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기간토마키아 (18)
[네르갈이 강신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할파스가 강신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태산부군이 강신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
연우는 순간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666명의 신과 악마들이 채널링을 통해, 죽음의 날개를 빌려 강신을 시도한다는 것은 사실 따지고 보면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오래전에 벤티케의 몸을 빌려 포세이돈이 강제 강신을 시도했을 때도 여러 신들로부터 강신을 받긴 했었지만.
지금은 그때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숫자였다. 당연히 감당하는 게 가능할까 싶기도 했다.
만약 연우도 명계의 왕좌를 갖지 않았더라면. 죽음의 날개로 그들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은 게 아니었다면 절대 시도하지 않았을 일이었다.
여러 신과 악마들은 단순히 의지를 내비친 것만으로도, 연우에게 어마어마한 압박감을 가져다주었다.
영혼이 짜부라질 것 같은 기분.
성장한다고 했지만, 그는 여전히 여러 신격들 앞에서는 너무나 초라하기만 했다.
그래도 왕좌의 힘 덕분일까?
연우는 예전과 다르게 무너지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버틸 수 있었다.
그러다 육체가 임계점에 다다랐을 때.
콰드득-
용의 비늘이 크게 뒤집어졌다. 더 굵고 탄탄한 비늘이 잔뜩 올라와 찰갑처럼 몸을 한껏 뒤덮었다. 용의 날개와 용의 꼬리가 완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화악-
연우를 따라, 용종들만이 발산한다는 프레셔가 강렬한 파도처럼 퍼져 나갔다.
이제는 정말 단순한 용인(龍人)이 아닌, 폴리모프(Polymorph)를 한 용종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선명한, ‘진짜’ 용의 기운이 발산 되고 있었다.
심장에 새겨진 변화 때문이었다.
쿠드득, 쿠득!
연우의 심장이 크게 격동하면서 부서졌다가 수복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회복된 자리는 더 단단해지면서 점차 구슬의 모양으로 변해 갔다.
심장은 수많은 혈관이 지나는 생명의 중심이기도 하지만, 모든 마력이 생성되고 유통되는 마력 기관이기도 하다.
그런 심장이 격변하고 있었다. 기존의 기능을 벗어던지고, 몇 단계나 높은 기관으로 탈바꿈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따라. 심장에서부터 연결되는 마력회로도 크게 뒤틀렸다.
새로운 모양에 맞춰 형태가 변화하면서 크고 작은 회로들이 합쳐지거나 갈라지고, 거의 사용되지 않았던 회로는 부분 폐기되었다.
더 굵고, 더 많은 양의 회로가 개척되면서 심장을 중심으로 새로운 회로도가 만들어졌다.
두근!
두근!
그렇게 해서 구슬 모양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심장이 거칠게 펌프질을 했다. 혈류가 빠르게 돌고, 마력이 고출력을 발산했다.
드래곤 하트(Dragon Heart)!
용종의 상징이며, 그들이 지녔던 모든 권능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중심이 드디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마력을 사용하는 기관 중 가장 고효율을 자랑한다는 유명세답게, 드래곤 하트에서 공급된 마력은 여태껏 연우가 누렸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4차 각성 때 느낄 수 있었던 마나 스트림을 강제로 끌어와 육체에다 심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만큼 웅혼하고, 강렬했다.
5차 각성이었다.
[5단계 권능을 개방합니다.]
[권능: 원소 구축]
[원소 구축]
설명: 고룡 칼라투스는 계약자가 용체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8단계에 걸쳐 권능을 세분화시켰다. 그중 다섯 번째 단계.
드래곤 하트에서 발생한 마력을 대기 중의 마나 스트림과 접촉시키고, 그 흐름을 유도해서 권역 내에 존재하는 원소를 임의대로 사용 및 구축할 수 있다.
* 하트
용의 중심, 심장에서부터 마력을 끌어와 외부로 방출할 수 있다. 이때 사용된 마력은 이데아에 간섭하여, 숙련도에 따라 의지만으로 마법을 구축하는 게 가능해진다.
* 브레스
마나 속의 원하는 원소만을 집약시키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때 뭉친 원소는 사용하기에 따라서 마법을 더 효율적으로 구현하도록 할 수도 있고, 원초적인 공격을 가하는 데 쓰일 수도 있다.
드래곤 하트는 여태껏 하드웨어만 강했던 마룡신체를 탄탄하게 받쳐 주는 기둥 역할을 해 주기에 충분했다.
어디 그뿐이랴.
드래곤 하트가 펌프질하는 것에 맞춰서 현자의 돌도 공명(共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우우웅-
두 마력 기관에서 발생한 마력회로는 뫼비우스의 띠(∞) 모양을 하면서 몇 배로 증폭된 힘을 발산했다. 마룡신체에 새겨진 긴장감이 다시 한번 더 바짝 끌어 올려졌다.
연우는 순간 웃음을 터뜨리고 싶었다.
그래. 이거였다.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순간이!
현자의 돌을 처음 획득했을 때. 막연하게 현자의 돌을 완성시키고 그 옆에 드래곤 하트를 같이 둘 수 있다면. 대체 얼마나 대단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드래곤 하트는 용이 되고자 하는 입장에서는 반드시 가져야만 하는 필수 부품이었으니까. 드래곤 하트를 잃어버린 여름여왕이 어떻게 몰락했었는지 직접 목격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현자의 돌은 드래곤 하트에 버금간다고 알려진 마력 기관이니, 같이 공명을 하면 그만큼 대단하지 않을까 짐작하는 게 전부였었다.
그런데 이건 그런 예상을 훨씬 벗어나는 수준이었다.
두 배? 아니, 세 배?
아니, 정확하게 추산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몇 배수를 능가할 것 같았다.
[할파스가 재강신을 시도하였습니다. 성공했습니다.]
[태산부군이 재강신을 시도하였습니다. 성공했습니다.]
……
그리고 강화된 육체에 따라 강신이 실패했던 신과 악마들도 속속들이 다시 재입장했다.
『……하. 제법 늘었군.』
어렴풋이 마성의 것으로 짐작되는 웃음소리도 들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럴수록.
카테고리가 가진 힘도 점차 선명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흐릿하게만 느껴졌던 왕좌의 힘도 또렷해지면서, 연우는 자신이 지닌 신능이 무엇인지 확연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죽음.
그래. 이게 죽음이로구나. 살아 있는 것과 살아 있지 않은 것, 그 모든 것들에게 공평한 잣대를 들이댈 수 있는 유일한 개념.
물론, 그 거대한 개념을 완전히 이해하기에 아직 연우라는 존재는 반딧불처럼 너무 작았지만.
그래도 어떤 형태인지 짐작이나마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큰 소득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연우는 지금 자신에게 더해진 힘을 한껏 여의봉에다 실었다.
[권능 전면 개방]
세 쌍의 하늘 날개가 한껏 펼쳐지면서, 여의봉의 끝자락에 달았던 비그리드 위로 검은 화염이 지글지글 타올랐다.
고농도의 마력이 너무 과다하게 들어가자, 오히려 단단했던 오러의 모양이 뒤틀리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연우는 창대를 강하게 움켜쥐면서 와류를 일으켰다. 〈볼텍스〉와 함께 여의봉을 거세게 옆으로 휘둘렀다.
5차 각성을 이루면서 터득한 용종의 권능이었다.
[브레스]
용종은 흔히 특정 원소를 입 속에 잔뜩 응축시켰다가 터뜨리는 공격을 자주 써먹곤 한다. 흔히 말하는 드래곤 브레스로, 단일 원소만을 모아 뒀기 때문에 위력도 그만큼 거셀 수밖에 없었다.
다만, 연우가 전개한 브레스는 조금 달랐다. 용종이 입을 통해 브레스를 뿜어내는 이유는 원소를 다루는 매질(媒質)로써 사용하기에 육체가 편해서일 뿐, 연우는 들고 있는 무기가 훨씬 편했다.
콰아아!
여의봉의 끝자락에서 발산된 오러는 브레스가 되어 세상을 가로질렀다.
이곳으로 닥쳐 오던 어둠의 해일이 정확하게 절반으로 갈라졌다.
비록 다시 메워졌지만, 연우는 해일의 속도가 잠시 늦춰진 것을 놓치지 않았다.
‘된다!’
연우는 눈을 크게 빛내면서 여의봉을 더 세게 움켜쥐고 브레스를 연달아 터뜨렸다.
“커져라, 여의!”
콰콰콰-
볼텍스를 따라 시작된 브레스는 소낙비처럼 어둠의 해일 위로 잔뜩 쏟아졌다.
[오시리스가 강신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자나미가 강신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
그사이에도 강신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브레스의 위력도 덩달아 강해졌다.
여의봉이 내려앉은 자리 위로 불길이 어마어마한 높이로 치솟았다. 어둠과 이리저리 뒤엉키면서 세상을 뒤집을 듯이 풍랑을 일으키는 광경은 보기에 섬뜩할 정도였다.
그럴수록 연우는 이를 악물었다. 순간적인 각성과 강신으로 육체적 한계를 잊었다고 하지만. 이렇게 지속하는 데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사실 이렇게 강신을 유지하고 있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수많은 신과 악마들이 합세를 하는데, 한낱 필멸자가 여기까지 버티고 있었으니. 왕좌의 힘을 넘어, 그만큼 정신력이 단단하지 않으면 불가능했을 터였다.
콰콰콰-
콰르릉, 콰릉!
다행히 연우가 홀로 대지모신의 마수를 막아 내고 있는 사이, 디스 플루토는 상당수가 빛의 기둥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렇게 순서가 막바지였던 12군단에 이르고.
『카인!』
마지막까지 남아 디스 플루토의 후방을 지키던 칸이 이쪽을 보며 다급하게 어기전성을 보냈다. 어서 서둘러서 오란 뜻이었다.
연우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뜩이나 육체가 과열될 대로 과열되어서 이미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이대로 있다가는 드래곤 하트와 현자의 돌도 너무 뜨거워져서 자칫 폭발할 우려가 있었다. 비늘이 붉게 달아올라 김을 내뿜을 정도였다.
연우는 다시 한 번 더 이를 악물면서 여의봉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쳤다.
땅거죽이 뒤집어지면서 수십 미터나 높게 치솟았다. 그 사이로 튄 불똥들이 스파크를 튀기면서 커다란 빛의 파도를 만들어 내고, 하늘에서부터는 그보다 훨씬 많은 불벼락을 잔뜩 쏟아 냈다.
쿠르릉, 쿠릉-
콰콰콰쾅!
불벼락이 떨어진 자리에는 비마질다라의 검은 구비타라가 화려한 혈화를 피워 대면서 어둠을 좀먹어 나갔다.
[비마질다라가 당신의 활약상을 보면서 크게 기뻐합니다.]
[케르눈노스가 고요한 눈으로 당신의 활약상을 지켜봅니다.]
어둠의 해일이 불길의 산란에 계속 부딪치면서 멈췄다. 그사이 연우는 날개로 크게 홰를 치면서 재빨리 빛의 기둥이 있는 쪽으로 물러났다.
우우우-
어둠의 해일에서부터 깊은 귀곡성이 잔뜩 뻗쳐 왔다.
내. 놓. 아. 라.
그. 것. 은.
내. 것. 이. 다.
그리고 연우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불길의 그물망 사이를 어둠이 촉수처럼 비집고 튀어나와 연우 쪽으로 다다랐다.
콰르르릉-
연우는 다시 한 번 더 브레스를 뿌리면서 촉수들을 거세게 밀어 냈다. 칸이 들어가자마자, 그 역시 빛의 기둥 속으로 들어갔다.
순간, 세상이 반전되었다.
[히든 스테이지, ‘타르타로스’를 벗어났습니다.]
[지정된 장소, 35층 ‘천동(天動)의 관’에 입장했습니다.]
우르르-
“무, 뭐야, 이거?”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데?”
“독식자? 저거 독식자 아냐?”
“요즘 통 안 보이더니 대체 또 무슨 짓을……!”
스테이지는 벌써부터 여러 소란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갑자기 거대 포탈이 열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군단이 대거 쏟아지니 놀란 모양이었다.
35층으로의 이동은 연우가 브라함에게 부탁한 것이었다.
연우는 명계의 왕좌를 물려받으면서 타르타로스에 대한 권한 설정이 가능했고, 이를 바탕으로 브라함에게 권한을 넘겨 좌표를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연우가 클리어한 층계는 총 34층. 35층으로 넘어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활용이 가능했다.
원래대로라면 도착지는 연우가 타르타로스로 넘어왔던 탑 외 지역이 되어야 하겠지만.
스테이지로 잡은 이유는 이곳이 ‘관리자들의 권한 영역’이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인과율이라는 이름 아래, 시스템의 감시와 보호가 이뤄지는 곳. 천계의 개입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장소였다. 당연히 신적인 존재인 대지모신의 위력도 그만큼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겸사겸사 35층도 수월하게 클리어할 수 있을 테고.’
연우가 빠져나온 자리로, 어둠이 높게 솟구쳤다. 스테이지가 요란하게 울리면서 녀석의 의념도 강하게 풍겼다.
내. 놓. 아. 라.
하지만 연우는 가볍게 코웃음을 치면서 다시 한 번 더 브레스를 뿌렸다. 비그리드의 칼날이 어둠을 그대로 잘라 버렸다.
크아아-
녀석이 좁은 구멍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려는 듯 요란하게 울어 댔지만.
[신적인 존재가 스테이지에 개입하려는 것이 감지되었습니다.]
[관리자가 출현합니다.]
“이, 이건 뭐야? 무, 무서워!”
“대지모신? 미친……!”
“대체 무슨 일을 벌인 거야?”
“오효효! 우리 말썽꾸러기 ### 님께서 아무래도 이번엔 더 거창하게 사고를 치신 모양이네요. 아주 멋져요. 오효효효!”
하늘을 따라, 최고 관리자들이 속속 나타났다. 그들은 대지모신의 출연에 황당하다는 표정이 되었다.
타르타로스는 관리자들이 감시할 수 없는 신적인 영역. 그러니 그곳에서 무슨 사달이 벌어졌는지 여태껏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블케는 저 멀리에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연우를 보고, 외눈 안경을 고쳐 쓰면서 일이 대충 어떻게 된 건지 알겠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동시에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억제력이 발동됩니다.]
[존재의 개입이 차단됩니다.]
[존재의 개입이 차단됩니다.]
최고 관리자들이 빛무리로 변하면서 대지에 작렬하고, 스테이지를 구성하던 법칙이 굴러가기 시작했다. 타르타로스와 35층 스테이지를 잇는 거대 포탈이 닫히기 시작했다.
안. 된. 다.
안. 된. 다.
대지모신의 어둠이 이걸 놓으라는 듯, 발버둥 쳤지만.
“돼.”
연우는 싸늘한 목소리로 여의봉을 역수로 쥐면서 그대로 마지막 남은 포탈에다 쑤셔 넣었다.
콰직!
크아아-
대지모신이 흘리는 요란한 비명 소리를 끝으로. 그대로 타르타로스와의 연결이 완전히 차단되었다.
소란스러웠던 35층이 다시 침묵에 잠겼다.
그리고.
띠링-
[모든 시련이 종료되었습니다.]
[36층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