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410화 (410/862)

10화. 50층으로 (7)

에도라의 소식을 가져온 건 뚜언띠엔 공작이었다. 식탐황제의 재가를 받아, 혈국의 최고 공략팀을 데리고 넘어오면서 우연히 접하게 된 소식을 전달했던 것이다.

‘무슨 눈빛이……!’

이왕이면 외뿔부족의 힘도 빌리고 싶어 하는 그들로서는 잘되었다 싶어, 연우를 자극할 생각으로 이야기를 꺼낸 것인데.

가면을 뚫고 새어 나온 연우의 안광을 본 순간, 뚜언띠엔 공작은 자기도 모르게 흠칫 놀라고 말았다.

그러다 자신이 필요 이상으로 경계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무렇지 않은 척 헛기침을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연우의 흉흉한 눈빛은 달라지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정확하게 다시 말해.”

뚜언띠엔 공작은 어느새 연우가 말을 놓고 있다는 사실도 눈치채지 못한 채로, 입을 열었다.

“그대가 이미 부딪쳤던 전적이 있는 용병 연맹과 마법 연합 기억하나? 그 외에도 트리톤이나 네크로폴리스 같은 곳들이 한데 뭉치면서 마희를 노리기 시작했다더군.”

연우는 고요한 눈빛으로 뚜언띠엔 공작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

“그 때문에 50층에서 마희가 꽤 많이 다치고 말았는데, 문제는 엘로힘과 마군까지 개입한 정황이 있다는 점이지.”

“엘로힘과 마군?”

“그래. 그대와 척을 진 곳은 전부 뛰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지.”

뚜언띠엔 공작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의 설명을 들은 연우는 생각을 정리하다가 이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뚜언띠에 공작을 휙 하고 지나쳤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뚜언띠엔 공작은 가면 아래로 비치는 연우의 서늘한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꽤나 난장판이 만들어지겠군.’

뚜언띠엔 공작은 팔짱을 끼면서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어느새 그는 자신이 연우의 기백에 잠시 밀렸다는 사실을 잊고, 기쁨에 겨워하고 있었다. 독식자가 열이 받으면 받을수록. 그에게는 좋은 상황이었으니.

그런 공작의 곁으로, 비쩍 마른 사내가 조용히 다가왔다.

“아바마마께 들었던 것과 달리 아주 시건방진 작자로군요. 아바마마께서는 어찌 저런 무례한 작자와 손을 잡으라고 하신 겁니까, 스승님?”

“겉보기에만 치중하면 아니 되십니다. 그는 우리의 아주 좋은 동맹군이 되어 줄 것입니다. 화를 삭이시지요, 태자 전하.”

사내, 혈국의 황태자로서 ‘도모태자’로 유명한 그는 대놓고 인상을 찡그렸다.

존경하는 스승인 뚜언띠엔 공작의 설득 때문에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불만이 역력한 얼굴이었다.

저만치 사라지는 연우의 뒷모습을 노려보는 시선에는 분노가 어려 있었다.

뚜언띠엔 공작은 그런 제자이자, 훗날에 모시게 될 주군을 잘 다독여야만 했다.

사실 그의 마음이 이해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식탐황제에게 남은 유일한 아들이자, 혈국의 황태자로서 언제나 주변의 떠받듦을 아주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다.

그보다 훨씬 강한 랭커들은 언제나 고개를 조아렸고, 그가 바라는 것 중에 이뤄지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언제나처럼 편하게 지내고 있을 때 즈음, 갑자기 식탐황제가 그에게 한 가지 명령을 내렸다.

-독식자의 옆을 따라다니면서, 그를 잘 보고 배우고 오너라.

도모태자의 입장에서 사실 독식자는 최근에 조금 얻은 유명세만 믿고 설쳐 대는, 근본도 없는 낭인 따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녀석과 한데 어울려라?

대체 뭘 보고 배우라는 거지?

하지만 존경하는 아버지인 식탐황제는 오랜만에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당부를 했고, 도모태자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만약 거기에 대해 반발을 했을 시에, 아버지가 어떻게 나올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식탁에 올려 버리셨겠지.’

죽은 형제들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았던 도모태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자신을 따르는 친위대를 데리고 참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친위대는 혈국 내에서도 하나같이 뛰어난 실력자로 손꼽히는 자들.

재능이 좋다며 식탐황제가 직접 추린 최정예들이었다.

하지만 도모태자는 과연 알까?

이들이 사실은 식탐황제의 눈과 귀가 되어 그를 감시하고 평가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뚜언띠엔 공작은 굳이 그 점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에 서둘러 그를 달래고자 했다.

“황제 폐하께서 절대 허튼소리를 하실 분이 아니라는 것, 잘 아시지 않으십니까? 그를 보고 배우라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대로 저자와 함께해서는 자칫 마군이나 엘로힘과도 척을 질 게 아니오? 그들 또한 언젠가 토평해야 할 대상이라고는 하나, 전선을 확장시켜서 좋을 게 없을 것 같아 말하는 것이오, 태사.”

도모태자는 뚜언띠엔 공작의 작은 경고에 뜨끔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뚜언띠엔 공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에 영 틀린 구석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대해서 저희도 우려는 하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그런 것을 넘어서, 본국이 얻을 게 더 많다는 게 황제 폐하와 저희들의 판단입니다.”

“용의 미궁…… 그것이 기대했던 것만큼 효과가 있어야 할 텐데. 저치가 방해나 되지 않았으면 하오.”

도모태자는 자신의 의견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샐쭉하게 입술을 내밀면서 작게 투덜거렸다.

더 이상 불만은 표시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연우를 멸시하는 시선은 사라지지 않았다.

뚜언띠엔 공작은 그런 태자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가 후계로서 소양이 부족하다면 질투가 두 눈을 가릴 테지만, 충분하다면 뭔가 보일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도모태자의 생각이 백팔십도 바뀌는 데는.

단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 * *

[괴수 ‘용암 괴수’와 ‘얼음 마녀’를 처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44층의 시련이 모두 끝났습니다. 다음 층계로 올라가시겠습니까?]

“젠장! 또?”

“43층 지난 지 뭐 얼마나 지났다고?”

44층의 시련은 용암 지대와 빙산을 번갈아 공략하면서 가장 중심부에 살고 있는 두 괴수를 처치하는 것.

다만, 중심부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각 스테이지에 존재하는 몬스 터들을 사냥해야 하고, 그럴 때마다 다른 스테이지의 몬스터들에게 조금씩 버프가 가해져서 동시 공략이 아주 어렵기로 소문난 층계이기도 했다.

그런데 연우는 도모태자와 친위대에게 몬스터들을 맡아 달라며 휙 하고 자취를 감추더니,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두 괴수를 한꺼번에 쓰러뜨리는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두 괴수 전부 다 웬만한 랭커들 따위는 쉽게 잡아먹는 힘을 지녔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래서 혈국에서도 공략 시에 레이드 팀을 꾸린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입이 쩍 벌어질 정도였다.

43층도 층계에 들어선 지 단 한 시간도 되지 않아 통과를 해서 이게 뭔가 싶을 정도였었는데.

문제는.

[43층 랭킹]

1위. 비공개

2위. 나유

3위. 에도라

……

[44층 랭킹]

1위. 비공개

2위. 에도라

3위. 차정우

……

‘1위? 장난치냐고, 진짜!’

그렇게 빠른 공략을 시도했는데도 불구하고, 스테이지 랭킹의 1위에는 언제나 ‘비공개’가 달렸다. 그것이 연우를 가리킨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대체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한 거지?

남들은 한 개의 층계를 통과하기 위해서 최소 한 달, 많게는 몇 년씩 걸리는 것을 감안한다면. 단 몇 시간 만에 두 개의 층계를 넘은 것만 해도 놀랄 일일 텐데. 연우는 스테이지 랭킹까지 갈아 치우고 있었다.

하지만.

연우가 그들에게 주는 충격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45층의 시련이 모두 끝났습니다. 다음 층계로 올라가시겠습니까?]

[46층의…….]

[47층의…….]

……

[49층의 시련이 모두 끝났습니다.]

“허억, 허억, 허억!”

“제발! 그만! 좀 천천히!”

“죽겠다고…… 제발 조금만 쉬다가 가자고……!”

“으어어어.”

연우는 쉴 새 없이 층계를 부수고 또 부수면서 올랐다.

그럴 때마다 도모태자와 친위대는 울며 겨자 먹기로 꾸역꾸역 따라와야만 했다.

그들이 주로 맡는 임무는 연우가 주요 공략에 집중하는 동안, 주변에 있는 자잘한 몬스터들을 처치하거나, 자체적인 디버프를 감수하고 물건을 찾는 등 일종의 잡일 처리가 전부였다.

물론, 친위대 소속원들 대부분이 랭커이니만큼, 40층대의 시련을 전부 해결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차근차근히 시련을 밟아 나가는 것과, 휴식도 없이 한 번에 휘몰아치는 데는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단 하루 만에 40층대를 대부분 통과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49층을 통과할 때 즈음에는 그들의 안색이 조금씩 까맣게 죽어 가기 시작했다.

조금만 쉬자고 이야기를 해 봐도, 연우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럴수록 공략 속도에 더 박차를 가하고 있으니.

너무 지쳐 버린 친위대는 하나둘씩 나가떨어졌다. 그래도 대부분의 대원들은 꾹 참고 버텼다. 도모태자가 악착같이 연우의 뒤를 쫓고 있기 때문이었다.

‘저런 게 가능해? 정말 40층대에 있던 플레이어 맞아? 소문이 사실이었다고?’

도모태자는 연우의 뒤를 따라가는 내내 시선이 계속 변했다.

처음에는 멸시였던 감정이 경악으로, 질색으로, 시기로, 그러다 마지막에는 선망으로 변했다.

‘멋지다!’

도모태자는 연우가 화려하게 스테이지를 클리어할 때마다 선망에 찬 눈으로 바라봤다.

언젠가 자신이 바라던 모습이 바로 저곳에 있었다.

혼자의 힘으로 화려하게 시련을 정복하고,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듯이 묵묵히 다음 층계로 이동하는 모습을.

근본도 없는 자라며 멸시하던 인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저런 모습을 닮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났다.

어째서 아버지와 스승님이 연우의 뒤를 쫓으라고 했는지를, 이제는 잘 알 것 같았다.

여태껏 자신이 알고 있던 세계관이 모두 부서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연우는 그런 이들의 시선을 한껏 받으면서, 고개를 위로 높이 들었다.

[위대한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시겠습니까?]

[등록을 거부하셨습니다.]

[하지만 공개되지 않아도 당신의 업적은 탑에 깊게 새겨져 원할 시에 언제든 등록 여부를 전환하실 수 있습니다.]

[다음 층계로 이동하시겠습니까?]

언제나처럼 명예의 전당에는 비공개로 등록하고, 드디어 50층에 도달할 수 있었다.

화아악!

[이곳은 50층, ‘용의 신전’의 관입니다.]

바람을 타고 메마른 사막의 모래 냄새가 한껏 실려 왔다.

‘드디어 도착했어.’

용체 각성을 처음 이루고 난 뒤, 고룡 칼라투스의 목소리를 듣고 언젠가 반드시 찾아와야겠다고 생각했던 곳. 정우의 사념체가 깨어나고 난 뒤에 훨씬 더 많이 애타게 찾던 곳이기도 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시간이 걸려 도착하긴 했지만. 그래도 연우의 심장은 지금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크게 뛰고 있었다.

[신의 사회, ‘아스가르드’가 40층대를 하루 만에 주파한 당신의 업적에 크게 놀라워합니다.]

[신의 사회, ‘천교’가 가만히 당신을 주시합니다.]

……

[악마의 사회, ‘르 인페르날’이 오랜 고민 끝에 당신의 격에 대한 논의를 마치는 데 합의했습니다.]

[현재 투표가 진행 중입니다. 아직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은 사회가 있으니 기다려 주세요.]

여러 신과 악마들의 반응도 동시에 떠올랐다. 격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 이제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다만, 언제나 연우의 일거수일투족에 가장 크게 호응하던 〈올림포스〉는 여전히 조용한 듯했다. 타르타로스에서의 싸움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걸까?

어쩌면 엘로힘이 에도라를 쫓는 과정에서, 대지모신이 어떻게 손을 썼던 건지도 모른다.

그런 여러 생각들을 하면서.

연우는 재빨리 인지 영역을 넓게 확장시키면서 가장 큰 소란이 벌어지는 장소를 찾고자 했다.

그리고. 단번에 기의 파장이 격렬하게 충돌하는 장소를 특정할 수 있었다.

‘북서부. 이무기의 숲!’

거리가 멀어 아직 확실하게 파악할 수 없지만, 아무래도 에도라 쪽이 많이 위급한 것 같았다.

“먼저 가지. 뒤따라 와.”

연우는 여전히 지친 기색이 역력한 뚜언띠엔 공작과 친위대에게 먼저 가 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쪽으로 몸을 거세게 날렸다.

쐐애액-

점이 되어 사라지는 연우를 보면서. 도모태자와 친위대는 멍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격렬하게 이동하고도 아직 저만큼 힘이 남아 있다는 게 신기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그러다 그들은 도중에 서로 시선을 마주했다.

“아무래도……?”

“가야지. 도우러 왔으면.”

“젠장…….”

도모태자의 말에 따라 친위대는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연우가 향한 이무기의 숲으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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