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기간토마키아 (16)
「으하하! 다 죽여라, 죽여!」
「많아도…… 너무 많군.」
「그래도 이만한 곳이 어디 있어?」
샤논과 한령은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칼을 마구잡이로 휘둘러 댔다.
타르타로스의 여러 전장을 거치면서 강해진 건 연우만이 아니었다.
샤논과 한령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이곳은 죽은 이들이 살아간다는 명계의 영역. 당연히 죽음에 가까운 샤논과 한령이 실력을 되찾기에 이곳만큼 적합한 곳도 없었다.
특히 전투가 한번 벌어지고 나면 층계에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질이 좋은 영혼을 수확할 수 있었으니.
샤논과 한령은 하루가 다르게 격이 성장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언제부턴가 샤논은 생전에 자신이 쌓은 실력을 훨씬 뛰어넘어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 나가는 중이었다.
그것은 그에게 있어 새로운 신비였다.
그토록 뛰어넘고자 했지만 결국 넘을 수 없었던 ‘랭커’라는 벽이, 이제는 손에 닿을 것처럼 가깝게 여겨질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샤논은 하루하루 경험하는 것들이 새로웠다. 그리고 문득 자신이 겪고 있는 것들이 사실은 허상이 아닐까, 죽기 직전에 꾸는 환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라는 존재는 정말 이곳에 있었고.
이 넘칠 것 같은 힘도 오롯이 자신만의 것이었다.
그리고 샤논은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빠르게 성장하는 연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자신이 터득한 힘을 모두 제대로 소유하고자 노력했다.
최근 들어 부쩍 말이 줄어들었던 이유도, 제천류를 다각도로 분석하느라 내내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샤논이 주로 중점을 두었던 건 두 분야였다.
신목령과 화염륜.
신목령은 외뿔부족의 언어로 치자면 신법(身法)이었다. 몸을 움직이는 방법. 꼿꼿한 소나무가 거친 환경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고, 낭창거리는 대나무가 부러지지 않듯이. 신목령은 검의 정도(正道)를 걸었던 샤논에게 너무나 잘 맞았다.
무엇보다 신목령의 상징은 목(木). 스킬 〈볼케이노〉를 강화시킬 목적으로 선택한 화염륜을 더욱 빛나게 해 주었다. 불길은 나무 위에서 더 화려하게 타오르는 법이니.
그리고 그런 자기 수양의 결과는 지금 거침없이 발휘되는 중이었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터져 나오는 불길은 적의 권속들을 쓸어 내고 태워 버린다.
그리고 거기서 빚어져 나온 영혼은 그대로 샤논의 양식이 되어, 새로운 힘이 되어 주었다.
「이런 걸 두고 우리 주인님이 뭐라고 했었는데. 뭐라고 했더라? 맞아. 그래. 그랬었지.」
샤논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얼마나 즐거운지 광기마저 묻어날 정도였다.
「이게 폭렙이지, 뭐겠나!」
그리고 그런 희열은 한령도 똑같이 느끼는 중이었다.
[망령을 흡수하였습니다. 잠겨 있던 격이 일부 해제되었습니다.]
[망령을 흡수하였습니다. 잠겨 있던 격이 일부 해제되었습니다.]
……
[망령을 대거 흡수하였습니다.]
[큰 깨달음이 더해져 잠겨 있던 격이 모두 해제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생전에 지녔던 한령으로서의 위업을 이어 나가십시오. 당신이 걷는 모든 길이 ‘도무신’의 업적을 더 깊게 새겨 줄 것입니다.]
화아악-
언제부턴가 한령은 환한 빛무리에 잠겨 있었다. 전장 곳곳에서 터지는 폭발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신체적으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는 중이었다.
여태껏 그를 답답하게 만들었던 구속력이 해제되는 느낌.
그것이 격의 해방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한령은 간만에 크게 웃음을 터뜨릴 수 있었다.
「드디어. 드디어……!」
그토록 바라던 순간이었다.
도무신으로서의 힘을 되찾는 순간. 잃어버린 세월을 되찾는 순간이었다. 한령은 바로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맘껏 즐겼다. 아홉 자루의 칼을 곳곳에 뿌리고, 맘껏 춤을 추면서 휘두르고, 찌르고, 내리쳤다.
그의 동작은 생전보다 훨씬 간결하면서도 더 날카로웠다.
샤논처럼 그도 제천류를 탐구하면서 얻은 변화였다.
한령이 관심을 두었던 분야는 유수행과 금강포.
유수행은 보법(步法)이었다. 땅에 꽂은 아홉 자루의 칼을 다뤄야 하는 그로서는 걸음걸이가 가장 중요했고, 유수행은 여기에 제격이었다.
산길을 따라 굽어 도는 강물은 부드럽지만 때로는 범람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다 바다가 되었을 때는 세상을 뒤집어 삼키는 해일과 폭풍우를 일으키니. 강약 조절이 너무 잘 이뤄졌다.
그리고 여기서 이어지는 금강포는 쇠의 날카로움과 단단함을 다뤘다. 한령의 칼도 그만큼 더 강해졌다.
콰콰콰-
쿠르릉, 쿠르르릉-
이런 두 데스 노블이 여는 길을 따라.
영괴들은 쉴 새 없이 그림자 가지를 쭉쭉 뻗어 나가면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영혼들을 마구 집어삼켰다. 그럴수록 그 위로 잔뜩 뿌려진 망령의 안개는 귀곡성을 더 거칠게 내뱉었다.
네메시스가 내리는 어둠은 적들을 속박하고, 대지를 질타하는 불길 속에는 니케가 숨어 마치 지옥의 유황불처럼 게걸스럽게 닿는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주인께. 모든. 죽음을.」
이 모든 것을 관장하는 부의 지휘도 한껏 더해지니.
키키킥, 키키-
끼아아!
이미 죽음이 만연한 땅 위에, 새로운 죽음이 파도처럼 들이치고 있었다.
* * *
디스 플루토의 대탈주는 여러모로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다.
곳곳에 고립되어 있던 디스 플루토들이 무리해서 장벽을 밀어 내고, 연우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연우에게 환호하는 소리가 커졌다. 무리도 금세 불어났다.
방해 공작이 즉각 이뤄졌다.
『칠흑…… 미안하지만, 그대는 남아야 해…….』
하늘을 따라 신의 전장을 굽어다 보고 있던 티폰의 눈동자가 아래쪽으로 굴러가면서 연우에게 고정되었다.
우르르-
그러자 거센 벼락이 연우 앞으로 떨어졌다.
연우는 반사적으로 비그리드를 그쪽으로 휘두르려다가, 벼락에 담긴 힘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 불의 날개를 활짝 펼치면서 급제동을 걸었다.
『피해!』
연우의 어기전성에 따라, 그를 따르던 디스 플루토는 일제히 뛰던 것을 멈추고 경계 태세를 갖췄다. 권속들을 밀어내는 데 주력하던 샤논과 한령도 딱딱해진 얼굴로 정면을 주시했다.
긴장감이 흘렀다.
비그리드를 쥐고 있는 연우의 손에 땀이 가득 찼다. 그의 주변에는 어느새 여의봉의 조각이 날아다니면서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벼락이 떨어진 자리로, 자욱하게 일어났던 흙먼지가 사라지면서 한 사내가 나타났다.
덥수룩하게 앞머리를 길러 눈을 가린 사내.
이렇다 할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연우는 심장이 꽉 조이는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용신안으로도 그에게선 이렇다 할 결점이 보이지 않았다.
완전무결. 뛰어난 존재란 뜻이었다.
그러다 앞머리가 찰랑이면서 눈이 언뜻 드러났을 때, 연우는 단번에 그가 누군지 알아챌 수 있었다.
“……티폰.”
그 말에, 연우와 주변에 있던 모두가 바짝 긴장하고 말았다.
설마 기가스의 왕이 직접 현신(現身)할 줄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올림포스의 신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을 텐데, 어째서 여기에 나타난 건지.
“칠흑의 후계, 그대에게는 미안하지만 재롱 잔치도 여기서 끝내 줘야겠어.”
티폰은 손으로 앞머리를 쓸어 올리면서 차갑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쪽은 그대가 필요해서 말이야.”
스르릉-
채챙, 챙!
샤논과 한령이 연우를 보호하듯이 검과 칼을 이쪽으로 돌렸다.
「우리 주인님이 매력이 좀 넘치는 분이긴 하시지만. 푸핫! 요즘 들어 특히 남자들한테 더 인기가 많은 것 같단 말이지?」
「지금 농담할 기분이 드나?」
브라함과 칸, 갈리어드와 크로이츠도 각각 무기를 꽉 쥐었다. 디스 플루토도 비장한 표정이었다. 여태껏 그들을 이런 지경으로 몰아낸 적의 수장에 대한 경계심과, 새로운 주인을 지키겠다는 일념이 같이 묻어났다.
하지만 티폰은 그런 모든 것들이 우습기만 하다는 듯, 가볍게 코웃음을 치면서 한 발자국을 앞으로 내디뎠다.
거센 폭풍이 불어닥쳤다.
이대로 서 있는 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강렬한 폭풍.
연우는 이를 악물면서 여의봉의 조각을 한데 모아 창대를 만들고, 그 위에 비그리드를 꽂았다.
철컥-
사실 티폰의 등장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이기도 했다.
칠흑왕은 티탄의 왕, 크로노스도 사도로 뒀을 정도로 뛰어났던 존재. 아마 모르긴 몰라도, 개념신이자 태초신으로서 대지모신에 버금가는 존재였을 것이다.
크로노스를 계승했다고 주장하고, 그의 힘을 채취하고 있던 티폰으로서는. 칠흑왕의 새로운 후계인 연우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없을 것이다.
어떻게든 붙잡아 두고, 자신의 권속으로 삼거나 이런저런 실험을 하는 데 쓰려 하겠지.
‘빠져나갈 방법은? 없나?’
연우는 홀로 앞을 가로막은 티폰을 보면서 쉴 새 없이 머리를 굴렸다. 시차 괴리를 사용해서 수많은 계산을 거듭했지만.
와장창-
“무얼 그리 보려 하나? 그대에게 이렇다 할 다른 선택지는 없을진대.”
티폰은 아주 가볍게 연우의 사고 속도를 따라오면서 스킬을 간단하게 파훼시켰다. 잔머리를 굴리지 못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연우는 울컥 피를 토하면서 뒤로 주춤 물러섰다. 여의봉을 쥐고 있는 손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하데스로부터 물려받은 왕좌의 권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여전히 한참이나 모자란 격은 그런 편의를 절대 제공하지 않았다.
이렇게 붙잡혀야 하나?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결국 이렇게 된 이상 저항이라도 해 봐야겠다는 생각에 죽음과 투쟁의 날개를 전부 활짝 펼치려는데.
“으랏차차! 차!”
콰아앙!
이번에 또다시 연우 앞으로 다른 뭔가가 강하게 내려왔다. 어마 어마하게 발산되는 패기를 조금도 거두지 않고서.
연우는 순간 티폰을 도우러 온 기가스인가 싶었지만, 다행히 그의 적의는 티폰에게로 향해 있었다.
사내는 키가 2미터도 넘었으며, 어마어마한 근육과 덩치를 자랑했다. 순간 판트 녀석이 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이었다.
무엇보다.
연우는 자신을 둘러싼 채널링 중 하나가 선명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레스가 당신을 보며 활짝 웃습니다.]
[아레스가 당신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 주길 바랍니다.]
사내는 연우를 슬쩍 보더니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 보란 듯이 티폰을 향해 포효를 질렀다.
그아아아!
티폰의 기세가 거짓말처럼 확 밀려났다. 티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게 무슨 어린애 같은 장난이지, 아레스?”
아레스. 올림포스를 다스리는 12대신 중 제우스의 아들이자, 아테나와 함께 전쟁을 다스린다는 전신(戰神)이 세상이 떠나가라 쩌렁쩌렁하게 웃었다.
“크하하! 내 사도에게 잘 보이려면 이 정도는 기본이지! 신이 되어서 일단 멋있는 모습부터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사도? 뚱딴지 같은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연우에게로 향했다. 언제 아레스의 사도가 되었느냐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연우로서도 금시초문이었기에, 그는 눈살을 좁히면서 이게 무슨 소린가 하며 아레스를 쳐다봤다. 무언가 꾸미는 게 있나 싶었지만, 딱히 그렇게 보이지도 않았다.
티폰이 눈살을 찡그렸다.
“사도? 칠흑의 후계가 한낱 너 따위의 사도가 되었단 뜻이냐?”
“아니! 하지만 곧 될 예정이다.”
아레스는 당당하게 양 주먹을 맞부딪치면서 씩 웃었다.
“지금부터 멋있는 모습을 잔뜩 보여 주고 환심을 살 예정이거든. 위기에 빠진 자신과 동료들을 구해 준, 등이 아주 넓고 멋진 전신! 크! 그것만 해도 멋지지 않나? 같은 남자가 봐도 뻑이 갈 정도인데, 이 친구가 오죽하겠나.”
[아가레스가 저게 무슨 개소리냐고 코웃음을 칩니다.]
“게다가 이 몸은 투쟁과 전쟁의 신. 우리 어여쁜 사도가 추구하고, 걷고자 하는 길에 서 있다 이 말씀이지.”
[아가레스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가레스가 아차 싶은 얼굴로 이곳을 바라봅니다.]
“또한, 같은 올림포스이기도 하니, 선배로서 길잡이가 되어 줄 수도 있는 것이지. 크하하! 그러니 티폰, 여기에서는 내 사도를 위해 길을 내어 줘야겠어.”
[아가레스가 안절부절못합니다.]
[아가레스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메시지: 나를! 나를 받아들여라! 저놈보다는 내가! 내가 더 위대한 존재일지니! 내가 너희들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아가레스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메시지: 어서! 서두르란……!]
[사용자의 권한으로 아가레스의 메시지가 임시 차단되었습니다.]
연우는 아레스의 말도 안 되는 선언에 말만 많아진 아가레스의 메시지를 차단시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지원군으로 와 주었으니 고맙기는 한데. 조금 이상한 놈이 온 것 같았다.
그가 알기로 아레스는 방약무인한 성격으로 유명해서 올림포스에서도 상당한 골칫거리였다. 그런 녀석이 자신을 가지겠다고 저렇게 열망을 불태우니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왜 저러는지도 대충 알 것 같았다.
아레스는 평소 자신에게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다만, 그의 천적이라 할 수 있는 아테나가 계속 감싸고 도니 손가락만 빨고 있다가, 그녀가 크리오스를 상대하는 사이에 이때다 싶어 나타난 것이겠지. 그의 말마따나 강한 인상을 심어 주기 위해서.
도와주기만 하면 알아서 넘어올 거라는 생각이 참 단순하기도 했지만. 어찌 보면 그답다고도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거기에 안절부절못하는 아가레스의 모습은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지만.
[다수의 신들이 아가레스와 아레스를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봅니다.]
[다수의 악마들이 아가레스와 아레스를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하지만 아레스는 전투 실력만 따진다면 올림포스에서도 손꼽히는 자. 그가 도와준다면 충분히 티폰을 따돌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네까짓 놈이 혼자서 나를 상대하겠다고? 하데스도 결국 어쩌지 못했던 나를?”
티폰은 그런 아레스의 자신만만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격을 한껏 해방시켰다. 쿠르릉, 쿠릉. 하늘을 따라 먹구름이 잔뜩 끼면서 천둥이 울리기 시작했다. 언제라도 신벌을 내리기 위해서.
하지만 아레스는 주먹을 강하게 말아 쥐면서 사납게 웃었다. 마치 거대한 코끼리를 사냥하려는 사자 떼의 우두머리처럼.
“왜 나 혼자 왔다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군?”
“뭐?”
티폰은 인상을 찡그리다, 뒤늦게 자신의 감각을 속이고 이쪽을 겨냥하고 있는 뭔가가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저 먼 수풀 너머로, 긴 황금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미남자가 이쪽을 보며 시위를 겨누고 있었다. 태양의 신, 아폴론이었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자세를 낮춘 채, 휘하의 신수들을 잔뜩 거느린 아르테미스가 조용히 쌍칼을 뽑아 대기 중이었다.
또한, 그들을 따라 향긋한 향이 감돌고 있었다. 디오니소스의 〈축배〉. 타르타로스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버프였다. 신력의 회복을 빠르게 해서 때에 따라서는 ‘부활’도 가능케 하는 힘.
올림포스의 12주신 중 2세대에 해당하는 신들이 대거 나와서 자신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함정이군.”
티폰은 가볍게 혀를 찼다.
녀석들은 분명 자신이 전장에서 이탈하는 것을 보고, 칠흑의 후계를 뒤쫓으리라는 것을 눈치채 작전을 짠 게 틀림없었다. 아무리 그라고 해도 이 많은 대신격들을 한꺼번에 상대하는 건 힘들 테니.
“크하하! 신격이 해방되면서 티폰, 네가 원래의 힘을 되찾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글쎄? 여기 있는 우리를 전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아레스는 포악하게 웃으면서 자신의 검을 뽑았다.
티폰은 영 탐탁지 않다는 듯, 자신을 둘러싼 대신격들을 보다가 혀를 가볍게 찼다.
“그래. 힘들겠지. 하지만.”
덥수룩한 머리카락 사이로 티폰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힘든 건 그대들도 마찬가지일 듯한데?”
화아악-
순간, 티폰의 신체가 꺼졌다. 대신에 그 자리로 거센 폭풍이 휘몰아치면서 일대 대기를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아레스와 다른 대신격들도 일제히 움직였다. 연우를 지키기 위해서.
쾅!
휘이이-
세상이 울리는 격전이 시작되는 가운데.
연우는 이것이 그들이 만들어 준 기회라는 것을 깨닫고, 다시 디스 플루토 쪽으로 어기전성을 터뜨리며 명부전 방향으로 달렸다.
『어딜……!』
티폰은 그런 연우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네 명의 대신격 사이로 바람줄기를 내뻗었다.
아레스가 아차 싶어 그쪽으로 움직이려 했지만, 칼바람이 먼저 연우에게 다다를 것 같았다.
하지만.
스걱-
어느새 공간이 열리면서 새로운 대신격이 나타나 창을 휘둘렀다. 티폰의 칼바람이 말끔하게 잘려 나갔다.
“지금은 하데스의 후왕(後王)으로서 대우를 해 주겠지만. 다음에 만났을 때는 어림없을 것이다.”
푸른 머리칼의 대신격은 그 말을 남기면서 그대로 연우를 지나쳐 티폰에게 달려들었다.
우르르릉-
‘포세이돈…….’
연우는 항상 원수 같았지만 지금은 도움을 준 대신격의 이름을 중얼거리면서.
다시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