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354화 (354/862)

4화. 디스 플루토 (4)

“혹시나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빨리 가져올 줄이야.”

하데스는 헛웃음을 흘렸다. 보통 기대도 하지 않았던 행운이 갑자기 찾아왔을 때 흘리는 웃음.

그의 앞에는 너무나 오랫동안 보고 싶었던 투구가 놓여 있었다.

퀴네에.

한때, 티탄 일족과 전쟁을 치를 때, 크로노스의 목을 칠 수 있게 해 주었던 절대 신물.

‘죽음은 소리 없이 찾아온다’는 자신의 신화를 너무나 잘 표현해 주었지만. 마찬가지로 부서질 때도 모래성처럼 잘게 부서져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던 신물이, 다시 나타나 주었다.

『한번 만져 보시지요.』

브론테스와 스테로페스, 아르게스도 감동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하데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퀴네에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손끝에서 검은빛이 터지면서 투구 안쪽으로 스며들었다.

신성 부여. 특성을 새겨 넣어 소유주를 각인시키는 작업이었다.

화아아-

옥좌를 따라 검은 기운이 일렁거렸다. 밝은 빛은 아니었으나, 성스럽다는 표현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광경이었다.

『아아……!』

“드디어!”

키클롭스 3형제는 옛 추억에 젖어 잔뜩 흥분해서 몸을 떨었고.

연우는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퀴네에를 둘러싼 여러 변화를 천천히 읽어 갔다.

눈이 깊게 가라앉으면서 세로로 두 번째 동공이 열렸다.

[용신안]

등급: 권능

숙련도: 6.1%

설명: 고룡 ‘칼라투스’에게서 비롯된 권능.

용은 성장하면서 많은 것들을 눈에 담을 수 있다. 그중에는 절대 관찰할 수 없을 진리의 이면도 내포되어 있어, 많은 지식을 탐구할 수 있게 한다.

* 관찰자 시점

모든 것을 탐구하고 관찰할 수 있는 눈. 마주친 대상이나 물건에 대해서 정보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 결과로, 결(缺)과 혈(穴)의 흐름 파악이 가능해지며, 숙련도가 높아질수록 더 많은 파악이 가능하다.

* 절대자의 눈

용종은 태생부터 모든 존재들을 앞서는 존재다. 감히 그 눈을 마주쳐서 온전할 수 있는 대상이 없었으므로, 상대의 기백을 눌러 압도되게끔 만든다.

‘눈’으로 연결된 여러 스킬 혹은 권능들을 자동적으로 수용한다.

**현재 연계된 스킬

-화안금정: 미후왕의 눈. 제천대성의 힘을 일부 빌려 제천류를 열 수 있게 한다.

-현인의 눈: 비마질다라의 눈. 아수라왕의 옛 경험들을 일부 공유할 수 있게 된다.

-???

용신안이 처음 열린 순간, 연우는 자신이 드디어 새로운 길을 열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여태 그가 사용하던 용마안은 사실 유아기나 성장기 때의 용종들이나 사용하는 눈.

하지만 용종은 보통 성숙기에 접어들어서는 용마안을 사용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수천 년 이상의 긴 세월을 살면서 관찰한 대상들이 이미 너무 많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고룡 칼라투스만큼은 달랐고. 오랫동안 지식을 정리하면서 눈을 새롭게 개화해 권능으로 빚어냈다.

그런 눈이…… 연우에게로 내려 오게 된 것이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대상이 당신을 관찰합니다.]

연우는 50층, 용의 신전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고룡 칼라투스가 크게 성장한 자신을 위해 그의 눈을 내려 준 게 아닐까 하고 여기는 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주인도 없는 권능을 이렇게 쉽게 개화할 수는 없을 테니.

[‘용신안’의 스킬 효과가 적용되어 대신물 ‘퀴네에’의 정보를 열람합니다.]

[퀴네에]

종류: 머리 방어구

등급: 대신물

설명: 〈올림포스〉의 신, 하데스의 신물.

티타노마키아에서 큰 활약을 벌였던 그의 상징물과 똑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 하지만 아직 신성이 부여되지 않아 특성이 개화되질 못했다.

현재, 신성이 부여되고 있는 중이다.

**소유주인 하데스의 의지와 별도로 ‘퀴네에’의 사용 권한이 있습니다. 단, 사용 권한을 발동할 시, 하데스의 분노를 살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용신안이 빚어내는 세상에서 보이는 퀴네에는 두 개의 실선과 연결되어 있었다.

하나는 하데스 쪽으로.

다른 하나는 연우, 자신 쪽으로.

아마 이것이 정보창에서 말하는 ‘사용 권한’일 테지. 아직 신성이 덜 부여되었기 때문인지, 두 개의 연결 고리 중 아직까지 연우 쪽이 더욱 뚜렷했다.

연우는 연결 고리에 의념을 집중하면 퀴네에가 곧바로 반응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뒤에 벌어질 결과도.

‘그 자리에서 곧바로 칠흑왕의 세트가 완성되겠지.’

사실 연우가 혹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칠흑왕의 세트가 완성된다면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죽음의 힘에 근접할 수 있게 된다. 동생의 행방을 찾을 단서를 하나 더 얻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겠지.’

하데스와 디스 플루토의 진노를 감당할 수 있을까? 연우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티탄-기가스와의 전쟁에 몰두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신이 한번 큰 분노를 품었을 때에 줄 수 있는 제지나 방해는 엄청 많았으니까. 아니, 아예 타르타로스를 온전히 빠져나갈 수 없을지도 몰랐다.

더군다나 칠흑왕의 권능을 모두 찾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도 했고.

‘비탄을 얻었을 때도, 옵션이 바로 열린 건 아니었으니까. 세 번째 형틀도 다른 조건이 주어져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지.’

그렇기 때문에 연우는 차근차근히 일을 진행하고자 했다. 아직까지 퀘스트를 완수했다는 메시지는 뜨지 않았지만, 그래도 약속대로 퀴네에를 바쳤으니 키클롭스 3형제도 자신을 도울 것이다.

‘우선 회중시계의 봉인을 풀어 보고…… 그래도 안 된다면 그때 퀴네에를 노려도 늦지 않아.’

티탄-기가스와의 전쟁에서 공을 세워서 퀴네에를 포상으로 받는 방법도 있었지만.

람이라는 사도가 있는 이상, 그것도 쉽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연우는 천천히 생각하기로 했다.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결정이 달라질 수 있을 테니.

어차피 신성 부여 작업은 하루 이틀 한다고 해서 완성되는 것도 아니었다.

아직 시간은 충분했다.

[현재 공정률: 99%]

하데스는 퀴네에서 손을 떼면서 조용히 한숨을 돌리고 있었다.

* * *

연우 일행이 하데스에게 퀴네에를 진상하던 그 시각.

“이곳이 앞으로 너희들이 머물 곳이다.”

칸과 도일, 갈리어드와 크로이츠는 하데스의 사도, 람의 안내에 따라 디스 플루토를 방문하고 있었다.

장인의 신분으로 퀴네에 제작에 참여한 연우 등과 다르게. 그쪽으로 재주가 없는 그들은 전투 요원으로 배치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참 되게 쌀쌀맞네.’

칸은 람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속으로 혀를 찼다.

처음 안내를 해 주었을 때도 느끼긴 했었지만. 람은 자신들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아니, 경계를 한다는 표현이 옳은 걸까. 마치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다른 고양이를 경계하는 고양이처럼.

‘그래도 앞으로 이쪽 생활이 편해지려면 친해질 필요는 있는데.’

다만,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았다. 천천히 접근해서 경계를 풀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 칸은 자기도 모르게 등골을 쭈뼛 세웠다. 왠지 모르게 빅토리아의 앙칼진 도끼눈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내가, 뭐, 우리 할망구랑 그렇고 그런 사이도 아닌데. 그렇다고 내가 하데스 사도를 꼬시겠다는 것도 아니고.’

칸은 속으로 되도 않는 변명을 주절대다가 재빨리 생각의 방향을 돌렸다.

‘그나저나.’

칸은 군영의 내부들을 둘러보면서 눈을 반짝였다.

“플레이어가 이렇게 많을 줄은 정말 생각도 못 했어.”

도일이 불쑥 끼어들면서 작게 탄식을 흘렸다.

타르타로스는 존재 여부도 크게 알려지지 않은 히든 스테이지. 거기다 접근하기도 아주 어려운 곳이었다.

그래도 이따금 20층 고행의 산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는 말은 들었었는데.

하지만 막상 찾아와서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았다.

병사들 중 상당수가 플레이어였던 것이다. 개중에는 탑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되었다는 예전 랭커들도 더러 보였다.

그게 너무 신기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탑 내에서 이곳만큼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는 곳도 없을 테니까.’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된 성장을 이루는 연우가 사실 예외일 뿐.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어느 정도 성장을 마치고 나면, 벽에 부딪혀 오랫동안 성장이 지체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을 깰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바로 전투였다.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치열한 전장에서 뭔가 얻어 갈 수 있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타르타로스를 찾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다만, 신적인 존재들이 충돌을 하다 보니, 이따금 어떻게 플레이어로서 거스를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사상률이 너무 높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나 많은 플레이어들이 모여 있다는 건.

‘그만큼 타르타로스가 그들에게 주는 긍정적인 영향도 크다는 뜻이겠지.’

도일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찌찌뽕.”

“……?”

난데없이 칸이 불쑥 자신의 가슴에다 손을 가져다 댔다.

도일은 또 이게 무슨 이상한 짓인가 싶어 인상을 찡그렸다.

“내가 하려던 말을 똑같이 해서.”

“형은 어떻게 나이를 먹어도 똑같…… 아니다. 됐다.”

보통 사람은 큰일을 겪고 나면 뭔가 변하는 게 많다던데. 한결같은 칸을 보니 저절로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칸은 피식 웃으면서 그런 도일의 등을 세게 두들겼다.

“어린놈이 뭐가 그렇게 한숨이 많아? 좀 웃고 살자.”

도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다 피식 웃었다. 이런 형이니 마군에 억류되었던 자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구해 줬던 거겠지.

그런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군영 한쪽이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칸과 도일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갈리어드와 크로이츠도 따라서 그쪽을 봤다가 표정을 살짝 굳혔다.

갓 전투를 치르고 왔던지, 하나 같이 험하게 다친 몰골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눈빛만큼은 흉흉했다.

“……엘로힘, 저들이 여기는 왜 있는 거지?”

8대 클랜 중에서도 유달리 엘로힘은 눈에 띄는 편이었다. 자신들을 제외한 사람들은 모두 열등하다는 오만함과 과시욕 때문일 것이다.

저기 눈에 띄는 이들이 그랬다.

여러 플레이어들이 모여 그들을 축하해 주는 와중에서도. 그들은 그것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앞에 있는 여인은 산생과 생명의 공동 가주인 듯하고, 다른 하나는 광요의 가주인 것 같소. 한데, 광요 가주의 꼴이…… 말이 아니군.”

엘로힘의 무리를 이끄는 수장은 단발을 짧게 친 여인, 파네스였다.

아이테르는 바로 그 뒤를 비루한 개처럼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의 목에는 긴고아가 개 목걸이처럼 처량하게 매여 있었다.

연우가 퀴네에의 재료를 구하기 위해 타르타로스를 잠깐 떠난 사이.

파네스 일행은 디스 플루토에 합류해 맹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그들끼리 원정을 떠나서 티탄의 영토를 침범해 성을 빼앗거나, 마물들의 핵을 부수는 등 혁혁한 공을 세우면서 이제는 디스 플루토의 중심이 되다시피 하고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티탄이 성역을 침범하는 동안, 그들은 오히려 역공을 꾀했다. 상대적으로 방어가 약해진 곳을 노려 홀로 떨어진 티탄을 사냥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올림포스〉의 신, 포세이돈이 ‘신살자’의 칭호를 얻은 당신을 기꺼워하며 새로운 가호를 내립니다.]

[헤스티아가 함께합니다.]

[데메테르가 함께합니다.]

[헤라가 함께합니다.]

그녀가 가져온 수레에는 티탄 메가에라의 머리가 놓여 있었다.

“아스트라이오스에 이어서 메가에라까지…….”

“게다가 퀴네에까지 곧 만들어진다 하지 않는가.”

“어쩌면. 이번 전쟁, 이길 수 있을지도.”

하급 신격인 하데스의 부관들은 잔뜩 고양되어 흥분하고 있었다.

파네스도 이미 이곳으로 오던 중에 전황을 모두 들었기에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의 뒤를 개처럼 따라다니던 아이테르는 겉보기와 달리 그녀의 심기가 많이 불편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메가에라를 척살한 것에 대해 모든 영광과 찬사를 그녀가 받아야 옳았지만.

그보다 먼저 떡 하니 신살자의 칭호를 따내면서 영광과 찬사를 가로챈 도둑고양이가 있었다.

독식자.

그자가 돌아온 것이다.

파네스는 이를 바득 갈았다. 언젠가 마주쳐야 할 상대이긴 했지만. 이렇게 자신의 공을 무색하게 만드니 짜증이 났다.

하지만 그녀는 되도록 차분해지고자 했다.

여기서 괜히 적의를 크게 드러 낼 필요는 없었으니. 게다가 어차피 그녀는 독식자와 대립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포세이돈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메시지: 약조한 대로, 저들을 모두 찢어 죽여라. 한 놈도 살려 두지 말고. 전부. 모조리.]

파네스는 저 어딘가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포세이돈과 다른 세 여신들에게 말했다.

“그리하신다면 정말로……!”

[포세이돈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메시지: 다시 한 번 더 약속한다. 나 포세이돈과 헤스티아, 데메테르, 헤라의 이름으로.]

[포세이돈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메시지: 신탁을 완수해 낸다면. 너희 일족들에게 대대로 내려진 굴레를 거둬 줄 것이다.]

필멸자로 영락해 버린 일족의 명운을 다시 끄집어 올려 주겠다던 약속.

파네스가 원정군을 이끌고 출발하기 전에 받았던 신탁(神託)이 이제야 비로소 시작되고 있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