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타르타로스 (4)
“페르세포네가 직접?”
연우는 의외라는 듯이 눈을 살짝 크게 떴다. 페르세포네가 자신을 찾을 거란 생각은 했었지만, 그래도 전언을 남기거나, 더 신경 써도 강신을 하는 정도일 것으로만 예상했었다. 그런데 직접 만나 보겠다니.
16층에서 우르드 신을 만났던 것처럼, 이곳도 성소이니 페르세포네가 일시적으로 현현이 가능하긴 했다.
보디는 다른 말 없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연우는 알겠다면서 보디의 뒤를 따랐다. 크로이츠도 성검 줄피카르를 고쳐 매면서 연우의 뒤를 따르려는데, 보디가 손을 뻗어 그를 막았다.
“신께서 직접 만나자고 하신 분은 카인 님까지입니다. 그 외의 인사께서는 바깥에서 잠깐 대기해 주십시오. 그리고 이곳은 페르세포네 님의 영토입니다. 신께 경의를 보내는 표시로, 남을 해할 수 있는 흉흉한 무기는 잠깐 바닥에 내려놓는 게 어떠실는지.”
“미안하오. 경황이 없었소.”
크로이츠는 짧은 사과와 함께 성검 줄피카르를 풀어서 중앙 보석에다가 가볍게 입을 맞춘 다음, 조용히 바닥에다 내려놓았다.
보디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짧은 사과를 받고, 다시 연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따라오시지요.”
연우는 보디를 따라 오두막집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외관으로 보이는 것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무두질을 하다 만 가죽이 책상에 놓여 있었고, 벽에는 갖가지 사냥 도구들이 많이 놓여 있었다.
정말 이곳이 신전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드는 공간. 신을 연상시키는 물건은 한쪽에 마련된 청동화로와 페르세포네 신을 모신 신패가 전부였다.
『……그리워.』
그러다 연우는 자신을 따라 감돌던 레베카의 조용한 혼잣말을 듣게 되었다. 사냥꾼이자 수도자로서 살던 시절을 떠올린 걸까. 목소리에 그리움이 절절하게 묻어나 있었다.
“보통 아시는 신전 내부와 많이 다를 것입니다. 누추해 보여도 이해해 주십시오. 저 역시 신께서 내리신 부름을 급하게 받은 터라, 정리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보디는 내부를 훑어보는 연우를 보면서 살짝 입가에 미소를 떴다. 크로이츠를 대할 때와는 다른 인상이었다.
“신의 성소에서 사냥감을 관리하는 건 처음 보는 것이라 놀랐을 뿐입니다.”
“확실히 흔한 광경이 아니긴 하지요. 제물을 바치는 경우가 아니고서야, 신전 내에서 살생은 원래 보기 드무니까요. 하지만 페르세포네 신께서는 땅과 곡식의 신이신 데메테르의 따님이자, 명계와 죽음의 신이신 하데스의 아내이신 분. 땅은 계절을 따라 생(生)과 사(死)가 순환적으로 반복되어 나타나는 곳입니다. 그분을 모시는 곳에서 살생이 일어난다 한들, 그러한 죽음은 다시 산 자들에게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지 않습니까? 그리고 산 자는 다시 새로운 산 자를 낳고,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 죽은 자가 되지요.”
드넓은 대지 위에서 삶과 죽음은 그저 반복되는 순환일 뿐, 절대 불경한 것이 아닙니다. 보디는 무두질한 동물의 가죽을 손끝으로 만지면서 그렇게 말했다.
갑작스러운 현학적인 메시지. 연우는 그것이 페르세포네를 모시는 종교의 주요 교리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페르세포네가 자신을 만나기 전에 보디를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삶과 죽음은 순환일 뿐이다. 이 문장이 죽음의 힘을 다루기 시작하고, 그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연우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곳입니다.”
보디는 뒤뜰로 향하는 문을 열며 연우를 안내했다. 갖가지 꽃이 화려하게 핀 화단 속에 건물이 한 채 놓여 있었다. 자그마한 사당처럼 보였다.
“신고 계신 신발은 벗고, 무기는 모두 내려놓은 채로 화단을 지나 문을 여십시오. 그럼.”
보디는 고개를 숙이고 다시 오두막집 안으로 사라졌다. 홀로 화단에 덩그러니 남은 연우는 보디가 시키는 대로 신발을 벗고, 조용히 화단을 가로질렀다.
부드러운 흙의 감촉이 느껴졌다. 말랑말랑하고 푹신한 느낌이 너무 좋았다. 마룡체의 예민한 감각은 그 너머의 것도 느끼게 해 주었다.
고운 흙의 입자들, 축축한 수분, 꿈틀거리는 지렁이와 벌레, 싹을 틔우려는 씨, 부드러운 풀과 꽃잎, 향긋한 꽃 냄새, 흙 내음.
화단이 가진 모든 게 연우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이 속에 있는 삶이 고스란히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화단을 가로지르는 시간은 아주 짧았지만, 연우는 페르세포네가 그에게 말해 주려 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보디가 말한 사당의 문을 활짝 열었을 때.
쏴아아-
상쾌한 봄바람을 한껏 맞았다. 부드러운 흙냄새와 향긋한 꽃 내음, 여기에 상쾌한 과일 향까지 섞인 바람. 맞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저절로 좋아지는 바람이었다.
사당 너머는 별세계였다.
넓은 동산이 펼쳐져 있었다. 꽃과 풀이 부드럽게 살랑대는 곳. 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특히 바람이 너무나 따뜻하고 상쾌했다.
외부 세계와는 완전히 별도로 분리된 공간. 신이 이따금 하계로 강림할 때에 사용하는 진짜 성소였다.
한편으로는. 저승의 안주인이 기거하는 곳이라 생각하기 힘든 장소이기도 했다. 보통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깜깜한 어둠과 붉은 유황불이 흐르는 저승 위에서 망자들을 오만하게 굽어보면서 그들의 죗값을 심판할 것 같았으니까.
“무엇을 그리 빤히 보고 계시나요? 어서 안으로 들어오지 않으시구요.”
그리고. 동산의 중심에는 한 여인이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머리에 쓰고 있던 모자를 정리하면서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페르세포네는 웃음이 아름다웠다. 하데스가 첫눈에 반해서 구애를 했다는 신화와 다르게, 아주 예쁘다고 할 수는 없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아름답다’는 표현과는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산뜻한 미소가 마음을 편하게 해 주고 있었다.
으레 신이라면 당연히 필멸자로부터 굴종과 경외를 받기 위해 압도적인 위압감을 뿜어낼 테지만.
페르세포네는 그런 것도 없었다. 만약 신이라고 생각지 않았다면, 그냥 평범한 플레이어로만 여겼을 모습이었다.
더군다나.
‘친숙해.’
페르세포네가 왠지 모르게 낯설지 않았다. 마치 오래전에 헤어진 소꿉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운 마음까지 들 정도였다. 죽음을 다룬다는 칠흑왕의 힘이 낳은 여파 때문일까.
“처음 뵙겠습니다.”
연우는 성소로 들어가면서 고개를 숙였다. 무뚝뚝하지만 공손한 태도.
페르세포네는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곧 배시시 해맑게 웃었다.
“네. 반가워요. 이따금 아테나와 헤르메스에게서 듣던 것과 크게 다를 게 없는 모습이시군요. 사실 저도 그대를 한번 만나 보고 싶었어요. 이렇게 대면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페르세포네는 올림포스를 다스리는 12주신에는 들어가지 못해도, 데메테르의 딸이자 하데스의 아내라는 지엄한 신분을 지니고 있어 상위 신격으로 분류되었다. 같은 세대인 아테나, 헤르메스와는 자주 교류를 하는 사이였다.
“우선 이리로 와서 앉으시겠어요?”
페르세포네는 허공에다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동산 한가운데에 자그마한 테이블과 의자 두 개, 그리고 찻잔 세트가 마련되었다. 피크닉이라도 나온 듯한 모습이었다.
연우가 테이블에 다가가자, 의자가 저절로 밖으로 딸려 나왔다. 그는 거기에 앉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연우는 이런 상황이 영 어색하기만 했다. 여태 만났던 신들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우르드나 포세이돈은 말할 것도 없었고, 헤르메스와 아테나도 그에게 호의는 보일지언정 위세는 잃지 않았다. 초월자와 필멸자 사이의 거리는 두려 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페르세포네는 그런 게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니. 즐겁게 담소라도 나누자는 태도가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페르세포네는 그런 연우의 마음을 안다는 듯이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역시나 심장이 가볍게 두근거릴 만한 매력적인 눈 웃음이었다. 그녀는 정성스럽게 연우의 자리에다 찻잔을 정리해 주기 시작했다.
“너무 그렇게 어색해할 필요 없으세요. 아무리 신이라고 해도, 신 나름대로 개개인이 추구하는 방향도 성격도 신행(神行)도 다르니까요. 제가 추구하는 신행은 이런 것일 뿐이에요. 불멸자도, 필멸자도. 신도, 인간도. 어차피 똑같이 영혼을 가진 동등한 객체일 뿐이지요. 차이점이 있다면 일찍 스러지느냐, 그러지 않느냐인데…… 사실 신이라고 해서 죽지 않는다는 건 아니니까요.”
역시나 묘한 메시지를 담은 말이었다. 신이나 인간이나 똑같다. 동등한 존재일 뿐이다. 자신들이 고귀하다고 여기는 다른 신이나 악마가 이 말을 듣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다른 신들과는 다르다.’
연우는 페르세포네에게 조금씩 호의적인 감정을 느꼈다. 딱히 이런 모습이 꾸민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신인 그녀가 그럴 필요는 전혀 없으니까.
아니, 신행을 추구하는 신과 악마는 절대 거짓을 이야기해서는 안 되었다. 자신이 살아온 사고관과 자신이 다스리는 신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언제나 스스로에게 솔직해야만 했다.
그렇게 그녀를 이해하고 나니, 어색했던 그녀의 행동들도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누누이 써 왔던 존댓말이나, 예의 바른 태도 등은 정말 그를 하나의 객체로서 존중한다는 의미였다.
연우는 페르세포네의 맞은편에 조용히 앉았다. 동등한 눈높이가 맞춰졌다.
페르세포네는 다시 방긋 웃으면서 주전자를 기울여 연우의 찻잔에 홍차를 따랐다. 그리고 테이블 한쪽에 놓인 과자도 두어 개 꺼내 내밀었다.
“이곳에서 나는 꽃들을 가져다 만든 화과자랍니다. 아마 홍차와 잘 어울릴 거예요. 한번 드셔 보세요.”
연우는 가면을 벗고, 그녀가 조언해 준 대로 화과자를 집어 한 입 베어 물었다. 눈이 저절로 커졌다. 달콤했다. 그러면서도 산뜻했다. 입 속이 개운해지면서 정신도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감미로운 맛이 혀를 맘껏 희롱했다.
홍차도 가볍게 입술에 축였다. 달콤함이 남아 있던 혀끝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면서 청량함을 가져다주었다. 목젖에서부터 식도를 따라 위까지. 그리고 몸 전체로 활력이 번져 나갔다.
영혼이 살짝 붕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현자의 돌이 즐겁다는 듯이 울어 댔다.
연우는 자신이 마신 홍차와 화과자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알 것 같았다.
‘넥타르.’
올림포스의 신들이 즐겨 마신다는 음료. 불로불사를 가져다준다는 신약이었다. 물론, 연우가 마신 것은 진짜 넥타르를 희석한 거였지만, 그래도 연우에게는 아주 고마운 영약이었다. 벌써부터 신의 인자가 반응하면서, 마력 내에 신력의 비중이 부쩍 늘어나고 있었다.
“혹시 이 화과자, 몇 개쯤 더 얻어갈 수 있겠습니까?”
페르세포네가 눈웃음을 지었다.
“아난타라는 용인 때문인가요?”
“예.”
역시 페르세포네의 성역이라 그런지, 그의 생각을 일부 읽은 듯했다.
연우도 사실을 숨길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올림포스 신들이 마신다는 신약이라면 심병(心病)으로 고생하는 아난타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 것이라면 얼마든지. 가시는 길에 보디에게 몇 개 챙겨 놓으라고 해 둘게요.”
“감사합니다.”
아난타는 별것 아니라는 듯 손 사래를 치면서 본론으로 들어갔다.
“키클롭스 3형제를 찾는다고 들었어요.”
페르세포네는 연우의 찻잔을 다시 채워 주면서 말했다. 연우는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이곳에서 그동안 시스템으로 ### 님을 봐 왔다지만, 그래도 생각을 직접 듣고 싶어서요.”
“정확하게는 퀴네에를 찾고 있습니다.”
“퀴네에라면…… 그이의 투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예.”
퀴네에. 티타노마키아에서 하데스가 크로노스의 이목을 속이기 위해서 썼다는 투구. 쓰는 것만으로도 기척과 자취를 감춰 주며, 전의를 불태우게 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혹시 갖고 계십니까?”
페르세포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산뜻했던 미소가 어느새 씁쓸함으로 변해 있었다. 그녀의 감정 변화에 따라 살랑이던 봄바람도 조금씩 차가운 살바람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그이는 저를 사랑하고, 저 역시 그이를 사랑하지만. 그래도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비밀로 하는 각자의 사생활 영역이 있답니다. 그이는 자신의 물건을 건드리는 것을 세상 무엇보다 싫어해요. 그리고 그이가 사라진 지금은 더더욱 행방을 알 수가 없어요.”
그이는 사도를 잘 두지 않기도 했고요. 페르세포네는 그렇게 뒷말을 덧붙였다.
연우의 두 눈이 이채를 떴다.
“부군이 어디에 계시는지 모르십니까?”
“타르타로스에 무언가 일이 생겼다면서 잠시 자리를 비우겠다고 말한 이후로……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어요.”
‘타르타로스?’
타르타로스는 하데스가 다스리는 저승에서 가장 아래층에 박힌 무저갱을 뜻했다. 아니, 저승이라기보다는 감옥이라 표현하는 곳이 옳은 곳.
올림포스에 대항했던 티탄 족을 비롯해 기가스 족을 가둔 곳이며, 한번 들어가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어 모든 신과 악마들이 두려워하는 미지의 장소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곳에 무슨 일이 생겼고, 하데스가 그곳으로 갔다가 실종되었다?
‘키클롭스 3형제는 그런 하데스의 부름을 받아 관문을 통과하다 사라졌었지. 타르타로스로 이어지는 청동문이, 열 개의 관문 너머에 있었던가 그랬을 텐데?’
연우는 어느 정도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타르타로스에 어떤 일이 발생했고, 하데스가 그것을 막기 위해 키클롭스 3형제를 불렀다. 그리고 전부 사라졌다.
그렇다는 건, 결국.
‘타르타로스로 가 봐야 한다는 건데.’
칠흑왕의 힘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그로서는 하데스의 행방을 어떻게든 찾아내야만 했다.
“올림포스에서도 그이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해 봤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어요.”
사실 올림포스 신들이 나서도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타르타로스는 어디까지나 하데스의 영역. 아니, 성역이다. 신과 악마들은 타인의 성역에 개입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말씀은.”
“퀴네에를 찾는 게 목적이라고 하셨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릴게요. 그이를 찾는데 손을 보태주셨으면 해요.”
“전 평범한 인간일 뿐입니다.”
“죽음의 대리자이기도 하죠.”
연우의 눈이 빛났다.
“칠흑왕에 대해서 아십니까?”
“모를 리가 있을까요. 죽음을 신위로 삼는다는 신과 악마들은 모두 그를 알 수밖에 없어요. 그들이 가진 힘은 모두 거기에서 비롯되었으니까. 저와 하데스도 마찬가지에요.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어요.”
“그럼 칠흑왕이 누구인지 말씀해 주실…….”
페르세포네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죄송해요. 그와 관련된 것들은 스틱스의 맹약에 얽매여 절대 어떤 것도 발설할 수 없도록 되어 있어요. 이름조차도 입에 담을 수 없어요.”
페르세포네는 화과자를 한 개 들어 입에 물었다. 잇자국이 과자에 살짝 남았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말할 수 있어요. 제 어머니의 세대분들은 ‘그’를 아주 두려워해요. 하지만 바로 아래 세대인 헤르메스와 아테나 등의 세대는 오히려 스틱스의 맹약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죠. 그건 저도 마찬가지고요. 저 역시 당신을 도와드리겠어요. 원한다면 지지까지도. 대신에. 그이를 찾는 것을 도와주세요.”
페르세포네의 아름다운 눈가를 따라 눈물이 살짝 맺혔다.
“전…… 자격이 없어 타르타로스로 건너가지 못해요. 하지만 필멸자이면서도 죽음과 가까운 ### 님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할 거라고 여겨져요. ### 님에게는 운명이 따르고 있어요.”
연우는 입을 꾹 다물었다.
“만약 그가 죽었다면, 그 생사라도 알고 싶어요. 전 그저 그이를 보고 싶을 뿐이에요. 그러니 도와 주세요.”
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어차피 그도 하데스의 행방을 찾을 생각이었다. 여기에 페르세포네의 부탁이 더해진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과연 올림포스 신들도 다가가길 꺼려 한다는 타르타로스를 자신이 건널 수 있냐는 것뿐.
‘일단은 관문부터.’
그때였다.
[서든 퀘스트(페르세포네의 오랜 소망)이 생성되었습니다.]
[퀘스트에 한정해 페르세포네의 축복이 더해집니다.]
[퀘스트에 한정해 페르세포네의 기원이 더해집니다.]
[퀘스트에 한정해 페르세포네의 가호가 더해집니다.]
연우는 차례로 뜨는 메시지를 보면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페르세포네가 직접 그를 만나고 싶었던 것은 이 부탁을 위해서였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한 가지 사실을 더 알게 되었다. 올림포스 내에서도 제우스 세대는 자신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데 반해, 헤르메스와 아테나의 세대는 그런 것이 없다는 사실. 그리고 ‘스틱스의 맹세’라는 것이 그들을 옭아 매고 있다는 것까지도.
“감사해요.”
연우는 페르세포네의 감사 인사를 들으며 성소를 벗어나려 했다. 그러다 문득 뭔가를 갑자기 떠올린 것처럼 불쑥 페르세포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한 가지 질문 드릴 것이 있습니다만.”
“네. 말씀하세요.”
“혹시 제 동생의 영혼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바가 있으십니까? 저승에 묶여 있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페르세포네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죄송해요. 그이를 대신해서 제가 명부의 일을 도맡아 처리하고 있긴 하지만, 전부를 알고 있는 건 아닌지라. 그래도 ### 님의 부탁이시니 따로 알아보도록 할게요. 차정우의 영혼은, 저희들에게도 이제 큰 관심사가 되었으니까요.”
“감사합니다.”
연우는 인사를 끝내고 성소를 빠져나왔다.
* * *
성소 밖에는 보디가 기다리고 있었다.
“신은 잘 배알하셨습니까?”
연우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보디가 입가에 엷은 미소를 폈다.
“하데스께서 사라지신 뒤로, 외로움을 많이 타시는 분이십니다. 최근에는 어머니이신 데메테르께서도 편찮으시다는 말이 들리는지라, 심중에 아픔이 떠나질 않으시지요. 카인 님과의 만남으로, 신께서도 마음이 많이 평안해지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보디는 안도에 찬 한숨을 내쉬면서 다시 연우를 크로이츠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그 뒤를 따르는 내내.
연우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페르세포네가 아주 잠깐 보였던 표정이 아직도 눈가에 아른거렸다. 파르르 떨리던 눈빛. 죄책감과 슬픔이 어린 눈빛이었다.
순간에 불과했지만. 절대 놓치지 않았다.
‘뭔가를, 알고 있었어.’
그 순간.
뱅그르르-
갑자기 품속에 있던 회중시계의 시침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형.』
어디선가.
낯이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