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401화 (17권) (401/862)

17권

1화. 사왕좌(死王座) (1)

정우는 한참 동안 멍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다 얼굴을 굳히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하지만.

“들으신 그대로랍니다.”

외눈 안경 속에 든 이블케의 눈은 흔들림이 없었다. 도저히 속을 알 수가 없었다.

“차정우 군의 영혼은 찾을 수 없을 겁니다. 어디에서도. 왜냐하면 없거든요. 어디에도.”

『……어째서?』

“글쎄요.”

『설마 소멸하기라도 한 건가?』

특전을 수도 없이 반복한다는 것은 영혼에 막대한 무리를 가져다준다. 지금 사념체인 자신의 몸도 그래서 위태로웠던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 영혼이 계속 닳고 닳다가 사라졌다고 해도 절대 이상하지 않았다.

“글쎄요.”

그러나 여전히 돌아오는 대답은 모르쇠.

『아니면.』

그래서 정우는 ‘혹시나’하는 마음이 들었다.

『혹시 어디서 살아 있나?』

“글쎄요.”

『야!』

깐족대는 듯한 말투.

결국 정우가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파직, 파지직!

이블케는 스파크가 튀는 자신의 손을 앞으로 내밀어 보였다.

“사실 여기까지 말해 준 것만 해도 저로서는 상당히 무리를 한 것이랍니다. 이 보세요.”

『…….』

“시스템은 이 정도 언질을 주는 것만으로도, 제가 플레이어들의 일에 필요 이상으로 간섭하고 있다고 경고를 하고 있답니다. 오효효효! 이 이상은 저 역시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아쉽군요.”

이블케는 외눈 안경을 고치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도 제가 감당하는 권한 안에서 드릴 수 있는 말씀이라면…… 차정우 군은 그 날 사망 판정을 받아 ‘로그아웃’이 된 게 맞다는 점입니다.”

정우는 작게 중얼거렸다.

사망 판정. 로그아웃.

어찌 보면 게임 용어처럼 보이기도 한 것들.

잊어서는 안 될 단어들이었다.

반드시 연우에게 전해 줘야만 했다.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지금 당신이 하는 생각이 전부 부질없는 가정일지도 모르지요. ### 님이 말씀하신 대로, 당신도 똑같이 ‘실재’하는 차정우 군이니까요.”

『나는 그저 특전이 남긴 사념…….』

이블케는 검지를 까딱거렸다.

“이따금 차정우 군은 깨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답답할 정도로 고루한 면이 많아요.”

정우는 이블케의 화술에 홀리는 기분이 들었다.

“영혼은 흔히 혼(魂)과 백(魄)으로 나뉜다는 말, 들어보셨나요? ‘혼’은 우리가 아는 흔한 영혼의 개념이지요. 살고, 죽고. 윤회를 반복해서 새롭게 태어나기를 갈망하는. 그런 것. 그렇다면 ‘백’은 무엇일까요?”

『……혼이 남긴 흔적.』

“땡. 틀렸답니다. 발자취입니다.”

이블케의 입꼬리가 서서히 말려 올라갔다.

“‘혼’은 윤회를 겪고 나면 모든 기억이 사라집니다. 문제는. 그렇게 기억이 사라진 ‘혼’을 두고 ‘나’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나’라는 것은 본디 태어나면서부터 여기에 이르기까지, 내가 살아온 모든 기억과 과정의 총집합체인 것을요. 윤회를 겪는다 한들, 전생자와 환생자를 데려다 놓는다고 한들, 그것들은 ‘나’와는 전혀 별개의 인물들이랍니다. 타인이지요. 하지만 기록과 과정,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백’은, 어떨까요?”

뜬구름 잡는, 철학적인 메시지라 할 수도 있었지만.

정우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파르르 떨고 말았다.

차정우로서의 기록.

그리고 차정우로서의 과정.

그 모든 것들을, 자신은 갖고 있었다.

반면에.

나중에 연우가 차정우의 진짜 영혼을 찾는다고 해도, 옛 기억이 전혀 없다면. 과연 그를 두고 ‘차정우’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니 어깨를 당당히 펴고 지켜보십시오. 도리어 따지고 보면, 어디에 있을지도 모르는 혼보다. 당신이야말로 진짜 차정우 군일지도 모르니까요.”

『…….』

정우는 입을 꽉 다물었다. 잠시 그에게서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하지만.

여태 슬프게 착 가라앉아 있던 정우의 두 눈은 무언가를 다짐한 듯, 단단하게 다져져 있었다.

그리고 연우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홱 하고 돌렸다.

이블케는 정우의 두 눈에 새롭게 깃든 의지를 놓치지 않았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니, 보고 있는 제가 다 기분이 좋아지는군요. 오효효! 오효효효!”

이블케의 입꼬리가 기분 좋게 귓가에 걸렸다.

* * *

이블케의 웃음소리는 그렇게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새로운 손님들이 그를 찾아온 탓이었다.

“이런 이런. 간만의 나들이인데. 할 일도 참 많고, 상담해 드려야 할 분들도 많고. 이래서 인기 스타들이 그토록 고생을 하는 모양이군요. 오효효!”

이블케가 고개를 돌린 곳에는 디스 플루토의 군단장들과 병사들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관리국의 총책임자, 이블케 드 서번트.”

“오효효. 그런 직함과 이름 앞에 사실 ‘전(前)’이 놓인 지 오래되긴 하였지만. 그래도 불러 주시니 고맙군요. 네. 무슨 일이신가요?”

죽은 람을 대신해 디스 플루토를 임시로 끌게 된 군단장, 제라드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대와 관리국에게 제안하고 싶은 거래가 있다.”

“호오. 거래라. 좋아요. 어떤 걸 거래하고 싶은지 물어볼까요?”

제라드는 깊게 숨을 골랐다.

여기서부터 말을 잘 해야 그들은 물론, 그들이 모시는 주인이 살 수 있는 길을 만들 수 있었다.

그들의 주인이 올포원을 상대로 선방을 하고 있다지만.

주인을 지키는 창과 방패가 되어야 할 자신들이 오히려 보호를 받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지 않은가.

주인을 잃었다는 오명은 단 한 번만으로 족했다.

물론, 따지고 보면 관리국과 거래를 한다는 것도, 사실 좋은 선택지라 할 수는 없었다.

관리국과 천계의 관계는 소 닭 보듯 하는 관계. 이렇게 먼저 거래를 제안하는 것도 나중에 문제가 될 가능성이 다분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 가릴 때가 아니었다.

“조언을 구하고 싶다.”

“흐응. 어떤 조언을 요구할지 빤히 알 것 같긴 하군요.”

“올포원의 기준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제라드가 내린 결론이 바로 그것이었다.

올포원이 직접 개입을 천명한 이유는 천계와 하계 간에 있었던 ‘맹약’에 있었다.

타르타로스의 군단이 넘어온 것을 맹약 위반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그런 위반 요소가 될 거리를 제거하면 개입할 명분도 저절로 사라지게 된다.

최소한 그들이 알기로, 올포원은 플레이어와 초월자들 양측에 자신의 잣대를 강요하는 독선적인 측면이 있었지만.

그만큼 스스로에게도 아주 엄격하기로도 유명했다.

“올포원의 눈에서 피한다, 라.”

“그런 경우가 아예 없었던 게 아니란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널리 알려지진 않았어. 그러나 총책임자였던 당신이라면 알고 있겠지. 부디 조언을 부탁한다.”

“조언을 부탁한다.”

“조언을 부탁해요.”

제라드에 이어서 디스 플루토의 군사들이 모두 허리를 숙였다.

이블케는 조금 놀란 눈이 되었다가 피식 가볍게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자존심이 강하기로는 천계의 군사들 중에서도 손에 꼽힌다는 디스 플루토가 이렇게 저자세로 나올 줄이야.

새롭게 주인을 모신 지 단 하루도 안 지난 것으로 알고 있건만.

벌써부터 이런 충성심을 보인다는 건가?

‘역시. ### 님, 당신은 늘 볼 때마다 새롭고 짜릿하단 말이지요. 오효효!’

이블케는 튜토리얼 때부터 그를 눈여겨봤던 자신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분 좋게 웃을 수 있었다.

“사실 이런 일에 끼어드는 것은 좀 그렇긴 하지만……. 스테이지가 이 이상 망가졌다가는 복원 작업도 힘들어질 테니 한 가지 힌트만 드리도록 할까요. 다행히 딱 한 가지 방법이 있긴 있답니다.”

순간, 허리를 숙인 병사들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어떤……?”

“그보다. 그대들이 조언의 대가로 어떤 걸 내놓을 수 있는지를 먼저 보여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제라드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누군가 들을까 싶어 어기전성을 사용해 입술을 달싹였다.

순간, 내용을 들은 이블케의 눈동자가 살짝 커지다, 살짝 곡선을 그렸다.

“호오. 정말 그걸 내놓으실 건가요? 당신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그런 중요한 보물일 텐데 말이지요.”

“보물이라는 것도, 결국엔 힘이 있어야 지킬 수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우리로서는 현재 힘이 없다. 그렇다면 보물을 빼앗길 바에는 차라리 믿을 수 있는 곳에다 맡기는 게 훨씬 나을 테지.”

“표현이 아주 재미나군요. 맡긴다. 라. 전 돌려 드린다고 한 적이 없는 것을요?”

“어차피 당신이 그냥 사용해도 상관없어. 그런다고 해서 가치가 바래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우리의 새로운 주인이라면.”

제라드는 칠흑을 불꽃처럼 화려하게 피우며 다시 올포원과 충돌 중인 연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를 보는 눈동자에는 굳건한 믿음이 실려 있었다.

“언제든지 되찾아올 거라고 믿는다. 보상이라는 형태로라도.”

“오효효효! 좋아요, 아주 좋아! 그런 자신감이야말로 이 탑에서는 아주 중요한 소양이지요.”

이블케는 외눈 안경을 바로 고치면서 말했다.

“제가 드릴 조언은 아주 간단하답니다.”

“뭐지?”

“사왕좌(死王座).”

순간,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면서 훤히 드러난 송곳니는. 마치 악마의 그것처럼 차가워 보였다.

“### 님이 앉으신 그 자리의 특성을 잘 되짚어 보세요. 금방 정답이 보일 겁니다.”

명계의 병사들은 이블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순간 한 가지 생각에 허리를 쭈뼛 세우고 말았다.

“설마……?”

“예. 바로 그것이랍니다. 당신들의 충성심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시험해 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이기도 하지요.”

“……!”

“……!”

* * *

쐐애액-

연우를 닮은 무언가는 목을 베어 오는 손날을 가까스로 피하면서 왼팔을 안쪽으로 잡아당겼다.

철컹!

쇠사슬이 팽팽해지면서 올포원의 손길이 도중에 멈췄다.

연우는 두 날개를 활짝 펼치면서 비그리드를 안쪽으로 깊숙하게 휘둘렀다.

[‘비그리드-???’숨겨진 진명, ‘듀렌달’을 개방합니다.]

[전승: 일도양단]

쏴아악-

하지만 올포원은 곧바로 축지를 밟아 아슬아슬하게 공세를 피했다.

녀석이 사라진 자리로 비그리드가 스치면서 공간이 갈라졌다. 그 너머로 방금 전 연우가 지면을 밟으며 높다랗게 세웠던 산자락이 그대로 잘려 나가면서 우측으로 기울었다.

쿠쿠쿵-

산이 허물어지면서 비탈을 따라 어마어마한 양의 먼지구름과 산사태를 쏟아냈다.

연우는 쇠사슬의 흔적을 따라 사라진 올포원을 쫓아 움직였다. 위치는 무너진 산자락 위. 먼지구름 사이였다.

퍼퍼퍼펑-

이윽고 두 존재가 격돌하면서 폭발음이 천둥처럼 연신 울려 대고. 칠흑과 섬광이 부딪치면서 하늘을 몇 번씩이나 찢어발기는 게 보였다.

본 드래곤과 부-파우스트도 올포원을 쫓기 위해 갖가지 브레스와 마법을 골고루 뿌려 댔지만.

위잉-

번- 쩍!

스테이지를 빼곡하게 물들이는 섬광과 함께 모든 공격은 철저하게 무효화되고 말았다.

그리고 거기서 샘솟은 빛줄기가 그들이 스테이지 곳곳에 뿌려 댔던 설정 권한까지 취소시켜 버렸다.

동시에.

팟-

본 드래곤의 뒤편으로 올포원이 나타나 발로 척추를 내리찍어 박살을 낸 뒤, 양쪽 날개를 잡아 뜯어 하늘로 날려 버렸고.

부-파우스트가 그를 막으려 움직일 때, 이번에는 공간을 비틀면서 빛을 사방으로 굴절시켰다. 부-파우스트는 빛의 감옥에 갇혀 배리어를 연거푸 쏟아냈지만, 곧 모조리 파훼당하고 왼쪽 어깨까지 통째로 날아가고 말았다.

성력이 부-파우스트와 본 드래곤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올포원은 옛 숙적들을 빠르게 제거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더 축지를 전개하려 했지만, 이번에도 쇠사슬이 움직이면서 공허가 활짝 열렸다.

연우를 닮은 무언가는 몸의 절반 이상이 날아간 채,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비그리드를 빠르게 올포원의 가슴팍에다 박았다.

쾅!

둘은 고공에서 그대로 지상으로 추락했다. 엄청난 먼지구름과 함께 올포원은 그대로 지면에 충돌, 체내의 모든 장기란 장기는 모조리 박살 난 채로 비그리드까지 깊숙하게 받아들여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전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손을 휘둘렀고, 연우는 다시 빛의 폭발과 함께 한참이나 날아가 겨우겨우 지상에 다시 착지했다.

헉.

헉.

연우를 닮은 무언가는 칠흑으로 몸을 빠르게 재생시키면서 빠르게 숨을 몰아쉬었다.

어려워도 참 어려운 싸움이었다.

몇 번씩 죽여도 되살아나는 괴물을 상대하는 건, 도무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키키키킥!”

연우를 닮은 무언가는 기분 좋게 광소를 터뜨렸다.

이 얼마 만에 맛보는 바깥 공기인지.

간만에 이리저리 날뛰어 다니기까지 하니 기분이 더할 수 없이 상쾌했다.

‘그릇’도 이만하면 제법 윤활해졌을 테니, 머저리가 아니고서야 자신이 형틀로 되돌아간다고 해서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거나 그러지는 않을 터였다.

‘이전과 똑같이 답답하게 군다면 그때는 진짜 잡아먹어 버릴 테지만.’

다만, 문제가 있다면.

‘저 빌어먹을 놈인데.’

파스스-

「저놈은 오래전과 똑같군. 아무리 죽여도 죽지 않아.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뒤쪽으로 검은 연기와 함께 본 드래곤이 나타나 다시 날개를 활짝 펼쳤다. 드래곤 하트가 있을 위치에서 발현된 보라색 기운이 몸을 빠르게 복구시켜 주고 있었다.

“저것도 고작 3할에 불과하단 말이지?”

올포원은 어느새 깊은 크레이터의 중심에서 몸을 빠르게 회복하고 있는 중이었다. 츠츠츠, 하는 소리와 함께 잿빛 안개와 오로라가 무럭무럭 피어나고 있었다.

올포원은 77층에서 벗어나는 일이 좀처럼 없었다.

타 층계에 본체를 드러내는 일이 있더라도, 차원 간섭을 이용해서 몸의 일부를 겹치는 것일 뿐. 그의 전력 중 상당수는 78층 이상으로 향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 이제 5할인가.”

연우를 닮은 무언가는 잿빛 안개를 두르기 시작한 올포원을 보면서 피식 웃음을 흘렸다. 입술 사이로 송곳니가 훤히 드러났다.

사실 따지고 보면, 연우만큼이나, 아니, 연우보다도 훨씬 올포원을 증오하는 게 바로 그였다.

정확하게는. 그 너머에 있는 놈이지만.

어쨌든 올포원도 거기서 크게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로 올포원을 도모하기란 요원한 일. 시간을 끄는 게 전부였고, 그것도 이제 슬슬 한계에 부딪히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연우란 존재가 완전히 잡아먹히고 말 테니까. 필멸자는 이래서 불편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수를 써야 한다는 생각에 입술을 엄지로 훔치는데.

“음?”

갑자기 디스 플루토들이 포위망을 갖추면서 올포원과의 간격을 좁혀 오기 시작했다.

“저것들, 뭐 하는 짓이지?”

연우를 닮은 무언가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

자신을 도우러 온 것인지는 몰라도. 그의 눈에는 영락없는 자살 행위로밖에 비치지 않았다.

사실 그로서는 저들이 얼마든지 죽어 나가도 별반 상관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자신의 속에 내재된 ‘연우’였다.

저들이 죽는다면 연우가 받는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그가 받을 마음의 상처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퀘스트. 하데스가 건넨 유언이 문제였다. 왕좌를 제대로 이어받기 위해서는 마지막 조건들을 완수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격이 제대로 상승해, 그릇도 더 단단하게 다질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하데스가 다스리던 ‘죽음’은 원래 그가 포용하던 아늑함에서부터 파생된 부류가 아니었던가.

언젠가는 회수해야 할 편린이었기에, 굳이 거부할 필요가 없었다.

자신이 바라는 건 단순히 그것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올포원은 너무 큰 장애물이라, 저들을 말려야 할까 싶었었는데.

“이것들, 재미난 짓을 하려는 거군.”

연우를 닮은 무언가는 그들의 비장한 표정을 읽고, 무엇을 하려는지 깨닫고는 파안대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자신이 생각해도 도무지 ‘미쳤다’고밖에 할 수 없는 짓이었다.

저들에게서는 죽음의 냄새가 물씬 풍겨 나고 있었다.

퀘스트의 마지막 조건은 새로운 ‘안식처’를 찾아 베이스캠프를 꾸리는 것.

연우가 이은 것은 죽음의 왕좌.

또한, 죽은 영혼들을 수용할 수 있는 칠흑의 권능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궁지에 몰린 디스 플루토가 내릴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은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해답은 아주 간단했다.

“죽음으로써, 왕에게 귀의한다.”

그 순간.

디스 플루토의 병사들이 들고 있던 창날을 역으로 돌리면서 일제히 자신들의 심장을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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