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퀴네에 제작 (8)
무왕은 가볍게 혀를 찼다.
“내 방침, 알지?”
“예. 알고 있습니다.”
무왕은 언제나 외뿔부족을 운영하는 데 있어 세 가지 원칙을 앞세웠다.
무간섭. 무개입. 무관용.
간섭을 받지 않는다. 개입을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중 하나라도 불발될 시, 절대 관용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외뿔부족은 8대 클랜들 간에 벌어지는 아귀다툼 속에서도 홀로 고고하게 서 있을 수 있었고, 지금까지 계속 성세를 더해 나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 연우가 탑에 커다란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지금.
자칫 연우의 배경이나 다름없는 외뿔부족까지 휘말릴 수도 있게 된 것이다.
특히 마군과 마법 연합은 아예 노골적으로 외뿔부족을 겨냥하는 듯한 발언도 서슴지 않고 있었다. 용병 연맹도 여차하면 싸우겠다는 의지를 불사르고 있었다.
만약 독식자와의 싸움에 개입을 하려 한다면, 아무리 외뿔부족과 무왕이라고 하더라도 결사 항쟁을 불사하겠노라고.
거기다 혈국과 블랙 드래곤의 연맹은 아예 무왕이 나서 주었으면 하는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아니, 애당초 아직 이렇다 할 세력도 없는 연우와 손을 잡겠다고 나선 것부터가, 무왕을 끌어들이기 위한 장치라는 것은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무왕은 그런 곳에 발을 들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레드 드래곤과의 싸움에 나타났던 것도, 단순히 ‘무관용’의 원칙에 따라 일족을 해한 범인을 추격하던 중에 전투에 휘말리면서 그런 것일 뿐.
그는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으스대는 꼬락서니를 언제나 비웃음으로 지켜보는 입장이었다.
그가 바라보는 곳은 그런 진흙탕 같은 곳이 아니었다.
더 높은 곳.
올포원.
자신의 머리 위에 올라서서 오만하게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는 그놈을 끄집어 내리는 것이 그의 유일한 관심사였다.
무왕은 바로 그 사실을 다시 일러 주러 온 것이다.
앞선 두 제자를 내보내고, 이제야 겨우 찾아낸 제자였다. 그리고 어느 정도 가능성도 엿보였다. 허구한 날 사고를 치는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자신도 어린 시절에 그랬으니 못 본 척 넘기기도 했다.
하지만 도가 지나쳐서 자신에게도 흙탕물을 튀기려고 한다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그건 연우도 익히 잘 알고 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무왕은 스승이기에 앞서, 일족을 위해서 친동생도 가차 없이 내쳤던 왕이다. 그의 입장을 모를 리 없었다.
아니, 그런 점을 떠나서라도.
“이 일은 제 일입니다.”
복수는 자신의 손으로 해내야만 했다.
“전에도 이렇게 똑같이 말한 것 같다만. 뭐, 됐다. 잘 다녀와라. 고생 많겠지만.”
무왕은 그 말을 하고 다시 표홀히 자취를 감췄다.
연우는 그래도 어디선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스승에게 고개를 숙이고, 포탈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팟-
곧 빛무리가 세상을 가득 물들이면서 시야를 반전시켰다.
* * *
[히든 스테이지, ‘타르타로스’에 입장했습니다.]
“공기가 너무 퀴퀴한데.”
“영압도 이지러지고 있어. 신격들이 생활하는 곳이라 그런가?”
“여기가 타르타로스…….”
일행들은 타르타로스에 입장하자마자 하나같이 인상을 찡그렸다.
텁텁한 공기. 오싹한 기분. 어깨를 짓누르는 중압감까지.
산 자는 환영받지 못할 장소이며, 격을 터득하지 못한 필멸자에게는 금기의 땅이나 다름없는 곳.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곧바로 육체와 영혼이 분해될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칸과 도일은 재빨리 선술을 발동시켜 압박에서 벗어나는 한편, 빅토리아는 아나스타샤가 특별히 챙겨 줬던 아티팩트를 발동시켜 일행들이 있는 곳에다 둥근 보호막을 설치했다. 여기다 크로이츠까지 성검 줄피카르를 바닥에다 꽂으면서 축문을 외워 다른 보호막을 덧대었다.
처음 타르타로스에 도착했을 때, 얼굴이 파랗게 굳던 헤노바도 그제야 한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러다 주변을 둘러보더니 연우에게 물었다.
“그런데 곧바로 명왕의 신전으로 간다더니. 어디야?”
연우가 보기에도 주변은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곳곳에 남은 얼마 안 되는 흔적들만이 아주 오래전에 격전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연우는 스크롤을 제작한 브라함을 돌아봤다. 하지만 브라함도 사정을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난 자네가 일러 준 좌표대로 찍었다네.”
연우는 자신이 잡았던 좌표가 혹시 틀렸나 다시 복기를 해 보았다. 하지만 틀린 곳은 없었다.
[비마질다라가 익숙한 전장의 광경에 흡족한 미소를 띱니다.]
[케르눈노스가 가만히 당신을 주시합니다.]
[페르세포네가 어서 남편을 찾을 것을 종용합니다.]
채널링이 연결된 신들의 메시지에 살짝 미간이 찌푸려질 무렵.
“하데스의 마지막 남은 영역이 신전이었다고 했지?”
브라함은 하늘의 운행을 가만히 살피다가 물었다.
“예.”
“그렇다면 성역이란 뜻이군.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보통 두 가지야.”
“무엇입니까?”
“첫째는 자네가 재료를 구하러 다니는 동안, 하데스가 결국 망했을 경우.”
[페르세포네가 불같이 화를 냅니다!]
“윽!”
그때, 여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도일이 갑자기 머리를 쥐어 싸매더니 바닥에다 무릎을 꿇었다.
“왜 그래?”
칸이 놀라 그를 부축하려는데, 순간 도일이 세게 칸의 손길을 뿌리치면서 고개를 번쩍 들었다.
순간, 도일이 내뿜는 기백에 일행들은 한 발자국 물러섰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보호막이 크게 흔들렸다.
도일의 눈동자가 짙은 녹색으로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감히 내 남편의 죽음을 논해? 영락한 반편이 따위가?”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앙칼진 목소리. 신력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페르세포네가 직접 도일의 몸에 강신해서 진언(眞言)을 내뱉고 있었다.
“페르세포네로군.”
브라함은 눈을 가늘게 뜨며 머리카락이 빳빳하게 일어선 도일을 바라봤다. 자신을 비하하는 말을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눈동자는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브라흐마, 입조심하지 않으면 다……!”
“입조심하지 않으면 뭐, 어쩔 건가? 나에게 천벌이라도 내리려고? 어떻게 말인가? 거기 감옥 같은 98층에 갇혀서?”
페르세포네가 살벌한 기세를 뿜어내는데도 브라함은 뭐 어쩔 거냐는 듯이 비웃음을 던졌다.
그동안 세샤를 돌보느라 자상한 면모만 보여 줘서 그렇지, 사실 그는 ‘추방자’라는 별칭을 따로 갖고 있을 정도로 시니컬한 삶을 살았던 존재였다. 특히 98층에 얽매인 초월자들에 대한 냉소는 예전보다 오히려 심해진 상태였다.
“남편이 걱정되거든 자네야말로 가만히 발 닦고 처앉아서 이쪽 보고 있기나 해.”
브라함은 더 이상 페르세포네를 상대하기 싫다는 듯, 도일의 머리에다 손을 얹었다.
그러자 빳빳하게 일어났던 머리카락이 거짓말처럼 가라앉으면서, 눈동자에 맺혔던 녹색 안광도 금세 사라졌다.
도일은 잠시간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곧 쓴웃음을 지으면서 브라함에게 말했다.
“말씀이 심하셨어요, 브라함.”
“왜? 자네한테 염병하나 보지?”
도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비록 모신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해도, 그는 페르세포네의 사도였으니까.
하지만 상대 역시 한때 신격이었던 존재. 이미 연우로부터 브라함의 사연에 대해서 대충이나마 들었던 그로서는 브라함에게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무시해.”
브라함은 도일에게 그렇게 못을 박고, 가볍게 혀를 차면서 연우를 돌아봤다.
“하여간 평소에는 정숙하기로 유명하면서, 제 남편 이야기만 나오면 도끼눈이 되어서는. 쯧.”
연우는 오늘따라 브라함이 색다르게 보였다.
“말씀 못 하신 두 번째는 무엇입니까?”
“아, 그거? 간단하네. 하데스가 임의로 성역의 좌표를 뒤틀어 버린 거지.”
연우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렇단 말씀은?”
“어디선가 한창 전투가 벌어지고 있단 뜻이겠지? 아마 성역의 크기가 있으니 좌표를 크게 틀진 못했을 거야.”
연우는 다급하게 니케를 소환해서 하늘 위로 띄웠다.
니케는 크게 날갯짓을 하면서 상공으로 비상했다. 크게 원을 그리면서 주변을 살피던 니케는 곧 저 멀리서 어렴풋하게 어둠이 크게 일렁이는 게 보였다.
『주인! 저기 뭐가 있어!』
연우는 곧바로 니케의 시야를 공유했다.
타르타로스의 하늘은 언제나 어둑하고 잿빛으로 가득해서 거리를 가늠하기 힘든 게 흠이었다.
[용마안]
그래도 결을 살펴보니 마치 공간이 통째로 출렁이는 듯한 착각과 함께 무언가가 언뜻 비치고 있었다.
‘거신.’
처음 타르타로스에 입장했을 때 봤던 것과 비슷한 티탄 여러 명이 무언가와 크게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어둠이 갈라지면서 벼락이 내리 꽂히고, 땅이 갈라지면서 불기둥이 치솟고 있었다. 그리고 공간이 갈라지면서 쏟아지는 건, 어떻게 표현하기 힘든 괴상망측하게 생긴 괴물들이었다.
도저히 인세에서 벌어지는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광경. 상전 벽해의 전투였다.
문제는 승세가 어디로 기울고 있는지를 전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차라리 하데스 쪽이라면 좋을 테지만. 연우는 왠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승산이 이쪽에 있다면 왜 굳이 좌표를 뒤튼단 말인가.
『그런데 너무 멀어!』
니케는 대략적으로 거리를 가늠하고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신수인 자신이니 겨우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이지, 일반 플레이어들의 걸음으로는 며칠이 지나도 도저히 다다를 수 없을 만큼 너무 먼 거리였다.
‘불의 날개와 블링크, 바람길이라면…… 어떻게든 좁힐 수 있어.’
연우는 있는 힘껏 마력회로를 돌렸다.
[천익기공]
[마력회로-총출력(總出力)]
“브라함, 천천히 와 주십시오.”
[바람길-질풍]
콰아앙-
연우는 브라함의 대답도 듣지 않고, 바람길 중에서 가장 빠른 루트를 밟아 몸을 날렸다.
뒤에서 칸과 도일이 뭐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폭음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브라함도 연결 고리를 통해 저쪽의 사정을 알았을 테니, 파티원들에게 잘 설명을 해 줄 터였다.
무엇보다. 칸과 도일, 빅토리아 등은 모두 선술이나 마법 같은 술법 계통에 능통한 사람들이었다. 연우를 뒤쫓아 올 수 있는 사람은 금세 쫓아올 터였다.
쐐애애액-
연우는 그렇게 바람길을 타고 달리면서 잇달아 블링크를 전개했다. 그림자 속에 있던 부가 버프를 한가득 실었다.
* * *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쿠쿠쿵-
연우는 저 멀리, 어둑어둑한 하늘을 가르면서 지상으로 갖가지 괴물들을 쏟아 내는 티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나, 둘…… 못해도 열아홉.’
장장 수 킬로미터나 되는 거신이 날뛰는 것만 해도 충격적인데, 그런 것들이 한데 뒤엉켜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은 말을 잃게 만들었다.
공포에 질린다는 느낌도 없었다.
너무 압도적인 차이가 나서 그럴 실감조차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콰르르릉-
티탄들 사이로 바쁘게 움직이면서 검을 휘둘러 대는 하데스의 모습은 너무나 위태로워 보였다.
칼을 휘두를 때마다 어둠이 핏물처럼 튀고, 산맥만 한 큰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등, 티탄을 압도하는 존재감과 신위를 선보이고 있었지만.
그래도 왠지 모르게, 연우의 눈에는 하데스가 격랑 위에 표류한 난파선처럼 비쳐졌다.
아주 기나긴 세월 동안, 다른 도움 없이 홀로 티탄을 막아서면서 쌓인 피로가 여기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연우는 주변도 재빠르게 살폈다.
하데스가 전투를 벌이는 하늘 아래, 거대한 성벽을 따라 한창 공성전이 벌어지는 중이었다.
디스 플루토의 여러 하급 신격들은 티탄들이 몰고 온 여러 괴물들을 상대로 분투를 벌이고 있었다.
성벽을 넘으려는 녀석들을 어떻게든 밀어내고, 목을 쳤다. 그들의 얼굴에는 어떻게든 마지막 남은 성역을 지켜 내고 말겠다는 결사 어린 의지가 역력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바람과 다르게 전황은 좋지 못했다.
이미 성벽 주변은 온통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은 괴물들의 사체들로 산등성이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도 하늘과 지상에서는 공간이 열리는 족족 괴물들이 대거 쏟아지고 있었으니.
그것들은 동료들의 사체가 망가지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어떻게든 꾸역꾸역 성벽을 넘어서고자 했다. 때로는 사체를 방패막이로 쓰거나, 마력을 가득 실어 투석기처럼 성역 안쪽으로 던져 넣기도 했다.
반면에 디스 플루토는 이미 오랜 싸움으로 고된 기색이 역력했다. 몇몇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괴물들과 함께 성벽 밖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다만, 특이한 점은 디스 플루토 쪽에 신격을 갖추지 않은 자들도 더러 섞여 있다는 점이었다. 척 보기에도, 연우와 같은 플레이어로 보이는 자들.
어떻게 여기에 다른 플레이어들이 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연우는 일단 사소한 의문은 뒤로하고,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시차 괴리]
‘저대로는 위험해. 임시라도 괴물들을 막을 만한 방법이 없나?’
연우는 인지 영역을 넓게 퍼뜨렸다. 다행히 이곳에 가득한 신격들은 그들에 비해 미약하기만 한 연우에게 일절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그것이 연우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그때.
‘저놈이다.’
연우의 초감각에 유독 한 녀석이 사로잡혔다. 티탄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는 데다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갖춘 격만큼은 티탄에 못지않은 존재.
녹색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린 여인이었다. 따분하다는 표정으로, 성역을 둘러싼 결계만을 집요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여인이 든 수정구를 따라 검은 광채가 감돌았다. 괴물들과 똑같은 기운. 아무래도 저 수정구가 소환 신물인 것 같았다.
‘될까?’
연우는 느릿해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수많은 가정과 연산을 거듭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실패.
무왕 급이라도, 아니, 최소한 아홉 왕 급이라도 되면 모를까. 지금 자신이 가진 힘으로 신격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긁어 부스럼만 만들 공산이 컸다.
신살(神殺)의 권능이라도 주어지면 또 모를까. 하지만 연우가 획득한 900여 개의 권능 중에도 신살은 없었다.
애당초 신과 악마들은 자신들을 해할 수 있는 것을 절대 하계에 내려 주는 법이 없었다.
결국 연우는 연산의 방향을 바꿔야만 했다.
‘수정구만 노린다면?’
그래도 성공 확률은 5%.
애당초 상대와 격의 차이가 너무 컸다.
그것을 메울 필요가 있었다.
‘미친 척하고 권능을 모두 깨운다면?’
자칫 겨우 가라앉힌 신열이 다시 발작할 위험이 컸지만, 지금은 당장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결과는 금방 나왔다.
15%.
‘많이 높아졌지만, 그래도 안 돼. 드래곤 킬러 때의 방식을 쓴다면?’
재생 스킬을 사용해서 몸이 망가질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20%.
이만하면 확률을 많이 올린 셈이었지만, 그래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때, 연우는 한 가지 생각에 미쳤다. 자신에게는 신과 악마들이 두려워한다는 무기가 있잖은가. 초월자들을 강제로 봉인시킨다는 신물, 신진.
‘여의봉의 조각이라면……?’
손을 활짝 펼쳤다. 마군을 쓰러뜨리고 획득한 조각들이 황금색 빛을 내며 손바닥 위를 뱅글뱅글 맴돌았다.
이윽고 연우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30%.’
탁!
연우는 달리던 그대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동시에 느려졌던 외부 시간이 다시 되돌아오면서.
[3차 용체 각성]
[권능 전면 개방]
콰드득, 콰득-
육체가 내외로 갑자기 부쩍 늘어난 힘을 버텨 내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틀리기 시작했다. 재생 스킬이 발동하면서 육체를 바로 잡아 내고, 여태 단절되었던 900여 개의 채널링을 강제로 타르타로스로 끌어왔다.
그리고 연우는 팽창한 힘을 전부 여의봉의 조각 쪽으로 쏟아부었다.
화아악-
[화안금정]
여의봉의 조각들이 환한 빛무리를 토해 내면서 웅웅 울어 댔다. 공명하듯이, 연우의 두 눈도 황금색 빛을 폈다. 화안금정. 미후왕의 눈이 용마안 위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여의봉의 조각들이 허공에서 춤을 추더니 차례대로 조립되기 시작했다.
찰칵, 찰칵-
곧 연우의 손아귀에 새로운 황금색 무기가 잡혔다. 대략 2미터 남짓해 보이는 기다란 길이를 가진 창대.
연우는 비그리드를 뽑아 주저 없이 창대의 끝에 고정시켰다. 비그리드의 손잡이와 창대의 홈은 거짓말처럼 딱 맞았다. 그리고 연우는 그것을 역수로 쥐면서 투창 자세를 갖췄다.
그사이에도 몸은 이리저리 뒤틀리고 있었다. 현자의 돌이 과열되고 있었다.
[드래곤 킬러]
[성화]
[제천류-화염륜]
화르륵-
비그리드의 끝에서부터 불길이 치솟았다. 제천대성이 천계를 불사를 때 사용했다는 마화(魔火)가 크게 피어나면서 성화와 뒤섞여 검붉은 신화(神火)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팟-
연우는 있는 힘껏 손에 들고 있던 장창을 내던졌다. 비그리드의 옵션이 작동하면서 이미 표적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었다.
“커져라, 여의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