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하늘 날개 (1)
“이게 무슨 짓……!”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아팠다. 그래서 따지려는데.
와락-
형이 먼저 내 몸을 꽉 끌어안았다.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다시는.”
어째 어깨 부위가 축축해지는 것 같았다.
“다시는 아무 말 없이 집 나가지 마라. 그때는 정말 내가 널 죽여 버릴 테니까.”
이거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는 말 맞지?
이런 츤데레 같으니. 아니, 지금 말투는 얀데레인가.
물론, 그런 속내는 말하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또 뒤통수를 얻어 맞을 것 같아서.
그래서 나도 똑같이 오랜만에 만난 쌍둥이 형제를 안았다.
“응. 나 돌아왔어, 형.”
* * *
연우는 천천히 눈을 떴다. 활자로 가득하던 백색 세계가 아닌 현실 세계. 브라함과 헤노바가 자신을 걱정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은가?”
“이놈아! 시계 만지다 말고 왜 갑자기 정신을 잃어?”
브라함은 혹시 연우의 몸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마법을 이리저리 걸었다. 버럭 화를 내는 헤노바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연우는 괜찮다고 그들을 달래고, 옆에서 빤히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브론테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제가 얼마나 이렇게 있었습니까?”
『사흘쯤 되었네.』
연우는 가볍게 혀를 찼다. 참 오래도 있었다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 정도쯤은 흘러 있는 게 당연했다. 영혼석의 기운을 정리하는 것만 해도 상당한 집중력을 필요로 했었으니. 게다가 백색 세계에서 겪은 일까지 합친다면 사실 사흘도 빠른 거였다.
『일단 이 두 사람 외에 그대의 다른 동료들에겐 그대가 집중할 게 있어 잠시 두문불출하고 있다고 둘러댔다네.』
“감사합니다.”
『한데.』
브론테스가 말끝을 흐리면서 눈을 가늘게 좁혔다.
『보아하니, 영혼석의 봉인을 푼 것 같은데. 맞나?』
“예.”
『허! 그게 가능한 일이었나?』
“다행히 유용한 도구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대단하군.』
한평생 영혼석을 연구했던 브론테스였기에. 영혼석을 가공하고, 그것을 다루게 된 연우 형제에게 일종의 경외심을 갖게 되었다.
『그럼 그 힘을 사용할 수도 있겠는가?』
연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루는 것과 사용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계속 연구를 하다 보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연우는 심장 부근에 자리 잡은 현자의 돌을 감지했다. 부르르 잘게 떨리는 현자의 돌은 그토록 많은 기운을 흡수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멀쩡했다. 별다른 변화도 느껴지지 않았다.
영혼석이 겉보기에 그저 그런 평범한 돌이듯. 현자의 돌도 그렇게 변한 것 같았다.
하지만 현자의 돌을 코어로 삼아 마력을 운용해 보면 이야기는 달랐다.
마력은 다른 때보다 훨씬 힘찼다. 단순히 마력회로를 흐르는 정도만으로도 모든 감각이 저절로 깨어났다. 세포 속에 깊숙하게 박힌 용, 마, 신의 세 인자들도 자극을 받아 활발하게 작동했다.
마력의 질이나 깊이가 이전과 비할 수 없이 달라졌다는 증거였다.
이걸 단순히 마력이라 할 수 있을까? 마치 공허 속의 어둠을 퍼올린 것처럼 끈적끈적하고, 순도와 밀도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마력. 여태껏 다루던 것과는 정도가 달랐다.
다르게 이름을 붙여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건 나중에.’
연우는 마력을 손끝으로 모으면서 엷은 미소를 뗬다.
‘이 정도라면 충분해.’
연우는 생각을 정리하고, 여전히 걱정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는 브라함과 헤노바를 보면서 말했다.
“두 분께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만나 보시겠습니까?”
두 사람은 이게 웬 생뚱맞은 말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헤노바는 인상을 살짝 구기면서 짧은 팔을 뻗어 연우의 이마를 짚었다.
“어디 열이라도 있는 거냐?”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럼 뭘……?”
헤노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파아아-
연우는 손끝에 모은 마력을 회중시계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자 그동안 정지해 있던 시침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잘게 떨렸다.
그리고. 유리 막 위로 검은 활자들이 둥실 떠올랐다.
안쪽에서 일기장을 이루고 있던 활자들은 음소 단위로 잘게 쪼개진 상태로 튀어나와 소용돌이를 그렸다.
그러다 안쪽으로 함몰되면서 서서히 흐릿하게나마 사람의 형상을 갖췄으니.
색이 또렷해져 이목구비가 조금씩 드러날수록.
이게 뭔가 싶은 표정으로 보고 있던 브라함과 헤노바의 얼굴에는 여러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처음에는 의문이, 그다음에는 호기심이, 의심이, 경악이, 확신이, 기쁨이 차례대로 터졌다.
“너, 너, 너……!”
특히 헤노바는 이대로 쓰러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크게 격동하고 있었다.
그러다 끝내 활자들이 완전한 사람의 형상을 갖췄을 때. 정우의 모습을 한 그것은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하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뒤늦게 헤노바를 확인하고 익살맞게 웃었다.
『영감님, 오랜만이에요?』
땡그랑-
헤노바는 손에 쥐고 있던 망치를 떨어뜨렸다. 주름이 가득 진 눈꼬리를 따라 아주 작은 눈물방울이 흘러내렸다.
미웠지만, 그리웠던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정말, 정말 네가 맞아?”
『어휴. 우리 영감님, 그새 노안이 오셨나. 벌써부터 이렇게 제대로 못 보면 어떡해요? 아니지. 내 얼굴이면 절대 쉽게 잊을 수가 없을 텐데. 그럼 우리 영감님 혹시 치……!』
“함부로 주둥이를 놀려 대는 걸 보니 정말 네놈이 맞구나!”
헤노바는 짧은 팔을 허우적거리면서 정우를 와락 끌어안았다.
『어휴, 징그럽게 왜 이래요?』
정우는 헤노바를 밀어내는 척하면서도, 피식 웃으면서 헤노바를 마주 안았다. 그 역시 보고 싶었던 얼굴이었다.
무수히 반복되는 꿈의 굴레 속에서, 단 한 번도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았던 유일한 사람. 정말 고마운 아버지 같은 분이었다.
브라함은 살짝 눈시울이 붉어진 얼굴로 두 사람을 보았다. 그 역시 가슴이 먹먹한 건 마찬가지였으니. 이럴 때는 호문클루스라는 몸뚱이가 내심 야속했다.
그러다 브라함은 정우를 보다 말고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눈을 크게 뜨면서 연우를 돌아보았다.
『연우, 설마……?』
그는 정우와 헤노바가 들을 수 없게, 연결 고리를 통해 질문을 던졌다.
연우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 말도 마십시오. 두 사람에게는 절대.』
『…….』
아주 잠깐, 브라함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지만. 그는 곧 뭔가를 다짐한 듯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명심하지.』
* * *
『너무 잠이 쏟아지는데. 정말 한숨 자도 되는 거지?』
정우는 늘어져라 하품을 하면서 슬쩍 연우의 눈치를 살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면서도, 속은 걱정으로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우는 그동안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특전을 계속 반복하면서 영혼이 너무 닳고 닳은 상태였다.
언제 영소(靈素) 단위로 잘게 흐트러질지 모른다는 뜻이었다. 사실, 이렇게 망령 이하 단위로 영락하지 않고, 자아를 유지하고 있는 것만 해도 기적 같은 일이었다.
연우가 흑기를 부여해 모자란 부분을 채워 준다고 해도, 이미 망가진 격을 복원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지금도 원하면 사귀나 괴이 등급까지 강제로 올릴 수는 있었지만. 그랬다가는 오히려 또 다른 위험을 부를 가능성이 컸다.
정우도 그런 자신의 상태를 잘 알고 있었기에. 더더욱 노파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제야 겨우 그리운 얼굴들을 만나기 시작했는데.
기나긴 기다림 끝에 눈을 뜨게 되었는데. 다시 눈을 감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망령보다도 못한 모습이 되어 버린 지금, 당장 정우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걱정 마라.”
하지만 연우는 그런 동생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다.
무뚝뚝한 표정이며 말투였지만. 정우는 오히려 그런 모습에 더 마음이 놓였다.
『알았어.』
정우는 다시 밝아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았다. 파앗, 하는 소리와 함께 영체가 흐트러지면서 활자들이 튀어나와 다시 회중시계 안쪽으로 스며들었다.
연우는 가만히 회중시계를 쓰다듬다가, 헤노바 등을 돌아보았다.
“이 시계는 정우가 머무는 터와 같은 개념입니다. 우선 이것을 복구해야 정우의 치유도 병행할 수 있습니다.”
“알았네. 그 역시 적극적으로 도와야지.”
헤노바는 의지 가득한 얼굴로 소맷자락을 걷어붙이면서 뭐부터 할지 물었다.
브라함과 브론테스 3형제들도 바쁘게 움직이는 가운데.
연우의 주도하에 회중시계는 크게 분해되어 구조를 살필 수 있도록 나누어졌다. 일행은 깊은 논의 끝에 서로 다른 부분을 도맡으며 빠진 부분을 보충하고 망가진 부분을 수리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오만의 돌이 보라색 기운을 현자의 돌에 모두 뺏기고 기능이 정지하면서, 회중시계를 살피는 건 아주 순조로웠다.
“설계 자체는 ‘수트라 바스야’를 기초로 작업이 되었군. 그렇다면 풀어내기 쉽겠어.”
브라함은 회중시계의 구조를 살피면서 입가에 살짝 미소를 폈다. 수트라 바스야는 그가 구축한 연금술 지식 체계였다. 그것을 높은 수준으로 개량하고 발전시켰으니, 흐뭇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연우는 정우의 특전을 여러 번 엿보면서 이미 회중시계의 비밀을 대부분 파악해 둔 터라, 복원 속도는 퀴네에를 만들었을 때보다 더 빨랐다.
『역시 바깥이 좋단 말이지.』
그리고 정우는 틈만 나면 회중시계 밖으로 나와 유유히 돌아다녔다. 정말 다시 눈을 뜰 수 있을까 걱정하던 녀석이 맞나 싶을 정도로 활기찼다.
하도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니며 귀찮게 하니, 웬만해서는 녀석을 이해해 주려던 헤노바도 결국 참지 못하고 폭발하고 말았다.
“정신 사나우니까 좀 저리 가 있어!”
물론, 그런다고 해서 전혀 말을 들을 정우가 아니었지만.
회중시계로부터 멀리 벗어나지 못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성역의 곳곳을 누비고 다닐 판국이었다.
결국 그렇게 짧은 소란을 뒤로 하고.
회중시계의 복원이 끝났다.
째깍, 째깍-
깨끗한 것으로 교체된 유리막 아래, 시침과 분침이 정확한 시각을 가리켰다. 초침이 딱딱 움직이면서 제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숫자는 여전히 ‘XII’만 남아 있었다. 일부러 그렇게 해 둔 거였다. 처음 모습을 완전히 잃게 하고 싶지는 않아서.
『이거 보니까 그립네.』
정우는 완전히 복구된 회중시계를 쓰다듬으면서 피식 웃었다. 그러다 손가락이 시계의 겉면을 그대로 통과하는 것을 보고 쓰게 웃었다.
영력을 소비하면 어떻게든 만질 수는 있을 테지만. 그래도 물리적으로 만지는 것과 생생한 촉감으로 느끼는 것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정말 자신이 죽었다는 게 확실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정우는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밝게 웃으면서 회중시계를 뒤집었다.
익숙한 글자가 보였다.
J. W. CAH
『참 이거 봤을 때는 우리 형 언제 사람 만드나 싶었는데.』
연우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이럴 때는 자신도 딱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때는 정말 아는 게 없어도 너무 없었으니까. 뒤늦게 공부를 하려 했을 때는 정말 고생도 그런 고생이 없었다.
『그런 형이 아프리카에 가서 다국적군에 있었다고 하질 않나. 참 전부 많이 변했어, 그치?』
정우는 밖으로 나올 때면 수시로 연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덕분에 정우는 자신이 없었던 시간들을 하나하나씩 되짚어 나갈 수 있었다. 쌍둥이 형제의 시선과 경험으로.
참 많은 것들이 변했다 싶었다.
지구에서 흐른 5년이란 시간은 결코 짧은 게 아니었으니.
게다가 연우가 탑에서 겪은 일들도 하나같이 흥미진진해서 재미있었다.
사실 정우는 그동안 연우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지 않고 있었다.
그만큼 영혼석의 구조는 견고해서 비밀을 알아낸다고 해도 절대 쉽게 해제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연우가 심장에다 박은 현자의 돌을 이용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그도 크게 놀랄 정도였다. 분명 자신이 남긴 히든 피스에는 현자의 돌과 관련된 게 전혀 없었으니 말이다.
그 외에도 연우는 아주 많은 것들을 스스로 이룬 상태였다.
가령, 비그리드나 마신룡체와 같은 것들. 전부 연우가 개척한 것들이었다. 아마 자신이 남긴 것들이 없었어도, 시간이 좀 더 더뎠을 뿐 연우는 알아서 성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게 형이지.’
한편으로는 역시 그게 연우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때문일까.
『형.』
“왜?”
정우는 여태껏 묻지 않았던 질문을 이제야 겨우 할 수 있었다.
『어머니…… 는?』
연우가 자신을 발견하더라도, 그 때는 이미 50층에 도착해 엘릭서를 손에 넣고 난 한참 뒤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미 지구로 되돌아가 어머니를 낫게 한 뒤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질문은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대답을 기다리는 내내 심장은 크게 쿵쿵 뛰었다.
“편하게 가셨다.”
하지만 연우는 정우가 원하는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그저 평온한 어조 그대로 말할 뿐이었다.
『……아.』
“그래도 마지막까지 너를 믿으셨어. 웃으셨고. 언젠가 네가 돌아왔을 때, 슬픈 낯을 하고 있으면 안 된다고. 그렇게 말씀하셨었지.”
『그렇구나.』
정우는 주먹을 꽉 쥐었다. 살짝 떨어뜨린 얼굴에는 그림자가 져서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연우도 굳이 동생을 보지 않고 모른 척 슬쩍 고개를 돌려 주었다. 정우의 어깨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러다 정우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슬픈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단단해진 눈매가 무언가를 결심하고, 연우에게 단단히 고정되었다.
『나, 딸이 있다고 들었어.』
그새 브라함에게 들은 걸까. 여태 전혀 모르고 있었던 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도, 정우는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마음을 다잡은 것이겠지. 비록 바라던 것과 달리 어머니를 구해 드리지는 못했지만, 자식만큼은 구해야 한다는 의지가 정우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난 못난 자식이었지만. 그래도 어머니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자식들을 한없이 사랑하셨던 어머니가 계셨기에. 정우는 그분을 닮고자 했다.
『그러니까.』
정우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되살아나고 싶어.』
연우는 그런 동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래서 내 손으로 세샤를 안아 주고 싶어. 어머니가 우리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나도…… 그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