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377화 (377/862)

2화. 기간토마키아 (2)

[비마질다라가 만족에 찬 웃음을 보입니다. 당신이 내린 결정에 깊은 흥미를 보입니다.]

[비마질다라가 자신의 권능이 더 유용하게 쓰였으면 한다는 희망을 내비칩니다.]

[비마질다라가 하사한 권능 ‘검은 구비타라’가 서른네 번째 구성요소가 되었습니다.]

그 메시지가 마지막이었다.

당장 오른쪽 날개의 구성 요소, 즉, 투쟁이라는 키워드의 톱니바퀴가 되기를 자처한 권능은 모두 34개였다.

5천여 개나 되던 권능의 수에 비하면 너무 턱없이 부족한 숫자였지만.

무게는 절대 적지 않았다.

아테나와 헤르메스, 혼돈처럼 처음부터 연우에게 호의를 보였던 존재들은. 각각의 사회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신격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이 내린 권능의 무게도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웬만한 중급 및 하급 신격들의 권능 수십 개를 가져다 대더라도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으니.

특히 흔쾌히 자신의 가장 중요한 권능을 내어 준 비마질다라의 무게는 수백 수천 명분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만큼 컸다.

그러다 보니 투쟁의 날개가 가지는 무게도 엄청날 수밖에 없었고.

그 속에 담긴 권능들도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서로 이질적이어서 잘 맞지도 않았지만, 오만의 돌에서 흘러나온 보라색 기운은 이런 차이마저도 모두 수용하면서 톱니바퀴의 회전률을 극도로 높였다.

특히 지금 연우가 처한 상황은 상대를 절대 이길 수 없는 위급한 처지였으니.

‘투쟁’이라는 키워드가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화아악-

연우는 자신의 몸으로 흘러들어오는 엄청난 양의 신력과 마기를 느낄 수 있었다. 신의 인자와 마의 인자가 반갑다면서 환호를 질러 댔다.

우드득, 우득-

반면에 열세에 놓인 용의 인자는 균형을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해서 새로운 변모를 시도했으니. 마신룡체가 가진 가능성이 다시 한번 더 깊어졌다.

[시차 괴리]

연우는 다시 한 번 더 사고 속도를 최대로 높이면서 빠른 판단을 내리기 시작했다.

지금 이 터질 것 같은 힘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불과 30여 초.

이 안에 어떻게든 승부를 봐야만 했다.

‘아니. 미완성인 투쟁의 날개로 만은 힘들어. 그렇다면.’

파앗-

연우는 왼쪽 날개도 똑같이 뽑아 올렸다. 엉성하기만 한 투쟁의 날개와 다르게 화려하게 불타오르는 죽음의 날개가 하늘에 닿을 것처럼 치솟았다.

두 날개가 동시에 펼쳐졌다. 사용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버틸 수 있는 한계는 11초로 확 줄어들고 말았다.

연우는 아공간을 열어 비그리드를 빠르게 뽑았다. 10초.

그리고 블링크를 전개해서 이아페토스의 오른쪽 어깨 위에 착지했다. 9초.

연우를 잡기 위해 뭉쳤던 열풍이 도중에 방향을 꺾었다. 단단히 압축되면서 생성된 칼날 바람이 연우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죽음의 날개가 크게 홰를 쳤다. 공간이 일그러지면서 칼날 바람이 모조리 부서졌다.

퍼퍼펑. 시끄러운 폭죽 소리가 잇달아 울렸다. 그사이, 연우는 비그리드를 역수로 쥐면서 그대로 이아페토스의 어깨에다 박았다. 8초.

양쪽 날개를 동시에 펼치면서 최대로 부풀린 에너지가 고스란히 비그리드 쪽으로 실렸다.

‘니케……!’

『응응! 맡겨만 줘!』

연우의 다급한 외침에 니케가 성화로 변하면서 비그리드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에너지를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어 화려하게 불타올랐다.

화르르륵-

삽시간에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이아페토스를 집어 삼켰다.

쿠어어어!

이아페토스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7초.

어떻게든 연우를 떨쳐 내기 위해서 발버둥 치기 시작했지만, 연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비그리드는 더 깊숙하게 박히면서 불길이 더 화려하게 타올랐다.

얼마 전에 획득한 비그리드의 특성 때문이었다.

아스트라이오스를 잡았을 무렵, 연우는 비그리드의 숨겨진 조건 중 일부를 달성했다는 메시지를 본 적이 있었다. 가려진 이름을 밝힐 수 있는 힌트였다.

이때 받았던 내용은 퀘스트였다.

[히든 퀘스트 / 숨겨진 이름]

내용: 위대한 성검은 은의 시대에 탄생한 이후, 수많은 영웅들의 손을 전전하면서 그만큼 많은 이름을 얻었다가 잃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저주를 받아 마검으로 변질된 이후, 영광스러웠던 이름들을 모두 잃어버리고 아무도 찾지 않는 허름한 동굴 속에 버려져 새로운 주인이 찾아올 때까지 수백 년을 꼬박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만나 새로운 업을 추가하면서 성검으로서의 기능을 되찾기 시작했고, 용혈과 신력으로 저주를 씻으면서 이제 옛날의 모습을 되찾기 직전까지 다다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래전에 잃어버린 이름들은 전설과 신화 속에 묻혀 도저히 되찾을 길이 없습니다. ‘비그리드’라는 이름도 후대에 붙여진 가명일 뿐입니다.

‘비그리드’도 그동안 자신의 옛 이름을 되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초월성이 부여되면서 영성(靈性)이 깨어나 이제 옛 모습을 되찾고자 하는 의지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이름은 사물의 특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작용을 합니다. 옛 이름을 되찾아야만 ‘비그리드’도 온전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새로운 업을 추가할 때마다 힌트가 제공될 것입니다.

이 힌트들을 바탕으로 옛 이름‘들’을 찾으세요.

이름을 되찾을 때마다 비그리드는 새로운 특성과 신비로운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제한 조건: ‘비그리드-???’의 소유자. 초월성 보유.

제한 시간: -

달성 조건:

1. 업적 추가 → 힌트 제공

2. 힌트 추론 → 진명 발견

3. 진명 개방 → 특성 재개

*현재 제공된 힌트(2/?)

1. 이 검을 쥔 영웅은 모두가 위대하였다. 그들의 이름은 전설로 남아 있다.

2. 어느 소유자는 이름 모를 거인의 오른팔을 잘라 그가 가지고 있던 검을 갖게 되었다. 이때, 거인의 저주가 검에 남아 이후의 소유자들은 모두 저주를 피할 수가 없었다.

처음 주어진 힌트는 두 가지.

어떻게 보면 아주 흔하디 흔한 전승으로만 보일 수도 있어, 이것으로 어떻게 이름을 유추할 것이 냐고 물을 수도 있을 테지만.

오랫동안 비그리드를 다뤄 왔던 연우는 언제부턴가 검 속에 담긴 영성의 의지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더라도. 이리 저리 사용하다 보면 과거의 전승과 대조해서 특징을 유추할 수 있는 법이었다.

그래서 이미 추론했었던 이름이 몇 가지 있었고.

퀘스트와 함께 주어진 힌트를 통해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비그리드가 가졌던 수많은 이름 중 하나는 바로.

‘듀렌달(Durendal).’

위대한 서사시, 〈일리아스〉의 주인공인 영웅 헥터가 거인 유트문더스가 사용하던 것을 죽여 빼앗았다는 전승을 지닌 검이었다.

전력의 열세와 끝내 패배하리라는 신탁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고국을 지키고자 투쟁을 거듭하다가 결국 유트문더스의 저주처럼 눈을 감고 말았던 영웅의 전승이 어린 만큼.

듀렌달이라는 이름을 되찾은 비그리드는 다른 어느 때보다도 화려한 빛을 터뜨리고 있었다. 6초.

그리고.

초월성을 획득한 존재들은 대개 자신의 업적을 기반으로 힘을 발휘한다. 이때의 업적이란 흔히 말하는 신화였으니. 상성 차이도 여기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았다.

듀렌달은 영웅 헥터가 ‘거인을 쓰러뜨렸다’는 전승을 지니고 있었다.

즉, 거인을 상대함에 있어서만큼은 뛰어난 성질을 자랑한다는 뜻이었으니!

지금 연우가 맞닥뜨리고 있는 존재는 ‘거인처럼 커진’ 신이었다. 상성적으로 비그리드가 앞서기 시작한 것이다.

[‘비그리드-???’가 새로운 진명, ‘듀렌달’을 획득했습니다.]

[‘듀렌달’의 진명을 개방합니다.]

[전승: 거인 살해]

콰콰콰-

비록 연우가 획득한 초월성이 아직 너무 적은 나머지 듀렌달의 완전한 진명 개방은 불가능했지만, 그래도 성화를 품은 이상 이것만 해도 엄청난 힘이었다.

크아아악!

이아페토스는 전신을 휘감은 불길에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거무튀튀하던 몸이 고열로 빨갛게 달아오르고, 살가죽이 부르트면서 균열이 조금씩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균열 사이사이로 불길이 용암처럼 줄줄 흘러내렸다.

이아페토스는 다시 한 번 더 신격을 해방하고자 했다. 지금 거신력을 풀어 버리면 다시는 거신이 될 길이 없었지만, 당장은 그러지 않으면 정말 위험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몸이 말을 듣질 않았다. 마치 무언가에 꽁꽁 묶여 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이아페토스는 그제야 자신의 신격 개방을 방해하는 게 무엇인지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다.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저 허공 너머에, 자신을 노려보는 눈길이 있었다.

『아테나……! 네년이로구나…… 네년이……!』

인과율에 그만한 대가라도 지불한 것일까. 그렇다면 무엇을 내놓았기에 신격을 막을 수 있는 것일까. 아무리 빛의 기둥이 놓여 올림포스와 타르타로스의 교류가 원활해졌다지만, 그래도 상당한 희생을 필요로 할 텐데……!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비스듬히 열린 공간 사이로 날파리 같은 것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부의 눈이 드러나 그를 공격하고, 아킬레스건을 잘랐던 샤논과 한령 등이 나타나 이아페토스를 쉴 새 없이 휘몰아쳤다.

거기다 여태 볼 수 없었던 다른 녀석들도 추가되어 있었다.

땅거죽을 따라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싶더니, 촉수 같은 게 넘실넘실 올라와 이아페토스를 칭칭 감았다. 그 속에는 크고 작은 의념들이 덕지덕지 발려 있었다.

[영괴(靈怪)]

괴이가 몇 단계 이상으로 진화한 형태. 평상시에 그림자 속에 존재하는 영차원에 숨어 있다가, 필요할 때마다 물리적인 실체를 구현한다.

어느새 변태를 끝내고 새로운 형태로 거듭난 괴이들이었다. 연우의 그림자,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존재들. 오로지 그의 의지로만 움직이는 괴물들이었다.

5초.

4초.

3초.

그렇게 시간은 착실하게 깎여 가고 있었고, 이아페토스의 거체도 같이 무너졌다.

2초.

1초.

그리고 마지막 한계점에 다다랐을 때.

쾅!

연우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가속 시간에서 튕겨 나고 말았다. 두 날개가 해제되면서 몸뚱이도 같이 튕겨 나 바닥으로 추락했다.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두 날개를 억지로 시전해서일까. 반발력으로 몸이 온통 진탕이 되고 말았다.

마신룡체라는 육체가 드디어 한계에 부딪친 느낌이었다. 비그리드도 어느새 듀렌달의 형태를 잃고 평범한 검으로 되돌아가 있었지만.

추락하는 동안, 연우의 입가에는 어렴풋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

자신의 한계를 드디어 체감했다는 사실이, 그리고 자신의 힘이 신적인 존재에게도 어느 정도 통할 정도로 강해졌다는 사실이 뿌듯했던 것이다.

『죽인다……! 죽인다!』

드디어 고통에서 해방된 이아페토스의 상태는 두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 있었다. 여전히 몸 여기저기에 산재한 불길이 그를 먹어 치우는 중이었다. 균열로 갈라진 몸의 조각들이 아래로 우수수 쏟아졌다.

그리고. 균열 사이사이로 검은 기운들이 마구 밖으로 쏟아졌다. 마치 장독대가 깨져 물이 줄줄 새듯이, 거신이라는 틀이 깨지면서 크로노스의 시정이 흘러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 때문에. 이아페토스는 연우를 죽이겠다는 의지와 다르게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안 된다……! 안 된다……!』

어떻게든 새어 나가는 크로노스의 시정을 붙잡아 보려 발버둥 쳐 봤지만, 거신력은 손가락 사이사이로 빠져나가면서 흩어졌다.

그러다 거신력은 돌개바람을 그리면서 연우에게로 쏟아졌다. 아니, 정확하게는 연우가 착용하고 있는 팔찌와 족쇄 쪽이었다.

우웅, 웅-

칠흑왕의 형틀은 크로노스의 시정을 한껏 먹어 치우면서 기분 좋게 울음을 토해 냈다. 연우도 어떻게 손을 쓸 새도 없이 벌어진 기현상이었다.

『크아아……!』

결국 연우에게 당하다 못해 이제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기까지 한 이아페토스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광분을 터뜨렸다.

그사이에도 그의 몸집은 계속 줄어들면서 끝내는 원래대로 되돌아갔다. 시뻘개진 두 눈이 겨우겨우 바닥에 착지한 연우에게 고정되었다.

“네놈만큼은……!”

이아페토스는 더 이상 진언을 내뱉을 힘도 없어 육성을 내뱉으면서 천천히 연우에게 다가갔다. 그는 어느새 모든 거신력을 잃고 원상태로 되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티탄은 티탄. 모든 힘을 소진한 플레이어 한 명쯤 손쉽게 죽일 힘은 있었다.

“카인을 구해라!”

“카인을 지켜!”

뒤늦게 람과 남은 디스 플루토들이 연우를 지키기 위해 다급하게 움직이는데.

『거기까지.』

갑자기 하늘이 갈라지면서 거대한 동공이 드러났다.

재미있다는 듯 웃고 있는 눈동자.

티폰이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