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421화 (421/862)

21화. 용의 신전 (8)

“젠장!”

블랙 드래곤의 수장, 가을군주 탐은 자기도 모르게 울컥 튀어나온 울분을 참지 못하고 탁상 위에 있던 물건들을 모두 쓸어버렸다.

와장창창. 다들 하나같이 탑에서도 진귀하다 싶은 물건들이고, 어머니 여름여왕이 막내였던 그에게 남겨 줬던 보물들이었지만.

지금 그는 도무지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갑자기 그의 귀에 들어온 소문이 이성을 상실케 했기 때문이었다.

용왕 칼라투스의 무덤이 발견되었다는 소문.

처음 그 소문을 들었을 때에는 또 어디선가 헛소문이 돈다고 생각했다.

용의 신전에 아마 용종과 관련된 숨겨진 유적지가 있을 거란 소문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고, 설사 그런 것이 발견되었다고 해도 멍청한 식탐황제가 찾았을 거란 생각은 추호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탐의 머릿속에 식탐황제는 실컷 부려 먹기만 하다가, 나중에 화이트 드래곤의 전력을 많이 갉아먹고 나면 어부지리로 취할 수 있는 편리한 도구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소문이 진실이라는 게 알려졌을 때.

그는 암담한 심정을 느끼고 말았다.

모든 용종이 사멸하고 만 이때. 그리고 서로가 용종의 정통 후계자라며 삼파전으로 전쟁을 치르는 이때. 옛 용종의 유적지는 전황을 단박에 뒤집을 수 있는 패가 될 수 있었다.

단순히 용종의 유산을 차지하는 것을 넘어서, 자신이 진정한 용종의 후계자라며 나설 수 있는 좋은 구실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런 좋은 장치가 탐이 한번 뒤통수를 친 적이 있는 식탐황제의 손에 있었고.

왈츠와 전쟁을 치르던 와중에 같이 휘말리고 말았다고 한다.

당연히 탐으로서는 암담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어떻게든 나도 개입을 해야만 해. 어떻게든…….”

사실 지금이라도 당장 혈국을 돕겠다는 명분을 들어 칼라투스의 무덤으로 뛰어들어도 무방하긴 했지만.

문제는 그랬다가 무덤 속에 갇혀 전력만 상실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세작을 통해 전해 듣기로 무덤은 미궁의 구조로 이뤄져 있어, 자칫 발을 잘못 들였다가는 호되게 당할 수 있다고 하니.

반면에 혈국에는 무덤 내부가 그려진 지도가 있다고 했다.

그러니 어떻게든 식탐황제, 그 역겨운 돼지의 비위를 맞춰야만 했다. 하루아침에 두 세력의 위치가 달라져 버린 셈이었다.

“……그 돼지 놈이 마음에 들 만한 것을 내놓아야 할 텐데. 무엇이 있지? 구미가 당길 만한 것이.”

탐욕과 허영만 가득한 식탐황제가 좋아할 만한 보물이 무엇이 있을는지.

탐은 자신의 방을 어지럽게 돌아다니면서 계속 머리를 굴렸다.

그러던 그때.

『듣기로, 막내, 너와 우리의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들었는데. 어떤가? 잠깐이라도 손을 잡아 보는 것이.』

갑자기 다른 잡동사니들과 같이 바닥을 나뒹굴던 구슬이 묘한 빛을 발하면서, 익숙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린 드래곤을 이끄는 3명의 수장 중 한 명, ‘이호(螭虎)’할이었다.

“…….”

탐은 허리를 숙여 수정구를 들었다.

아주 오래전, 어머니이신 여름여왕이 자식들에게 고루 나누어 줬던 수정구. 형제들이 모두 갈라진 이후로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저쪽도 자신만큼이나 사정이 다급했던 것이겠지.

탐은 저쪽의 제안이나 한번 들어 보자는 생각에 천천히 입을 뗐다.

“오랜만입니다, 형님?”

* * *

아이반이 몇 안 되는 수하들과 함께 용아병들을 쓰러뜨리던 도중, 갑자기 눈앞이 ‘번쩍’하고 나서 느낀 생각은 두 가지였다.

뜨겁다.

그리고 화가 난다.

동굴의 벽을 타고 흘러오던 불길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이 한심스럽기만 했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자신의 곁에는 방금 전까지 그와 함께하던 수하들은 모두 사라진 채, 증오스러운 얼굴만 남아 있었다.

검은 가면과 코트를 입은 사내. 자신의 아들을 앗아 가고, 세력마저 붕괴시킨 원수.

독식자, 카인.

“……왜 날 살려 두는 거지?”

아이반은 연우를 보면서 으르렁거렸다.

이미 수하들은 죽은 지 오래였고, 자신 역시 이상한 쇠사슬 같은 것에 칭칭 감겨 이렇다 할 스킬조차 발동시킬 수 없었다.

죽으면 죽었지, 이렇게 전쟁 포로처럼, 혹은 줄에 묶인 개새끼처럼 질질 끌려다니는 건, 그의 자존심상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연우는 그런 아이반의 목소리 따윈 들리지 않는다는 듯, 그림자를 움직여 방금 전에 해치운 용아병에게서 이상한 구슬 같은 걸 수거하고 있었다.

“왜 날 살려 두냔 말이다!”

결국 아이반은 화를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

그제야 연우도 하던 일을 멈추고, 천천히 이쪽을 돌아보았다. 검은 가면 아래에 있는 두 눈은 아무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듯 고요하기만 했다.

“착각하는군.”

“뭐?”

“널 살려 두는 게 아니야. 칸 때문에 놔두고 있는 것뿐이지.”

“……!”

“그쪽과 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칸은 소중한 친구고, 그쪽은 그런 칸의 아버지이니 내버려 뒀을 뿐. 그쪽에 관한 건, 칸이 결정하도록 놔둘 생각이다.”

“……나에게 수모를 줄 생각이냐?”

“수모라고 생각한다면, 혀라도 깨물고 알아서 자살하던가.”

“뭐……?”

“말했지만, 내가 그쪽을 살려 두는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야. 칸 때문이지. 죽고 싶거든 죽어라. 나야 칸에게 당신의 시체를 던져주든, 아니면 그냥 숨기든, 알아서 하면 될 일이니.”

“…….”

"그리고 뒈지려면 혼자 조용히 뒈져. 하나밖에 없는 아들 마음에 괜히 멍들게 하지 말고.”

아이반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결국 자신은 연우에게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대주교와 왈츠, 마그누스 때도 그랬고, 지금 역시도. 아이반은 자신이 놓인 위치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를 절실히 깨닫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아이반을 보면서.

“짜증 나.’

연우는 속으로 혀를 찼다.

칸과 아이반의 부자(父子) 사이에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는 건 대충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였기에 괜히 지구에서의 일이 떠올라 화가 났다.

가족의 일에는 무책임하기만 한 아버지. 그러면서도 제 자존심만 챙기는 모습 따위가 역겨워서 꼴도 보기 싫었다.

그래도 아이반의 숨을 끊지 않은 이유는 말했던 대로 이 일을 칸에게 맡기는 게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때에 따라서는 인질로 삼을 수도 있을 테고.’

연우는 침묵에 잠긴 아이반을 슬쩍 보다가, 더 이상 헛소리를 하지 않을 것 같자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의 앞에는 돌로 만든 석문이 하나 놓여 있었다.

‘일기장대로라면, 여기가 맞을 텐데.’

미궁은 개미굴처럼 복잡한 구조로 이뤄져 있고, 곳곳에 수많은 석실(石室)이 숨겨져 있었다.

각 석실에는 보관소, 무기 창고, 연구소, 도서관, 재료 농장 등 다양한 시설이 마련되어 있었고.

종류에 따라서 일정한 시험을 거쳐 소유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것들 하나하나가 용종이 남긴 유산들이니 대단한 것들이 분명했지만.

정작 연우는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다른 석실들에 있는 건, 죄다 실패한 실험물이나 기능 떨어지는 양산품들뿐이야.’

‘진짜’ 보물이라 할 만한 것들은 칼라투스의 레어에 보관되어 있을 테니까.

그리고 이 석실은 그런 레어로 향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다른 석실들과 마찬가지로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이는 석문.

연우가 그 위에다 손을 대고 마력을 실어 넣자, 순간 석문 위로 룬 문자가 빛을 토해 내며 빼곡이 나타났다.

그그긍, 그그-

그리고 돌아가는 기관 장치 소리와 함께 석문이 열렸다.

“잠깐, 물어볼 게 있……!”

그때, 아이반이 무슨 생각을 하다 말고 연우를 부르려 했지만, 갑자기 녀석의 그림자가 길게 쭉 늘어나면서 그대로 몸을 집어삼켰다. 이후의 일은 타인에게 노출시켜서 좋을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다.

연우가 연 석실 내부는 비교적 작은 크기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이렇다 할 기관이나 시설도 보이지 않는 곳. 중앙 제단에 빛이 바랜 검은 수정구가 하나 놓인 게 전부였다.

보물을 찾아 움직이는 플레이어들의 눈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연우에게는 미궁에서 가장 필요한 물건이었다.

제단에 천천히 올라 수정구를 살폈다. 여기저기에 균열이 가 있고, 듬성듬성 조각이 빠져 있었다.

잘 보면 수정구가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타원형으로 되어 있어 겉보기엔 ‘알’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알]

종류: 잡화

내용: 쓰임새를 전혀 알 수 없는 알. 부서져서 복원이 필요해 보인다.

연우는 여태껏 모았던 칼라투스의 이 조각들을 전부 꺼냈다.

그러자 검은 수정구와 이 조각들이 허공으로 둥실 떠오르더니, 돌개바람을 그리면서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큐브가 돌아가는 것처럼 이리저리 돌아가더니, 곧 자그마한 요정의 형태로 변했다.

『날 깨운 게, 당신인가요?』

요정은 시린 빛을 발하면서 천천히 눈을 떴다.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아, 마치 기계처럼 보이는 눈빛.

연우는 녀석을 보면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미궁의 메인 코어 프로세서, 우발라. 맞지?”

『절 아시는군요. 전 당신을 처음 보는데 말이죠.』

“잘 알다마다.”

칼라투스의 다섯 무덤지기가 각 자 별난 특색을 갖고 있다지만. 그래도 그중에서 가장 우두머리가 되는 건, 우발라였다.

가디언들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복잡한 네트워크망의 메인 프로세서라 할 수 있는 가디언.

그리고. 미궁을 지키는 데에만 목적이 있는 녀석의 모티브는…….

“무덤을 찾아와서, 주인의 아들을 못 알아봐서야 손님이라 할 수 없을 테니까.”

칼라투스가 오래전에 잃어버려야만 했던 자식이었다.

그가 평생토록 보고 싶어 했던 얼굴.

위대한 용왕이라 불렸지만, 결국 그의 눈을 멀게 만들고, 끝내 종족의 사멸을 불러일으키고 말았던 원인.

『간만에 깨어나서 그런 식으로 불리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군요.』

여전히 기계음처럼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것 같은 목소리였지만.

연우는 왠지 모르게 그의 목소리에 짙은 한숨이 담겨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의 주인, 칼라투스께서 당신이 사랑하시던 자식의 기억을 고스란히 제게 담아 두시긴 했습니다만. 그런 면에서 저는 단순히 저장소의 역할만 하고 있을 뿐, ‘자식’으로서의 자아는 전혀 갖고 있지 않으니 저는 단순히 이곳 미궁을 관리하는 시스템인 우발라일 뿐입니다.』

우발라는 딱 잘라 말하고, 더 이상 언급하기 싫다는 듯이 연우를 응시했다.

『그보다. 저를 깨웠다는 건, 당신이 칼라투스 님과 차정우 님이 말씀하셨던 그분이신가 보군요.』

칼라투스와 차정우가 말했던 사람.

그 말을 듣는 순간, 연우의 두 눈이 빛났다.

역시 칼라투스뿐만 아니라, 정우도 여기에다 뭔가를 남긴 걸까. 시계 속에 잠든 동생의 사념체는 죽을 당시의 기억이 없다고 했다. 어쩌면 그와 관련된 정보가 있을 지도 몰랐다.

“그래.”

『차정우 님께 주어졌던 권한을 진행하길 바라십니까?』

“바란다.”

『알겠습니다. 확인을 위해 간단한 절차를 진행하겠습니다. 동의하시겠습니까?』

“동의하지.”

『패스워드를 이곳에 인식해 주십시오.』

연우 앞으로 자그마한 빛이 터지면서 투명한 창이 열렸다. 연우는 그 위에다 손바닥을 얹어 마력을 불어넣었다.

사람은 각자가 주어진 고유 마력 패턴 같은 것이 있는바. 연우의 체질은 동생에게서 전승받은 것이기 때문에 칼라투스와 동일했다.

『확인되었습니다. 사용자 차연우. 기존 사용자인 차정우 님의 권한을 그대로 승계합니다.』

그 순간, 연우는 자기도 모르게 몸이 허공으로 둥실 떠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화아악!

그를 둘러싼 광경이 변했다.

연우는 어느새 시커먼 동굴이 아닌 시푸른 창공에 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발아래로.

미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낱낱이’ 보였다.

마치 전지적 시점으로 하계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이곳의 비밀을 알아낸 것 같아서. 잠시 손을 잡는 게 어떨까, 대주교?

한쪽에서는 왈츠와 만나고 있는 대주교의 모습이.

- 제기랄! 카인! 카인은 어디에 있단 말이냐! 경이 말한 것과 너무도 다르지 않은가! 어디 있냔 말이다아!

- 폐하, 정신 차리시옵…… 크아악!

-다 잡아먹어 버리겠다! 다 잡아먹어 버리겠어!

다른 한쪽에서는 길길이 날뛰다가, 용의 저주로 마력 제어에 실패하면서 갑자기 이성을 잃은 식탐황제의 모습이 보였고.

-여기가 미궁이로군.

-불나방 같은 것들이 참으로 많은데?

입구로 향하는 포탈을 건너는 수많은 플레이어들과, 그들을 밀어젖히면서 입장하는 블랙 드래곤과 그린 드래곤의 무리들도 있었으며.

-으아악! 제기랄! 이놈은 뭐야? 가디언? 저게 무슨……!

그들에 맞서는 발난타의 모습이 있었고.

-본부! 본부는 왜 연락이 안 되는 거야!

-방금 전부터 모든 연락이 두절된 상태입니다!

랜덤으로 떨어진 탓에 혼란스러워하다가, 다른 가디언들에 휩쓸리는 여러 플레이어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미궁의 각 통로와 석실에 설치된 모든 트랩과 활동 중인 가디언들의 위치, 그리고 설정 권한도 같이 뒤따랐다.

여기서 마음만 먹는다면, 이들에 대한 모든 권한을 만질 수 있었다.

동생에게 주어졌던 권한은 최고 관리자.

우발라에 직접적으로 ‘접속’을 함으로써, 미궁을 조율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인수인계받은 것이다.

너무 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탓에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였다.

『정보의 홍수에 휩쓸리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미궁에 현혹되는 순간, 자아를 잃게 되십니다.』

연우는 아주 잠깐 눈을 감았다가 호흡을 정리하면서 다시 떴다. 마룡신체로 발전하면서 확장되었던 의식 세계가 부드럽게 미궁의 정보를 인식하고 해석하면서 서서히 동기화를 진행시켰다.

[완전한 접속이 이뤄졌습니다.]

연우는 한순간, 이 미궁 속에서는 모든 것을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 미궁 안에 있는 한, 연우는 이미 신이나 악마 같은 초월자와 다름없는 힘을 손에 넣게 된 것이지만.

당장 그에게는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지금은 자신이 개입하는 것보다는 혼란이 더 크게 빚어질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게 나았다.

대신에 연우는 에도라가 어디에 있는지만 파악한 뒤, 무사히 미궁을 잘 돌파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높이 위로 들었다.

그러자 연우가 둥실 떠오른 하늘보다도 더 높은 상공 위로, 구름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크기의 성채가 보였다.

부유성(浮遊城) 라퓨타(Laputa).

칼라투스가 생전에 머물렀던 레어이자, 마지막 안식처이며. 또한, 아르티야의 클랜 하우스가 위치해 있는 곳이기도 한 비밀의 성.

미궁에서도 이면 세계에 숨겨진 장소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드디어 미궁의 중심지까지 도착한 것이다.

연우는 곧장 그곳으로 올라가려 했지만, 불의 날개를 펼치며 날갯짓을 하기도 전에 멈칫거리고 말았다.

부유성 라퓨타 위로, 분명히 창연한 푸른색으로 빛나야 할 하늘이 검은빛에 잠겨 있었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이상한 촉수 같은 것들이 아지랑이처럼 스멀스멀 내려와 라퓨타를 위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뭐지?”

연우는 일기장에서도 볼 수 없었던 현상에 눈을 크게 떴다. 그러다 저것이 칼라투스가 경고했던 ‘그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저게 대체 뭐지?”

연우는 우발라를 돌아보았다. 미궁을 관리하는 메인 코어라면, 라퓨타를 건드리는 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을 테니.

『모릅니다. 저도, 주인님이 남기신 사념체도. 다만, 저것이 옛 위대한 종족의 현인분들도 인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주 멀리 있고, 이렇다 할 이름도 없으며, 흔히 타계의 신으로 불린다는 것 밖에는. 그리고 저것이 이 섬을 ‘문’으로 삼고자 한다는 게 현재로서 알아낼 수 있는 전부입니다.』

우발라는 여전히 무심한 어투로 검은 촉수들을 보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옛 위대한 종족의 현인분들도 ‘저것’을 두고 이렇게 부르곤 했습니다.』

우발라가 눈을 가늘게 좁혔다.

『‘기어 다니는 혼돈’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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