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383화 (383/862)

8화. 기간토마키아 (8)

“와…… 분위기 보소. 정말 살벌하네.”

“티탄들도 그렇지만. 올림포스는 그보다 더하던데? 역시 신은 신이란 건가.”

올림포스 신들이 물러난 뒤에야, 칸을 비롯한 일행들은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칸이 유달리 호들갑을 떨긴 했지만,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올림포스는 여러 개의 만신전…… 그러니까 신의 사회 중에서도, 〈데바〉나 〈천교〉, 〈아스가르드〉와 함께 가장 규모가 크기로 손꼽히는 곳이지. 그런 곳의 우두머리들이니 그럴 수밖에.”

브라함은 천계에 있을 시절을 떠올리면서 피식 웃음을 흘렸다.

사실 올림포스는 천계 내에서도 가장 골칫거리로 분류되는 곳 중 하나였다. 가장 많이 하계에 간섭하며, 사건 사고도 많은 곳. 그리고 가장 많이 세대교체가 이뤄진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전통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올림포스의 신들은 분명히 크게 두 개의 무리로 분리되어 움직이고 있었다.

포세이돈과 헤라를 포함한 옛 신들과, 헤르메스를 중심으로 한 젊은 신들.

몇몇은 그런 것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듯 여기저기를 쏘아 다니기도 했지만, 대개 한곳에 소속된 자들은 다른 곳으로 다가가기를 꺼려 하는 눈치였다.

게다가 감정의 골도 제법 깊은 지격이 높은 신들일수록 다른 무리에는 일절 시선도 주지 않았으니.

이게 뜻하는 건 단 하나였다.

세대 간의 갈등이 아주 크다는 것.

‘제우스가 잠에 들고 나서 더 격화되었다는 말은 얼핏 들었지만. 사실이었나?’

천계의 일이라면 항상 지긋지긋했던 브라함이었지만. 그래도 언제나 소란스러운 올림포스에는 이따금 관심을 두곤 했었다.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건 있었다.

오만함.

최근에 천계에 소문이 많이 돌고 있던 연우에게나 조금 관심을 기울일 뿐. 올림포스 신들은 다른 플레이어들에게는 일절 관심도 주지 않았다.

오히려 같은 공기를 마시는 게 불쾌하다는 듯, 대놓고 인상을 찡그리는 자들도 있을 정도였다.

‘예나 지금이나. 위에 있는 것들은 똑같아.’

브라함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면서 올림포스의 신들을 비웃다가, 슬쩍 연우가 있던 자리를 보았다.

일반 사람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만. 브라함은 연결 고리를 통해 분명히 연우와 아테나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고 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두 사람의 사적인 대화라 듣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조금 찝찝하단 말이지.’

브라함은 자기도 모르게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사실 그동안 연우는 여러 신과 악마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아 왔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접점이 많은 곳은 올림포스였다.

올림포스와 깊은 관련이 있을 칠흑왕이라는 존재부터, 헤르메스와 아테나의 가호, 포세이돈과의 악연, 올림포스 신의 이름을 딴 두 신수들, 타르타로스의 전투까지.

시스템에 새겨지는 업적이 곧 플레이어의 가치를 결정짓는 주요 요인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사실 사도가 되는 게 아니고서야 한곳과 이렇게 밀접한 연관을 맺는 건, 절대 바람직한 행동이 아니었다.

그래서 브라함은 그 점이 우려스러웠다.

이대로 있다가, 여러 분란의 씨앗이 내재된 올림포스에 완전히 휘말리는 게 아닌가 하고.

연우는 아테나와의 볼일이 끝나면 곧바로 타르타로스를 뜰 예정이니 떠날 차비를 갖추고 있으라고 했지만.

그래도 ‘인과율’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털어 내고 싶다고 해서 털어 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탁!

결국 브라함은 읽고 있던 책을 조용히 덮었다. 그리고 품에서 여러 개의 죽간이 담긴 통을 꺼내 가볍게 흔들었다. 이건 되도록 안 쓰려 했는데. 답답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

절그럭 소리가 나자, 옆에 있던 갈리어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뭔가? 처음 보는데.”

“점괘.”

“점? 자네, 그런 거 별로 안 믿지 않았나.”

“그렇다고 불신하는 것도 아니었지.”

“뭘 보려고?”

“앞으로의 일.”

브라함은 그렇게 대답하면서 조용히 죽간을 하나 꺼냈다. 끄트머리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브라함만이 알 수 있는 글자.

‘흉(凶).’

그것도 대흉이었다.

“뭐라고 나왔기에 그러나?”

“아니네. 아무것도.”

브라함은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죽간을 도로 통에 담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웬만해서는 잘 나오지 않는 게 대흉인데. 어떻게 된 걸까. 올림포스와 연우 간에 상성이 잘 맞지 않는 걸까.

그래서 몇 번이고 흔들면서 다시 점괘를 뽑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일정한 결과가 나왔다.

대흉.

올림포스와 연관되어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뜻이었다.

‘서둘러 가자고 해야겠군.’

이런 곳에 계속 있어서 좋을 건 하나도 없었다.

때마침 연우가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브라함도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려는데, 자기도 모르게 발걸음이 흠칫거리고 말았다.

비록 가면을 쓰고 있어서 눈으로는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하게 연결 고리로 느낄 수 있었다.

연우의 얼굴이 잔뜩 굳어 있었다. 연결 고리도 평소와 다르게 온갖 격한 감정으로 크게 울렁대고 있었다.

“왜 그러나? 무슨 일이 있나?”

“브라함.”

연우는 잠깐 말하기를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 신적인 존재들이 이따금 꾼다는 예지 말입니다. 그게 현실이 될 가능성이 얼마나 됩니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질문.

브라함은 아테나와의 대화에서 뭔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예지. 혹은 예언. 분명 신과 악마들에게도 좋은 의미만 주는 단어는 아니었다.

“예지를 신위로 가진 자가 아니라면, 사실 어긋날 때도 있다네. 예지는 확정된 결과가 아니라, 여러 과정의 한 단면이니까. 끼워 맞추기일 때도 많아.”

예지와 예언은 사실 섣불리 언급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예지를 듣고, 그것을 피하고자 한 행동이 도리어 예지와 똑같은 결과를 도출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으니까. 올림포스에도, 데바에도.

결국 예지란 것은 인과율을 따라 가능성이 높은 미래의 한 단면을 도출해 내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브라함은 믿는 편이었다. 그 역시 한때 주신격에 오를 정도로 지고한 존재였었으니.

“그럼…… 만약 브라함과 갈리어드, 세샤, 아난타가 나란히 앉아 있는 사진이나 초상화가 있다고 친다면.”

“……!”

순간, 브라함은 자기도 모르게 신성을 잃기 직전에 보았던 한 가지 예지를 떠올렸다. 사진 속에 폭 담겨 있던 웃는 다섯 사람의 모습.

갑자기 그게 왜 지금 떠오르는 걸까?

“남은 한 명은…… 아닙니다. 아무것도. 제가 괜히 심란한 말만 던졌나 봅니다.”

연우는 질문을 던지려다 말고 고개를 털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쓸쓸하던 아테나의 목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한 명이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신의 눈으로 보았었는데도.

* * *

‘결국 말해 버렸구나. 다만, 이게 그 아이에게 행운이 될지, 불운이 될지, 아니면 전혀 다른 운이 될지…… 전혀 알 수가 없으니.’

아테나는 올림포스의 신들이 몰려 있을 신전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 작게 침음을 흘렸다.

7년 전이었던가, 8년 전이었던가? 사실 수천수만 년을 살아가는 신에게는 그저 한 줌밖에 되지 않는 시간 전에 ‘우연히’ 보았던 한 사건이, 지금 이렇게 그녀를 크게 고뇌에 빠뜨리는 일의 계기가 될 줄 짐작이나 했을까.

당시에도 그녀는 헤르메스의 조언에 따라 칠흑의 파편을 찾아 하계를 살피고 있던 중이었다.

칠흑은 그녀와 헤르메스, 그리고 같은 꿈을 꾸는 형제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단초였고, 그것이 언젠가 하계에 나타날 것이라는 신탁을 받은 게 전부였다.

다행히 칠흑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포세이돈 등은 신탁을 그다지 신뢰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보다 앞서서 찾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만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 아테나는 강렬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튜토리얼 쪽에 뭔가가 나타날 것 같은 느낌.

연례행사처럼 벌어지고 있는 튜토리얼은 이제 올림포스 신들에게도 별다른 유흥거리가 되지 못했지만, 그 날만은 유독 그런 강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아테나가 시선을 돌렸을 때, 보게 된 사람이 바로 정우였다.

초대장이라는 특전을 이용해 튜토리얼에 참여하게 된 노비스. 재능만 충실하게 갖췄을 뿐, 육체도 능력도 엉망이라 플레이어로서의 기초 자격도 되지 않는 녀석이었다.

필시 A구획도 통과하지 못하고 죽거나, 그 전에 겁에 질려 리타이어 할 것이라고 여겼지만.

왠지 모르게 자꾸만 시선이 갔다.

금방 죽을 줄 알았던 플레이어는 차근차근히 해결책을 찾아 나가면서 성장을 이뤘다.

동료를 구하기도, 때로는 거래를 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한 발 한 발 전진하는 모습은 아테나의 가슴을 찌르르 울릴 정도였다.

그러다 결국 마지막에 순위권에 드는 성적으로 졸업을 해냈을 때에는 그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으니.

언제나 영웅들을 가호하고 희망을 비춰 주던 그녀였기에. 정우는 간만에 그런 영웅의 씨앗이 될 수 있는 아이였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 아이가 칠흑으로 연결되는 열쇠라는 사실을.

또한, 그 끝이 좋지 않을 거란 것도.

총 세 가지의 예지가 그녀의 눈가를 스쳤다. 하나같이 어떻게든 돌리고 싶었던 것들. 하지만 결국 그중 앞선 두 가지는 순차적으로 풀려나오면서 현실이 되고 말았다. 정우의 죽음과 연우의 각성이 각각 그것이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한 가지가 남았다.

아테나는 지금 그 예지를 말해 준 게 어떤 결과가 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예지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특정한 결과만을 말해 줄 뿐이니까. 그 과정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비껴 날 수 있는지, 아니면 확정된 것인지, 그 어떤 것도 알 수 없었다.

설사 신이라 하여도.

어쩌면 그녀가 본 광경이, 단순히 연우나 정우, 둘 중 한 사람이 잠깐 자리를 비운 동안에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다면 괜히 그녀만 호들갑을 떤 셈이 되겠지만.

그래도 아테나는 섣불리 그럴 것 같다고 단순하게 생각을 하기 힘들었다.

마지막 예지 속에 웃는 모습을 한 사람은 연우처럼 보이기도, 혹은 정우처럼 보이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아테나는 어느덧 신전 중심부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런데 당연히 실내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헤르메스가 팔짱을 끼며 대리석 기둥에 등을 기댄 채로 서 있었다.

“뭐 하고 있는 거냐, 여기서?”

“당연히 누이를 기다리고 있었지.”

“나를?”

아테나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또 뭐라고 하려고?”

“누가 들으면 내가 누이를 괴롭히는 맛에 사는 줄 알겠네. 섭섭해, 어?”

“그럼 아니었나?”

“뭐, 사실 부정은 못 하지만.”

헤르메스가 짓궂게 웃으면서 키득거렸다.

아테나는 타르타로스에 내려올 때부터 깐족대기 바쁜 남동생이 짜증 난 나머지 곧바로 검집으로 손을 가져갔다.

헤르메스는 자신의 신물, 날개 달린 장화인 탈라리아를 이용해 멀찍이 거리를 벌리면서 짐짓 무서운 척 엄살을 떨었다.

“에헤이. 우리 말로 하자고, 말로? 평화 몰라, 평화?”

“평화는 무슨. 내 신위가 무엇인지 그새 잊었나?”

“그것참, 말로 안 되면 칼부터 빼고 보는 건 꼭 아버지 같…….”

스르릉-

“……지는 않지. 어휴! 어떻게 우리 단순하고 책임감 없는 아버지를, 어? 누이하고 비교하겠어? 안 그래?”

탁!

아테나는 반쯤 뽑았던 검을 도로 검집으로 밀어 넣었다.

“###과 관련된 일이라면…….”

“표정 보니까 좋게 잘 마무리된 것 같은데. 물을 필요가 있나.”

“그럼?”

“저거 때문이지.”

헤르메스는 엄지로 슬쩍 신전을 가리켰다.

신전은 창문을 비롯해 내외를 통하는 문이란 문은 모두 활짝 열려 있어 내부가 훤하게 보였다.

논의를 나누는 신들의 모습이 전부 보여서 자칫 내용이 새어 나갈 우려도 있었지만, 간 크게 올림포스 신들의 근처로 다가올 배짱을 가진 이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다만, 덕분에 아테나는 신전 내에서 벌어지는 소란을 쉽게 목격 할 수 있었다.

언쟁이었다.

“정녕 칠흑의 힘을, 그깟 필멸자에게 쥐여 줄 생각인가? 그게 어떤 힘인지 누구보다 잘 알잖나! 그건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야!”

포세이돈이 대춧빛처럼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다.

반면에 하데스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 싸늘한 조소만 던질 뿐이었다.

“이미 퀴네에를 주었다. 그것으로 내 대답은 끝난 것 같은데.”

“하데스!”

쾅!

포세이돈은 결국 참지 못하고 탁상을 세게 두들기고 말았다. 턱수염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두 눈에 불신과 경악이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건 여태 묵묵히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다른 올림포스의 신들도 마찬가지였다.

헤스티아, 헤라, 데메테르는 물론, 네레우스, 도리스, 리모스, 디케, 에우노미아처럼 구원군으로 따라온 자들까지 전부. 심지어 아테나와 뜻을 같이하고 있는 아폴론이나 아르테미스, 디오니소스 같은 신들도 놀란 눈치였다.

제우스의 아스트라페와 포세이돈의 트라이아나는 신력이 다해 그냥 강제로 흡수되고 말았다지만.

퀴네에는 전혀 차원이 달랐다. 그만한 대신물을 내어 줬다는 것은 이미 하데스가 옛날의 맹세를 저버리고 연우라는 플레이어에게 마음이 돌아섰다는 뜻이었다.

어찌 보면 사도인 람보다도 더 가깝게 여기는 것이다.

하물며 그것이 한번 파손되고 어렵사리 만들어 낸 물건이라면? 의미는 더더욱 깊어질 수밖에.

신물이라는 것은 신격이 살아온 신화를 총망라하여 담아낸 상징성과도 같은 것.

하데스는 지금 자신의 미래를 연우에게 내어 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런 정도로 놀라서야 쓰나.”

하데스는 비딱하게 앉은 자세로 다리를 꼬고, 주먹으로 턱을 괴면서. 아주 시니컬하게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 아이가 언제고 간에 신격을 얻게 된다면, 이 ‘명계의 왕’이라는 거추장스러운 신위도 같이 물려줄 생각이라 하면. 아예 기겁을 하겠어.”

“……!”

“……!”

“……!”

하데스가 난데없이 던진 폭탄선언에 좌중은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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