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용의 신전 (11)
쾅!
왈츠는 앞으로 쭉 내뻗었던 주먹을 천천히 거둬들였다. 암경(暗勁)을 발출하고 난 뒤, 그녀의 주먹 끝에서는 새하얀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푸스스-
[가디언 ‘화수길’을 성공적으로 처치하였습니다.]
[용의 저주에서 일부 해방됩니다.]
"봐도 봐도 대단하군. 외뿔부족의 무공과 용종의 마법이라…… 여름여왕이 후계자는 잘 뒀어.”
대주교는 길을 개척하는 왈츠의 뒷모습을 보면서 쓰게 웃었다.
처음 왈츠를 마주쳤을 때. 대주교는 동주칠마왕의 힘을 깨워야 하나 아주 진지하게 고민했다. 천마와의 채널링이 끊어진 당시로서는 왈츠가 덤빈다면 힘에 부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왈츠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그와 주교를 한차례 훑어보더니 오히려 같이 다니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아직 휴전 협정은 유효하며, 미궁에 무엇이 숨어 있을지 모르니 자신의 수하들을 찾을 때까지만이라도 힘을 합치자는 것이었다.
대주교로서도 전혀 나쁠 이유가 없기 때문에 동의를 한 것인데.
지금 와서 보니, 왈츠는 사실 전혀 그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듯싶었다.
‘미궁의 비밀을 풀어냈다고 하더니 정말이었어. 가디언들을 부수고 난 뒤에 생기는 조각들. 저것을 모으면 되는 것이었나.’
칼라투스의 이 조각을 모으면 모을수록, 여태 단단히 억눌려 있던 왈츠의 힘도 돌아오는 것 같았다.
‘거기다 길도 이제 어느 정도 짐작하는 것 같고.’
대주교는 아직 이 복잡하기만 한 미로의 길을 찾는 방법을 몰랐지만, 왈츠는 그것도 어느 정도 짐작을 한 것 같았다. 대주교로서는 용종의 마법을 이용한 것이 아닐까 하고 짐작하는 게 전부일 뿐.
어쨌거나, 대주교는 크게 힘을 들이지 않고 왈츠의 도움을 빌려 계속 미궁의 중심부로 이동했고.
그동안에 지나친 수많은 석실에서 수하들을 여럿 찾아 재규합할 수 있었다.
그래 봤자 데리고 왔던 전력 중 7할 이상이 이미 당하거나 실종 되어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은 상태였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미궁의 난이도치고 나쁜 결과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우연히 마주쳤던 여러 플레이어들도 속속들이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기 바빴으니.
어느새 왈츠의 뒤를 따르는 무리는 금세 숫자를 불리면서 백여 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어쩌면 화이트 드래곤은 이번 위기를 계기로 입지를 더 탄탄히 다질 수 있을지도.’
이것만큼 여러 플레이어들에게 그녀에 대한 인식을 확실하게 박아 두는 방법도 없을 테니.
‘나 역시도 열쇠를 찾아야 할 터인데.’
대주교의 두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다행히 동주칠마왕의 힘을 조금씩 돌리기 시작하면서, 그 역시 끊어졌던 채널링이 아주 조금씩 복구되는 중이었다. 그 뒤에는 이딴 일을 저지른 연우를 찾아야겠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콰르르-
그때. 계속 앞으로 나아가던 왈츠가 처음으로 걸음을 멈췄다. 아무것도 없는 빈 허공을 응시하는 그녀의 모습에, 뒤를 따르던 플레이어들도 뭔가 있나 싶어 엉겁결에 위를 쳐다봤다.
왜 그러는지 대주교가 물어보려는 순간.
“깨어났어.”
왈츠가 먼저 중얼거렸다.
대주교가 섬뜩한 느낌을 받으며 물었다.
“무엇이 말인가?”
“미궁의 주인.”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쿠쿠쿠-
미궁이 위아래로 크게 격동하기 시작했다.
대주교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감각이며 동주칠마왕의 모든 힘들이 요동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 하하! 여기서도 이따위를 느끼게 될 줄이야!』
『이런…….』
『역시 칠흑이군. ‘열쇠’를 되찾 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기어 다니는 혼돈이라.』
동시에 분명히 끊어졌던 채널링이 조금씩 돌아왔다. 노이즈가 잔뜩 껴서 내용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건 분명히 동주 칠마왕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마왕 중 한 명의 목소리만은 너무나 말끔하게 들렸다.
『피해라.』
우두머리, 우마왕의 목소리였다.
“모두 자세 숙……!”
대주교는 뭐라고 소리를 치려다가, 뒤늦게 이미 늦었다는 것을 깨닫고 양손을 크게 합장하면서 마력을 사방으로 고루 뿌렸다. 근원이 뒤섞인 결계가 팽창하며 수하들을 감쌌다.
그리고.
콰아앙!
갑자기 엄청난 소리와 함께 미궁이 그대로 폭발했다.
콰르르르-
“미, 미궁이 무너진…… 크아악!”
“이게 뭐야! 으아아악!”
미궁에 들어와 한창 유물을 물색하고 있던 이들로서는 날벼락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무너지는 벽과 쏟아지는 토사에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휩쓸리거나, 그대로 생매장되는 가운데.
혼란한 마력의 격류 속에서 능력이 좋은 플레이어들은 재빨리 스크롤과 아티팩트를 사용해서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쿠쿠쿠!
워낙에 넓은 규모를 자랑하던 미궁의 붕괴이다 보니, 격동은 스테이지 전체로 퍼져나갔다.
"이게 무슨……!”
미궁의 소문을 듣고 갓 입장하려던 플레이어들은 물론.
“제기랄! 일제히 부유 마법을 전개해라! 스테이지가 이상하다!"
용의 신전을 방문하며 시련을 진행 중이던 세미 랭커들도.
“독식자, 이놈은 또 무슨 짓을 한 거지?”
폐허가 되다시피 한 35층의 소문을 들은 바가 있던 랭커들은 재빨리 신전에서 물러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노면이 갈라지고 땅거죽이 뒤집히는 등, 엄청난 규모로 이뤄지는 지진은 수많은 인명을 살상 및 실종시키면서 계속 커져만 갔고.
우우우-
끝내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지면이 내려앉은 자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나 포효를 내질렀을 때.
플레이어들은 모두 충격에 잠기고 말았다.
크롸롸롸!
분명히 사멸했다고 알려진 용이, 그것도 아주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용이 서서 크게 포효를 하고 있었다.
[타락한 용왕, 칼라투스가 출현하였습니다!]
[칼라투스의 의지에 따라 50층 전체가 용의 권역으로 지정됩니다.]
[스테이지 전체에 ‘용의 저주’가 내려옵니다.]
[‘용의 저주’가 ‘기어 다니는 혼돈’의 영향을 받아 강화됩니다.]
[‘용의 저주’가 ‘기어 다니는 혼돈’의 영향을 받아 추가됩니다.]
……
[모든 플레이어들의 채널링이 차단되었습니다.]
[모든 능력이 하향되었습니다.]
[모든 내성이 하향되었습니다.]
……
미궁에 한정되었던 마룡 칼라투스의 저주는 금세 스테이지 전체를 가득 채웠다.
하늘이 잿빛으로 물들었다. 스테이지를 구성하고 있던 법칙이 모두 잠금 처리되면서 채널링과 권능, 스킬들에 일제히 악영향이 끼쳤다.
"이, 이게 무슨……!"
“말도 안 돼!”
가뜩이나 지진에서 겨우겨우 몸을 피했던 플레이어들로서는 날벼락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망막 위에 공통된 메시지가 떠올랐다.
[50층, ‘용의 신전’에 입장한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공통적으로 서든 퀘스트가 제공됩니다!]
[네임드 보스 몬스터, ‘타락한 용왕, 칼라투스’를 사냥하십시오.]
[퀘스트 / 킬 더 드래곤]
내용: 고룡 칼라투스는 과거에 잃어버렸던 자식, 우발라를 되살리기 위해 타계의 신인 ‘기어 다니는 혼돈’과 계약을 맺은 전적이 있습니다.
그는 ‘기어 다니는 혼돈’을 통해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신성을 얻어 초월을 이루면 소망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탑을 오르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77층을 지키고 있던 올포원에 가로막혀 등반에 실패했습니다. 이에 반발해 모든 종족을 이끌고 전쟁을 시작하였으니, 이것이 훗날 2차 용살대전이라 불리는 대전쟁의 서막이었습니다.
그러나 2차 용살대전마저도 용종의 사멸이라는 끔찍한 결과를 맞이하고 말았고, 겨우 목숨만 부지한 칼라투스는 옛 거처였던 미궁으로 돌아와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며 죽을 날만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후예’만을 남겨 둔 채, ‘기어 다니는 혼돈’과의 계약에 따라, 영혼을 대가로 내놓고 말았습니다. 위대했던 마지막 용왕이 타계의 신에 오염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바로 그 용왕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소환되었습니다.
오염된 상태라고 하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일말의 정신은 자신의 마지막 안식처였던 미궁이 침입자들에 의해 더럽혀지고, 선조들의 위패를 모신 신전이 제 기능을 상실한 것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칼라투스는 자신의 안식을 방해한 자들에게 응징을 가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가 크게 날뛸수록, ‘문’이 되어 배후에 있을 ‘기어 다니는 혼돈’의 탑 내 영향력도 커지게 될 것입니다.
현재 스테이지는 칼라투스의 영역이 되어 외부로의 탈출도, 지원도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남아 있는 전력과 자원을 이용해 대재앙이 된 그로부터 살아남거나, 다 같이 힘을 모아 용의 저주를 극복하고 퇴치에 성공하십시오.
제한 조건: 50층의 플레이어
제한 시간: 72시간
성공 시:
1. 칭호 ‘용 대적자(對敵者)’
2. 공헌도에 따른 차등 보상
실패 시:
1. 50층 구획 폐쇄
2. 층계 이동 불가
3. 참여 플레이어 전원 사망
“……‘대재앙’ 이라. 미친 난이도로군.”
탁!
대주교는 수하들과 함께 스테이지 끝자락에 멀찍이 착지하며 가볍게 혀를 찼다.
대재앙(大災映).
흔히 돌발적으로 진행되는 퀘스트 중, 그 스테이지 내에서 해결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난이도의 퀘스트를 가리킬 때 쓰는 말이었다.
연결되려던 것 같았던 동주칠마왕과의 채널링도 다시 차단된 상태.
외부로의 탈출도, 지원도 불가능한 상태에서. 그나마 남아 있는 힘마저 모두 앗아 가고 나면 저런 놈을 어떻게 사냥하라는 건지.
“여럿 죽어 나가겠군.”
이미 3할가량은 죽은 듯하지만.
대주교의 두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저 멀리.
칼라투스가 양 날개를 활짝 펼치면서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대규모 레이드의 시작이었다.
* * *
탁!
연우는 스테이지 끄트머리에 위치한 절벽에 조용히 착지하면서 이를 악물었다.
‘설마…… 사념체가 아니라 진짜 칼라투스가 나타날 줄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자 소환은 실패였다.
그가 만나고 싶었던 것은 비밀을 알고 있는 칼라투스의 사념체였지, 기어 다니는 혼돈에 이미 잡아먹힌 지 오래인 칼라투스의 본체가 아니었다.
「추하군. 저것이, 그래도 한때 위대했던 일족을 이끌었던 왕이라는 작자의 몰골이라니.」
어느새 연우의 옆에는 검은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린 여름여왕이 나타나, 비웃음을 던지고 있었다.
용종이 사멸했던 2차 용살대전이 발발했던 당시 아주 어렸기에, 막연하게 칼라투스를 위엄 넘쳤던 왕으로만 기억하고 있던 그녀로서는.
지금 칼라투스가 보이는 모습이 너무나 추하게만 느껴졌다.
용으로서의 품위를 지켜도 모자랄 판국에. 덩치만 클 뿐, 자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 따위에 구속되어 저딴 식으로 영락하고 만 꼴이라니.
그녀도 자식을 아홉이나 두었었다지만.
도저히 칼라투스의 심정 따위는 이해할 수도, 딱히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사랑으로 낳은 것과, 너처럼 필요로 만든 것을 동등한 선상에 두면 안 되니까.”
그때. 연우가 고요한 눈빛으로 여름여왕을 빤히 바라보았다.
여름여왕은 팔짱을 끼면서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숙녀의 머릿속을 함부로 탐하다니. 참으로 예의 따윈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무뢰배로구나.」
샤논 등처럼 강하지는 않아도, 연우와 여름여왕 사이에도 어느 정도 연결 고리가 이어져 있어 서로 간의 생각을 공유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여름여왕은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마치 엿볼 테면 엿보라는 듯이.
오만하고, 불손하던 그녀의 성정을 생각해 본다면 당연한 태도였다.
하지만 연우는 그런 여름여왕을 더 이상 상대할 필요가 없다는 듯, 고개를 다시 칼라투스 쪽으로 돌렸다.
이미 말한 대로, 아마 여름여왕은 평생을 가도 모를 테니. 더 길게 말을 이어 나갈 필요가 있을까.
연우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손을 붙잡으며 동생을 찾으라고 신신당부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다가, 천천히 눈을 크게 떴다.
[용신안]
용의 눈을 활짝 열자, 화안금정과 현인의 눈이 동시에 연결되어 수많은 색채를 시야에 담았다.
크롸롸롸-
칼라투스가 드높은 상공으로 날아올라 검은 브레스를 내뿜고 있었다.
독기와 산성, 그리고 저주 등이 뒤죽박죽 섞인 브레스.
플레이어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갖가지 화려한 스킬 이펙트를 터뜨리면서 칼라투스를 사냥하기 위해 달려가는 중이었다.
눈치가 빠른 이들은 퀘스트창에 떠올랐던 ‘차등 보상’이 용종의 유산이라는 사실을 이미 눈치챈 것이다.
그리고 능력이 디버프를 먹었다고 해도, 이렇게나 많은 거대 클랜과 랭커, 세미 랭커 등이 있는데 설마 칼라투스 하나를 잡지 못하겠냐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연우의 눈에는 그 모든 것이 허무한 병정놀이로만 보였다.
남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그의 눈에는 칼라투스의 몸뚱이 위로 솟은 검은 촉수들이 하늘로 이어지는 게 보였다. 기어 다니는 혼돈이 칼라투스의 육체를 빌려 탑에 직접 관여를 하고 있단 뜻이었다.
‘제한 시간을 72시간으로 둔 건, 권역 지정이 스테이지를 장악할 수 있는 최대의 시간이기 때문이겠지. 그 뒤에는…… 올포원이나 관리국도 개입을 할 수밖에 없다.’
기어 다니는 혼돈의 시종이 된 칼라투스를 올포원이 내버려 두지 않겠지.
‘하지만 그래서는 모든 게 끝장 나.’
칼라투스를 사냥해야 하는 플레이어들과 다르게, 연우는 어떻게든 칼라투스를 기어 다니는 혼돈으로부터 빼앗아와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도와주랴?」
그때. 여름여왕이 연우의 생각을 읽고 피식 웃으면서 물었다. 명백한 비웃음.
「그래도 명색이 마지막 남은 용이라 불렸던 이 몸이다. 타종(他種)에게는 절대 가르쳐 줄 수 없었던, 비밀이나 약점 따위도 아주 많이 알고 있지.」
혹할 수밖에 없는 말.
샤논 등과 달리, 여름여왕은 구속력이 약해 연우가 어떻게 강제할 수가 없었다. 그런 그녀가 직접 나선다면 큰 도움이 될 테지만.
“방해 말고, 꺼져.”
「하하하! 역시 그대는 재미있는 인간이로다. 만약 도와달라고 했다면 바로 이 자리에서, 내 손으로 죽였을 텐데 말이야.」
여름여왕이 붉은 입술을 혀로 핥으려는데.
스륵-
연우 앞으로 부가 나타나 으르렁거렸다.
「죽고. 싶. 은가.」
「나서지 말고 찌그러져라, 잡것. 어디서 종놈 따위가 함부로 끼어드느냐.」
“둘 다 그만.”
연우는 부와 여름여왕의 신경전을 무시하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칼라투스를 기어 다니는 혼돈에게서 빼앗는다니. 남들이 들었다면 미친 짓이라고 하겠지만.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연우는 바토리의 흡혈검이 맺힌 왼손을 만지작거리면서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용이다, 진짜 용이다아! 꺄하하하! 고기! 고기를 내놓아라!"
그곳에는. 식탐황제가 그린 드래곤과 블랙 드래곤의 수장들을 상대하다 말고, 갑자기 칼라투스 쪽으로 방향을 꺾어 와락 달려들고 있었다. 반쯤 눈이 돌아간 채로, 군침을 질질 흘리면서.
이미 이성이 반쯤 날아간 듯 보였다.
녀석의 배 속에서. 식탐의 돌이 마구 요동치고 있었다. 아무래도 용의 저주가 작동하면서 그동안 식탐의 돌을 강제로 옥죄고 있던 봉인이 일부 풀린 모양이었다.
‘저걸 이용한다면…….’
연우의 두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생각이 끝난 순간.
“우발라.”
작은 요정, 우발라를 불렀다. 녀석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뜻대로 하세요. 이미 당신은 미궁과 라프텔의 새로운 주인이시니까요.』
"고맙군.”
연우는 절벽 아래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우발라로 연결되는 라프텔의 모든 시스템이 작동, 미궁이 폭발하면서 스테이지 곳곳으로 흩뿌려졌던 칼라투스의 이 조각들이 저절로 호응해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칼라투스의 이 조각들은 우발라를 따라 돌개바람을 그리다가, 중심으로 합쳐졌다. 구체 안쪽으로 우발라가 들어가면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철컥, 철컥-
[히든 퀘스트(저주항마력 I)를 성공적으로 달성하였습니다.]
[보상으로 ‘용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연계 퀘스트(저주항마력 II)와 연계 퀘스트(저주항마력 III)을 순서대로 완수하였습니다.]
[누구도 쉽게 이루지 못할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추가 공적치가 제공됩니다.]
[공적치를 100,000만큼 획득했습니다.]
[추가 공적치를 200,000만큼 획득했습니다.]
[보상으로 ‘용의 축복’이 강화되었습니다.]
[추가 보상으로…….]
[아티팩트 ‘용근(龍根)’이 완성되었습니다.]
연우의 손에 네모난 칩이 떨어졌다. 우발라는 미궁의 메인 프로세서. 따라서 이것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완전히 습득하는 것이야 말로 미궁을 정복해 ‘용의 후계’가 되는 퀘스트 진짜 과정이었다.
연우는 용근을 오른쪽 손등에다 밀어 넣었다. 살갗이 살짝 찢어졌지만, 용근은 피부 속으로 고스란히 스며들면서 아트만 시스템에 안착, 사고 회로와 순환 체계를 보조하기 시작했다.
용의 방대한 정신 체계는 아직 인간의 정신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연우가 완전히 감당할 수 없는 바. 용근은 이것을 보조해 효율을 증대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칼라투스의 안배였다.
그리고.
[연계 퀘스트(저주항마력 IV)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였습니다.]
[‘용의 축복’이 강화되어 모든 ‘용의 저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모든 채널링이 복구되었습니다.]
……
[모든 능력이 복구되었습니다.]
[모든 내성이 복구되었습니다.]
[모든 권능이 복구되었습니다.]
연우만이 유일하게 스테이지 내에서 칼라투스의 저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으니.
[5차 용체 각성]
[권능 전면 개방]
연우는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채널링을 활짝 열어 하늘 날개를 있는 힘껏, 그 어떤 때보다 크게 펼쳤다.
‘여기에 있는 아홉 왕은 총 다섯.’
왈츠, 탐, 마그누스, 대군주, 그리고 식탐황제.
‘오늘, 그중 최소 둘은 죽인다.’
검고 붉은 세 쌍의 날개가 불길처럼 퍼져 나가 하늘을 가득 물들였다.
그리고 그것을 앞으로 쭉 뻗은 손을 따라 실타래처럼 하나로 엮으면서.
[‘비그리드-???’가 숨겨진 진명, ‘아론다이트’를 개방합니다.]
[전승: 화룡 참살]
연우는 비그리드를 거세게 아래로 내리쳤다.
수십 수백 개의 불벼락이 뒤섞인 불의 기둥이, 하늘에서부터 지상으로 내리꽂혔다.