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302화 (302/862)

2화. 타르타로스 (2)

‘어째서지?’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정신을 차리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연우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자 소환은 분명히 사념이 어려 있는 유품이나, 추억 속 기억을 바탕으로 대상을 찾아 소환하는 옵션이었다.

죽음과 관련된 신과 악마들이 모두 경탄하는 존재인 칠흑왕이 남긴 아티팩트에 담긴 옵션.

당연히 그 기능은 웬만한 신과 악마들이 내리는 권능보다 훨씬 효율이 뛰어났다.

그런데도.

‘부를 수가 없다고?’

연우는 이를 악물었다. 두 눈이 벌겋게 빛났다. 도저히 이럴 수가 없었다. 아니, 이래서는 안 되었다.

“사자 소환!”

[소환하신 대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사자 소환!”

[소환하신 대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사자 소환!”

[소환하신 대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제기랄! 사자 소환!”

[소환하신 대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소환하신 대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던 연우는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나와! 나오라고!”

[소환하신 대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나오란 말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메시지는 대상을 찾을 수 없다는 내용뿐. 다른 추가 설명은 일체 적혀 있지 않았다.

“왜지? 왜냐고! 대답해 봐! 왜!”

연우는 회중시계를 꽉 쥐었다. 뻘겋게 달아오른 눈으로 칠흑왕의 절망과 비탄을 노려보다가, 고개를 홱 하고 들었다.

여전히 자신에게 따라붙는 여러 시선들이 있었다. 빌어먹을 시선들. 자신들이 필요할 때만 개입하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묵묵부답을 일삼는 족속들이었다.

“대답해 보라고!”

하지만 연우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죽음의 신과 악마는 일절 입을 꾹 다문 채, 고요한 눈빛으로 연우를 지켜 보기만 할 따름이었다.

아니다. 저들은 겁을 먹고 있었다. 아즈라엘이 사라진 이후로, 녀석들은 연우를 지켜보기만 할 뿐이지, 이제는 그와 가까이하는 것을 꺼려 하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대답을 내놓을 수 있는 다른 사람을 찾아야만 했다.

“헤르메스! 아테나! 당신들이라도 대답해 보십시오! 여태 하계를 지켜보던 당신들이라면 뭔가 알 것 아닙니까!”

[헤르메스가 침묵합니다.]

[아테나가 당신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네놈들이 바라는 사도직인지 뭔지 다 받아들이고 하겠다! 그러니까 무슨 말이라도 해!”

여태껏 연우를 호시탐탐 노리던 신과 악마들이라면 누구나 바라마지않을 조건이었지만.

[신의 사회, ‘올림포스’가 침묵합니다.]

[신의 사회, ‘아스가르드’가 침묵합니다.]

[신의 사회, ‘에아’가 침묵합니다.]

……

“아가레스!”

[아가레스가 입을 꾹 다룹니다. 침묵을 지킵니다.]

“제길!”

연우로서는 답답해서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뭘까? 뭐가 잘못된 걸까? 유품도, 추억도 확실한데. 왜 되질 않는다는 거지? 저승에 소속된 영혼이라면 불러낼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아니면.

‘저승에 없는 건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연우는 허리를 쭈뼛 세웠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주인.』

“잠깐만.”

네메시스가 어느새 나타나 걱정스러운 얼굴로 연우를 불렀다. 그도 전 주인을 찾을 수 없다는 내용에 적잖게 당황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연우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잡아 주려 했다. 자신 역시 힘들 텐데도 불구하고.

하지만 연우는 손을 뻗어 그의 말허리를 끊었다. 뭔가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도중에 방해를 받고 싶지 않았다.

‘모든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사자 소환이 되지 않는 경우는 딱 두 가지밖에 없다.’

한 가지는 대상자가 살아 있을 경우.

하지만 그건 기각이었다. 동생의 시신을 수습하고, 화장해서 태종대 앞바다에 직접 뿌려 준 것이 자신이었다. 그때의 절망과 비탄은 아직도 가슴 속에 절절하게 남아 잊을 수가 없었다.

‘남은 한 가지는 벤티케와 같은 경우.’

벤티케는 포세이돈의 강제 강신에 의해 영혼이 짜부라져 그대로 소멸하고 말았다. 이 경우에는 영혼이 사라진 것이기 때문에 저승으로 갈 일도 없었다.

그렇다면 동생도 이와 비슷했을까? 하지만 연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기장의 마지막 파트에는 그런 암시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여기서 이 일기장을 마무리 짓는다. 이 일기장을 남겨 놓는다면 형이 언제고 이곳으로 올 수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에.

형이라면 엘릭서를 찾아 엄마에게 무사히 가져다줄 수 있겠지.

언젠가 자신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린다는 내용뿐.

‘게다가 고룡 칼라투스가 정우를 지구로 보냈을 거란 내 가정이 맞다면…… 그건 더더욱 말이 안 돼.’

더구나 저토록 집착이 심한 아가레스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벌써 사달이 났어도 이미 났었겠지.

‘그럼 대체 뭐지?’

연우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냉혈’ 특성으로 이성을 유지합니다.]

특성이 발동되면서 복잡했던 머릿속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러자 여태 흥분에 눈이 멀어 놓치고 있던 게 보였다.

‘아니. 한 가지가 더 있어.’

연우의 눈빛이 빛났다.

‘정우의 영혼이 어느 초월자나 불멸자의 손에 붙들렸을 경우.’

혹은.

어떤 미지의 장소에 억류되었을 경우.

‘신과 악마의 사도는 죽어서도 보통 저승으로 가지 않으니까.’

아스가르드의 신을 모시던 사도들은 죽어서 발할라로 올라가게 된다. 올림포스의 신을 따르던 사도는 엘리시온으로 가며, 르 인페르날을 추종하던 사도는 악마의 권속이 되어 옆을 지킨다고 한다.

즉, 이미 정해진 사후 세계의 수순이 있기 때문에 저승으로 들어가질 않는다. 새로운 윤환전생을 꿈꿀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가까이는 연우가 그랬다. 그에게 죽은 영혼들은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망령으로 타락해 컬렉션에 억류되고 만다.

만약 동생도 그와 비슷한 경우라면. 그래서 저승으로 가지 못해 어딘가에 억류되어 있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어떻게든 찾아야 해.’

연우의 두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살아생전에도 온갖 배신감과 고통, 그리고 절망 속을 헤엄치다가 눈을 감아야만 했던 녀석이었다. 그런데 죽어서도 평안을 찾지 못한다고?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역시 빨리 50층까지 올라가야만 해.’

고룡 칼라투스라면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연우는 간절히 그렇게 바랐다.

* * *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연우는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

‘하지만 거기서도 어떤 단서를 찾을 수 없게 된다면. 그것도 문제가 돼.’

결국 지금 당장 연우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였다.

‘단서를 찾는다.’

물론, 아무런 암시도 없는 상황에서 동생과 관련된 단서를 찾는 건,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찾을 수 없다면, 찾을 수 있게 해야지.’

때마침 연우에게도 좋은 방법이 있었다.

‘어차피 칠흑왕과 관련된 단서도 찾아야 했고. 이왕 이렇게 된 것, 위험하더라도 가 볼 수밖에.’

연우는 눈을 차갑게 빛내면서 아공간에서 물건을 한 가지 꺼냈다. 영롱한 빛을 내는 옥거울이었다.

[프레지아의 옥경(玉鏡)]

분류: 잡화

등급: A

설명: 신비 상인 비밀 조합 ‘바이 더 테이블’로 연결되는 통신구. 의념을 불어넣으면 특정 대상과 의사를 주고받을 수 있다. 단, 일정 장소에서는 사용이 불가능하다.

바이 더 테이블의 프레지아가 헤어지기 전에 건네주고 갔던 것이었다.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쓰라던 통신구. 연우는 여기에다 의념을 불어넣었다.

화아악-

그러자 옥구슬이 환한 빛무리를 내면서 허공에다 자그마한 홀로그램을 띄우기 시작했다. 입자들은 노이즈가 낀 것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곧 사람의 형상을 갖췄다.

『깜짝이야! 이게 뭔 거지 같은…… 아이고! 이게 누구십니까. 제가 아주 사랑하는 호객, 아니, 고객님이 아니십니까! 여태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정도로 아무 소식 한번 없다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 이 누추한 몸을 찾으셨는지요?』

아트란은 갑자기 연우와 통신구가 연결되자 화들짝 놀랐다가, 곧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손바닥을 비비적거렸다. 하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에 비꼬는 투가 가득했다.

바이 더 테이블과 직접적인 후원 계약을 맺은 지 일 년 가까이 지나도록 한 번도 찾지 않은 데에 대한 불만이었다.

프레지아와 맺은 계약은 연우가 곧 새롭게 만들 신생 클랜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었다. 그리고 아트란은 여기에 대한 담당자로 고용되면서, 한순간에 신비 상인 내에서 최고 서열까지 급부상하게 되었다. 그만큼 바이 더 테이블이 차지하는 위치가 높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트란은 그동안 자신이 맡은 업무를 줄곧 잘 처리해 왔다.

부와 브라함이 열심히 건설 중인 외우주에서 여태 단 한 번도 잡음이 들리지 않았던 게 그 증거였다.

하지만 한편으로. 아트란은 그동안 심심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는 원래 가만히 앉아서 업무를 보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언제나 최전선을 뛰어다니면서 스릴을 즐겼었건만. 이런 단순 업무 때문에 좀이 쑤시던 차였다.

‘원래 독식자라면 사고, 소란, 평지풍파의 상징이잖아! 근데 왜 그동안 날 안 불렀냐고!’

아트란은 그렇게 소리를 치고 싶은 눈치였다. 그도 그동안 골방에 틀어박혀 있었다지만, 연우와 트리톤의 전쟁에 대해서는 들어서 알고 있었다. 벤티케, 아니, 포세이돈의 패배까지도.

하지만 그는 곧 가면 너머로 비치는 연우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 걸 깨닫고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쾌재를 외쳤다. 무엇이 연우를 건드렸는지는 몰라도. 아무래도 트리톤의 전쟁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큰 사건이 터질 것 같았다.

‘어쩌면 여름여왕이 나가리 됐던 것과 비슷한 일이 터질지도.’

혼란은 큰돈을 벌기 아주 좋은 타이밍. 아트란은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면서 물었다.

『말씀해 보시지요. 뭔가 필요한 물건이라도 있으신지?』

“조사를 부탁했으면 하는데.”

『무엇입니까?』

“키클롭스 3형제.”

『……?』

아트란은 아주 잠깐 고개를 갸웃거렸다. 탑의 정보에 빠삭한 그였지만, 키클롭스라는 세력이나 플레이어는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다른 무언가를 떠올리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키클롭스 3형제라면, 올림포스 신화에서 티탄 신족과 전쟁을 벌이려던 제우스, 포세이돈, 하데스에게 무구를 선물한 대장장이를 말씀하시는……?』

“맞아. 그들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 이왕이면 행방까지도.”

아트란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다 인상을 팍 찡그렸다.

『아무리 저희 바이 더 테이블이 아주 깊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유구한 조합이라고 해도, 옛 신화의 흔적을 알기엔 힘들…….』

“얄타바오 금괴 3개면 되나?”

아트란은 정수리가 땅에 닿을 기세로 허리를 숙였다.

『신심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고객님!』

“200년 전에 키클롭스 3형제가 페르세포네의 신전으로 향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거기서부터 수소문해 보면 금세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 참고하고.”

『그런 아주 좋은 정보까지! 역시 고객님이십니다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하데스에 관한 정보도 부탁하지.”

『하데스의 정보는 어느 정도 선으로……?』

“그냥 최근에 알려진 것. 신화 외에 최근에 사도를 들였는지, 아니면 메시지와 관련된 목격담이 있는지. 그 정도면 충분해.”

걱정 가득하던 아트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98층에 오르지 못하는 플레이어로서는 신과 관련된 정보를 취합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지만, 그 정도라면 바이 더 테이블의 정보망으로 충분히 수집이 가능했다.

“그리고 소식을 빨리 가져다줄수록 보너스도 얹어 주지.”

『최대한 빨리 돌아오도록 합지요! 우리 사랑하고 존경하는 고객님을 기다리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아트란은 그 말과 함께 홀로그램을 종료했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였다.

연우는 프레지아의 옥경을 조용히 회수하면서 생각했다.

‘키클롭스 3형제, 정확하게는 그들의 사도가 30층의 히든 스테이지로 넘어간 게 사실이라면. 빨리 그들을 찾는 게 좋아.’

모든 신과 악마들이 칠흑왕에 대해 함구를 하고 있는 이때. 검은 팔찌와 족쇄를 설명해 줄 사람은 키클롭스 3형제밖에 없었다.

그리고 여기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칠흑왕의 정체를 파악해 내거나, 아니면 절망과 비탄의 상세한 사용법을 알아낼 수 있다면.

아니, 하데스의 신물, 퀴에네의 행적만 찾아내어 칠흑왕의 형틀 세트를 전부 갖출 수 있다면.

그래서 칠흑왕의 권능, ‘죽음’을 더 깊게 다룰 수 있게 된다면.

‘정우와 관련된 어떤 단서를 찾아낼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결국 칠흑왕의 힘을 더 크게 손에 넣어야 하는 것이다.

연우는 아트란이 돌아올 때까지, 그렇게 가만히 앉아서 조용히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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