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디스 플루토 (3)
[퀴네에의 제작 단계가 시작되었습니다.]
『우선은 재료들부터 보세.』
작업은 키클롭스 3형제의 주도하에 시작되었다. 연우는 브론테스 앞에다 자신이 가져온 재료들을 모두 꺼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핵심 재료인 아다만틴 노바를 꺼냈을 때, 브론테스는 주먹을 꽉 쥐었다.
『정말 구해 왔을 줄이야……!』
아다만틴 노바는 탑에서도 구하기 힘든 광물인 아다만티움을 극한으로 압축시킨 물질이었다. 그래서 항상 찬란한 빛을 뿜어내며, 극소량만 얻어도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문제는 퀴네에의 기본 구성 재료가 그런 아다만틴 노바라는 점이었다. 아주 많은 양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연우가 가져온 양이라면 퀴네에를 제작하고도 조금 남을 것 같았다.
게다가 누가 가공한 건지, 질도 무척 뛰어났다.
『이것이라면 남는 것으로 디스 플루토의 장비들을 대거 강화시켜 줄 수 있……!』
“이건 제 겁니다.”
브론테스가 잔뜩 흥분해서 들뜨는데, 연우가 갑자기 찬물을 확 끼얹었다.
브론테스는 정신이 확 들었다.
『뭐?』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는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여기 있는 것들은 전부 제 겁니다. 잊지 마십시오.”
『……!』
“퀴네에를 하데스에게 드리는 건, 어디까지나 제 부탁을 들어주는 대가일 뿐이죠.”
브론테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게 무슨 소린가! 무려 타르타로스의 안위가 걸린 일이네! 티탄과 기가스가 일어나는 것이야말로 큰 환란을 부르……!』
“올림포스에 한정된 이야기일 뿐이죠.”
『무슨……!』
“제 말이 틀렸습니까?”
연우는 고요한 눈빛으로 브론테스와 다른 두 키클롭스를 바라봤다. 동시에 자신에게 연결된 채널링을 한껏 열어 그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 순간, 브론테스는 자신도 모르게 헛바람을 들이켜고 말았다.
너무나 많은 시선들이 자신에게로 쏟아지고 있었다. 강렬하면서도 두려운 시선들. 하나같이 상위 격에 해당하는 신과 악마들의 눈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몇몇을 제외하면 대개 멸시와 냉소가 담겨 있었다.
아테나와 헤르메스 등, 〈올림포스〉의 신들이라 예상되는 이들만이 안타까워할 뿐. 그마저도 아레스는 코웃음을 치면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제야 브론테스는 자신들의 처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티탄과 기가스는 어디까지나 〈올림포스〉의 주도권을 두고 다투다가 쫓겨난 인물들일 뿐. 그들이 타르타로스를 뚫고 나온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회의 신과 악마들에게는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애당초 관할 지역이 다른 셈이니.
물론, 티탄과 기가스가 타르타로스를 뚫고 가장 먼저 침범할 구역은 30층 이후의 스테이지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 속에는 관리자들이 있고, 다른 신과 악마들의 견제가 있었다.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더라도, 〈올림포스〉가 처한 것처럼 발을 동동 구를 일은 아니란 뜻이었다.
결국 이 일은 너희들의 일일 뿐. 강제는 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더군다나.
브론테스는 연우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영혼이 짓눌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숨이 턱턱 막혔다.
이미 죽은 몸으로 숨이 막힌다는 표현은 우스울지도 모르지만.
브론테스는 정말 그런 느낌을 받고 있었다.
연우와 연결된 고리가 사슬이 되어 자신을 칭칭 감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하면 더더욱 강하게 옥죄는 사슬.
연우에 대해 부정적인 사고조차도 할 수 없었다. 강제로 고개를 숙이게 만들고, 따르게 하는 마력이 숨어 있었다.
경배하라!
굴종하라!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귓가를 따라 그런 목소리가 왱왱 울어 대는 것 같았다. 마치 최면을 걸듯이.
그제야 브론테스는 자신이 더 이상 연우를 거스를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그래서 자결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조차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연우가 사리사욕을 부리려 하면 스스로 영혼을 사멸시키겠다던 호언장담은 허무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이미 자신의 영혼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연우가 소유한 컬렉션일 뿐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거지?
아무리 격이 하락했어도 그는 한때 신격이었다. 한낱 필멸자에게 구속된 것만 해도 사실 말이 안 되는 일이었을 텐데. 아니, 신살자이니 다른 것일까?
브론테스는 순간 시야에 비치는 연우가 너무 두렵게 느껴졌다.
여태껏 하데스와 디스 플루토를 부흥시킬 도구로만 생각했던 대상이, 사실은 자신들을 얼마든지 집어삼킬 수 있는 야수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사납게 두 눈을 뜨며 송곳니를 드러낸 야수로.
결국.
『……알겠네. 일단은 따르도록 하지.』
브론테스는 꺾일 수밖에 없었다. 주도권이 저기에 있다면 최대한 고개를 숙일 수밖에.
비교적 이성적인 성격인 스테로페스도 지금만큼은 입을 꾹 다문 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연우와 큰형 사이에 벌어진 신경전의 결과, 승기가 어디로 넘어갔는지 너무나 잘 보였다.
“이렇게 너무 눌러도 되겠소?”
크로이츠가 조심스레 다가와 연우에게 물었지만, 연우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히려 이런 건 처음부터 확실하게 선을 그어야 하니까.”
이번 일 어디에서도 연우는 주도권을 놓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 * *
[첫 번째 단계, ‘제련’이 시작되었습니다.]
[현재 전체 공정률: 2%]
『……우선 가장 중요한 건, 태초의 불을 다루는 것일세.』
브론테스는 아다만틴 노바를 천천히 녹일 화로를 가리켰다. 설명을 하는 내내 굳은 표정이었지만, 지금은 공정에만 신경 쓰는 중이었다.
“이유가 있습니까?”
『아다만틴 노바를 손실 없이 녹일 수 있는 건, 태초의 불밖에 없기 때문이지.』
“그 불은 영혼석에서 뽑아내는 겁니까?”
『맞아. 하데스 님이 오래전에 구한 것이지. ‘순결(Castitas)’의 돌일세.』
7대 주선과 7대 죄악, 총 14개로 나뉘었다는 영혼석. 그중 하나가 하데스의 손에 있었다. 그리고 키클롭스 아르게스는 여기서 뽑아낸 불을 바탕으로 여태 무구를 제련하고 있었다.
전력상 열세에 놓였는데도 불구하고, 여태 계속 디스 플루토가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했다.
태초의 불을 보는 연우의 눈빛이 기괴하게 일렁였다.
‘저 방법을 알 수 있다면…….’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현재 영혼석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건 키클롭스 형제들밖에 없었다. 저 방법을 알 수 있다면. 똑같은 영혼석이라는 회중시계의 봉인도 풀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불을 다룰 수 있는 건 우리밖에 없어. 불길이 자칫 잘못하면 영혼마저 삼키기 때문이지. 그러니 그동안 자네들은 다른 일들을 도맡아 줬으면 좋겠…….』
브론테스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갑자기 헤노바가 화로 쪽으로 다가갔다. 여태 심드렁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심심했던 것 같았다.
브론테스가 아차 싶어 뜯어말리려 했지만, 헤노바는 그보다 먼저 풀무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화르륵!
“불길이 너무 거세. 아무리 아다만티움의 끓는점이 높다고 해도, 열을 고루 분산시켜 주지 않으면 오히려 추후에 불순물이 섞일 우려가 크지. 안 그렇소?”
『그…… 렇긴 하지.』
“쇳물은 내가 보고 있겠소. 아무리 질이 좋은 것이라 해도, 최대한 불순물을 제거해야 신성도 그만큼 잘 녹아들 테니.”
헤노바는 그렇게 말하더니 화로 앞에 앉아 풀무질을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불길은 화르륵 크게 타올랐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별달리 힘들어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아니, 오히려 험난한 바깥보다는 이곳이 편한 듯, 입가에 엷은 미소마저 달고 있었다.
『블랙 드…… 워프라 그런가?』
브론테스는 그런 헤노바를 조금 놀란 눈으로 바라보다가, 가볍게 헛기침을 하면서 다른 재료들을 꺼냈다. 45장이나 되는 아포디스의 비늘이었다.
『이것은 안쪽에 마감 처리를 해서 신력의 유동을 부드럽게 해야 하지. 하지만 술식이 너무 복잡한 데다가, 새겨 넣는 작업이 쉽질 않…….』
“이건 내가 맡도록 하지.”
“저도 도울게요.”
브론테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브라함이 먼저 아포디스의 비늘을 챙겼다. 빅토리아가 바로 뒤를 따랐다.
브론테스가 허겁지겁 두 사람을 뜯어말렸다.
『술식을 새기는 방법은 알고 있나? 그것이 틀리면 모든 게 형클어진단 말일세!』
“말일‘세’?”
브라함의 한쪽 눈썹이 말려 올라갔다. 순간, 브라함의 정체를 떠올린 브론테스가 꼬리를 말았다.
『……말이오?』
브라함은 크게 코웃음을 쳤다.
“카트란 액과 하디스 심장에서 추출한 피를 3대 1의 비율로 배합하고, 다시 트라잔을 1대 1로 섞어서 190도의 온도로 3일간 끓인 액을 사용하면 되지 않나? 그 뒤로 두 개의 마도전핵을 주축으로 공명을 끌어내면 되고. 됐나?”
『……마, 맞소.』
“다음부터는 내 앞에서 잘난 척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이런 쪽 지식은 그래도 내가 그대보단 나을 테니까.”
브라함은 빅토리아를 데리고 한쪽으로 가서 술식 작업을 시작했다.
그 뒤로도 제련 외에 필요한 공정 작업은 키클롭스 3형제들보다 연우 일행들의 손에서 더 빠르게 이뤄졌다.
때문에 키클롭스 3형제를 비롯해 그들을 보좌하기 위해 있던 여러 대장장이들은 멍하니 그들의 작업을 바라봐야만 했다.
그나마 퀴네에의 작업 순서를 알고 있는 브론테스가 나서서 작업 방향을 잡아 주는 것이 거의 전부일 뿐.
세부적인 내용은 오히려 이쪽이 더 나을 때도 있었다.
특히 헤노바가 제시하는 다른 방식이 더 효율적일 때가 있었고, 브라함이 의견을 더할 때면 방향은 전혀 다른 곳으로 흘러가기도 했다.
가장 지식이 뛰어난 스테로페스가 놀라워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숙련도나 속도에 있어서는 대부분 연우 일행이 훨씬 나았던 것이다.
여태 필멸자라면서 그들을 내심 업신여기고 있던 이들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우리의 실력이 퇴보를 한 것인가, 아니면 잠들어 있는 동안 세상이 그만큼 발전을 한 것인가?』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르지.”
스테로페스와 아르게스는 묘한 표정으로 공정 과정을 계속 지켜봐야만 했다.
[제작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제련’이 끝났습니다.]
[‘정련’이 34% 진행되었습니다.]
[‘단조’가 19% 진행되었습니다.]
……
키클롭스 형제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분업이 이뤄진 덕분이었다.
헤노바, 브라함, 빅토리아는 각자가 맡은 파트를 말끔하게 처리했고, 그렇게 완성된 부분들은 마치 한 사람이 해낸 것처럼 너무 깔끔하게 맞아떨어졌다.
언제부턴가 아르게스의 제자들도 그들의 손발에 맞춰 바쁘게 움직였으니. 핵심 재료를 다루는 브론테스의 망치도 시간이 갈수록 바쁘게 움직였다.
땅, 땅, 따앙-
퀴네에는 〈올림포스〉가 자랑하는 3대 신물 중 하나. 당연히 제작하는 데도 그만큼 한세월이 걸릴 거라고만 여기고 있었다. 어쩌면 그사이에 다시 티탄과 기가스의 침공이 있을지도 몰라, 단단히 각오까지 하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도무지 믿기지 않는 속도로 공정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으니.
하지만 그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브라함은 마도 지식에 있어서만큼은 그 경지가 이미 신격들도 무시할 정도로 깊었다.
괜히 한때 ‘창조’의 브라흐마라고 불렸을까. 게다가 그는 헤노바와 함께 연금술의 총집합체인 현자의 돌을 만들어 내기도 했었다.
그리고 여기에 간간이 부가 의견을 더해 주기도 했다.
이제 파우스트의 지식을 어느 정도 되찾으면서 에메랄드 타블렛을 복구하기 시작한 그의 의견은 많은 도움이 되었고, 이따금 빅토리아의 깊은 혜안도 공정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거기다 이들에 뒤질세라, 키클롭스 3형제들도 바쁘게 뛰어다니면서 쉬지 않고 망치질을 해 대니.
당연히 전체 공정 작업 속도가 덩달아 상승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연우는 용마안을 활짝 열어 작업을 일일이 눈에 담고자 했다.
[‘용마안’의 스킬 숙련도가 대폭 향상됩니다. 82, 83, 84%…… 96, 97%…….]
[호크마의 열람 권한이 확장됩니다.]
[‘네차흐’가 재구성됩니다.]
[‘예소드’가 정립되어 체계를 갖춥니다.]
[‘화안금정’과 연동됩니다.]
[마신룡체의 특성이 적용됩니다.]
[초월성의 단서가 적용됩니다.]
이미 현자의 돌을 완성하면서 대폭 상승시킨 적이 있던 용마안은 다시 대신물을 제작하면서 비등한 발전을 이뤘다.
여기에 화안금정이 더해지면서 이해력이 더 높아져 초월성까지 적용할 수 있었다.
아스트라이오스를 잡으면서 획득한 초월성은 사실 거창한 이름과 다르게 별 내용이 없었다.
[초월성의 단서]
‘격’을 이룰 단서. 다양한 곳에 조금씩 적용된다. 쌓이면 쌓일수록 효과가 커지며 영혼의 성장에 영향을 미친다.
쉽게 말해, 앞으로 터득하거나 사용할 스킬이나 가호에 조금씩 촉진제로 사용할 수 있단 뜻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마신룡체라는 새로운 육체에 걸맞게, 기존의 능력치들을 재조정하는 역할을 맡았다는 표현이 옳을 것 같았다.
덕분에.
연우는 용마안을 빠른 속도로 성장시킬 수 있었고.
[‘용마안’의 스킬 숙련도가 상승했습니다. 98, 99%…… 100%.]
[축하합니다! ‘용마안’의 스킬 숙련도를 Max치까지 달성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스킬과 관련된 모든 능력치가 향상됩니다.]
[체력이 15만큼 상승합니다.]
[마력이 20만큼 상승합니다.]
……
[스킬과 관련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상위 스킬을 오픈합니다.]
[상위 스킬 ‘용천안(龍天眼)’을 오픈합니다.]
[‘용천안’의 스킬 숙련도가 대폭 상승하여 빠르게 Max치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
[플레이어의 능력치를 산정하여 새로운 스킬을 탐색합니다.]
[스킬 ‘용신안(龍神眼)’을 오픈합니다.]
연우는 초감각에 버금가는 새로운 상위 스킬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정련’ 과정이 완성되었습니다.]
[‘단조’ 과정이 완성되었습니다.]
[‘접철’ 과정이 완성되었습니다.]
……
[마지막 작업 ‘신성 부여’만이 남았습니다.]
[전체 공정률: 98%]
공정이 열흘에 다다랐을 때쯤.
퀴네에는 제대로 된 형태를 갖추면서 마지막 작업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