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332화 (332/862)

7화. 미후왕의 후예들 (7)

땡땡땡-

독식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은 철사자단의 본단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플레이어들은 바쁘게 움직였지만, 그보다 먼저 연우의 강습이 시작되었다.

콰콰쾅!

연우가 비그리드를 아래로 내려칠 때마다 하늘에서는 불벼락이 잇달아 떨어지면서 본단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철사자단의 부단장, 조나단은 현장으로 다급하게 달려오다가 이를 바득 갈았다.

형제나 다름없던 토르카가 죽고, 독식자가 스테이지 곳곳을 누비고 있어 대응책을 논의하던 중이었는데. 급하게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달려온 것이었다.

조나단은 칼의 손잡이를 꽉 쥐었다. 여태 독식자는 런 앤 어웨이 전법으로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면서 ‘연합’의 전력을 착실하게 깎아 나가 그들을 혼란으로 몰아 넣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대놓고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 자신들을 그만큼 만만하게 본다는 뜻이었다.

불벼락이 하늘을 시뻘겋게, 대지를 새카맣게 불태웠다. 화마 사이로, 괴이들이 마구잡이로 날뛰면서 용병들을 도륙했다.

그러다 연우의 시선이 이쪽으로 돌아왔다.

가면을 쓰고 있으나, 무저갱을 담은 것처럼 무심한 눈빛. 조나단은 순간 자기도 모르게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섬뜩한 뭔가가 가슴팍을 감돌았다.

“한 가지만 묻지.”

“무슨 헛소리를 하려는 거냐?”

조나단은 아주 잠깐이나마 기세에서 눌렸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연우는 자신의 질문만 던질 뿐이었다.

“철사자단은 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지?”

“무슨……!”

“단주의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나? 아니면 단순히 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나?”

튜토리얼에서부터. 칸과 도일은 자신의 부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꺼려 했다. 뛰어난 랭커의 자식들이라는 것은 어렴풋이 들어 알고 있었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불문에 붙이고 있었다.

연우는 그들이 가진 마음이 어떤 것인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원망.

연우도 어린 시절에 홀연히 사라졌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아주 컸었으니까.

나이를 먹으면서 완전히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지만, 그래도 칸과 도일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칸의 아버지, 철사자가 단주로 있다는 철사자단이 칸을 잡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다. 단순히 그를 구하러 온 것이라면 아군이라 여길 수도 있을 테지만, 여태 연우가 봤던 철사자단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칸을 마치 원수를 대하듯이. 아니, 죄인을 대하듯이 하고 있었다.

그를 쫓는 것도 강제로 제압해서 끌고 가려는 속셈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연우의 지레짐작일 뿐. 철사자단의 진짜 속내를 들은 건 아니었다.

그래서 이들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이미 철사자단과의 관계는 토르카를 죽이면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었지만. 그래도 칸을 위한 것이라면 어느 정도 참작해 줄 생각은 있었다.

그리고.

연우의 그런 생각이 전해진 것인지. 조나단의 눈빛이 깊게 착 가라앉았다. 끓어올랐던 분노도, 살벌했던 기세도 사그라졌다. 대신에 싸늘한 눈빛이 연우를 직시했다.

“그게 왜 궁금한 거지?”

“난 놈의 친구니까.”

친구. 평생 입에 올릴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단어가 자연스럽게 연우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샤논과 한령이 담긴 그림자가 가볍게 출렁였다.

“친구?”

하지만 조나단은 코웃음을 쳤다.

“지금 친구라 하였나?”

싸늘한 냉소가 감돌더니, 한쪽 입술 끝이 말려 올라갔다.

“그분은 사자의 아들이시다. 사자에게 친구나 동료가 있을 것 같은가? 지금은 비록 승냥이 떼 사이에 떨어져 그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습성을 배웠다지만. 그래도 사자는 사자다. 네놈 같은 뿌리도 모르는 것과 그분이 정말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콰아아-

조나단은 양 허리춤에서 검을 꺼내 양손에 각각 하나씩 쥐었다. 탑에서도 보기 드문 쌍검술(雙劍術).

“그분은 지금 어린 날의 치기로 잠깐 잘못된 길을 걷고 계실 뿐이다. 그것을 바로잡아 드리는 것이 우리가 할 일.”

기세가 칼날을 중심으로 휘몰아쳤다.

그는 철사자단이 자랑하는 2인자. 아주 잠깐 연우에게 밀리긴 했었어도, 가진 실력은 하이 랭커에 육박할 정도였다.

“이래도 저래도, 결국 칸을 보호하려는 게 목적인 거군.”

연우는 그런 기세를 전부 감당하면서 웃었다. 피식. 가면 사이로 웃음소리가 살짝 삐져나왔다. 어떻게 보면 안도에 찬 웃음소리 같기도, 또 어떻게 보면 비웃음 같기도 한 소리.

조나단이 다시 발끈하면서 앞으로 나서려는데.

“방금 한 그 말이, 네 목을 겨우 남겨 놓았어.”

“뭔……!”

조나단은 소리를 지르지도 못했다. 연우의 신형이 갑자기 아래로 움푹 꺼졌다. 본능적으로 쌍검을 안쪽으로 잡아당기면서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서걱-

푸화악!

오른쪽 팔이 뜨거워진다 싶더니 그대로 어깨와 분리되어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크아악!”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지는 조나단 뒤쪽으로 연우가 잠깐 나타났다가, 다시 불의 날개를 활짝 펼치면서 철사자단 안쪽으로 깊숙하게 들어갔다.

‘칸의 편이라고 해도, 어찌 됐건 간에 지금은 방해만 될 테니까. 전력을 깎아 둬야겠지.’

콰르르릉-

* * *

철사자.

아이반은 언제나 자신의 별칭을 자랑스러워했다. ‘철’이기에 강인하고, ‘사자’이기에 전장을 호령할 수 있었다. 철로 된 사자. 불패(不敗)와 불굴(不屈)이야말로, 평생 그를 상징하던 것이었다.

그런데.

“……난장판이 따로 없군.”

아이반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못난 아들 녀석을 멱살이라도 잡아서 끌고 오라는 명령을 내린 지 열흘째. 위급한 상황이라는 전갈에 다급하게 제1단을 이끌고 온 순간, 그를 맞은 것은 쑥대밭이 되어 버린 군영(軍營)이었다.

20층으로 파견했던 총 5개의 단 중에 2개가 전멸하고 말았고, 1개가 반파, 그리고 남은 2개는 대부분의 단원들이 큰 부상을 입어 당분간 요양을 필요로 하는 지경이 되었다.

듣자 하니 이곳뿐만 아니라, 산맥을 따라 곳곳에 위치한 ‘연합’의 각 본단이 한 번씩 기습을 받아 반파(半破)가 되었다던가.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했다.

그토록 경멸하고 증오하던 패배가 눈앞에 있는 것이다.

단순한 패배였다면 화를 냈을 테지만. 이렇게 참혹한 패배를 겪으면 화도 나지 않았다.

“죽여 주십시오, 단주.”

조나단은 한쪽 무릎을 꿇으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패잔병의 몰골을 한 그는 이를 악물고 있었다.

아이반은 조용히 몸을 낮춰 눈높이를 맞추면서 조나단의 오른 쪽 어깨를 두들겼다. 붕대로 감아 휑한 어깨. 그것을 보니 그도 속에서 열불이 치솟는 것 같았다.

조나단이 누군가. 그가 아무것도 없이, 무일푼으로 검을 처음 쥐었을 때부터 옆에서 함께해 온 수하였다. 아니, 동료이고, 가족이고, 유일한 벗이었다.

그런 사람이 이런 몰골이 되었다.

“일어나.”

“하지만……!”

“일어나. 계속 그렇게 날 부끄럽게 할 텐가?”

조나단은 그제야 아이반의 도움을 받으면서 겨우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부상 때문인지 하체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아이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독식자라고, 했지?”

“……예.”

“감히 내 앞을 방해한 것으로도 모자라, 내 사람들을 건드렸단 말이지? 오만불손하다는 말은 익히 들었다만. 이 정도로 시건방진 작자일 줄은 몰랐어.”

아이반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수하를 돌아보았다.

“너.”

“예!”

수사자는 무리를 이끌며, 그 무리가 공격을 당하면 언제나 흉포한 이빨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빨을 드러냈을 때에는 전력을 다해 적을 사냥했다.

그리고 지금은.

“당장 연합의 각 본단에 사람을 보내서 전해라. 머리들끼리 만나자고. 철사자가 보자고 한다고. 지금 당장.”

그런 이빨을 드러낼 때였다.

“그리고 만약 미적지근해 하면서 빠질 기미를 보인다면.”

아이반의 입술 사이로 송곳니가 훤하게 드러났다.

“내가 먼저 그놈의 모가지부터 뜯어 버릴 거라는 말도, 같이 전해.”

* * *

아이반의 소집 요구에 연합의 각 수뇌들은 철사자단의 본영으로 몰려들었다.

루나틱, 스트레이 칠드런, 다섯 별의 창시자, 나이트 런…… 하나 같이 쟁쟁한 클랜들. 트리톤이 사라진 신흥 4대 클랜에 꼽혀도 될 거라는 평가가 있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곳을 막론하고, 수뇌들의 낯빛은 하나같이 좋지 않았다. 무참한 패배. 연우의 역공에 당하면서 큰 피해를 입은 탓이었다.

그나마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자들은, 아니,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자들은 단 네 명이었다.

철사자 아이반.

페이스리스.

닥터 둠.

녹턴.

아이반은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철사자단의 수장이었지만, 용병계의 거두이자 자리를 주최한 사람답게 전혀 그런 걸 내색하지 않았다.

아니, 철사자단의 규모는 이미 용병계에서도 최고라 불리는 바. 사실 그 정도 피해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오히려 더 많은 병력을 20층으로 끌고 올 것이라는 소문까지 암암리에 돌고 있는 중이었다.

페이스리스는 얼굴에까지 붕대를 감고 있었기에 표정을 읽을 수 없었고, 닥터 둠은 네크로폴리스뿐만 아니라 모든 마탑과 마법사들의 대표 자격으로 참여했기에 표정을 신경 썼다. 그리고 최근 S급 용병으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천검(千劍)’ 녹턴은 평소 그대로, 무표정이었다.

“뭘 그렇게 폼을 잡고 계시나? 다들 자리에 모인 듯한데. 이제 슬슬 운이라도 띄우시는 게 좋……!”

서로가 눈치를 보며 조용하던 회의장에서,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은 페이스리스였다.

그는 저잣거리 왈패처럼 경망스러운 말투로 히죽대다가, 갑자기 목으로 날아든 칼날에 다급하게 이를 악물어야 했다.

채애앵!

아이반의 검이 아슬아슬하게 페이스리스의 목 앞에서 멈췄다. 빳빳해진 붕대를 꽉 쥐면서, 페이스리스의 안광이 사납게 빛났다.

“이게 무슨 짓이지, 철사자?”

페이스리스는 이를 악물며 으르렁거렸다. 살벌한 투기가 새어 나왔다. 모욕당한 전사의 그것이었다.

갑작스러운 분위기의 변화. 하지만 아이반은 익숙한 듯, 검을 거두면서도 경고를 잊지 않았다.

“폼을 잡고 있던 건,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겠지.”

“뭐?”

고오오-

아이반은 살벌한 눈으로 좌중을 훑어봤다. 매서운 기세가 공기를 가득 채웠다.

페이스리스가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여태껏 아이반은 최상위권의 랭커로 분류되었어도, 아홉 왕에 비하면 몇 끗발 부족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지금 보니 반 수 정도의 차이일 뿐, 아홉 왕에 근접한 실력을 갖고 있는 듯했다. 100위권에 들 만한 실력자란 뜻이었다.

“페이스리스. 듣자 하니 너는 독식자의 뒤를 계속 밟기만 했지, 정작 피해를 받고 있는 아군을 도와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지?”

페이스리스는 슬쩍 눈길을 돌리며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명분을 따지자면 자신이 불리했다. 아이반의 말마따나, 그는 망자의 함을 데리고 연우의 뒤를 밟기만 했으니까. 그가 어떤 습성을 갖고 있는지, 어떤 영혼을 지니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아이반은 그런 녀석의 태도에 인상을 찡그리면서 이번엔 닥터 둠과 녹턴을 차례대로 보았다.

“닥터 둠, 그대도 마법사들만 데리고 바로 내뺐고, 녹턴은 수수방관했다고 들었다.”

“…….”

“…….”

닥터 둠은 팔짱을 끼며 입을 꾹 다물었고, 녹턴은 두 눈을 가늘게 좁혔다.

무표정하던 녹턴의 얼굴에 처음으로 감정이 어렸다. 호승심. 그의 귀에 다른 말은 들리지 않았다. 그저 아이반이 얼마나 강할까 하는 생각뿐. 녹턴은 강자만 찾아 다니는 하이에나였다.

“그나마 여기서 가장 강하다고 하는 그대들은 독식자가 가지고 있다는 선술묘학이나 내 아들의 행방만 궁금해할 뿐이었지. 다른 자들은 어떻게 되든 간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어. 그리고.”

아이반은 잠시 말을 끊으면서 다른 수뇌들을 둘러봤다. 그들은 아이반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경기를 일으키면서 몸을 떨거나,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건 다른 자들도 마찬가지다.”

아이반은 씹어 삼키듯이 말했다.

“이래서야 허울만 좋은 연합일 뿐. 진짜 연합이라 할 수 없다. 오히려 갈기갈기 찢겨, 놈에게 먹히기 좋은 먹잇감밖에 더 되겠는가 말이다!”

쾅!

아이반은 주먹으로 탁상을 세게 내리쳤다. 사자가 내지른 포효가 가뜩이나 뜨거운 공기를 살 떨리게 만들었다.

“그러니 이제부터 단독 행동 따위는 절대 허락지 않겠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떠나라. 단, 이곳에서 다시 내 눈에 뜨이면.”

아이반은 뒷말 대신에 입술을 열어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 보였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모두에게 확실하게 전달되었다.

날 따라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

사실상 ‘연합’을 자신의 손에 넣겠다는 선전포고인 셈이었다.

졸지에 상전을 모시게 된 각 클랜의 수뇌들은 황급히 다른 세 사람의 눈치를 봤다. 페이스리스와 닥터 둠은 신성으로 통하는 자들. 당연히 머리 위에 누가 있는 것을 아주 싫어할 터였다. 그리고 그건 평소 그들이 본 녹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페이스리스는 능글맞게 양어깨를 으쓱거리고, 닥터 둠은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녹턴만 지그시 아이반의 눈을 응시했지만, 다른 말은 입에 담지 않았다.

결국 연합은 그렇게 아무런 반발도 없이, 아이반의 손아귀에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아이반의 타오르는 눈빛은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그렇기에 어디로 튀어도 이상하지 않을 세 사람에게 단단히 고정되어 떨어지질 않았다.

그러던 그때.

쾅!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면서 누군가가 다급하게 뛰어왔다. 철사자단의 용병. 모든 이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쪽으로 쏠렸다.

“급보입니다!”

“뭐냐?”

“작은 주인…… 아니, 혈검 칸의 소재가 파악되었습니다!”

모든 수뇌들이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순간, 아이반은 놓치지 않았다. 붕대 사이로 비치는 페이스리스의 안광이 묘하게 빛나는 것을.

* * *

『카인 녀석, 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거야?』

칸은 스테이지 곳곳에서 벌어지지는 여러 전황을 감지하면서 눈을 크게 떴다.

촘촘하게 얽혀 드는 포위망과 후예들의 끈질긴 추격을 쳐 내면서 이동하던 중, 갑자기 포위망이 느슨해져서 무슨 일인가 싶었었는데.

산봉우리의 높은 곳에 올라서서 아래를 살펴보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연우와 빅토리아, 그리고 빙왕이 손을 잡고 스테이지를 누비면서 포위망을 외곽에서부터 갈기갈기 찢고 있었던 것이다.

저 먼 곳에 위치한 철사자단이 빠른 속도로 무너지는 것도 보였다.

칸은 자기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돌아선 지 오래라고 해도, 그래도 한때 가족처럼 여겼던 곳이었다. 특히 조나단은 자신에게 자상한 숙부 같았던 사람이었으니. 연우와의 충돌에서 크게 다치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그래도. 누님은 크게 다친 곳이 없는 것 같아 다행이네.』

칸은 안도에 찬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빅토리아를 그렇게 보내고 난 뒤, 계속 그녀가 걱정되어 마음을 졸였었는데. 다행히 연우가 제시간에 찾아와 도와줬던 모양이었다.

뜻하지 않게 그들을 이용하게 된 셈이었지만. 그래도 너무나도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제 도일을 구할 수 있을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정도면 이제 충분히 모였어.』

칸은 손을 활짝 펼쳤다. 여러 개의 여의봉 조각들이 올라오면서 하나로 합쳐졌다.

연우 등이 시간을 벌어 주면서 추가로 획득한 조각들. 킨드레드에게 건넸던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이었다. 자잘한 놈들이 사라지고, 굵직한 자들만이 남다 보니 이렇게 부쩍 늘어난 것이다.

그리고 이것만 더해진다면. 충분히 제기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킨드레드는 목적지에 미리 가 있는 상태. 그도 그곳으로 가기만 하면 되었다.

팟-

칸은 여의봉의 조각을 회수하면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미후왕의 허물이 머물고 있는 미후왕의 궁전. 오래 전에 연우 등과 함께 방문한 적도 있던 곳이었다.

여태 거기까지 가고 싶어도 주변에 눈이 너무 많아 쉽게 접근하질 못했는데.

연우가 포위망의 이목을 끌어 주는 지금이라면. 충분히 이동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삐이익-

저 드높은 상공에서. 붉은 새가 칸을 발견하며 소리 높여 울었다.

『주인! 칸, 찾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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