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340화 (340/862)

15화. 미후왕의 후예들 (15)

『여태 자고 있다가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려 눈을 뜨긴 했지만. 참 많은 게 엉망이 되어 있군그래.』

도일은 엉망이 된 주변을 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천마의 저주는 끝내 많은 것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만약 자신이 변태(變態)를 위해 깊은 잠에 들지 않았었더라면. 일이 이렇게까지 엉망으로 꼬이지도 않았을 텐데.

『그나저나. 진짜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그 용의 눈은 정말 어떻게 하고 싶군. 피할 수가 없어. 덕분에 헤븐윙의 딸을 한번 구경하고 싶었던 게 어긋나 버리지 않았나.』

그 순간, 그를 따라 감돌던 분위기가 백팔십도 반전되었다. 무겁고, 강렬한 파장이 사방으로 뻗쳐 나갔다.

콰아아-

그건 분명히 도일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도일이 아니었다. 도일의 인두겁을 쓴 다른 존재였다.

그를 따라 검은 마기가 감돌기 시작하고, 머리카락은 점차 흰색으로 물들었다. 안광은 붉은빛을 형형하게 띠었다.

『대주교……! 도일은 어디에 있는 거지?』

칸은 이를 악물면서 대주교를 노려보았다. 그는 당장에라도 달려들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꾹 누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그를 향해.

『글쎄. 어디에 있을까?』

대주교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칸의 머릿속에서 뭔가가 툭 끊어졌다.

『이 개새끼가!』

쾅!

칸은 녀석에게로 몸을 날렸다. 베어진 손바닥을 따라 피가 잔뜩 쏟아지면서 칼의 형태를 폈다.

〈피의 물결〉. ‘블러드 소드’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그의 시그니처 스킬이었다. 여러 선술이 접목되어 단순히 검의 형태를 띠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휘두를 때마다 공간에 파장을 형성시켜 공격력을 증폭시키고, 원거리에 있는 적까지 격추시키는 기술.

하지만 대주교의 눈에는 어린아이의 장난으로만 비칠 뿐이었다.

그는 뒷짐을 쥐고, 발을 가볍게 굴렀다.

쿠우웅-

하지만 결과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오행산 전체가 위아래로 크게 출렁거린다 싶더니, 지면 위로 파문이 크게 그려지면서 퍼져 나갔다.

칸은 달려오던 그대로 튕겨 나 저만치 굴렀다. 기회를 엿보던 빙왕과 빅토리아도 단번에 쓸려 나갔다.

먼지구름이 자욱하게 퍼지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공간이 휘어지기까지 했다.

그 속에서, 대주교는 삐거덕대는 손발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아직 육체가 익숙해지질 않아서 그런가, 힘이 쉽게 제어되질 않는군.』

이래서 더더욱 허물의 힘이 필요했던 것인데. 대주교는 가볍게 혀를 찼다. 그가 바라던 것은 단순한 신격의 획득이 아니었다. 영혼에 새겨진 저주를 씻어 낼 수 있는 힘이었다.

하지만 오랜 준비는 단번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으니. 없어진 허물을 대신할 만한 게 과연 있을까, 있다면 이제는 어느 얼굴의 잔재를 찾아야 하는 걸까, 골치가 아파 왔다. 그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으므로.

‘아니면 정말 그들의 힘이라도 끌어와야 하나.’

그러다 대주교는 발 구름으로 튕겨 난 이들 중에, 이런 골칫거리를 안겨 준 녀석이 없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다시 뒷짐을 쥐면서 고개를 위로 들었다.

공기가 다시 한 번 더 움직이면서 뿌연 먼지구름을 치우고, 저 높은 상공에 불의 날개를 한껏 펼치며 떠올라 있는 연우를 드러냈다.

그리고. 대주교는 어느새 수백 개에 달하는 여의봉의 조각들이 크게 원을 그리면서 자신을 에워 싸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제기가 부서지면서 나눠진 것들. 소유주는 어느새 연우로 바뀌어져 있었다.

『이것으로 날 봉인이라도 하겠다는 거냐? 재미있구나!』

대주교는 가볍게 웃음을 터뜨리면서 다시 한 번 더 한 발을 내디뎠다. 비록 작은 도일의 몸을 하고 있지만, 마치 거인이 움직이는 것처럼 어마어마한 존재감이 발산되었다.

하지만.

울컥!

대주교는 연우에게로 쇄도하려다 말고 도중에 걸음을 멈췄다. 입가를 따라 핏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런. 역시 무리인가.』

영육 불일치. 대주교라는 거대한 영혼을 담기엔, 도일이라는 그릇은 아직 불완전하기만 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억지로 욱여넣었으니.

아니, 그나마 도일이었으니 이 정도라도 버틴 게 아닐까. 영적인 능력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도일 같은 체질은 절대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휘휘휘-

그때, 대주교를 에워싸고 있던 여의봉의 조각들이 돌개바람을 그리기 시작했다.

[72선술-봉(封), 인(印)]

콰콰쾅!

조각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다양한 선술이 접목되었고, 부도 어느 새 공간을 열고 나타나 마법을 더했다.

폭격이 수도 없이 가해졌다. 이대로 오행산이 무너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충격이 전해졌지만.

슥-

대주교는 뒷짐을 쥐고 있던 손을 하나 풀어 옆으로 휘저었다. 그러자 마치 커튼을 옆으로 치우는 것처럼, 폭격을 일으키던 조각들이 그대로 옆으로 떠밀려서 다른 곳에 작렬했다.

직접 두 눈으로 봐도 말도 안 되는 신기였다.

『이런 것은.』

그리고 다른 왼손을 가볍게 말아 쥐면서.

『이렇게 하는 것이라네.』

허공에다 쭉 내뻗었다.

콰아아앙!

마기가 주먹 끝에 뭉쳤다가 터졌다. 폭발은 바로 연우의 코앞에서 일어났다.

몸뚱이를 패대기치는 듯한 충격. 연우는 불의 날개로 몸을 보호한 뒤에야 겨우 버틸 수 있었다. 부가 만든 수십 겹의 배리어도 일제히 터져 나갔다.

대주교는 강해도 너무 강했다. 어떻게 익숙지 않은 몸으로 저런 힘이 가능한 거지?

순간, 머릿속으로 무왕과 여름여왕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예상했던 대로 그는 그들과 견줄 수 있을 만한 강자였다. 진짜 육체였다면 지금쯤 자신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정우는…… 대체 이런 녀석을 상대로 어떻게 싸웠던 거지?’

바닥으로 추락하던 중에, 가까스로 불의 날개를 복구시키며 크게 패를 치면서 균형을 다잡았다. 그리고.

팟!

블링크를 발동, 어느새 대주교 앞에 나타났다. 동시에 잔뜩 뭉친 검은 오러를 폭발시켰다.

콰르르릉-

불의 파도가 가진 파괴력은 대주교의 간담도 서늘하게 만들 정도였다. 가까스로 몸을 크게 돌리면서 폭발에서 벗어난 그의 얼굴에는 놀라움이 번졌다.

『독식자, 독식자 하더니 듣던 것보다 훨씬 대단하구나! 여섯 신성? 어찌 그따위 것들과 그대를 묶을 수 있을까!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내 길을 막았다고 할 자격이 되지. 암. 그렇고 말고.』

대주교는 주먹을 가볍게 펴서 손날을 만든 다음,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어디, 이것도 막을 수 있나 한 번 볼까?』

손날이 빠르게 허공을 가로질렀다. 그럴 때마다 공간이 단절되면서 연장선상에 있던 것들이 모조리 쓸려 나갔다.

퍼퍼펑-

연우는 검은 오러로 맞대응하면서 대주교의 손속을 막아 나갔다. 동체 시력으로 도저히 따라잡기 힘들 만큼 빠른 공격이었지만, 용마안과 초감각, 그리고 시차 괴리가 둘 사이의 차이를 어느 정도 메워 주었다.

그래도 우위는 대주교 쪽에 있었다. 허물을 삼키면서 이전보다 월등하게 강해졌다지만. 그래도 아직 72선술의 묘리와 제천류를 제대로 답습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팽팽한 접전이 벌어지는 사이.

팟!

연우 뒤쪽으로 그림자가 활짝 열리면서 권속들이 튀어나왔다.

샤논은 본 드래곤에 올라탄 채로 드높은 상공으로 올라가, 포이즌 브레스를 뿌려 댔다. 한령과 레베카는 각각 사각지대를 노리면서 대주교의 허점을 노렸다.

그리고 부는 손가락을 튕기면서 허공을 따라 갖가지 마법진을 그렸다. 활짝 열린 공허를 따라, 마법 폭격이 쏟아졌다.

연합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그 전력.

콰콰콰콰-

『참 재미난 것을 부리는구나.』

하지만 대주교는 산보라도 나온 것처럼 여유로웠다.

다시 한 번 더 발을 구르자 갑자기 지면이 높게 치솟으면서 가까이 접근하려던 본 드래곤의 행로를 가로막았다.

녀석이 균형을 잡기 위해 주춤하는 사이, 대주교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손바닥을 활짝 펼치며 허공을 강하게 두들겼다.

쾅!

대기가 떠밀리는 듯한 모습과 함께 본 드래곤의 오른쪽 날갯죽지가 그대로 터졌다.

크어어-

거체가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추락하자, 샤논이 높이 뛰어 빈틈을 노리려 했다.

하지만.

『거긴가?』

대주교는 검지와 중지만 펴면서 허공에다 선을 슥 그었다. 그러자 공간을 따라 단층이 생겨나면서 샤논의 몸이 잘려 나갔다.

「말도 안……!」

그 말이 끝이었다. 샤논은 그림자가 되어 확 하고 흩어져 사라졌다.

『우선 하나.』

대주교는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마침 목을 갈라 오던 비그리드를 오른손으로 튕겨 냈다.

챙!

그렇게 고정된 자세 그대로, 몸을 옆으로 돌리면서 왼손을 뒤쪽으로 뻗었다. 그러자 그의 측면을 노리던 두 개의 검이 마치 자석처럼 손바닥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레베카와 한령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두 개 추가해서 셋.』

왼쪽 주먹을 꽉 쥐었다.

퍼걱-

명검이라 할 만한 검들이 부서졌다. 파편이 허공으로 튀는 가운데, 마기가 다시 한 번 더 폭발하면서 레베카와 한령을 날려 버렸다.

익숙지 않은 몸이라면서 벌써 셋이나 되는 권속들을 제거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대주교는 마지막 남은 부가 있는 쪽으로 손가락을 튕겼다.

탁!

〈공간 단절〉. 공간이 일그러지면서 허공에 맺혀 있던 인페르노 사이트가 사라졌다. 주변의 모든 공간을 그의 색으로 칠하면서 외부로부터의 개입을 일절 차단시킨 것이다.

『좋은 권속들을 두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부질없을 뿐이지.』

대주교는 여전히 오른쪽 손날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연우를 돌아보면서 싱긋 미소를 지었다.

『안 그런가?』

쾅!

결국 대주교가 다시 휘두른 주먹에 연우는 모든 스킬들이 부서지면서 저만치 밀려 나야만 했다.

쓸려나간 자리로 긴 고랑이 남았다. 비그리드를 쥐고 있는 손바닥이 잔뜩 찢어져 피가 뚝뚝 떨어졌다.

커도 너무 압도적으로 큰 격의 차이.

아홉 왕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절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너무 커다란 성벽을 만난 듯한 기분이었다.

『전부 포기하게. 자네들로는 날 못 이겨. 그래도 내 한 가지 제안을 하지. 주교의 자리를 주마. 천마를 뫼셔라.』

대주교는 도일의 얼굴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뒷짐을 졌다.

『아니. 내가 천마의 또 다른 얼굴이 될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다면. 이 자리가 곧 너의 것이 될 테니. 죽은 교도들의 아쉽긴 하지만. 그대들로 그들의 빈자리를 채운다면, 이 역시 교단의 성세에 있어 큰 축복이 아니겠는가?』

대주교는 간간이 의식을 차리면서 지켜봤던 연우와 칸 등이 마음에 들었다. 진심으로, 뜻한 대로 일이 풀린다면 차기 대주교 자리를 그들에게 내어 줄 생각도 있었다.

물론, 그런 말에 혹할 연우가 아니었다.

「……저 미친놈이 대체 뭐라고 지껄여 대는 거야.」

「광신도들의 수장이니까. 그나저나 상대가 너무 강합니다. 아홉 왕 중에서도 유일하게 성장을 하는 괴물이라더니. 그 말이 맞는 듯합니다.」

샤논과 한령이 어느새 연우의 뒤편으로 나타나 중얼거렸다. 언데드라는 체질 덕분에 죽진 않았지만, 그래도 존재가 소멸할 뻔했을 정도로 타격을 입어 영체가 많이 흐려져 있었다.

조용히 허공 위에 나타난 레베카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지만, 굳은 얼굴이었다.

‘제천류를 수습할 수 있다면. 허물의 힘을 흡수한다면 따라잡을 수 있을까?’

연우는 자신과 대주교의 격차를 빠르게 체크했다. 대주교는 현재 익숙지 않은 도일의 몸으로 무리를 하고 있는 상태. 약점을 공략할 만한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곧 결론이 나왔다.

‘……있다.’

연우는 다시 대주교와 싸우기 위해 자세를 다잡으려 했다. 온몸이 아프다면서 아우성이었지만, 억지로 검을 들었다. 그러다 손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이를 악물어야만 했다.

‘하지만 당장은 제천류를 담을 수가 없어. 그렇다면 권능을 발동시키면? 담을 수 있을까?’

대답은 금방 나왔다.

아니.

그렇다면?

‘다른 권능들도 전부 받아들여서 힘을 일시적으로 증폭시킨다면.’

이때의 대답은.

‘담을 수 있다.’

그 순간, 연우의 생각을 읽은 신과 악마들이 일제히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타나토스가 기대 어린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네르갈이 자신의 권능을 살펴볼 것을 권합니다.]

[오시리스가 기대합니다.]

[아레스가 기대합니다.]

[나타태자가 기대합니다.]

[비마질다라가 당신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

[아가레스가 천계의 광장에서 자신의 것에 눈독 들이지 말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모든 신의 사회가 무시합니다.]

[모든 악마의 사회가 무시합니다. 당신에게 어서 결단을 내릴 것을 권고합니다.]

여태껏 연우에게 권능을 제안했던 신과 악마들의 메시지가 쉴 새 없이 떠올랐다.

[현재 가능한 권능 수: 925개]

좀 전보다 더 많이 오른 권능들이 눈에 아른거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둘씩 차오르는 목록들. 저것을 받아들인다면? 어떻게든, 일시적으로나마 대주교를 상대할 수 있을 힘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다면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하아…….』

연우는 숨을 크게 고르면서 육체의 감각을 깨우고서는.

『흡!』

크게 호흡하면서 비그리드를 세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신의 인자를 한껏 개방했다. 벤티케에게 강신을 시도하던 포세이돈을 상대했을 때처럼. 자신과 연결되거나, 연결되고자 희망하는 채널링을 모두 오픈했다.

그 순간, 900여 개체에 달하는 수없이 많고 거대한 존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연우에게로 손길을 뻗쳤다.

[타나토스의 권능, ‘수확의 밤’을 획득했습니다.]

[네르갈의 권능, ‘호구별성(戶口別星)’을 획득했습니다.]

[비마질다라의 권능, ‘구비다라’를 획득했습니다.]

[나타태자의 권능, ‘만병의 왕’을 획득했습니다.]

……

[너무 많은 권능을 획득하고 있습니다. 육체가 버티지 못합니다. 예비 사도 계약을 중단할 것을 권고합니다.]

[경고! 너무 많은 권능을 획득하고 있습니다. 육체가 붕괴할 우려가 있습니다.]

[경고! 너무 많은 권능을…….]

권능은 신과 악마의 신명(神名) 혹은 신위(神位)를 상징하는 힘. 그런 것들을 받아들인다면, 당연히 신력이 고스란히 담길 수밖에 없었다.

콰드득, 콰득-

몸속 곳곳에서 상성이 맞지 않는 신력들이 충돌했다.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는 욕심 많은 신력은 앙탈을 부렸다. 수많은 목소리가 귓가를 왱왱 울렸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양의 힘이 체내를 가득 채웠다. 버프 효과가 수도 없이 겹쳐지면서 비그리드가 미친 듯이 울어 댔다.

그 위에다.

연우는 용종으로서의 권능까지 활짝 열면서 어렴풋이 깨달은 제천류를 섞었다.

그리고 있는 힘껏 비그리드를 아래로 내리쳤다.

[3차 용체 각성]

[권능 전면 개방]

[불의 파도]

[제천류-뇌벽세]

콰르르릉-

그 순간, 하늘에서부터 어마어마한 양의 신력들이 잔뜩 응축된 불벼락이, 대주교가 있는 장소로 떨어졌다.

오행 중 토(土)의 기질을 변화시켜 뇌(雷) 속성으로 풀어낸 뇌벽세(雷劈勢).

그 힘은 대주교도 섣불리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강렬했다.

결국 뇌벽세는 대주교의 몸을 크게 가로지르면서, 그나마 남아 있던 오행산의 허리를 완전히 깎아 무너뜨려 버렸다.

『말도 안 되는……!』

우르르르-

대주교는 영력을 한껏 방출시켜 뇌벽세에 맞대응해 방향을 겨우 옆으로 틀 수 있었지만, 그래도 전신이 화상으로 뒤덮이는 중상을 입어야만 했다.

『……이런 이단자 놈들이! 감히! 내게!』

대주교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마기를 잔뜩 끌어모았다. 이래서는 겨우 마음에 들었던 육체가 망가질 우려가 컸지만, 자신을 이딴 꼴로 만든 자를 죽이지 않고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무슨……?』

이상하게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대주교가 영문을 몰라 커진 눈으로 연우를 노려보는데.

『미안하지만, 끝났어.』

연우는 모든 힘을 소진해 바닥에 주저앉아 있으면서도, 대주교에게 비웃음을 날렸다.

대주교는 반사적으로 뒷덜미를 매만졌다. 대체 언제 난 건지 아주 작지만, 깊숙한 상처가 있었다. 육체에 별다른 해는 끼치지 않을 상처.

문제는 상처의 부위였다.

송과선. 육체와 영혼을 연결시켜 주는 고리가 끊어진 것이다.

『대체 언…… 제?』

대주교는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칸이 숨을 헐떡이면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오른쪽 손목에서 흘러내린 핏물이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고 있었다.

〈혈탄(血彈)〉. 피를 잔뜩 뭉쳐 암기처럼 던지는 스킬. 대주교가 뇌벽세에 정신이 팔린 사이, 칸이 재빨리 손목의 동맥을 끊어 탄지를 날린 것이다.

애당초 이걸 노린 것이었나?

대주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더 이상 내뱉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졌다. 육체를 겨우 붙들고 있는 선이 끊어졌으니, 영혼이 원래 있던 곳으로 튕겨 난 것이다.

털썩-

그리고. 연우도 그 모습을 마지막까지 지켜본 뒤에야, 겨우 쓰러질 수 있었다.

파직, 파지직-

그의 몸을 따라, 신력이 잔뜩 섞인 노란 스파크가 쉴 새 없이 튀어 올랐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