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350화 (350/862)

25화. 퀴네에 제작 (10)

“큽!”

아스트라이오스는 자신을 거세게 밀어내는 힘에 헛바람을 들이키면서 크게 튕겨 나고 말았다.

순간, 그녀의 눈에는 불신이 단단하게 자리 잡았다.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새카맣게 타고 반쯤 날아가다시피 한 오른손이 자동으로 수복되고 있었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면이 뒤집히고, 대기가 뜨겁게 과열되고 있었다. 만약 오른손을 대가로 결계를 치지 않았다면? 몸의 일부가 날아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거지……?

기껏해야 필멸자에 불과한 플레이어. 아무리 날고 기어 봤자 백 년도 겨우 사는 벌레 따위가, 수만 년의 세월을 살아온 자신에게 이런 피해를 입혔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디스 플루토 소속의 강하다는 플레이어도 티탄인 자신에게 이런 피해를 입힌 적은 없었으니까.

아니, 딱 한 명이 있긴 했다.

귀창(鬼槍) 람.

그 녀석만큼은 예외이긴 했다.

하지만 하데스의 사도로서, 적극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신격으로의 탈각을 준비 중인 녀석과 일개 하계의 플레이어를 비교하는 건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아니, 그런 걸 떠나서, 필멸자가 초월자에게 상처를 입힌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신살의 권능을 손에 쥐었단 뜻이니.

여의봉을 지녔다고 한들, 증오스러운 제천대성의 힘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게 아니면 절대 불가능했다.

그래서 아스트라이오스는 자신이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했다.

데네브가 깨지면서 신력 운용에 이상이 생겨 발생한 해프닝일 뿐이라고.

이런 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더 신력을 가득 머금은 손길을 앞으로 내뻗었다.

〈별빛의 저주〉. 대상에게 강제로 자신의 신력을 입혀서, 절대 해소할 수 없는 독으로 남기는 그녀의 권능이었다.

이것이라면 저 귀찮기만 한 불길을 찢어 버리고, 여의봉과 이상한 검을 부숴서 녀석의 거슬리는 가면까지도 산산조각 내 버릴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콰르르릉-

연우는 다시 한 번 더 여의봉을 거세게 앞으로 내질렀다.

창대를 크게 비틀면서 생긴 원심력으로 불길을 안쪽으로 단단히 압축시키고, 그것을 단번에 터뜨리면서 폭발력을 몇십 배로 증가시키는 스킬.

[볼텍스(Vortex)]

패왕 벤티케가 한때 연우를 궁지로 몰아넣었던 시그니처 스킬이 전개되었다.

[이름을 가린 신이 〈올림포스〉의 신, ‘헤스티아’의 도움으로 당신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름을 가린 신이 당신이 펼친 스킬에 경악하며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이름을 가린 신이 자신의 이름을 드러냅니다.]

[포세이돈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메시지: 어떻게! 어떻게 네놈이 그 스킬을 쓸 수 있는 거지?]

[포세이돈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메시지: 당장 그만두지 못하겠느냐! 그것은 내가 사도에게 하사한 힘! 네놈 따위가 손을 댈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말……!]

[타르타로스의 특성이 적용되어 임시로 연결되었던 포세이돈과의 채널링이 차단되었습니다.]

연우는 권능을 전면 개방하면서 900여 개보다 더 많은 시선들이 따라붙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마 권능을 내어 준 신과 악마들에게 일정의 대가를 제공하고, 채널링을 임의로 공유받은 것이겠지.

그래도 별반 신경 쓰지 않았던 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신과 악마가 많을수록 추가할 수 있는 권능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중에 포세이돈도 섞여 있었던 모양이었다. 친누이인 헤스티아의 도움을 빌려서.

화로와 수호의 여신, 헤스티아는 연우에게 〈불씨의 처(處)〉라는 권능을 주었던 신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 포세이돈이 화를 내던 도중 채널링이 끊어져 버렸다. 천계의 채널링을 철저하게 단절시키는 타르타로스의 환경이 적용된 덕분이었다.

‘이왕이면 아예 다시 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채널링으로 연결된 신과 악마들이 당신의 안건에 대해 논의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투표가 진행됩니다.]

……

[만장일치로 포세이돈이 당신에게 접근할 수 없도록 하는 안건이 통과되었습니다.]

[포세이돈의 채널링이 영구적으로 블록 처리되었습니다.]

단지 생각만 했는데도 불구하고, 채널링으로 연결된 신과 악마들은 수호자 역할을 자처하면서 곧바로 포세이돈의 접근을 막아 버렸다.

아무래도 그들도 툭하면 훼방을 놓는 포세이돈에게 단단히 짜증이 났던 모양이었다. 아가레스도 이따금 그들을 귀찮게 하긴 했다지만, 그래도 연우에게는 호의적으로 대했기 때문에 그동안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연우는 내심 속으로 회심에 찬 미소를 흘리면서 여의봉을 잇달아 찔러 넣었다.

쿠르르, 콰쾅!

콰콰콰-

볼텍스가 작렬할 때마다, 아스트라이오스는 자꾸만 뒤로 밀려 나야만 했다.

찍어 누르겠다고 다짐했던 두 번째 충돌에서 다시 오른손이 박살 난 것도 모자라, 세 번 네 번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공격에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연우는 한번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끈질기게 창을 찔러 넣었다.

[검은 구비타라 - 현인의 눈]

[용마안]

[초감각]

화안금정을 바탕으로 더 또렷해진 용마안은 초감각의 세밀한 감각까지 끌어들이면서, 비마질다라의 권능이 그려 내는 투로를 그대로 질주했다.

그러다 보니 아스트라이오스는 계속 궁지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비그리드가 작렬하는 장소가 곧 신격을 위협하는 결이었으니.

여기에 더해.

전쟁의 악마들 중 최고위라 할 수 있는 비마질다라의 눈.

제천대성의 여의봉과 제천류.

명인 급에 다다른 검술 실력.

그리고 치밀하게 수많은 연산을 그려 내는 시차 괴리까지 추가되니.

아스트라이오스가 피할 수 있는 장소는 어디에도 없었다.

촤아악-

결국 뱀처럼 집요하게 아스트라이오스를 뒤쫓던 비그리드가, 단번에 사선 방향으로 튀어 올랐다.

아스트라이오스는 본능적으로 머리를 뒤로 뺐지만, 이미 비그리드는 녀석의 왼쪽 눈을 크게 가로지르고 지나간 뒤였다.

“꺄아아악!”

비명 소리가 크게 울렸다.

[〈티탄〉의 신, ‘아스트라이오스’에게 피의 꽃을 심는 데 성공했습니다!]

[신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습니다.]

[신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습니다.]

……

[누구도 쉽게 이루지 못할 업적을 이뤄 냈습니다. 추가 공적치가 제공됩니다.]

[공적치를 20,000만큼 획득했습니다.]

[추가 공적치를 30,000만큼 획득했습니다.]

[칭호 ‘신을 다치게 한’이 추가되었습니다.]

……

[아티팩트 ‘비그리드-???’의 숨겨진 조건을 일부 달성하였습니다. 새로운 정보가 제공됩니다.]

“감히! 감히이이!”

아스트라이오스는 비명을 질렀다. 신력이 움직이면서 망가진 왼쪽 안구를 복구하려 했지만, 이상하게 자꾸만 불발되었다.

아니, 오히려 그럴 때마다 더 끔찍한 고통이 뒤따랐다.

그러다 아스트라이오스는 뒤늦게 깨닫고 말았다. 자신의 왼눈에서부터 이상한 뭔가가 피어나 신격에까지 다다랐다는 것을.

그것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악마의 씨앗이었다.

피의 꽃.

검은 구비타라가 영혼에 새겨진 것이다.

아주 오래전. 탑이 지금의 질서를 잡기도 훨씬 이전이었던 신화 시대에, 모든 신과 악마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존재.

아수라왕 비마질다라의 권능이 왜 여기서 발현된단 말인가!

그녀가 알기로 비마질다라는 절대 하계에 관심을 두지 않는 고고한 존재였다.

아니, 정확하게는 약자에 대해서 철저한 무시와 경멸로만 일관하는 자였다.

그만큼 눈도 너무 높아 여태 오랜 세월 동안 사도를 들이지 않았던 것으로도 유명한데.

한낱 플레이어에게, 그것도 사도도 아닌 가계약자에게 최고의 권능을 선물했다고?

그 뜻은 하나였다.

신과 악마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약조된 금기(禁忌)를 필멸자에게 내렸단 뜻.

신살이라는 너무 위험한 무기가, 녀석에게 쥐어져 있었다.

‘안 돼……! 이대로는 위험하다!’

아스트라이오스는 난생처음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이전에도 비슷하게 방심을 하다가 하데스의 사도, 람에게 위협을 당한 적이 있었다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더 위험스러웠다. 타르타로스에 갇히고서도 느끼지 못한 ‘목숨’의 위협이었다.

하지만 몸은 그녀의 바람과 달리 쉽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어느새 신격을 침범한 구비타라가 탐욕스럽게 그녀의 영혼을 갉아먹고 있었다.

체내에 천천히 스며들어 아주 조용히 목숨을 앗아 가는 독처럼. 어느새 몸이 너무 무거워졌다.

그리고 구비타라가 삼킨 신력만큼. 연우는 더 강한 버프를 안으면서 아스트라이오스의 오른팔마저 잘라 버렸다.

푸화악!

오른팔이 어깨에서 분리되면서 피분수가 뿌려졌다. 흩날리는 핏방울이 너무 반짝여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광경. 반면에 아스트라이오스는 이제 절규를 내뱉고 있었다.

우웅, 웅-

‘할 수 있다.’

연우는 아스트라이오스를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자신감을 강하게 얻었다.

이번 공격으로 확신을 얻었으니.

아스트라이오스는, 과거 올림포스의 신들과 주도권을 두고 다퉜다던 티탄의 일족은 아홉 왕보다 약했다.

여태 플레이어들을 굽어다 볼 수 있었던 것은 현저히 격이 높아서였을 뿐.

하지만 그 격의 차이를 허물 수 있는 무기가 주어지는 순간. 녀석들은 단번에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신격만 믿고 자기 단련을 게을리해서 그만큼 실력이 퇴보한 것일 수도 있고, 애당초 그들에게는 플레이어들이 모르는 다른 비밀이 있는 건지도 몰랐다.

하지만 연우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신을 잡을 수 있다면 잡는다.

그것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여의봉을 강하게 움켜쥐면서, 있는 힘껏 볼텍스를 전개했다. 마력이 소진되는 것은 걱정할 필요 없었다. 녀석에게 빼앗은 신력만 해도 엄청났으니까.

빼앗은 마력으로 원주인을 사냥한다?

이 얼마나 달콤한 말인가.

그렇게 비그리드는 다시 검은 오러를 토해 내면서 녀석을 계속 궁지로 내몰았다.

오른팔 뒤에는 왼팔이, 그다음에는 왼쪽 다리가, 오른쪽 다리가 순서대로 잘려 나가면서 비루한 몸뚱이만 바닥을 나뒹굴었다.

“아, 아아……!”

타르타로스를 호령하던 티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비참해진 몰골이었다.

이런 수모를 겪은 게 언제였더라? 아스트라이오스의 기억으로는 올림포스에서 내쫓겨 타르타로스에 갇힐 때뿐이었다. 그 뒤로도 하데스에게 계속 감시를 당했었다지만, 그마저도 천 년 전부터는 전세가 역전되어 티탄이 언제나 우위였다.

하지만 연우가 개입하면서 모든 게 이지러지고 말았다.

성역을 침범하려던 괴물들은 모조리 쓸려 나가고, 자신마저 이런 꼴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하데스마저 갑자기 다른 티탄들을 몰아붙이기 시작했으니.

승세는 단번에 명왕의 신전 쪽으로 기울고 말았다.

다 이겼다고 생각했던 전쟁이. 이제 타르타로스를 차지했다고 여겼던 전투가 엉망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쐐애액-

비그리드와 여의봉은 다시 볼텍스를 일으키면서 아스트라이오스의 목젖으로 치달았다. 신살이라는 업적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결국.

아스트라이오스는 끝내 내뱉고 싶지 않았던 이름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티, 티폰! 너의 거래 제안을 응낙하겠어! 그러니! 날! 날 구해 줘!”

아스트라이오스는 하늘을 보면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제발! 티폰!”

비그리드의 칼끝이 아스트라이오스의 목젖을 꿰뚫으려는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부터 한 줄기 빛의 기둥이 내려와 그녀를 감싸 안았다.

쿠르릉-

검은 오러는 단단한 무언가에 가로막혀 옆으로 비껴 나고 말았다.

연우는 인상을 딱딱하게 굳히면서 고개를 위로 들었다. 심상치 않은 것이 나타나려 하고 있었다.

여태껏 연우가 만났던 대신격들도 아래로 볼 만한 어마어마한 중압감. 헤르메스와 아테나를 넘어, 하데스에게도 위협을 느끼게 할 만한 존재감이었다.

그리고.

전장이 거짓말처럼 침묵에 잠겼다.

끝까지 적들을 밀어붙이던 디스 플루토도. 이리저리 날뛰던 마물들이며 부도 처음으로 잔뜩 경직되어야만 했다.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아주 고요한 적막 속에서.

『참으로…… 개판이로군…….』

갈라진 검은 구름 너머로. 거대한 눈이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크기를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거대한 존재가 천공에다 작게 구멍을 내고, 눈을 가져다 댄 것처럼 너무나 두려운 광경이었다.

그것은 눈동자를 아래로 데구루루 굴리면서 어질러진 전장을 빠르게 훑었다.

언데드로 변해 버린 괴물들. 사지가 아무렇게나 잘려 나간 거신들. 필멸자에게 죽기 일보 직전인 한심한 아스트라이오스까지.

『자기들끼리…… 알아서 해 보겠다고 그 난리를 치더니…… 겨우 이딴 꼴을 보이려 그런 것이었나……?』

하데스는 검을 아래로 내리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티폰.”

여태껏 타르타로스를 어지럽혔던 신족은 둘. 티탄과 기가스였다.

하지만 티탄의 왕이었던 크로노스는 이미 죽어 산등성이로만 남았고, 기가스의 왕만이 여전히 살아 그들을 모두 통치하고 있었으니.

그 왕은 반인반수의 괴물로, 인간의 상반신과 뱀의 하반신을 갖고 있으며, 머리에는 번개를 내뿜는 백 마리의 뱀을 두르고 있고, 크기가 너무 커 어깨는 하늘에 닿고 날개를 펼치면 태양 빛을 모두 가려 세상을 어둠으로 잠식 시킨다는 전승을 지니고 있었다.

한때, 제우스마저도 봉인시켜 힘줄을 끊어 버렸다는 괴물.

티폰.

기가스의 왕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헤르메스가 침음을 삼킵니다.]

[아테나가 침묵합니다.]

[아레스가 이를 악뭅니다.]

[헤스티아가 고개를 옆으로 돌립니다.]

……

그렇게 오만했던 올림포스의 신들도 지금만큼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들도…… 더러 보이는군…….』

티폰은 아스트라이오스에게서 연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가, 눈을 가늘게 좁혔다.

『열 개의 관문에서 봤던…… 그 플레이어인가…….』

티폰의 눈동자에 어린 감정은 ‘흥미’였다.

그제야 연우는 깨달을 수 있었다. 열 개의 관문에서 계속 쫓아와 단순히 티탄과 기가스의 것이라고만 여겼던 시선의 주인이 바로 티폰이었다는 사실을.

하지만 티폰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다시 눈동자를 하데스에게로 돌리면서 말했다.

『이만하면……. 끝내도 괜찮은 듯싶은데…… 어떤가……? 이 머저리들을 데려가게 해 주는 것이……. 그대도…… 체면치레를 할 정도는…… 되지 않나……?』

모든 이들의 시선이 하데스에게로 향했다.

하데스는 살짝 낯을 일그러뜨렸다. 역전을 꾀할 수 있는 상황에서 난데없이 개입을 당한 것이니.

하지만 그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전장에 있는 디스 플루토는 오랜 격전으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이 이상 싸운다면 티탄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을지는 모르나, 곧 이어질 기가스의 참전까지는 막기 힘들 것 같았다.

철컥-

결국 하데스는 검집에 칼을 밀어 넣었다. 마음대로 하라는 의미였다.

휴전 협정이었다.

『고맙군……. 그대에게는…… 비겁한 제우스와 다르게…… 언제나 신의를 갖고 있다…….』

그 말을 끝으로, 티폰은 도로 눈을 감았다. 검은 구름이 빈자리를 다시 메우고, 아스트라이오스들에게 내려졌던 빛의 기둥도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위협적이던 거신들의 존재가 흐려지고 있었다. 역소환이 이뤄지는 것이다. 그 속에는 아스트라이 오스도 섞여 있었다.

그 순간, 아스트라이오스는 안도에 찬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겨우 목숨을 구제할 수 있었으니까. 비록 이로 인해 티탄은 이제 완전히 기가스에게 굴복해야만 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그래도 당장 살아남아야 차후를 기약할 수도 있었다.

‘두고 보자, 인간……!’

아스트라이오스는 다음에 돌아왔을 때, 자신을 이런 비참한 꼴로 만든 인간을 반드시 찢어 죽이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성역으로 되돌아가기 직전, 마지막으로 가증스러운 연우의 얼굴을 눈에 담고자 아래를 내려다봤는데.

연우가 이쪽으로 뭔가를 거세게 날리고 있었다. 데네브를 부쉈을 때처럼. 투창 자세를 갖추면서 여의봉을 던진 것이다.

하지만 불과 몇 분 전에 티폰과 하데스가 휴전을 맺는 것을 봤을 텐데?

그것을 이렇게 쉽게 깨 버린다고? 한낱 필멸자가?

그 생각이, 아스트라이오스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생각이었다.

퍽-

[축하합니다! 신살(神殺)의 업적을 성취하였습니다.]

[누구도 쉽게 이루지 못할 위대한 업적을 이뤄 냈습니다. 추가 공적치가 제공됩니다.]

[공적치를 100,000만큼 획득했습니다.]

[추가 공적치를 200,000만큼 획득했습니다.]

[새로운 보상이 주어집니다. 보상을 산정하는 데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

[칭호 ‘신살자(神殺者)’를 획득했습니다.]

……

[상황을 지켜보던 모든 신들이 크게 경악합니다.]

[상황을 지켜보던 모든 악마들이 입가에 미소를 띱니다.]

[소수의 신들이 당신에게 부정적인 시선을 보냅니다.]

[소수의 악마들이 당신에게 내어 줄 격에 대해서 새로운 의견을 제시합니다.]

[티폰과 하데스 간에 이뤄진 휴전 협정이 깨졌습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