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313화 (313/862)

13화. 명계의 왕 (3)

『하데스…… 하데스……! 네가 감히……!』

콰콰쾅-

하데스는 거칠게 검을 휘둘렀다. 허공에다 몇 번 휘두르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럴 때마다 하늘이 갈라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힘이 휘몰아쳤다.

단단히 압축된 어둠이 벼락처럼 뭉쳐져 떨어지고, 거기서 파생되는 열풍은 폭풍이 되어 거신을 마구잡이로 난도질했다.

피가 튀었다. 한쪽 팔이 강제로 뜯기면서 위로 치솟았다. 여태껏 압도적인 위압감을 뿜어내던 거신은 더 큰 위압감 앞에 한없이 밀려나면서 정신을 차리질 못했다.

연우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결이…… 없어.’

완전무결. 헤르메스나 아테나에게서도 조금씩 보이던 결이, 하데스에게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저것이 진짜 ‘대신’이라 할 수 있는 존재의 힘인 걸까.

게다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휘몰아치는 기세는 타르타로스를 몇 번이고 뒤흔들어 놓고 있어서, 단순히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짜부라질 것 같았다. 역시나 냉혈 특성이 아니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신(神).

연우는 그 단어가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하데스를 보고 나서야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모든 섭리와 법칙이, 하데스를 중심으로 유동하고 있었다.

[헤르메스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메시지: 숙부님의 저런 모습, 오랜만이군. 700년 만이던가?]

[헤르메스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메시지: 나뿐만 아니라, 아레스나 헤라클레스도 처음에 저 모습을 보고 완전히 뻑이 갔었지. 특히 아테나 누이가 가장 열성 신도였었는데 말이야.]

[아테나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메시지: 조용히 해 줄래?]

전쟁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도 감회에 젖게 만드는 존재. 하데스는 그가 왜 올림포스 신들의 ‘맏이’인지를 확실하게 보여 주고 있었다.

“감히? 감히라고?”

하데스는 어떻게든 그를 붙잡고자 손을 뻗고, 그림자도 움직여 대는 거신의 공격을 여유롭게 피해 내면서 코웃음을 쳤다.

“페르세스, 네가 드디어 미쳤구나. 최근에 크로노스의 시정(屍精)을 먹으면서 비정상적으로 덩치를 불리더니 간덩이도 같이 부은 것이냐? 네가 진짜 크로노스라도 된 줄 아는 모양이지?”

검을 꽉 쥐었다.

우웅, 웅-

팔을 따라 전해진 어둠이 그의 검을 새카맣게 물들였다.

“아무래도 그 헛바람부터 빼 줘야겠구나.”

촤아악!

하데스는 그대로 검을 아래로 내리쳤다. 검은 칼날이 오른쪽 어깨에서부터 사타구니까지, 사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크어어어-

거신의 몸뚱어리가 어둠으로 활활 불타올랐다. 그리고 상처를 따라 무언가가 꾸역꾸역 쏟아지기 시작했다.

시커먼 연기가 새어 나올 때마다, 비정상적으로 컸던 덩치도 조금씩 작아졌다. 마치 바람이 빠지는 풍선처럼.

『안 돼……! 안 된다……!』

거신은 새어 나가는 연기를 어떻게든 붙잡기 위해서 발버둥 쳤다. 신력을 끌어올려서 상처를 재생시켜 보려 했지만, 하데스는 그럴 틈도 내어 주지 않겠다는 듯 쉴 새 없이 검을 휘둘러 댔다.

검광이 번쩍일 때마다 새어 나가는 검은 연기의 양도 많아졌다. 어느새 주변 일대를 가득 메울 정도였다.

‘뭐지, 저건?’

연우는 검은 연기를 가만히 쳐다봤다. 정황상 저것이 티탄을 비정상적으로 커지게 만든 힘이며, 타르타로스의 이상 현상을 일으킨 원인이란 건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왜 낯이 익은 거지?’

연우의 낯이 살짝 굳어질 무렵.

부르르-

갑자기 칠흑왕의 절망과 비탄이 깨질 듯이 거세게 울어 댔다.

연우가 왜 그러나 확인하려는데.

콰아앙!

하데스가 전력을 다해 마지막 일격을 내리쳤다. 그러자 거신의 머리통이 잘리면서 허공으로 튀었다. 그만한 크기가 하늘로 떠오르니 일견 무서운 심정까지 들 정도였다.

파스스-

그러다 거신의 머리통과 몸뚱이가 작은 입자로 쪼개져 부스러졌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던 핏물도 확 하고 사라졌다.

녀석이 있던 자리에는 검은 구슬 같은 것이 남아있었다.

“쥐새끼 같군. 그새 또 도망쳤나?”

하데스는 가볍게 코웃음을 치더니 손가락을 가볍게 튕겨 검은 구슬을 완전히 부숴 버리고, 연우가 있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

아주 먼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눈이 마주쳤다 싶을 때 즈음.

팟-

하데스는 어느새 연우의 바로 눈앞에 도착해 있었다. 멀리서 보던 것보다, 그는 훨씬 더 시니컬한 인상이었다.

연우는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서면서 비그리드 쪽으로 손을 가져가려 했지만, 몸이 빳빳하게 굳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별다른 기세를 풀어내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영혼이 꽉 쥐어진 느낌이었다.

포세이돈을 비롯한 여러 신들을 마주쳤었다지만, 그래도 연우는 그럴 때마다 특성을 이용해서 어느 정도 자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하데스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특성은 작동하질 않았다. 몸이 움직여지질 않았다. 일말의 자유도 허락할 수 없다는 듯. 하데스는 여태껏 만났던 신이나 악마보다도 월등한 위치에 놓여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연우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 이렇게 다른 누군가에게 제압된다는 것은 정말이지 불쾌한 일이었다. 그래서 시차 괴리를 발동, 한껏 느려진 세상 속에서 마력회로를 돌려 세포를 빠르게 깨웠다.

그러다 하데스가 입을 열었을 때, 시간도 제자리를 되찾으면서 연우도 자유를 찾을 수 있었다. 당당하게 두 눈을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헤르메스가 만족한 듯이 크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테나가 따스한 시선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아가레스가 낄낄 웃습니다.]

[혼돈이 침묵합니다.]

순간, 하데스의 눈가에 이채가 어렸다.

“그리운 얼굴들이 많군. 조카들의 총애를 듬뿍 받는 아이였나? 아가레스라. 저 마왕도 오랜만이고. 거기다…….”

하데스는 말꼬리를 살짝 흐리면서 연우를 위아래로 살폈다. 순간, 연우는 자신의 모든 것이 낱낱이 파헤쳐지는 듯한 기분을 받았다. 속내까지 보이는 듯한 느낌.

그러다 하데스의 시선이 잠시 검은 팔찌와 족쇄에 멈췄다. 칠흑왕의 절망과 비탄이 거기에 호응하듯이 울렸다. 그런데 느낌이 평소와 많이 달랐다. 마치, 분노를 느끼는 것처럼 거칠게 떨리고 있었다.

“‘그’의 유산들까지?”

하데스는 한쪽 입술 끝을 비틀었다. 어떻게 보면 비웃음 같기도, 또 어떻게 보면 쓴웃음처럼 보이기도 했다.

“단순히 페르세포네의 전언만 가져온 줄로 알았더니, 생각보다 재미난 아이였구나.”

하데스는 헛웃음을 흘렸다.

“저기에 온 인간은 꽤 재미난 장난감을 들고 있고.”

성검 줄피카르를 들며 숨을 고르고 있는 크로이츠도 슬쩍 돌아봤다. 푹 눌러쓴 투구 아래로 크로이츠의 눈가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러다 하데스는 어느새 바닥에 부복해 있는 디스 플루토를 보며 소리쳤다.

“신전으로 복귀한다!”

* * *

[서든 퀘스트(페르세포네의 오랜 소망)을 무사히 달성하였습니다. 추가 공적치가 제공됩니다.]

[공적치를 10,000만큼 획득했습니다.]

[추가 공적치를 15,000만큼 획득했습니다.]

[보상으로 ‘생령의 반지(페르세포네의 신물)’, ‘봄의 축복(페르세 포네의 가호)’, ‘판명부(페르세포네의 권능)’를 획득했습니다.]

페르세포네가 건넨 퀘스트는 하데스를 만나 그의 생사를 확인할 것.

하데스를 만났으니, 그에 대한 소식도 자연스레 페르세포네에게로 전달되었을 것이다. 덕분에 퀘스트를 달성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활짝 열린 연우의 손바닥 위로 빛에 싸인 반지가 내려앉았다. 들꽃을 둥글게 엮어 만든 것 같은 꽃반지. 페르세포네의 신물, 생령의 반지였다.

연우는 보상을 확인했다.

[생령(生靈)의 반지]

분류: 반지

등급: 신물

설명: 봄과 씨앗, 명계의 여신인 페르세포네가 자신을 대신해 남편 하데스를 찾아 준 은인에게 보답한 선물.

항상 생생한 생명의 기운이 감돌기 때문에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피로를 풀어주고 활력을 불어넣는 효능을 지닌다.

또한, 사용자의 영혼에 여러 효과를 낳기도 한다.

* 영혼 아생

인간이 품은 강한 사념은 영혼을 다양한 색으로 물들일 수 있다. 이런 색들을 정화하여 정신을 맑게 하고, 외부로부터의 좋지 않은 자극을 해소해 준다.

육체에 쌓이는 피로도를 최소 20%에서 최대 40%까지 낮춰 주는 효과를 지닌다.

* 영혼 생장

생사가 결정되어 있는 필멸자에게 영혼은 원래 손을 대기 힘든 금단의 영역이다. 이러한 영혼에 꾸준한 자극을 주어 조금씩 의미를 깨닫게 해 주는 효과를 지닌다.

영력(靈力)과 영압(靈壓)에 대한 사용 권한을 부여한다.

연우는 생령의 반지를 착용한 순간, 여태껏 알게 모르게 육체에 계속 주어지던 압박감이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타르타로스는 신을 가두기 위한 감옥. 당연히 환경적으로 일개 필멸자들이 함부로 돌아다니기에 많이 힘든 장소일 수밖에 없었다.

크로이츠는 이것을 성검 줄피카르가 주는 성력으로 해소하면서 비교적 자유롭게 다니는 중이었다.

하지만 연우는 달랐다.

칠흑왕의 절망과 비탄을 갖고 있다지만, 타르타로스를 해결해 주는 권한을 지닌 것도 아니었으니. 오히려 용·마·신의 여러 인자들을 보유하면서 받는 압박이 컸다.

하지만 생령의 반지는 영혼을 자극하고, 활력을 불어넣어 주면서 육체가 받는 압박을 해소하는 효과를 낳았다.

쉽게 말해, 타르타로스를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는 권한을 준 것이다.

또한, 다른 층계에 가더라도 피로도를 낮추는 효과를 지닌 만큼, 페르세포네가 많은 배려를 해 준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여신의 답례로 부족하지 않은, 뛰어난 보상이었다.

하지만.

[‘봄의 축복(페르세포네의 가호)’과 ‘판명부(페르세포네의 권능)’에 대한 권한이 부족합니다. 열람을 위해서는 새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다른 생령의 반지와 함께 주어진 두 보상은 스킬창에만 이름이 떠올랐을 뿐, ‘접근 불가’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관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페르세포네가 했던 말이 있었다.

-사실 퀘스트창에는 3개의 보상이 주어질 거라고 적혀 있겠지만, 아마 ### 님이 남편을 만난 뒤에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건 생령의 반지, 하나밖에 되지 않을 거예요.

-이유가 무엇입니까?

-생령의 반지는 제 신력을 담아 드리는 선물이니, 충분히 효과를 발휘할 수 있어요. 하지만 다른 두 개는 다르답니다. 타르타로스가 가진 환경 차이 때문이에요.

페르세포네의 설명은 간단했다.

타르타로스는 사실 외부와 일절 단절된 공간. 천계인 98층에서도 유일하게 접근할 수가 없는 곳이라고 했다. 그 때문에 올림포스에서도 그동안 하데스가 실종되고도 손을 쓸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봄의 축복’과 ‘판명부’는 페르세포네와 채널링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야만 가능한 것. 하지만 외부와 단절이 되어 있으니 페르세포네의 힘을 빌려올 수가 없는 것이다.

‘용체 각성 외에 내가 가진 다른 권능들이 자꾸 불발된 것도 그 때문이겠지.’

아테나, 아가레스, 혼돈과 채널링이 이어져 있어도, 권능이 실패로 돌아갔던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럼 다른 두 보상을 제대로 해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데스로부터 권한을 인정받아야 할 거예요. 타르타로스는 그의 성역이나 다름없으니까.

결국 하데스의 인정을 받든가, 아니면 타르타로스에서 빠져나와 다른 층계로 이동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때.

띠링-

[연계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더 메시지가 떠올랐다.

연우는 퀘스트를 확인했다.

[연계 퀘스트 / 페르세포네의 간절한 소망]

내용: 당신은 페르세포네의 간절한 부탁을 받아 하데스를 찾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하데스가 처한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티탄, 기가스와의 전쟁이 오랫동안 길어지면서 타르타로스는 많은 곳이 망가진 폐허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곳에서 하데스를 도와, 그로부터 인정을 받고 그가 무사히 원래의 신전으로 되돌아올 수 있게 도우십시오.

그래야만 페르세포네로부터 얻은 가호(봄의 축복)와 권능(판명 부)에 접근할 권한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달성 조건: 하데스의 인정, 하데스의 귀환

제한 시간: 무제한

보상:

1. 가호(봄의 축복) 사용 자격

2. 권능(판명부) 사용 자격

연우는 가볍게 혀를 찼다.

‘역시 순순히 주지는 않는군.’

페르세포네는 하데스가 뭔가 심상치 않은 일에 휘말렸을 것이라 짐작하고, 연계 퀘스트를 숨겨 두었다.

가호와 권능이 탐난다면 하데스를 도울 수 있도록.

하데스를 찾기만 하면 모든 보상을 줄 것처럼 해 놓고, 슬쩍 마지막 조건을 고친 것이다.

연우는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사실 페르세포네의 가호와 권능이 탐나긴 했지만, 그렇게 애타게 매달릴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은 비록 연결이 끊어졌지만, 여전히 권능의 목록에는 그와 가계약이라도 맺기를 바라는 신과 악마들이 무수히 많았으니.

그중에는 페르세포네가 제시한 것과 기능이 비슷하거나, 더 뛰어난 것들도 많을 터였다.

하지만. 연우는 여기에 대해 별달리 화를 내지 않았다. 남편에 대한 걱정이 얼마나 심하면 이렇게 수를 썼을까.

신에게 있어 플레이어의 손길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텐데도 불구하고. 아마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이 아니었을까?

그런 간절한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굳이 따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어차피 나도 여기에 남아 있어야 하고.’

아직 다른 두 키클롭스 형제들의 행방을 찾지 못한 이상, 연우는 계속 타르타로스에 남아 하데스를 도와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그래야 회중시계의 봉인을 풀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쉽지는 않겠는데.’

연우는 하데스와 디스 플루토를 따르는 내내 보았던 폐허들을 보면서 가볍게 혀를 찼다.

원래 타르타로스가 생명이 나지 않는 공간이며, 어둠만 내려앉는 곳이라지만. 그래도 곳곳에 널브러진 것들이 여러 거신의 사체며 전투의 흔적들이었다.

특히 하데스의 영역으로 보이는 주둔지들은 대개가 부서지거나, 사람이 머물고 있어도 제대로 개보수가 이뤄지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때.

저 멀리, 하데스의 신전이 보였다.

하지만 올림포스의 3대 주신 중 한 명의 신전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지나칠 정도로 황폐화되어 있는 곳이었다.

그런 연우의 눈빛을 읽은 걸까.

“아무것도 묻지 않는군. 궁금할 게 많을 텐데 말이야.”

하데스는 그런 연우를 보면서 가볍게 웃었다.

시니컬한 웃음소리. 오는 내내 느꼈던 것이지만, 그는 상당히 냉소적인 성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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