 있었다.

포세이돈의 신력을 닮았으되, 그것이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강렬한 위압감이 연우의 어깨를 짓눌렀다. 영혼을 강제로 속박하면서 강압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굴종하라!

경배하라!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정신을 지배합니다. 스턴 상태에 빠집니다.]

[‘냉혈’ 특성으로 이성을 유지합니다.]

[스턴 상태가 해지되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를 내쫓습니다.]

[압박감에서 해방됩니다.]

냉혈 특성을 사용해서 억지로 밀어내긴 했지만.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곧바로 잡아먹힐 수도 있을 것 같은 위험한 뭔가가 도사리고 있었다.

다행일지, 불행일지. 그 속에서는 벤티케의 기운도 미약하게나마 느껴지고 있었다.

녀석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연우는 살짝 굳은 눈빛으로 철문에다 손을 가져다 댔다.

열리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와 다르게, 철문은 아주 부드럽게 열렸다.

그긍, 그그극-

먼지를 잔뜩 일으키면서 활짝 열린 철문 너머의 공간은 거대한 홀이었다.

거대한 돔 형태의 지붕 아래, 철문에 그려진 성화의 연장선으로 보이는 성화가 벽과 천장을 빼곡하게 물들였다. 주로 파도와 해일을 일으키는 포세이돈과 연관된 신화들을 풀어낸 성화였다.

정중앙에 놓인 제단에는 벤티케가 앉아 있었다. 좌우로 놓인 청동화로가 푸른 불꽃을 활활 태우면서 수척해진 벤티케의 얼굴을 훤히 드러냈다.

“결국…… 왔군. 크할할할. 역시 내 눈이 틀리지 않았어. 너는 미친놈이야. 나를 닮은.”

연우는 홀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눈을 가늘게 좁혔다.

“그 팔, 어떻게 된 거지?”

“아, 이거 말인가?”

벤티케는 자신의 오른팔을 들어 보였다. 연우가 흡수한 까닭에 한동안 복구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멀쩡하게 붙어 있었다.

“어떤가? 죽이지 않나?”

하지만 벤티케는 말투와 다르게 짜증이 단단히 어린 얼굴이었다. 그는 오른팔을 두르고 있던 붕대를 활짝 풀었다.

그의 오른팔은 푸른 물결 형태로 출렁이고 있었다.

“빌어 처먹을 우리 신께서 내가 너무 허약하다면서 내린 지랄 맞은 선물이지. 지랄 맞아도 아주 지랄 맞은 선물.”

“신력 덩어리군.”

“그래. 똑바로 봤다.”

포세이돈이 사라진 트라이아나 대신에 쓰라면서 채널링을 통해 내려 준 팔.

하지만 애당초 이것을 순순히 받아들인 것이 문제였다.

평범한 신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빌어먹을 덩어리 때문에 여태 여기서 꿈쩍도 못 하고 있었지.”

신물에는 이름도 없었다. 그저 포세이돈은 자신을 이루던 신력 중 일부를 떼어다가 내려보냈다. 그리고 뭣도 모르고 그것을 받은 벤티케는 포세이돈과의 동화(同化)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 뒤부터는 육체의 통제권을 지키기 위한 싸움의 연속이었다.

포세이돈은 말 그대로 벤티케의 육체를 ‘강탈’하려 했다. 벤티케로서는 식겁할 일이었다. 가뜩이나 이따금 이뤄지는 강신도 싫어하는 그였는데. 강탈이라니.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사도가 신의 영육이며 화신이라지만, 그래도 자신은 별개의 인격이었다.

하지만 포세이돈은 그런 벤티케의 생각 따윈 받아들이지 않았다.

-너는 절대 그놈을 잡지 못한다. 지금 너의 꼴을 보아라. 어찌 산 자가 되어 죽은 자들의 왕을 상대한단 말인가! 너로서는 불가능하다. 지금은 이겼을지 모르나, 이후의 싸움은 절대 그런 요행을 바랄 수 없다.

- 내게로 오라, 화신이여! 그대의 영혼은 내가 관장하는 만신전으로 인도하여 높은 자리를 보장 할 것인즉……!

결국 싸움은 벤티케가 이겼다. 인과율에 묶인 포세이돈의 행사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벤티케 역시 큰 피해를 맛봐야만 했다. 육체의 태반이 신력에 동화되고 말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시시각각 신력은 육체의 통제권을 넘보는 중이었다. 조금만 의지가 흐트러진다면, 그때는 정말 끝장이었다.

무엇보다. 시간을 너무 크게 허비하고 말았다.

“또한, 이곳에 단단히 묶인 몸이 되었지. 이 빌어먹을 팔이 신력으로 이뤄진 이상, 성소를 벗어날 수 없으니.”

문제는 신이 하계에서 성소나 성역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벤티케도 이곳에 구속되었다는 점이었다. 벗어난 순간부터 그는 모든 힘을 잃거나, 죽는다. 빌어먹을 저주였다.

“크할할할! 집 문을 지키는 개도 이따위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벤티케는 어쩌면 포세이돈이 노린 것이 처음부터 이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곧 연우가 이곳으로 올 것이니, 딴 곳으로 갈 생각을 하지 말고 이곳에서 맞으라는 노림수.

때문에. 벤티케는 소중한 수하들을 여럿 잃어야 했다. 진랑, 테드, 일라인. 전부 머릿속은 다른 생각으로 가득하던 녀석들이었지만, 그래도 그에게는 소중한 가족 같은 녀석들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포세이돈에게 이가 갈렸다. 자신을 모시는 신도들이 계속 죽어 나가는 데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다니.

신의 눈에 정녕 인간 따위는 얼마든지 죽어도 괜찮을 하루살이에 지나지 않는 걸까. 필멸자의 운명 따윈 아무래도 괜찮은 걸까.

“너, 대체 우리 신에게 무엇을 밉보인 것이냐?”

그래서 벤티케는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아무렇지 않게 취한 신의 힘을 저주했다. 그리고 포세이돈이 이렇게까지 하면서 노리고자 하는 연우가, 자신의 저주를 씻어 주기를 바랐다.

어쩌면 이것은 잘난 척, 으스대면서 연인의 목을 꺾었던 자신에 대한 또 다른 천벌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있다마다.”

연우는 대답하면서 천천히 비그리드를 벤티케에게로 겨누었다. 옵션이 작동하면서 강렬한 기운이 그를 따라 감돌기 시작했다. 동시에 권능도 잇달아 개방되었다.

마룡의 기세가 포세이돈의 힘으로만 가득 찼던 성소를 가득 물들이기 시작했다.

지면을 박차기 직전. 연우는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포세이돈이 왜 지금까지 그토록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직접 죽이려고까지 했는지.

단순히 필멸자로서 신살(神殺)을 이야기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칠흑왕.’

연우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내가 칠흑왕의 힘을 가지게 되는 게 두려운 거야. 포세이돈은.’

그 생각과 함께.

쾅-

연우는 으스러져라 지면을 세게 박찼다.

쐐애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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