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364화 (364/862)

14화. 하늘 날개 (2)

연우를 보는 정우의 시선은 타 버릴 것처럼 뜨거웠다.

“되살아나고 싶다는 의미는, 브라함과는 다른 거겠지?”

『어. 맞아.』

정우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브라함과는 경우가 다르다는 거 알잖아. 나는 내 손으로 세샤를 느끼고 싶어.』

브라함은 원래 신이었던 존재가 임의로 육체를 만들어 하계로 강령했던 형태.

당연히 호문클루스라는 육체를 사용했다고 해도,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긴 것밖에는 되지 않았다.

하지만 정우는 달랐다.

원래 인간이었던 존재였다.

비록 지금 이렇게 자아를 갖고 있어도, 피와 살을 가지고 있던 시절이 그리울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연우는 정우의 바람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같이 세월을 보내고 싶은 거겠지. 여태껏 그렇게 해 주지 못했으니.’

정우는 아난타, 세샤와 함께 따스한 온기를 나누고자 했다. 그들과 같이 웃고, 떠들고, 행복해하면서 같은 시간대를 누리고 싶어 했다.

그것이야말로.

‘정우가 가장 바라던 행복이었으니까.’

어머니, 연우, 정우, 세 사람이 함께 있었을 시절은. 가난했지만 언제나 입가에 웃음만 가득했던,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으니.

『가능…… 할까?』

정우는 그답지 않게 슬쩍 연우의 눈치를 봤다. 자신이 봐도 얼마나 터무니없는 부탁을 하는 건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부활이라.

사실 이 일을 해낸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까. 거의 신화나 전설에서 다뤄질 법한 이벤트였다.

죽은 자의 영혼을 잠시 불러온다거나, 갓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자를 소생시키는 기적 단위의 마법은 이따금 있어 왔지만.

정우는 이미 죽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났고, 육체도 화장해서 모두 흩뿌린 탓에 부활을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정우는 현재 영혼도 쇠락할 대로 쇠락해서, 이대로 저승에 간다고 해도 환생도 불분명한 수준이 아니던가.

‘사실 이렇게 영혼을 예속시켜서 쉽게 다루는 것도, 말도 안 되는 권능이기는 하지만.’

그렇다 보니 정우는 자신의 그런 소망을 말하면서도, 말하는 내내 입가에서 쓴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사실 이렇게 회중시계 밖으로 나와 바깥세상에서 눈을 뜬 것만 해도 기적적인 일이건만. 너무 과한 욕심을 부리고 있었으니.

어쩌면 오랜만에 형을 만났으니, 여태껏 눌러 뒀던 응석이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 건지도 몰랐다.

그런데.

“……어쩌면, 가능할지도.”

『응?』

연우의 혼잣말에. 정우의 눈이 살짝 커졌다.

『가능하다고? 그게?』

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신은 없지만. 어쩌면, 방법이 있거나, 생길지도 몰라.”

연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손발에 묶인 팔찌와 족쇄를 두들겼다.

정우의 표정도 딱딱해졌다. 그 역시 연우가 탑을 오르면서 얻게 된 힘이 무엇인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특전을 무수히 반복하면서, 탑의 비밀을 거의 알아냈는데도 불구하고 존재조차 짐작할 수 없는 존재. 칠흑왕의 권능을 빌리자는 뜻이었다.

“칠흑왕의 세트 중에 남은 건, 목에 찰 항쇄뿐이야. 그리고 그걸 얻기 위해서는.”

『퀴네에를 얻어야 한다고 했지?』

“그래.”

『하지만 하데스가 호락호락하게 주지는 않을 테고.』

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적을 세워서, 포상으로 받아 내야겠지.”

* * *

[아가레스가 당신과 당신의 형제를 빤히 바라봅니다.]

[아가레스의 얼굴에 경악이 잔뜩 퍼집니다.]

[아가레스가 잔뜩 흥분한 채 길길이 날뛰면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릅니다.]

[아가레스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메시지: 왔구나! 드디어! 드디어! 너희 형제들이! 그러니 이제 날……!]

[다른 신과 악마들의 권한으로 아가레스의 메시지가 잠시간 차단되었습니다.]

『아가레스, 저 새끼는 아침부터 왜 저래?』

“내버려 둬라. 원래 저랬었던 놈이니.”

[아가레스가 자신의 권한으로 차단을 해제하였습니다.]

[아가레스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메시지: 내가 무슨 문제가 있……!]

[다른 신과 악마들의 권한으로 아가레스의 메시지가 잠시간 차단되었습니다.]

[다른 신과 악마들이 아가레스에 대한 안건에 대해 투표를 진행합니다.]

[투표 결과, 만장일치로 아가레스에게서 며칠 동안 발언권을 박탈합니다.]

[아가레스가 억울하다며 길길이 날띕니다.]

[비마질다라가 곧 타르타로스에서 벌어질 당신의 이벤트가 어떨지 크게 관심을 기울입니다.]

[케르눈노스가 타르타로스의 거친 환경에 고생하고 있을 자신의 신령에게 축복을 내립니다.]

[모든 죽음의 신들이 지켜봅니다.]

[모든 죽음의 악마들이 살펴봅니다.]

[모든 전쟁의 신들이 승전을 기원합니다.]

[모든 전쟁의 악마들이 어서 날뛰라며 종용합니다.]

……

『그나저나.』

정우는 예나 지금이나 자신에 대한 탐욕을 숨기지 않는 아가레스를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뭔가 자신에게 간절히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눈치였지만, 어차피 평소와 같이 쓸데없는 말이겠거니 싶어 무시했다.

『어렴풋이 느끼곤 있었지만, 정말 많기는 더럽게 많네.』

그러다 연우를 둘러싼 시선들을 훑어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도 이래저래 여러 신과 악마들로부터 관심을 사고, 러브 콜도 받아 봤다지만. 그래도 이렇게 많은 신과 악마들이 함께하고 있는 건 그로서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신과 악마 중 하급에게라도 관심을 받고 싶어서 안달이 난 플레이어들이 많다는 것을 감안해 본다면. 참 쉽게 말이 나오질 않았다.

문제는 여기서 안달이 난 건 신과 악마들 쪽이라는 것.

대충 어림잡아 헤아려 봐도 3천여 개가 훌쩍 넘었다.

『대체 받아들인 권능이 몇 개야?』

“잠깐만.”

연우는 창을 띄워 권능의 수를 체크했다.

“3,702개. 아니, 3,703…… 3,704개다.”

『…….』

아무래도 이 시간에도 꾸준히 권능의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모양이었다. 연우는 이제 그걸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정우는 질릴 대로 질리고 말았다.

『그렇게 많으면 안 힘들어?』

“버거워. 다행히 육체가 버텨 주고 있으니까. 하지만.”

『본격적으로 싸우려 하면 힘들겠네?』

연우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채널링이 900여 개 정도였을 때는 그래도 마신룡체로 충분히 감당할 만했었다. 아스트라이오스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때보다 권능의 수가 4배 가까이 늘어난 지금은 어떻게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권능의 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단순히 채널링의 숫자만 늘어난다는 게 아니었다.

신과 악마들의 관심을 부담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기 때문에, 단순히 산술적으로 4배가 힘든 게 아니라 그보다 몇십 곱절로 힘들 수밖에 없었다.

만약 마신룡체라는 육체가 없었거나, 영혼의 격이 조금이라도 낮았더라면. 이미 연우의 자아는 초월자들의 존재감에 짓눌려 짜부라졌을지도 몰랐다.

그러니 이런 몸으로 전장에 나서 봤자, 좋은 꼴을 보이기가 힘들었다.

아니, 아스트라이오스를 잡을 때보다 힘이 현저히 떨어져서 오히려 위험만 클 것 같았다.

『이래서는 전장에 나서도, 크게 공적을 세우기 힘들겠네.』

연우가 그렇다는 듯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타르타로스의 전쟁에 참전하겠다는 건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린 사안이었다.

연우도 정우를 되살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니까.

지금처럼 하루에 단 몇 분, 몇 시간만 나와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아니라, 밤새 같이 술을 마신다거나, 티격태격하더라도 같이 길을 걷고 싶었다. 제 발로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도 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소중한 조카인 세샤가 밝게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아난타가 깨어나 정우와 함께 하는 모습도.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가진 것들을 전부 정리해서, 완전히 제 것으로 삼을 필요가 있었다.

『하드웨어도 뛰어나고, 구성 소프트웨어도 참 좋은데. 그 좋은 소프트웨어들이 너무 많이 활동하고 있으니 기능이 좀먹힐 수밖에.』

정우는 연우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혀를 찼다.

마신룡체라는 하드웨어는 원래 정우가 바라 왔던 만큼 뛰어난 육체. 그 한계는 아직 탑도 상정하지 못할 정도로 깊다. 하지만 이리저리 날뛰는 여러 소프트웨어와 프로그램들은 하드웨어의 기능을 다운시킬 수밖에 없다.

『물론, 지금도 조금 익숙해지면 용의 지식으로 어느 정도 연산 처리는 가능할 것 같지만……』

“쉽지 않지.”

『어. 그래 보여.』

정우는 손으로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거기다 히든 피스로 이래저래 주워 담은 스킬들도 중구난방으로 얽혀 있고.』

연우가 오러를 깨달으면서 천익기공으로 한차례 정리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모자란 게 사실이었다. 용신안이나 바람길 같은 스킬들은 이미 천익기공의 범주를 넘어섰으니.

『이래서 내 하늘 날개가 필요하다고 한 거구나.』

“그래.”

연우는 정우가 파악한 것보다 훨씬 상세하게 자신의 몸 상태를 파악하고 있었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단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운영 체제가 필요했다.

서로가 잘났다면서 떠들어 대기 바쁜 여러 소프트웨어들을 시스템하에 두어 효율적으로 관리해 주고, 하드웨어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데이터 연산과 작업 계획 따위를 자동적으로 조정해 주는 체제. 오퍼레이팅 시스템(Operating System).

쉽게 말해, 따로 의념을 투영하지 않아도 권능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여, 마신룡체의 기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자동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다행히 그런 운영 체제는 멀리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하늘 날개.

이미 21층에서도 겪어 본 적이 있던 정우의 시그니처 스킬이라면. 충분히 운영 체제로서의 활용도 가능하다 싶었던 것이다.

‘하늘 날개는 원래 용의 인자가 가진 한계를 극대화시켜서 특성과 권능, 스킬들을 모두 하나로 엮는 스킬이었으니까.’

어디 그뿐이랴. 마력 강화를 비롯해 신체적 능력 향상 및 마법적 효과까지 누릴 수 있어서 버프 계통의 스킬에 있어서는 최고봉을 달렸다.

그래서 부여된 넘버링도 002.

비록 지금은 불의 파도에 밀려 003번으로 밀려났다지만, 그래도 뛰어난 스킬인 건 틀림없었다.

아니, 사실 불의 파도와 비교를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타격용 스킬과 버프용 스킬은 애당초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다. 어느 것이 우위라고 하는 게 웃긴 것이다.

여하튼.

이런 하늘 날개를 얻을 수 있다면. 아니, 마신룡체에 맞게 개량된 하늘 날개를 얻을 수 있다면?

그때는 정말 제대로 된 날개를 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연우는 그게 불가능하다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애당초 하늘 날개는 정우가 창안한 스킬이었고, 자신도 같이 머리를 맞댄다면 충분히 새롭게 개조할 수 있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자신의 특성과 어우러지면서 권능에 가까운 효과를 내는 바람길이나 불의 파도와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을 물건이 나올 터였다.

그리고 다른 스킬과 권능, 특성들도 덩달아 향상되겠지.

전반적인 성장을 꾀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그저 그런 성장이 아닌, 폭발적인 성장을.

『형.』

“왜?”

『당신의 양심, 무사하십니까?』

정우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지금만 해도 사기적인 능력이 한두 개가 아니건만. 그걸로도 만족하지 못한다는 뜻이니.

예나 지금이나 형은 참 욕심이 많았다.

“당연히 없지.”

연우는 팔짱을 끼면서 대놓고 콧방귀를 꼈다.

“좋은 건 내가 다 가져야 하니까.”

『사스가 인성왕…….』

정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역시.

형은 자신보다 몇 수 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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