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312화 (312/862)

12화. 명계의 왕 (2)

연우는 자기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불의 날개를 활짝 펼쳐 하늘 위로 높게 솟구쳤다.

권능들도 잇달아 따라오면서 망령 집단이 꽈배기처럼 꼬여 연우를 둘러쌌다.

하지만.

“……뭐지?”

분명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 같던 거신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연우는 그제야 자신을 응시하고 있던 눈동자에 초점이 잡혀 있지 않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다. 생명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디디고 있던 거신은 이미 죽은 사체였던 것이다.

‘무슨 이런 크기가…….’

사체는 분명히 길게 누워 있었다. 그런데도 산등성이라고 착각할 만큼 높은 높이였고, 길이도 수 킬로미터는 되는 것 같았다.

눈동자는 해와 달을 보는 것처럼 요란하게 빛났고, 살가죽이나 팔다리에 나 있는 털은 숲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연우가 알기로, 거인족도 저렇게 크지는 않았다.

거대한 신장을 가진 개체라고 해 봐야 20미터 내외일까? 가장 큰 거인이었던 마지막 거인왕이 30미터였던 것을 떠올려 본다면, 저것은 거인이라고 하기에도 두려울 정도였다.

‘티탄의 시체인가? 그렇다면 타르타로스에는 전부 저런 것들밖에 없나?’

티탄과 기가스에 대한 소문은 탑에도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다.

애당초 열 개의 관문을 통과할 수 있는 플레이어도 그리 많지 않을뿐더러, 청동문을 건너는 사람은 더더욱 없기 때문이었다.

동생도 다음에 타르타로스로 넘어가 봐야겠다고 다짐만 했을 뿐. 실제로 가 본 적은 없으니. 티탄과 기가스가 저런 듣도 보도 못 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셈이었다. 어찌 되었건 간에, 저들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신’이었으니까.

연우는 거신의 사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볼 요량으로, 더 높은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포탈을 건너면서 행적을 놓친 크로이츠를 찾으려는 목적도 있었다.

‘커도 너무 큰데. 위쪽도 찝찝하고.’

연우는 상공으로 오를수록 혀를 찼다. 위로 올라가도 제대로 올라가고 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보이는 건 온통 짙은 어둠뿐. 그가 겨우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도, 주변을 둥둥 떠다니는 성화와 또렷한 감각 덕분이었다.

타르타로스는 ‘무저갱’이라는 설명 그대로 온통 어둠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어느 정도 높아졌다 싶은 지점에서, 의념을 한껏 방출하려는데.

쿵-

쿵!

갑자기 지축이 요란하게 울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전해지는 어마어마한 압박감.

“……!”

연우는 의념을 뿌리려다 말고 재빨리 안쪽으로 거둬들였다. 가슴이 방망이질을 치기 시작했다. 여기서 의념을 드러냈다가는 위험해진다는 본능적인 경종이 머릿속에 울렸다.

대신에 기척을 최대한으로 죽이면서 몸을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다시 한 번 세상이 위아래로 요동쳤다.

어둠을 가르면서 무언가가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이 가까워질수록, 연우는 더더욱 깊은 오싹함을 느껴야만 했다. 23층에서 직접적으로 마주쳤던 아가레스와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을 존재감이 덩어리로 몰려오고 있었다.

[아테나가 고요한 눈빛으로 당신과 같은 대상을 바라봅니다.]

[헤르메스가 침묵에 잠긴 채 당신과 같은 대상을 지켜봅니다.]

[아가레스가 혀를 찹니다.]

[혼돈이 침묵합니다.]

연우를 단말(端末)로 삼는 신과 악마들의 시선조차 고요해졌다. 평소에는 메시지를 드러내지 않던 혼돈조차도. 그만큼 대상이 주는 압박감이 대단하다는 뜻이었다.

쿵…….

연우는 마른침을 삼켰다. 어느덧 거신이 그의 근처까지 다가왔다.

아래에 죽은 거신의 사체보다는 작았지만, 그래도 어마어마한 몸집을 자랑하고 있었다. 신장은 대략 1킬로미터 내외. 연우쯤은 날파리 정도로 보일 크기였다.

『이, 어디쯤이었을 텐데…….』

녀석은 무언가를 찾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덩치가 큰 만큼 움직임은 느릿한지, 고개를 돌리는 속도가 많이 느렸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대기가 잔잔하게 떨려 나가고, 두꺼운 피부를 따라 뿜어지는 열기가 대단해서 숨이 저절로 막혔다.

연우는 녀석이 찾는 대상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눈빛이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었다. 관문을 통과하는 내내 자신을 주시하던 여러 개의 시선 중 하나였다.

아마 그가 여기에 나타난 것을 알고 직접 모습을 드러낸 것이리라.

하지만 녀석은 한참 동안 주변을 살피기만 할 뿐, 정작 연우는 찾아내지 못했다.

그에 비하면 아주 미약한 존재감 때문이리라. 더구나 연우는 최대한 기척을 숨기고 있었다. 의념을 다룬 뒤부터 존재감을 숨기는 건 그에게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편한 건 아니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순간, 녀석은 자신을 즉각 발견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계속 여기 서 있을 수는 없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신을 살피는 눈길이 많은 이상 녀석이 그를 찾아 내는 건 시간문제였다.

‘어떻게 하지? 먼저 쳐야 하나?’

연우는 허리춤에 걸어 놓은 비그리드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가 놓기를 반복했다.

자신의 공격이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할 거란 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시간을 벌 정도는 될 거라고 자부했다.

이대로 있다가 그냥 당할 바에는. 차라리 공격을 하고 도망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결국 연우는 마른침을 삼키면서 용마안을 활짝 열었다. 결들이 조금씩 보였다. 하지만 크기에 비해 일반 사물을 보는 것처럼 결들이 뭉쳐 있는 곳이 거의 없었다.

완전무결(完全無缺)에 가까워질 수록, 존재의 격도 큰 법이다. 역시 신이라 그런 걸까. 도저히 빈 틈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용마안에 잔뜩 마력을 불어 넣으니 오른쪽 가슴팍 부근을 따라 결이 주로 뭉쳐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연우는 비그리드를 꽉 쥐었다. 기회는 단 한 번. 그 안에 모든 권능을 발현하고 집중해서, 타격을 입혀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게 끝장이었다.

긴장감으로 두 눈이 붉게 달아 올랐다. 그때, 녀석이 시선을 반대 방향으로 돌리는 게 느껴졌다.

연우의 눈이 커졌다.

‘지금……!’

바로 그때.

『이 멍청한 놈이!』

별안간 갑자기 연우의 귓가로 어기전성이 울렸다. 그리고 급류에 휩쓸리는 듯한 느낌과 함께 몸이 바닥으로 확 쏠렸다.

쐐액-

거신이 연우가 있던 쪽으로 고개를 돌린 것도 바로 그 무렵이었다. 그는 일대를 두리번거리더니 턱을 작게 떨었다.

『잘못…… 느꼈는가…….』

거신은 눈을 가늘게 좁히다가, 곧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곳이…… 아닌가 보군……. 그새…… 도망쳤나?』

결국 거신은 연우가 없다고 판단하고, 다시 시선을 돌리며 움직 이기 시작했다.

쿵, 쿠웅-

“…….”

“…….”

연우가 몸을 일으킨 것은 거신의 발자국 소리가 아스라이 작아질 무렵이었다. 워낙에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기 때문에 발자국 소리가 사라지는 데도 한참 시간이 흘러야만 했다.

“티탄을 공격하려고 해? 그것도 페르세스를? 이런 시건방진 놈이.”

그리고. 연우를 구해 낸 구출자도 더 이상 위험이 없다고 판단하고 인상을 팍 찡그렸다.

“네놈 때문에 얼마나 일이 복잡하게 될 뻔했는지 아는 거냐?”

“…….”

연우는 가만히 침묵을 지켰다. 자신을 구출해 낸 자들은 열 명으로 이뤄진 무리였다.

남색으로 빛나는 청동 갑주와 장창, 그리고 타워 실드를 착용한 병사들. 그들이 풍기는 기세는 하나같이 뛰어났다.

특히 지휘관으로 보이는 자에게서는 영험한 신기까지 감돌았다.

‘디스 플루토.’

디스 플루토는 하데스를 따라 명계를 지키고, 타르타로스의 청동문을 부수려는 티탄과 기가스를 제어한다는 명계의 군사들이었다.

비록 겉보기엔 평범한 병사처럼 보일지라도, 그들 개개인은 하급 신격에 버금가는 높은 격을 지니고 있는 전사들이었다.

연우는 이들의 도움으로 자신이 살아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지휘관이 언급한 페르세스는 티탄 중에서도 파괴를 상징한다는 자. 만약 부딪쳤다면 큰일이 벌어졌을 게 분명했다.

“그래도 이렇게 무사하니 다행이오. 어디 다른 다친 곳은 없으시오?”

그때, 디스 플루토 뒤에서 크로이츠가 다가와 연우를 살폈다. 연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크로이츠는 안도에 찬 한숨을 내쉬었다. 보아하니 그는 연우보다 더 먼저 이들에게 발견되어 구조된 것 같았다.

지휘관은 거신 페르세스가 사라진 것을 재차 확인하고, 다시 연우를 돌아봤다. 갑주를 쓰고 있어 얼굴 생김새를 알아볼 수가 없었지만, 눈빛만큼은 강렬했다.

“여하튼 네가 어떻게 왕께서 키클롭스 브론테스에게 건네셨던 정령의 인도를 받아 왔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와 어떤 연관이 있는 건 맞겠지?”

“그렇습니다.”

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왕께서 그대를 무사히 데려오라고 내게 명령을 하시었다. 하지만 이곳은 티탄의 영역. 저들에게 걸린다면 끝장이니, 날 조심해서 따라와라.”

순간, 연우의 눈이 살짝 커졌다.

“왕이라면, 하데스를 말하는 것입니까?”

실종되었다고 알려진 하데스가 그래도 여전히 타르타로스에 남아 있었던 모양이었다.

지휘관의 낯이 살짝 일그러졌다.

“함부로 그분의 존함을 입에 담지 마라, 플레이어. 그분께서 탑에서 손을 뗀 지 오래라 하시나, 너희들에게 함부로 불릴 분이 아니실…….”

“페르세포네의 전언을 가져왔습니다. 하데스를 만나게 해 주십시오.”

“……페르세포네 님께서?”

지휘관은 화를 내려다 말고 도중에 말을 멈춰야 했다. 왕비의 전언을 가져온 전령이라. 그렇다면 최대한 정중하게 그를 대해야만 했다.

뭔가 탐탁지 않은 눈빛이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 지휘관은 퉁명스럽게 몸을 돌렸다.

“여하튼. 따라와라.”

다행히 일이 순조롭게 풀리는 것 같았다.

연우는 크로이츠와 함께 지휘관과 디스 플루토를 따르기 시작했다.

* * *

지휘관은 자신을 ‘레이’라고 밝혔다. 24개 군단으로 나눠진 디스 플루토 중 19번째 군단 예하에 소속된 부장.

동생의 일기장을 통해 웬만한 신과 악마의 계보를 꿰고 있는 연우였지만, 전혀 들어 보지 못한 이름이었다.

‘하긴. 알려진 건 보통 신과 악마의 각 사회를 이끄는 주요 대신들이 대부분이니.’

당연한 말이지만, 올림포스나 아스가르드, 르 인페르날 등은 ‘사회’라고 지칭될 정도로 아주 많은 인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소속 신들뿐만 아니라, 각 신들이 데리고 있는 제신(諸神)이며, 휘하의 사병들까지.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거나, 알려지더라도 유명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하계의 플레이어들에게 인식이 박힐 정도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레이도 그런 존재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천계에 소속된 만큼 어엿한 신격을 가진 존재. 연우로서는 어떻게 닿을 수 없을 만큼 까마득한 존재였다.

하지만.

‘스승님에 비해서 높다고 할 수 있을까?’

신격을 지녔다는 것은 이미 초월성을 획득했다는 뜻. 필멸자로서는 누구나 바라마지않을 경지에 올랐단 뜻인데. 플레이어 중 올포원을 제외하면 아무도 얻지 못했다는 힘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레이는 무왕과 비교했을 때 ‘높다’는 생각을 가지기가 힘들었다.

물론, 레이가 아직 제대로 된 신격을 해방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을 테지만.

제대로 된 힘을 보이지 않은 건 무왕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여름여왕과 싸울 때에도 전력을 다 하지 않았으니.

‘대체 신격의 기준이 뭐지? 단순히 경지만 높아진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닌가?’

연우의 눈이 깊어졌다.

‘그것도 아니면 뭔가가 가로막기라도 하고 있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뭘 그렇게 쳐다보지?”

레이는 선두에서 묵묵히 길을 열다 말고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시선을 느끼고, 연우를 돌아보았다.

“아닙니다. 아무것도.”

연우는 담담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레이는 가볍게 코웃음을 치면서 앞을 봤다.

“미리 말해 두지만. 나는 너희 플레이어들을 별 탐탁지 않게 여긴다.”

연우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유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이유? 이유야 많지. 우리들에게는 신념과 평생이 담긴 전장인 이곳이, 그대들에게는 놀이터 내지 개인 수련장 정도로만 여겨지지 않는가.”

“…….”

연우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따금 열 개의 관문을 넘어 타르타로스로 넘어오는 플레이어들을 말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기량을 더 한껏 높이기 위해 위험을 마다하지 않고 도전하는 자들.

하지만 그런 건 어디까지나 플레이어들의 시선일 뿐. 정작 그곳을 터전으로 삼는 이들에게는 어떻게 비쳐질까?

“이곳을 만만하게 보는 자들은 너희들밖에 없지. 천계의 올림포스도 그렇게 볼 수 없는 곳이 이곳이거늘. 그런 주제에 약하기도 터무니없이 약해 툭하면 죽어 나가고, 어느 정도 기술을 가르쳐주고 쓸 만해졌다 싶으면 밖으로 도망치는 놈들이니. 그러니 마음에 들 수 있을까?”

“…….”

“게다가 지금은 병력 하나가 아쉬운 상황. 그런데도 너 하나 때문에 이렇게 병력을 열이나 차출해서 이런 위험한 곳까지 왔다. 그래도 페르세포네 님의 전령이자, 키클롭스 브론테스의 행방을 알고 있다 하니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 것인 줄 알아라.”

그것은 경고였다. 함부로 날뛰다가 뒈지지 말라는. 주제를 알고 자중하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누가 본다면 텃세라고도 할 수 있을 테지만.

연우는 레이의 말투에서 씁쓸함과 조급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 전황이 좋지 않다는 뜻인가?’

연우의 눈이 깊게 가라앉을 무렵.

『멈춰!』

갑자기 레이가 걸음을 멈추더니 손을 뻗으며 일행들에게 어기전성을 날렸다. 무슨 일인가 싶은 순간.

쾅!

갑자기 그들이 딛고 있던 지면이 폭발하면서 거신이 불쑥 튀어나왔다.

『찾았구나……!』

방금 전, 연우를 찾으려 했던 티탄 페르세스였다. 녀석은 흉악하게 웃으면서 연우 등이 있는 곳으로 우악스럽게 손을 뻗었다.

“도망쳐!”

콰쾅-

레이가 다급하게 소리를 지르면서 창을 앞으로 뻗었다. 신력이 한껏 개방되면서 화려한 이펙트가 터졌다. 희뿌연 연기가 휘몰아쳤다.

그사이, 디스 플루토는 연우와 크로이츠를 잡아 다른 곳으로 인도하고자 했다. 레이가 시간을 끌어 주는 동안 이곳을 빠져나가려는 것이다.

하지만.

퍼억-

티탄 페르세스는 하데스와도 어느 정도 자웅을 겨룰 수 있을 정도의 인물. 레이 같은 하급 신격이 막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레이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피떡이 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어딜 가려…… 하느냐……!』

거신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목표인 연우를 잡기 위해 팔을 크게 휘둘렀다.

강풍이 휘몰아치면서 모래바람이 해일처럼 덮쳐왔다. 디스 플루토가 다급하게 연우 앞을 가로막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결사 항전의 의지가 단단히 맺혔다.

연우도 이를 악물고 권능들을 개방시켰다. 아니, 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뭔가에 가로막힌 것처럼 채널링이 막혔다.

[아테나와의 채널링이 약합니다. ‘여신의 성흔’이 불발됩니다.]

[케토와의 채널링이 약해졌습니다. ‘해왕석’이 실패했습니다.]

[아가레스와의 채널링이 약합니다. ‘흉신악살’이 불발됩니다.]

[아가레스가 크게 화를 냅니다!]

성공한 권능은 용체 각성뿐. 연우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면서 용의 근력을 최대로 끌어 올려 거신에 대항하고자 했다. 72선술과 불의 파도라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하면서.

어느덧 녀석의 거대한 그림자가 머리 위를 크게 덮쳐 오고 있었다.

그 순간.

콰르릉!

갑자기 어둠만 자욱하게 깔렸던 하늘에 푸른빛이 맺히더니, 그대로 벼락이 되어 거신의 안면을 가르고 지나갔다.

쿠어엉-

거신이 비명을 지르면서 뒤로 허겁지겁 물러섰다. 두 손이 제 얼굴을 붙잡고 있었다. 갈라진 얼굴의 상처에서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칠흑빛이 감도는 청동 갑옷을 입은 신이 나타나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짙은 어둠이 불꽃처럼 이글거리면서 그를 보호하듯이 감싸 안았다가,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뻗쳐 나갔다.

거신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은 크기였지만, 풍기는 위세만큼은 거신을 압도하고 있었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포세이돈보다도 더 격렬한 힘이 휘몰아쳤다.

연우는 그가 누군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제우스를 비롯한 6형제 중 맏이로 태어났으나, 동생들을 위해 스스로 올림포스의 권좌를 버리고 지하의 명계로 내려간 대신.

‘하데스!’

명계의 왕이 강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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