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310화 (310/862)

10화. 타르타로스 (10)

브론테스는 가만히 연우와 회중시계를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가볍게 혀를 찼다.

『하데스 님에게 가져다주려던 물건이 아니었군.』

“제 개인 물건입니다.”

『음. 그런가.』

브론테스의 눈가를 따라 안타까움에 찬 눈빛이 흘렀다. 만약 이것까지 있었다면 순결의 돌에 더해 하데스에게 아주 큰 힘이 되었을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니.

『잠깐만 살펴봐도 되겠나?』

그래도 손을 잡은 이상, 도와주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브론테스는 손을 뻗었다.

연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회중시계를 그에게 내밀었다. 긴장감으로 손끝이 살짝 떨렸다.

브론테스는 아주 자세하게 회중시계를 살폈다. 비록 괴이라는 말도 안 되는 격으로까지 떨어지고 말았지만, 머릿속 지식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아니, 애당초 그는 대장장이 신이었기에, 다른 신들처럼 자신의 권능에 목을 매달 이유가 전혀 없었다.

『음.』

브론테스가 회중시계를 되돌려 주었다.

연우는 조심스레 받으면서 그를 보았다. 목소리가 조금 막혀서 잘 나오지 않았다.

“어떻습니까?”

『고장 났다고 했지, 그 시계?』

“예. 그렇습니다.”

『아니. 자네가 잘못 알고 있었어. 그건 고장 난 게 아니야.』

연우의 눈이 커졌다. 시계가 사실은 고장 난 게 아니었다고?

“그럼……?”

『봉인되어 있다는 표현이 옳겠군. 마법적인 장치에 의해 일부 기능을 제외한 나머지 기능들이 전부 정지되어 있다네. 의도적으로 그렇게 해 둔 것 같네만.』

“……!”

연우의 눈빛이 단단하게 굳었다. 머릿속에 여태 쌓였던 의문이 그제야 풀리는 것 같았다.

그는 그동안 용마안으로도 회중시계를 고칠 방법이 없어 머리를 쥐어 싸매고 있었다.

현자의 돌을 완성하는 데 한몫을 했을 정도로 이제는 연금술이나 마도학에 대해 뛰어난 지식을 갖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여태 회중시계를 수리할 방법이 보이질 않아, 동생이 밟은 경지가 참 높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실 그게 아니었다고?’

애당초 접근 방법이 잘못되었던 것이다.

고장이 아니라, 봉인이었다면. 그렇다면 여태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던 이유도 이해가 되었다. 고장 수리와 봉인 해제는 애당초 접목해야 하는 지식이 달랐으니까.

골이 울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눈이 뜨이기도 했다.

이유를 알았다면. 해결책도 금세 찾아낼 수 있을 테니까. 몸이 바짝 달아올랐다.

“그럼 고칠 수…… 아니, 봉인을 풀 수 있겠습니까?”

『아니. 힘들어.』

하지만 연우의 바람과 다르게. 브론테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신이 손을 못 대는 물건도 있습니까?”

『나라고 해서 만능이 아니니까. 그리고 대체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영혼석을 매개체로 쓴 것부터가 이미 나와 견줄 만한 실력자란 뜻이다. 대단해. 솜씨로 봐서는 필멸자의 것이 분명한데, 지식은 초월자에 버금가는 자라……! 이 물건을 만든 사람,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나?』

브론테스는 몸이 바짝 달아오른 듯했다. 복수심과 별개로, 뛰어난 명장을 만나고 싶다는 호기심이 든 모양이었다.

연우는 씁쓸하게 웃었다. 동생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은 형으로서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이 클 수밖에 없었다.

브론테스가 말한 일부 기능이 일기장이란 건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봉인되어 있다는 다른 기능들은 대체 무엇일까? 그리고 무엇을 숨기고자 동생은 이런 장치를 해 둔 걸까?

그런 연우의 슬픈 마음이 일부 전해진 걸까.

브론테스는 슬쩍 연우를 보다가, 다시 회중시계를 자세히 살폈다. 그러다 말했다.

『물론, 봉인을 못 푼다는 건 어디까지나 나 혼자일 때의 이야기이겠네만.』

연우가 홱 하고 브론테스를 돌아봤다.

브론테스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거래를 하세나. 달라지는 것은 크게 없어. 어차피 페르세포네 님의 퀘스트를 받지 않았던가? 그것 그대로, 하데스 님을 도와 타르타로스를 진정시키는 데 도움을 보태 주게. 그런다면 그 대가로, 형제들을 모아 봉인을 푸는 데 적극 협조하도록 하지.』

결국 타르타로스로 빨리 이동하라는 의미였다.

『어떤가?』

연우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연우는 회중시계를 꽉 쥐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 * *

[서든 퀘스트 / 페르세포네의 오랜 소망]

내용: (생략) 당신은 페르세포네의 부탁을 받아 열 개의 관문을 통과하던 중, 먼저 하데스를 찾아가다가 실종되었던 키클롭스 3형제의 흔적을 찾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아직 맏이인 키클롭스 브론테스만 찾는 데 성공했을 뿐, 아직 다른 두 키클롭스에 대한 행방을 찾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반대편의 진영에서는 당신에 대한 인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서둘러 다른 두 키클롭스를 찾으세요. 늦게 찾을수록 당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전개될 것입니다.

‘반대 진영에서 날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연우는 갱신된 퀘스트 내용을 확인하던 중에 눈에 띄는 문구를 보고 눈을 가늘게 좁혔다.

반대 진영이라면 티탄과 기가스를 말하는 것일까? 아무래도 망령 거인을 해치우면서 저쪽에서 발각된 모양이었다.

『정확하게는 타르타로스와 연락을 취하고 있을, 외부의 끄나풀일 것이야.』

브론테스는 연우의 생각을 읽고 그렇게 말했다.

연우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그들이 누군지는 아십니까?”

브론테스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정확한 건 모른다네. 우리도 쫓기기만 하던 입장이라.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확실해.』

그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놈들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

브론테스는 이를 악물었다.

『배반자가 있는 게 분명하다네. 그렇지 않다면 이런 일이 발생할 수도 없었어. 그러니…… 조심하게.』

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마따나 티탄과 기가스가 나섰다면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을 테니까. 아니, 그런 것을 떠나서, 신들의 전쟁에 개입하는 것부터가 필멸자인 그로서는 많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들끼리 이런 일을 정리하지 못해 그대와 같은 필멸자의 손을 빌려야만 하는 것이니…… 이 얼마나 못난 추태란 말인가.』

브론테스는 그 말만 하고 조용히 소울 컬렉션으로 사라졌다. 그로서는 지금 상황이 영 부끄럽기만 했던 것이다. 게다가 오랫동안 격을 상실하면서 쌓인 피로도 크니, 잠깐이나마 휴식을 취할 생각이기도 했다.

연우는 다시 불의 날개를 활짝 펼치면서 이동을 개시했다. 시간이 지날 때마다 마법 도식을 계속 더하면서 이제는 어엿한 스킬이 되다시피 한 불의 날개는 빠르게 관문들을 지났다.

[일곱 번째 관문, ‘거해’에 입장했습니다.]

[여덟 번째 관문, ‘철상’에 입장했습니다.]

……

일곱 번째 관문은 사나운 칼바람이 휘몰아치고, 여덟 번째 관문은 펄펄 끓는 쇠 바닥을 통과해야만 했다.

이때부터는 스테이지가 연우도 도저히 쉽게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높은 난이도를 지니고 있었다. 하이 랭커들이 수련을 위해 찾는다고 할 만큼 위험천만한 장소였던 것이다.

게다가.

퍼퍼퍼펑-

연우를 붙잡기 위한 적들의 공격도 더욱 노골적으로 변해 갔다. 퀘스트의 경고 문구처럼 티탄과 기가스 쪽에서도 다른 수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갖가지 기괴한 형체를 가진 괴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섯 번째 관문에서 부딪쳤던 망령 거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한 몬스터들.

분명히 갖가지 망령으로 구성되어 있으면서도, 이상한 그림자로 연결되어 도무지 상대하기가 버거운 것들이었다.

일부 개체는 아주 작지만 신성을 띠고 있는 것도 있을 정도였다.

‘아무리 감옥에 갇혔어도, 신은 신이란 건가…….’

그럴수록 연우는 이를 악물었다.

티탄과 기가스는 아주 오래전에 타르타로스에 갇혔어도, 엄연히 올림포스 신들과 다퉜던 강한 신들이었다. 그런 녀석들이 부리는 권속이니만큼, 강하고 상대하기 까다로운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쿠어어-

그때, 눈앞으로 거대한 그림자 촉수가 홱 하고 날아왔다.

여태 꼬리처럼 길게 연우를 따라다니던 잿빛 안개가 앞으로 홱 뭉치면서 배리어 역할을 했다. 수만 마리로 이뤄진 망령 집단. 네메시스가 강제로 복속시킨 망령 거인의 잔해들이, 이제는 충실한 수족이 되어 있었다.

콰콰쾅!

그림자 촉수는 잿빛 안개를 뚫지 못하고 위로 크게 튕겨 나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천 마리도 넘는 망령들이 그대로 소멸하고 말았지만, 소울 컬렉션은 자동으로 부족분을 바로 충전시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느새 오십여 마리로 부쩍 늘어난 괴이들이 달려가 깊은 어둠으로 연결되는 촉수에 달라붙어 갉아먹기 시작했다.

샤논과 한령은 칼을 세게 쥐면서 각자가 자랑하는 시그니처 스킬을 터뜨렸다. 화려한 이펙트와 함께 〈볼케이노〉와 〈칼날 소용돌이〉가 작렬해 그림자 촉수를 난도질하면서, 그대로 본체에서 분리되어 허공으로 튀었다.

레베카가 뛰면서 마법이 실린 강전(强箭)을 잇달아 쏘고, 하늘에서는 부가 수정구를 높이 들어 마법을 잇달아 터뜨렸다.

콰르릉, 콰쾅!

네메시스는 어둠이 되어, 니케는 불길이 되어 남은 본체를 모조리 찢어발겼으니.

크아앙!

“카인, 지금!”

성검 줄피카르의 축문 기원을 통해 신성 결계를 형성, 괴물의 발목을 강제로 묶고 있던 크로이츠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연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몸을 크게 뒤틀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녀석을 향해.

이미 네 개의 권능이 잇달아 작동하면서 버프 효과를 최대한으로 실어 둔 상태였다.

[영웅 - 불굴]

[악역- 구축]

비그리드가 금방이라도 부서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크게 울어 대면서. 휘황찬란한 광채와 함께 그대로 폭발했다.

[불의 파도]

[72선술- 열, 파, 참]

콰르르릉-

여덟 번째 관문을 가득 뒤덮던 열기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 여겨질 정도로 높은 고열이 작렬하면서, 괴물은 그대로 장작 신세가 되어 크게 불타올랐다.

불길을 끄기 위해서 이리저리 몸을 뒤틀었다. 그럴 때마다 관문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크게 요동쳤지만, 불길은 오히려 더 크게 타올랐다.

성화.

니케가 녹아든 화마는 괴물을 한 번 물고 절대 놓치지 않았다. 게다가 그 속에는 그동안 연우가 담았던 갖가지 힘도 섞여 있었다. 오러, 불의 파도, 용의 마력, 신력, 마기, 72선술, 그리고 잔독혈까지.

원래대로라면 절대 뒤섞일 수 없는 갖가지 성질들이었지만, 연우가 이뤄 가고 있는 마신룡체의 특성과, ‘마력의 축복을 받은’이라는 칭호 효과 덕분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결국 괴물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쿵-

얼마나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지, 단순히 쓰러졌는데도 불구하고 관문 전체가 크게 들썩일 정도였다.

“헉, 헉헉…….”

연우는 비그리드를 내리면서 크게 숨을 헐떡였다. 몸이 열병에 걸린 것처럼 뜨거웠다. 마력회로에 과부하가 걸리면서 생긴 현상이었다. 체력도 급속도로 메말라 갔다.

그때, 괴물의 사체에서 불길이 위로 치솟더니, 곧 새의 형상을 갖추면서 연우에게로 날아왔다.

『나, 잘했어?』

“그래. 수고했다.”

『헤헤. 역시 니케는 강해! 강하다고!』

니케는 연우의 팔뚝 위에 올라 타면서 날개를 반으로 접어 올려 볼록한 알통을 보였다.

연우는 귀엽기만 한 니케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곧 들리는 네메시스의 목소리에 고개를 그쪽으로 돌렸다.

『……주인.』

“왜?”

네메시스의 목소리는 우려로 가득 차 있었다.

『방금 전, 그 괴물 어땠나?』

“강했어.”

『단지 그뿐인가?』

“아마 속성 차가 아니었다면 잡기 힘들었겠지.”

『맞다. 원래대로라면 주인으로서는 절대 잡을 수 없었을 녀석이다. 설사 우리가 힘을 합쳤다고 하더라도.』

네메시스의 무거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놈의 이름은 메두사라고 하지. 그리고 그런 괴물이…… 타르타로스에는 숱하게 널려 있다. 그런 곳으로 꼭 지금 가야 할 필요가 있나? 전 주인도 이 이상은 가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나.』

연우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우리의 한계는 여기까지인 모양이었다. 여덟 번째 관문부터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하는 괴물들은 우리의 정신을 피폐해지게 만들었다.

가뜩이나 통과해야 하는 관문의 난이도만 해도 힘든데, 여기다 미친 괴물들까지 나서니.

결국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면서 히든 스테이지를 떠나야만 했다.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열 개의 관문 너머에 있다는 타르타로스. 거기에 들어가지는 못하더라도 입구는 구경해 보고 싶었는데.

하계에서 몇 안 되는 신들의 장소라는 곳에.

『칠흑왕의 힘을 얻어야겠다는 주인의 생각은 알고 있다. 브론테스 등을 모아 회중시계를 고쳐야겠다는 다짐도. 하지만 지금은 위험해. 조금 더 힘을 쌓은 뒤에 오더라도…….』

네메시스는 어떻게든 연우를 말려 보고자 했다. 타르타로스는 필멸자가 절대 접근할 수 없는 장소다. 그런 곳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도전하겠다고?

그 역시 연우처럼 힘을 갖길 갈망하고, 회중시계를 고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신들에 비하면 연우가 약해도 너무 약했다. 최소한 50층은 넘은 뒤에 도전해야 하는 장소였다. 이곳은.

동생은 아르티야라는 팀을 등에 업고도 여덟 번째 관문에서 뜻을 접었다. 하물며 팀이라고 할 만한 전력도 갖추지 않은 연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거기에다가 티탄과 기가스가 연우를 발견한 지금은?

심지어 피로를 모르던 샤논과 한령도 벌써부터 지쳐 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니. 간다.”

연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처럼 잡은 기회였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동생과 관련된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기회였다. 아니, 어쩌면 재회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음으로 미뤘다가, 만약에 일이 생겨 놓치게 된다면? 게다가 한 번 미루기 시작하면 계속 미뤄질 수 있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연우는 동생을 만나서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때까지는 절대 멈출 수가 없었다.

‘반드시.’

연우는 바토리의 흡혈검으로 메두사를 비롯한 여러 괴물들의 힘을 모조리 빨아들인 뒤, 다시 이동했다.

네메시스는 그런 연우를 안타까움에 찬 시선으로 바라봐야만 했다.

연우의 눈이 활활 타올랐다.

‘만나야 해.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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