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기간토마키아 (7)
“그만두세요, 숙부.”
아테나는 눈빛을 예리하게 빛냈다. 언제나 연우와 정우를 애타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녀였지만, 지금만큼은 당장에라도 포세이돈을 꿰뚫을 것처럼 날카로웠다.
포세이돈은 그런 조카를 보면서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저 시건방진 조카는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자신이 하려는 일에 훼방이나 놓고 다녔다.
지금도 마찬가지.
칠흑왕이 어떤 존재인지 알지도, 겪어 보지도 못했던 주제에. 그저 우연히 알게 된 옛이야기만 듣고서 이렇게 두둔하는 꼴이라니. 그건 절대 한낱 필멸자가 가질 힘 따위가 아니었다.
하지만 뭐라고 떠든다 한들, 들어 먹을 조카가 아니었다.
아니, 그런 것을 다 떠나서라도.
“감히 내 앞을 막아?”
포세이돈은 자신이 하려는 행사를 방해하는 것을 묵과할 수 없었다. 그것이 조카라고 해도.
“비키지 않으면…… 오냐. 같이 죽여 주마.”
포세이돈이 영압을 거칠게 방출했다. 어마어마한 기세가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는 가운데, 가뜩이나 세 신격의 등장에 식은땀을 흘리던 디스 플루토들은 일제히 자리를 피해야 했다.
아테나와 헤르메스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다.
고오오-
3명의 대신격들의 영압은 대기를 밀어내면서 커다란 태풍을 만들어 낼 정도였다.
이대로 명왕의 신전이 흔들리는 게 아닐까 싶던 그때.
“포세이돈!”
저 멀리, 제단 위에서 하데스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으르렁거렸다. 올림포스의 가족들을 맞이하고 있던 그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신력을 뿌렸다.
감히 자신의 땅에서 행패를 부리는 건방진 동생에 대한 분노였다.
우르르, 쿠르릉!
하늘에서부터 검은 벼락이 잇달아 떨어지고, 대지가 위아래로 크게 요동쳤다.
이곳은 그의 성역이며, 타르타로스는 그의 영지. 신의 의지는 성역에 고스란히 묻어나기 마련이었다.
사위를 압도하는 어마어마한 중압감이 내려앉았다.
순간, 제단 위에 나타났던 다른 올림포스 신들의 안색이 시퍼렇게 질렸다.
사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타르타로스의 구원군으로 나타나면서 한껏 거들먹거릴 생각으로 가득했던 그들이었지만.
뒤늦게 떠올릴 수 있었다.
과거, 기간토마키아와 티타노마키아가 벌어질 당시에 하데스가 어떤 존재였던지를.
비록 그 뒤로 명계를 다스리게 되면서 천계에서 퇴장해 외부로 모습을 비치는 일이 거의 없다시피 하면서, 그들의 머릿속에서 잊힌 존재가 되었지만.
당시에 그는 제우스조차도 한발 양보를 할 정도로 엄청난 패도를 자랑하던 폭군이었다.
특히 하데스는 자신의 명예를 더럽히는 짓을 절대 참지 못했다.
“감히 내 영지에서 허락 없이 무기를 빼 들어? 나를 적으로 돌리겠다, 그렇게 보아도 되나?”
쿠르르, 쿠르릉-
하데스가 한 마디 한 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검은 벼락이 더 거세게 휘몰아쳤다.
하지만 포세이돈도 그와 같은 올림포스를 다스리는 주신. 인상을 일그러뜨리면서 지지 않고 맞섰다.
“형제여! 그대는 ‘그’가! 칠흑이 어떤 존재였는지 그새 잊어버렸나? 우리 형제가 목숨을 던져 끄집어 내렸던 존재다! 거대한 장벽처럼 보였던 크로노스를 겨우 넘어서면서 맞섰던 존재였단 말이다! 그런데도 어째서……!”
포세이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콰르릉!
수십 개의 벼락이 응집된 검은 벼락이 다시 한 번 더 포세이돈의 발 앞에 떨어졌다.
포세이돈이 흠칫 놀라면서 뒤로 물러섰다. 하데스의 두 눈은 여전히 흉흉했다.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그 창, 내려놓아라. 네 앞에 있는 아이는 나의 벗이며 손님이다.”
벗이며 손님.
절대 봐주지 않겠다는 집념이 물씬 풍겼다.
하데스는 포세이돈이 계속 머뭇거리자 허리춤에 달고 있던 검으로 손을 가져갔다.
올림포스 신들도 안절부절못했다. 이대로 하데스와 포세이돈이 충돌하면 정말 모든 게 끝장이었다. 다 같이 손을 잡고 싸워도 모자랄 판국에 내분이 있어서야 티탄과 기가스만 좋다고 달려들 테니까.
문제는 하데스와 포세이돈, 둘 다 자존심이 강해서 절대 양보를 하지 않을 성격이란 점이었다.
결국.
“……빌어먹을!”
포세이돈은 울분을 참지 못하고 창날을 옆으로 돌렸다. 아무것도 없는 성역의 일부가 그대로 날아갔다.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던 영압도 해제되었지만, 여전히 대기는 뜨겁게 끓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도 화가 풀리지 않는지, 포세이돈은 여전히 씩씩대고 있었다.
그러다 연우 쪽으로 고개를 홱 하고 돌리면서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노려봤다.
“지금은 운이 좋아 넘어간다만. 네놈이 내게 준 수치와 모욕은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어마어마한 영압이 연우의 어깨를 짓눌렀다. 평범한 플레이어라면 그대로 졸도를 하거나, 영혼이 짜부라질 정도로 무거운 압력이었지만.
피식-
연우는 그런 포세이돈을 보면서 대놓고 비웃음을 던졌다. 신격이나 되고서도 어린아이처럼 고집을 피워 대는 꼴이 우습기만 했다.
“좋을 대로.”
“이……!”
포세이돈의 관자놀이로 핏줄이 잔뜩 돋았다. 아주 잠깐, 그의 머릿속엔 하데스와 정말 충돌하는 한이 있더라도 연우를 처치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결국 꾹 눌러 담아야만 했다.
분명 전력을 다한다면 쉽게 죽일 수 있겠지만,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을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신살을 이룬 플레이어. 신격에게도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포세이돈은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충동을 억누르면서 몸을 반대쪽으로 홱 하고 돌렸다.
포세이돈을 따르는 휘하 제신(諸神)들은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헤르메스와 아테나에게 인사를 하고 연우를 노려보다 주군을 뒤따랐다.
그 속에는 헤스티아, 헤라, 데메테르로 보이는 여신들도 섞여 있었다.
그렇게.
살벌하기만 했던 올림포스와 타르타로스의 재회가 끝난 뒤.
철컥-
아테나는 포세이돈 등이 완전히 물러난 뒤에야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도로 검집에 밀어 넣었다. 그러나 여전히 날카롭게 벼려진 전의는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헤르메스는 그런 누이를 보면서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거 알아, 누이?”
“뭘?”
아테나는 이 장난기 많은 남동생이 또 무슨 장난을 치려는 건가 싶어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헤르메스는 살벌한 기세를 받으면서도 짓궂은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그렇게 너무 살벌한 모습만 보이면, 호감 갖고 다가온 남자들도 무서워서 다 떠나간다고.”
“……!”
아테나는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재빨리 신색을 회복했다. 하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뒤였다. 연우가 빤히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테나는 살짝 당황해하면서 얼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직접 만나면 할 이야기가 많을 것처럼 굴더니. 거봐. 내 말이 맞지?』
순간, 헤르메스의 전음이 그녀의 귓가에 살짝 울렸다. 정우를 다시 만난 연우를 보는 내내 발을 동동 구르던 자신을 보며, 껄껄 웃음을 터뜨리던 헤르메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뭐라고 했더라? 실제로 만나면 오히려 할 이야기가 쏙 들어갈 거라고 했었지, 아마?
그때는 헛소리 말라면서 단호하게 말했었는데. 헤르메스의 말대로 연우를 만나니 당황한 나머지 해 주고 싶었던 말들이 쏙 들어가고 말았다.
이전까지 자신이 돌봐 주었던 아이가, 이제는 동생을 둘러싼 옛 일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일들도.
이 아이는 아직도 날 원망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아서 섣불리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자리는 내가 알아서 피해 줄 테니 이야기 잘 해 보라고.』
헤르메스는 능글맞게 웃으면서 연우에게 한쪽 눈을 찡긋하고는 가볍게 땅을 박차 사라졌다. 아테나는 순간 그런 동생의 낯짝을 한 대 후려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꾹 참아야만 했다.
“다친…… 곳은?”
아주 짧은 순간, 아테나는 다시 한번 더 무슨 말을 꺼내야 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입 밖으로 삐져 나온 말은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단순한 질문이었다. ‘지혜’를 관장하고 있기도 한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입을 두들기고 싶었다.
“없습니다. 덕분에.”
“그렇다고 하니 다행이구나.”
“예.”
“…….”
“…….”
짧은 대화가 오고 간 뒤에도, 잠시 둘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멀뚱하게 눈을 뜨며 두 사람을 번갈아 본 순간.
[시차 괴리]
화아악-
갑자기 연우와 아테나를 제외한 세계가 정지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한없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연우가 사고 속도를 가속화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의 의도대로, 아테나는 아주 손쉽게 연우의 사고 속도를 맞출 수 있었다.
이 시끄러운 환경에서, 둘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때, 회중시계가 돌아가면서 정우의 영체가 천천히 밖으로 빠져 나왔다. 그는 오래전부터 특전에 이르기까지, 줄곧 멀리서 자신을 지켜봐 주었던 신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런 얼굴이었었구나. 아테나를 처음 본 순간, 정우의 머릿속에 든 생각이었다.
분명 처음 본 얼굴인데. 왠지 모르게 낯이 익었다. 아마도 저 눈빛 때문일 것이다. 슬프게 바라보는 눈. 그러면서도 눈을 감던 마지막까지 자신을 응원해 주던 눈이 있었다.
그래서 정우는.
『감사했습니다.』
언젠가 그녀를 만나면 하고 싶었던 인사를 드디어 할 수 있었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인사였기에. 아테나의 눈동자가 위아래로 크게 떨렸다.
“난…….”
『마지막까지 제 곁을 지켜 준 사람은, 아테나였으니까요.』
“…….”
아테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정우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물론, 아테나를 많이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처음부터 줄곧 저를 지켜보고 있었으면서 이렇다 하게 모습을 내비친 적도 없었으니까요. 그냥 관찰만 하는 모습이 불쾌하기도 했고, 마지막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을 때에는 어떻게든 도와주길 바랐으니까요.』
정우는 적들과 싸우면서 눈을 감기 직전에 떴던 메시지가 떠올렸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신이 당신을 슬픈 눈으로 바라봅니다. 아마 그런 내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메시지는 수없이 반복되는 특전 속에서도 계속 나타나곤 했었다.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어떻게 보면 관망이기도 했지만.
또 어떻게 보면 자신의 곁을 마지막까지 지켜 준 고마운 사람이기도 한 셈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눈을 감을 때는 항상 같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너무 외롭지는 않구나. 나를 오롯이 봐주는 사람은 있구나 하는 생각을요.』
사실 따지고 보면, 아테나는 정우를 도와줄 이유가 없기도 했다.
그저 미래를 살짝 엿보고 연민을 표시한 것뿐이니까.
그렇다고 따로 개입할 수도 없었다. 탑의 정교한 시스템은 천계의 불필요한 개입을 인과율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차단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뒤로 아테나가 어떻게든 전력을 다해 연우와 정우를 도와주려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게 말해 주어…… 고맙구나.”
아테나는 엷은 미소를 띠면서 눈가를 훔쳤다. 살짝 눈물이 맺혀 있었다. 타르타로스와 연결되어 다시 연우 형제를 만나게 되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계속 고민을 했었는데. 이렇게 이들이 먼저 다가와 주니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그런 아테나를 보면서.
정우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신이지만, 여린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 늘 자신을 슬픈 눈으로 바라볼 때부터 느꼈지만, 생각보다 더 여린 것 같았다.
이렇게 가녀리기만 한 사람이 어떻게 전쟁과 지혜의 여신이 될 수 있었을까. 분명히 포세이돈에 맞서서 으르렁거릴 때는 그렇게 무서우면서도 든든할 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옆집에 사는 누나 같았다.
그래서. 정우는 어쩐지 자기도 모르게 어머니가 떠올랐다.
화악-
정우는 무의식적으로 날개를 활짝 펼치면서 아테나에게 바짝 다가갔다.
숨결이 바로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
아테나는 자기도 모르게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여태껏 살면서 자신에게 이렇게 지근거리에 다가온 남자는 한 명도 없었다.
평상시라면 이게 무슨 짓이냐며 그냥 물리쳤을 테지만. 정우의 맑은 눈동자를 보고 있으니 그럴 마음이 싹 사라졌다. 오히려 당황스럽기만 했다.
그리고.
와락-
정우는 아테나를 살포시 끌어안아 주었다. 괜찮다고 말하듯이.
처음 아테나는 당황해했지만. 따스한 체온이 자신을 달래려 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고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감히 허락 없이 신의 옥체를 만지다니. 신벌을 받아도 모자랄 짓이라는 것, 알고 있느냐?”
한참 시간이 지난 뒤. 아테나는 정우를 밀어내면서 조금 부끄러웠던지 입술을 샐쭉 내밀며 투덜거렸다. 근엄한 척하지만 귀여운 모습이었다.
『파하핫! 정말 전쟁의 여신 맞아요? 생각보다 눈물이 많으신 것 같은데.』
정우는 자기도 모르게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테나는 그게 더 얄미운지 삐죽 나와 있던 입술이 댓발은 더 나오고 말았다.
그러다 정우는 연우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을 알아채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연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지금 이 모습을 보면 세샤나 아난타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져서.”
『…….』
“아니. 브라함에게만 귀띔을 해 줘도…….”
『그런 거 아니거든!』
아테나는 그렇게 투덕거리는 형제들을 보면서 살짝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둘에게서 헤르메스와 자신의 모습이 겹쳐져 보였다. 정말이지, 예전부터 느꼈던 것이지만 귀여운 아이들이었다.
그러다 연우는 시끄럽게 방방 뛰는 정우를 손으로 밀어내면서 무시하고, 흐뭇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아테나와 눈을 마주쳤다.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화해는 끝났다.
그렇다면 그녀를 만났을 때, 묻고 싶었던 질문을 던질 차례였다.
“그래.”
그 말에 아테나는 살짝 눈을 크게 떴다가, 곧 연우가 무슨 질문을 던질 것인지 대충 눈치를 채고 인상을 살짝 굳히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정우가 튜토리얼에 들어왔을 때, 어떤 예지를 보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맞다. 아주 짧았지만.”
아테나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
역시나. 연우는 속으로 작게 중얼거리면서 재차 물었다.
“혹시 그 예지 속에 저와 정우가 있었습니까?”
“그래.”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아테나는 섣불리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끝내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그 전에 한 가지만 정정하지. 내가 본 예지는 너희의 것이 맞지만, 너희 전부의 것이 아니었어.”
수수께끼 같은 답.
연우와 정우의 눈이 커졌다.
“그게 무슨?”
아테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한 명……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