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418화 (418/862)

18화. 용의 신전 (5)

화르륵!

화마가 거칠게 타오르면서 폐허가 되다시피 한 혈국의 본영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고 있었다.

곳곳에 널브러진 시체들만이 거친 전투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줄 뿐.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찾을 수 없는 언덕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때, 당황해하는 목소리와 함께 하늘에서부터 크로이츠가 조용히 떨어져 착지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연우와 혈국을 노리기 위해 4개의 거대 클랜이 동맹 전선을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급하게 뛰어오던 차였는데.

한창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전장은 모든 전투가 끝나고 폐허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혹시 그새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일까? 성검 줄피카르를 꺼내려던 순간.

“뭐야, 이거? 설마 헛걸음한 건 아니지?”

“예상보다 너무 조용하군. 이렇게 끝낼 놈들이 절대 아닐 텐데.”

크로이츠의 머리 위로, 와이번 무리의 그림자가 잔뜩 드리우더니 화려한 갑주를 입은 플레이어들이 차례대로 쏟아져 내렸다.

환영기사단을 비롯해 ‘자유사제단’, ‘검은 늑대들’, ‘화왕조(火王組)’와 같은 환상연대의 주 세력들이었다. 10번대 안쪽에 위치한 한 자릿수의 조직들.

그리고 마지막에 지상에 착지한 이들은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도 서늘한 느낌을 주는 자들이었다.

열 명도 안 되는 적은 머릿수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내뿜는 존재감은 환상기사단을 포함해 다른 조직들을 합친 것보다 훨씬 컸다.

크로이츠를 비롯해 먼저 착지했던 플레이어들도, 그들에게만큼은 일제히 고개를 숙이면서 예를 갖췄다.

제1단, ‘창공의 날개’.

단 몇 명이서 시작하여 단숨에 탑 내에 돌풍을 일으키고, 나아가 108개나 되는 조직들을 하나로 묶어서 환상연대를 탄생시킨 자들.

구성원 하나하나가 랭커 내지 하이 랭커로 구성되어 있다고 알려진 그들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지금은 창공의 날개라는 이름보다, ‘제1단’ 혹은 ‘연대장의 수호자’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이들 사이로.

뚜벅뚜벅, 한 남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가슴팍에 그려진 날개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비록 로브를 푹 뒤집어써 얼굴 생김새를 알아보기는 어려웠지만.

그 사이로 언뜻 드러난 눈동자만큼은 사위를 꿰뚫을 정도로 매서운 안광을 품고 있었다.

“아무래도 처음에는 그럭저럭 전투가 이뤄지다가, 그 뒤에는 몇몇이 훅 빠지면서 일방적인 학살로 귀결된 것 같은데. 흠. 대체 뭐지? 새로운 세력의 난입인가?”

연대장은 주변을 빠르게 훑으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주변 정황을 빠르게 판단해서 시기적절한 임기응변을 내놓는 데 특출난 그였지만, 오늘 같은 상황은 그로서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사자 연맹, 마군, 엘로힘, 화이트 드래곤의 주요 수뇌가 갑자기 실종되고, 그 뒤에 학살극이 이뤄진 듯한데.

그들은 대체 갑자기 왜 사라졌으며, 아무리 주요 수뇌가 빠졌다고 해도 8대 클랜의 정예나 되는 이들을 이렇게 일방적으로 학살할 수 있는 존재가 누가 있는지 짐작 가는 바가 전혀 없었다.

끽해야 혈국의 공작 급이나, 마군의 주교 급들, 구(舊) 청화도의 무신 급밖에 딱히 떠오르는 자들이 없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그런 인사들의 동향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어, 연대장이 곳곳에 설치해 둔 정보망을 피할 수가 없었다.

“이것 때문인가?”

그러다 연대장은 화마에 휩싸여 무너져 가던 중심지에서 포탈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이미 닫혀 있었지만, 마력의 잔향이 조금 남아 있었다.

“라마트, 이곳에 있는 포탈이 어디로 연결되는지 체크해 봐. 다시 오픈이 가능한지도. 잔향이 있으니 좌표는 바로 나올 거야.”

“알겠습니다.”

제3단, 자유사제단의 리더, 라마트가 앞으로 나서면서 영창을 외기 시작했다. 자잘한 이펙트가 터지면서, 바닥에 설치된 마법진이 조금씩 작동했다.

연대장은 재개되는 포탈을 가만히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조금만 더 있으면…….”

너무나 오랜 기다림이었다.

2년이었던가? 아니다. 3년 혹은 4년…… 어쩌면 10년 가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날’이 있고 난 뒤로 그는 시간을 전혀 잊고 살았다. 오로지 한 가지 목적을 위해서만 살았고, 오늘날에 이르렀다. 환상연대를 일구게 된 것도 그 날에 대한 원한을 풀기 위해서였으니.

이제 곧,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만남을 이룰 수 있게 된다……!

연대장의 두 눈에 처음으로 들뜬 감정이 어린 순간, 마법진이 크게 꿈틀거리면서 붉은색 포탈을 토해 냈다.

그 너머로, 전투가 한창 벌어지고 있는지 시끄러운 소란이 느껴졌다.

“전원, 연대장을 따라 포탈을 건넌다. 저쪽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으니 전부 전투 준비를 갖추도록!”

크로이츠가 재빨리 손을 높이 들며 소리쳤다. 연대가 모두 모이게 되면, 그는 자연스레 부연대장직을 맡게 되어 있었다.

연대원들 모두가 만반의 준비를 갖추면서, 연대장의 뒤를 따라 포탈을 건너려는 순간.

“이봐, 너희들 뭐지?”

갑자기 뒤쪽에서 일련의 기척이 느껴졌다.

연대장과 크로이츠도 걸음을 도중에 멈추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환상연대만큼이나 많은 숫자의 인력이 그곳에 서 있었다. 역시나 살벌한 경계심을 뿜어내면서.

차투라와 샤논의 무리들. 마희성이었다.

* * *

「‘난’을 갈취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연우가 한령으로부터 모글레이 공작을 처치했다는 보고를 들은 건, 거대 포탈을 따라 마군 등이 차례대로 나타날 무렵이었다.

연우는 자기도 모르게 흘러나올 뻔한 비릿한 웃음을 겨우 참아야만 했다.

‘내 예상이 맞으면 좋을 텐데 말이야.’

괴력난신(怪力亂神).

식탐황제를 보조한다는 네 명의 공작들. 이들은 오늘날 혈국이 8대 클랜으로 군림할 수 있도록 만들어 낸 공포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이따금 연우는 동생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존재에 대해 의문점을 가지고 있었다.

대체 이들이 말하는 괴력난신은 어디서 나타난 걸까?

혈국은 분명 강했다. 오래전에 사라진 옛 나라의 계보를 잇는다는 신념만큼이나 장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정글 같은 탑의 세계에서 긴 역사를 지녔다는 건, 그만큼 강하다는 뜻과 같았다.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혈국은 영광의 역사보다 핍박의 역사가 훨씬 더 오래된 클랜이었다.

특유의 선민사상 때문에 어디에도 섞이지 못하고, 오히려 견제와 차별만 받던 자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혈국의 포지션은 상중하로 따진다면 중상(中上)에 가까웠다.

그러던 혈국의 포지션이 갑자기 뒤바뀐 것은 바로, 식탐황제가 등극하고 얼마 있지 않아 갑자기 괴력난신이라는 공작들을 등장시키면서부터였다.

식탐황제가 무분별한 정복전을 벌이기 시작하면서부터. 혈국은 급성장을 이뤘고, 4개의 공작 위도 그만큼 많이 갈아 치워졌다.

하지만 구성원의 면면이 바뀌는 한이 있어도, 식탐황제는 공작 위를 무조건 네 자리로 유지했다. 그가 즉위한 이후 절대 변동이 있었던 적이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이미 ‘력’에 해당하던 아르드바드 공작이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공석으로만 두었지 절대 없애지 않았다.

얼핏 듣기로는 신중하게 차기 후계자를 물색하고 있는 중이라 했던가.

연우는 그게 절대 ‘우연’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한낱 반편이 취급을 받던 식탐황제가 형제들과 선대 황제까지 먹어 치우면서 황좌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에 식탐의 돌이 자리했듯.

혈국의 전력을 급상승시킨 괴력난신의 4개 공작 위도 아마 여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무리 식탐황제가 탐욕에 눈이 멀었다고 해도, 혈국을 이만큼이나 일궈 놓은 효웅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식탐의 돌을 완전히 무용(無用)하게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대로 다루지는 못하더라도, 여기서 파생되는 힘을 꺼내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힘이 되었을 테니.

대부분은 자신을 강화하는 데 쓰고, 감당하지 못할 만큼 남는 양은 ‘괴력난신’이라는 형태로 빚어낸 것이다.

다행히. 그런 연우의 예상대로.

띠링-

[‘패란(悖亂)’을 갈취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영혼석(식탐의 돌)의 힘을 일부 빼앗았습니다. 기존에 소지하고 있던 영혼석(오만의 돌)이 크게 반응합니다.]

[영혼석(오만의 돌)이 더 많은 힘을 갈망합니다.]

메시지가 빠른 속도로 출력되기 시작했다.

지이잉-

왼쪽 가슴에 박힌 현자의 돌이 기분 좋게 울렸다.

그리고.

[서든 퀘스트(죄악석)이 생성되었습니다.]

[서든 퀘스트 / 죄악석(罪惡石)]

내용: 과거, ‘태초의 불’을 지키던 등대지기, 루시엘은 욕심에 눈이 먼 나머지 그 불을 삼키고, 수많은 천계와 기나긴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하지만 신과 악마들은 루시엘의 날개를 찢는 데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욕심에 눈이 멀어 결국 태초의 불을 회수하지 못해 하계로 떨어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이때의 불꽃은 루시엘의 영혼과 뒤섞이면서 14개의 돌로 나뉘어 세상 곳곳으로 쏟아졌습니다.

이 중 대다수는 천계에서 회수하는 데 성공했으나, 일부는 남게 되었으니. 그중 하나가 바로 당신의 손에 들어오게 된 ‘오만의 돌’입니다.

그리고 지금, 바로 여기에 또 다른 돌, ‘식탐’이 발견되었습니다.

주선(Virtue)은 주선끼리, 죄악(Sin)은 죄악끼리 서로 이끌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알게 모르게, 오만의 돌과 식탐의 돌도 서로를 끌어당기는 중입니다.

그 작용에 따라, 지금부터 오만의 돌과 식탐의 돌을 하나로 합쳐 한차례 강화된 새로운 돌, ‘죄악석’으로 탄생시키세요.

그러기 위해서는 식탐의 돌을 가진 강한 적으로부터 돌을 강탈해야 할 뿐만 아니라, 두 개의 돌을 면밀히 분석해 실수 없이 결합시키는 치밀함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제한 조건: 영혼석의 소지자

제한 시간: -

달성 조건:

1. 식탐의 돌을 소지할 것.

2. 식탐의 돌을 분석할 것.

3. 오만의 돌 속에 식탐의 돌을 섞어 새로운 영혼석을 제작할 것.

보상: ???된 영혼석

‘됐다!’

연우는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예상했던 바가 그대로 들어맞았던 것이다.

괴력난신은 식탐의 돌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 식탐황제가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빚어낸 힘의 잔여분이었고.

이 중 하나를 갈취하게 되자 곧바로 시스템이 이것을 인지하게 된 것이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진즉에 아르드바드 공작을 베었을 때 ‘력’도 갖고 올 걸 그랬나.’

연우는 괜히 아쉬운 마음에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사실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절대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그때는 연우가 영혼석을 다루는 법을 전혀 몰랐으니까. ‘력’에 대해서 생각지도 못했고, 갈취하는 방법도 몰랐다. 설사 알아서 갖고 왔다고 해도, 습득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지이이잉-

현자의 돌은 크게 꿈틀거리면서 마력을 잇달아 쏟아 냈다. 마치 더 많은 힘을 내놓으라는 것처럼. 연우는 현자의 돌 속에 깃든 마성이 소리치는 것처럼 느꼈다.

하지만 괄목할 만한 변화가 있거나 한 건 아니었다. 사실 괴력난신이라고 해도, 본래 식탐의 돌이 갖고 있던 힘의 크기에 비하면 한 줌에 불과했으니까.

‘그만큼 식탐황제가 돌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는 뜻이지만.’

그래도 ‘패란’을 얻은 만큼, 연우는 영괴가 좀 더 부드러워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반면에.

“……뭐지, 이건?”

식탐황제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와 언제나 연결되어 있던 끈이 갑자기 툭 하고 끊어졌다. 모글레이 공작이 죽었다는 뜻.

어차피 그것이야 각오했던 일이고, 얼마든지 그만한 인사를 ‘제조’할 수 있으니 상관없었지만. 문제는 당연히 회수되어야 할 힘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뭐지? 뭐가 어떻게 된 거지? 혹시 적들 중에 ‘돌’에 대해 눈치챈 놈이 있었나? 하지만 어떻게? 그동안 들킨 적이 한 번도 없었을 텐데?

식탐황제의 머릿속이 복잡해지며 팽팽하게 돌아갔다. 잃어버린 힘을 회수하지 않으면, 그로서도 혈국으로서도 큰 손실이었다. 아니, 그것을 넘어 ‘큰일’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욕심 많은 그가 무언가를 잃는다는 건, 특히 소중한 보물을 잃는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

“왜 그러십니까, 폐하?”

하지만 식탐황제의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연우가 불쑥 끼어들면서 사고가 도중에 정지하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이미 적들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병력을 물리십시오. 이대로 계속 두시다간 정말 같이 휘말립니다.”

“……!”

식탐황제는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난’을 어떻게 되찾아야 할지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우선 계획대로 일을 진행해야만 했다.

다행히 ‘난’을 갖고 갔을 용의자인 세 사람, 대주교, 마그누스, 왈츠가 전부 공동 안쪽으로 진입하는 것이 보였다.

저들을 전부 처치하고 나면, 범인이 누군지도 금세 찾아낼 수 있으리라.

“수상, 뒤로 물려라!”

“모든 병력 뒤로!”

“모든 병력, 산개하라!”

“산개하라!”

뚜언띠엔 공작의 명령에 따라, 혈국의 선발대가 일제히 성화가 그려진 벽 쪽으로 물러났다.

그러자 사자 연맹, 마군, 엘로힘, 그리고 마군이 차례로 등장해 그들을 쫓아 공동의 깊숙한 곳까지 진입하게 되었고.

여태 두 눈을 크게 뜬 채로 침입자들을 잔뜩 경계하고 있던 발난타의 어깨가 조금씩 들썩이기 시작했다.

[여러 침입자들을 발견하였습니다. 경고합니다. 더 이상의 접근을 불허합니다.]

[여러 침입자들을 발견하였습니다. 경고합니다. 더 이상의 불필요한 침입을 불허합니다.]

……

[세이프 가드 시스템의 단계가 상향 조정됩니다.]

[현재 세이프 가드의 단계: 5]

[지정된 세이프 가드 시스템에 따라, 발난타의 상태가 ‘항시 작동’으로 변경됩니다.]

발난타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길한 기운이 태풍처럼 휘몰아치기 시작했지만, 혈국을 제외한 침입자들은 그것을 뒤늦게 발견하고 말았다.

당연하지만.

그 대가는 참혹했다.

쉭-

발난타의 신형이 휙 꺼지더니.

콰아앙!

막 포탈 안쪽으로 진입하던 플레이어들이 폭발 소리와 함께 피떡이 되어 사라졌다.

“무, 뭐지, 이건?”

수하들이 갑자기 한 줌의 핏물이 되어 사라진 것을 본 마그누스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방금 전에 죽은 이들 중에는 우로스도 있었다. 엘로힘이 자랑하는 7인대의 수장이자, 프로토게노이 족의 가주이기도 한 우로스가!

가뜩이나 계속된 프로토게노이 가주들의 죽음으로 인해 엘로힘이 처한 위험을 떠올려 본다면. 이번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이놈이!”

결국 마그누스는 분노에 잔뜩 젖은 채로, 한쪽 손을 크게 펼치며 일장(一掌)을 날렸다.

〈거인의 추(鎚)〉. 마치 거인이 직접 손바닥을 아래로 내려치는 것처럼, 강렬한 장풍을 쏟아 내는 그의 시그니처 스킬이었다.

마그누스는 당연히 이 정체도 알지 못하는 전투 인형 따위는 가볍게 날려 버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쾅!

발난타는 오른손을 뻗으면서 그 일장을 받아 냈다. 그와 똑같은 자세, 똑같은 위력, 똑같은 스킬로.

“……!”

마그누스의 두 눈에 도무지 말도 안 된다는 불신의 기색이 어리는 순간.

콰르르릉-

발난타가 비어 있던 왼손을 앞으로 내뻗었다. 방금 전에 보였던 것과 같은 스킬이되, 그보다 월등히 높은 숙련도와 위력을 선보이면서.

격렬한 태풍이, 마그누스를 집어 삼키면서 단숨에 공동을 휩쓸었다.

쿠르르-

‘지금!’

그리고 놈들이 서로 뒤엉켜 정신없이 싸워 대는 동안. 연우는 문지기가 없어진 철문 쪽으로, 불의 날개를 펼치면서 빠르게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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