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331화 (331/862)

6화. 미후왕의 후예들 (6)

[아테나가 슬픈 눈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아테나가 슬픈 눈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신의 사회, ‘올림포스’가 당신을 가만히 주시합니다.]

“짜증 나는군.”

연우가 불쑥 내뱉은 말에 빙왕은 앞서 달리다 말고 화들짝 놀라, 고개를 뒤로 돌렸다.

“왜 그러나?”

“아닙니다. 아무것도. 그냥 자꾸 아까 전부터 거슬리던 게 있어서요.”

“…….”

빙왕은 뒤늦게 연우가 말하는 ‘거슬리는 것’이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에 속으로 안도에 찬 한숨을 내쉬었지만, 한편으론 그게 무엇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테나가 슬픈 눈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연우는 계속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아테나의 시선이 이제는 못내 불쾌했다.

그래도 아테나는 시선을 거둘 생각이 전혀 없는 듯, 여전히 애타는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뒤따르는 다른 신들의 시선도 마찬가지.

‘타르타로스에서의 일이 궁금해 미칠 지경이겠지.’

아마 올림포스에서도 연우가 무엇을 하려는지를 깨달았을 것이다. 그가 필요로 하는 재료들이 무엇인지만 봐도 대략적으로 견적이 나올 테니까.

하지만 갑자기 다른 길로 빠졌으니 왜 저러나 싶어 집중하는 것이겠지.

다만, 아테나의 시선은 조금 달랐다. 동정 섞인 시선. 안타까움에 찬 감정이 여기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연우는 유독 저 시선이 너무 싫었다.

누군가에게 이해가 된다는 것과 안타까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전혀 달랐으니까. 그래서 짜증이 섞인 시선으로, 아테나가 있을 허공 어딘가를 노려보았지만.

[아테나가 슬픈 눈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메시지는 여전히 사라지질 않았다.

결국 연우는 아테나의 시선을 무시하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상당히 지친 기색을 하면서도 어느새 쫓아온 빅토리아가 보였다.

“돌아가십시오.”

“……안 돼.”

“대체 그런 몸 상태로 어떻게 버티겠다는 겁니까?”

이미 주술의 효력은 다했다. 빅토리아는 팔이며 손가락, 발목에 이르기까지 온통 장신구를 가득 끼워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아다만틴 노바가 태양을 맴도는 행성처럼 빅토리아의 주변을 뱅글뱅글 돌고 있다지만, 아직 정식 단말이 없어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할 수 있어.”

그래도 빅토리아는 절대 의지를 굽힐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연우가 그녀를 뿌리치기 위해 일부러 속도를 더하면, 빅토리아는 그만큼 있는 기력을 더 쥐어짜서 연우의 뒤를 바짝 쫓았다.

“하지만.”

“방해는 안 될 거야. 될 거 같으면…….”

빅토리아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면서 말했다.

“알아서 죽겠어.”

“…….”

연우는 가만히 빅토리아를 응시했다. 하지만 빅토리아는 생각을 전혀 바꾸지 않겠다는 듯, 더 단호한 눈빛으로 연우를 바라봤다.

연우는 저런 눈빛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주변에서 아무리 뜯어 말려도 절대 말릴 수 없는 옹고집. 자신이 자주 보이던 눈빛이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결국 연우는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고마워.”

빅토리아가 배시시 웃었다.

* * *

『우리는 우선 미끼가 될 겁니다.』

『미끼?』

스테이지의 제약이 다시 찾아오는 영역에 들어설 때쯤. 연우는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칸 녀석과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칸을 쫓는 추격대의 눈을 분산시키는 겁니다.』

『칸이 받는 부담을 덜어 주려는 거구나.』

『예. 더불어서 칸에게 우리의 위치를 알려 줄 수도 있겠죠.』

현재 칸의 행방은 아무리 찾아 봐도 알아낼 수가 없는 상태였다. 니케와 네메시스가 상공에서 낱낱이 아래를 살피고, 부가 대대적인 탐색 마법을 펼쳐 봤지만 아무 것도 건질 수가 없었다.

빅토리아가 시간을 끌어 준 사이, 완전히 종적을 감춘 것이다. 오랫동안 사두로 지냈던 만큼, 20층 스테이지의 지리 지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테니. 한번 숨고자 한다면 찾아내기 힘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연우는 생각을 바꿨다.

찾기 힘들다면, 반대로 칸에게 자신들의 위치를 노출시키는 것으로.

칸이 직접 찾아오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연우가 날뛰면 날뛸수록, 음지에서 상황을 몰래 지켜보고 있을 미후왕의 후예들도 하나둘씩 나타날 테니까. 그런다면 칸도 접근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된다. 연우는 조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숨길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런다면 제아무리 마군이 칸을 감시하고 있다고 해도 찾아올 수밖에 없겠지. 아니면.’

연우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숨겨진 다른 계획을 실행하던가.’

칸은 왜 굳이 많고 많은 스테이지 중에 소동을 벌일 장소로 20층을 선택했을까?

단순히 익숙한 지형이고, 타 플레이어들에게 제약이 많은 곳이라서 그랬을 수도 있을 테지만. 어쩌면 다른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후왕의 궁전이 있는 곳이기도 하니까, 이곳은. 단순한 우연이라고 보기는 힘들겠지.’

여하튼. 어떤 반응을 보여도, 연우로서는 칸의 행적을 찾을 수 있게 되니 절대 손해가 아니었다.

「주인이 그만큼 고생한다는 생각은 안 해 봤지?」

샤논은 사서 고생한다고 투덜거렸지만.

「하여간 평소 인성질과 다르게 이런 데는 유독 약하단 말이지…….」

물론, 샤논의 말마따나 그만큼 연우가 더 많은 고생을 해야 할 테지만. 그는 그런 것쯤은 충분히 감내할 자신이 있었다.

위기에 처한 친구의 부탁을, 이 정도도 들어주지 못할까.

[아테나가 슬픈 눈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어떻게 적들의 이목을 사려고?』

빅토리아는 연우의 계획을 전부 듣고 나서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어떻게 계획을 시작할 것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렇게 하면 됩니다.』

연우는 가볍게 피식 웃더니.

팟-

갑자기 신형이 아래로 움푹 꺼졌다.

그리고.

콰르르릉!

별안간 저만치 먼 곳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불기둥이 숲을 뚫고 하늘에까지 다다랐다.

『아아악!』

『제기랄……! 우리 위치를 어떻…… 컥!』

빅토리아의 시선이 저절로 그쪽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놀란 눈이 되었다.

빙왕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새 추격대가 따라붙었었나? 빠르군.』

졸지에 추격대에서 연우의 편으로 가담하게 된 그로서는. 곧 용병들이 가장 경계해야 한다는 배신자의 낙인이 찍히게 될 신세가 스스로 처량하기만 했다.

혹시나 뒤로 빠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디 가십니까?』

연우는 한창 싸우고 있는 와중에도 빙왕의 움직임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듯, 귀신같이 어기전성을 보내왔다.

『흠흠! 이만하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싶은데. 혹시 놓아줄 생각은 없는가?』

『한곳에 서십시오.』

이쪽에 설 것이냐, 저쪽에 설 것이냐.

빙왕은 일말의 고민도 할 필요 없다는 듯이, 얼굴을 딱 굳히면서 진지한 태도로 말했다.

『당연히 자네의 편이지. 내가 누구편에 서겠나? 그래. 무엇부터 하면 되겠나?』

* * *

『이대로는 안 된다! 흩어져!』

『아, 안 됩니다! 앞이 가로막혔…… 크악!』

상부의 명령에 따라, 연우의 뒤를 몰래 밟던 추격대, 은영단(隱影團)은 혼비백산하고 말았다.

그들은 원래 용병 업계에서도 전투 집단이 아니라, 살수 집단으로 유명했다.

주로 몰래 암살하는 의뢰를 맡았지만, 이따금 누군가를 미행하거나 행적을 조사하기도 했다. 언제나 음지에서 조용히 움직여 밖으로 노출되지 않고, 입이 무거워 많은 의뢰자들의 환심을 샀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은영단은 독식자의 위치를 찾아달라는 ‘연합’의 의뢰를 받고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철사자단의 4단과 문 워커, 스트리지 등이 몰살되었다는 소식을 접했기에, 정면에서 부딪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대신에 아주 조용히 뒤를 밟으면서, 독식자 일행이 움직이는 곳마다 일정한 표식을 남겨 놓았다.

그럼 뒤에서 쫓아오는 후발대가 이것을 연합에다 알리고, 연합은 이 정보를 바탕으로 예상 루트에다가 천천히 포위망을 구축해서 독식자 일행을 가둔다는 작전이었다.

그런데 표식을 몇 개 남기지도 못하고 위치가 노출되고 말았으니.

은영단은 어떻게 들켰는지를 확인할 새도 없이, 불길을 휘두르면서 거침없이 그들을 도륙하는 연우를 피해 도망쳐야만 했다.

하지만 도주는 쉽지 않았다.

콰콰콰-

연우가 움직일 때마다 불어닥치는 열풍은 그들의 발목을 묶었고, 검을 휘두를 때마다 터지는 폭발은 은영단의 플레이어들을 빠른 속도로 지워 나갔다.

외곽에 있어 겨우겨우 연우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난 플레이어들도 발목이 묶이긴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숲길 사이로 떡하니 거대한 얼음 장벽이 생겨나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던 것이다.

『빙왕 어르신, 이게 대체 무슨 짓이십니까!』

은영단의 부단주, 하비가 사색이 되어 소리를 질렀다. 여태껏 연합의 든든한 아군이자 어른이었던 빙왕이 저쪽에 섰을 줄은 생각도 못 했던 것이다. 그들은 여태 빙왕도 문 워커 등처럼 같이 독식자에게 당한 줄로만 알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 미안하게 되었어.』

빙왕은 그들을 보면서 쓰게 웃었다. 그라고 해서 아침까지만 해도 한솥밥을 먹었던 이들에게 칼을 겨누는 게 마음이 편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아무리 친한 친구 사이더라도 하루아침에 서로에게 얼마든지 칼을 겨누게 될 수 있는 것도 용병 업계의 현실.

빙왕은 마음속에 갖고 있던 마지막 남은 미안함을 지우고, 양손을 가볍게 부딪쳤다.

시퍼런 빛이 터졌다. 냉기가 휘몰아치면서 눈보라가 일어났다.

〈북해빙파(北海水波)〉. 지면이 바짝 얼어붙으면서 사방에서 솟은 얼음 가시가 덤불을 이루기 시작했다.

찌저저적-

하비를 비롯한 여러 은영단원들은 얼음 가시에 꿰뚫린 꼬챙이 신세가 되어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핏물이 얼음을 타고 흐르면서 바닥을 축축하게 적셨다가, 다시 똑같이 얼었다.

우우웅-

빅토리아는 임시로 만든 단말을 바탕으로 아다만틴 노바를 운행하기 시작했다. 다만, 몸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에 직접적인 공격보다는 일행들에게 버프를 실어 주는 보조 역할을 맡았다.

그러다 어느 정도 마력이 차올랐을 때쯤, 손가락으로 허공에다 문자를 그렸다. 그러자 붉은빛의 룬 문자가 맺히더니, 팟 하고 사라졌다.

문자 마법에 주술을 가미한 새로운 마법 도식. 마력이 실린 신대 문자는 법칙에 관여하고, 법칙은 이적을 불렀다.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더니, 날벼락이 떨어졌다.

우르르, 콰쾅-

이미 그 자리에 있는 세 사람은 랭커 중에서도 상위권에 해당하는 자들. 특히 빙왕은 오래전부터 하이 랭커에 해당했고, 연우도 여섯 신성에 꼽히는 만큼 실력만 따진다면 하이 랭커와 비등하다 할 수 있었다.

은영단은 사라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하지만 연우 등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여기도 있어!』

니케가 상공을 날면서 실시간으로 적들의 위치를 연우에게로 전달했다. 연우는 이를 바탕으로 스테이지를 종횡무진 누비면서 빠른 속도로 추격대를 지워 나갔다.

콰르르릉!

쿠쿠쿠, 콰콰콰-

단 몇 분 간격으로 산맥 곳곳에서 폭발과 비명 소리가 난무를 하니.

정작 상황이 급박해진 것은 연합 측이었다.

천천히 연우의 뒤를 추격하면서 토끼몰이를 할 계획이던 그들로선, 도리어 생각지도 못한 반격을 당하게 되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었지만, 따지고 보면 허울만 좋은 이름일 뿐이었다.

일정한 지휘 체계나 연락망도 없이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어 이렇다 할 공동 대책도 마련할 수 없었다.

각자가 추구하는 바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철사자단은 단주의 명령에 따라 작은 주인을 찾아 신병을 확보하는 데 집중하고, 마탑과 네크로폴리스는 선술묘학에 눈독을 들였다. 망자의 함은 속내를 전혀 알 수 없었으며, 자잘한 여러 용병 단체나 현상금 사냥꾼들도 따로 움직이는 형국이었다.

게다가 이따금 연합에 가입하지 않은 실력자들이 발견되기도 했으니.

이런 판국에 효율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기가 쉬울 리 없었다.

도리어 각개 격파가 계속 이어지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병력을 뒤로 물리다가 포위망 곳곳에 구멍이 뚫리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도 연우의 압박은 계속 이어졌으니.

어느새 연우는 연합의 깊숙한 곳까지 찔러 들어갔다.

그리고.

첫 번째 목표로 잡았던 곳에 다다르는 데 성공했다.

낭떠러지 아래.

여러 목책과 참호를 바탕으로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는 커다란 군영이 보였다.

철사자단의 본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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