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타르타로스 (8)
‘운이 좋았어.’
연우는 키클롭스의 사도, 알딘을 보면서 눈을 빛냈다. 죽기 직전에 강한 의념을 발산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사도라는 특징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건 간에, 알딘은 꽤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비교적 영혼이 괜찮은 형태로 남아 있었다.
물론, 영혼을 이루는 사념 중간 중간이 유실되어 멍해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의사소통을 하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을 듯했다.
‘브론테스가 손을 쓴 건지, 신력도 일부 남아 있고.’
연우는 눈을 빛내면서 말했다.
“잠시 기다리고 있어. 우선 처리해 둘 게 있어서.”
알딘은 뭔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연우는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관문을 빠르게 살폈다.
네메시스와 니케는 그동안 현자의 돌에서 잠들어 있던 동안에 쌓았던 모든 기량을 맘껏 풀어내고 있었다.
부시독과 산성액이 성화에 빠르게 정화되기 시작하니, 처음에 그렇게나 위압감을 떨치던 망령 거인도 계속 밀리고 있었다.
부는 마법을 난사하고, 그 아래에서 샤논, 한령, 레베카가 빠르게 질주하면서 망령 거인들을 몰아붙이는 중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괴이들도 나타나 이리저리 날뛰었다.
쾅!
때마침 처음에 나타났던 망령 거인의 머리통이 잘게 부서지면서 아래로 쓰러졌다.
꽤 거친 폭발 때문에, 화끈한 열기가 여기까지 전해졌다. 연우가 가진 모든 기량이 총투입된 것이다.
한쪽에서는 크로이츠가 열심히 싸우고 있는 중이었다. 성력을 발휘하는 플레이어답게, 망령 거인은 상성이 맞지 않는 그에게 압도적으로 밀리는 듯한 형세를 보였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해.’
연우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망령 거인을 하나 쓰러뜨리고, 남은 녀석들도 어떻게든 상대하고 있는 중이라지만.
망령 거인도 학습 능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조금씩 반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공격 패턴을 숙지하고 있단 뜻이었다.
무엇보다. 지면이 뚫리면서 계속 망령 거인들이 속속들이 나타나는 중이었다. 게다가 지하에는 이보다 더 많은 망령 거인들이 꾸역꾸역 올라오려 하고 있으니. 대체 얼마나 많은 녀석들이 있는지 짐작도 가질 않았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싸우려 한다면 못 싸울 것도 없었다. 많이 지치긴 하겠지만. 아무리 망령 거인 개개인이 연우에 준하는 격을 지녔다고 해도, 연우는 ‘싸움’을 아는 사람이었다. 시간을 끌면 어떻게든 버텨 내거나, 이곳에서 도망칠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그 뒤야.’
하지만 정작 다음 관문으로 넘어갔을 때는? 힘이 다 소진된 상태로 가서야, 승산이 없었다. 그곳에 망령 거인 같은 것들이 없다는 보장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강한 녀석들이 우글대고 있을 확률이 더 높을 텐데.
결국 연우는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야만 했다.
그때.
우웅, 웅-
갑자기 오른쪽 팔목과 왼쪽 발목이 잘게 울렸다. 칠흑왕의 절망과 비탄이 뭘 하냐며 칭얼대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연우는 뭔가를 깨달을 수가 있었다.
자신이 여태 뭘 놓치고 있었는지. 왜 굳이 싸울 생각만 한 걸까. 타르타로스로 향하는 관문들은, 사실 따지고 보면 그에게 더할 나위 없이 유리한 스테이지들일 텐데.
[해왕석- 타닌 피어]
연우는 의념에다 피어를 섞기 시작했다. 타닌 피어. 괴물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위압감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손을 앞으로 내뻗었다. 타닌 피어는 선포된 영역을 따라, 프레셔의 형태가 되어 적수로 지정된 망령 괴인들의 어깨를 강하게 짓눌렀다.
쿵-
마치 무거운 추를 강제로 매단 것처럼. 중력이 강화되면서 그들을 강하게 옥죄기 시작했다.
끼아아악-
꺅! 꺅!
망령 거인을 이루고 있던 망령들이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마구잡이로 날뛰기 시작했다.
타닌 피어는 상대의 정신력을 꺾고, 강제로 구속시키는 특징을 지닌다. 망령 거인이라는 거대한 군집체(群集體)라면 모를까, 보잘것없는 망령을 개별로 상대한다면 어려울 것이 전혀 없었다. 정신적 속박감이 녀석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거기에 따라, 망령 거인의 움직임도 계속 굼떠졌다. 녀석들이 연우를 알아채고 고개를 천천히 돌렸지만, 이미 녀석들은 고장 난 로봇처럼 되어 가는 중이었다.
「뭐야? 갑자기 왜 이래?」
「또 뭔가를 하시려는 모양이군.」
샤논과 한령은 연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도 혹시나 일이 잘못될 것을 대비해 경계는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리고.
연우는 역으로 강한 압박감을 받고 있었다.
‘미치겠군.’
하나하나만 따진다면 아주 사소할 테지만, 이렇게 뭉쳐 놓고 보니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동안 여섯 번째 관문에서, 아니, 열 개의 관문에서 죽었던 플레이어들의 망령 중 원념이 강한 것들만 저기에 뭉쳐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손끝에 실로 연결된 것처럼 수많은 감정과 사념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여기서 한 발이라도 삐끗하면 같이 빠져서 휩쓸릴 것 같은 아찔함이 일었다. 너무 많은 사고들이 복잡하게 머릿속을 울려 댔다.
자칫 역류를 일으켜서 연우의 정신이 침범당할 우려도 있었지만.
[‘냉혈’ 특성으로 이성을 유지합니다.]
특성이 주는 효과를 바탕으로 정신을 붙잡으면서, 칠흑왕의 권능을 발동시켰다.
절망은 영혼을, 비탄은 죽음을 다룬다. 이 두 가지의 절대적 권능이라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제2천의 영]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콰드득-
마치 손끝에 엮인 실들을 한꺼번에 강제로 꼬아 내듯. 실타래는 꽈배기처럼 배배 꼬이면서 끝에 연결된 망령들을 강제로 비틀기 시작했다.
끼아아악!
꺅! 꺅!
망령들은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이리저리 날뛰었다. 그리고 망령이 뭉쳐 있던 망령 거인은 이리저리 날뛰더니.
퍽!
퍼퍼퍽-
폭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잘게 부서졌다. 땅에 꼿꼿하게 서 있던 망령 거인들뿐만 아니라, 지상으로 올라오던 녀석들까지 모두.
순식간에 여섯 번째 관문 전체가 망령들로 가득 차 버렸다. 척 보이도 수만 마리는 넘어 보이는 어마어마한 숫자. 아니, 못해도 십만 단위는 될 것 같았다.
잿빛 안개가 가득 퍼져 나가다가, 거대한 와류를 그리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슨……?”
크로이츠가 크게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바로 눈앞에서 망령들이 귀곡성을 뿌려 대고 있었다. 절규와 비통이 울려 퍼졌다.
[영혼 수확자]
연우는 주먹을 안쪽으로 잡아당겼다. 그러자 꽈배기처럼 꼬였던 망령 집단이 그대로 연우 쪽으로 딸려 왔다.
그때, 연우의 눈앞으로 새로운 무저갱이 열렸다.
소울 컬렉션(Soul Collection). 망령들을 강제로 구속시키고, 노예의 낙인을 찍어 연우의 소유로 만들어 버리는 함이 흉측하게 아가리를 벌렸다.
키아아-
망령들은 연우가 뭘 노리려는지를 깨닫고, 어떻게든 빠져나오고자 발버둥 쳤지만.
이미 한번 시작된 관성은 도저히 거스를 수가 없었다.
결국 그 많은 망령 집단이 통째로 소울 컬렉션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그 좁은 구멍으로 어떻게 가능할까 싶었지만, 무저갱은 게걸스럽게 전부를 먹어 치웠다. 그리고 굳게 입을 다물었다.
쿵, 쿵, 쿠웅-
물론, 그것으로 쉽게 끝날 리는 없었다.
공간이 흔들렸다. 소울 컬렉션의 문이 언뜻 드러났다가 다시 사라졌다. 망령들이 어떻게든 빠져나오려 발버둥 쳤다.
연우가 죽인 영혼이라면 처음부터 노예의 낙인이 찍힐 것이나, 여기 있는 것들은 그렇지 않았다.
하나하나가 족히 수백 년을 묵은 원념 강한 망령이었고, 그런 것들이 군집체를 이루고 있다 보니 집단 지성까지 갖추고 있는 상태였다.
칠흑왕의 권능을 발휘한다고 한들, 아직 격이 따라주지 못하는 지금, 강제 종속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연우에게 현재 배당된 컬렉션의 크기는 2만 마리. 이미 수용 한계를 훨씬 뛰어넘은 셈이었다.
하지만.
“네메시스!”
『알겠다. 이런 쪽으로 ‘꿈’을 쓸 수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지.』
네메시스는 자신을 이루고 있던 꿈을 고스란히 소울 컬렉션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공하는 모든 것을 삼키는 힘. 망령들도 예외는 없었다. 소울 컬렉션이, 통째로 공허로 변질되었다. 네메시스 아래에 종속되기 시작한 것이다.
찰칵, 찰칵-
차차찰칵-
강제 종속이 시작되었다. 망령 하나하나에 낙인이 찍혀가면서 발작도 조금씩 가라앉았다. 그러다 마지막 반작용까지 끝났을 때.
“……후.”
연우는 꽉 쥔 주먹을 겨우 풀 수 있었다. 얼마나 많은 심력과 체력을 쏟아부었는지, 용의 비늘이 뒤집혀서 피가 철철 흘러내릴 정도였다.
손끝이 아직도 파르르 떨렸다. 옷은 이미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상태였다.
우웅, 웅-
하지만 기분 좋다는 듯이 울어 대는 검은 팔찌를 보면서.
피식. 자기도 모르게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그리고. 알딘은 그런 연우를 멍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말도…… 안 돼.」
크로이츠도 똑같은 시선이었다.
* * *
‘전부 소화하려면 시간이 제법 걸리겠는데.’
연우는 어느 정도 기력을 되찾은 뒤에야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체크한 것은 소울 컬렉션이었다. 단지 의념으로 투시를 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너무 많은 망령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수확한 망령의 수: 121,334]
‘……미쳤군.’
연우는 집계된 숫자를 보고 혀를 찼다. 자신이 한 짓이긴 해도 터무니없을 정도로 많은 숫자였다. 이게 정말 가능하다고?
‘아니. 어쩌면 당연한 건가.’
관문에 농축되어 있던 망령들을 죄다 쓸어 오다시피한 것이니. 게다가 하나하나가 전부 강한 격과 지독한 원념을 품고 있는 것들이었다. 질이 좋아도 너무 좋았다.
칠흑왕은 죽음을 다스린다는 모든 신과 악마들의 경외를 받는 존재. 아즈라엘은 스스로를 하인이라 칭했을 정도였다. 그런 이의 권능이 담긴 아티팩트라면. 오히려 이게 당연한 건지도 몰랐다.
아니, 도리어 연우가 아직 자격이 되질 않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표현이 옳았다.
‘이걸 전부 소화하고 나면, 괴이들부터 먼저 진화시키고. 칠흑왕의 권능도 더 깊게 살펴봐야겠어.’
연우가 기분 좋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속 편한 소리 하고 있군. 정작 고생하고 있는 건 나인데 말이야.』
네메시스가 툴툴거렸다. 사실 현재 망령들이 난동을 피우지 않게끔 다스릴 수 있는 건, 전적으로 그가 있는 덕분이었다.
‘고마워. 하지만 그동안 현자의 돌에 박혀서 신나게 잠만 잤으니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
『그럼 니케는!』
『나 불렀어?』
니케가 어느새 다시 새의 형상으로 돌아와 연우의 왼쪽 어깨 위에 올라탔다. 간만에 신나게 날아다녀서 기분이 좋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연우는 니케의 턱을 쓰다듬으면서 네메시스에게 말했다.
‘아동 학대지.’
『나에게 하는 건 학대가 아닌 것이냐!』
‘그렇게 시키고 싶나?’
니케가 또랑또랑한 눈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
『젠장!』
네메시스는 평소 진중하던 성격과 다르게, 울컥한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고 말았다.
니케는 덩치만 커졌을 뿐, 아직도 정신적으로는 어린아이였다. 그런 녀석을 동생처럼 여기고 있는 네메시스에게 니케를 고된 일에 부려 먹는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연우는 그 점을 지적한 거였고.
『하여간 그놈의 불어 터진 인성, 진짜……!』
그래도 네메시스는 자신만 생고생을 해야 한다는 게 억울했는지, 연우에게 한 번 성을 내고 돌아섰다.
전 주인은 이런 게 전혀 없었는데. 쌍둥이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악덕 업주가 따로 없었다.
연우는 가볍게 피식 웃었다.
‘나중에 무슨 부탁이라도 들어줘야겠는데?’
네메시스는 은근히 속이 좁은 성격이었다. 이번 일이 끝나고 나면 뭔가를 챙겨 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연우는 돌아서서 알딘을 바라봤다.
알딘은 여전히 멍한 시선으로 연우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 다시 눈이 마주치자 허리를 쭈뼛 세웠다.
「다, 당신은…… 대체.」
알딘도 살아 있을 시절에는 제법 강하다고 평가를 받던 플레이어였다. 당시였다면 연우와 겨뤄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형제들과 망령 거인에 쫓기다가 홀로 남아 고군분투를 했고, 결국 죽고 말았다.
반면에 연우는 녀석들을 진압시키는 것으로도 모자라, 강제 종속까지 시켰다.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무엇보다. 연우가 발휘하던 힘은 분명.
「플레이어가, 어떻게 죽음의 힘을……!」
필멸자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힘이었다.
하지만 연우에게는 그런 것을 대답할 의무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지금은 한시가 급했다.
‘영혼이 흩어지려 하고 있어.’
그새 제법 시간이 흘렀던 걸까. 알딘을 이루고 있던 사념이 흐트러지는 중이었다. 레베카처럼 정령에 덧씌우지 않는 한, 알딘은 곧 사념을 잃고 망령으로 타락할 게 분명했다. 알딘으로서의 정체성을 잃는 것이다.
“키클롭스 브론테스와 아직도 채널링이 연결되어 있나?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하데스의 행방을 알고 싶다.”
알딘은 정신을 차렸다.
「당신은 누구요? 누구이기에 내가 모시는 신에 대해 알며, 하데스 님에 대해서는 또 어떻게……!」
“페르세포네의 부탁을 받고 타르타로스로 가던 사자라고 해 두지. 더 말해 주고 싶지만, 그쪽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안 되는 것 같은데.”
알딘은 연우의 말뜻을 알아채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아가 사라지면 채널링도 끊어진다. 자신이 맡은 임무는 절대 비밀에 부쳐야 하지만, 페르세포네로부터 임무를 받은 사람이라면 사실을 들을 자격이 있었다.
「브론테스께서는 나와 함께 이곳에 깊게 잠들어 계셨소. 언젠가 하데스 님을 찾아올 사자를 기다리면서……. 예언을 좇아……. 아무래도 당신이 그 예언의 대상자인 모양이구려.」
‘예언?’
연우가 무슨 말이냐며 물으려던 그때.
팟-
알딘은 곧 눈을 감고 사라졌다. 마지막 남아 있던 신력이 소모되면서 새하얀 광채가 천장에 다다랐다.
그리고 빛의 기둥이 가라앉은 자리에.
족히 10미터는 될 것 같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거신이, 외눈을 뜨면서 연우를 내려다보았다.
『나를 부른 것이, 그대인가?』
키클롭스 3형제의 맏이, 브론테스의 강신이었다.
연우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페르세포네의 부탁을 받아, 하데스를 좇아서 타르타로스로 가던 길에 당신이 이곳에 있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브론테스에게 허락된 시간도 그리 길지 않은 듯했다. 잔영이 흐트러지는 중이었다. 게다가 영혼도 이미 크게 다쳤던지, 전신이 온통 상처투성이었다. 격도 신이라고 하기엔 부끄러울 만큼 많이 영락해 있었다.
그래서 연우는 자신이 맡은 임무에 대해서 짤막하게 설명했다. 브론테스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그대가 알고 있는 대로, 우리 형제는 하데스 님의 명령을 비밀리에 받아 물건을 타르타로스로 가져가던 중이었다. 하지만 막내의 실수로 종적을 들키고 말았고, 끝내 도망쳐야만 했지.』
“물건이, 무엇입니까?”
분명히 사념 속에서 봤던 함 속에 든 물건일 것이다. 하데스가 가져오라던 물건. 거기에 타르타로스의 비밀이 있을 게 분명했다.
『‘불’이다.』
불?
이게 무슨 생뚱맞은 소리일까.
『명계인 타르타로스와 에레보스, 그리고 그것을 감싸는 다섯 개의 강인 아케론과 코퀴토스, 플레게톤, 레테, 그리고 스틱스를 오염시키고 있는 어둠을 물리칠 수 있는 횃불이지.』
브론테스는 기억을 되짚으면서 잔영을 그려 냈다. 손을 활짝 펼치자, 자그마한 함이 나타났다. 세 사도들이 가지고 가던 그 함이었다. 그리고 뚜껑이 열리면서 ‘불’의 정체가 드러났을 때.
“이건…….”
연우의 눈은 자기도 모르게 커지고 말았다.
“영혼석?”
그건 바로 루시엘의 영혼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