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419화 (419/862)

19화. 용의 신전 (6)

“독식자아아!”

연우의 등장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바로 아이반이었다. 발난타의 등장으로 전장이 혼란스러운 동안, 유일하게 연우의 행적을 좇았던 것이다.

하지만 발난타는 어느 누구도 철문 쪽으로 접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그쪽으로도 손을 뻗었다. 비스듬히 내리긋는 손날에서부터 공간이 갈라져 나갔다.

〈사자 출동〉. 아이반의 시그니처 스킬이 녀석에게서 터져 나왔다.

“흡!”

아이반은 연우에게로 달리다 말고, 급격하게 방향을 틀어 검을 아래로 내리쳐야만 했다.

까앙, 하는 거친 소리와 함께 몸 이 크게 들썩이며 한참이나 떠밀려 났다. 검이 부르르 떨리면서 절반 이상 금이 갔다.

등골을 따라 식은땀이 흘렀다. 방어가 조금만 늦었으면 허리가 날아갔을 위력. 자신이 펼치는 사자 출동보다 더 숙련도 높은 스킬이었다.

‘어떻게 한낱 전투 인형 따위가……!’

그가 알기로 전투 인형의 움직임은 어디까지나 입력된 모션(Motion)을 모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상대의 스킬을 흉내 낼 수 있다고 해도 숙련도나 위력까지 똑같이 따라 할 수는 없을 텐데. 이건 그 정도를 넘어서는 것 같았다.

일 년 남짓한 시간 동안 실종되었던 독식자가 비밀리에 만들어 낸 비장의 무기인 걸까, 아니면 혈국이 여태 숨겨 왔던 패였던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히든 스테이지, ‘용의 미궁’에 입장하였습니다.]

혹시 포탈을 넘자마자 망막에 맺혔던 이상한 메시지와 관련된 걸까.

용의 미궁?

이게 대체 뭘까. 50층 스테이지에 여러 지형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런 이름을 가진 구획은 없었다.

히든 스테이지라는 것을 봐서는 절대 그저 그런 곳은 아닐 텐데. 혹시 용의 신전, 어딘가에 묻혀 있을 거라고 모두가 예상하던 ‘유적지’와 관련 있는 걸까.

콰르르릉!

하지만 아이반의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어느새 전면으로 다가온 발난타가 주먹으로 그의 복부를 거세게 후려친 까닭이었다.

아이반의 검이 결국 폭발하면서 피보라가 일어난 사이.

대주교와 왈츠가 빛살이 되어 연우와 식탐황제의 뒤를 맹렬하게 뒤쫓았다.

“폐하! 이곳은 저희들이 맡겠으니 어서 문을 여시옵소서! 티르빙, 폐하를 책임지고 모셔라!”

“뚜언띠엔!”

식탐황제를 호종하던 뚜언띠엔 공작이 뒤로 빠지면서 몸을 뒤로 돌렸다.

쾅!

발을 세게 구르면서 마력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그를 둘러싸고 있던 살가죽이 찢어지면서 뼈로 이뤄진 칼날이 고슴도치처럼 대거 삐죽삐죽 튀어나왔다.

〈골해늑검(骨骸勒劍)〉. 뼈를 인위로 조작해 검을 만들어 내는 뚜언띠엔 공작의 시그니처 스킬. 식탐황제로부터 전수받은 ‘괴’와 합쳐지면서 뼈의 경도는 비정상적으로 단단해져, 그는 움직이는 흉기라 할 수 있는 상태였다.

처처척-

뚜언띠엔 공작이 양어깨를 부여잡으며 마력을 밀어 넣자, 바깥으로 튀어나온 뼈의 칼이 단숨에 수십 배로 확장해 마치 덤불처럼 변했다.

그리고 앞으로 쏟아지는 뼛조각들.

대주교와 왈츠는 귀찮아 죽겠다는 듯이 인상을 찡그리면서 손을 옆으로 흔들었다. 그러자 공간이 떠밀리면서 뼛조각들이 허망하게 연거푸 터져 나갔다.

하지만 부서진 뼛가루들은 공간을 가득 메우며 시야를 가렸고.

그 틈을 타, 저 높은 공동의 끝부분에서 공간이 갈라지면서 두 개의 인페르노 사이트가 활활 타올랐다.

「접근. 을. 불허. 한다.」

사방에 맺힌 마방진을 따라 마법 포격이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지면이 갈라지면서 불기둥도 높이 치솟았다. 엘더 리치로 승급을 한 만큼 강해진 위력의 마법이었다.

화아아-

뼛가루가 만들어 낸 안개에 구멍이 숭숭 뚫리고, 지면을 따라 생겨난 균열이 잔뜩 벌어지면서 대주교와 왈츠의 접근도 일시 차단되었다.

“이것들이!”

왈츠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하며 전사경을 잇달아 뿌려 공세를 모조리 파훼시켰다. 하지만 그들의 발목을 묶겠다고 작정하며 달려드는 뚜언띠엔 공작과 부의 합공을 모두 뿌리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어머니, 여름여왕으로부터 배운 마법을 통해 디스펠을 펼쳐 마방진을 막아 보기도 했지만.

지잉, 징, 지이잉-

부는 마법 실력이 그녀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을 증명하듯, 디스펠을 도로 디스펠시키는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마법을 구사했다.

결국 그녀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자신의 원영신을 한껏 분리시켰다.

힘을 분산시키는 만큼 자칫 약점을 드러내는 꼴이 될 수 있어 되도록 이 짓은 안 하려 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그렇질 못했다. 십여 기의 원영신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서로 다른 경로로 연우의 뒤를 쫓았다.

“이런!”

뚜언띠엔 공작은 아차 싶은 마음에 십여 기나 되는 원영신을 전부 막아 보려 했지만, 도무지 쉽질 않았다.

결국 몇몇이 그들의 견제를 피해 균열을 넘는 데 성공했고.

바로 그때, 먼지구름을 헤집으면서 못 보던 얼굴들이 난입했다.

“시작부터 이만한 싸움이라니. 저 친구, 예나 지금이나 사고를 몰고 다니는 건 여전하군.”

“우선은 결계를 치겠습니다.”

“마희! 여긴 저희가 맡겠습니다!”

환상연대의 연대장과 크로이츠, 차투라, 그리고 샤논이었다. 아군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빠르게 연합을 하여 포탈을 넘어온 것이다.

연우와 같이 있던 에도라는 그들을 맞으면서 신마도를 높이 들었다.

쿠우우, 콰아앙!

파츠츠-

그리고 아이반과 마그누스 등에게 발이 묶였던 발난타가 어느새 돌아와, 후미에서부터 왈츠와 대주교를 공격하기 시작했으니.

오러가 폭발하며 마구잡이로 뒤엉키는 가운데.

연우의 손이 드디어 철문에 닿았다.

[방문자를 인식하였습니다.]

[미궁의 첫 관문을 여는 데 성공했습니다.]

[문지기(발난타)를 따돌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숨겨진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드디어……!”

식탐황제의 입꼬리가 길게 쭉 찢어졌다.

아직 이 너머에 더 많은 길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지도를 숙지하고 있는 자신과 다르게 적들은 미궁이 열리는 순간 수많은 가디언들을 상대해야만 한다.

몰살은 되지 않더라도, 큰 피해는 뒤따르리라.

그럼 자신은 그사이에 칼라투스가 남긴 용종의 유산을 모조리 독차지하면 되는 것이다.

그는 벌써부터 많은 보물들을 눈앞에 둔 것처럼,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었다. 입가에는 군침이 잔뜩 흘렀다.

그런데.

[숨겨진 시련이 시작됩니다.]

[첫 번째 시련: 미궁에서 살아남으세요.]

“……무슨?”

식탐황제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메시지에 눈을 크게 떴다. 그 순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연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면 아래.

연우의 두 눈이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비릿한, 눈웃음이었다.

“카……!”

식탐황제가 연우를 부르기도 전에.

화아악!

미궁에서부터 시작된 빛무리가 공동을 환하게 밝히며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 * *

칼라투스의 부름을 받아 곧바로 그가 머물던 레어에 도착했던 나는 비록 겪지 못했지만.

나중에 가디언 우발라에게 듣기로, 미궁 곳곳에는 여러 개의 크고 작은 시련이 가득하다고 했다.

미궁은 많은 용종들을 기리면서 칼라투스가 만들어 낸 최후의 안식처. 당연히 그런 곳을 방문해 안식을 방해하는 자라면, 응당 그만한 자격을 보여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미궁의 위에 있는 신전에서 벌어지는 시련조차도, 사실 미궁이 가진 여러 시련 중 하나에 불과하댔지.

그리고 그 내용들을 들었을 때는…… 말을 말아야지.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첫 시련부터가 랭커, 일반 플레이어들한테는 아주 엿 같다는 것.

미로처럼 얽힌 복잡한 미궁에 랜덤으로 플레이어들을 흩어 놓아 길을 찾게 한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으니.

내용만 따진다면…… 어휴, 그게 어디 사람이 할 짓인가.

아, 그러고 보니 칼라투스는 사람이 아니었지.

그럼 어디 도마뱀이 할 짓인가?

“일단은 계획대로 된 것 같은데.”

연우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보이는 거라고는 온통 종유석으로 가득한 동굴 벽뿐. 작은 공동을 따라 좌우로 굴이 길게 뻥 뚫려 있었지만, 어둠으로 덮여 있어 어떤 구조인지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 외에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 듯했다.

일단 계획대로 됐다는 뜻이었다.

‘입구에 있던 놈들도 전부 뿔뿔이 흩어졌겠지.’

여러 세력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태에서 계속 싸움을 벌여 봤자, 이쪽이 불리하기만 할 뿐.

하지만 랜덤으로 위치가 지정된다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강제로 전력을 분산하는 효과가 있으니 견제하기도 편하면서, 저들 간에 경계심을 키우기도 좋다. 이 드넓은 미궁 안에서 한정된 자원만 가지고 이리저리 구르며 고생하다 보면, 이기심부터 먼저 고개를 들 테니까.

각개 격파되기도 하고, 서로를 잡아먹기도 하면서 각자 피해를 기하급수적으로 불려 나가겠지.

사자 연맹, 엘로힘, 마군, 화이트 드래곤, 혈국…… 어느 곳 가릴 것 없이 모두 깊은 수렁에 빠진 것이다.

거기다 조만간 위쪽에서도 이쪽에 대한 소문이 퍼져 나갈 게 분명하다.

용의 미궁이 발견되었다, 칼라투스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그런 소문이 퍼진다면, 너도나도 끼어들게 될 것이다. 미궁 안쪽으로 계속 인구가 유입되면 가뜩이나 아수라장이었던 판이 더 이상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지게 된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블랙홀.

그게 연우가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였다.

무엇보다.

미궁이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은.

‘역시 안 되나?’

언제나 꼬리처럼 따라붙던 채널링을 모두 닫아 버린다는 점이었다.

용의 신전. 용의 미궁. 당연한 말이지만, 칼라투스는 자신들의 안식처를 다른 존재들이 엿보는 것을 아주 불쾌하게 여겼다.

사도 외에도 신과 악마로부터 힘을 빌리는 플레이어들은 많다. 그들의 기능이 모두 정지해 버리는 것이다.

그건 용종이 가진 특성 때문이었다.

비록 천계로 올라간 신, 악마들과 다르게 용종은 하계에 남았다지만.

그래도 용종 역시 그들과 한때 어깨를 나란히 하던 초월종. 불쾌하기 짝이 없는 시선을 용납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채널링이 모두 닫히면서 권능은 모두 정지된 상태. 연우도 하늘 날개를 펼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칠흑왕의 권능은 잘 작동하고 있나.’

우우웅-

다행히 연우는 잘게 떨리는 세 개의 형틀을 확인하면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칠흑왕의 형틀은 아티팩트를 빌려 권능을 사용하는 것이니, 채널링 차단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듯했다.

하늘 날개를 쓸 수 없는 게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칠흑왕의 권능이 있다면 미궁을 통과하는 데는 크게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이미 머릿속에 레어까지 향하는 지름길은 담겨 있으니.

그리고 미궁이 주는 또 하나의 단점.

[‘용의 저주’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일정 수치만큼 하락합니다.]

[속성력과 지배력이 일정 수치만큼 하락합니다.]

……

히든 스테이지가 가진 특유의 디버프도 뒤따른다는 점이었다.

[특성 ‘마룡신체’의 영향으로 ‘용의 저주’에서 일부 해방됩니다.]

그나마 연우는 용에게서 비롯된 체질을 가진 덕분에 영향이 덜 미치는 편이었지만. 그래도 몸은 평소보다 무거운 상태.

‘이런 지경이라면, 아무리 왕 급이라고 해도 힘에 부칠 수밖에 없겠지. 가진 수준만큼 용의 저주도 비례하니까.’

아무리 랭커니 하이 랭커니, 아홉 왕이니 해도, 이런 막대한 제약들을 가지고서 계속 이어지는 시련과 가디언들의 공세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

연우는 지금쯤 가디언들에게 한창 시달리고 있을 놈들을 떠올리면서 비릿하게 웃었다.

언뜻 따로 떨어진 에도라가 걱정되긴 했지만.

‘그 아이라면. 잘 해내겠지.’

비밀리에 미궁의 구조에 대해 말해 주었으니, 똘똘한 에도라라면 무사히 잘 빠져나와 레어까지 도착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미궁에서 살아남으세요.]

첫 번째 시련의 내용을 보면서.

화아아-

연우는 천천히 초감각의 영역을 퍼트려 나갔다.

우선 자신이 정확하게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파악해야 했다.

‘그러고 보니.’

그러다 문득 연우는 이곳으로 넘어오기 전에, 크로이츠와 함께 보았던 환상연대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분명히 그놈이었지?’

연우의 두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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