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303화 (303/862)

3화. 타르타로스 (3)

『고객님은 대체 이런 정보의 출처가 어떻게 되십니까? 저희 조합에서도 놓치고 있는 게 있었을 줄이야…….』

아트란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금방 돌아왔다. 얼굴이 잔뜩 상기 된 채로.

연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뭔가 알아낸 게 있나 보지?”

『당연히 알아낸 것이야 많지요. 다만, 전부 다 따로 분리되어 있던 것을 하나로 통합하는 게 힘들었을 뿐입니다. 그래도 만들어 놓으니 그럴듯해졌습니다. 저희들도 괜찮은 정보를 얻은 셈이니. 으흐흐!』

아트란은 이번에 정리한 정보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 깨닫고 함박 웃음을 터뜨렸다.

연우는 그것을 가만히 보다가 밖에 꺼내 두었던 3개의 얄타바오 금괴 위에다가 2개를 더 얹었다.

“비밀 유지 대가로 두 개를 더 얹지.”

『사랑합니다, 고객님!』

아트란은 넙죽 허리를 숙였다. 홀로그램이 아니었다면 당장에 연우를 붙잡고 발등에다 입이라도 맞출 기세였다.

연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

“우선 키클롭스 3형제부터.”

『고객님께서 200년 전에 키클롭스 3형제들이 페르세포네의 신전으로 향했을 거라고 하셨었지요?』

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하게는 192년 전이었습니다. 그리고 키클롭스 3형제의 사도들이었구요.』

키클롭스 3형제가 신화 속에서 비중이 낮다지만, 그래도 엄연히 올림포스 신화에서 우라노스와 가이아의 첫 번째 자식으로 태어난 신이었다.

하늘과 대지가 결합하면서 태어난 존재. 단안기형의 흉측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지만, 쇠를 다루는 솜씨만큼은 헤파이스토스도 한 수를 접어야 할 정도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들이 페르세포네의 신전을 방문한 것도, 공식적인 방명록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30층의 히든 스테이지에 대해서는 알고 계시겠지요?』

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를 수가 없었다.

30층은 망자의 독을 해독하면 우선 필요한 시련이 끝난다. 하지만 여기서 31층으로 올라갈 때, 두 가지 길을 선택할 수 있었다.

이전처럼 편하게 포탈을 밟고 층계를 오르느냐. 아니면 숨겨진 히든 스테이지를 가로질러 오르느냐.

이를테면, 30층의 히든 스테이지는 ‘시험’의 연장 선상이라 할 수 있었다. 20층대에서 이뤘던 성과를 더 깊게 파악하고자 하는 시험.

물론, 추가 시험에 해당하기 때문에 치르지 않는다고 해도, 따르는 불이익 같은 건 전혀 없었다.

‘다만, 히든 스테이지를 지나고 나면 더 많은 공적치를 얻을 수 있지. 자기 단련도 될 테고. 거기야말로 진짜 저승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니까.’

27층에서 30층까지 이어지던 통합 스테이지는 저승을 모티브로 한다. 아니, 정확하게는 ‘저승으로 가는 길’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었다.

하지만 히든 스테이지는 진짜 저승을 고스란히 옮겨 두었다.

죽은 망자들을 심판하는 법정이 있고, 판결에 따라 벌을 내리는 10개의 관문이 뒤따른다.

차례대로 놓인 열 개의 관문으 하나하나가 지옥이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를 정도로 지독했다. 랭커들 중에서는 흔히 자기들이 어디까지 통과를 했는지, 거기서 얼마나 버텼고, 무엇을 얻었는지를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인간들이 많았다.

하나같이 변태란 말이지. 하지만 21층에서 고난을 자처하는 사두처럼, 30층의 히든 스테이지도 수행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축복된 장소나 다름없었다.

21층의 오행산이 감각과 의념을 수행하기 제격이라면, 30층의 히든 스테이지는 정신력과 속성력을 단련하기에 아주 좋았다.

이곳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30층 스테이지의 가장 끝에 위치한 페르세포네의 신전을 찾을 것.’

페르세포네의 신전은 히든 스테이지의 입구 및 안내 역할을 겸하고 있었다.

『여하튼 키클롭스 3형제의 사도들은 열 개의 관문으로 진입을 요청했고, 여섯 번째 관문쯤에서 돌연 자취를 감췄답니다.』

연우의 눈이 빛났다.

“자취를 감춰?”

『예. 말 그대로 실종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열 개의 관문에서 죽는 플레이어들이 워낙에 많다 보니 관리국도 그중 하나라고 여긴 모양이었고…… 이후에도 관련해서 별다른 사항이 없어서 다들 그렇게 판단 내리고 그냥 넘어간 듯합니다. 그런데.』

아트란이 말을 도중에 끊었다. 마치 쉽게 말해 줄 수 없는 재미난 것을 찾아냈다는 듯이.

연우는 대답 대신에 얄타바오 금괴를 들어 살랑살랑 흔들어 보였다. 아트란은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투덜거리듯이 말했다.

『그들 세 명이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접촉했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막내인 아르게스가 술에 살짝 취했을 때 지나가듯이 이렇게 말했었다더군요.』

-하데스가 우리를 불렀다.

“……!”

연우의 눈이 커졌다.

‘하데스가 불러?’

이건 또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지?

『그래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고객님께서 따로 말씀하셨던 것처럼 하데스에 대해서도 깊이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하데스에 관한 기록은…… 최근 수백 년 사이에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습니다. 원체 하계에 관심을 내비치지 않고, 지난 수천 년 간 사도도 거의 두지 않았던 신이니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플레이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만.』

아트란의 눈이 예리하게 반짝거렸다.

『고객님은 뭔가를 알고 계시는 거지요?』

연우는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궁금한가 보지?”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지 않겠습니까? 하계에서는 좀처럼 구경하기 힘든 신들의 행사이지 않습니까? 늘 이쪽을 구경하는 건 저들이지, 이쪽에서는 저쪽을 구경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연우는 바닥에 놓았던 다섯 개의 얄타바오 금괴를 홀로그램 쪽으로 던졌다.

[‘바이 더 테이블’에 거래 대가로 ‘얄타바오 금괴 × 5’를 제공하였습니다.]

“플레이어에게 따로 간섭하는 건 좋지 않은 버릇일 텐데.”

『어차피 말씀해 주실 의사도 없단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외에 하데스와 관련된 건, 그럼 아예 없나?”

『키클롭스 3형제보다 먼저 자취를 감췄다. 이게 전 붑니다. 아무것도 나와 있는 게 없어요. 찾을 수도 없고.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보입니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기록이 방금 전에 말씀드린 한 줄, 그게 전붑니다.』

하데스가 우리를 불렀다. 키클롭스 3형제의 사도들이 지나가듯이 남겼다는 말. 그것이 하데스와 관련된 전부라는 건, 연우가 생각했던 것보다 하데스가 더더욱 자신을 꽁꽁 숨겨 두고 있단 뜻이었다.

‘여러 죽음의 신과 악마들이 의사를 표시할 때에도, 하데스만 유독 조용했어. 아스트라페와 트라이아나를 칠흑왕의 형틀로 전부 빼앗기는 동안에도.’

연우는 직감적으로 192년 전에 키클롭스 3형제의 사도들이 사라진 것과, 하데스의 침묵 간에 어떤 연관성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역시 일단 키클롭스 3형제부터 찾아야겠어.’

연우는 몸 상태를 체크했다. 어느덧 형질 변이가 끝나면서 신의 인자도 제대로 몸에 자리 잡은 상태였다. 여름여왕의 영혼을 흡수하면서 대폭 늘어난 재능이 빠른 성장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지.”

『무엇입니까?』

“하데스의 신물, 퀴에네. 혹시 행방을 알 수 있나?”

아트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도도 두지 않았던 만큼, 신물도 하계에 내려올 리가 거의 없지 않겠습니까?』

연우는 알겠다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조용히 프레지아의 옥경을 회수했다.

이번에도 해야 할 일이 많았다.

* * *

연우는 모든 정리를 끝내고, 동굴을 빠져나왔다. 그동안 보초를 서고 있었던 샤논과 한령은 많이 피곤했던 듯 그림자 속으로 조용히 사라지고, 대신에 간만에 니케가 반갑게 밖으로 나왔다.

『여기 공기 너무 꿉꿉해!』

니케는 30층의 공기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잔뜩 토라져 있었다. 생명을 상징하는 녀석이다 보니, 망자의 세계는 잘 맞지 않은 모양이었다.

연우는 니케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 주면서 북쪽으로 이동하던 중에, 이쪽으로 그림자가 잔뜩 드리워지는 것을 느꼈다.

연우와 니케의 고개가 저절로 그쪽으로 향했다. 거대한 와이번이 드높은 상공에서 태양을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곧 와이번에서 크로이츠가 조용히 떨어져 착지했다.

“카인!”

크로이츠는 무거운 중갑옷을 입고 제법 높은 높이에서 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멀쩡해 보였다.

“몸은? 몸은 어떻소? 다친 곳은 없으시오?”

크로이츠는 자신의 몸을 돌보듯이 연우의 주변을 뱅글뱅글 맴돌면서 상태를 체크했다.

격전이 있은 뒤, 크로이츠는 한 참 동안 30층의 넓은 스테이지를 구석구석 누비면서 연우를 찾고자 애썼다. 연대장의 소중한 친구이니, 혹시나 다친 곳이 있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잔뜩 들었던 것이다.

연우는 귀찮기만 한 크로이츠의 손길을 옆으로 치우면서 말했다.

“괜찮으니까 그만해.”

“괜찮다고 하시니 다행이오. 그래도 혹시 보이지 않는 곳에 이상이 있을지 모르니, 일단은 가만히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의원이나 신관을 불러오는 것이 어떻겠소?”

“…….”

연우는 더 이상 대답하기 귀찮아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불의 날개를 활짝 펼치면서 블링크를 잇달아 전개했다. 크로이츠는 순간 ‘앗’하는 표정을 짓더니, 재빨리 다시 비룡 위에 올라타면서 연우의 뒤를 바짝 뒤쫓았다.

‘대체 연대장이 누구기에 저렇게 충성을 다 바치는 거지?’

연우는 저 멀리 뒤에서 따라는 와이번의 그림자를 보면서 생각했다.

정말 환상연대장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저렇게 높은 충성심을 끌 어낼 수 있을까?

* * *

연우는 아트란에게서 받은 지도를 바탕으로, 남쪽으로 계속 이동을 했다. 사흘을 꼬박 새우고 도착하니 어느덧 스테이지의 끄트머리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남쪽은 아주 더운 열기를 자랑했다. 태양이 이글거리고, 땅엔 온통 숲과 늪이 우거져 이동하기가 불편했다.

“페르세포네의 신전? 혹시 히든 스테이지로 향하려는 것이오?”

크로이츠의 얼굴에는 낭패감이 어렸다. 그는 이미 50층을 돌파한 랭커였기 때문에 30층의 히든 스테이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랭커인 자신이 다시 들어가도 열 개의 관문을 모두 통과하는 것을 장담하지 못할 정도로 힘들고, 고난이 가득한 곳.

이번이 첫 도전인 연우에게는 여러모로 힘들 수밖에 없는 장소였다.

그리고 크로이츠가 그동안 관찰한 연우는, 관문을 모두 통과할 때까지는 절대 30층을 벗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최대한 빨리 연우와 연대장을 만나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그로서는. 정말이지 속이 뒤집힐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연우의 뒷덜미를 내리쳐서 강제로 끌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어떻게든 설득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

연우는 그럴 때마다 무시로 일관했다. 방해를 할 거라면 해 보라는 듯. 묵묵히 늪을 가로지르면서 페르세포네의 신전으로 향할 뿐이었다.

크로이츠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뒤를 따르기로 자처한 이상, 아무래도 이번에도 그는 연우를 따라 히든 스테이지로 향해야 할 모양이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벤티케와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지 얼마 되지 않았으면서도, 쉬지 않고 새로운 역경으로 몸을 던져 넣는 연우가 신기하게만 보였다.

‘이러니 여섯 신성 중 최고라 불리는 것인가…….’

이제는 벤티케가 죽었으니 다섯 신성이라고 하는 게 옳겠지만. 그래도 정말이지 대단한 건 대단한 거였다.

그리고 이번에도 연우가 위험에 빠지면 나서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우웅, 웅-

그의 마음가짐을 읽은 듯이 등에 패용한 성검 줄피카르가 길게 몸을 떨며 울어 댔다.

연우는 그렇게 귀찮기만 한 동행을 데리고, 어느덧 늪의 끝에 위치한 오두막집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사냥꾼의 쉼터처럼 보이는 자그마한 오두막집.

벽을 따라 길게 감긴 넝쿨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넝쿨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다양하게 피어 있어 향긋한 향기를 뿌려 댔다.

한편으로는 영험함도 느껴졌다.

이곳이 바로 페르세포네의 신전.

하데스와 함께 부부 신으로서 저승을 다스린다는 여신의 성소였다.

그때, 갑자기 오두막집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잎사귀처럼 푸르른 법복을 입은 신관이 조용히 밖으로 걸어 나왔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에메랄드빛 머리카락이 인상적이었다.

“두 분의 나그네께서 방문해 주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크로이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들을 맞이한 신관이 누군지 단번에 알아챈 까닭이었다. 녹음(綠陰)의 보디. 페르세포네 신의 사도였다.

보통 히든 스테이지로 안내하는 사람들이 페르세포네의 신관이나 사제이긴 했지만, 사도가 직접 이렇게 모습을 비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게다가 보디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우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포세이돈과 크게 충돌했고, 하데스를 찾을 거란 건 올림포스의 신들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 그렇다면 페르세포네가 어떻게든 반응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쪽으로 따라오십시오. 페르세포네 님께서 직접 카인 님을 맞이하고자, 안쪽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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