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306화 (306/862)

6화. 타르타로스 (6)

‘이런 건 생각도 못 했어.’

연우의 웃음은 사실 헛웃음에 가까웠다.

아주 힘들어서 랭커들도 이따금 자기 수련을 위해서 찾는다는 히든 스테이지가 이렇게 버프 효과를 잔뜩 주는 것으로도 모자라, 떡 하니 칭호까지 가져다줬으니.

하지만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저승을 모방한 곳이라면, 당연히 죽음의 힘이 가장 극대화될 수밖에 없는 바.

칠흑왕의 비탄을 얻으면서 더 깊은 암 속성을 얻은 연우에게는 딱 알맞은 장소인 것이다. 게다가 그는 화 속성에서 이미 플레이어의 한계치까지 거의 다다라 있었다. 힘들 것이 없었다.

크로이츠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면서 괴물 보듯이 쳐다봤지만.

연우는 녀석의 시선 따윈 싹 무시했다. 끝까지 따라오겠다고 한 건 그였다. 자신이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아니면 귀찮은데 그냥 떨쳐 낼까?’

타르타로스는 열 개의 관문 너머에 위치해 있다. 크로이츠도 뛰어난 플레이어라지만, 그는 상성상 히든 스테이지와 너무 맞지 않았다. 성력을 다루는 이에게 있어 죽음의 대지란, 모든 것이 억눌리는 가혹한 장소일 것이다.

“왜 그러시오?”

크로이츠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연우의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조금 떨떠름한 표정이 되었다. 고민하는 연우의 기색을 읽은 모양이었다.

연우는 다른 대답 대신에 검지로 크로이츠의 뒤편을 가리켰다.

“그 검, 계속 울고 있는 것 같은데.”

크로이츠는 반사적으로 뒤쪽으로 손을 옮겼다가, 뭘 말하는지 깨닫고 쓰게 웃었다. 성검 줄피카르가 계속 울어 대고 있었다. 히든 스테이지에 들어온 뒤로 계속 이 상태였다.

“이 검은 자체적으로 성력을 품고 있는 근원이기도 해서 말이오. 아무래도 이런 장소를 부담스러워할 수밖에 없지. 그렇지 않아도 고통스럽다고 계속 칭얼대는 터라, 어떻게 달래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차라오.”

연우의 눈가에 이채가 어렸다.

“말도 하나?”

크로이츠가 가볍게 웃었다.

“설마. 영혼이 담겨 자아를 깨우친 에고 소드가 아니고서야. 음. 뭐랄까, 그냥…….”

“검의 뜻이 들리나 보지?”

“그렇소. 검명(劍鳴)이라고 하지. 혹시나 했는데. 역시 카인도 알고 있었던 모양이군. 사실 이런 걸 주변에다 말해 봤자, 수하들은 이상한 사람 쳐다보듯이 하던데.”

연우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검명. 외뿔부족에서는 달인 급을 넘어 ‘명인’ 급에 들어서는 이들이 필수적으로 깨달아야 할 덕목으로 가르치고 있는 경지였다.

검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곧 검의 상태를 파악하고, 자신과의 동화율이 어느 정도인지를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는 뜻이었다.

검이 아무리 멀쩡해도 몸이 따라 주지 않으면 부서질 수 있고, 검이 심하게 상했어도 잘 다룰 수 있다면 능히 바위도 벨 수 있는 법이었다.

연우도 이제야 겨우 갓 깨우쳐 가고 있는 중인 경지였다. 그런데 크로이츠는 이미 거길 딛고 있는 모양이었다.

‘대단하군.’

외뿔부족이 아니고서야, 명인 급이 될 때까지 병장기를 수련하는 플레이어는 찾기 힘들다. 연우는 크로이츠가 검에 있어서 얼마나 대단한 경지에 올랐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아, 연대장만큼은 이해를 해 주긴 했었소.”

“연대장도?”

“그렇소.”

‘환상연대장도 최소 명인 급이라는 뜻이로군. 대체 누구지?’

역시 짚이는 바가 크게 없었다.

“하여간. 그럼 그런 상태로 계속 뒤를 쫓아올 생각인가?”

크로이츠가 쓰게 웃었다.

“무엇을 걱정하는지는 알겠소. 그대의 발목을 잡지는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겠지?”

“내 성격은 잘 알 테고.”

“친분이 있다면 모르되, 정체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 수상쩍은 이가 짐짝이 된다면 가차 없이 내버리거나, 때에 따라서는 목도 치려 하지 않겠소?”

연우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로도 충분했다. 크로이츠도 지난 며칠 동안 연우를 관찰하면서 그에 대해 깨달은 게 많았다.

“카인은 카인대로 할 일을 하시오. 자세한 건 알 수 없으나, 페르세포네 신에게 개인적으로 어떤 퀘스트를 받은 것 아니오?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겠소. 무엇인지 묻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을 것이고. 내 이름과 기사단의 명예를 걸고, 맹세하겠소.”

크로이츠는 주먹으로 자신의 왼쪽 가슴을 두들기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연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뒤로 돌아섰다. 대답은 저것이면 충분했다. 여태 그가 봤던 크로이츠는 정말 기사도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으니까. 맹세를 깨뜨리지는 않을 것이다.

‘깨뜨려도 무방하지. 용마안을 피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리고 그때는 가차 없이 베어 버리면 그만이었다.

화아악!

연우는 불의 날개를 활짝 펼쳤다. 그리고 땅을 거세게 박찼다.

팟-

[첫 번째 관문, ‘도산’에 입장했습니다.]

* * *

크로이츠는 저만치 점이 되어 사라지는 연우를 따라잡기 위해서 검지와 중지를 입에다 물고 휘파람을 불었다.

〈비룡 소환〉. 이전처럼 편하게 와이번을 타고 따라갈 생각이었다. 이런 무거운 중장 갑옷과 커다란 성검을 들고 날랜 연우를 따라잡는다는 건 미친 짓이었다.

그런데.

[소환이 실패하였습니다.]

[소환이 실패하였습니다.]

“……음?”

이상하게 자꾸 소환에 실패했다는 메시지가 떴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이곳에서는 소환수(비룡)를 소환할 수 없습니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세요.]

“설마…….”

크로이츠는 잔뜩 굳어진 얼굴로 연우가 사라진 곳을 바라봤다. 땅바닥에 뜨거운 강물이 펄펄 끓고 있었다. 이런 갑옷을 입고 저 위를 뛰어다니면 어떻게 될까. 잘 익은 계란처럼 푹 삶아지지 않을까.

크로이츠의 얼굴이 핼쓱해졌다.

* * *

열 개의 관문은 염라대왕을 비롯한 시왕(十王)이 다스린다는 열 개의 지옥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곳이었다.

첫 번째 ‘도산(刀山)’은 주변에 온통 칼날밖에 없어서, 흉흉하기만 한 숲이었다.

저승에서 죽은 자들을 심판한다는 열 명의 왕, 시왕. 그들은 각자 저마다 다른 지옥을 다스리며, 망자들의 죗값만큼 처벌하고 나서 다음 지옥으로 보낼지, 아니면 다른 세계로 윤환전생을 시켜 줄지를 결정한다고 한다.

이 중에서 첫 번째 지옥, 도산지옥은 칼날이 온통 땅과 숲을 이루며 있는 곳이었다.

‘최대한 빠르게 지나야겠어.’

연우는 낭떠러지의 끝에 서서 용마안으로 관문을 빠르게 훑었다.

낭떠러지 앞은 온통 시커먼 무저갱이 훤히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의념을 쏟아 봤지만, 도무지 끝이 느껴지지 않았다. 떨어지면 끝장이란 뜻이었다.

발을 디딜 곳이라고는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고,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난간들뿐.

하지만 난간들은 하나같이 길이가 몇 미터가 되지 않았고, 폭도 아주 좁았다. 뭔가를 툭 떨어뜨리면 그대로 베어 버릴 것처럼 날카로운 날을 드러내고 있어서, 잘못 디뎠다가는 그대로 몸이 잘려 나갈 것 같았다.

‘어떻게 서 있는다고 해도, 조금이라도 균형이 흐트러지면 바로 낙이고. 처음부터 살벌하군.’

넓은 관문을 따라, 여러 플레이어들이 조심스럽게 이동하는 것이 보였다.

하나같이 랭커 급이거나, 그에 준하는 자들. 30층을 갓 통과한 듯한 플레이어는 없어 보였다.

‘편법이라도 써야겠지.’

연우는 각 난간에 조금씩 어린 응달의 위치를 파악하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몸을 던졌다. 용마안이 더 크게 열리면서 여러 루트를 선보여 주었다.

파밧-

[바람길 - 질풍]

연우는 결이 그려 내는 길을 따라, 질풍을 잔뜩 일으키면서 빠르게 난간 위를 차례대로 밟아 나갔다.

칼날에 발이 닿을 때마다 그림자 위로 괴이들이 불쑥불쑥 올라오면서 디딤돌 역할을 하고, 바람길은 연우를 부드럽게 다음 장소로 이동시켜 주었다.

마치 무게가 거의 없는 깃털처럼 부드러운 움직임이었다. 사실 첫 번째 관문이 아무리 위험하기로서니, 연우로서는 이곳을 통과하지 못하면 갈리어드에게 크게 혼이 나도 할 말이 없는 곳이었다.

“뭐야? 뭐 방금 전에 지나가지 않았어?”

“도, 독식자?”

“뭐가 저렇게 빨라? 미쳤……!”

한창 플레이에 집중하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연우를 시샘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봐야만 했다.

“과연, 신성이란 건가…….”

아직 30층도 제대로 통과하지 못한 플레이어에게 이렇게 눌리다니.

그들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잔뜩 잠겼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뒤를 따라.

“헉, 헉헉…….”

크로이츠가 폴짝폴짝 열심히 뛰어다녔다.

* * *

[두 번째 관문, ‘화탕’에 입장했습니다.]

‘이곳은 좀 전보다 훨씬 쉬운데.’

두 번째 관문은 여러모로 연우에게 편한 장소였다. 바닥을 따라 펄펄 끓는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눅눅하고, 텁텁했다.

이곳을 통과 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한 가지는 최대한 관문 주변의 자원들을 가져다 자체적으로 배를 만들어 강물에다 띄우거나.

‘아니면 그냥 헤엄쳐서 건너는가.’

물론, 자원이란 한정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임의로 만들 수 있는 배의 숫자에도 한계가 있을뿐더러, 대부분의 배는 띄우기도 전에 끓는 물에 그대로 홀라당 타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가장 편한 건 그냥 헤엄치는 것이었다.

도중에 지쳐서 익사하거나, 장기가 전부 열기로 익어 질식할 확률이 높았지만.

아무리 헤엄을 잘 치더라도 화상으로 죽고, 화상에 대한 뛰어난 내성을 갖고 있어도 헤엄을 치다가 체력이 방전되면 죽는 것이다.

보통 이 상반된 속성을 겸비한 사람은 거의 없었기에,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두 번째 관문에서 되돌아가는 편이었다.

연우도 마찬가지. 그는 화 속성에만 특화되어 있었다. 헤엄을 친다고 해도 관문의 길이가 너무 길었고, 불의 날개로 난다고 해도 난간이 없으니 비행시간에 한계가 있었다.

‘물론, 난 둘 다 하지 않을 생각이지만.’

하지만 연우에게는 다른 무기가 있었다.

‘케토.’

라나에게 받은 신물이 있지 않은가. 목에 두르고 있던 목걸이에 손을 가져갔다.

[케토의 권능(해왕석)이 발동됩니다.]

[해왕석(海王釋)]

등급: 권능

숙련도: 0.0%

설명: ‘올림포스’의 여신, 케토가 선물한 권능.

케토는 죽은 사도 라나의 후계로 당신을 점지하고, 그녀가 가지고 있던 권능을 그대로 물려주었다.

* 육각(六覺)

케토는 모든 해수류와 해왕류의 시조라 할 수 있다. 권능을 발휘하는 동안, 모든 감각 기관과 근육 조직이 한계 이상의 힘을 풀어낸다.

또한, 본능적인 감각도 해왕류만큼 민감해져 직관력이 대폭 상승한다. 돌발적인 상황에 민첩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된다.

* 타닌 피어(Tannin Fear)

강렬한 피어를 풀어내 괴물의 본능을 강제로 꺾는다. 이때, 대상자에게 강한 디버프 효과를 실으며, 의지가 완전히 꺾인 대상에 한해서 생명력을 소모시켜 강제 조종이 가능해진다.

* 물의 인도자

가까운 장소에 강이나 바다 같은 풍부한 수자원이 있을 경우, 일부를 의지대로 다룰 수 있게 된다.

아즈라엘의 제3천의 영이 빠져 나간 자리에 새롭게 채워진 케토의 권능, 해왕석.

이것도 사실상 연우에게는 용체 각성과 한데 어울리면서 힘을 부쩍 실어 주는 효과를 낳았다. 육각은 초감각에, 괴물의 왕은 드래곤 피어에 상승 효과를 미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연우에게 주는 가장 큰 효과는 물의 인도자였다. 그동안 연우에게 약점으로 작용하던 강가에서의 싸움에 이점을 주는 것이다.

연우는 권능이 발동되자마자, 천천히 강가 위로 발을 얹었다.

퉁-

발끝이 수면에 닿자 잔잔한 파문이 그려졌다. 기포가 부글부글 꿇으며 전해지는 열기는 아무렇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은 기분만 주었다.

‘된다.’

연우는 어느새 수면 위에 서 있게 되자 가만히 웃었다.

그 순간.

크와앙-

갑자기 기포가 끓는 수면에서부터 거대한 괴물이 튀어나왔다. 망자의 강에서 숱하게 만났던 해수류에 못지않은 크기에, 흉악성은 해왕류를 떠올리게 하는 녀석이었다.

괴물은 연우를 집어삼키기 위해 아가리를 쩍 벌렸지만, 곧 연우와 눈이 마주친 순간 몸이 빳빳하게 굳고 말았다.

연우를 따라 흐르는 피어(Fear)가 녀석의 심장을 강하게 옥죄었던 것이다.

그러다 연우의 머리 위로, 두 개의 실선이 그어지면서 눈동자가 활짝 열렸다. 푸른색의 인페르노 사이트가 잔뜩 일그러진 채로 괴물을 노려봤다.

「감히. 미물. 따위. 가.」

괴물은 해왕류도 가볍게 찢어 먹으면서, 이따금 플레이어들을 한입에 집어삼킨다는 포식어(捕食魚)였지만.

인페르노 사이트가 주는 위압감을 거스를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사라. 져라.」

펑-

괴물의 머리통이 그대로 폭죽처럼 터져 나갔다. 살점이 후두둑 떨어지면서 강을 붉게 물들였다.

‘딱히 힘들일 필요는 없겠군.’

사실 따지고 보면, 이 관문은 부에게 시켜서 플라잉 마법만 걸게 해도 충분히 통과할 수 있었다. 다만, 그렇게 되면 별다른 활약을 벌이지 못해 공적치가 올라가지 않을 뿐.

그러다 연우는 수면 아래로 잠기는 포식어의 사체를 보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런 것도 괜찮겠는데.’

연우는 눈을 가만히 감으면서 강가를 따라 의념을 잔뜩 넓게 퍼뜨렸다.

화아아-

인지 영역 안쪽으로, 강 아래를 헤엄쳐 다니는 여러 괴물들이 포착되었다.

그런 녀석들에게, 피어를 잔뜩 실어 보냈다. 그러자 이리저리 헤엄치던 녀석들의 몸이 빳빳하게 굳더니, 압박감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을 쳤다.

연우는 그런 모습에서 의외로 재미를 느꼈다. 괴물들은 아직 미숙한 권능의 법칙을 빠져나가려는 중이었다.

이것을 강제로 붙들면서 조금씩 피어를 심어 나가는 과정이 제법 괜찮은 수련이 되었던 것이다.

예전에도 벤티케와의 싸움에서 비슷한 것을 해 본 적이 있다지만. 그때는 단순히 신물에 의지한 것이었으니.

여기에 부의 사념까지 깃들자, 괴물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말았다. 괴물들의 눈동자에서 이지가 조금씩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연우는 손끝으로 연결된 감각을 따라, 조금씩 녀석들을 수면 위로 끄집어 올렸다.

“어, 어어? 뭐야?”

“해왕류가 갑자기 왜 이렇게 떼거지로……!”

이미 도강을 시도하던 플레이어들이 놀랐지만.

연우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수면 위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괴물들의 머리를 징검다리 삼아서 빠르게 주파했다. 그때마다 부서지는 괴물들의 머리가 강물을 빨갛게 물들였다.

파바밧-

덕분에 물살이 일면서 헤엄치던 사람들이 이리저리 휩쓸려 허우적거려야만 했다. 실수로 연우에게 밟혀서 물을 마셔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슈퍼 마리오가 생각나는데.’

어쩐지 지구에서 하던 아케이드 게임을 떠올리면서. 연우는 빠르게 두 번째 관문도 통과했다.

「인성…….」

물론, 샤논의 말은 그냥 무시했다.

“으아아! 안 돼에에”

그리고. 연우가 사라진 자리로, 뒤따라온 크로이츠가 해쓱한 얼굴로 절규했다.

* * *

[세 번째 관문, ‘한빙’에 입장했습니다.]

[네 번째 관문, ‘검수’에 입장했습니다.]

……

[여섯 번째 관문, ‘독사’에 입장했습니다.]

연우는 전력을 다해 각 관문들을 빠르게 주파하면서, 드디어 키클롭스 3형제가 실종되었다는 관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눅눅한 늪지대로 뒤덮인 곳.

땅을 디딜 때마다 무언가가 짓눌리는 질퍽질퍽한 감촉과 함께 핏물이 꾸역꾸역 위로 쏟아졌다.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죽었어야 이런 참혹한 광경이 나타나는 걸까.

문제는 그런 핏물이 지독한 부시독과 산성액을 띠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티팩트도 녹아 버릴 정도로 심각하고, 호흡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장소였다.

‘잔독혈로도 쉽지가 않은데.’

여기서부터는 연우에게도 쉽지 않았다. 잔독혈을 이용해서 면역력이 대폭 올랐다지만, 그마저도 가볍게 무시되고 영향을 받을 정도로 지독했다.

‘최대한 빨리 여길 통과해야 할 것 같은데.’

연우는 아트란에게서 구입한 피독주(避毒珠)를 입에다 물고,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그런데 여기서 어떻게 키클롭스의 흔적을 찾는다?’

키클롭스 3형제의 마지막 흔적이 발견된 곳이 여섯 번째 관문이라지만, 그들이 하데스를 따라 타르타로스로 완전히 넘어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니면,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바닥에 가득한 살점들 중 일부가 되었을지도.

200년 가까이 지났으니, 사실상 그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귀찮긴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

연우는 고개를 위로 들었다.

“부.”

츠츠츠-

공간이 열리면서 괴기한 느낌을 자랑하는 리치가 나타났다. 부는 들고 있던 검은 구슬을 높이 들면서 알 수 없는 말을 웅얼대기 시작했다.

쿠쿠쿠!

주문이 계속될수록, 연우가 디디고 있던 살점들이 위아래로 크게 요동쳤다. 그리고 동시에 희뿌연 연기가 올라오면서 끔찍한 귀곡성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숫자의 망령들이 운집하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오랜 잠에서 갓 깨어난 녀석들은 비명을 질러 대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근 200년 동안 여섯 번째 관문에서 죽은 모든 플레이어들의 망령과 사념들을 깨운 것이다.

딱 봐도 너무나 많은 숫자였지만. 이들을 일일이 점검해 본다면 뭔가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답을. 내놓. 아라.」

연우의 머릿속으로 수많은 사념의 파도가 물밀 듯이 쳐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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