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296화 (296/862)

21화. 포세이돈 (8)

차아앙!

쏜살처럼 달리던 비그리드는 벤티케의 목젖 바로 앞에 정지했다. 투명한 색깔로 빛나는 오른팔이 단단히 비그리드를 막아 냈다.

벤티케의 낯이 단단히 굳어졌다.

“고작 이따위로 날 잡으려는 거냐?”

연우가 피식 웃었다.

“설마. 그럴 리가.”

그 순간, 등을 따라 불의 날개가 한껏 치솟았다. 천장까지 다다른 불길과 함께 열풍이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현자의 돌도 그만큼 최대 출력을 내기 시작했다.

콰콰쾅-

연우는 벤티케를 몰아붙이면서 쉴 새 없이 비그리드를 휘둘러 댔다. 그럴 때마다 검은 오러가 폭발하면서 매서운 열기가 그를 뒤덮었다. 성소를 이루던 성화가 모조리 불타고, 벽을 따라 균열이 퍼지다가 끝내 지붕이 아래로 폭삭 주저앉았다.

쾅!

그 위로 연우와 벤티케가 튀어올랐다.

벤티케의 입가에는 함박웃음이 걸렸다. 수척해진 몰골에도 불구하고 웃음소리가 꽤 컸다.

“크할할할! 이거지! 그래. 이거고 말고!”

벤티케의 오른손에는 어느새 커다란 창이 들려 있었다. 신력은 물질을 창조하는 힘. 오른팔이 일부 분리가 되면서 익숙한 삼지창으로 변했다.

벤티케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즐거웠다.

그는 이미 자신의 운명을 직감하고 있었다. 부상을 회복하기도 전에 신력을 다스리느라 진을 다 빼 버린 마당에, 연우와 싸워서 이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몇 번 부딪쳐 보니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연우는 이전보다 훨씬 강해져 있었다. 단 며칠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그새 회복을 마친 것으로도 모자라 새로운 길까지 개척한 것이다.

과연 용이라!

용만이 이런 빌어먹을 자질과 미친 듯한 재능을 지니고 있을 테니.

벤티케는 연우의 턱밑까지 차오른 검푸른 비늘을 보면서 확신했다. 설사 예전의 자신이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연우를 이기기는 힘들 것 같았다.

아니, 어찌어찌 이긴다고 하더라도, 성소에 얽매이는 몸뚱이가 되어서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집 지키는 개가 될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명예롭다고 여기는 전사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순순히 죽어 줄 수야 없지.’

벤티케는 눈을 부릅떴다. 입가를 따라 송곳니가 훤히 드러났다. 갈 때 가더라도 맘껏 놀아 보고 가고 싶었다. 이 답답한 우리 속에 갇혀 있는 맹수를 마지막으로 맘껏 날뛰게 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야 패왕의 이름이 울지 않겠는가 말이다!”

싸움이야말로, 그가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증거일지니!

고오오-

벤티케는 여태 억지로 누르고 있던 신력도 개방했다. 덕분에 오른팔에만 국한되었던 영체화가 단번에 상반신의 절반을 뒤덮었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냥 가진 것을 전부 털어 버릴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건 연우도 바라던 바였다. 그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이렇게 찾아온 데에는 못다 한 승부를 마저 이루려는 이유도 있었으니까.

콰콰쾅-

연우와 벤티케는 다시 한 번 더 충돌했다. 화기와 수기가 충돌하면서 삽시간에 사방이 수증기로 가득 차 안개가 자욱하게 꼈지만, 그마저도 곧 불어닥친 후폭풍에 떠밀려 완전히 사라졌다.

충돌의 여파로 그나마 남아 있던 성채 일부까지 모조리 무너지면서 폐허만 남았다.

그 위에.

연우와 벤티케가 섰다.

벤티케는 속이 후련한 듯 하늘을 보면서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어떻게 보면 포세이돈에 대한 비웃음처럼 보이기도 했다.

“크할할할! 사람이란 자고로 이렇게 나와서 치고받고 싸워야, 산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이지.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하단 말이야. 골방에 틀어박힌 개? 그딴 삶에 무슨 행복이 있단 말인가!”

그때, 크로이츠와 환영기사단을 억지로 상대하고 있던 트리톤의 플레이어들이 그를 발견하고 반색했다.

“대, 대장님!”

“대장! 드디어 나오신 것입니……!”

하지만 플레이어들은 말을 끝맺지 못한 채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벤티케도 그들을 보면서 반갑게 인사를 하려다가, 곧 자신의 행색을 보고 피식 헛웃음을 흘렸다. 영체화가 상반신을 통과해서 어느덧 하체에 다다르고 있었다.

옷이라도 입고 있으면 대강 가려졌겠지만. 방금 전 폭발로 상체에 걸치고 있던 옷이 찢어지면서 안이 훤히 드러난 것이다.

그는 성소를 벗어나면 죽는 것이나 다름없는 몸이 되었다. 하지만 신력을 개방하고 있는 동안에는 잠시나마 ‘벤티케’로서 살 수 있다.

그리고 그동안에는. 절대 수하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없었다.

“무엇을 그리 놀라느냐, 애송이들아!”

벤티케가 내뱉은 외침이 트리톤 플레이어들의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었다.

“우리의 빌어먹을 신이 나에게 이딴 헛수작을 부린 게 어디 하루 이틀이냐? 하지만 나는 그때마다 번번이 일어나서 싸웠고, 이겼고, 모든 것을 쟁취했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트리톤의 플레이어들이 한목소리가 되어 외쳤다. 진랑 등이 죽으면서 가라앉았던 사기가 다시 팽팽하게 일어났다. 크로이츠와 환영기사단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내가 누구인가!”

“벤티케입니다!”

“내가 누구인가!”

“패왕입니다!”

“내가 누구인가!”

“우리들의 왕이십니다!”

벤티케는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세게 두들겼다. 영체화가 이뤄져 둔탁한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뜨거운 심장만큼은 여전히 그에게 남아 있었다.

“그럼 다시 묻겠다. 왕은 패배하는가, 승리하는가?”

“승리합니다!”

“그렇다. 나는 너희들의 왕. 패배 따윈 없을 터이니, 지켜보아라. 너희 모두 나를 따라 승리할 것이다!”

트리톤의 플레이어들은 다시 함성을 터뜨렸다. 환영기사단은 다시 검을 세게 움켜쥐었다. 공기가 달라졌다. 지금부터는 그들도 저들의 결사 항전을 각오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벤티케의 눈빛이 불처럼 타올랐다.

“모두 도망쳐라. 내가 너희를 다시 찾을 때까지, 숨어서 힘을 기르고 있으라.”

그 말이 시작이었다.

트리톤의 플레이어들은 일제히 몸을 반대로 돌리더니 냅다 자리에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벌어진 사태. 환영기사단은 전부 황망한 얼굴이 되었다.

트리톤은 4대 신흥 클랜 중에서도 가장 규율이 엄하고, 죽음을 도외시하는 전사들이 가득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이들이 결사 항전을 각오했을 때, 환영기사단도 잔뜩 긴장했던 것인데. 갑자기 등을 보이면서 도망이라니.

쫓아야 하나? 혹시 함정은 아닐까? 환영기사단은 차마 뒤쫓지 못하고 주춤거리면서 크로이츠를 돌아봤다.

크로이츠는 두 눈을 크게 뜨면서 벤티케를 돌아봤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는 눈빛.

하지만 도망치는 수하들을 보는 벤티케의 눈빛은 여전히 강렬하기만 했다. 그는 망부석처럼 서서 수하들이 무사히 달아나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려는 것 같았다.

“놈들의 뒤를 쫓아라.”

환영기사단은 일제히 검지와 중지를 입에다 가져다 대며 비룡을 불렀다. 곧 하늘을 따라 와이번 무리가 날아왔고, 그들은 그 위로 올라타면서 도망치는 트리톤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연우는 가볍게 혀를 찼다.

“수하들을 살리려는 건가?”

벤티케는 가볍게 바람 빠진 소리를 냈다.

“설마. 내가 그렇게 기특한 생각을 가진 것으로 보이나? 애당초 그렇게 수하들을 아끼는 성격이었다면, 망자의 강에서 너에게 여럿이 당할 때 먼저 나섰었겠지.”

“그럼?”

“패배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으니까.”

“뭐?”

벤티케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나는 패배하지 않는다. 아니, 패배해서는 안 된다. 수하들의 머릿속에 나는 언제나 패왕이며, 승리자여야 한다. 그래야만 나는, 트리톤은, 녀석들의 머리와 심장에 긍지로 남을 수 있다.”

“…….”

“라나는 그걸 못했기에 죽었고, 나는 그것을 해내기에 죽지 않고 놈들의 심장 속에 불멸로 남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바일 뿐. 미련을 남길 생각 따윈 추호도 없음이니.”

벤티케는 왜 자신이 라나를 죽였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추구하는 바가 달랐기에. 패배자로 남아 추하게 사느니, 차라리 제 손으로 죽이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그러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역시 알고 있었나.’

연우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아마 망자의 강의 해저에 처박혔을 때. 가면이 반쯤 으스러졌을 때 봤던 모양이었다.

녀석은 자신을 동생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비슷한 형제 같은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짐작하는 바가 무엇이든 자신의 정체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게 고마울 따름이었다.

아니면. 어쩌면 동생의 생각이 그러했듯이, 벤티케도 동생을 ‘친구’라고 생각했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저 말은 그에 대한 속죄인 셈이었다.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연우는 다시 불의 날개를 활짝 펼쳤다. 벤티케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다. 그 안에 어떻게든 승부를 볼 생각이었다.

* * *

콰앙-

크로이츠는 비룡을 몰면서 트리톤의 뒤를 쫓다 말고, 갑작스러운 폭발 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고삐를 크게 잡아당기면서 뒤를 돌아봤다.

‘뭐지?’

그의 눈이 자기도 모르게 크게 뜨였다.

저 멀리.

불길과 물기둥이 한데 뒤섞이면서 하늘에 닿고 있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열풍이 여기까지 전해졌다.

* * *

콰콰쾅-

퍼펑!

하늘에 닿을 것처럼 높게 치솟던 물기둥이 부서지면서 마치 세찬 소나기가 퍼붓듯 물을 잔뜩 쏟아 냈다. 하지만 물기는 곧 불어닥친 열풍에 증발되어 사라졌다가, 메마른 대지만을 훤히 드러냈다.

이미 트리톤이 자랑하던 성채는 절벽과 함께 무너져 바다 아래로 가라앉아 버린 뒤였다.

하늘에서부터 이어지는 푸른 기운만이 이곳이 포세이돈의 성역이라는 것을 말해 줄 뿐.

그 아래에서 벌어지는 연우와 벤티케의 싸움은 거칠었다.

망자의 강에서 벌였던 싸움의 연속. 두 사람의 몸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생겨났다가 사라졌다. 화상 자국도 덕지덕지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전에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몸에 상처가 생기는 것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쿠쿠쿵-

그리고. 싸움이 이어질수록, 벤티케의 영체화는 계속 빨라졌다. 여태 신력을 억지로 구속하고 있던 마력이 외부로 방출되면서, 신력의 확장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 신력까지 개방하면서 싸우는 벤티케는 도저히 사람 같지가 않아 보였다.

분명히 팔이 잘려 나갔던 자리에 어느새 새로운 팔이 자라나 있고, 꽤 깊게 상처를 입혔다고 생각했는데도 금세 재생이 이뤄지면서 반격을 가하니.

폭발적인 화력 면에서 연우가 비교적 많이 밀리는 추세였다.

하지만.

스걱-

“열셋.”

비그리드가 착실하게 벤티케의 오른쪽 목덜미를 세게 훑고 지나갔다.

원래대로라면 경동맥이 끊어져 목숨을 잃었을 중상이었지만, 영체화된 육체는 금세 다시 재생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벤티케에게 강한 충격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녀석이 뒤로 튕겨 나는 동안, 연우는 단번에 거리를 좁히면서 연격(連擊)을 날렸다. 검은 오러가 불길을 내뿜었다.

“열넷, 열다섯…….”

숫자를 헤아릴 때마다 벤티케의 급소라 할 수 있는 곳에 깊은 상처가 생겨났다가, 다시 아물기를 반복했다.

연우가 헤아리는 숫자는 벤티케가 진짜 육체였다면 죽었을 횟수였다.

분명 벤티케는 강했다. 그리고 빨랐다. 창대를 쥐고 끝을 흔들며 쏘아 대는 볼텍스는 아주 위력적이어서, 근방에 있는 것만으로도 단번에 찢길 것 같은 위력을 선보였다.

연우 역시도 금방이라도 휩쓸릴 것처럼 위태롭게 보였지만. 착실하게 볼텍스를 피해 내면서 안쪽으로 치고 들어가 벤티케의 몸뚱이에다가 커다란 바람구멍을 놓았다.

포세이돈과 관련된 신의 인자를 대거 빨아들이고, 벤티케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보다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이전과…… 같지 않다.’

벤티케의 컨디션이 최상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육체가 뛰어나면 무엇하겠는가. 정신이 그만큼 마모된 것을. 벤티케는 맹수를 풀어 놓는답시고 창을 휘둘러 댔지만, 이전에 비하면 많은 것이 부족했다.

특히 패기와 투기가.

전장을 휘어잡고, 사위를 짓누르던 패기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전의를 들끓게 만들던 투기가 너무나 흐렸다.

연우는 그런 점이 너무 안타까웠다.

콰아앙!

그렇다 보니. 분명 벤티케의 절대적인 속도는 이전보다 빨랐지만, 연우에게는 상대적으로 더 느리게 다가왔다. 용마안에 확연하게 보일 만큼.

보여도 너무 쉽게 보였다.

쉬쉬쉭-

창대가 다시 분리되면서 여섯 개의 볼텍스를 만들어 냈다. 수압으로 다져진 물의 칼날이 소용돌이를 그리면서 상하좌우, 앞뒤를 각각 노리고 달려왔다.

〈육합격(六合擊)〉. 창술에 통달한 실력자들이 으레 얻는다는 스킬이었다.

휘리릭-

연우는 불의 날개를 접어 몸에 한껏 감으면서 비그리드를 회전시켰다.

검은 오러가 결을 따라 그대로 미끄러지면서 소용돌이를 마구잡이로 잘라 댔다. 불과 물이 충돌하면서 생겨난 폭발이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다.

쐐애액-

짙은 안개를 가르며 비그리드의 끄트머리가 그대로 벤티케의 왼쪽 가슴에 틀어박혔다.

퍽!

“큭!”

벤티케는 헛웃음을 흘렸다. 심장을 가르고 지나간 비그리드를 보니 헛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가슴팍이 뚫렸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복구를 시도하려는 몸뚱이를 보니 기가 찼다. 그의 몸은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복구도 쉽지 않아 보였다. 언제부턴가 검은 오러에서부터 번져 나온 뭔가가 그의 재생 속도를 늦추고 있었다.

〈잔독혈〉. 짙은 독기가 어느새 영체를 오염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크하하!”

처음에 포세이돈이 절대 이길 수 없을 거라고 말할 때에는 오기가 들었지만. 이제는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벌써 죽었을 횟수만 열아홉 번.

설사 원래의 육신이었다고 해도 이길 수 없었을 거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억울하다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약자가 강자에게 잡아먹히는 건, 생태계 순리상 아주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자신이 라나를 잡아먹었듯, 이제는 반대로 새로운 강자에게 잡아먹힐 뿐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남들에게 없는 한 가지가 남아 있었다.

‘나는 지지 않았다.’

수하들은 여전히 그의 패배를 모른 채, 어딘가에서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릴 테니까.

애석한 점이 있다면 하나.

‘이 빌어먹을 신 때문에 제대로 겨루지 못했…… 단…….’

그 생각을 끝으로. 벤티케의 정신이 무너졌다. 검은 얼룩이 덕지덕지 칠해져 있던 영체가 단숨에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여태 겨우 억누르던 잔독혈이 발작을 시작했단 신호였다.

연우는 마무리를 위해 비그리드를 곧게 세우면서 몸을 측면으로 크게 틀었다.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머리를 자르려는 순간.

갑자기 공기가 확 뒤바뀌었다.

온통 패기와 투기, 열기로 가득 하던 공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마치 살이 에일 것처럼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치면서 눅눅한 습기가 폐부를 가득 채웠다. 마치 물 속에 갇힌 것처럼 숨을 쉬기가 버거울 정도였다.

벤티케의 눈빛이 맑은 푸른빛으로 바뀌었다.

강신(降神).

육체의 원주인이 사라지면서. 채널링으로 연결되어 있던 포세이돈이 직접 현현해 벤티케의 영혼을 잡아먹고, 나아가 육체까지 지배하려 하고 있었다. 어느덧 육체는 완전한 영체화를 이루고 있는 상태였다.

더구나 강신을 위한 재료가 한 가지 더 추가되어 있었다.

순교(殉敎). 포세이돈의 뜻을 지키기 위해 죽은 진랑 등을 비롯해, 트리톤의 플레이어들이 흘린 피가 일종의 공양물이 되어 포세이돈의 강림을 앞당긴 것이다.

이미 그는 자신의 노림수를 위해서라면 신도들의 죽음도 아무렇지 않게 이용하고 있었다.

필멸자의 목숨 따위, 신의 행사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희생될 수 있는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콰콰콰-

『드. 디. 어. 만. 났. 구. 나.』

아직 완전한 강신을 이루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포세이돈이 단지 기백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천지가 위아래로 격동했다. 아가레스가 현신(現身)하려 준비할 때와 맞먹을 정도로 짙은 신력이었다.

하지만.

“그래. 만나서 반가워. 선물까지 줘서 더 고맙고.”

연우는 그런 강맹한 신력 앞에서도 여유롭게 웃음을 흘렸다.

『무. 슨. 말……!』

무슨 말을 하려는 거냐. 포세이돈이 낯을 잔뜩 일그러뜨리면서 남은 강신을 마저 이루려는데.

퍽-

갑자기 연우가 왼손을 활짝 펼치면서 비그리드가 박힌 녀석의 가슴팍에다 갖다 댔다.

“삼켜라.”

찰칵, 찰칵-

바토리의 흡혈검이 톱니 이빨을 드러내며 영체에 틀어박혔다.

[‘바토리의 흡혈검’이 개방되었습니다. 신의 인자를 대거 습득하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각성을 시도합니다.]

[‘마신룡체’가 구성됩니다. 1, 3,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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